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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포항병원, 신규 의료진 영입 ‘맞춤형 진료’

에스포항병원(대표병원장 김문철)이 신규 의료진을 영입하며, 환자들에게 더욱 향상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3일 밝혔다. 이번 신규 의료진 합류는 에스포항병원의 지속적인 발전과 환자 맞춤형 치료 서비스 강화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3월부터 진료를 시작하는 신규 의료진은 신경외과 정준호 진료과장, 재활의학과 김형섭 진료과장, 순환기내과 배민욱 진료과장 총 3명이다. 신경외과 정준호 진료과장은 인하대학교 박사 출신으로 아주대학병원 신경외과 임상강사,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신경외과 임상진료교수, 인하대학교 신경외과 전임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학교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전임 교수 등 경력을 갖고 있다. 정 진료과장은 뇌혈관내치료(혈관내 중재술) 인증의, 뇌혈관외과 인증의로 뇌혈관 분야에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김형섭 진료과장은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원 재활의학전공 박사학위 취득,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교실 전공의 수료, 삼성서울병원 수련의 수료,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재활의학교실 임상교수, 경기북부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이번에 영입된 김 진료과장은 재활의학과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입된 순환기내과 배민욱 진료과장은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내과 전공의, 을지대학교 대전병원 심장내과 전임의, 을지대학교 대전병원 심장내과 임상교수 등에서 임상 경험을 쌓았다. 순환기내과 배민욱 진료과장은 4일부터, 신경외과 정준호 진료과장, 재활의학과 김형섭 진료과장은 10일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에스포항병원 김문철 대표병원장은 “이번 신규 의료진 영입은 지역사회 환자들에게 더 나은 의료 환경을 제공하고, 높은 퀄리티의 의료 서비스 수준을 만들 중요한 기회”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우수한 의료진을, 영입을 통해 지역 사회가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는 데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25-03-03

가전 점검 받듯 내 몸도 ‘케어’ 해야

이용호 범어 리드엠 마취통증의학과 대표원장“치유(Cure)가 아닌 관리(Care) 시대입니다.” 요즘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기보다는 관리 받는 방향으로 생활 방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구독하거나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냉장고, 공기청정기, 정수기와 같은 제품들은 단순히 한 번 구매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전문가의 점검과 관리 서비스를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은 어떨까요. 우리 몸은 한 번 고쳐서 끝나는 물건이 아니라, 평생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특히 근골격계는 일상적인 움직임과 활동을 책임지는 핵심 시스템으로, 전문가의 꾸준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근골격계 관리: 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까? 정수기 필터를 교체하거나 에어컨 내부를 청소하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근골격계 역시 단순히 운동이나 식단 조절만으로는 완벽히 관리하기 어렵습니다. 근골격계 문제는 초기에는 통증이나 불편함이 없어도 진행될 수 있습니다. 또 사람마다 체형, 생활습관, 근골격계 상태가 다르며,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약화합니다. 하지만, 노화의 속도와 영향을 줄이는 것은 관리에 달렸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근육량 감소와 관절 손상을 늦추고, 건강한 움직임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운동을 하거나 자세를 교정하려고 시도하다 보면 잘못된 방법 탓에 오히려 근골격계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리한 스트레칭이나 잘못된 자세로 하는 근력 운동은 관절과 인대에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관리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근골격계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 지속적인 ‘Care’ 근골격계 관리는 단순히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기기 전에 예방하고 관리하는 Care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전문가를 찾아 근골격계 상태를 점검받고, 필요한 운동이나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통증을 줄이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모든 사람의 근골격계 상태는 다릅니다. 전문가와 함께 개인의 상태에 맞는 맞춤형 관리 프로그램을 설계하면 더 효과적으로 근골격계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부위, 이를테면 사무직의 목과 어깨, 육체노동자의 허리 등에 따라 구체적인 관리 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 렌털 서비스처럼, 우리의 몸도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매년 건강 검진을 받듯이, 근골격계도 정기적으로 점검받아야 합니다. △관리 받는 몸이 건강을 유지한다 우리가 정수기 필터를 제때 교체하지 않으면 물이 오염되고, 에어컨을 관리하지 않으면 성능이 떨어지듯이, 우리의 몸도 관리가 부족하면 점차 약화하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근골격계는 한 번 손상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초기부터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는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이루어지지만, 관리는 문제를 예방하고 더 나은 삶을 준비하게 합니다. 당신의 몸은 평생 함께할 가장 소중한 자산입니다. 오늘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근골격계를 돌보는 데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렌털 서비스처럼, 우리의 몸도 정기적으로 관리 받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Cure가 아닌 Care’의 마인드로 지금부터 시작해 보세요. 당신의 몸은 그 노력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5-03-03

“지역민 신뢰받는 공공병원” 포항의료원, 새 비전 선포식

경상북도포항의료원(원장 박성민)이 지난달 28일 포항의료원 2층 대강당에서 150여명의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미션·비전 선포 및 청렴서약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사진 이번 선포식은 새로운 변화,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로, 포항의료원의 미래 비전을 임직원들과 공유하고, 청렴한 조직문화를 다짐해 포항의료원이 나아갈 방향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포항의료원은 ‘보건의료서비스를 선도하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이라는 미션을 선포하고 ‘최상의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신뢰받는 의료원’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가치로 △혁신과 창의 △소통과 존중 △상생과 협력이라는 구체적인 조직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미션과 비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설정했다. 또 미션·비전 선포 이후 이어진 전 직원이 함께하는 청렴서약식에서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변화를 다짐하며, 조직의 청렴성을 더욱 강화할 것을 결의했다. 박성민 원장은 “우리 포항의료원 구성원 모두가 공공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시대적 과제에 맞춰 새로운 역할을 정립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마음으로 나아가 지역민이 신뢰하는 의료원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시라기자

2025-03-03

TK출신 이재명, 조기 대선시 ‘TK 30%’ 넘길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TK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데 이어 김문수 전 장관을 제외한 보수진영 후보들과의 양자대결에서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2주 동안 TK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대권 후보는 이 대표였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25∼26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이 대표가 TK에서 30.8%를 얻어 보수 진영 후보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21.6%), 홍준표 대구시장(10.6%), 오세훈 서울시장(9.8%), 한동훈 전 대표(7.2%) 등을 앞섰다. 앞서 지난달 13∼14일 같은 조사에서 이 대표는 TK에서 25.5%를 얻었다. 2주동안 5.3% 상승한 셈이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를 반영하듯 차기 대선 가상 양자대결에서도 이 대표는 TK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실제 TK지역 결과만 살펴보면 이 대표와 홍 시장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이 대표 33%, 홍 시장 28.7%로 이 대표가 4.6%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와 오 시장의 가상 양자대결에서는 이 대표 32.4%, 오 시장 30.3%였다.  특히 이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의 가상 양자대결에선 이 대표 33.7%, 한 전 대표 25.3%로 이 대표가 오차범위 밖인 8.4%포인트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이 대표는 김 전 장관과의 대결에서는 열세를 기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와 김 장관의 가상 양자대결에선 김 장관 41%, 이 대표 32.2%로 김 장관이 8.8%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이 대표가 TK에서 선전함에 따라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지금과 같은 30%대의 지지율을 대선때까지 이어갈 수 있을 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민주당 후보에게 TK에서의 30% 득표율은 이상적인 수치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치러진 2017년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47.06%를 얻었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1.75%에 머물렀다. 지난 대선에 민주당 후보였던 이 대표는 대구에서 21.6%, 경북에서 23.8%를 얻었고, 고향인 안동에서도 29.13%를 얻는 데 그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TK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면서도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면 보수층 결집이 극대화될 것으로 보여 이 대표가 TK에서 30%의 득표율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을 앞두고 있어 ‘사법리스크’해소 여부와 TK에 대한 애정을 얼마나 드러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차기 대선 집권 세력 선호도를 조사 결과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은 55.1%,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의견은 39.0%로 집계됐다. TK에서는 정권 연장론이 53.4%, 정권 교체론이 39.%로 정권 연장론이 우세했다.  이번 조사는 무선(100%)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6.0%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2025-03-03

자르려 하면 잘리지 않는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언스플래쉬 칼을 쥐고 무언가 잘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미스터 초밥왕. 최근 우연히 읽게 된 만화책이지만 생각보다 나는 더욱 깊게 빠져 들어 읽고 있다. 거대 초밥회사인 사사 초밥이 장악하고 있는 홋카이도 오타루시. 주인공인 쇼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토모에 초밥은 사사 초밥의 훼방 속에서 간신히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가게가 망해갈 무렵, 다시 가게를 일으킬 기회인 초밥 콘테스트를 쇼타가 나가게 되고 어딘가 미숙하지만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오오토리 세이고로의 스카웃으로 도쿄의 유명 초밥집인 봉초밥집에 입성하게 된다. 곧바로 초밥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쇼타의 담당은 배달, 접시 닦기, 청소뿐이었고 간신히 그럴 듯한 임무가 주어지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뿐이다. 하지만 쇼타는 그 어려운 도전 속에서 사람을 믿는 마음과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고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정진한다. 늘 새롭고도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약점이 더 도드라지지만 약점에 함몰되어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될지 안될지 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꾸준함으로 나아간다. 상대의 방해와 계략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놓고 쇼타를 험담하는 상황 속에도 쇼타는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상대의 본질과 약점을 파악하고 만다,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여 근원을 찾는 쇼타는 결국 스스로를 믿는 힘에 열쇠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쇼타는 늘 성장한다. 어제보다 더 깨우치고 더 배우며, 자신보다 초밥 기술을 16년이나 앞선 라이벌의 코를 짓밟기도 한다. 쇼타는 그런 해맑고도 우직한 모습을 통해 알 수 없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쇼타가 늘 열의에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강적을 만날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쇼타는 심히 당황한다. 두 주먹을 질끈 쥐고서 어쩔 줄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땅 아래로 시선을 향해 있다. 나는 그러한 상태를 요즈음 나의 모습과 계속해서 겹쳐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쇼타의 주변인들이 나타나 한마음으로 쇼타를 응원한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쇼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며 지지 않아야 되는 이유들에 대해 다시금 쇼타에게 알려준다. 쇼타 또한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다시금 일어나 씩씩하게 나아간다. 내가 지금 어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를 때, 믿음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고, 나는 그러한 믿음으로 이어진 유대감이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자 중요한 삶의 이유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만화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지게 느낄 만큼 믿음과 유대로 이어진 선의 편은 늘 이기고, 증오와 미움, 거만으로 점철된 악의 무리는 늘 거만에 취해 승부에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만화적인 권선징악의 주제가 좋다. 선은 어떤 방향으로든 이긴다라는 다소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이 주제를 애써 믿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세상은 언제까지고 느리고 어리숙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게 제일 중요한 건 한낱 응석 뿐만이 아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을 갖는 것.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내 앞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상이 아주 새까맣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혹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 주변의 믿음과 사랑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엔 아주 어릴 적 논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단 할머니를 기다리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기에 전생이나 꿈결처럼 희미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갔던 언덕의 시골 풍경과 모퉁이의 코스모스의 길이 기억 난다. 할머니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다 같이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은 분명히 천국의 무지개를 마주한 것처럼 따스했고 지나치게 평온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일은 무언가 급히 잘라야만 한다는 강박의 칼자루를 내려두고, 그저 현재를 지혜롭고 편안하게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삶을 평온하게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날들이지만 마음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는 사랑의 요소를 생각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2025-03-03

내가 모르는 상처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도…. /챗gpt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무릎에 새끼손톱만 한 핏자국이 굳어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다쳤는지 모른다. 어떤 날에는 손등에, 또 어떤 날에는 정강이에, 심지어는 뺨이나 콧등에도 원인미상의 상처가 생겨 있다. 살갗이 까지거나 패인 자국, 무언가에 할퀸 자국, 어디 찧었는지 멍 자국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때마다 ‘칠칠치 못하게 쯧쯧, 조심 좀 하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한다. 마치 자동차에 난 미세한 흠집처럼, 어쩌다 다쳤는지 모르는 작은 상처들도 하나 둘 자꾸 많아지니 신경이 쓰인다. 목욕탕에서 내 몸을 보며 골똘해졌다. 격투기 선수도 아니고 유격훈련 받는 군인도 아닌데 무슨 상처들이 이렇게 많을까. 문득 내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미안함은 ‘차분하게 행동하자, 모서리를 조심하자, 자다가 함부로 몸을 긁지 말자’ 정도의 반성과 다짐이 됐지만 그때뿐이다. 집에 와 보니 양말 발뒤꿈치에 검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생기는 몸의 상처만큼 마음도 어쩌다 다친 줄 모르면서 벌써 패이고 깎이고 베인 곳들이 있다. 마음의 잔상처들은 어디서 오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찧거나 할퀴는 것처럼 마음도 무엇엔가 접촉하고 충돌했기에 다쳤을 텐데. 하루에도 여러 사람들과 관계하며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문자든 말이든 우리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 칼이 칼인 줄 모르고, 가시가 가시인 줄 모르면서 다치거나 다치게 하는 일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 누구와 다툰 것도 아니고 혼난 것도 아니고 손가락질 받거나 모욕을 당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지극히 보통의 일상을 보냈을 뿐인데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날이 있다. 어느 순간에 어떤 지점에서 상처 받았는지 모른다. 아니, 알지만 그러려니 한다. 따져들면 서로 피곤해지기만 하고, 쓰라리긴 해도 심각한 건 아니니까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이런 일에 일일이 스트레스 받으면 험한 세상 못 산다고, 그러니 무던해지자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당부하면서. 하지만 무딘 사람이 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상처가 아예 굳어져서 더는 상처 받지 않는 바위를 보면 굳고 정한 기상이 느껴지는 대신 안쓰럽기만 하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위의 패이고 벌어진 상처에 손을 넣고 암벽을 오른다. 상처는 손을 부른다. 상처로 모여드는 손들이라고 다 치료하는 손은 아니다. 익숙하니까, 편하니까, 나한테 필요하니까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고 손을 넣는다. 내가 매달려 의지하는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나로 인해 바위처럼 패인 자국을 많이 지녔을 것이다. 바위를 안쓰러워 할 시간에 사람부터 챙기자.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안 그러는데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은 늘 그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일단 ‘아니야’라고 부정하는 버릇이 있다. 수년 째 같이 운동하는 사회인야구팀에서 선발투수인 나는 외야수가 실책을 하면 허리에 손을 얹고 미간을 찌푸린 채 한참 노려보곤 한다. ‘설마 그런 사소한 걸로 상처 받겠어?’ 싶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죽을 것 같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린 게 패혈증이 되어 합병증을 앓다 죽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신기섭, ‘나무도마’)을 생각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나의 바위, 나의 나무도마인 엄마가 이제야 어른거린다. 짜증, 투정, 핀잔, 탓… 얼마나 오랜 세월 엄마는 자식의 감정 하치장이 되었나. 이제는 안 그럴 나이가 됐는데도 엄마 앞에선 여전히 ‘금쪽이’다. 엄마의 마음이야말로 시인이 말한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이 아닐까. 내 상처가 대수롭지 않으니 타인의 상처도 가볍게 여겼을까. 차를 범퍼카처럼 막 굴리면서 이 정도 스크래치쯤이야 하는 사람처럼, 접촉사고를 내고서도 다 나 같은 줄 알고 뭘 이런 걸로 보험을 부르냐며 적반하장이었을까. 이제 나는 내 상처를 똑바로 보려 한다. 어쩌다 다쳤는지, 누가 아프게 했는지 찾아내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흠집이라도 내 상처를 심각하게 여겨야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도 진지해진다. 안 다치는 법을 알아야 안 다치게 할 수 있다. 내 상처를 잘 관리해야 타인의 상처에도 새살을 돋게 할 수 있다고, 나는 지금 까진 무릎에 바를 연고를 찾아 서랍을 뒤지는 중이다.

2025-03-03

깨진 유리창의 법칙

학원을 파하고 급히 횡단보도를 뛰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아찔하다. 차들은 바삐 오고 갔다. 아파트 옆 동 동생과 함께 저녁 산책을 다녀오며 무심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신호등을 찾았지만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호등이 있는 것처럼 계속 서 있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 뒤로, 우리 옆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누군가 휴대폰을 보며 뒤따라 멈췄고, 이어서 유모차를 밀던 엄마도 정지선에 멈췄고, 손을 꼭 잡고 걸어오던 노부부도 멈췄다. 횡단보도는 그대로였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마치 당연히 기다려야 하는 장소가 된 것처럼. 나는 문득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떠올랐다. 작은 무질서가 방치되면 더 큰 무질서를 부른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거꾸로 누군가가 질서를 지키면 다른 이들도 따라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때로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곤 한다. 누군가가 무단횡단을 하면 뒤따르는 사람들도 별다른 고민 없이 건넌다. 반대로 누군가 오늘처럼 멈춰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멈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작용하는 듯 했다. 어릴 적 우리 동네 전봇대에는 낙서가 많았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 몇 개였는데 금세 키 큰 전봇대는 사람의 손이 닿는 모든 지점이 낙서로 뒤덮였다. 그 때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붓을 들고 페인트를 칠해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의아해했지만 깨끗해진 전봇대는 의외로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새로 낙서를 하는 아이들이 줄어든 것이다. 누군가 작은 질서를 만들어 놓으면 그 질서를 따르려는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는 듯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단순히 멈춰 서 있었을 뿐인데 그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작은 변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조금 후, 차 한 대가 멈췄다. 신호등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지자, 운전자가 양보한 것이다. 그곳에 서 있던 사람들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다. 재밌는 상황이 벌어지자 모두가 건너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 앞에 또 새로운 사람이 서 있었다.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그 뒤로 또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가져 오는 변화, 질서를 깬 작은 요소가 혼란을 가져오듯 질서를 지키는 작은 행동도 조화를 만들 수 있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처럼. 최근에 본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카페에서 자리가 부족해지자 어떤 손님이 쓰레기를 테이블에 그냥 두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결국 카페 안은 금세 어질러졌고 직원이 치우기 전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유명한 카페라고 갔지만 정돈되지 않은 무질서에 시간 내어 찾아온 카페에 대한 불 김경아 작가 신과 후회까지 밀려왔다. 긴 시간도 아니었고 찰나에 일어난 무질서였다.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흐름을 만들 수 있다. 무질서가 퍼지듯 질서와 배려도 전염된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대신 닦아내고 정돈을 시작하는 것, 지금 우리 주변에 가장 필요한 법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종종 거대한 변화를 원하지만 정작 변화를 만들어내는 작은 행동의 본질을 간과하곤 한다. 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이 있다면 그림자를 본 누군가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행동을 하게 되고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대화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점점 그 공간은 질서를 갖춘 분위기로 변해가는 간다. 우리는 선순환의 시작점을 만드는 자리에 서야 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내딛는 한 걸음이 작은 변화가 되고 큰 바람을 일으킨다. 시간이 흐르면 긍정의 선택이 모여 또 다른 시작을 만들어 낼 것이다. 깨진 유리창을 더 박살내고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시작점에 누군가는 또 서 있게 될 것이니까. /작가 김경아

2025-03-03

영혼의 맹인들을 향한 윤동주의 점자

저의 앨범에는 중학교 3학년 때 소풍을 가서 찍은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관광버스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요. 자세히 보면 제 손에는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들려 있습니다. 어린 저는 윤동주를 읽으며, 나도 감히 문학을 한다면 윤동주처럼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제 문학의 출발에는 윤동주가 있었고, 문학이라는 길 위에 서 있는 지금도 윤동주는 변치 않는 ‘문학의 상징’입니다. 당연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건네주는 감동은 저만의 것은 아닌데요. 사실 윤동주만큼 시공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문인도 드뭅니다. 윤동주의 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에서 모두 사랑받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일본에는 아름다운 시비가 세워져 있을 정도니까요. 윤동주의 그 고결한 삶을 앗아간 일본에서조차 윤동주의 문학은 수많은 일본인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여러 곳에서는 지금도 윤동주에 대한 추모 모임이 열리고, 낭송회가 열리고, 답사 모임이 열리고는 합니다. 윤동주는 고작 27년 1개월을 이 지구별에 머물다 갔지만, 그처럼 동아시아의 다양한 공간을 두루 편력한 문인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동주는, 한반도의 평양과 서울에서 중학교와 전문학교를 다녔으며, 이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교토의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결국 후쿠오카의 차가운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윤동주는 오늘날의 한국, 북한, 중국, 일본을 모두 중요한 삶의 공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제가 1년간 도쿄에 머물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계획한 일 중의 하나도 윤동주의 도쿄 내 행적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윤동주는 1942년에 한 학기 동안 릿교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다녔는데요. 2025년 2월 16일은 윤동주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월 16일은 일요일이었기에, 저만의 조촐한 추도회를 갖는 심정으로, 이틀 앞선 2월 14일에 윤동주의 도쿄 내 흔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윤동주가 도쿄에서 머무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다카노바바의 하숙집 터였습니다. 다카노바바에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밝혀낸 이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야나기하라 야스코입니다. 수필가이기도 한 그녀는 윤동주의 릿교대 후배로서, 평생 동안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알리는데 헌신해 온 분인데요. 그녀의 조사에 따르면, 윤동주의 하숙집은 현재 일본점자도서관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윤동주가 머물렀던 곳에 일본점자도서관이 생겼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윤동주가 영혼의 잉크로 써내려 간 시들은, 일제 말기 정신의 맹인들을 깨우치기 위한 점자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윤동주의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기대하며 한참을 서성였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의 건물이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윤동주가 한 학기를 다닌 릿교대학이었습니다.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던 다카노바바에서 릿교대학은 대략 2.5킬로미터 정도가 떨어져 있었는데요. 스물여섯 살의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릿교대학까지 직접 걸어가 보았습니다. 릿교대학에 도착했을 때, 고풍스러운 본관인 모리스관이 저를 맞아 주었는데요. 어딘가 낯이 익다고 생각하여 자세히 보니, 담쟁이 덩굴까지 포함하여 윤동주가 공부한 연세대의 언더우드관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윤동주가 도쿄에 머물며 릿교대학에 다닌 때는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직후여서 참으로 분위기가 험악했습니다. 그것은 윤동주가 이 무렵 삭발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야나기하라 야스코에 따르면, 릿교대학은 윤동주가 입학한 직후에 “전시체제에 맞추어서 질실강건(質實剛健)한 기풍을 진작하려는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삭발을 강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경재 숭실대 교수 릿교대학 본관 바로 옆에는 Mather Library 기념관이 있었는데요. 그 건물의 입구 바로 오른 편에는 윤동주가 릿교대학에 다니며 창작했던 다섯 편의 시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쓰여진 시’, ‘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다섯 편의 시는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인데요. 이 시들은 윤동주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들로서, 윤동주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편들입니다. 도쿄에서 윤동주는 조선(인)을 참으로 그리워했던 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동무 박이여! 그리고 김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흐르는 거리’)라며 애타게 벗들을 불러보는가 하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사랑스런 추억’)며 애타게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결국 윤동주에게 “육첩방은 남의 나라”(‘쉽게 쓰여진 시’)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절절한 외로움 속에서 윤동주는 “홀로 침전”(‘쉽게 쓰여진 시’)하며 “슬픈 천명”(‘쉽게 쓰여진 시’)으로 주어진 시 쓰기에 열중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속에서 윤동주는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쉽게 쓰여진 시’) 인류의 예언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상 만물은 부서지고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맑고 투명하여 애처롭기까지 한’ 윤동주의 삶과 문학만은, 2025년 2월의 도쿄에서도 변치 않는 ‘젊음의 표상’으로 영원을 살고 있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2025-03-03

계몽이란 무엇인가?

허민문학연구자 “제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몰랐던 민주당이 저지른 패악을 일당 독재의 파쇼 행위를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하려고 비워둔 시간을 나누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사의 최종변론이다. 성스러운 비상계엄으로 ‘야당의 독재 파쇼 행위’라는 성립 불가능한 상황을 인지하고 계몽되었단다. ‘윤통’의 은혜에 감복한 간증처럼 들리기도 했고, 일제 말 대동아전쟁을 거룩한 ‘성전(聖戰)’으로 선전하던 ‘총독의 소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자기의 무지에 관해 회의할 수는 있겠지만, 왜 가만있는 대중의 지성을 시험하려는지 모르겠다. 선민의식과 노예근성, 엘리트주의와 독선이 ‘짬뽕’ 된 변종의 어용적 세계관이라 하겠다. 내란 정국에서 별의별 궤변과 요설과 망언 때문에 고달팠고, 그 과정에서 소용된 말들의 오염과 오용도 참기 어려웠는데, 그 대미를 장식해준 것 같다. 이를 기리며(?) 별안간 ‘핫’해진 ‘계몽’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몇 자 적어두고자 한다. 칸트는 “계몽이란 우리가 마땅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정의한 바 있다. 이때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러면서 “이 미성년 상태의 책임을 마땅히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은, 이 미성년의 원인이 지성의 결핍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도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결단과 용기의 결핍에 있을 경우”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미성숙이란 다만 지성의 부재를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미성숙의 상태에서 성숙으로 상승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봤다. 물론 칸트는 자신이 속한 시대를 ‘계몽된 시대’가 아니라, ‘계몽의 시대(=프리드리히 왕의 세기)’로 파악함으로써 계몽의 주체로서 이성의 공적 사용을 보증할 수 있는 힘은 왕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는 ‘계몽된 시대’의 도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둠으로써, 인간에 고유한 지성의 능력을 미래로부터 확보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칸트에게 계몽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보편적인 능력으로서 공정하게 열려있는 유예된 성장의 기회를 의미한 것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는 칸트의 계몽에 관한 바로 이 노트로부터, 인간 지성에 내재된 평등의 원리를 식별해 낸 바 있다. “무언가를 혼자 힘으로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 배워보지 못한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무능력이란 가르치려는 자의 가치관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나는 인간이다, 고로 생각한다”라는 인식으로 뒤집은 것이다. 이런 역전이야말로 지적 능력의 본성상 평등을 의식하는 해방이라 할 수 있겠다. 12·3 비상계엄으로 계몽된 사실이 있다면, 이는 5년 단임 선출직 공무원의 몽니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 데 있을 뿐이다. 철학의 빈곤이 야기한 허언 속에서 집단지성의 위력에 대한 대통령의 무지가 드러났다.

2025-03-03

미나리와 겨울나기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 지난 겨울 초입에 야생 미나리 뿌리를 한 줌 캐 왔다. 들에 자생하는 미나리는 기온이 내려가면 잎은 다 시들고 뿌리만 땅속에서 월동을 한다. 아시아가 원산인 미나리는 맛과 향이 좋아 식용작물로 많이 재배되고 있다. 도랑에 저절로 난 미나리는 사람이 가꾼 것보다 질기긴 하지만 향은 더 진하다. 여름철에 수북하게 자라면 베어다가 생으로 매운탕에도 넣고 데쳐서 무치기도 했다. 적당한 시기에 자르지 않으면 장다리가 나와 꽃이 피고 쇠어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 반으로 자른 페트병에 물을 붓고 미나리 뿌리를 담가 놓으니 며칠 후부터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따금 물만 갈아 주는데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 올랐다. 두어 주일이 지나자 페트병을 가득 채운 미나리 파란 싹이 어둑한 내 방에 생기와 긴장을 불어 넣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오래 전에 배운 동요가 떠올라 절로 흥얼거리기도 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람 싹이 돋아났어요.’ 살면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주변의 사물과 현상들이 문득 새롭게 보일 때면 그와 관련된 동요가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동요를 배우면서 그때까지 무심히 보아 넘기던 것들이 새롭게 인식되고 각인되어서 기억과 정서에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이라는 동요가 떠오르고, 고향 생각을 하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 따라 나온다. 첫돌맞이 아기처럼 방싱방실 웃는 민들레,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스르르 잠이 드는 섬집 아기,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가는 다람쥐,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옹달샘…. 얼마나 맑고 곱고 정감어린 동심의 세계인가. 페트병에다 미나리 뿌리 한 줌을 키우는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정성이나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약이나 식용으로 쓸 것도 아니라서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파릇하게 자라는 미나리와 함께 호흡하고 생기를 나누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가 않다는 생각이다. 설령 수억 원짜리 명화를 걸어 놓고 날마다 쳐다본다고 한들 이보다 더 좋은 감동과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미나리 뿌리를 캐온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물이 마른 도랑에 죽은 듯 시들어버린 미나리 잎을 보고 문득 뿌리를 캐다가 방안에 두면 싹이 나올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것뿐이다. 그렇다. 우리가 평소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도 관심을 가지고 일상 속에 들여 놓으면 삶이 한층 생기롭고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미나리 싹이 자라는 걸 볼 때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동요를 흥얼거리며,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나이도 잊고 아이처럼 순진무구해져서 겨울을 지나왔다. 이제 봄이 왔으니 다시 들녘으로 돌려보낼 테지만, 어둡고 긴 겨울 동안 더없이 해맑고 싱그러운 이웃이 되어준 미나리 싹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2025-03-03

대구 동구청, 지방규제혁신 평가 ‘행안부 장관상’

대구 동구청(구청장 윤석준)은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2024년 지방규제혁신 추진 성과평가에서 우수지자체로 선정됐다. 사진 3일 동구청에 따르면 우수지자체 선정 결과로 행정안전부 장관상과 재정 인센티브 1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광역, 시, 군, 자치구 4개 단위로 평가를 진행해 우수 지자체를 선정했다. 지방규제 혁신 추진 성과평가는 △법령에 규정된 규제를 발굴하고 중앙부처에 개선을 요청하는 활동 △지자체 조례·규칙 상의 규제 해소 추진 △그 밖에 인허가 등 행정업무 수행 시 지자체 공무원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그림자·행태규제 개선 등을 합산해 실적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동구청은 △자치법규 내 소하천 점용료 부과 기준과 감면 비율 완화 △공유재산의 변상금 및 대부료 분할납부 기준 완화 △국무조정실 현장토론회, 행안부 실무회의, 광역·기초 심층간담회, 구·군 합동 간담회 추진 등 현장 속에서 규제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실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자치구 단위 평가에서 전국 5위를 차지했으며, 2022년부터 3년 연속 지방규제혁신 추진 우수지자체로 선정됐다. 윤석준 구청장은 “앞으로도 규제혁신 분야에서의 성과가 구민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5-03-03

공연·전시계 소식

포항 클래식 공연 신윤석 비올라 귀국 독주회 piano.박정은 (3월 15일 오후 7시30분) 경북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신윤석 비올리스트가 독일에서 귀국 후 독주회를 갖는다. 포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의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심도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다. 포항예술고등학교 실기강사로서 함께 후학 양성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정은과의 호흡이 기대된다. 포항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입장료: 전석 초대│문의: 010-9506-9204 대구 오케스트라 DCH 앙상블 페스티벌-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3월 8일 오후 5시) 서울바로크합주단이라는 이름으로 1965년 창단된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는 국내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챔버오케스트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챔버 오케스트라로 올해 최초로 창단 60주년을 맞이했다. 또한 45년째 KCO의 단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김민 음악감독의 리더십과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시면 좋겠다. 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입장료: 2만~3만원│문의: 053-430-7700 전시 국제미술展 - 이별 대신 만남 (3월 4~9일) 러시아-한국 우호협회 국제문화센터는 ‘이별 대신 만남’ 국제 미술 전시회를 공식 발표했다. 본 전시회는 러시아와 대한민국 간의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한-러 문화 관계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이 전시회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봉산문화회관 3전시실│입장료: 무료│문의: 053-422-6280 전시 이근형 글자 디자인展 (3월4~9일) 완성형 한글 폰트를 포함한 한글 디자인 작업이 전시돼있다. 한글 명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780자 완성형 폰트를 중심으로 그동안 시도한 다양한 한글 디자인을 선보이며 전시작 중 일부는 차후 완성형 폰트로 추가 개발할 예정이다. 봉산문화회관 2전시실│입장료: 무료│문의: 053-422-6280 송클레어. /대구문화예술회관 제공 클래식 화이트데이 콘서트 with 송클레어 - 2025 아츠스프링 대구 페스티벌 (3월 14일 오후 7시30분) 한 해 중 달콤한 날, 화이트데이에 부드러운 감성과 목소리를 들려줄 남성 4중창 팝페라 그룹 송클레어가 나타난다. 불후의 명곡 우승, 팬텀싱어4 출연, 국내외 주요 극장 제작 오페라 주역 등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성악가들이다. 이들의 10년지기 우정의 하모니를 진하게 느껴 보면 좋겠다.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입장료: 전석 2만원│문의: 053-430-7667~8 /박정은 객원기자

2025-03-03

한국 추상미술, 뿌리부터 톺아보기

추상미술은 대상을 주관적 인식에 따라 표현하며, 구체적 재현보다는 작가의 감정과 해석을 중시한다. 외부 세계나 사회적 현실과 무관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예술이다. 작가의 무의식 세계를 화면에 구현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을 탐구한다. 각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전해 온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전시 전용공간인 스페이스 하이브에서 4월 13일까지 열리고 있는 ‘한국추상미술 하이라이트’전은 추상미술의 주요 작가와 경향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추상미술 전개에 있어 중요 역할을 담당했던 영남 추상미술 작가들의 작품도 만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가는 박서보, 김창열, 이강소 등 모두 57명이며, 개성적이면서도 독특한 상상력이 발현된 작품들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김희철 대구문화예술회관장은 “스페이스 하이브 개관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가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대별 양식의 특징을 조망하고, 한국 추상미술의 정수를 감상하며 한국 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모두 5개 주제로 구성됐다. 첫 번째 ‘동시대 추상의 전개’는 대구를 비롯한 국내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동시대 추상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전시는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표현 방식을 통해 다양한 매체와 작가 정신이 결합된 형태의 작업을 펼치는 작가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곽훈, 권정호, 김결수, 김구림, 김영세, 김호득, 권오봉, 남춘모, 박두영, 박종규, 백미혜, 송광익, 이교준, 정은주, 차계남, 홍현기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두 번째 섹션인 ‘단색화’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적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단색화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으로 평가받으며, 화면의 환영적 요소를 배제하고 동양적 정신성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섹션에는 김기린, 김창열, 박서보, 서승원, 유희영, 유병수, 윤형근, 이동엽, 이우환, 최명영 등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세 번째 섹션인 ‘사물과 신체’에서는 사물과 이미지, 그리고 신체와 현상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열린 ‘대구현대미술제’에서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세계의 현상을 조망했던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이번 섹션에서는 곽인식, 김구림, 박현기, 신성희, 이강소, 이건용, 이명미, 이배, 이향미, 최병소, 한영섭 등의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네 번째 섹션인 ‘앵포르멜과 기하학’에서는 사회적 변화와 예술 사조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 전후로 일어난 4·19 혁명과 국전의 경직성에 대한 저항 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앵포르멜 미술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기하학적 추상의 전개 과정을 조망한다. 전시작가로는 류경채, 박광호, 문곤, 문종옥, 유병수, 이동진, 이영륭, 이향미, 장석수, 정은기, 최영조, 최욱경, 최학노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 ‘형상에서 추상으로’는 초기 한국 추상화의 시작과 한국화의 현대화를 조명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의 자연과 정서를 반영한 작품들을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환기, 남관, 서세옥, 유영국, 이성자, 이응노, 정점식, 정창섭, 최만린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관람객들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1층 5개 전시실을 기획전시 전용공간 스페이스 하이브로 조성했다. 하이브는 회관 건축 디자인의 육각 벌집 구조를 상징하며, 대구 미술의 기반을 다지는 공간으로 조화, 연대, 강인함을 담았다. 35년간 지역 시민과 예술가들을 위한 기획전을 개최해온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이번 개관을 통해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5-03-03

이재명의 실용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을 인용하여 실용주의를 주장했다. 나아가 2월 10일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탈이념·탈진영의 실용주의가 성장발전의 동력”이라면서 실용정치를 거듭 역설했다. 심지어 당의 이념 정체성까지도 ‘중도·보수’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왜 갑자기 ‘우(右)클릭’해서 실용주의자로 변신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지지율 정체로 인해 조기대선이 실시될 경우 승패를 결정짓는 중도층에 대한 외연확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실용주의 정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진영정치가 판치는 우리의 현실에서 실용정치는 타협의 가능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재명의 실용주의에는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말’과 ‘행동’이 달라서 ‘진정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우파 실용주의’를, 그리고 행동은 ‘좌파 포퓰리즘’을 추구하는데 누가 믿겠는가. 그가 주장하는 ‘국가주도 성장과 개혁’이라는 것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키노’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민주당에서도 왼쪽으로 분류되던 그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당 내부에서조차 ‘진보의 자기부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말로는 덩샤오핑을 표방하면서 행동은 마오쩌둥(毛澤東)을 닮았으니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더욱이 그의 실용주의는 ‘일관성’이 없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한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추경에 포함시켰고, 전향적 검토를 약속했던 ‘반도체특별법 주 52시간 예외허용’도 없던 일이 되었다. ‘진보적 기본사회’를 외치다가 갑자기 ‘보수적 성장론’으로 선회하고, 다시 반발이 나오면 이 둘을 적당히 버무려 붙인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가 불리하면 뒤집고,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한 그가 요즘은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치행태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라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이재명의 실용주의는 중도확장전략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선거가 끝나면 부도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위해 민주당의 정체성까지 ‘중도·보수’로 규정하고 있지만 당내 반발이 거세다. 당의 이념 정체성도 통일하지 못하면서 보수의 성장담론을 추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실용주의가 거짓이 아니라면 민주당 강령부터 중도·보수로 바꾸는 동시에 실제 정책의 추진에서도 그 진정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이념으로 분열’된 나라는 ‘실용으로 통합’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집권에만 혈안이 된 이재명의 ‘정략적인 오락가락 실용주의’로서는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실각당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깊은 통찰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25-03-03

청년들 죽음 내몬 ‘전세왕’의 형량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30대에겐 전세보증금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다. 그걸 사기에 의해 모두 잃는다고 가정해 보자. 크나큰 절망감과 견디기 힘든 고통에 빠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그런 사기를 주도하거나 조력한 자들의 죄는 결코 작지 않다. 3년 전, 다수의 청년 세입자를 패닉에 빠뜨린 이른바 ‘전세 사기’가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사회 문제가 됐다. 몇몇 청년들은 대출 등으로 겨우 마련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통곡했다. 그때 사기 혐의로 검거된 이들을 세상은 ‘빌라왕’ ‘전세왕’이라 불렀다. 최근 그 악질 전세 사기범들이 줄줄이 재판 후 형을 선고받고 있다. 그런데, 형량이 국민들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전세 사기 주범은 10년 안팎의 징역형, 사기를 방조하거나 도운 공인중개사 등은 집행유예나 무죄를 받은 것. 일례로 인천 미추홀구에서 세입자 191명을 기망해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60대 사기꾼 남씨에겐 2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다. 1심 형량 15년이 2심에서 절반 이상 깎인 것이다. 피해자들이 “대한민국이 사기 공화국이란 걸 법원이 선언했다”며 반발한 건 당연지사. 법조계에선 "현행법상 사기죄 가중 처단형은 징역 15년이다. 입법 한계가 있어 높은 형량을 선고할 방법이 없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기죄의 양형 기준을 대폭 고치거나, 국회가 사기죄를 엄벌하는 형법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과 피해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를 외면해선 안 될 때가 된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3-03

폐수 무단방류 엄벌해 재발 막아야

대구염색산업단지 주변 하수관로에서 염색 염료로 추정되는 폐수가 무단 방류되는 사례가 올들어 네 번이나 발생했다. 1월 8일 보랏빛을 띠는 폐수가 흘러나온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24일에는 분홍빛, 25일과 27일에는 검은빛의 폐수가 흘러나와 인근 주민을 불안케 했다. 동일한 장소에서 염료로 추정되는 폐수가 무단방류되는 일이 연거푸 벌어졌으나 관계 당국은 아직도 원인 규명이나 무단 방류업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하수천 인근 주민들은 무단방류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도 비슷한 방법의 폐수 무단방류가 네 번이나 일어난 것은 “고의성 있는 행위로 봐야 한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구시는 서구청과 대구환경공단 등 합동점검반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2곳에서 물환경보전법 위반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체를 특정하지는 못했다. 한 곳은 폐수 염료 제조배합실에서 배출된 폐수가 하수관로로 유출되도록 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작업시간이 일지에 적혀있지 않아 이번 사건과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또 한 곳은 폐수운영일지를 작성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 시는 두 곳에 대해 행정처분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폐수를 배출하는 80곳의 시설에 대해서도 전수조사 벌일 것을 검토 중이라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연관성 있는 업체를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염색산단 내 입주업체들은 산단 내 자체 공동폐수처리시설로 폐수를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어 보다 정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폐수관리에 대한 기업의 전반적인 인식이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하나 아직도 하수관로로 몰래 내버리는 나쁜 관행이 없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환경오염에 대한 업체들의 경각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 환경오염으로 빚어지는 시민건강 위협과 사회적 비용 등을 생각하면 환경오염 사범에 대한 처벌도 더 엄해져야 한다. 업체들의 환경 의식 제고와 엄중한 행정처분으로 무단방류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대구염색산단이 이전한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든 기업은 환경의식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