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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카톡보고 내란선전죄 고발”… 이게 공포정치

민주당 국민소통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전용기 의원이 “일반인도 카카오톡을 통해 가짜뉴스를 퍼나르면 내란 선전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정치권에서 ‘카톡 검열’ 논란이 핫이슈로 등장했다. 전 의원은 지난 10일 유튜브 채널 운영자 6명을 내란선전죄 혐의로 고발하면서 “커뮤니티에서 댓글 그리고 가짜뉴스를 단순히 퍼나르거나,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내란선전과 관련된 가짜뉴스를 퍼나르는 것은 충분히 내란선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단순히 퍼나르는 일반인이라 할지라도 단호하게 내란선동으로 고발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공직자에 대해 탄핵과 고소·고발을 남발하고 있는 민주당이 이제 일반시민에게까지 전선을 확대해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은 충격적이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법률자문위원장)은 12일 이와 관련해 “전 의원을 형사고발하겠다”고 했다. 그의 발언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강요죄와 협박죄 등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대구경북(TK) 정치권도 발끈했다. 정희용(성주·고령·칠곡) 의원은 “일반 국민의 댓글이나 카카오톡 사용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명백한 대국민 검열 행위”라고 했고,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은 “카톡 검열 행위는 혹세무인”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카톡 검열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가짜뉴스나 여론조작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상 공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일반국민을 내란선동죄로 고발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은 여사도 들리지 않는다. 듣기에 따라서는 민주당이 이제 시민의 일상적인 소통수단인 카톡까지 검열하겠다는 취지로 인식된다. 제1야당의 이런 행태는 정국 수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수권정당 자격’ 논란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추락했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최근 상승추세에 있는 것은 민주당의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엄정국에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던 중도보수층이 민주당의 ‘공포정치’를 우려하며 돌아서는 것이다.

2025-01-13

회갑 앞둔 축구선수의 투혼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시인 고은은 말했다. “그저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노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젊어도 뒷방에 앉아 폼 잡고 헛기침이나 하고 있다면 그는 벌써 노인이다.” 노인과 청년을 가르는 건 마음가짐과 태도다. 거기에 더해 삶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의 유무가 청년과 노인을 구분하는 잣대가 돼야 마땅하지 않을까?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맹렬한 의지가 없다면 나이와 무관하게 노인 대접을 받게 된다. 최근 회갑이 목전인 58세의 축구선수가 40년째 프로리그에서 뛰게 됐다는 보도가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일본 축구 국가대표였던 1967년생 미우라 카즈요시가 바로 그 화제의 인물. 미우라는 일본 축구가 ‘한국 공포증’에서 벗어났던 1990년대 일본 국가대표팀의 주요 공격수였기에 한국 축구팬에게도 익숙한 선수다. 최근 미우라의 원 소속팀인 요코하마FC는 일본 풋볼리그 소속 아틀레티코 스즈카에 지난해 임대한 미우라의 이적 기간을 내년 1월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미우라는 아들 또래의 선수들과 그라운드를 누비게 됐다. 축구는 체력 소모가 엄청난 운동이다. 그러니 58세 현역은 물론, 40대 이상의 현역 선수도 보기가 어려운 게 현실. 그럼에도 미우라는 “1분 1초라도 더 그라운드에서 뛰며, 한 골이라도 더 많이 넣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뜨거운 각오를 밝혔다. 청년의 태도와 축구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2000년까지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A매치에서 55골을 넣은 25년 전 미우라의 투혼이 올해도 축구장에서 발휘되길 기대하는 팬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13

설 앞두고 독감 대유행… 철저한 대응을

대구와 경북 등 전국에 인플루엔자(독감)와 코로나19 등 각종 호흡기 감염병이 대유행하고 있다. 특히 인플루엔자와 호흡기 세포융합바이러스(RSV), 사람메타뉴모바이러스(HMPV)와 코로나19까지 여러 종류의 호흡기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이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작년 12월 20일 질병관리청이 전국에 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했으나 올들어서도 환자가 줄지 않는 등 호흡기 감염병 확산세가 여전하다. 그 중에도 어린이와 청소년 등의 감염 증가가 두드러져 병원마다 청소년 환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각 가정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독감의 경우 1월 1주차 동안 표본 감시의료기관(300개소)을 찾은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증상을 보인 환자 수는 99.8명을 기록했다. 이는 전주 73.9명보다 약 1.4배 증가한 것으로 2016년 이후 최고 수치다. 대구는 같은 기간 전국 평균보다 높은 108.9명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호흡기 감염병 예방에 따른 안전수칙 준수와 관계 당국의 선제적 대응이 필수다. 특히 전국에서 대이동이 시작되는 설 연휴를 앞두고 있어 예방접종과 보건당국의 연휴철에 대비한 안전조치 등이 미리 준비돼야 한다.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개인적 위생관리가 느슨해진 탓이 크다. 코로나가 유행할 때는 거리두기로 혼잡을 막았고 개인적으로는 마스크 착용, 손씻기 등의 위생관리를 잘했다. 또 코로나 시기 몇 년간 독감이 건너뛰었기 때문에 면역력이 약화된 것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호흡기 감염증이 다음 주 절정을 이루고 3월까지는 유행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독감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법이다. 특히 노인층과 어린이, 만성질환자 등은 예방접종을 통해 각자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 의정갈등 속에 탄핵정국까지 겹쳐 나라가 어수선해 국민의 마음도 불안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빈틈없는 보건관리로 지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 할 것이다.

2025-01-13

한 번쯤 뒤집어 생각하고 판단하라

김진국 고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과격한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도 가슴에 파고드는 표현을 잘했다. 그는 여러 유행어를 남겼다. 가장 유명한 게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다. 그 이전 ‘로맨스와 스캔들’이라는 비유가 있었다. 이문열의 ‘구로아리랑’(1987)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기사 지가 하믄 로맨스고 남이 하믄 스캔달이라 카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는 ‘내로남불’ 정부라 불렸다. 검찰총장이 갑자기 대통령이 된 것은 그 덕분이다.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만 본다. 성경에도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적혀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국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야당의 입법 독주로 이재명 정부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화가 난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고, 독재하려고 한다. 운이 좋게도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해, 이재명 대통령은 탄핵소추되고, 수사받게 됐다. 당신은 어떤 느낌인가. 국민의힘 지지자라면, 비상계엄이 성공했기를 바랄 건가. 그래야 나라가 잘 됐을까. 그게 민주주의인가. 나훈아 식으로 “니는 잘했나”라고 빈정댈 건가. 물론 이 기회에 잇속을 챙기려는 민주당 태도도 문제가 있다. 이재명 대표 재판과 속도 경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비상계엄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정략 차원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꼴이다. 선거 국면에서는 수사가 어려워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야당 총재에 대한 비자금 수사를 중단시켰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검찰 수사도 당선 이후 모두 취소됐다. 그러니 오히려 ‘이재명 포비아(공포증)’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보수 세력도 비상계엄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상상을 하니 그건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40~50년 뒤로 돌렸는데도, 이대표 지지율이 30%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각이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옮겨가면서 여론이 뒤집힌다. 보수 세력은 민주당이 탄핵을 서두는 이유가 선거를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의심한다. 진보 세력은 윤 대통령이 시간을 끌면서 탄핵과 수사망을 빠져나가려 한다고 의심한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선거를 앞당기는 게 목표겠지만, 야당 지지자가 모두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중도층은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길이 열릴까 봐 두려워한다. 헌법재판소 심리 정족수는 7명이다. 한때 국회 몫 3명을 임명해 주지 않아 헌법재판관이 6명밖에 없었지만, 헌재 스스로 헌법 효력을 정지시키면서까지 심리를 이어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문제도 6명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다행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야 추천 2명을 추가로 임명했다. 9명 중 8명을 채웠다. 그런데 4월 18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한다. 두 사람은 대통령 추천 몫이다. 대통령이 직무가 정지돼 후임 임명이 어렵다. 헌법재판관 6명이 남는다. 다시 심리 정족수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2명이 퇴임하면 남은 6명이 모두 찬성해야 탄핵이 인용된다.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기각된다. 최근 국민의힘이 추천한 재판관까지 찬성해야 한다. 대통령 추천 2명과 국회 추천 몫 1명은 공석이다. 국회 몫 한 명을 둘러싸고 여야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이유다. 역지사지해 보자. 탄핵을, 수사를, 무리하게 서두르지는 말자.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를 오래 끄는 건 국정에 큰 타격이다. 그렇더라도 논란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재명 포비아’ 때문에 탄핵 심판과 수사 자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권은 수시로 교대한다. 그때 민주당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국회를 마비시켰을 때를 생각하라. 역사는 반복된다. ‘내로남불’을 생각하라.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1-12

지방정부의 국제외교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올가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외교역량이 돋보인다. APEC 회의는 아시아태평양 연안 21개국의 경제협력을 위해 모인 기구이기 때문에, 이번 경주회의에서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게 되면 경북도의 글로벌 경제적 위상도 격상된다. 특히 ‘12·3 비상계엄’ 이후 계속되는 국정 공백상태에서 지방정부 단체장의 외교역량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데 중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지사의 외교력은 지난해 11월 14일부터 7일간 페루 수도 리마에서 열린 ‘2024 리마 APEC 정상회의’에서 선보였다. 당시 광역단체장으로선 처음으로 대통령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리마 회의에 참석한 이 지사가 외신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모습은 경북도가 국제외교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APEC 회의는 다음달 24일부터 3월 9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첫 고위관리회의(SOM 1)가 개막하면 실질적으로 카운트다운된다. 외교부는 지난 연말 이미 SOM에 참석할 각국 외교부 고위관리들을 초청해 둔 상태다. SOM은 ‘APEC 장관회의’와 함께 정상회의 주요 의제에 관한 협의와 결정을 이끄는 핵심협의체다. 참석인원도 2000여명에 이르며, 정상회의 예행연습 성격을 띤다. 현재 경북도는 외교부 지원을 받아 SOM 첫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분주하다. 최근 고위관리회의 주요멤버들의 입출국과 수송, 관광 지원을 맡을 자원봉사자 신청을 마감한 상태다. 경북도는 APEC 회원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도 일정 인원 선발해, 한국과 회원국 간 가교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지난 9일에는 APEC 회원국과의 소통채널을 담당할 외교 특별정책위원을 위촉했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영국·이스라엘 대사, 외교부 차관 역임)와 신봉길 한국외교협회 회장(인도·요르단 대사 역임),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원장(국제학·국제관계 전문가), 임종령 서울외국어대학원 교수(정부기관 제1호 동시통역사),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위원이다. 위원들은 APEC 회원국과 다국적 기업인과의 소통창구가 있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이 지사에게 외교자문을 할 수 있다. 경북도는 처음으로 경주를 방문하는 SOM 참석자들이 신라 천년의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다양한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주 SNS를 통해 APEC 회원국에 ‘여야정 공동사절단’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경주APEC CEO서밋의장)을 파견하자고 제안했다. 정치적 혼란에 대한 각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키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아직 여야와 정부측 응답이 없는 상태다. 대통령 탄핵정국으로 인한 국정 공백상태에서 APEC 회의를 준비하는 엔진동력이 중앙정부가 아니라 경북도가 된 느낌이 든다. 사실 지방정부 외교는 국가외교보다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일 수 있다. 특히 지방에서 개최되는 국가행사는 해당 지역 단체장이 정부관료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북도를 APEC 회의 준비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경북도가 요구하는 다양한 현안에 대해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1-12

맹자는 틀렸을까?

유영희 작가 지난 토요일 아침 대학 동창 단톡방에 한 친구가 나와 뜻이 다른 정치 견해를 올렸기에 발끈하여 한마디 했다. 지금 사태는 네가 지지하는 당에 100% 책임이 있다고, 우리는 서로 설득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단톡방에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요즘 정국 대치 상황과 맞물려 있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상대를 제2의 내란 주범이라고 주장하며 정국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12·3 비상계엄은 위헌이고 내란이라 하고 한쪽에서는 탄핵을 이재명 방탄용이라 하며 맞받아친다. 같은 사실을 두고 이렇게 생각이 다르고 감정이 다를 수 있는지 매일 놀라는 중이다. 분명히 고대 중국의 사상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했고, 그의 사상은 2300년이 지난 한국의 윤리 교과서에 빠지지 않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견해로 자리매김해왔다. 인간이라면, 아기가 우물 쪽으로 기어가면 깜짝 놀라 구하러 가는 측은지심을 비롯해서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 남에게 양보하는 사양지심, 옳고 그름은 직관적으로 판별할 수 있다는 시비지심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맹자의 이 논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이타적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력이 있으며 공공의 이익에 대한 감수성이 있다. 그러나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 많이 배운 정치인들의 행동에 과연 이런 사단의 마음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일부 정치인들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도 사과는커녕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공공의 이익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근시안적인 당리당략에 몰두하며 당당하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뉴스를 보고 있자면 아무리 맹자가 위대한 사상가라고 해도 당신은 틀렸다라는 말을 참기 어렵다. 인간은 악하다 못해 사악한 존재인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을 보자니,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로버트 그린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동물이라면서, 나와 생각이 같은 집단을 찾아 내 편의 의견만 증폭시키며 나와 다른 사람을 악마화한다고 일갈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을 찾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나의 긴장을 이완시켜주거나 자존심을 세워주거나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만 고집한다. ‘사고 과정의 쾌락 원칙’은 우리가 가진 모든 정신적 편향의 근원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인간의 본성은 선하거나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중층적이고 다면적이다. 로버트 그린도 인간은 한 가지 본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할 수 있고, 존경심과 시기심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는 이런 모순된 감정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이 한 것은 모두 옳고 상대는 악마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동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톡방에서 내 말을 들은 그 동창은 말을 안 하면 외골수가 될까 봐 올렸다고 한다. 아, 이런, 나도 인간이 덜 되었구나 싶었다. 지금은 동물이어도 인간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맹자는 반은 틀렸지만 반은 맞았다.

2025-01-12

이색 기차여행

강길수 수필가 생각지도 못한 이색(異色) 기차여행을 했다. 특별하고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여행이랄까. 우연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1시간 52분짜리 여행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하다가 지난달 초순,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업무차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발전소 안에 시험 장비를 설치해 두고, 점심 먹으러 밖에 나왔다가 시간이 남아 남쪽 도로로 향했다. 얼마 안 갔는데, 오른쪽에 기차역이 보였다. ‘흥부역’이었다. ‘놀부가 아니고 흥부네!’하고 멋진 이름이라 여기면서 지났다. 그 때문인지, 바로 이름 기억이 되살아났다. 마침, 2025년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 철도의 유튜브 동영상 게시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싶어 ‘포항-흥부 기차’라고 검색창에 입력했다. ‘이게 웬 행운이람!’하는 속말이 절로 나왔다. 이심전심인지 포항역에서 해 뜰 녘에 출발하는 기차의 동영상이 있었다. 첫차이겠지. 동영상을 찍은 방향도 객실에서 동쪽 즉, 바다 측이어서 일출 장면도 보겠다 싶어 환성을 질렀다. 동영상 이름도 “동해선 개통 첫날 첫차 타고 포항에서 놀부? 흥부역까지 주행 영상”이라고 게시자가 재미있게 정했다. 얼른 새해 첫날 포항발 첫 해맞이 이색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비록 열흘 뒤에 하는 이색여행이지만 마음은 새해 첫날, 첫 기차를 타고 가는 설레는 기분이다. ‘내 책상, 내 의자에 앉아 설날 새 동해선의 기차여행을 다 하는구나….’ 꿈만 같다는 기분을 이렇게도 느낄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마우스 왼쪽 버튼을 클릭했다. 기차는 부드럽게 출발한다. 객실 내에 소곤거리는 승객들 목소리와 함께 “우리 열차 출발합니다!”하는 승무원의 소리가 들린다. 기차가 속도를 내자 레일 위를 차량 바퀴가 구르는 소리 주기도 빨라진다. 신항만으로 가는 지선을 지나고 흥해 들판의 고가 철로를 갈 때, 멀리 나지막한 산 능선 위로 새해 첫 해가 찬란하게 떠올랐다. 아마 남송리 어떤 산인 것 같다. 바다 일출을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산에서 평야로 비치는 일출도 장관이다. 열차는 쉼 없이 잘도 달린다. 동해선 포항지역의 두 번째 역 월포까지 11분이 걸렸다. 차를 몰고 오면 반 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참 빠르다. 이어서 장사, 강구, 영덕, 영해, 고래불의 영덕군 5개 역도 정차했다. 울진군의 후포, 평해, 기성, 매화, 울진, 죽변, 흥부역까지 7개 역을 정차한 뒤 동영상은 끝났다. 그러니까 13개 역을 정차한 것이다. 중간에 2, 3개 역에서 하행 교행 열차도 보냈는데, 타임 스케줄이 잘 되어 승객들이 별로 기다리지 않았다. 포항에서 차를 몰고 흥부역까지 오려면 빨라야 2시간 반 정도 걸릴 텐데, 40분 이상 단축된 것으로 보인다. 소감은 해안가를 달리는 구간이 짧고, 터널 길이 얼추 절반은 돼 보이는 것,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선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하지만, 따사한 봄날 손자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흥부의 마음이 꿀떡같이 들었다. 한울 원자력 홍보관을 구경하며 깔깔대는 손자들의 소리가 미리 들리는, 새해 첫날 첫 동해선 이색 기차여행이다.

2025-01-12

고전으로 세상읽기 ③ 세상의 이치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

서양 고전 경험론의 창시자 F. 베이컨(1561-1626)은 “인간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법칙을 사색하는 한에서만 그것의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있으며 또 뭔가를 할 수 있다.” 모든 지식은 경험인 ‘격물’로부터 시작됩니다. 물론 그 격물에는 ‘직접적 격물’뿐만 아니라 ‘간접적 격물’도 포함됩니다. ‘직접적 격물’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고, ‘간접적 격물’은 다른 이가 경험을 통해 남긴 기록을 접하는 간접적 경험 방식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이 알아야 할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동시에, 동시대 사회구성원 각자의 경험 및 사고 활동을 통한 사회적 지식 축적 역시 같은 속도로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의 시간적 한계로,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보는’ 직접적 경험 또는 직접적 격물 방식으로 모든 지식을 다 추구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한 지식을 독서나 강의 등 간접적 격물 방식을 통해 얻으면 되고 또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얻을수 없는 지식들이 있습니다. 바로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속한 것들입니다. 지식은 그 내용을 문자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로 나뉩니다. 《장자(외편)》 〈천도〉 편에서 윤편이라는 목수가 제나라 환공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바퀴통이 헐거우면 단단하지 못하고, 반대로 빡빡하면 들어가지 않는다. 헐겁지도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으로 터득하고 느낌으로 알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정확히 ‘암묵지(Tacit knowledge)’ 개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손기술, 운동, 예능처럼 ‘몸(오감) 기억’을 필요로 하는 지식은 기본적으로 암묵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설령 문자나 언어로 표현하고 또 의식으로 그것들을 기억하더라도 몸 감각이 그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면 문자, 언어 그리고 의식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영은 직접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것이 지식이고, 바이올린 연주는 직접 활로 현을 켜 소리를 내는 것이 지식이지, 헤엄치는 방법 그리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방법에 대한 머릿속 암기는 그것들에 대한 지식의 본령이 아닙니다. ◇부처가 꽃을 들자, 가섭이 말없이 미소 짓다 불교 선 수행법의 연원은 부처의 영산 설법입니다. 부처가 영산에서 설법할 때 ‘연꽃을 손에 들고 제자들에게 보여주자(拈華示衆염화시중)’ 제자 중 가섭이 ‘부처님 손안의 꽃을 보고 말없이 미소 짓습니다(拈華微笑염화미소)’. 그 순간 말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르침이 전해져(以心傳心이심전심)’, 가섭이 ‘자신의 마음속 불성을 본 순간 바로 깨달음을 얻습니다(見性成佛견성성불)’. 깊은 깨달음과 같은 ‘심오한 의식작용’이나 극한의 슬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같은 ‘극한적인 감성 작용’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깨달음과 같은 ‘심오한 의식작용’은 화두, 참선과 같은 특별한 수단을 통해 수행자 스스로 그것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지혜가 전달됩니다. 또 ‘극한적인 감성 작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라든지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같은 표현처럼, 말이나 글로 나타낼 수 없는 ‘암묵지’라는 것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으로 극한의 상태를 묘사하기도 합니다. 같은 부류는 대체로 서로 닮으니, 어찌 유독 사람에만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인류 역사 내내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 활동에 의해 축적된 지식인 형식지를 통한 간접적 경험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시작하는’ 격물입니다. 간접적 경험의 대표적인 방식은 독서와 강의 청취입니다. 독서는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지식 습득 방식입니다. 아울러 그런 효율적인 수단인 만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 또 독서입니다. 강의 청취는 가장 손쉽게 해당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반면 손쉽게 습득되는 만큼 비판적 수용과 자기 생각이 배제되기 쉽습니다. 듣는 데 집중하다 보면 따져볼 여유 없이 강사의 말 따라가기에 급급하게 되고 또, 그 주장에 끌려가기 쉽습니다. 직접적 경험을 통한 지식은 생생하고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시간과 수고 그리고 비용이 많이 듭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 관건은 사실 지식 습득의 방법보다 지식을 습득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개인 간 보유 지식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지식 습득의 방법이 아닌, 지식을 습득하는 개인의 태도 차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지식 습득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주어진 상황에 따라 현실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지식 습득 방법을 선택할 여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태도에 있어 첫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개인 간 자질 차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서입니다. 맹자는 《맹자》〈고자장구상〉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로 같은 부류의 것들은 모두 서로 닮으니 어찌 유독 사람에 있어서만 그렇지 아니하겠는가? 마땅히 성인聖人도 보통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BC106-BC43)는 《법률론》 〈제1권〉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성이라는 그 하나로 우리가 짐승보다 훌륭하고, 그 이성으로 우리는 추정을 하고 논증을 하고 반박을 하고 토론을 하고 무엇인가 작성하고 결론에 이르는데, 바로 그 이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있다는 말일세. 비록 지식이 다르다 할지라도 배우는 능력만큼은 동등하다는 말일세.” 동서양 두 현자의 주장 모두 사람의 이성 능력에 개인 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 부족에 대해 ‘나는 원래 머리가 나빠’, ‘그 친구는 타고 났잖아’와 같이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 합리화, 자기 핑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동기 작가(경영학 박사) 신동기인문경영연구소 대표 지식 습득 태도에 있어 두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노력하는 자세에 대해서입니다. 《중용》 〈제20장〉에 실린 내용입니다. “처음부터 배우지 않을지언정 일단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면 능숙해질 때까지 그만두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묻지 않을지언정 일단 묻기 시작했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때까지 묻기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일단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확실하게 파악될 때까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따지지 않을지언정 일단 따지기 시작했다면 명료해질 때까지 따지기를 그만두지 않아야 할 것이며, 처음부터 행동에 나서지 않을지언정 일단 행동에 나섰다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재능 있는 이들이 한 번에 해낸다면 자신은 열 번을 하고 재능 있는 이들이 열 번에 해낸다면 자신은 천 번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리석은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현명해질 것이며, 유약한 자라 할지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데 특별한 왕도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꾸준한 노력만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 재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그것 또한 노력을 배가하는 것 외 달리 방법이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 자기 밭은 팽개쳐두고 남의 밭의 김을 매는 이들 세 번째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맹자는 《맹자》 〈진심장구하〉 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의 병통은 자기 밭은 팽개쳐두고 남의 밭의 김을 매는 것이니,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중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일은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인생에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다른 이들의 삶을 참견하는 데 허투루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부정적으로 관심을 갖는 일에. 그렇게 되면 정작 자신을 위해 써야 할 시간과 에너지에는 결핍을 느끼게 됩니다. 아니, 결핍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해 결핍을 주장합니다. ‘시간이 없어’, ‘난 너무 바빠’와 같은 언어습관으로. 자기 밭의 잡초는 팽개치고 남의 밭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자기 삶에 정면으로 맞닥트리기를 두려워해서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지려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거죠. A.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제2장 칭찬받는 것과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함〉 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반신반인(demigod)은 시인들이 말하는 반신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신의 혈통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혈통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반신반인의 판단이 칭찬할 가치가 있는 것과 비난받아 마땅한 것을 구별하는 정확한 감각에 의해 확고부동하게 방향이 지워질 때에는, 그는 자기의 신의 혈통에 맞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불완전한 이성’을 지니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완전한 이성’을 향해 달려나가야 할 자발적 의무를 갖습니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다 그렇습니다. 조물주가 있어, 불완전한 이성적 존재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피조물 스스로의 의지로 완전한 이성인 조물주를 향하라는 의도이지 비이성적 존재인 미물로 전락하라는 의도일 수 없고, 인류 역사 전체를 두고 볼 때도 그것은 이성 완성을 향한 진화의 장도長途였지 그 반대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이성’으로서의 인간은 마땅히 그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의 이성 향상에 매진해야 합니다.

2025-01-12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이희정 시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간데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 -신대철, ‘강물이 될 때까지’전문, (‘무인도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초판 1쇄 1977) 시인은 기어이 강물이 되려는가 보다. 이 시가 수록된 신대철(1945~) 시인의 시집‘무인도를 위하여’는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일곱 번째 시집으로 1977년 초판 이후 2022년 재판 9쇄를 거듭하며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이 출판사의 시선집이 600번대 임을 보더라도, 아득하고도 유장하게 흐르는 시인의 강물을 가늠할 수 있으리라. 1968년에 등단한 신대철 시인은 ROTC 출신 GP장으로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며 북파 공작원들을 송환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때의 군대 체험은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충돌을 일으키게 하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한 시대를 통과해 오면서 자신이 처한 세계에서 한발 물러서서 숲과 나무, 자연의 사물들과의 교감을 통해 시간을 통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신대철 시인에게 작품의 진실은 이념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현의 말대로 그것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섭의 한 수단’이며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 감염시키는 활동이라고 했다. 해서, 도입부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는 화자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작한다. 시인이 건너는 강물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시공간적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사람에 대한, 흐린 물, 세상에 대한 어떤 복선도 담지 않았다. 건널 듯 말 듯 머뭇대고 두리번거리며 뒤돌아보게 하며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미루는 듯한 이 시의‘강물’은 이상하게 먹먹하다. 흐린 길 앞에 주저하는 사람을 닮아서, 인생의 흐린 길을 닮았기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만난 “흐린 강물”은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는 진술처럼 화자의 내면에는“뒤들 돌아보지” 않아야 할 불안이 내연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의 생존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흔하디흔한 인생관이지만 결국 대독할 수 있는 화자의 자격은 ‘사람’이 아닌 ‘디딤돌’이라는 익명성에서 온다. 그러니 시 속에서 시종 교차 되는 디딤돌’과 ‘사람’의 관계처럼 서로에게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인 건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구해주는 이 언술은 결국 살아야 할 이유를 스스로 전력을 다해 깨우쳐가야 하는 절박함 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그 모든 상처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람이 아닌, 디딤돌로 고쳐 살아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인은 자신이 만들어낸 화자 뒤에서 관조하고 있지 않은 듯하다. 마치 그치지 않는 한 인생의 고난을 감싸고 있는 것만 같다. 흐린 강물 앞에 마침표를 찍는 대신 어쨌든 또박또박 걸어가는 모습으로 기어이 강물이 되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강물이 될 때까지”

2025-01-12

을사년, 봉화군이 더 새롭게 도약하는 해로

박현국 봉화군수 희망과 설렘이 가득한 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지금까지 군정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군민이 주인인 희망찬 봉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24년 갑진년은 참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지만 우리 군은 지역발전이라는 대명제를 이루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해냈다. K-베트남밸리는 우리 정부와 베트남 현지의 큰 관심 속에 사업의 추진동력을 배로 확보했고, 지난 11월 스마트팜 착공식을 개최해 스마트 영농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최대 국책사업인 양수발전소 건설사업도 행정절차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지역 경제 활성화의 큰 희망이 되고 있다. 지난 9월 개최한 봉화2040 비전 선포식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봉와의 미래 청사진을 군민과 공유하고 큰 호응을 얻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또 봉화형 치유산업 국제세미나를 개최해 내륙형 치유산업 선도도시로서의 입지 선점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를 통해 산림치유, 음식치유 등 복합 치유벨트 개발을 위한 치유특구 조성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문을 연 문화재 복원 핵심 기관인 국가유산 수리재료센터를 우리군 목재 산업화의 마중 시설로 적극 활용해 나가고, 치매전담형 노인 요양시설 확충사업이 총괄 완공되어 취약계층에게 한층 강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29만명의 관광객 방문으로 185억원의 파급 효과를 창출한 은어·송이 양대축제를 통해 상경기 제고에 큰 도움을 줬으며, 지난 12월 21일 시작된 분천 산타마을 겨울축제는 더욱 확충된 관광 인프라를 기반으로 겨울철 최고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각종 공모와 대외 기관평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지난 한 해만 총 26회의 수상과 공모사업 선정으로 약 470억원의 재정 인센티브를 획득하며 군민의 자긍심을 드높일 수 있었다. 2025년은 민선 8기의 실질적인 마무리를 준비하는 해로 더욱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해온 많은 노력들이 알찬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군정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기다.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하고 주도적으로 길을 개척한다는 응변창신(應變創新)의 자세로 군민이 행복한 봉화 건설에 앞장서겠다. 올해 중점 추진해 나갈 역점시책은 미래형 영농기반 구축, 인구감소 위기 극복, 글로벌 관광도시 기반 마련, 산림을 통한 미래먹거리 발굴, 행복도시 봉화 실현, 균형있는 지역개발 등 6가지다. 먼저,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해 미래형 영농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갈 계획이다. 봉화 임대형 스마트팜의 안정적인 정착을 통해 미래 농업 생태계를 혁신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 정책인 푸드플랜을 본격 추진해 농가소득 향상을 도울 예정이다. 또한 봉화, 춘양 일대 5개 지구에 추진 중인 정주여건 개선 사업을 조기 완공해 인구 유입을 유도하고, 테마형 주택단지 조성사업과 K-U시티 프로젝트에 대한 다각적인 추진 방안을 모색해 사업추진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등 지방소멸에 대응한 맞춤형 정책추진으로 인구 감소 위기를 극복해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을 봉화관광을 선도하는 핵심사업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여기에 산림 치유와 음식 치유 등 다양한 치유산업을 접목해 자타공인 전국 관광명소로 성장시켜 나가겠다. 숲을 활용한 이색 숙박시설을 군 전역에 설치해 지역특화형 관광 인프라로 개발해 나가고 유아 숲 체험원, 동서트레일, 각종 레포츠 시설 등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는 산림휴양 시설을 확충해 산림을 지역발전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만들어 가는 데도 힘을 쏟겠다. 어르신들의 여가생활 증진을 위해 스마트 경로당을 새로이 구축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혜택을 강화해 군민 모두가 함께 누리는 행복도시 봉화를 실현할 방침이다. 남북9축 고속도로와 국지도88호선, 지방도915·918호선 등 광역 교통망 확충에도 총력을 다해 균형있는 지역개발을 통한 모두가 함께 잘사는 봉화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새해에도 더욱 낮고 겸손한 자세로 군민들과 소통하고 군민 행복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역동적인 군정 수행을 펼칠 것을 약속드린다.

2025-01-12

대중과 지식인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대학 19세기 후반 유럽에는 이른바 ‘프티부르주아’가 대대적으로 늘어난다. 그들은 지적(知的)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신문과 잡지를 읽을 줄 알고, 일부는 부유층으로 편입된다. 그들은 문화-예술적으로 고도한 수준의 귀족이 향유(享有)한 것들을 싸구려로 변용한 키치(Kitsch) 문화가 20세기 초에 널리 유행하는데 앞장선 계층이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호텔, 미술관, 박물관, 카페, 극장 등지를 점령한 일군의 프티부르주아를 가리켜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mass)이라 명명한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그는 1929년 출간한 ‘대중의 반역’에서 대중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철부지이자 의무는 팽개치고 권리만 주장하는 응석받이로 대중을 규정한다. 대중과 대척적인 위치에 자리하는 지식인을 그는 상층권위나 세습 귀족이라 부른다. 20세기 이전에 그들은 사회와 국가를 주도했지만, 20세기 20년대 이후 대중은 그들의 지도와 편달을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리하여 대중은 지식인에게 반기를 들면서 반역을 시도하고 있으며, 상층권위를 소유한 지식인들은 대중에게서 탈주(脫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의 폭주로 인해 사회와 국가 혹은 대륙 전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는 항상적(恒常的)인 국민투표’라는 아나톨 프랑스의 지적처럼 다수를 차지하는 대중의 반역이 역사와 문화의 광범위한 후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지적이다. 그는 이런 논의를 유럽 연합 출범의 당위성과 필연성으로 귀결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펼쳐지는 고통스러운 내란 상황을 보면서 지식인과 대중 사이의 되먹임 구조가 아프게 다가온다. 일부 극우 유튜버와 그들을 지지하고 옹위하는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대중 사이의 관계가 상호 의존적인 공생과 먹이 사슬 구조를 구현한다. 제한적이지만 지식과 정보를 소유한 유튜버들은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고, 무비판적인 대중은 그것을 유통하고 소비한다. 그리고 유튜버들은 그 대가로 소위 유명세와 경제적 반대급부를 보장받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 멈추지 않는다. 그들과 결탁하거나 의지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은 앞장서서 극우의 정치-경제적 터전을 마련해주고 그 대가로 정치적 입지를 보장받으려 한다. 그리하여 정보와 지식 면에서 취약한 70대 이상 노인 계층과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부 청년세대가 그들의 적극적인 포섭대상으로 노출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엊그제 국회에 등장한 ‘백골단’은 이런 양태가 가장 조악하고 사악하며 야만적으로 구현된 형식이다. 1980년 5월 광주 학살로 등장한 전두환 학살 군부의 극악한 조력자로 노동자와 대학생, 시민을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고문한 자들이 백골단 소속 사복(私服)이었다. 민주주의를 압살함으로써 우리의 정치와 역사를 왜곡하고 타락시킨 백골단이 2025년에 다시 나타나다니?! 돈과 권력이 보장된다면, 조국과 민족과 역사는 언제든 팔아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중에게 빌붙는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살 자격이 전혀 없음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2025-01-12

보수결집… 與지지율 상승 추세로 자리잡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끝없이 추락할 것 같던 국민의힘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반대 응답자도 늘고 있어 그 배경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에서는 ‘중도층 응답률이 낮은 ARS 조사의 착시효과’와 ‘거짓응답’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지지율 회복세가 최근 여론조사의 공통적인 추세인 점에 비추어 보수층 결집에 따른 현상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야 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민주당 36%로 집계됐다. 직전 조사인 3주 전과 비교해 국민의힘은 10%p나 올랐다. 반면, 민주당은 12%p 떨어졌다. 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국민의힘이 오랜만에 과반이상(52%)의 지지율을 보이며 민주당(19%)을 압도했다. 윤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선 찬성 64%, 반대 32%로 나타났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 갤럽 조사와 비교하면 11%p가 찬성에서 반대로 선회했는데, 주로 중도층(83%→70%)과 보수층(46%→33%)이었다. 갤럽은 “계엄사태 이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가결, 국회의 탄핵소추안 내용 변경 공방, 수사권 혼선 등이 이어지면서 제1야당으로 쏠렸던 중도보수층이 다시 여당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지난 6~7일 미디어리서치가 정당지지율 조사결과(민주당 40.4%, 국민의힘 40%)를 발표하자 여론조작이 의심된다고 했다. 질문내용이 보수층의 응답을 유도하고, 진보층은 응답을 거부하게 설계됐다는 것이다.(위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은 최근 보수유튜버들의 가짜뉴스를 잡겠다며 ‘민주파출소’라는 홈페이지도 개설했다. 계엄사태 이후 국정혼란이 극심해지면서 여권에 대한 지지율 상승은 추세(趨勢)가 된 것 같다. 입법부와 공권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소속 의원들의 과격한 발언 등이 민심이탈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025-01-12

울릉공항 활주로 추가 연장, 검토할 가치 있다

국내 항공사상 최악의 피해를 낸 무안공항 사태를 계기로 국내 지방공항의 안전성 문제가 심각히 제기되는 가운데 울릉공항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공항 활주로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문제를 제기한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 대장인 김윤배 박사는 현재 1200m 길이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의 필요성을 대략 3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울릉도는 국내서 연간 강수량이 가장 많은 항공 취약지란 점, 둘째는 최대 순간 풍속 25노트 이상 강풍 일수가 연간 138일에 달해 풍속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또 세 번째는 연간 맑은 날이 국내서 가장 적고 안개일수가 많은 것을 이유로 들었다. 종합적으로 보면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울릉도의 기상 조건을 충분히 검토한 후 활주로 길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밖에도 경북도가 현재 협의 중인 울릉도 취항 예정 항공기 경우 항공사 매뉴얼에 따르면 최대 이착륙 중량기준에 길이가 미달한다고도 했다. 울릉공항 활주로는 2015년 국토부 울릉공항 기본계획에 의해 결정돼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활주로 1200m가 계획된 것은 도서공항 특화모델 기준과 국내 소형항공사 기준이 최대 50석 규모 항공기로 제한 된 때문이다. 그러나 국토부가 2020년 규제혁신 심의회에서 소형항공사의 기준을 운용 항공기의 최대 좌석수를 50석에서 89석으로 확대함으로써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 문제도 자연 제기됐다. 당시 경북도도 80석 비행기로 확대에 대비한 연구용역도 벌였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은 여러 곳에서 필요성이 제기된 문제다. 소형 비행기일지라도 이착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공항 활성화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이다. 특히 관광수요가 제한을 받아 공항 관리비가 나오지 않는 경제성 부분도 검토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울릉공항은 울릉주민의 정주여건 개선뿐 아니라 국토안보와 관광수요 진작 등 다목적 사업이다. 무안공항 사태로 지방공항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이 크다.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도 안전성을 전제로 재검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합당하다.

2025-01-12

카터 장례식에 모인 대통령들

우정구 논설위원 미국 제39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장례식은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 만했다. 지난 9일 워싱턴DC 국립 대성당에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근래 보기 드물게 전·현직 미국 대통령 다섯 명이 참석하는 이색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비롯 조시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까지 정파를 초월해 모여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AP 통산은 “극도로 분열된 미국 정치에서 목격된 이례적 모습”이라 보도했다. 특히 현장에서 목격된 전·현직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화제거리였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공화당 상징색인 붉은색 넥타이 대신 민주당 상징인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트 당선인이 상당시간 미소를 지으면 대화하는 모습도 언론사의 취재거리였다. AFP통신은 이를 두고 “전·현직 대통령이 국장에 모이면서 분열된 미국에 국민적 통합의 순간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했다. 또 일부 언론은 “세상을 뜬 카터가 살아 있는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특별하다. 장례식날이 곧 국가 애도의 날이다. 미국 증시도 이날은 하루 휴장을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자리에 참석한 전·현직 대통령이 정파나 이념을 떠나 한마음으로 고인을 존경하니 장례식장은 울음보다 웃음이 더 많은 축제장처럼 변했다고 한다.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정치는 언제쯤 품격있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1-12

겨울철 불청객 블랙아이스

우정구 논설위원 불청객(不請客)이란 오라고 청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찾아오는 손님을 이르는 말이다. 반갑지 않은 손님의 대명사다. 계절마다 불청객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꽤 있다. 봄철에는 황사나 졸음운전, 여름철에는 식중독과 태풍 등이 이것에 해당한다. 가을철에는 밤낮의 기온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생기는 안개가 불청객이 된다. 특히 안개는 산간지방 교통사고의 큰 원인이 되면서 운전자들이 만나기 싫어하는 불청객이다. 겨울철에는 동상이나 블랙아이스 등이 불청객 대접을 받는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봄철에 자주 발생하는 졸음운전은 예상밖에 음주운전보다 더 많은 교통사고 피해를 내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지난 5년동안 졸음운전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는 무려 1만 건을 넘는다. 사망자도 300여 명에 이르러 음주교통 사고의 2배 수준이라 한다. 올 겨울 들어 가장 강력한 한파가 닥쳤다. 도로 곳곳이 결방 위험에 노출되면서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블랙아이스란 도로 표면에 얇은 얼음막이 생기는 현상이다. 도로 위에 생긴 살얼음을 이르는 말이다. 얼음 자체는 검지 않으나 블랙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스팔트 색이 얇은 얼음에 투과돼 보이기 때문이다. 블랙아이스는 다리 위, 터널 출입구, 그늘진 도로, 산모퉁이 음지 등에 잘 생기며 운전자들에게는 쉽게 분간이 안돼 대형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 작년 11월 강원도 원주 국도에서 차량 53대가 연쇄 충돌해 11명이 다친 사고도 블랙아이스가 원인이었다. 겨울철 불청객인 불랙아이스에 대한 운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시기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1-09

각계서 들리는 경제 악화 목소리, 경청하라

중소기업중앙회가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 생활밀접업종과 제조업 등 소상공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상공인 경영실태 및 정책 과제 조사결과, 소상공인의 95%가 올해도 경영환경이 나쁠 것으로 전망했다. 55.6%는 작년보다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고, 39.4%는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 대답했다. 올해보다 좋아질 거란 긍정 대답은 5%에 불과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8일 발표한 KDI 경제동향 1월호에 의하면 KDI는 “우리나라 경제가 경기하방 위험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KDI는 “한국 경제는 생산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경기 개선이 지연되는 가운데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으로 경기하방 위험이 증대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KDI가 한국경제의 하방위험 경고를 언급한 것은 2023년 1월 이후 2년만이다. 작년 12월호에서는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는 정도의 표현을 썼지만 이달에는 하방경기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한국은행도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당초보다 0.2% 포인트 낮춘 1.9%로 전망한 바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위축된 가운데 내수시장은 오래전부터 꽁꽁 얼어붙었다. 헤일 수 없이 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폐업이 잇따랐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나타났지만 상당수 소상공인들은 취업의 어려움과 노후에 대비해 생계형 창업에 의존하고 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선 신세나 다름없다. 중기 조사에서 소상공인들은 올해 사업의 가장 큰 부담은 원자재비와 재료비 상승 등 고물가로 꼽았다.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인건비도 부담이 된다는 대답도 많았다. 대행체제의 정부지만 정부가 나서 한국 경제의 위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탄핵정국과 정치적 혼란을 빨리 수습할 여야 정치권의 비상한 결심이 필요하다. 지금은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경제문제 해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여야와 정부가 참여하는 국정협의체가 중심이 돼 경제계 각계에서 터져 나오는 경제악화 우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나라도 없다.

2025-01-09

무력충돌 뻔한데 ‘식물대통령’ 꼭 체포까지…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을 재발부 받은 공수처와 경찰의 영장 재집행이 임박하면서 공권력끼리의 무력충돌이 우려된다. 윤 대통령 체포를 위해 경찰은 최정예 대터러부대인 경찰특공대 투입을 고려하고 있고, 대통령 경호처는 소속 요원만으로 저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1차 영장집행 때와는 달리 경호처에 배속된 군병력은 국방부 반대로 투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야간에도 집행이 가능한 대통령 체포과정에서 양측 공권력이 정면충돌하면 그 후폭풍은 예상하기 어렵다. 대통령 관저 일대에서 시위중인 수만명 시민의 안전이 우선 걱정된다. 시위참가자 중에는 “총격전이 벌어지면 총알받이가 돼도 좋다”는 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6당은 9일 ‘제삼자 추천 내란특검법’을 발의해 다음주 본회의 표결에 부치는 일정을 검토하고 있다. 특검법 반대 당론을 결의한 국민의힘도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을 야당이 아니라 ‘제삼자 추천’을 통해 임명하는 방식으로 법안이 수정되면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20여 일의 준비기간을 거쳐 특검수사가 진행된다. 그렇게 되면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 윤 대통령 측도 그저께 공권력끼리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대안을 제시했지만, 공수처가 이를 일축했다. 윤 대통령 측이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하면 재판절차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공수처는 “적법 절차에 의해 발부된 체포영장에 따라 집행하는 시도를 계속하겠다”며 거절했다. 국회에서 특검법이 곧 발의될 예정이고 윤 대통령 측이 수사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면 응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는데, 공수처가 공권력끼리의 충돌을 무릅쓰고 꼭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체포해야겠다고 나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법사위 현안질의에서 한 야당의원이 “체포못하면 관을 들고 나오겠다는 심경으로 하라”고 하자, 오동운 공수처장이 “꼭 유념하겠다”고 했다. 섬뜩한 대화내용이다.

2025-01-09

포항이여, 5차 산업혁명 진원지가 되어라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대구와 경북이 위대한 이유는, 1870년 전기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과 1969년 컴퓨터 정보화 및 자동화 생산 시스템이 주도한 3차 산업혁명을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수용해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산업혁명으로, ‘초연결·초지능·초융합’이 핵심 키워드다. 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기술, 드론,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이 주도하는 산업혁명으로,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의장이었던 클라우스 슈밥은 “이전의 1, 2, 3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적 환경을 혁명적으로 바꾼 것처럼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동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4차 산업혁명 원조는 독일이다. 그러나 미국이 독일의 ‘인더스티리 4.0’을 가져다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하고, 세계 경제포럼의 대대적인 행사와 저서를 통해 원조 행세를 해왔다. 모든 산업혁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산업주도권을 미국에 뺏긴 EU는 “보다 따뜻하고 지속가능하며 인간과 자연을 위한 산업혁명 철학과 관점”에서 2020년부터 ‘5차 산업혁명’을 본격 제기하고 있다. 논의의 초점은 4차 산업혁명 빛에 가려진 우울한 회색빛 그림자를 ‘그린(Green)’의 생명력으로 치유하여, 우리 모두와 지구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5차 산업혁명 논의는 이제 시작단계다. 지구환경보호를 위해 지속가능성이 고려돼야 하고, 생산프로세스에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새로운 기술개발보다는 인간행복 관심에 중점을 둬야 하며, 산업생산에서 높은 수준의 견고한 사랑과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프라를 제공해야 함을 강조한다. 지속가능성·인간 중심·탄력성을 3대 핵심요소로 한다. 유럽위원회가 밝힌 인더스트리 5.0의 6대 기술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별화된 인간·기계의 상호작용 △생물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 및 스마트 재료 △디지털 트윈 및 시뮬레이션 △데이터 전송, 저장 및 분석기술 △인공지능 △에너지 효율성, 재생에너지 및 저장을 위한 기술이다. 여기에서 한국에서 발전가능성이 높고 치고 나갈 수 있는 분야는 ‘생물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청색기술)’이다. 우리 앞에 4차 산업혁명이 달려가고 있고, ESG혁명이 압박하고 있고, 5차 산업혁명이 추격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경제포럼이나 다른 나라가 5차 산업혁명을 추진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EU에서 5차 산업혁명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고, 국가는 자국이해관계 따지며 저울질하고 있지만 세계 지성들은 인류문명의 올곧은 전환을 위한 지름길로 인정하고 있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매가 지상의 먹이를 발견하면 전속력으로 수직낙하 하듯 돌진해야 한다. 아무리 보아도 포항이 적격·적소다. 포스코와 포항공대 때문이다. 국내에는 얼마 전 ‘인더스트리 5.0’책자를 발간한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등 10여 명의 전문가가 있다. 포항을 ‘5차 산업혁명 특구’로 선포하자. ‘청색기술 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돌파구와 활력을 찾아주자. 이제 우리도 선진국의 산업 기준을 따라가는 국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준을 창조하는 국가로 변신해야 할 때가 왔다.

2025-01-09

을사년에 바라는 것

윤영대 전 포항대 교수 새해는 돋았으나 예년과 같이 밝고 희망찬 아침이 아니다. 지난 연말 일어났던 제주항공 참사가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전국에 설치된 분향소에 밀려와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는 연말연시에 정치계의 계엄 잡음 또한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탓이다. 대통령 체포 명령이 5시간 대치 속에서도 성사되지 못하고 재차 시도를 계속하는 체포-사수의 공방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갉아내고 있으니 ‘새해답지 않은 새해’를 맞고 있는 심정이다. 이렇듯 나라가 두 쪽으로 나누어진 듯하니, 날씨도 두 쪽인 듯…. 소한(小寒) 집에 대한(大寒)이 놀러 왔는지 서해안엔 강풍과 함께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며 눈발이 날리고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이곳 동해안에는 건조주의보가 내려져 산불을 조심하라니 작은 나라가 이렇게 날씨마저도 갈라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안쓰럽다. 올해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이다. 천간(天干) 을(乙)과 지지(地支) 사(巳)는 각각 나무와 불의 기운을 상징하며 생동감과 도전을 의미한다. 또 뱀은 통찰력과 직관력을 가진 겨울잠 자는 동물이라 을사년은 ‘지혜로운 변혁 새로운 시작’으로 해석되니 그 잠에서 깨어나 나라를 바로 일으켜주었으면 한다. 세계보건기구 WHO의 앰블럼에는 지팡이를 감고 있는 뱀이 그려져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은 ‘치유의 신’, 불교계에서는 비와 땅을 관장하는 ‘풍요의 신’으로 여기고 있으니 올해에는 푸른 뱀의 기운을 받아 사회적 육체적 모든 병이 없어졌으면 한다. 마침 올겨울부터 호흡기 질환이 급격히 늘고 있어 가뜩이나 의료대란으로 인해 패닉 상태가 되어있는 전국 병원들이 포화상태를 염려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을사년의 기운으로 사라지길 바란다. 지난 6일 포항상공회의소는 신년인사회를 가졌다. 국내 사태로 인한 민생경제의 내리막과 트럼프 차기 정부가 벼르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으로 부의 양극화와 지방소멸 위기에 따른 저성장 진입을 우려하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올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회의는 태평양 연안 21개국에서 6천여 명의 경제인들이 참석하는 국제행사이니만큼 잘 계획하고 추진하여 세계로의 날개를 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는 꿈을 키우자. 또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국회의 예산 삭감으로 어려워진 듯하지만 우리 경북의 힘으로도 큰 고래가 물을 뿜어 올리듯 동해안 해저에서 석유가 솟아오르게 할 수 없을까? 어디 그뿐이랴. 1월1일부터 개통한 포항∼속초간 166.3㎞ 동해중부선 운행으로 동해안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푼다. 한반도 호랑이의 척추 위를 달리는 iTX 철마가 대구, 부산에서 업고 온 기운으로 울진 삼척까지 달려 새로운 동해안 시대를 열 것이며, 아울러 연말에 포항-영덕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포항은 동해의 중심으로 일어설 것으로 기대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포항시는 사자성어 ‘총화전진(總和前進)’을, 시의회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을 내걸었으니, 근래 철강산업의 부진으로 조금 위축되었을 산업역량도 회복시켜 보자.

2025-01-09

노인과 음식

노병철 수필가 장염과 식중독은 비슷하다. 설사와 복통, 구토와 발열이다. 노로바이러스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건 식중독이 아니라 장염을 말한다고 알면 된다. 식중독은 오염된 음식에 의해 발생하기에 살모넬라, 대장균 같은 독한 녀석들 이름이 나온다. 장염이나 식중독 구분은 병원에 맡겨놓으면 되고 우선 중요한 것은 상한 음식이나 비위생적인 음식을 아깝다고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에겐 절대적인 말이다. 젊을 땐 어느 정도의 균을 퇴치할 능력이 몸에 존재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면역력이 줄어 조금만 이상해도 탈이 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식중독균은 끓여도 죽지 않는다. 끓였다고 안심하고 먹다간 큰일 난다. 옛날엔 다 먹었는데 괜찮다고 우기지 말고 제발 젊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하면 된다. “한겨울엔 괜찮다. 옛날엔 다 먹었다.” 이런 말씀을 하던 어머니가 식중독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만큼 오래된 음식은 먹지 말라고 했건만 노친네 고집이 장난이 아니다. 버리기엔 아깝다고 먹은 음식 때문에 병원비만 수천 배 더 들어갔다. 돈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온 식구들이 병간호하랴 병문안하랴 난리였다. 자식들이 서울서 내려오고 부산서 올라오고. “엄마가 자식들이 보고 싶어 상한 음식을 억지로 먹었나 보다.”라고 동생들이 위안을 주지만 모시고 있는 우리 부부는 좌불안석이다. 어떻게 모셨으면 상한 음식을 엄마에게 드렸냐고 야단을 치는 것 같다. 특히 엄마를 모시고 있는 장남인 나는 집사람에게 더 죄인이 되고 만다. 집에서 엄마와의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제일 큰 문제가 위생 문제이다. 걸레 빨다가 음식 만지고 하는 통에 손녀들이 기겁한다. 청소도 하지 말고 음식도 하지 말라고 애원해도 들은 체 만 체이다. 냄비 태워 먹은 것이 열댓 개가 넘고 집안이 메케한 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을 정도다. 어머니 손맛은 자식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다. 주면 주는 대로 먹었던 시절. 즉 아주 익숙한 맛이란 뜻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의 음식 솜씨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나 역시 집사람 음식 솜씨를 잘 모른다. 신혼 때는 정말 이상한 음식을 먹으라고 들이민다고 생각할 정도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엄마 손맛에 익숙한 나로선 엄마한테 가서 좀 배워오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 우리 애들은 지네 엄마 음식 솜씨를 환상적이라 극찬을 하지만, 거의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나로선 어쩌다 먹는 집밥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진짜 그정도로 맛있다면 흑백요리사에 나갔을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엄마의 손맛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익숙한 맛이란 이야기이지 결코 맛이 진짜 있거나, 위생과 결부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상위에 놓인 된장찌개에 온 식구들이 입에 빤 숟가락을 넣던 시절은 지났다. 이젠 앞접시가 일반화된 시대이다. ‘꼰대’. 권위적인 나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은 항상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노인이라고 영국 BBC방송은 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소개하면서 풀이한 내용이다. 노인들도 이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시대정신에 맞게 사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2025-01-09

관저에 갇힌 대통령

홍성식 (기획특집부장) 관저(官邸)는 고위직 관리가 살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리해주는 집을 의미한다. 이전까진 청와대가 최고 권력자의 관저 역할을 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의 결정으로 청와대를 나와 서울시 용산구에 따로 관저를 마련해 살았다. 지난해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집행 무산, 연이은 영장 재발부 등으로 용산 대통령 관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관저 지척에선 탄핵 찬성, 탄핵 반대 시위대의 목소리도 뜨겁다. 첫 번째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두 번 실패는 없을 것’이란 태도로 재발부 된 영장 집행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대비해 윤 대통령 관저 인근엔 가시 돋친 철조망이 둘러쳐지고, 입구엔 대형 버스를 이용한 ‘차벽’이 들어섰다. 누군가가 들어가지 못하는 건물이라면, 안에 있는 사람 역시 갇힌 격이 된다. 외신은 앞 다퉈 이 소식을 자기들 나라로 타전 중이다. 국회에서 탄핵된 정부의 수장이 관저에 갇힌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 국민들은 답답하고 남우세스럽다. ‘어진 정치’의 중요성을 말했던 공자(孔子)는 “부끄러울 게 없다면 숨길 것도 없다”고 설파했다. 만약 공자가 살아있어 관저에 갇힌, 또는 숨어버린 한국 대통령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퇴근 후 보통의 주부들처럼 동네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고르던 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경호원을 따돌린 채 직접 오토바이를 몰아 연인의 집을 찾아간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의 ‘활짝 열린’ 태도와 당당한 행동이 부러워지는 요즘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1-08

TK공연계까지 확산된 정치권의 진영싸움

대구·경북지역에서 계획된 연예인 공연이 정치적인 이유로 취소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 연말 구미 이승환 콘서트에 이어, 대구 서구문화회관도 오는 25일 예정된 가수 JK김동욱의 공연을 취소했다. 시민들의 항의와 민원 때문이다. 캐나다 국적을 가진 JK김동욱은 지난 3일 자신의 SNS에 “대통령을 지키는 게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 공수처 WHO(누구)?”라는 글을 올리며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비판했다. 이어서 지난 5일에는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40%를 기록했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이건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염원”이라고 했다. 그가 언급한 지지율 40%는 아시아투데이가 지난 3~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다. 대구 서구문화회관 측은 “여기저기서 민원이 들어와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행사취소를 정중하게 요청했다”고 했고, 김동욱은 “공연 오는 분들의 민원이 아닌 외부 몇몇 선동꾼들의 시위협박으로 공연이 취소됐다”고 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연말 구미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가수 이승환 콘서트도 정치적인 이유로 취소됐다. 이승환은 비상계엄 사태 후 윤 대통령 탄핵에 공개적으로 찬성하는 목소리를 낸 연예인이다. 구미시는 관객 안전과 관련한 문화예술회관 운영 조례에 따라 공연 대관을 취소했지만, 이승환 측은 구미시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한 상태다.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이데올로기(이념) 논쟁이 벌어진 지는 오래됐다.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먹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진영논리 때문에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들이다. 특히 윤 대통령의 계엄선언 이후에는 온 나라가 좌우 진영의 전쟁터가 된 것처럼 이데올로기 논쟁이 치열하다.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연예인들이 가급적 지나친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시민들도 TV에서 연예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듯이 인기가수들의 공연도 가수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보면 된다.

2025-01-08

새마을운동의 국가 브랜드화… 새로운 도약을

새마을운동은 1970년 박정희 정부 주도로 시작한 지역사회개발 운동이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 자조, 근면, 협동을 새마을운동의 정신으로 내세워 낙후된 농촌지역의 주거환경 개선과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범국가적 사업을 펼쳐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정신을 실천한 운동으로 평가받으면서 농촌지방 개조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된다. 잘살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바른정신을 강조하는 정신운동으로까지 활동 영역이 넓혀졌다. 경북도는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2005년부터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20년째다. 현재까지 도는 전세계 16개국 78개 지역에 새마을 시범마을을 조성했다. 필리핀, 인도, 키르기스스탄 등 아시아 9개국과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7개국 등에 가난을 물리친 새마을 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경북도의 세계화 사업 전파로 각국에서는 실제적 성과를 낸 곳도 많이 있다.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는 물론 지방외교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북도는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이번에 경북도의 뜻이 반영돼 올해부터는 행안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함께 새마을 세계화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정부의 ODA(공적개발원조)사업 모델은 경북도가 추진해온 사업 모델을 그대로 전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새마을운동 태동지인 경북으로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얻은 셈이다. 새마을운동은 지역의 영남대학교에서도 전국 최초로 새마을대학원 강좌를 개설했다. 지금까지 총 73개 개도국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새마을 교육을 실시했다. 새마을학은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학문이다. 잘살기 위한 운동으로 성공한 새마을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학습과정이다. 경북의 새마을세계화 사업이 정부의 ODA 브랜드로 격상된 것을 환영하며 이를 계기로 새마을운동이 K팝처럼 세계적 브랜드로 알려지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2025-01-08

어둠에서 희망을

장규열 고문 시국이 캄캄하다. 밤이 깊어 앞이 안 보인다. 대통령이 직무정지된 상황에서 나라가 길을 잃었다. 할 일은 태산인데 국가가 표류하는 중이다. 국민의 불안과 좌절이 커져가는 이때, 어디에서 길을 찾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터인지 혼돈스럽다. 새해를 맞이하며 여느 때 같았으면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야 할 시기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희망은 멀리만 느껴지고 불확실과 두려움이 모두를 짓누르고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의 순간은 새 도약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나아갈 방향을 재정비하는 일이 아닐까. 누구보다 정치와 언론이 태도와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국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념과 당략에 얽매여 갈등과 반목만 반복할 때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회복시키고 안정된 일상을 찾도록 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의견과 가치를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위기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국민이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실수에서 비롯하였다. 실수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뿐 아니라 캐나다와 미국,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지도자의 성향이 문제로 나타난 일이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없는 일은 아니다. 과거를 통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짚어보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냉철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나라의 경쟁력을 지키고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현상만 유지해서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가 없다. 경제, 교육, 환경, 외교,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민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을 새롭게 세워야 하고 모든 정책이 국민 일상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희망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희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이자 원동력이다. 새해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사욕과 당리당략을 버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 작고한 지미카터(Jimmy Carter) 전 미국대통령이‘우리는 그냥 마구 섞인 잡탕밥(melting pot)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자이크(beautiful masaic)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 다른 생각, 다른 희망, 다른 꿈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사회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더 나은 미래는 서로 다른 성향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신뢰와 공감의 공동체를 세울 때 비로소 가능하다. 밤이 깊어도 새벽은 온다. 짙은 밤하늘에 별빛이 두드러지듯, 어둠 가운데 희망을 발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어지러운 혼란과 복잡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과 기대로 넘치는 내일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역사 가운데 증명했듯이, 오늘의 어둠이 내일의 광채로 살아 나기를 기대한다. 역시 희망이 화두다. 어둠에서 기어이 희망을 들어올려야 한다.

2025-01-08

장갑 한 짝

윤명희 수필가 오늘은 버스타고 출근한다. 어젯밤, 퇴근 후 지인들과 늦게까지 술자리를 즐긴 탓이다. 이미 출근시간은 늦었고, 버스는 한산하다. 내 차로 십오 분이면 도착할 사무실이 삼십 분이 지나도 아직 한참 더 가야 할 것 같다. 버스가 중앙시장에 정차했다. 시장의 아침은 번잡한데 버스에 오르는 이가 없다. 바쁜 내 마음과는 달리 운전기사는 문을 열어둔 채 정류장을 내다보고 있다. 검정비닐봉지를 든 백발의 할머니가 힘겹게 버스에 오른다. 한 발 오르고 다시 또 다른 발을 올린다. 걷는 걸음마다 바라보는 내가 숨이 찬다. “잠시만 잠시만요, 기사양반 내가 앉거든 출발 하세이” 손잡이를 꽉 움켜잡은 할머니가 당부한다. 계단에 발을 올리면서부터 운전석 바로 뒤의 의자까지 한 발자국씩 내 딛는 걸음걸이가 빙판길을 걷는 것 같다. 서너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가 멀기만 하다. 겨우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손에 든 검정비닐봉지를 발치에 놓는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할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깜짝 놀란 운전기사가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다. 할머니는 손가방이 없어졌다며 빈손을 들어 허둥거렸다. 운전기사가 황급히 핸드브레이크를 당겼다. 그는 할머니에게 가만히 앉아있으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으며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정류장 의자 밑까지 가방을 찾아보는 그를 내다보았다. 운전기사 아저씨가 어디서 잃어버렸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조금 전까지 있었다며 검정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며 헤쳐 보았다. 작은 손가방을 발견한 그녀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했다. 나는 못 본 척 눈을 반쯤 감고 있는데, 내 뒷좌석에 앉은 남자가 쥐어박을 듯이 혀를 찼다. 할머니가 차에 오를 때부터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연신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혀를 찼던 남자다. 마지막 ‘에잉!’까지 따라붙는 남자의 말투에 속이 뒤틀렸지만, 어떤 사람인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저 할머니의 모습이 나의 내일인 것 같은데 혀까지 찰 일인가. 얼마 전, 친구와 시골길을 걸었다. 추수를 끝낸 들판은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햇볕이 모인 논둑 밑에 한 무더기의 들국화가 보였다. 소담스러운 모습을 지나칠 수 없었다. 쪼그리고 앉아 내려보다가, 서리라도 내리면 시들어버릴 들국화에 욕심이 생겼다. 치맛자락을 모아 움켜쥐고 조심스레 내려가려 하자, 친구가 나잇값을 하라고 했다. 괜히 엎어지는 불상사를 만들지 말라는 말에 나는 바지만 입었다면 폴짝 뛰어내릴 수도 있다고 장담했다. 큼지막한 돌을 밟고 내려가면 될 것 같아 살짝 왼발을 내렸다. 몸의 무게가 오른 다리에 실리자 무릎이 시큰거렸다. 삼십 몇 년 전에 다쳤던 무릎이 요즘 말썽이다. 불편한 발을 먼저 내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오른 발끝이 돌에 닿는 순간이었다. 나는 논바닥에 가오리 엎어놓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의 경로는 기억에 없다. 왜 넘어졌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천천히 가고 있었다. 논바닥에 뺨을 붙인 채 일어서지를 못했다. 친구의 부축에 겨우 일어난 나는 비틀어진 안경보다 얼얼한 오른쪽 광대뼈에 먼저 손이 갔다. 얼굴에 상처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긁힌 무릎에 붙은 흙을 쓸어내리며 논둑을 쳐다보았다. 저 높이에 내가? 허방을 짚은 것도 아닌데? 치맛자락에 도깨비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친구는 가시를 떼어내며 걱정스레 살폈다. 바위를 이리 저리 뛰어넘으며 산을 오르던 순발력은 이미 나를 떠나고 없었다. 몸은 세월의 눈금만큼 정확하게 가고 있는데, 내 마음은 그 몸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이젠 우리 나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유리조각이 되어 가슴에 빗금을 그은 날이었다. 버스가 서자, 혀를 차던 남자가 일어섰다. 나는 눈을 지그시 뜨고 그 남자를 곁눈질로 훑어보았다. 정수리가 휑한 그도 한발 내리고 또 한 발 옮긴다. 창밖을 내다보니 굽은 등이 허정거리며 가고 있다. 내 눈길이 따라간다. 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하자, 갑자기 그가 돌아서서 허우적거리며 뛰어왔다. 장갑 한 짝을 든 손을 휘휘 저으며 ‘장갑, 장갑’이라고 외쳤다. 뒤돌아보니 그가 앉았던 자리에 한 짝이 놓여있다. 던져줄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버스가 천천히 달렸다.

2025-01-08

몽주, 두루두루 넓은 꿈

나는 불후(不朽)를 생각하지 않았다 풀잎 끝 이슬이 곧 햇살에 추락해도 맑고 고운 뜻은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거친 바람과 빗속에서도 사람의 길을 지키고자 했다 약발 다한 왕조의 귀퉁이에서 버리면 산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징검다리가 되어 나 하나의 희생으로 명분이라도 생긴다면 참 즐거운 일, 운제산 기상이 훗날까지 이어지고 형산강 물길이 동해에 퍼지듯 사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구나 혹은 그럴 수도 있구나 반추하면서 나, 몽주, 꿈을 두루두루 펼쳐 세상이 아름답기를, 그 누구도 불후를 꿈꿀 수 없다 그래서 불후가 된다. 몽주 어른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정치는 잡놈들이 하는 짓이다. 그런데 몽주를 영천에서도 팔고 용인에서도 판다. 세상살이가 그런 것이니 생각하면, 더욱 아득하다. 두루두루 넓은 꿈을 펼치기에는 세상은 협소한 비탈길이다. 버티고 살아야 한다. /이우근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1-08

인체를 교정하는 상체 운동법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현대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자세 변화는 특히 상체에 심각한 건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무거운 머리가 척추 꼭대기 위에 위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로, 중력을 가장 적게 받으려면 척추 중앙에 머리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앞으로 빼서 일을 하며, 이는 육체 노동자는 물론 사무직과 학생들에게도 해당된다. 목이 앞으로 빠진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앞으로 굽어지고 등도 굽어진다. 흔히 말하는 일자목과 둥근 어깨, 굽은 등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운동으로도 편향된 근육만 발달해 상체가 굽을 수 있다. 등이 굽으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앞으로 쏠리게 되는데, 이런 자세로 어깨를 많이 쓰면 어깨 쪽에서 충돌이 일어나 회전근개 근육이 파열되거나 석회가 생길 수 있다. 어깨 문제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온 거북목과 일자목은 디스크의 압력을 증가시키고, 편향되게 경추에 힘을 가중시켜 신경 뿌리가 나오는 구멍이 좁아지고 염증이 생겨 팔이 저리게 된다. 이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뼈가 닳아 영구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자세를 바로잡고 치료를 해야 한다. 등에는 오장육부가 모두 붙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자율신경이 흉추에서 나와 각 오장육부로 연결되어 있어 등이 굽은 사람들은 이 오장육부의 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소화기 문제가 가장 흔하며, 심하면 불면이나 화병 같은 정신 질환까지도 연관이 있다고 보고된다. 따라서 등과 어깨를 펴고 목을 바로 세우는 운동을 하는 것은 정신과 오장육부까지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운동은 간단하다. 뒤통수에 깍지를 낀 후 양 팔꿈치를 쫙 펴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깨가 벌어지고 펼쳐진다. 이때 등도 바로 세우면서 가슴을 펼쳐주면 등과 어깨 모두 활짝 열리게 된다. 한 번 더 가슴을 살짝 위로 올려주는 동작을 취해주면 더욱더 가슴이 열리고 등과 어깨가 펴진다. 단, 깍지를 당겨 목을 앞으로 당기는 것은 일자목을 심화시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목은 턱을 살짝 당겨 앞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간 날 때마다 10회에서 20회 정도 반복해 준다. 그리고 벽 짚고 팔굽혀펴기를 해야 한다. 남성들은 정자세로 팔굽혀펴기를 해도 되지만, 근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치료가 잘 되지 않고 치료 기간이 길어진다. 근력이 충분한 사람과 부족한 사람은 질환이 있을 때 치료 효과에 차이가 있으므로, 상체의 근력을 키워놓는 것이 중요하다. 벽에 양팔을 어깨너비만큼 벌려 손을 짚은 후 팔굽혀펴기를 하면 된다. 이때 턱은 살짝 당겨 목이 앞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힘이 없는 사람은 벽에 가깝게 붙어서 5회에서 10회 정도 한 후 잠시 쉬고 다시 반복하면 된다. 힘이 붙으면 벽에서 조금씩 떨어져서 하면 된다. 근력을 붙이면서 치료를 하면 치료 효과가 눈에 띄게 좋아진다. 아프지 않더라도 상체의 자세를 바로잡고 약간의 근력을 키워주면 정신과 오장육부 건강이 좋아지므로,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운동과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2025-01-08

일상의 고마움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아침 7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인터넷 강의를 듣느라 새벽에야 눈을 붙였다. 몸이 찌뿌둥해 좀더 잘까 하다가 일단 일어난다. 두유라도 만들어놓고 눈을 더 붙여볼 수도 있다. 흰콩과 검은콩을 섞어 둔 통에서 계량컵 3개 분량을 담아 살짝 물에 씻어 두유기에 넣는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을 동안에도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다. 전원을 켜 두유를 선택하여 누른다. 32분이 지나면 두유가 완성될 것이다. 그동안 다시 침대로 가 몸을 누일까. 생각해 보니 찐달걀이 없다. 냉장고에서 달걀 6개를 꺼내 물에 씻어 달걀찜기에 올려 전원을 켠다. 13분 뒤면 다 익을 것이다. 냉동실에서 통밀빵 한 조각을 꺼내 에어프라이어에 넣는다. 며칠전 만들어 둔 양배추 당근라페와 그릭요거트도 꺼내 식탁 위에 올린다. 그 사이 몸은 그런 대로 괜찮아진다. 30분 뒤 남편을 부른다. 강아지도 남편의 무릎 위에 앞다리를 얹는다. 오후 2시 30분. 범어초등학교. 돌봄교실 인터폰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아이 둘을 데리고 나오신 선생님께 손을 가지런히 배꼽 위에 얹고 고개를 90도로 숙여 공수인사를 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나도 선생님께 답례를 하고는 달려오는 아이들을 맞는다. 팔을 크게 벌리고 있으면 손자가 먼저 폭 안긴다. 땀냄새가 짙다. 농구했구나. 응 할머니 오늘은 우리 편이 이겼어. 나도 한 골 넣었어. 우와 잘했네. 그 사이 다가온 손녀의 손엔 과학시간에 만든 뭔가가 들려있다. 할머니 오늘은 냄새 없애는 거 만들었어. 발에 뿌리면 냄새가 없어져. 향기도 나. 아빠에게 주려고 해. 할머니도 뿌려 줄까? 손에도 닿아도 괜찮대. 글리세린을 넣었어. 근데 만들 때 좀 쏟았어. 나만 아니고 다른 애들도 다 조금씩 쏟아서 선생님이 닦아주셨어. 아이들 등의 가방을 빼 든다. 꽤나 무겁다. 이 깊은 겨울까지도 몇 개씩 달려있던 플라타너스나뭇잎이 떨어져 인도에 나뒹군다. 아이들은 제 발보다 더 큰 나뭇잎을 찾아 밟는다. 워석버석 소리를 내면서 바스러진다. 그것도 놀이다. 내가 밟은 나뭇잎이 더 커. 아니야, 내 나뭇잎이 더 크고 소리도 컸어. 크리스마스가 지난 뒤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을씨년스럽다. 내 생각을 읽었나 손자가 한 마디 한다. 할머니 밤에 나오면 참 아름다워. 우리집에 있는 것보다 크고 더 많이 반짝거리거든. 밤 10시. 또 울리는 알람. 붓글씨 쓰는 시간. 한 장을 다 쓰면 등줄기에 땀이 느껴진다. 몸쓰는 일보다 더 힘든가 보다. 이 루틴을 올해는 지키려 애쓴다. 토요일 아침 10시. 스포츠센터 수영장. 손녀와 매주 같이 다닌 지 석 달째다. 내가 수영 다녀 보니 부자나 모녀가 같이 오는 게 좋아 보여 며느리에게 권유했다. 바쁜 며느리 대신 내가 손녀를 데리고 다닌다. 대충 씻겨 수영복으로 갈아입히면 제 먼저 들어간다. 노인들이 대부분인 레인에서 수영하면서 힐끔힐끔 손녀를 찾아본다. 발차기도 하고 머리를 물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이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다. 우리가 수영장에 있는 시간에 남편은 손자를 데리고 축구교실에 가 있다. 힘들지 않냐고 누군가 묻는데 천만의 말씀. 이 즐거움과 고마움을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 한다. 애들이 더 크기 전에.

2025-01-08

비트코인과 민주주의

최진승 가상화폐 전문가 발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도 시민들은 질서를 잃지 않았다. 마주 오는 이들을 향해 격려의 인사를 건넸고, 통행이 막히는 곳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천천히”를 외쳤다. 유모차를 끌고 온 이 옆에서는 “유모차”를 외치며 함께 길을 터주기도 했다. 거대한 용광로 같은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질서있게 입장하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한겨울 눈발 속에서도 행렬은 멈출 기미가 없다. 비상계엄 여파는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염원을 멈춰 세우진 못했다. 지난 한 달 간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은 아득히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가는 시민들의 모습 역시 극적이여서 그렇다. 마치 우리 국민 모두가 한순간에 이세계로 소환되어 허무맹랑한 마법을 풀어가는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린 동료를 얻기도 하고 때론 적들과 마주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도 한다. 우리 국민들이 또 한 번 레벨업을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최근 우리의 정치 상황은 비트코인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강렬한 내러티브를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비트코인은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자산 순위 7위에 올랐다. 은의 시가총액(9위)을 넘어선 수준이다. 1위인 금의 시가총액에는 여전히 못미치지만 비트코인 탄생 15년 만에 이룬 성과 치고는 괄목할 만한 것이다. 짧은 역사 속에서 비트코인 역시 갈등과 경쟁을 반복해 왔다. 비트코인이 특별한 이유는 은행과 같은 중앙기관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아닌 네트워크 참여자들에 의해 유지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거래내역을 담은 블록들이 네트워크 상에서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참여자들은 경쟁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대가로 비트코인을 얻는다. 이러한 구조는 특정 운영 주체가 없기 때문에 분산원장이라 불린다. 분산원장이라고 해서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정해진 규칙(Protocol)을 따라야 한다. 이 규칙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도 있어 왔다. 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참여자들의 동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그룹들이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경쟁과 분열의 과정을 거쳤다. 민의(民意)를 반영하기 위해 정당 간 경쟁하는 민주주의 절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에서 경쟁적으로 블록을 생성하고 연결할 때 작동하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가장 긴 체인(Longest chain)을 유효한 것으로 채택하는 규칙이다. 이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가장 긴 체인을 통해 표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가장 긴 체인은 가장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쟁적 에너지 소비야말로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참여자들의 ‘선의’를 가리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를 ‘작업증명’(Proof of Work)이라 부른다. 민주주의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다. 다만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비트코인의 작동 원리는 토론과 경쟁을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상통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트코인은 프로그램 된 규칙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에 없고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가장 긴 체인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일 것이다. -(현)두코미디어 전략기획 이사 -전 씨엘모빌리티 전략기획부 책임

2025-01-07

TK의원들 집단행동, 보수결집에 도움될까

계엄사태 이후 침묵을 지켜왔던 영남권 여당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은 지난 6일 새벽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열린 탄핵반대 시위에 합류했다. 대구에서는 최은석(동군위갑)·강대식(동군위을)·권영진(달서병)·이인선(수성을)·김승수(북을) 의원과 비례대표 김위상·이달희 의원이, 경북에서는 이상휘(포항남·울릉)·임이자(상주·문경)·이만희(영천·청도)·송언석(김천)·임종득(영주·영양·봉화)·조지연(경산)·김정재(포항북)·강명구(구미을)·구자근(구미갑)·김석기(경주) 의원이 참석했다. 대구경북(TK) 의원들이 대거 집회에 참석한 주된 이유는 지역구 민심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TK지역에서는 “체포만은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급락했던 여당 지지율이 최근 상승하고 있고, 공수처를 둘러싼 수사 적법성 논란이 격화하고 있는 것도 영남권 의원 결집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영남권 의원들의 결집을 보면서, 당내 비주류인 친한(한동훈)계와 수도권 당협위원장들이 “비상계엄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은 국민 눈높이에 맞춰 ‘계엄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 급선무인데 윤 대통령 체포반대 집회에 의원들이 몰려다니는 것이 민심을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내 갈등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고민도 커지게 됐다. 권성동 원내대표가 “관저 앞 집결은 개인행동”이라고 못박은 것도 당내 갈등을 우려한 측면이 강하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어깨가 한층 무거워졌다. 야당의 폭주를 막으며 탄핵정국을 돌파해야 하는데다, 조기대선에 대비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외연확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이 새로 태어난다는 각오로 ‘당 정체성’을 재정립해서 현재의 지지율 상승세가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