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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과 나오는 경북도 ‘저출생 전쟁’…속도낸다

경북도가 그저께(11일) “올해 시행 중인 ‘저출생과 전쟁 시즌2’ 150개 핵심과제의 상반기 평균 추진율이 54% 수준”이라고 밝혔다. 올해 편성된 국·도비 예산 4485억원 중 58%인 2576억원을 집행한 결과다. 일선 시군에서는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2023년 1월,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북도는 매년 100~150여 개의 구체적인 과제를 선정해 이행과정을 타이트하게 점검해 나가고 있다. 이 과제들은 청춘남녀 만남에서부터 출산, 돌봄, 주거, 일‧생활 균형, 양성평등까지 전 생애를 아우르는 정책이다. 대표적인 사업은 ‘K 보듬 6000’이다. 아파트 1층 공간을 비롯해 기존 공동육아 나눔터, 어린이집 등을 유연하게 활용해 자정까지 운영하는 온종일 돌봄 시설을 만드는 사업이다. 현재 도내 12개 시·군에서 58곳을 운영하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 138쌍을 지원한 20대 신혼부부 100만원 혼수비용 지원사업도 인기다. 경북도가 주선하는 청춘남녀 만남 프로그램은 남성 경쟁률이 19대 1을 넘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어르신 일자리와 돌봄을 결합한 조부모 손자녀 돌봄 사업(480명 지원), 아픈 아이 긴급 돌봄센터(13곳), 일자리 편의점(161명 취업) 사업 등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출생아수에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3/4분기 경북도 합계출산율은 0.91명으로 2023년 0.86명보다 크게 상승했다. 경북도의 2024년 출생아 수는 1만467명으로 2023년 1만432명(군위 제외)보다 35명 증가했다. 2015년 이후 9년 연속 감소한 출생아 수가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된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경북도내 출생아 수는 지난 3월부터 3개월 연속 전년 대비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여전히 수도권에 모든 국가자원이 몰리면서 비수도권 소멸 위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경북도의 저출생 극복 정책이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2025-08-12

중대재해 극약처방, 후폭풍 감당할 수 있나

“모든 산재 사망 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직보하라.” 지난 9일 휴가에서 복귀한 이재명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처음으로 내린 지시 사항이다. 전날 경기 의정부 DL건설 아파트 공사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을 보고 받고 나온 주문이다. 건설현장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대통령이 직접 실시간 챙기겠다는 의미다. 중대 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고 공감이 간다. 소년공 생활을 겪어본 이 대통령에겐 산재 사고가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중대재해 사고 발생 건수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는 매일 2명 이상 산재 사고로 사망했다는 통계도 있다. 특히 건설업의 산재 사망률은 다른 업종은 물론 선진국에 비해서도 몇 배 높다.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긴급대책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의 잇따른 공사현장 사망사고를 두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책했다. 그 뒤 이 회사의 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심정지 사고가 또 발생하자 “면허취소 등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 건설업계는 산재 불안감으로 인해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있다. 대구시내에서도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중인 아파트 건설현장 4곳이 중단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2년부터 최고 경영자에게도 산재의 형사 책임을 묻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강경한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 중이다. 그렇지만 이 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주요 산재 원인이겠지만 건설업계의 하도급 시스템, 외국인 근로자의 소통 문제, 고령 인력 등의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공사장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가 주로 배치되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건설업계뿐 아니라 지난 2024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됨에 따라 대구·경북지역 영세기업들도 매일 초비상 상태다. 금형·주물업 등 대구시내 공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뿌리산업 사장들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뜨거운 쇳물이나 무거운 금속을 다루는 공정이 있는 업종이 많아 직원들이 잠시만 방심해도 산재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 발생 가능성이 상존하는 조선·철강·화학업종의 대기업 CEO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제는 중대재해법상 형사처벌 근거가 되는 경영진 과실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의도를 가진 ‘고의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이 아니더라도 재해만 발생하면 대부분 경영진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중소기업 중에는 만약 사고가 나서 사장이 구속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자연적 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계도 막연해진다. 극약처방만으로 산재사고를 막는 방법은 뿔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8-12

지방교육재정 안정을 위한 근본대책 나와야

지방교육재정은 일선 시도교육청이 교육환경 개선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일선학교를 운영하는데 소요되는 교육청의 핵심예산이다. 재원은 내국세의 20.79%에 해당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지방자치단체 전입금, 기타 수입으로 이뤄진다. 문제는 지방교육재정이 내국세와 연동돼 있어 나라 살림이 어려우면 교육예산도 같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11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주최한 ‘지방교육재정의 현재와 미래’란 제목의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은 “최근 3년간 세수 감소와 정책 변경 등으로 지방교육재정은 최소 20조원 이상 결손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국 교육현장은 필수적인 교육사업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는 예산 부족으로 하루에 두 번씩 교실 냉방을 중단하는 일도 있다는 사례도 언급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 정부 들어 고교 무상교육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 국가지원을 연장하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것이다.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의 계속된 감소 속에 교부금법이 연장된 것은 교육청의 재정난 해소에 다소 숨통을 틔워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래도 걱정인 것은 고교 무상교육의 정부 지원을 담은 교부금법의 개정이 2027년 말까지 3년으로 한정됐다는 것이다. 3년 후면 또다시 존폐여부를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학령인구 감소를 고려해 교부금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지방교육재정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강은희 전국 교육감협의회회장(대구시 교육감)은 “학령 인구가 줄었다고 해서 교육재정까지 줄이는 단순 논리는 위험하다”며 교육 재정의 안정적 확보와 공교육 본질을 지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하자고 제의했다. 지방교육재정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가 된다. 공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교육 수요를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또 저출산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공교육 재정을 갑자기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 교육재정의 안정을 위해 정부와 교육계 등이 공동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25-08-12

모병제 시대 올까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보다 병력 수를 늘리는 것이다. 전투원의 손실은 고려치 않고, 많은 전투원을 한곳으로 빠른 시간 안에 집결시켜 적의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두고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 부른다. 인구가 많은 중국이 한국전쟁 때 썼던 수법이다. 그러나 이젠 많은 군사를 동원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로 인해전술은 오히려 병력 손실을 키울 위험한 전술로 꼽힌다. 현대전에 맞지 않다. 소총이나 칼을 무기로 싸우던 예전에나 통하던 전략이다. 군사 수를 앞세웠던 중국도 지금은 병력보다는 기술전략 중심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우리나라 국군 병력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최근 6년 사이 11만 명이 줄었다. 최근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군의 병력 수는 45만명 수준이다. 이는 국방부가 실제 전투 수행 시 필요한 최소 병력 수 50만명보다 5만명이나 모자란다. 군 병력이 급격히 줄어든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직접적 원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보면 군병력은 당분간 늘어나기가 어렵다. 군병력의 급격한 감소는 북한과 대치한 우리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특히 군 병력 감소로 사단급 이상 부대도 59곳(2006년)에서 42곳으로 크게 줄었다. 사단급 부대 한 군데가 줄면 인근 부대가 전력을 분담한다. 현실적으로 병력 배치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속도도 늦어진다. 전문가들은 군병력 감소에 대응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고 한다. 모병제 도입이 생각보다 빨리 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2

어화, 벗님네야

“어화, 벗님네야. 우리 소리 들어보소!” 사람 손길 멈춘 두 번째 해 여름날. 우거진 푸른 생명의 노랫가락이 녹지 숲에 여울진다. 도시 한가운데서 진초록 풀들의 노래를 듣다니, 푸진 행운이다. 도심의 S 초등학교 서북쪽에 사람이 만든 녹지가 있다. 그 안엔 다 커 보이는 여러 그루 소나무가 적당한 거리로 살고, 측백나무 몇 주, 사철나무 서너 그루, 느티나무 두어 주도 함께한다. 나무들 사이에 잔디, 쑥, 망초, 바랭이, 강아지풀, 클로버 등 여러 종의 야생 풀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못 보던 외래종도 함께 지낸다. 메마른 시가지에 이런 녹지가 있음은 주민에겐 분명 축복이다. 성경이 가르치듯,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그 안에 살다가 그 품으로 돌아가는 존재니까. 사람들은 녹지 안 의자에서 담소하며 쉬어가고, 훌라후프를 하며, 애완견과 함께 산책도 즐긴다. 이를테면, 녹지는 동네공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한 주에 대여섯 번 녹지 숲을 걸어서 오간 지가 10년째다. 하니, 나도 이 숲과 교감하는 사람이리라. 녹지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다. 그런 게 녹지와 시민에겐 중요치 않으니까. 재작년까지, 한 해 두세 번 사람이 벌초했다. 한데, 작년부터 벌초가 사라졌다. 학교 문 오른쪽 녹지 중간쯤에 내걸린 현수막 하나 때문일 거다. 바람에 살랑이는 현수막엔 이렇게 씌어 있다. “…공원토지는 개인 사유지입니다. 주인의 허락 없이 본 토지를 사용 시 고발될 수 있습니다. -토지 소유자 알림- ” 그랬다. 이 녹지는 공공지가 아니고 사유지였다. 아마도, 지주가 벌초했던 측에 이의를 제기한 결과가 바로 현수막이리라. 바다 쪽으로 1/3 지점에 녹지를 가로질러 학교진입로가 있다. 벌초할 때는 그 왼쪽 녹지에도 산책로가 있었다. 벌초 안 하니 풀이 무성해져 발길도 끊어지고, 산책로도 사라졌다. 벌초는 달리 말하면, ‘풀에 대한 사람의 규제’다. 규제를 푸니 2년 만에 녹지는 풍성한 원래 모습으로 바뀌었다. 넉넉한 자연, 진초록 숲이 부르는 노랫가락을 마음의 귀로 듣는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 좀 바라보소···.” 불현듯 ‘인간사회도 자연과 원리는 같구나!’하고 속 소리가 가락에 실려 들린다. 벌초 곧, 규제를 안 하니까 녹지가 자생력으로 싱그런 자연 숲을 이루었듯, 자유민주주의 국가사회도 규제를 줄여야 자생력‧경쟁력이 높아질 게 아닌가. 미국은 자국 경제를 위해 ‘관세 포탄’을 세계에 터뜨렸다. 각국이 전전긍긍 협상에 응하며 세계 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관세 협상 같은 국익 챙기기보다 노란봉투법‧방송 3법, 법인세‧주식거래세 인상 등 국가경쟁력을 해칠 수 있는 전체주의적 입법과 규제정책에 넋이 나가 있다. 한심하다. 장기 집권을 위한 표를 의식한 때문인가. 부디 정치인들이 ‘벌초 않기’를 깨달아 개인과 당보다 나라와 국민을 더 헤아려, ‘어화, 벗님네야. 우리나라 앗싸!’라고 노래하는 길로 나서기 바란다. /강길수 수필가

2025-08-11

술꾼에 관한 그럴듯한 수명 계산법

장수는 모든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자 행복의 큰 부분이다. 한때 환갑이 장수의 기준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환갑은 장수마을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인간의 수명이 날로 길어진다. 오래 살면 장수이지, 다른 장수가 있겠느냐는 너무나도 당연한 생각에 물음표를 던져 본다. 오래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생물학적 장수가 장수일까? 아니면 진정한 장수가 따로 있을까? 술꾼의 수명에 관한 아래의 계산 방식을 보라. 90을 살아도 70에 죽은 자가 있으며, 70에 죽어도 90을 산 자가 있다. 술꾼의 수명을 언급하기 전에 물리학적 시간 개념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다소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현대물리학에서는 시간은 실재가 아니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한다. 전통 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존재 하는 것이며, 흐르는 것이며, 과거, 현재, 미래로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대물리학에서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상대적), 흐르지 않으며(심리적 인식),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양자중력이론에서는 기본방정식에 시간 항이 없다. Wheeler-DeWitt 방정식). 요약하자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이다(까를로 로벨리). 현대 물리학적 관점에서 시간은 존재 하지 않는 환상으로 치부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고전 물리학적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한다. 물리학은 그렇다 치고. 시간이라는 게 당연히 존재하고, 세월도 흐른다는 개념을 전제로 술꾼의 수명을 계산하여 보자. 재미 삼아. 주 2회 술을 마시는 술꾼을 예로 들어보자. 이 술꾼은 술을 마실 때마다 과음하는 주당이다. 그는 퇴근 후 저녁 내내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한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므로 다음 날 오후 정도 되어야 술이 제대로 깬다. 술을 마시는 데 필요한 시간과 술을 깨는 데 필요한 시간이 모두 술로 인하여 소비되는 시간이다. 이 주당은 1회 음주로 사실상 하루를 소비한다. 일주일에 2회 마시면 2일이 소요되므로 한 달에 8일(2일 4주)을 술을 마시는 데 소비한다, 계산의 편의상 하루를 양보하여 일주일(7일)이라 치자. 그러면 이 술꾼은 한 달에 일주일을 술을 마시면서 보내는 셈이다. 일 년으로 계산하면 12주 술을 마시고, 이를 달로 환산하면 3달이다. 20세부터 70세까지 50년을 술을 마시면 150달을 술을 마신 셈이고, 이는 12년의 세월이다. 어디 시간 낭비만 있으랴. 에너지, 인격, 돈, 가정의 화목 등등이 술과 함께 허무하게 소비된다. 술을 끊으면 술로 인하여 소비되는 그 시간에 또 다른 의미 있고 창조적인 것들을 할 수 있다. 술의 노예가 되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수처작주는 그림의 떡이다. 주인이 사람이 아니고, 술이다. 필자도 한때 그런 삶을 살았으나, 일찍이 깨달았다. 오래 살았다고 다 오래 산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진정한 장수라는 타이틀은, 의미 있는 삶을 산 자에게 붙여져야 할지도 모른다. ‘한 번의 만취는 이틀의 시간을 뺏는다. 술은 마시는 자의 적이요, 인생을 단축시키는 달콤한 독이다. 술은 빌린 기쁨을 높은 이자로 갚게 만든다.’ 술의 지옥에서 탈출하자. 술을 끊으면 새로운 삶이 열릴지니, 천국이 그대의 것이라. /공봉학 변호사

2025-08-11

로봇 선도도시 대구서 열리는 로봇월드컵

전 세계의 인재가 모여 AI·로봇 기술을 겨루는 ‘로봇 월드컵 앤 써밋 2025’가 어제(11일)부터 대구 엑스코에서 열리고 있다. 세계로봇스포츠연맹(FIRA)이 3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번 행사에는 미국·영국· 중국·독일·캐나다 등 전 세계 17개국에서 900여 명의 로봇 유망주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직접 프로그래밍한 로봇으로 △이족보행 자율로봇경기 △자율주행차·스타트업 경진대회 △드론 활용 재난구조 레이싱 △청소년 창의 과제 리그 등 4개 리그 46개 종목에서 경연을 벌인다. 또 동시에 ‘2025 국제 로봇올림피아드’ 한국대회 본선 경기도 같은 날 열려 전국 초중고 766개팀 1300여 명의 학생들이 AI자율주행 등 10개 종목에서 실력을 겨룬다. 로봇 종주도시를 꿈꾸는 대구에서 로봇 관련한 세계적 축제가 열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홍성주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전 세계 로봇인재들이 모이는 축제로 로봇산업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 했다. 대구는 10여 년 전부터 섬유와 자동차 부품도시에서 미래첨단산업 도시로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IT·로봇산업은 대구시가 추진하는 미래 신산업 중 하나다. 특히 로봇산업 육성을 위해 3000여 기업이 참여하는 로봇클러스터를 구축해 로봇기업의 해외시장 진출과 비즈니스 기회 확대를 돕고 있다. 로봇의 실증과 사업화 기능을 평가할 로봇테스트필드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확보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AI·로봇 글로벌혁신특구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도 가능하게 됐다. 특히 최근 로봇과 미래차 융합거점이 될 제2국가산단 건설이 확정되면서 대구는 명실공히 로봇산업의 실증과 생산을 담당하는 중추도시로서 위상을 모두 갖추었다. 세계 로봇경연대회가 대구에서 개최된 것은 대구로봇산업과의 연계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로봇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끌어올리는 좋은 계기가 된다. 또 로봇산업에 대한 학생들의 친화력을 높여줌으로써 인재 확보에도 유리하다. 이번 로봇대회가 대구가 로봇산업의 종주도시임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2025-08-11

전공의 전원 복귀해 의료공백 해소해 달라

사직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어제(11일)부터 시작됐다. 전국 수련병원들은 자체 일정에 따라 오는 29일까지 인턴과 레지던트를 선발한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가 병원별 신청을 받아 공고한 모집인원은 인턴 3006명, 레지던트 1년차 3207명, 레지던트 상급연차(2∼4년차) 7285명 등 총 1만3498명이다. 정부는 사직 전공의가 원래 근무하던 병원과 과목으로 돌아오는 경우엔 정원이 초과되더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1년 6개월간 수련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이 복귀하게 되면 의대 증원사태로 촉발된 의정 갈등이 해소될 전망이어서 무엇보다 다행이다. 지난해 2월 학교를 떠났던 의대생들은 이미 전원 복귀한 상태다. 다만, 전공의 모집이 전원 복귀 흐름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입대한 사직 전공의도 있고, 또 일부는 일반 병의원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별로 복귀 분위기가 엇갈린다고 한다. 영상의학과·정형외과·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 인기과 전공의들은 복귀에 적극적이지만,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비인기과 전공의들은 일부 복귀를 주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지난 6월 수련을 재개한 전공의들도 내·외·산·소 등 필수과목보다는 ‘인기과’에 몰렸다. 전공의들이 복귀하게 되면, 수련병원에 따라서는 다양한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다. 교수와 전공의뿐 아니라 먼저 복귀한 전공의와 새로 복귀할 전공의 사이의 갈등, 업무 영역을 둘러싼 전공의와 PA(진료 지원) 간호사의 대립 등등이 예상된다. 잔류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이탈 전공의들이 돌아오면 기존에 일하던 전공의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이 정상화 되려면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같은 긴급 의료 현장을 지키는 전공의들의 복귀가 필수적이다.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의료현장으로 돌아와 앞으로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인한 국민 불안이 말끔하게 해소되길 기대한다.

2025-08-11

동시구속 위기에 처한 부부

전직과 현직을 불문하고 대통령과 아내가 동시에 구속되는 일은 아직까진 없었다. 재직 시 저지른 비리나 권력 남용으로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재판 후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던 대통령은 적지 않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그랬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그랬다. 노무현은 검찰 조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의 흑역사로 기록될 부끄러운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아내가 구속된 사례는 아직까진 없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치욕스런 신기록(?)이 세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이야기다. 윤석열 씨는 이미 뜬금없는 12.3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수감된 상태다. 그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다. 만약 죄가 입증된다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가 불가피하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낮췄지만, 윤석열 씨의 부인 김건희 씨가 의심스런 행위를 통해 부정하게 주식을 거래하고, 각종 청탁과 함께 고가의 가방과 목걸이 등을 받았다고 의심하는 국민들이 그렇지 않은 국민보다 훨씬 많다. 이미 여러 정황이 김건희 씨의 범죄 혐의를 지목하고 있는 상황. 12일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김건희 씨의 구속 여부가 결정된다. 증거를 없애려 했다는 건 구속 사유 중 하나다. 김씨는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인용 직전 자신이 운영했던 사무실 컴퓨터를 포맷했다. 탄핵 이후엔 휴대폰을 바꿨다. 압수된 휴대폰의 비밀번호도 알려주지 않았다. 떳떳한 삶을 살았다면 할 필요가 없는 행동이다. 만약 김건희 씨가 구치소에 갇힌 남편을 따라 자신도 구치소로 가게 된다면 또 하나 한국 역사의 오점이 추가될 듯하다. 서글프고 개탄스런 일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8-11

청계천 문학기행

토요일 아침 열 시. 장소는 보신각 옆 할리스커피. 스물 남짓한 ‘창작교실’ 사람들이 일찍부터 모였다. 날씨는 그 뜨거운 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선선하다. 가끔 비도 뿌린다는 예보다. 오늘은 청계천 문학기행 날이다. 보신각이 기행의 출발점이다. 채만식 소설 ‘냉동어’에서 주인공 대영이 보신각을 가리켜 낡은 시대가 새로운 시대와 동거를 하고 있는 궁상스럽고 초라한 꼬락서니라 했다. 그러나 오늘 보신각은 한결 늠름하다. 종로 네거리 보신각 길 건너편에는 종로타워 33층짜리 빌딩이 높이 솟아 있다. 그곳이 옛날 ‘민족자본’ 화신백화점 자리다. 또 다른 길 건너편에는 전봉준이 두 팔을 묶인 채 앉아 있다. 죄인을 가두는 전옥서가 영풍문고 자리에 있었고 여기서 전봉준이 저형당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광교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광교 건너편에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생가가 있었다. 다옥정 7번지, 그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지금은 청계천이 넓혀져 이 번지수는 청계천 속에 들었다. 구보는 한낮에 청계천변 다옥정 집에서 나와 광교 건너 보신각 있는 종로 네거리 쪽으로 걸어가게 된다. 광교에서 우리는 계단으로 천변 아래로 내려간다. 가는 비가 흩뿌리는 청계천은 한결 운치가 있다. 수표교 쪽에서 다시 천변 위로 올라서 다리를 건너자 오늘 순례의 주된 장소라 할 전태일 기념관이다. 청계천은 문학사적으로 세 개의 심상(이미지)을 갖는다. 먼저, 청계천은 특히 북악산 밑 백운동 계곡과 청풍계 쪽의 백운동천, 인왕산 아래 수성동 계곡에서 발원한다.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이 청풍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청계천은 청풍계를 중심으로 한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학적 흐름과 관계가 깊다. 다음, 청계천은 작가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나 장편소설 ‘천변풍경’을 통해 구축한 불결함과 가난, 그리고 이를 매개로 연결된 서민들의 ‘공동체’적 삶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청계천 이미지는 해방 후, 6·25 전쟁 후에까지 연결된다. 마지막 하나가 전태일의 청계천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과 대구, 부산 등에서 성장한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에 ‘시다’로 취직하게 되면서 운명적인 길을 걷게 된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1984년은 그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청계피복노조’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싸움을 가열차게 벌이던 때였다. 뜻도 제대로 모르고 시위를 나갔다 전경에 쫓겨 고가도로 밑으로 뛰어내린 기억이 선명하다. 어렵고 어지러운 때면 이 전태일이라는 존재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어째서 그의 죽음은 여전히 숭고하게 느껴지는가? 희생을 ‘내세운’ 다른 흔한 죽음들과 달리. 이것이 나의 지속적인 질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나고 죽는 것만큼 근본적인 문제가 없다. 인간은 아직까지는 반드시 죽어야 할 존재이므로, 어떻게 죽느냐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전태일기념관을 나와 세운상가까지 걷다가 버스를 타고 버들다리(전태일다리)로 간다. 다리 위 전태일 반신상을 ‘참배’하는 것이 마지막 코스다. 세 시간 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다시 배우고 생각한 길이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8-11

왜 ‘비상계엄당’이 되고 싶어 하나

컨벤션 효과라는 게 있다. 큰 행사를 하면 사람도 모이고, 돈도 돈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치적 효과에 더 자주 인용된다. 전당대회를 하면 정당 지지율이 상승한다. 다 그런 건 아니다. 맞불을 놓았을 때 효과를 보는 측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2021년 11월 여야 대통령 후보가 결정됐을 때가 그랬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10%가량 지지율이 올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오히려 조금 떨어졌다. 양대 정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는 최근 여론 흐름도 그렇다. 민주당은 누구나 짐작할 만한 두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 컨벤션 효과라면 국민의힘에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여론은 거꾸로다.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참여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44%, 국민의힘은 16%로 나타났다. 거의 세 배에 가깝다. 추세도 민주당은 오르고, 국민의힘은 떨어진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도 긍정 65%, 부정 24%다. 이 조사만 특별한 게 아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조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에 심각한 경고 신호다. 전 연령대에서 민주당에 밀렸다. 심지어 70세 이상에서도 뒤처졌다. 지역적으로 전국에서 민주당 우세다. 국민의힘의 마지막 보루인 대구·경북(TK)마저 민주당에 내줬다.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이 흐름대로라면 국민의힘은 전멸이다. 국민의힘은 갑자기 비상계엄이라는 뚱딴지같은 일을 저질러 정권을 넘겨줬다. 국민이 맡겨준 임기를 절반밖에 못 채웠다. 2024년 총선 때는 표 떨어질 일만 벌여 필리버스터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입법·행정부도 모자라, 이제 지방 정부까지 몽땅 내줄 처지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이재명 대통령의 허니문 기간이라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진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패배 의식과 상실감 때문이라고도 했다. 민주당 탓, 국민 탓만 한다. 국민의힘 책임은 없다. 길이 안 보인다.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 청문회로 시끄러웠다. 이춘석 법사위원장은 본회의장에서 차명주식을 거래한 의혹으로 출당됐다. 정부·여당에 악재가 연이어 터졌다. 그런데 지지율은 오히려 올라갔다. 이게 국민 탓일까. 더 큰 원인은 국민의힘에 있는 게 아닌가.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에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 부부, 최강욱 전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윤미향 전 의원 등을 사면한다고 한다. 송언석 위원장은 “최악의 정치사면”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뒤로는 야당 비리 정치인들의 사면을 청탁했다. 전략도 없고, 결기도 없다. 말썽이 나자 뒤늦게 “어떠한 정치인 사면도 반대한다”라고 말했지만, 무슨 망신인가. 호재를 악재로 바꾸는 기막힌 재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라고 한다.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둔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 매이지 않았다. 2004년 ‘차떼기당’이라는 오명과 탄핵 역풍으로 50석도 못 건진다고 전망할 때, 당사를 헌납하고, 천막당사에서 121석을 건져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고, 디도스 공격 의혹 등으로 당이 위기에 빠졌을 때도 당명과 로고를 바꾸고,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독점하던 ‘경제민주화’ 아젠다를 선점했다. 정권 심판론에 매달린 민주당을 ‘과거 회귀 세력’, 자신은 ‘미래 지향 세력’으로 규정하는 프레임 짜기에 성공했다. 박정희 지키기만으론 어림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민심에 맞춰 변해야 한다. 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70%를 넘었다. 윤 전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도 비슷했다. 그런데 이제 와 “계엄으로 누가 죽었나”라고 반문한다. 어쩌자는 건가. 미래를 팔아 과거를 뒤집자는 건가. 폭주를 막지 못한 자들의 면죄부로 쓰자는 건가. 그런 세력에 아부해 잔해더미에서 부스러기라도 주우려는 건가. 이런 자해 소동이나 벌이려면, 해체하는 게 옳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8-10

첨벙첨벙, 작약은 피고

첨벙첨벙 꽃이 피고 드디어 나무에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꽃송이 속으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쏘다녔고 나는 물 장화를 신고 정원을 쏘다녔다 해당화 그늘 속으로 헤엄치는 날들이 많아졌고 여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나의 놀이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몰라서 멈출 수 없는 놀이 매일매일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별의 일에 대하여 날마다 멀어지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라는 말에 대하여 잠든 것들의 모든 기척처럼 번지는 핏방울에 대하여 손을 숨길 주머니도 없이 벗어둔 물 장화 속에 물이 가득차서 배처럼 흔들리는 것을 모퉁이를 갖지 못한 채 살아와서라고 할 수 있을까 끝은 얼마나 아파야 제 끝을 다른 끝에게 내어줄까 쓰러져도 자꾸만 떠오르는 이 세계는 ―이승희, ‘물속 정원’ 전문(‘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2024, 문학동네) 시인은 “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하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 시는 온통 식물적 상상력으로 특징할 만하다. 시의 제목이자 배경인 ‘물속 정원’은 두 세계의 만남인 육지와 물, 생과 죽음, 현실과 환상을 암시하는 이중적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정원은 생명의 공간이지만, 그것이 물속이라는 설정은 비현실적 장소로서 기억, 무의식, 상실의 공간을 연상시키니 말이다. 이승희 시인의 앞선 시집이 ‘맨드라미’나 ‘토마토’ 같은 식물의 이미지로 집중했다면, 이번 시집은 ‘작약’,‘물고기’ 잎이 없이 뼈로만 자라는 식물인 ‘포도’ 등의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가 형상화한 이미지가 무엇이건 모두 ‘여름’이라는 계절로 수렴된다. 이를테면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연작을 비롯해 “여름의 우울”에서 “또 다른 여름”에 이르기까지 온통 여름이 인과가 된다. 이때 시인의 여름은 꽃과 함께 시적 자아의 결핍과 상처를 드러내는 주요한 식물적 상상력의 동인으로 복무하고 있다. 과연 “첨벙첨벙” 피는 꽃이란 있을까. “꽃송이 속으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쏘다녔고”에서 나무에 물고기가 산다는 기이한 상상은, 물이 정원의 세계를 범람하며 부유하듯 “모퉁이를 갖지 못한 채” 삶의 방향을 잃은 존재, 즉 정서적 중심이 없는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 “벗어둔 물 장화 속에 물이 가득차서 / 배처럼 흔들리는 것”에서 시적 자아의 내면이 정서의 물에 잠긴 상태를 보여주는 현실의 장화가 감정의 물성을 담고 흔들리는 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모네의 그림 ‘수련’이 보여주는 경계 없는 세계와 공명하며, 시인의 ‘고정된 시선 없이 흘러가는 존재의 물성’을 공유하는 듯하다. 언젠가 도쿄에서 찍어온 모네의 말년 연작 ‘수련’을 크게 인화해서 걸어두었다. 계속 들여다보자면 어느 순간 방향을 잃고 마는데 이는 수면 아래인지, 위인지, 수련인지 그림자인지 경계가 흐릿하기 때문이다. 그 불확실한 흔들림 속에서 ‘상실’의 풍경이 몽환적으로 피어나는데, 이는 화자가 장화를 신고 물속 정원을 헤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꽃 속에 물고기가 쏘다니고, 장화 속엔 물이 차오른다. “쓰러져도 자꾸만 떠오르는 이 세계는” 끝내 가라앉지 못한 감정, 다시 떠오르는 부재의 세계를 나타낸다. 가령 모네는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도 수련을 그렸고, 시인은 여름이 지난 뒤에도 멈출 수 없는 놀이를 계속한다. 결국 삶의 고통과 모순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살아가게 되는 이유, 혹은 존재의 부력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몰라서 멈출 수 없는 놀이” /이희정 시인

2025-08-10

경주, APEC 2025로 평화·문화·경제의 중심에 서다

오는 10월 말,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21개국 정상과 주요 부처 장관, 글로벌 기업인, 언론인 등 약 2만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를 넘어, 경주와 대한민국의 위상을 새롭게 쓰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계가 지금 경주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도시가 지닌 복합적인 역량—‘평화의 기억, 문화의 정체성, 경제의 가능성’—때문이다. 경주는 단지 시간이 흐른 도시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세계와 소통해 온 도시이다. 단순한 과거의 흔적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도시의 품격과 비전이 공존한다.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였던 이곳은 일찍이 바다를 건너 아시아 각국과 교류하며 국제적 감각과 포용의 가치를 키워왔다. 폐쇄가 아닌 개방, 갈등이 아닌 융합의 전통이 이 도시에 스며 있다.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등으로 대표되는 유산은 단지 아름다운 문화재를 넘어, 수천 년 전부터 세계와 연결되어 온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경주는 그 역사적 깊이를 바탕으로 세계와 다시 대화하려 한다. 또한, APEC과 같은 회담이 열리기에 경주만큼 잘 어울리는 도시도 흔치 않다. 경주는 전쟁이 아닌 문화로 경쟁하고, 무력이 아닌 예술과 기술로 국가를 성장시켜 온 전통을 간직한 도시이다.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는 세계가 찾는 진정한 회의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번 APEC의 핵심 가치인 ‘지속 가능한 한 번영 역시, 그 뿌리를 경주의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과 공존하며, 사람 중심의 철학을 실현해온 이 도시는 지속 가능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모범이 된다. 문화의 정체성 역시 경주만의 뚜렷한 경쟁력이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자, 살아 있는 예술의 공간이다. 과거의 유산이 지금도 시민들의 삶 속에서 호흡하며, 도시의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세계유산은 일상이 되었고, 시민의 삶 속에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거리와 골목, 축제와 공연까지—도시의 모든 요소가 세계인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생생한 문화 콘텐츠가 된다.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최신 시설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아 경주의 정체성과 일상을 세계와 나누고자 한다. 경제적 잠재력 역시 주목받고 있다. 경주는 미래산업 도시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SMR(소형모듈원자로) 산업단지, 수소·에너지 클러스터, 디지털 의료관광 기반 조성 등 차세대 산업기반을 중심으로, 미래 대한민국 산업을 선도할 핵심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장기적 전략 아래 추진되고 있다. APEC 회의는 이 비전을 세계에 선보이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경주의 잠재력과 비전을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이다. 포항·울산과 함께하는 ‘해오름동맹’을 통해 산업·관광·문화가 어우러지는 광역 협력 모델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 지역 연합은 단순한 지역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을 이끄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고 있다. ‘지나온 천 년’과 ‘다가올 백 년’이 공존하는 도시—그 중심에 바로 경주가 있다. 회의 준비는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경주시와 경상북도, 외교부 등 관계 부처 실무진은 매일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하며, 표지판 하나, 의자 하나까지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마친 호텔 객실에는 조명과 동선을 확인하는 전문가들이 상주하고, 각국 의전을 위한 리허설도 실시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도시는 말이 없지만, 곳곳에서 수천 개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무엇보다 소중한 변화는 시민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원봉사 교육장에는 매일 시민들이 찾아오고, 손님맞이 친절 캠페인도 자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 행사를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는 시민들의 참여야말로, 경주 APEC의 가장 큰 자산이다. 경주의 APEC은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단 한 명의 실무자도, 단 한 사람의 자원봉사자도 무대 뒤에 숨지 않도록 하겠다. 모두가 하나 되어 만든 결과는 어떤 외교적 성과보다도 값질 것이다. 모든 준비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바로, 평화를 기억하는 도시, 문화를 품은 일상, 미래산업이 살아 숨 쉬는 경주를 세계에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것. 그 진심이 닿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APEC은 단지 ‘경주에서 열린 회의’가 아니라, ‘경주가 세계로 도약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주낙영 경주시장

2025-08-10

쏘니, 덕분에 행복했던 10년

2014년 5월 14일, 한국 축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었던 선수 박지성이 은퇴를 선언했다. 이것은 내 또래의 축구 팬들에게는 몹시 허탈한 소식이었다. 주말 밤마다 우리에게 치킨과 맥주를 준비하게 만들었고 가슴을 설렘으로 부풀게 만들었던 일상의 행복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어린 선수, 손흥민이 바로 다음 해에 프리미어리그의 또다른 명문구단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박지성이 입단했던 2005년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구단이었다. 그러나 2015년의 토트넘 홋스퍼는 분명 명문구단이었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그나마 손흥민이 입단 하면서부터 등번호 7번을 받았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7번이 어떤 숫자인가. 데이비드 베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라울 곤잘레스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번호이며 팀의 키플레이어라는 상징이 아닌가. 한국 선수가 세계 최강의 구단에서 웨인 루니나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 같은 선수들의 핵심적인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비록 세계 최강을 넘보는 팀은 아니었을지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상위권 팀에서 한국 선수가 그야말로 주인공 역할을 하며 뛰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가슴을 벅차게 하기엔 충분했다. 손흥민은 몇 경기 만에 자신이 왜 토트넘 홋스퍼의 7번인지를 증명하며 팀의 중심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박지성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짜릿하고 행복한 주말 밤을 매주 선사해주였다. 질풍처럼 내달리는 모습과 왼발과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대포알처럼 꽂는 슈팅은 우리 세대에게는 한국인이 저럴 수가 있나 싶은 생소한 모습이었고, 어른들에게는 그 옛날 차범근의 활약을 떠올리게 하는 반가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주말 밤마다 머나먼 나라의 경기장을 보며 치킨과 맥주를 시켜두고 한 주 간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특권을 자그마치 십 년이나 더 누릴 수 있었다. 손흥민이라는 선수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특히 마법같았던 순간 몇 개가 떠오른다. 하나는 2020년, 한 해 동안 가장 아름다웠던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어지는 푸스카스상을 그가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프리미어리그 번리 전에서 70미터를 질주하며 상대 선수 6명을 추풍낙엽처럼 제쳐내고 골망을 흔드는 장면은 잠시나마 그에게 축구의 신이라도 강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2022년의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노리치 시티와의 경기에서 2골을 몰아치며 리그 공동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는 장면이었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될 수 있다니. 포효하는 그를 보며 전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장면은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이었다. 지난 10년간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무관이라는 오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였다. 그러나 올해 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침시키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한국인이 주장완장을 차고 유럽 메이저 대회의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장면 역시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감동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의 허리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감겨 있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던가. 손흥민은 그에게 폭포 같은 박수가 쏟아지던 바로 그 시기에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언론들과 선수들은 지난 10년간 보여준 토트넘 홋스퍼에 대한 그의 헌신을 인정하고 전설에 걸맞는 예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음 행선지는 LA. 새로이 떠오르는 리그에서 그는 또 다시 마법과 같은 플레이들을 보여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다음 월드컵의 개최지이다. 미리 적응해서 대한민국 대표님에서 활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라니.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국가대표님의 주장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활약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국가대표팀에서의 환상적이었던 순간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의 토트넘 홋스퍼와 프리미어리그에서의 경력이 마무리 되었을 뿐이지 국가대표 손흥민, 축구선수 손흥민으로서는 앞으로도 보여줄 것이 얼마든지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동안 함께 웃고 울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는 말을 한 사람의 팬으로서 전하고 싶다. 그리고 새로운 리그에서 또 다른 전설을 써내려가길 기대한다는 말 또한 적어본다. /강백수(시인)

2025-08-10

나 조금 귀여울지도?

스스로에게 살갑고 다정하게 구는 게 언제부터 새삼스러웠더라.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였을 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기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충만한 순간이 있다. 그것은 유효기간이 짧으니 최대한 빨리 섭취해야 한다. 머리카락 방향, 셔츠 깃의 빳빳함 정도, 양말 끝이 바지 기장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까지 마음에 드는 그런 날은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니.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친구처럼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춘다. 한쪽 눈을 찡긋, 손가락을 탁 튕기면 위풍당당해 보이는 것을 넘어 사랑스러워 보이기에 이른다. 이런 호들갑도 잠시,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정이 달라진다. 폭염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땀이 문제였을까. 어깨 위에 내려앉은 묵직한 습도에 결국 당하고 만 것인가. 상가 유리창에 비친 낯선 행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누구보다 당당하게 거리를 가르고 있다고 믿었건만, 어깨는 구부정하고 입술은 굳은 채로 어색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에. 나는 황급히 시선을 돌린다. 제발, 아닐 거야….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역시 그렇다. 거울 앞 내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낯설고 불만족스러운 현실 속의 나만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그리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써보려 했을 뿐. 이렇듯 장황하고 횡설수설하는 나 자신도 참 부끄럽다. 어째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견디는 일을 이렇게 어려워하는 것일까. 어떤 순간에도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자기 신뢰가 있으면 좋겠건만, 그건 거울 속에서 완벽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다. 특히 타인에게서 비난조의 말을 듣게 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세상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틈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실이 적나라하게 확인된 기분이다. 내 딴엔 환하게 웃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비아냥처럼 보이고, 별생각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느냐고 물어오기도 한다. 순간 내가 생각하는 나는 실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이미지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스친다. 때때로 나는 내 안에 거울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나를 점검한다. 사진 속의 표정, 영상 속의 걸음걸이, 심지어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까지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 사이의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애쓰지만,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러닝머신 위의 거리감과 비슷하달까. 내가 아는 나는 언제나 빛을 한 번 돌려받은 뒤의 형상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반사와 왜곡은 필연적으로 함께 간다. 빛이 표면에 부딪혀 돌아오는 순간, 경로를 통해 형태는 틀어질 수밖에 없다. 그때 발생하는 변형이 현실을 아름답게 보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의 비극적 사실 중 하나다. 오히려 숨기고 싶은 지점을 더욱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나를 비추는 창이 항상 불편하게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어긋남 속에야말로 내가 모르는 나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살아가는 방식을 확인하는 기회가 숨어 있다. 때로 어떤 틈새는 그 자체로 나를 지켜주는 완충 장치이기도 하다. 낯설면서도 나를 확장하는 여백으로 존재하며 그 틈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건 완벽한 스스로가 아니라, 변하고 비틀린 모습을 포함한 나 자신이다. 다른 측면의 나를 보는 일은 물론 괴롭겠지만, 내가 상상했던 내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울 수도 있다. 내가 의식하지 않은 채 흘린 말이 누군가의 하루를 기쁘게 바꿔놓을 수도 있고 툭 던진 작은 선의에 뜻밖의 인사를 받기도 한다. 세상이 비춰주는 나는 생각보다 종종 쓸 만하고 가끔은 내가 믿는 나보다 더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면 거울 앞에 서는 일은 일상에 흩어진 나를 거두어 모아 정리하는 의식처럼 여겨진다. 이리저리 흩뿌려진 나를 차곡차곡 주워 담는 일. 그렇게 펼쳐진 내 모습은 분명 완벽할 수 없겠지만, 가끔은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던 내 안의 심판관을 잠시 쉬게 해도 괜찮겠다. 어차피 왜곡된 형상을 봐야 한다면 내 편인 쪽이 당연히 낫지 않겠는가. 유난히 어깨가 처지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날이면 셔츠 깃을 쓱 고쳐 세우며 중얼거려 보는 것이다. 나, 조금 귀여울지도? /문은강(소설가)

2025-08-10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여는 세상

국민 24%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다. 이제 인공지능 기술이 일상 깊숙이 파고든다. 요즈음 인공지능과의 채팅과 영어 회화 공부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우리의 일상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그가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판단한 결과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인공지능에 양자 컴퓨터가 연결되면 어떻게 될까. 양자는 소립자로 에너지를 운반하는 기본 입자이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가 가진 중첩, 얽힘, 양자 간섭 등 양자역학을 이용하여 만든 컴퓨터로 기존의 컴퓨터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문제를 짧은 시간에 계산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하는 인공지능과 슈퍼컴퓨터가 수십, 수백 년에 걸쳐 계산할 문제를 단 몇 분 만에 계산하는 양자컴퓨터가 결합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에 세상은 더 빨리 달라질 것이다. “미래를 이끌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의 결합이 될 것이다”라고 ‘IBM 리서치’ 취리히 연구소의 테오도로 라이노(Teodoro Laino) 박사는 말했다. 2030년에 상용화가 될 것이라는 양자컴퓨터는 미국, 캐나다, 중국, 스위스 등 각국의 치열한 개발 경쟁으로 그 시기를 대폭 당길 가능성도 크다. 국내에선 100 큐피드급의 IBM 퀀텀 시스템을 도입한 연세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원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체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IBM 퀀텀 시스템 원을 설치하여 연구 중인 나라는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5번째이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의 결합은 현존하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연구개발에 선도적인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정부의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도 아직은 인공지능에만 머무르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정책과 경제적인 지원으로 우리나라가 양자컴퓨터 원천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원천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인류를 위한 제품 개발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고 활용하는 인공지능만 해도 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만 한데 양자 컴퓨터를 활용한 연구로 새로운 정보를 공급하는 양자 컴퓨터가 합세한다면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다. 인류는 아직 풀지 못한 문제가 많고 지금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피해를 보고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힘을 모으면 질병 연구와 신약의 개발, 불치병에 대한 치료 기술, 삶을 풍요롭게 할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 환경 오염 문제 해결 등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사람을 위한 기술 개발에 힘을 합칠 때 인류의 삶은 한층 더 밝아질 것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적대세력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고 지구는 매일 아프다고 말하고 질병으로 사람들은 죽어간다. 우리는 인류가 함께 나아갈 미래를 꿈꾸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에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더해진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없지 않을까. /김규인 수필가

2025-08-10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지난주 인지 건강 강의에서 공자의 즐거움을 소개했다. ‘논어’의 첫 문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는 인지 건강에 중요 요소인 공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오는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도 당연히 소개했다. 수업이 끝날 때 수강생들은 배우는 기쁨을 한껏 느꼈다면서 한문을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전율이 느껴진다고도 하셨다. 공자만 소개하면 서운해서 맹자의 삼락도 덧붙였다. 칠십 대 이상인 분들도 있어서 ‘부모가 모두 생존하고 형제가 무탈한 첫 번째 즐거움’과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시키는 세 번째 즐거움’은 생략하고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두 번째 즐거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 수강생이 ‘이건 불가능해요.’라고 하신다. 순간 아, 그렇지, 하고 바로 수긍하게 되었다. 하늘에 부끄러움 없기야 말할 것도 없이 불가능하지만 사람에게 부끄러움 없기도 쉽지는 않다. 맹자는 물론, 제아무리 공자라도 부끄러움이 하나도 없게 떳떳했을까 의문이 든다. 설령 그들 스스로 부끄러움 없다고 자부했다면 그것이 더 수상쩍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잘못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너무나 떳떳하여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혹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즐거움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그러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또 가능한 일은 잘못을 저지르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것을 반성할 줄 아는 것일 게다. 지난 3월 7일 구속취소되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넉 달만인 7월 10일 재구속되었다. 구속취소 전에도 모든 조사를 거부했고, 재구속 이후의 조사도 다 거부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속옷만 입고 누워서 버텼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을 당황하게 하더니 7일에도 완강히 거부해서 부상을 우려한 특검팀이 결국 체포 집행을 중단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설이 없다. 혹시나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까? 그러나 시민 104명이 12·3 불법계엄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자 바로 항소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더군다나 윤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이 ‘10여 명의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대통령을 양쪽에 팔을 끼고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차량에 탑승시키려 했다’면서 이것은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관계자들을 불법체포감금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성토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자신들이 무고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더 당당하게 나와서 조사받아야 할 텐데 일관성이 없다. 부끄럽지 않을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것은 배워서 할 수 있다. 공부를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8-10

일하는 노인 천만명시대

통계청이 밝힌 5월 중 고령층 부가 조사에 의하면 55~79세 국내 고령층의 경제활동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수치는 고령층 전체 인구의 60.9%에 해당하는 것으로 10명의 노인 중 6명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통계청의 이 발표는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구조가 새로이 바뀌어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통계로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우리 사회 노인들은 은퇴 후에 여생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있다. 20년 전(500만명)과 비교하면 그 숫자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은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제는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예외적 경우로 보지 않으며 보편적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는 국가적이든 개인적이든 긍정적인 면이 많다. 노동시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이것이 노년층의 생활 안정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늘어난 배경에는 수명이 늘면서 70대에도 활동이 가능한 건강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령자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생활비 조달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돼 노인들의 경제활동 증가에는 노인 빈곤 문제가 여전히 숨어 있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노인 빈곤 문제부터 퇴치돼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10

두달여 앞둔 APEC 경주관광 붐업 나서야

경주는 국내외적으로 관광도시로 잘 알려진 도시다. 세계유산도시기구 회원도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도시로서 국제적으로 관광도시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오는 10월 말 개최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경주에게는 도시발전의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세계 21개국 정상과 각료, 경제인 그리고 2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행사를 주관하는 도시로서 얻을 후방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APEC을 호기로 삼는 경주시의 특별한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경주는 앞서 말한 대로 관광문화 도시다. 신라 천년고도의 도시에다 도시가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문화재가 넘쳐나는 도시다. 관광지로서는 이만한 인프라가 갖춰진 도시가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APEC을 계기로 관광도시로서 국제적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경주의 최대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앞둔 가운데 정부가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해 한시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음달 29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다. 중국의 국경일과 연말연시 특수를 활용한다면 중국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외국 관광객의 28%를 차지하면서 가장 많았다. 중국 관광객 수는 코로나 19 이전 수준까지 근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국 관광객은 서울과 부산을 관광하고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서울과 부산 관광업계는 벌써부터 중국 관광객 유치에 들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APEC을 앞둔 경주는 중국 단체관광객을 유치할 명분도 인프라도 충분하다. 경주시는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무비자 입국 시기에 맞춰 경주관광을 끌어올릴 관광붐업 정책을 서둘러 펼쳐야 한다. 경북도와 경주시, 관광업계가 APEC 개최도시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도시 경주에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경주의 관광붐업은 APEC 경주의 성공 개최와도 연결이 된다. 정부도 APEC이 열리는 경주에 많은 관광객이 찾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5-08-10

산업재해 없는 나라

길을 걷다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 수가 있다. 수많은 개미가 사람들의 발밑을 태평하게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은 운동화나 구두가 언제 생명을 앗아갈지 모를 판국인데 개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간다. 이런 일은 어제도 한 달 전에도 10년 전에도 일어났으리라. 어떻게 개미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유유자적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것일까?! 개미를 들여다보다 문득 인간의 생명과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만일 우리 머리 위로 거대한 공룡 무리나 매머드 코끼리가 지나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혹은 사악한 악마나 잔인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우리를 덮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싶다. 개미와 인간, 인간과 초자연적이고 숙명적인 존재의 관계를 유추해보는 것이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인간은 문명을 일구었고, 그 결과 자연과 대립하는 담장을 만들었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담장 안의 안온한 사회와 담장 밖의 황막한 자연이 구별되기 시작한다. 자연에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이 진행되었지만, 인간 세계에서는 유소년과 노인 그리고 병자 같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와 실천방안이 마련되기 시작한다. 산업혁명과 궤를 함께한 19세기의 악랄하고 병리적인 자본주의와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들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코난 도일(1859-1930)의 추리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런던의 끔찍한 스모그와 그 속에 방치된 시민들의 일상은 당대의 가혹한 사회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하도록 한다. 최소한의 치안과 국방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한 사회·경제정책에 따른 폐해를 사람들은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인간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에 두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국가가 나타난다. 이것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국민 개개인이 돈과 권력을 위한 일회용 소모품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대형사고의 그늘에 자리한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대참사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기억만이 또 다른 참사를 예방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대형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좀먹는 것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다. 해마다 반복되는 산재를 예방하는 것이 중차대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 최근 3년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2년 2223명, 2023년 2016명, 2024년 2098명이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하루 평균 5~6명의 귀한 생명이 노동 현장에서 덧없이 스러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 주권 정부’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사고를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참 좋은 일이다.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 불감증을 산재 원인으로 보았던 언론도 사태의 핵심을 치밀하고 면밀하게 들여다볼 때다. 광고 수주를 위해 재벌과 대기업 고용주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노동자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깊이 있는 접근과 인간적인 자세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8-10

국힘 전당대회, TK현안은 언급도 안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늪’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8·22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8일 대구·경북(TK)에서 열린 첫 후보 합동연설회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 찬·반으로 나뉜 당원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며 난장판이 됐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책임당원 투표 80%, 국민 여론조사 20%로 선출되기 때문에 판세를 결정할 책임당원의 입김이 강하다. 당권주자 찬탄·반탄파 대결 구도는 2대 2다.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는 “당을 망치고 약속을 어긴 사람들이 주인 행세를 하면서 당원들을 향해 극우니 혁신의 대상이니 하면서 큰소리를 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김문수 후보는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당 내부가 아니라 극좌 부패 세력”이라고 했다. 반면, 찬탄파인 조경태 후보는 “우리 당이 ‘윤 어게인’을 외치는 자들을 몰아내지 못하면서 거의 해체 수준의 참혹한 순간을 맞고 있다”고 했고, 안철수 후보는 “극단주의자들이 대구·경북에 와서 표를 맡겨 놓은 것처럼 손을 벌리는 것을 심판해 달라”고 했다. 이날 장동혁·김문수 후보는 안 후보의 정견 발표를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떴고, 국사강사 전한길씨는 찬탄파 후보자들이 연설을 하면 청중석 앞으로 뛰쳐나가 ‘배신자’를 외치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당원이 전씨에게 “무슨 자격으로 나서느냐”고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8월 1주차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지지율이 16%까지 떨어졌다. TK지지율도 23%로 10%대 추락을 겨우 면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민심회복에 총력을 쏟아야 할 전당대회를 ‘윤석열 논쟁’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니 지지율이 오를 리 없다. 특히 TK지역은 국민의힘 ‘산실’이 아닌가. 이 지역은 현재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모든 현안(TK신공항 건설, 대구 취수원 이전, 영일만 대교건설 등)이 중단된 상태여서 정치권 지원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당권 주자들이 지역 전체의 민심을 외면한 채 강성 당원 표만 노리며 한물간 ‘배신자 논란’을 벌이고 있으니 정상이라 할 수 없다.

2025-08-10

잔인한 복수의 칼날

두 개의 잔혹한 이야기가 들렸다. 육십 대 초반의 한 남자는 자기 생일날 며느리와 손주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이혼한 아내가 너무 미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하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내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죽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다. 아내가 그렇게 미웠으면 그냥 아내에게 총을 쏘면 될 일인데 왜 자식에게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눈앞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어린 손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인가. 이런 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객기를 부리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재기를 위해 처가의 돈을 많이 빌렸다. 하지만 계속된 사업 실패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장인의 돈 독촉은 연일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이 남자는 모든 사업자 명의를 자신의 아내에게 다 돌려버리고 모든 빚을 그쪽을 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아내가 자는 방문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밤이 새도록 남편의 시체를 방문에 걸어 놓고 잔 셈이 되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내는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는 남편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꽤 되었지만, 아내는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독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장인을 향한 보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으로 끔찍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최근 이야기 두 개를 뽑았을 뿐이지 비견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분명히 이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 사회에 부모라는 개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가족이란 개념은 전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를 든 두 남자는 지네 부모에게 증오의 표출 방법으로 아주 잔혹하게 남을 짓밟는 것만 배웠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치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옳고 남이 다 잘못했다는 지극히 이기적 사상관으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자기 잘못은 도외시 한 체 남에게 상처받는 것을 못 참고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자격지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대충 넘어갈 성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존경받는 어른이 없어진 지 오래다. 어른이 없어지니 전부 어른 행세를 한다. 나이가 조금 먹었다 싶으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아무 날이나 걸림이 없다. 이러니 젊은이들조차 예의는 사라지고 몰염치만 남았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종교 성직자들은 정치 놀이에 여념이 없고 납골당이나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정신 건강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랑으로 남을 보듬어주는 정(情)이 없어졌다. 남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악다구니처럼 살아가는 군상들이다 보니 남에 의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은 사라지고 복수의 칼날만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느낌이라 갈수록 세상살이가 피곤해진다. /노병철 수필가

2025-08-07

반려(伴侶)의 의미

우리 집 고양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첫째 ‘마루’는 어느 식당에 출몰한 쥐잡이용으로 용인5일장에서 삼천 원에 팔려 왔고, 둘째 ‘보리’는 꼬리가 잘려 피투성이가 된 채 길 한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셋째’ 용이는 내가 다니던 문학관 주변을 맴돌며 방문객들의 손길과 발길질을 번갈아 맞고 있었고, 넷째 ‘송이’는 구내염에 시달리며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막내 ‘핑코’는 자기가 골목대장인 줄 알았지만 산책 나온 개들에게 종종 쫓겨 다니곤 했다. 마루, 보리, 용이, 송이, 핑코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다. 나도 내가 고양이 다섯의 ‘집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가끔은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해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우연히 내게 찾아왔고, 각자를 마주한 순간들이 너무 절박했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첫째가 온 지 9년, 막내가 온 지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나는 반려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됐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개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반려종 선언(2003)’을 제시한 바 있다. 대체로 “우리는 서로를 위태롭게 만들고 남의 살점으로 존재하며 서로 먹고 먹히고 소화불량에 걸리며 살다 죽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종이 서로 반려가 되어 살아가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발적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반려종’은 당연히 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려종이 존재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개의 종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반려종은 관계가 존재론의 최소 단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러웨이는 자신과 반려견 사이의 대화와 훈련 경험을 통해 소통과 조율을 오가며 ‘서로 만들어가는 존재’가 됐다고 말한다. 개와 인간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타자로 존재할 수 있는 윤리를 알게 됐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한 애정 관계가 아닌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사유되는 관계라고 말한다. 결국 ‘반려종 선언’은 인류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를 재구성할 것을 요청하는 의제라 할 수 있다. ‘필멸’이라는 우리 삶의 조건에서는 ‘생명 우선’이 아닌 ‘지속 우선’의 태도가 수립돼야 하며, 다른 종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 맺기 만이 기후 위기와 생태적 재난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죽여도 되는 종’을 끊임없이 지정해 왔다. 가령 ‘침략종’이 그렇다. 이들은 서식처나 생태 복원을 구실로 죽여도 되는 존재로 숨어 살게 된다. 이는 “특정 생명체를 위한 결정이지만 다른 생명체를 위한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리는 것은 아닌”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생명정치가 살 가치가 있는 종과 그 외부의 타자를 구분하는 사고에 기초한다면, 그리하여 그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나치의 ‘인종청소’가 시행된 것이라면, 특정한 국면에서는 우리 자신조차 ‘죽여도 되는 종’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반려란 지속가능한 생태를 함께 이루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해러웨이만큼이나 우리집 다섯 고양이가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줬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5-08-07

수능 기도

갓을 쓴 바위란 뜻의 갓바위란 이름을 가진 곳은 전국에 여러 곳 있다. 예컨대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바위는 모양이 갓을 쓰고 있는 것과 닮아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갓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동네 이름도 여기서 유래돼 관암(冠巖) 마을이다. 목포시나 경기도 양주, 서울 우면동, 공주시, 보령시 등에도 갓바위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나 바위가 있다. 그러나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갓바위의 인지도에 밀려 대부분의 갓바위들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팔공산 갓바위는 팔공산 봉우리의 하나인 관봉 정상부에 있는 높이 5.48m의 불상이다. 9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머리 위에 씌인 갓모양의 바위는 그 이후인 고려시대에 따로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후덕하고 무뚝뚝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1965년에 문화재 당국이 보물로 지정한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특별히 유명한 것은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다. 불교 신도이든 그렇지 않든 소원을 빌러오는 사람들이 연중 끊이질 않는다. 한해 250만명이 찾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가도가 영험한 모양이다. 수능시험 100일을 맞은 이번 주에도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 많은 기도객이 몰렸다고 한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산을 올라 기도하는 이들의 정성이 놀랍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고 했다. 각자가 바라는 소원은 다르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믿고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8-07

매년 반복되는 고수온 고기폐사 대책은 없나

올해는 폭염 등으로 고수온주의보가 작년보다 보름 정도 빨리 발령됐다. 경북 동해안도 지난 1일 경주, 포항, 영덕, 울진 등에 고수온주의보가 발령돼 양식 어가들이 비상이다. 작년 여름은 경북 동해안에서만 300만 마리의 어류가 폐사하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의 고수온 피해가 발생했다. 강도다리, 넙치 등 고수온에 취약한 어종에서 주로 발생했고, 많이 발생한 날은 하루 20만 마리가 폐사한 사례도 있다. 피해액이 31억원에 다달았다. 포항에서는 육상양식장 40곳 가운데 32곳이 피해를 입었다. 고수온주의보는 수온 표층온도가 28도 이상 지속될 경우 경보단계로 격상되는데, 올해는 역대급 폭염이 예상돼 양식장마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포항시는 이런 양식 어가들의 사정을 고려,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어류폐사 피해 최소화를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식어가에 대한 방제장비나 물품 등을 지원하고 시설 현대화와 보험료도 지원한다. 포항시의 이같은 선제적 지원은 바람직하다. 사후 지원보다 예방적 효과로 거두는 실익이 크기 때문이다. 여름철만 되면 발생하는 동해안 고수온 피해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양식농가의 영세성과 비용 등이 뒤따르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지만 대체로 단기적 처방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고수온에 따른 물고기 피해는 기후변화 등으로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보다 근본적 대책을 세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육상 양식장을 운영하는 모 대표는 “장비보다 운영비가 더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냉각기와 산소공급 장치를 돌리려면 전기요금이 문제”라고 했다. 포항만 해도 액화 산소공급기 등 2000대 가까운 방제장비가 어가에 있으나 어가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농업처럼 어가에도 특례요금을 적용해주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한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고수온에 대응하는 양식기술 개발이나 대체 어종개발도 좀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내야 한다.

2025-08-07

양육비를 받기 위한 방법

“나중에 양육비를 안 주면 어떡하죠, 변호사님?” 10년 넘게 이혼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필자가 의뢰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실제로도 힘들게 협의이혼이나 재판이혼을 하고 나서도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생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이혼 소송의 의뢰인이 다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한 소송의 의뢰인이 되기도 한다. 민법 제913조에 의해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으므로 이혼하고 자녀를 키우지 않고 있는 부모에겐 양육비 지급 의무가 지워지는 것이다. 양육비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주는 것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 양육비를 3번 이상 안 보내면 감치에 처해질 수 있다. 감치는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채무자를 교도소 등 장소에 구금시켜 놓는 것이다. 양육비 채무자가 정기적 급여를 받는 근로자인 경우 양육비 채권자가 다니는 회사에 직접 양육비를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 회사가 채무자의 월급에서 양육비를 떼서 양육비 채권자에게 직접 보내준다. 이것이 양육비 직접지급명령 제도이다. 양육비 미지급자에겐 출국금지 처분과 운전면허정지 처분도 내려질 수 있다. 나아가 양육비 채무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 주소 근무지 등을 공개하는 신상정보공개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고 양육비를 일시금으로 지급해야 하거나 법원에 양육비 지급을 담보하기 위한 일정 금액의 담보금을 공탁해야 할 수도 있다. 형사처벌도 된다.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감치 결정을 받고도 1년 동안 여전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양육비를 안 주다간 전과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금전채무도 이런 많은 제재 수단을 가지는 것이 없다. 아이들의 생계, 기본권과 관련된 양육비 채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강제 수단들이 있으므로 사실 정상적 경제활동을 하는 비양육자들은 양육비를 잘 보낸다. 문제는 자기 이름으로 받는 급여도,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경제활동을 하며 사는 비양육자들이다. 그 자들에 대해서도 감치와 형사고소 등 위 수단들을 취할 수 있겠지만 여기엔 알아볼 시간과 노력, 또 법률 비용이 든다. 양육비를 못 받으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계를 꾸리는 데 바쁜 사람들이기에 양육비를 받기 위한 강제수단이 많다는 법률 정보를 정확히 알기 힘들거나 알아도 법률 비용을 쓸 여유가 없다. 몰라서 못하고 알아도 못한다. 정부와 법원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이다. 부모 명의 회사에 다니며 떵떵거리며 살면서도 양육비를 보내지 않고 있는 남성에 대해 감치 결정을 받았지만 법원은 감치 집행에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특히 대상자의 소재가 불분명하면 감치 집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모든 사회적 문제가 그렇겠지만 특히 양육비 이행 문제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양육비 이행을 위한 강제수단과 제도들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실무 집행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더해졌으면 한다. /김세라 변호사

2025-08-07

건설업계 산재사고, ‘일벌백계’가 해법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들어 5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구 포스코 건설)에 대해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해당 기업은 물론 국내 전 건설업계가 초긴장 상태다. 포스코이앤씨 측은 “연이은 산재사고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대통령 입에서 면허취소 발언까지 나오자 임직원과 그 가족, 하청업체, 주식투자자, 본사가 있는 포항시민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최고수위의 처벌을 언급한 것은 산재사고의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실제 면허취소가 되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로 건설 면허가 취소된 전례는 없다. 지난 2022년 근로자 6명이 사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때에도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면허 취소 논란이 있었지만, 올 5월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 1년 처분을 받는 선에서 종결됐다. 포스코이앤씨는 국내외 주택·건설 공사와 포스코그룹의 주요 인프라 건설을 주도해 왔기 때문에 만약 면허가 취소되면 사회·경제적인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6월 현재 재직하고 있는 직원이 6153명이고 협력사도 2000여 개다. 전국 아파트 건설 현장이 100여 곳에 달하고, 해외영업장도 다수여서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포스코이앤씨는 특히 포스코그룹의 명운이 걸린 포항제철소 LNG발전소와 수소환원제철 부지 조성 공사도 곧 시작해야 한다. 중대 산업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다만 우리 건설업계 전반에 상존하는 구조적인 현안을 무시하고 해당 기업만 일벌백계식 처벌을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건설업도 그렇지만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국내 제조업체 대부분은 매일 산재 발생 위험성을 안고 가동된다. 이 모든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면허를 취소하거나 사장을 처벌하면, 어느 누가 기업을 운영하려 하겠는가.

2025-08-07

북천숲 700년 느티나무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필연적으로 죽어가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살아갈 많은 날들 매우 눈부셔요 당신의 나날은 더 아름다워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성실하려 해요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잘 살길 바라는 것은 잘 죽기 위함이에요 항상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교만은 지금의 자살이에요 지금 당신 옆의 모든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허락할 것을 맹세하면 어떨까 해요 지금 눈앞의 손해보다 양보가 큰 이득이었어요 물러섬이 나아감보다 좀 낫더라고요 나는 미처 몰랐어요, 앞 사람의 어깨를 보는 것. 좋더라고요 비빌 언덕의 환한 햇살, 너무 따스하지 않아요? 나 역시 중요하지만 남들도 모두 중요해요 남루한 어깨동무, 타박타박 걷는 길 그냥 가만히 가요 사람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북천숲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해요 발전적이지 않아 제자리 지키면 오히려 발전적이에요 누가 뭐래도 상관 없어요 나무와 숲이니, 모두가 두루뭉술하니, 손해 볼 일 없으니 그러한 가능성에의 지향적 삶이 궁극의 길일 거예요. …… 정말 모르고 살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임을. 몰랐다. 면피가 아니라 무지의 극점(極點)에서 세상의 부분을 설파하려 했다. 무모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죄질이 나쁜 교조적인 관념의 세계에 숨어, 무한의 삽질을 하며, 나무 한 그루 못 심었다는 것이다. 적당하게 살아야 했다. 깨달음 혹은 각성은 강요할 수가 없다. 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불구하고, 구업(口業)의 악업을 일상으로 저질렀다. 문제는, 그것이 지속적이며 세속적이라서, 습관화되어, 무감각하게, 덧칠하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그러나 삶은 명랑하다. 그렇다고 믿고 나를 개조해야 한다. 북천숲의 나무들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걸음을 따르지 못한다.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8-06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초록바람이 살랑거리는 오후였다. 포항성모병원의 뒷마당에 조성된 ‘루이 델랑드 치유의 정원’을 거닐었다. 표지판에는 루이델랑드 신부님이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고아를 안고 계신 것만 같아 내 가슴이 감동으로 뭉클했다. 치유의 정원 안에서 나무들과 어우러진 조형물 ‘기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조용히 하늘에 가 닿을 것 같았다. 그 따스한 분위기에 스며들어 나의 소망도 한 줄 기도문이 되어 내 안에 울려 퍼졌다. 환한 빛이 몸에 깃든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소로 향했다. 이 땅에 뿌리 내린 한 영혼의 이야기를 더듬듯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걷는 언덕길은 성스러웠다. 신부님께서는 1895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람 많은 연안에서 태어나셨다. 그가 수평선 너머에 있는 머나먼 나라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건 1923년이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산에 도착하셨다. 조선은 식민지의 불안 속에 있었지만, 신부님께서 내딛은 소명의 발걸음은 분명했다. 그 후의 삶은 말보다 조용한 손길로 채워졌다. 다른 나라에서 종교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그 땅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1935년 여섯 명의 동정녀와 ‘삼덕당(三德堂)’이라 불리는 초가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소박한 집에서 싹튼 마음은 훗날 ‘예수성심시녀회’라는 이름으로 꽃피웠다. 기도보다 더한 기도는 삶이었고, 강론보다 더한 복음은 나눔이었다. 신부님은 이듬해 할머니 두 분과 두 명의 고아를 맞아들여 새로운 삶의 식탁을 꾸리셨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고, 길 잃은 이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성모자애원’이 세워졌다. 오직 사람을 품는 마음만으로 시작된 보금자리였다. 삶의 주변부에 있던 이들을 자애롭게 끌어안으셨다. 그리고 1950년 3월 포항으로 향하셨다. 보다 깊은 헌신을 향한 발걸음이셨다. 낯선 바닷바람 속에서 익숙한 사랑의 언어로 병든 이들을 어루만졌고,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 보며 걸으셨다. 한국전쟁 뒤에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고아들을 품으셨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울던 아이들, 신부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신부님은 끝내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묻혀 흙이 되셨다. 신부님의 삶은 영웅적인 장면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함은 반복된 하루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우는 자세 속에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신부님께서는 세상을 껴안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주셨다. 문득, 신부님께서 수십 년 전에 돌보았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바라보았던 아이들의 눈빛, 노인의 주름진 손, 고요한 죽음 앞에서의 기도가 아직도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신부님을 떠올려 보면,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대단한 영웅이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굶고 있는 자에게 한 끼를 나누는 일, 고통과 눈물 속에 머물러 있는 자에게 등을 두드려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 자존감이 낮은 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은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 지역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신 이분의 행적이 더 넓게, 더 깊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 위로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어쩌면 신부님께서는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묵념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종교를 증명하신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그 뿌리는 이 땅에 내려져 영원히 꽃이 되었다. /정미영 수필가

2025-08-06

‘소비쿠폰’ 효과 있지만, 물가관리가 걱정

지난달 21일 신청이 시작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영향이 지역 상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업종은 소비쿠폰 효과로 매출이 늘어났지만, 소비쿠폰이 지류(종이) 상품권 없이 카드 형태로만 지급되면서 노점상이나 골목상권 등에서는 특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소비쿠폰은 국민의 93.6%인 4736만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신용데이터(KCD)가 소비쿠폰 배포가 시작된 한 주(7월 21∼27일) 동안 전국 소상공인 38만여 개 사업장의 카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안경원 업종 매출이 전 주 대비 56.8%나 상승하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패션·의류업 매출도 28.4% 늘었으며, 면 요리 전문점(25.5%), 외국어학원(24.2%), 피자(23.7%), 초밥·롤 전문점(22.4%), 미용업(21.2%), 스포츠·레저용품(19.9%) 등도 매출액 증가 폭이 컸다. 본지 기자가 포항지역 전통시장을 취재했더니, 정육점·건어물점 등의 매출이 특히 상승했다고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20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소비쿠폰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지원금으로 고기를 사는 손님이 꽤 늘었다”고 했다. 반면 생활·편의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지역은 읍면 소재지까지 이동하기가 어렵고 마땅한 사용처도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지역에서는 소비쿠폰 지급률도 낮다고 한다. 정부는 농가가 주로 이용하는 농자재 업체나 주유소에서도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번 소비쿠폰 지급이 소상공인 매출에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다행이다. KCD는 특히 서비스업 매출의 경우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폭이 컸다고 분석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다양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들이 비수도권 지역을 우선 고려해 추진되면 효과를 극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소비쿠폰 지급이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부가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