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그렇다면 사랑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기에. 사랑의 완성이 있을까. 아마도 그런 건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를 평생의 동반자로 맞이하는 의식을 치를 때, 우리는 이를 ‘결혼식’이라 부른다. 결혼식은, 결혼이라는 배가 ‘사랑의 실천’이라는 짐을 선적하고 이제 막 항구를 출발할 때 울리는 뱃고동 소리다.
현대의 결혼식은 늘 같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음악, 같은 걸음걸이, 같은 색의 옷, 같은 멘트···. 사회자는 외친다. “오늘부터 신랑, 신부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정겨운 이 외침에 우리는 단 한 줌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한다. 그래 맞아! 결혼은 두 사람이 비로소 하나 되는 것이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두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이 진정한 결혼의 의미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결혼 생활들이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것일까. 하나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식이 끝나면, 조명은 꺼지고 하객들은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남겨진 두 사람은 이제부터 ‘결혼이라는 집’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새로운 하루하루를 산다. 생각의 방향도, 피로를 느끼는지 지점도, 침묵을 견디는 방식도 다르다. 연애의 시기에는 이러한 ‘다름’들이 매력이 되었지만, 결혼의 집에 들어서면 불편함으로 바뀐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냐고, 뭐가 그렇게 피곤 하냐고 따져보지만, 결국은 각자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침묵한다. 하나 되어야 할 두 사람은 여전히 각자이다.
결혼의 집이 안락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그 빌어먹을 사회자의 멘트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말 한마디 이후로 두 사람은 하나를 향하여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아직도 하나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하나 된다는 이 말이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 답은 거짓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 안다. 그 누구도 둘이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지구상 80억의 인간은 그저 다른 사람들일 뿐이다.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는 숭고한 결혼식장의 신혼부부에게 가장 축복된 말이 ‘하나 되었다’라는 말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결혼에 대한 최고의 찬사 그 이상이 되면 안 된다. 식장에서 터지는 축포처럼 ‘한 번만’ 사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축포 소리와 함께 사라져야 한다. 이 말이 결혼이라는 집속까지 숨어들면, 신전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혼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겠다는 언약이다. 결혼이란 집은, 서로 다른 얼굴의 사람까지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피곤한 얼굴로 들어와도 괜찮고, 설명하지 않아도 쉴 수 있으며, 무방비 상태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공간. 두 사람이 지은 신전. 그곳이 결혼이라는 집이다, 그 집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선생은 ‘예언자’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함께 서 있으십시오. 단, 너무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신전의 기둥은 제각각 떨어져 서 있는 법. 떡갈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으니까요.”라고. 신혼집에 들어서는 신혼부부는, 이 빌어먹을 말이 신혼여행 가방 속에 숨겨져 있지 않은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공봉학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