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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충격과 우리의 태도

등록일 2026-01-07 18:26 게재일 2026-01-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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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본사 고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법을 근거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해 간 사건은, 오늘의 국제질서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강대국이 자국법을 앞세워 타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용인되는 순간, 국제법은 규범이 아니라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이 장면이 주는 충격은 베네수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와 중국 같은 강대국들에게 이는 불편한 경고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유혹이 된다. ‘미국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언제나 국제질서를 무너뜨린다.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단지 지정학적 분쟁지가 아니라, 규칙의 기반질서가 유지되는지 시험하는 최전선이 된다.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외국 정상의 신병이 다자국제적 합의가 아닌 일방의 법 해석으로 확보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체제생존의 보증수표로 더욱 굳게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비핵화 담론을 다시 한번 공허한 수사로 밀어낼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실체화되고 구조화되는 현실 속에서, 한국의 외교는 점점 더 좁은 외줄 위를 걷게 된다.

미국은 동맹국에 ‘가치적 연대’를 요구하고 중국은 각국에 ‘전략적 자율’을 압박한다.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어느 한쪽의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순간, 한국은 외교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중국 방문의 성패는 정상회담의 의전이나 공동성명 문구에 있지 않다. 핵심은 한국이 국제규범과 주권존중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든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침묵하면서 중국의 힘의 외교만 경계한다면, 우리의 외교는 설득력을 잃는다. 중국의 수사에 동의하면서 미국의 압박을 무시해도 우리의 외교는 설 자리를 놓칠 수 있다.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성장해 갈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원칙과 규범이 필요하다. 법과 절차, 다자주의는 약소국의 이상이나 소망이 아니라 존재확인이자 생존전략이다. 중국을 방문한 대통령이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제질서는 힘이 아니라 상생과 공영의 원칙 위에 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일관성과 상호신뢰의 출발점을 확고하게 설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이해에 우호적으로 반응하면서, 동시에 다자외교가 빚어내는 상생과 협력의 틀에 주목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 원칙과 규범의 울타리가 작동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걸어야 할 길은 분명하다. 어느 편을 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에 서느냐의 문제다. 원칙이 무너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나라는 언제나 우리처럼 경계에 선 나라들이었다. 한국은 지난 수백 년 경험을 통하여 그 운명과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장규열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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