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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8

`先行-後言`으로 이끈다면 통하겠죠

김정기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경북 영천이 고향으로 알려진 김정기(55)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은 사실 대구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구 종로초등학교와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이후 미국 뉴욕대학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 석사와 한양대에서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공직은 대학원 재학때 행정고시에 합격, 문교부 사무관으로 출발해 교육부 총무과장, 경북도교육청 부교육감,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 교육부 평생학습국장, 평생직업교육지원국장 등을 거쳐 선문대 부총장으로 있다가 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근무했으며, 지난해 9월 3년 임기의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부임했다.김 이사장을 만나 고향에 대한 추억과 교직원공제회의 현안 등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주법관 꿈꾸던 소년 행시에 합격30년간 교육 공직자로 `열과 성`“교육정보화 계획 입안 가장 보람”인터뷰를 위해 김정기 이사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맞은편 정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친필휘호가 눈에 들어왔다. `교직안정, 대통령 박정희 1971년 7월1일`이라고 쓰여 있었다.김 이사장은 “교직원 공제회가 출범한 해에 쓰여진 글씨로 부산 어느 고서점에서 발견됐는 데, 생활안정과 복리증진의 교직원 공제회 정신과 맞아떨어지는 휘호라고 생각해 집무실에 걸어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박 전 대통령의 글씨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다소 색이 바래고, 얼룩졌지만 아직도 서체에서는 힘이 넘쳐보였고, 교원들의 복지증진에 대한 김 이사장의 결의도 한층 굳게 느껴졌다.지난해 교직원공제회 수장 맡아`윤리경영` 원칙으로 창의적 수행“고향인재 아낌없이 지원하고파”-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어릴 때는 법관이나 대학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30년 교육부 공직자 생활을 마감하고 보니,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을 받고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직장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어릴 적 희망과 궤적이 비슷한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향에서 지낼 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나는 사실 태어 난 곳도, 유년시절과 초·중·고등학교를 마친 곳도 모두 대구다. 그러나 지금도 고향을 물으면 경북 영천이라고 말한다. 백부님이 고향을 지켰고 아버님이 대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영천에서는 살지는 않았지만, 매년 정월 초하루 제사를 지내거나 여름방학이나 시월 집안 묘사에는 늘 아버님을 따라 영천 청통면 원촌동 백부님 댁에서 사촌들과 같이 뛰어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또 은혜사 본당 마당과 운부암, 백흥암에 들러 사촌들과 놀았던 일들도 즐거운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각인돼있다.-중학교와 고교때 남다른 취미활동이나 특기가 있었나. 있다면 어떤 것인가.◆고등학교때 농구를 좋아해 주위가 어두워져 농구골대의 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친구들과 농구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또 고등학교 재학때 청심학술토론회라는 서클에 가입해 활동한 것이 추억으로 떠오른다. 열정과 순수성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서 열을 올리며 학술토론을 벌였던 일이 새삼스럽다. 당시 서클 선배나 동료 후배로는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 곽성문 전 국회의원, 장병수 롯데 홍보이사,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 엄동섭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원장 등이 있다.-학교 졸업후 공직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서울대 1학년때 교양과정부에 소속돼 인문, 사회, 교육계열이 함께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학문계열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교유를 하게 됐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등 성과를 내는 것을 보고 경쟁의식이 발동했다. 교직보다 더 넓은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서 행정고시에 도전하게 됐다. 결국 대학원 1학년때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교육부에 근무할 때 보람있었던 일을 소개한다면.◆교육부에 근무할 때 교직발전종합대책을 세워 연구휴직제 등을 만들어서 시행한 일, 정보화기획관으로 오랫동안 하면서 초·중·등 교육정보화 5개년계획, 대학정보화 5개년계획 등을 입안했던 일이 보람 있었다. 또 갈등은 있었지만 로스쿨도 내가 주도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경남을 하나 더 주라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난감해했지만 “지금 흔들면 다 무너집니다”하며 버텼다. 또 하나 교육정보화시스템인 나이스시스템을 계획하고, 구축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그 뒤 전교조가 이를 문제삼아 다소 시끄럽긴 했지만 공직자로서 보람있었던 순간들이었다.-청와대 교육비서관으로 재직했는데,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지난 2008년 촛불사태 이후 제 2기 청와대 비서진으로 정진곤 한양대 교수가 교육문화수석으로 임명되자 교육부를 잘 알고 교육정책에 대해 보좌할 비서관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당시 선문대 부총장으로 있던 내가 추천돼 비서관으로 들어가게됐다.-평소 생활할 때 좌우명이 있다면.◆행정고시 합격후 수습할 때 일이다. 경제부처 2개월 비경제부처 2개월 도청·군청 등도 포함해서 1년정도 순환근무를 하게 되는데, 나는 경산군에 근무했다. 당시 경북도 기획관이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한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그 선배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잊지마라`고 했다. 그때는 웃어넘겼는 데, 공직생활을 해보니까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아 좌우명으로 삼고있다. 집에서는 `상경하애(上敬下愛)`를 가훈으로 삼고있다.-한국교직원공제회를 소개한다면.◆한국교직원공제회는 모든 교직원들이 재직 중에는 물론 퇴직 후에도 교직의 보람과 생활의 풍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지난 1971년 특별법으로 설립된 교직원복지기관이다. 설립 당시 회원수 7만명, 자산 13억원에 불과했던 공제회는 이제는 회원수 61만명, 자산 18조원, 그리고 9개의 산하사업체를 보유한 국민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교직원공제회의 현안이 있다면 무엇인가.◆무엇보다 금융사업 및 개발사업 부문의 수익 극대화가 최대 현안이다.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 투자를 비롯해, 인천신공항고속도로, 부산거제간 연결도로 등 SOC 사업, 대규모 부동산 사업, 해외투자 사업 등 투자선 확대를 통해 장기 안정적인 수익원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는 총 투자자산을 12조6천억원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금융사업부문에 9조원, 개발사업부문에 3조6천억원을 운용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중 총 자산규모가 2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남다른 각오나 감회가 있다면.◆지난해 9월 취임하면서 `윤리경영`을 가장 중요한 경영원칙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회원들과 국민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기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공제회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해 나갈 생각이다. 옛 성현의 말 가운데 `선행기언(先行其言) 이후종지(而後從之)`이란 말이 있다. 바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먼저 실천한 후에 그것을 말하라`는 뜻인데, 임기 동안 이 경구를 마음에 깊이 새겨 이사장으로서의 직책을 창의적으로 수행해 나갈 생각이다.-이사장으로서 가장 중점 추진하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가.◆창립 40주년을 계기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확고한 비전, 미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갈 새로운 가치,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도전적인 경영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1일부로 조직체계를 크게 바꾸고,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조직개편의 핵심은 크게 세가지다. △회원복지 기능의 강화 △미래전략실의 신설 △해외 투자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이사장으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취임 때 약속한 윤리경영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윤리경영, 준법경영이라는 굳건한 토대하에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통해 60만 교직원들의 생활안정을 확고하게 책임지고 격조높은 생활, 문화복지서비스의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리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다.-고향사람들에게 인사말을 한다면.◆30여년간의 교육부 공직생활 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고 고향발전에도 기여하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이제부터라도 고향발전을 위해, 특히 고향 출신 인재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돕는데 일조하겠다. 영천 출신 재경 향우들과 조그만 장학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재경 영천학사에도 자주 찾아가 인생의 멘토로서 학생들을 격려하고 지원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더 고민해 볼 작정이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11-04-08

경북의 정신문화를 찾아서 ⑪ 회재 이언적과 양동마을

`실천적 주자학` 영남학파의 주춧돌을 놓은 청백리 지난 해 여름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의 원래 이름은 양좌리(良佐里)이다. 양월리(楊月里) 왼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처음에는 `양좌(楊左)`라 했는데, 뒤에 어진 인물들이 많이 나와 `양좌(良佐)`로 바꿔 불렀다고 전한다.조선시대 양동이 배출한 어진 신하의 대표적인 인물로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과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있다. 외삼촌과 조카 사이인 이 두 사람은 양동마을을 양분하고 있는 대성인 월성손씨와 여강이씨를 대표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특히 이 가운데 회재는 조선유학사의 첫 번째 논쟁으로 주목받는 `무극(無極)·태극(太極)` 논변을 통해 당시 학술적으로 뿌리를 내리던 주자학의 실천적 성격을 명확히 함으로써 영남학파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조선유학사 첫 논쟁 `무극·태극` 논변으로 유명휼륭한 철학자에 강직한 선비·효 실천한 군자회재는 1491년 11월25일 외가인 경주 양동의 월성손씨 대종가 서백당(書百堂)에서 태어났다. 10여세를 넘기면서 외삼촌인 우재에게 글을 배우며 차츰 주자학에 대한 소양을 쌓기 시작하여 24세 때 문과에 급제했다. 급제 이듬해 고향인 경주에서 국립학교 교수에 해당하는 주학교관(州學敎官)을 지내면서 주자학에 대한 탐구에 매진했는데, 망기당(忘機堂) 조한보(曺漢輔)와의 유명한 무극·태극 논변은 이처럼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던 젊은 시기인 27세 때 이루어졌다.주자학에서 `리`는 모든 만물이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근본이치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존재하게 하는 근본이치인 `사람의 리`가 있기 때문이며, 대나무가 다른 나무와 구분되는 것 역시 대나무를 대나무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대나무의 리` 때문이다. 요컨대, 어떤 사물을 그 사물답게 하는 이치가 곧 `리`인 것이다. 태극은 이런 모든 사물의 개별적 이치들의 근원이 되는 궁극의 이치를 가리킨다.`무극·태극` 논변의 핵심은 이러한 태극의 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망기당은 태극은 모든 개별적인 `리`의 근본에 해당하기 때문에 초월적이며 고차원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태극인 `리`를 체득하기 위한 공부 역시 마음의 본자리를 중시하는 내면 공부를 통해야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하지만 회재는 망기당의 이런 생각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치를 깨우칠 것을 요청하는 주자학의 근본정신을 왜곡하는 것이라 여겼다.회재에 따르면, 세계의 궁극적 이치인 태극은 초월적이며 고차원적인 것 아니라 사람다움을 실천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구체적인 일상들을 통해 구현된다. 세상과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답고 신하답고 부모답고 자식답고자 하는 우리들의 도덕적 행위 하나하나 속에 태극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내면 공부에만 집중하면 안 되고 `다움`을 구현하려는 일상의 구체적인 도덕적 행위들을 병행해야 한다. `리`에 대한 회재의 이러한 입장은 뒤에 후배인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리`의 능동성을 중시하는 영남학파의 전통을 이루게 된다. 이 때문에 퇴계는 무극·태극 논변에 비친 회재의 입장을 유학적 진리의 참모습을 밝히고 거짓된 학설을 물리친 쾌거라고 높이 평가했다.회재는 철학자로서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훌륭한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옳음을 위해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선비였고, 집이 매우 가난하여 식솔이 굶주릴 때도 있었다고 명종실록의 졸기(卒記)가 전할 정도로 청렴했던 청백리였으며, 모친에 대한 효를 다함으로써 사람의 도리를 몸소 실천한 군자였다.40세 때 사간원의 사간으로 있으면서 당시 국정을 농단하던 김안로(安老)가 세자의 스승에 임명되려 하자 그가 소인(小人)임을 들어 반대하였는데, 이 일로 김안로 추종자들의 미움을 사 벼슬이 좌천됐다. 하지만 그런 뒤에도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은 탄핵을 받고 42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회재는 옥산(玉山) 자락에 독락당(獨堂)을 짓고 은거하면서 오직 학문과 수양에만 매진했다.이후 김안로의 실각으로 47세에 다시 벼슬에 나아간 회재는 홍문관제학과 경상도관찰사, 의정부좌찬성 등의 요직을 거치며 바른 정치를 위해 노력했다.그러나 중종 사후 이른바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의 권력투쟁으로 빚어진 어수선한 정국은 올바른 정치를 구현하려는 그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그 결과 양재역 벽서사건의 여파로 윤원형 일파에 의해 1547년 관직이 삭탈되고 평안도 강계로 귀양가는 비운을 맞는다. 회재는 귀양지에서도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 정진했는데, 현재 전하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저술된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학문적 성취와 달리 회재는 귀양지에서 7년을 보내다가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553년 11월23일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그러나 회재의 인물됨은 사후에 바로 평가받아 1560년 명종에 의해 관직을 복권됐다.이어 1568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이듬해에는 문원(文元)이라는 시호를 받고 명종의 묘정에 배향됐으며, 1610년에는 마침내 문묘(文廟)에 종사됨으로써 역사적 평가에 마침표를 찍었다./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회재 흔적 어린 향단과 무첨당회재는 효자였다.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중종이 병환중인 노모를 모실 수 있도록 건물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일화이다. 향단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지금도 양동마을 어귀에 서서 회재의 효성을 후대에 전한다. 양동마을에는 향단과 함께 회재의 손자인 이의윤(李宜潤: 1564 ~ 1597)이 할아버지의 학덕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는 삶은 살지않겠다는 뜻에서 당호를 정했다는 종택 무첨당이 있어 회재의 숨결을 후세에 전한다. 이웃 안강에 있는 옥산서원과 독락당 역시 회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이다.

2011-04-08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한국 전통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500여년 역사 자랑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민속마을. 전통 민속마을 중 가장 큰 규모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촌으로 손(孫), 이(李) 양성이 서로 협조하며 5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통 마을이다.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984년 12월24일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됐다.여강이씨의 문중에서 1560년경에 세웠으나 화재로 소실돼 1917년경에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해 양반가옥과 초가 160호가 집중돼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손소와 손중돈, 이언적을 비롯해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했다.마을은 안계(安溪)라는 시내를 경계로 동서로는 하촌(下村)과 상촌(上村), 남북으로는 남촌과 북촌의 4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이곳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해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 기와집과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호의 초가로 이뤄져 있다.양동마을은 수백 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져 있으며 와가와 초가 등이 한 폭의 동양화다.부채 살 같이 펼쳐지는 한옥의 멋. 마치 한복의 고운 선을 연상케 하는 담장들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집들의 조화는 가장 한국적인 멋스러움이다. 싸리문이 열리고 누군가 반가이 맞아 줄 것 같은 고향집 같은 온화한 분위기가 양동마을의 큰 특징이다. 이 초가집에서부터 물봉동산까지는 편안하며 여유로운 길이다.코스별 언덕위에서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사진 촬영 인기장소가 여러 군데 있다. 고목아래 보이는 기와집 옆 초가들은 옛날 기와집에 살던 양반들이 거느린 소작농이 살았던 집이라 한다.양동마을은 다른 여행지에서 느끼는 북적거림 없이 때 묻지 않은 마을풍경과 낮은 토담 길 사이를 걸으며 긴 역사의 향기를 넉넉하게 감상할 수 있다.최근 유네스코 등재 이후 다양한 체험코스와 유익한 유교 전통문화와 관습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어 역사여행을 겸한 가족여행지로 로 최적지다.사전에 마을의 배치와 답사 코스를 파악하고 문화재의 소재를 확인한 후 답사하는 것이 좋다. 단, 마을을 둘러볼 때는 집안에 살고 있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돌담길이 이어지며, 전통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으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해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주변에 이언적의 낙향지인 독락당과 장기갑등대박물관, 감포항, 동해 등의 관광지가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1-04-08

동해안 오징어 어획 41% 줄어

지구 온난화와 무분별한 남획으로 현대 어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UN 식량농업기구가 1950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 어업량을 조사한 결과 2050년에는 종의 9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판정됐다.갈수록 줄어드는 개체 수와 해양 생태계 변화 속에서 어업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문화의 길을 모색해 보자.중국 등 해외어선 남획이 가장 큰 원인“해양산업의 다각적인 변화 필요한 시기”미국 스탠퍼드대학과 캐나다 댈하우지대학은 공동연구에서 2050년 물고기가 사라질 것이란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지구온난화와 무분별한 수산물 어획이 그 원인이다.지난 1900년대 이후 지난 100년간 전 세계 해수 온도는 0.76도 증가했으며, 북극의 빙하는 10년당 2.7%씩 감소했다.이는 해양 어류들의 큰 변화를 가져와 생태계 파괴로까지 이어지는 실정이다.이미 생선과 조개류 등 일부 해양식물 29%가 준 멸종(Collapse) 상태에 일렀으며, 홍합과 대합, 참치, 황새치 등 일부 식용 생물은 이미 멸종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스탠퍼드대학의 스티브 패럼비 교수는 “이번 세기가 해산물을 맛보는 마지막 세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 특히 경북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가시화되고 있다.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동해안 대표적 어종인 오징어의 경우 지난해 총 어획량은 3천778t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6천366t에 비해 겨우 59% 수준에 머물렀다.어획량 감소는 어업인들에게 직격타로 작용한다.포항지역에는 과거 110여척(구룡포 70척·포항 41척)의 채낚기 어선이 오징어잡이에 나설 정도로 풍부한 어획량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80여척(구룡포 50척·포항 30척)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이 같은 위기는 무엇보다 최근 중국 등 해외어선들의 무분별한 남획이 가장 큰 원인을 관측된다.그동안 국내 오징어잡이 해외어장 진출은 지난 1999년 경북 영일수협(현 구룡포수협)이 러시아 측과 자체협의를 거쳐 어획 1t당 140달러의 입어료를 내고 36척을 만석으로 받아 냈다.하지만, 2004년부터 중국 어선들이 북한과 1척당 2만~3만달러의 입어료로 계약을 체결하고, 동해안 상류지역에 진출해 오징어는 물론 회유성 어종을 싹쓸이하면서 동해안 어업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한국해양연구원 동해연구소 김종만 박사는 “전체 어획량을 봤을 때 동해안 전역에서 어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공조어업 등 무분별한 불법어획이 가장 큰 문제다. 해양산업의 다각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조언했다./신동우기자beat082@kbmaeil.com

2011-04-07

“태권도 발상지 경주 위상 전세계에 각인 기회”

최병준 2011경주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조직위 상임부위원장 `2011경주WTF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임박했다. 특히 태권도의 철학적 배경은 화랑제도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경주가 본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국제대회가 경주에서 개최되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회 실무 총책임을 맡고 있는 최병준(55·사진) 조직위 상임부위원장은 성공적 개최를 위해 연일 혼신의 열정을 쏟고 있다. 130개국 이상 참여 `태권도 올림픽`지역 경제 활성화 등 유치효과 상당역대 최고 성공적 대회로 경주 홍보 ▲ 유치 배경은. 태권도의 메카로서 경주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태권도 발상지가 경주임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시절 2004년 태권도공원 선정에 있어 경주가 손에 넣었다가 놓친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 사실상 무주 태권도공원은 현대화된 시설 내에 공원으로서의 기능은 있으나 `역사성`이 없는 등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래서 경주가 태권도 발상지로 재확인하고자 유치하게 됐고, 전 세계에 경주 홍보도 병행하는 것이다. 향후 세계의 많은 태권도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를 대비해 무주태권도 공원과 연계해 경주에서 태권도의 성지순례 답사 등 많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주와 경주가 함께 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경주의 곳곳에 산재한 태권도와 관련한 역사문화 유적지를 세계태권도인들이 본다면 그들은 진정한 태권도의 발상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 향후 전 세계 태권도인들이 태권도 성지인 경주를 다시 방문할 것이다. 특히 참가 외국선수 및 선수단이 `경주 홍보대사`가 돼 자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태권도 발상지 경주를 다시 찾는 이중효과를 누릴 것이다. ▲경주 개최에 따른 시너지 효과와 참가선수단 규모는. 과거 경주시는 고대 신라의 역사를 바탕으로한 역사문화도시를 표방해 왔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 드린 바와 같이 이번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태권도 발상지 경주가 세계에 홍보가 되고 각인이 된다면 향후 많은 태권도인이 경주를 방문할 것이며, 스포츠 행사를 통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고, 스포츠 도시로 거듭 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참가국 규모는 130개국 이상이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각국 선수 및 임원 등이 참가해 열전을 펼치는 `태권도 올림픽`이다. ▲대회 연혁과 한국 선수단 구성은. 이번 2011년 4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대회는 제1회 서울에서 개최된 1973년 이래 2년마다 개최돼 20번째 개최되는 대회이며, 1987년 여자대회를 기준으로는 13회째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 선수와 임원진은 지난 3월 경남 고성에서 국가 대표팀 코칭스텝 및 선수단이 선발됐다. 전임감독은 김세혁 전 삼성에스원 감독이며, 선수는 박지웅(싱가폴 청소년올림픽 출전), 임철호(2009 동아시안 게임 1위), 이대훈(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위) 등 쟁쟁한 선수들이다. 한국 남자 대표팀 20회 연속 종합우승에 도전 중이며, 여자는 2009년 코펜하겐에서의 종합 준우승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종합 우승으로 이끌어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1999년 제14회 캐나다 에드먼튼 대회를 기준으로 한국팀의 성적이 다소 둔화된 양상으로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태권도인들은 이번 경주 대회를 계기로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 정립과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영구히 존치될 수 있는 확실한 인기와 흥행을 기대하고 있다. ▲시민과 전 세계태권도인에게 전할 말은. 이번 2011경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위해 대회조직위원회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한다 해도 시민 여러분의 `동참`없이는 실패한 대회로 전락할 것이다. 쾌적한 환경조성, 참가 국가별 서포터스가 돼주는 응원 문화, 친절하고 질서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 등 태권도 발상지 경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으로 손님맞이에 시민 모두가 동참한다면 역대 최고의 성공적인 대회로 치러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번 경주에서 개최되는 태권도대회의 준비를 위해 그간 많은 준비를 해왔다. 태권도의 종주국 대한민국에서, 태권도의 발상지 경주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번 대회를 통해 태권도의 문화와 역사를 느끼고,그와 함께 태권도의 무한한 감동을 느끼는데 최선을 다 할것이다./윤종현기자 yjh0931@kbmaeil.com

2011-03-30

포항 발전 `성장 동력` 새로운 모델 만든다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 1년5개월여간 표류해 온 포스코 신제강공장 공사가 재개된다. 지난 18일 국무총리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가 공장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조정안을 확정하면서 신제강공장의 공사 재개가 가능하게 됐다. 조정안은 기존활주로를 신제강공장 반대편으로 378m 연장 이동해 비행안전구역을 5구역에서 6구역으로 완화하고, 초과된 공장의 상단부분 1.9m는 철거하고 활주로 높이는 현재보다 7m 상향조정하는 것과 정밀계기착륙장치 등 각종 항공안정장비설치로 공항의 안정성을 추가로 확보하도록 했다. 이번 조정안으로 포항공항의 개선효과가 기대된다. 현재 신제강공장이 지어지고 있는 비행안전 5구역내 합법적인 제한고도 초과 장애물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이번 조정안으로 이 장애물이 공장과 함께 안전한 구역으로 이동하게 됐다. 또 공장방향의 활주로를 378m 줄이고 반대편으로 378m 연장이동하게 돼 전체 활주로 길이는 변동없는 반면, 오히려 공장방향에서 줄어든 활주로 378m의 활용이 가능해 사실상 활주로는 현 2천133m에서 2천511m로 늘어나게 된다. 이와 함께 공장방향 활주로 앞에 위치한 인근 야산인 인덕산으로 인해 설치가 불가능했던 정밀계기착륙비행장치(ILS) 설치도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활주로 확장으로 인해 공항부지로 편입되는 동해면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포항시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특단의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동해면 획기적 발전시킬 청사진 만든다 포항시는 지난 19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1억원의 예산을 들여 `동해면종합발전마스터플랜` 마련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일제시대 때 비행장 건설당시부터 강제동원됐던 아픔을 갖고 있고, 1995년 공항 확장 당시에 약속했던 부분들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공항 활주로 확장 결정은 동해면민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포항시는 26일부터 용역 발주에 들어가는 마스터플랜을 통해 동해면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시는 먼저 동해면민들과 함께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공항 부지 편입에 따른 이주민들이 살아갈 이주단지 조성에 힘을 기울일 방침이다. 포항공항 활주로가 378m 연장되면 동해면 포항공항 입구의 상당 부분이 공항 지역으로 편입될 예정이며, 4천여세대 1만여명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는 공항 담장에서 207m 동해방면으로 늘어남에 따라 동해면 일대 11만3천㎡가 공항부지로 편입될 것으로 보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될 69세대와 인근 소음 피해 우려 세대를 정확하게 가려내 동해면 내에 별도의 이주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주가 불가능하지만 소음피해가 우려되는 주민들에 대해서도 소음방지대책을 수립하고, 학교 등지에 대해서는 소음방지 및 냉난방시설을 보강하거나 학교 전체를 이전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동해면 도구리 일원에 조성중이지만 사업이 지지부진하기만 한 동해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활성화 해 지역발전의 초석으로 삼기로 했다. 1993년 11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동해지구(동해면 신정리, 약정리, 도구리 일원)는 62만8천900여㎡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며, 지난 2009년 8월12일 착공했으나 사업 진척이 더딘 상태로 정체돼 왔다. 포항시가 마스터플랜대로 사업 활성화에 나서게 되면 동해지구 내에는 대규모 아파트와 상가, 학교 등이 들어서 동해면 발전에 큰 보탬이 될 전망이다. 허남도 조합장은 “현재 74%의 공정률을 보인 이후 계속 지지부진했던 구획정리가 다시 활성화된다니 환영한다”며 “국책사업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이 하루빨리 완공돼 당초 목표대로 지역경제에 일조하기를 기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또 동해면 등에 조성중인 포항블루밸리사업을 조기에 추진하기 위해 금광리~공당리 간 1.2km 구간 포항블루밸리 연결도로를 올해 내로 발주할 예정이며, 금광나들목~약전간 연결도로도 조기개설 토록 할 계획이다. LH가 추진하고 있는 포항블루밸리사업은 지난해 9월 국가산업지단지로 지정됐으나 토지 및 물건에 대한 공부상 현황과 실제 현황을 대조하는 지장물 조사만 진행할 정도로 지지부진했는데, 이번 조치로 사업의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해병대 동문과 동해토지구획정리지구를 연결하는 도로도 개설하고, 동해면지역의 도시계획 변경 등을 용역에 포함시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방침이다. 박승호 포항시장은 “신제강공장 공사 재개는 포항지역 발전의 기회이지만 동해면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동해면민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동해지역의 새로운 발전 동력을 만들기 위해 동해종합발전 마스터 플랜을 마련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동해면을 포항의 새로운 발전모델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배준수기자 baepro@kbmaeil.com

2011-01-21

문화게시판

■영화상영(무료) ◇중앙도서관(420-2721):△판타스틱 자살소동(25일 오후2시)△퍼시잭슨과 번개도둑(27일 오후2시)△미투(15세이상 31일 오후2시) ◇동부도서관(940-4132):△아부지(23일 오후2시)△지구가 멈추는 날(25일 오후2시)△인어공주3(26일 오후2시)△이온플럭스(27일 오후2시)△슈퍼맨4(29일 오후2시)△엔트랩먼트(30일 오후2시) ◇남부도서관(620-5531):△이상한 나라의 엘리스(23일 오후2시)△아빠가 여자를 좋아해(25일 오후3시)△내사랑 내곁에(27일 오후3시)△애자(28일 오후3시)△굿모닝 프레지던트(29일 오후2시)△우리가 꿈꾸는 기적-인터박스(30일 오후2시) ◇서부도서관(560-8833):△식객 김치전쟁(23일 오후2시)△무영검(25일 오후2시)△해리포터와 불사조기사단(26일 오후2시)△애자(27일 오후2시)△상상극장(29일 오후2시)△안녕 형아(30일 오후2시)△갠지스(31일 오후2시) ◇수성도서관(740-5532):△연을 쫓는 아이(25일 오후2시)△비림의 숲 테라비시아(26일 오후2시)△여자, 정혜(27일 오후2시)△10억(28일 오후2시)△어머니는 죽지 않는다(29일 오후2시) ◇북부도서관(350-0822):△에반 올마이티(23일 오후2시)△엘프(25일 오후2시)△초감각 커플(26일 오후2시)△늑대의 유혹(28일 오후2시)△브레이브 스토리(30일 오후2시) ◇두류도서관(650-0222):△추적(24일 오후3시)△싸이보그 그녀(25일 오후3시)△유어 프랜즈(26일 오후3시)△러블리 로즈(27일 오후3시)△황시(28일 오후3시)△말리와 나(31일 오후3시) ◇대봉도서관(430-7731):△언컨디셔널 러브(25일 오후2시)△액스페리먼트(26일 오후2시)△엽문2(27일 오후2시)△온리 더 브레이브(28일 오후2시) ◇달성도서관(611-5966):△베스트키즈(23일 오후2시)△괜찮아, 정말 괜찮아(29일 오후2시)△믿음의 승부(30일 오후2시) ■강좌(유료) ◇남부도서관:△평생교육강좌(25~2.9, 한문 등 18개 강좌) ◇북부도서관:△2월 개강 평생교육(25일부터 선착순, 서예, 한문, 서각, 한국화 등 4개 강좌) ■전시 △제50회 아름전(23일까지 서양화 40점, 경북의대 미술동아리. 중앙도서관) △제26회 행림연묵회(26~29일, 서예 22점, 경북의대 서예동아리. 중앙도서관) △영남화단 백년, 그 순수와 열정의 기억전(~29일, 동원화랑) △2011 동아미술관 신진작가 기획초대전(~24일, 동아미술관) △영상기획전 `아이 러브 대구`(~29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 △대구수채화협회 회원초대전(21~30일, 동구문화체육회관 전시실) ■공연 △뮤지컬 `우연히 행복해지다`(~2월20일, 평일 오후8시, 토요일 오후~4시, 7시, 일요일 오후3시, 6시, 하모니아 아트홀) △공군군악대 초청 신년음악회(21일 오후7시30분, 대구문화예관 팔공홀) △뮤지컬 넌센스(22일 오후3시, 7시, 23일 오 2시, 6시 학생문화센터 대공연장)

2011-01-21

(1) 백석의 `국수`

국수 한 그릇에 가득한 축제의 흥겨움국수 ……………………………………………………………………………………………… 백석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내려 메기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중략) `근대화`는 오랫동안 우리의 화두였다. 개화기부터 국가의 모든 목표는 오로지 이 근대화 하나에 맞추어졌다. 경제나 정치는 물론, 교육, 문화도 근대화가 최고의 목표 중의 하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이상 근대화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육체적인 허기가 아니라 정신적인 허기다. 숨가쁘게 근대화를 향해 달려오면서 우리는 무엇을 놓친 것일까. 백석의 `국수`는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백석의 `국수`는 국수를 예찬하는 시이다. 이때 국수를 `평양지방의 토속음식인 평양냉면`(고형진)으로 보기도 하고, `메밀가루로 빚은 국수`(이숭원)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조풍연이 신문에 발표한 `식도락`이란 글에, “서울 이남 사람은 `냉면`이라고 하지만 평안도에서는 `냉면`은 따로 없고 그냥 `국수`라는 것이 곧 냉면이다.”고 한 것을 보면, 두 가지 말이 다 맞는 셈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이란 책에서 국수는 주로 메밀로 만든다고 하고, 평안도 지역의 “국수의 발달은 화전민 생활에서 유래함”이라 하였다. 메밀은 원래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는 구황식물인데, 평안도 지역 특성상 메밀을 많이 키울 수밖에 없고 당연히 메밀을 이용한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쪽에는 비교적 토질이 비옥하고 평야가 많기 때문에 굳이 메밀을 키울 필요가 없어서 “국수 숭상”의 필요성도 사라졌다고 한다. 백석의 `국수`는 바로 이 “국수 숭상”의 풍습을 알 때 더 깊이 이해된다. 그럴 때 “외따른 산 옆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자라는 것이 바로 메밀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더 확인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산멍에 같은 분틀”이라는 말이다. 산멍에는 큰 구렁이를 말하고, 분틀은 국수를 만드는 국수틀을 말한다. 분틀을 큰 구렁이처럼 본 것은 아마도 손잡이 모습이 구렁이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래 사용하면 손때가 묻어 뱀의 비늘처럼 반짝이지 않겠는가. 국수는 바로 이 분틀을 타고 내려온다. 평안도에는 국수를 자주 먹기 때문에 집집마다 분틀을 두고, 국수를 할 때면 솥 위에 걸고 국수를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으로 바로 뽑아내었다. 그리고 이 분틀은 많은 힘이 필요하므로 한 사람의 힘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그래서 어른과 애들이 함께 힘을 합쳐 축제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면 왜 국수를 먹는 날이 축제의 날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백석 시인이 이 국수를 대하는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시인은 국수를 시에서 직접 말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라 부르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것`이라 부른다. 국수라는 말은 제목에만 있을 뿐이다. 그는 왜 이렇게 하였을까. 이것은 국수를 신성한 어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수는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부터 내려온 것이며, 그래서 국수를 먹는 날은 온 마을이 “구수한 즐거움”에 싸여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되는 것이다. 신성한 것은 함부로 이름 부를 수 없다. 만일 이 시에서 `이것` 대신에 국수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썼다면 국수의 신성성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시의 수준도 형편없어질 것이다. 이 국수는 공동체의 축제, 그 속에서 하나가 된 우리 조상들의 신성한 삶을 나타내는 음식이다. 우리는 국수는 이어받았으나 국수에 담긴 그 정신은 버리고 말았다. 근대화를 통해 근대의 세계로 넘어온 우리는 음식 하나에도 스며 있는 따스한 공동체 정신, 축제 속에서 하나 된 즐거움을 미처 챙겨오지 못하였다. 백석의 `국수`는 우리가 바로 이것을 우리가 잃어버렸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문득 국수 그릇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이런 깊은 의미 때문일 것이다. 국수를 먹으면서 옛 조상의 그 마음을 한 번 짐작해볼 일이다. 박현수 교수 약력시인. 문학평론가. 경북 봉화 출생. 1992년 한국일보에 `세한도`로 등단. 시집으로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 평론집 `황금책갈피`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현재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1-01-06

`참소주` 신화 일군 향토기업 `금복주`

이익 사회환원·신뢰받는 기업 목표54년간 `고객 감동` 오직 한 길 달려 `술꾼`들은 배가 고프면 밥 보다는 술 한 잔을 먼저 떠올리며 군침을 흘린다. 마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을 보는 것 같다. 배에서 보내오는 `꼬르륵` 신호를 파블로프의 실험에서처럼 종소리로 착각한다. 확실히 공복일수록 술이 잘 받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술 맛이 떨어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신체 구조학상의 문제다. 주당들이 공복을 느끼며 무심코 떠올리는 술은 과연 어떤 종류일까? 손가락으로 죽 찢은 김치와 함께 시원하게 들이키는 탁배기 한 사발, 글라스에 얼음 동동 띄운 21년산 스카치위스키, 스테이크 안주에 코끝으로 음미하며 마시는 와인, 그것도 아니면 일본식 포장마차에서 즐기는 사케? 천만의 말씀, 누구나 개인마다 취향이 조금씩 틀리겠지만 뭐니뭐니해도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최고다. 참소주·경주법주·화랑 등 국내 최고 `명품주` 생산금복문화재단 설립 등 기업 사회적 책임 적극 실천 ◇(주)금복주, 어떤 기업 대구·경북지역 주류제조업체인 (주)금복주는 대표 소주 `참소주`와 신세대 저도소주 `스타일`, 소주 본연의 맛 `금복주 25%`, 프리미엄 소주 `오크젠` 등 소주류와 계열회사인 경주법주(주)에서 대한민국 국주 `경주법주`, 대한민국 명품주 `화랑`, 대한민국최고급순미주 `경주법주초특선`, 대한민국대표청주 `경주법주천수` 등을 생산하고 있다. 대표 소주 `참소주`는 미세입자를 완벽하게 흡수하는 첨단 고순도 정밀여과공법을 사용하며, 숙취해소에 좋은 아스파라긴을 3배 함유해 더욱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내며 지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신세대소주 `스타일`은 알코올도수 16.7도의 저칼로리 웰빙소주로 여성층 및 저도주 선호하는 소비자층에 인기몰이 중이다. 소주 본연의 맛 `금복주 25%`는 고도주를 희망하는 애주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최근 출시했다. 옛 맛, 예전의 금복주를 그리워하는 애주가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 슈퍼프리미엄 소주 `오크젠`은 오크통 10년 숙성소주로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과 깔끔한 뒤맛이 살아있는 최고급 소주다. 대한민국 국주 `경주법주`는 순수 전통누룩으로 100% 우리나라 쌀로써 저온숙성한 신라시대 궁중비주다. 대한민국 명품주 `화랑`은 순수 전통누룩으로 100% 우리나라 찹쌀로써 150일간 정성으로 빚은 프리미엄 순미주로 2010년 샌프란시스코국제와인대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금상을 받고, G20 재무장관회의 공식건배주로 사용된 명품주다. 대한민국 최고급순미주 `경주법주초특선`은 100% 우리나라 최고급 쌀을 55%까지 정성으로 깎아내 국내 청주 중 도정률이 가장 높고 자연적으로 한방울 떨어지는 자루여과방식의 수제완제품으로 한정 생산, 판매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청주 `경주법주천수`는 100% 우리나라 쌀로 만든 맑고 깨끗한 맛이 일품인 청주다. ◇국가·사회 발전 위한 사회 활동 `고객감동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 신뢰받는 기업을 만든다!` 이 한 문장 속에 금복주 54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것은 금복주의 경영방침이자, 금복주의 정체성이며, 금복주만의 철학이다.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의 사무실마다 태극기가 액자 속에 고이 모셔져 있듯이, 이것 역시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액자 속에 고이 들어앉아 금복주 인의 뇌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금복주의 사회공헌정신은 국력을 소진해 대외 원조에 의지해야만 했던 1950년대, 금복주를 창업하면서 기업이 번성해야 국가 전체가 가난의 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납세보국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납세보국은 사회공헌과 고객감동경영의 출발점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후 납세보국 정신은 금복주의 대단한 질주로 대구, 경북 천하통일 신화를 실현하던 1970년 중반에 들어서며 공존공영의 정신으로 발전했다. 기업행위는 인간행위이며, 기업활동은 사회활동이라는 절대 정의를 몸소 실천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공존공영의 정신은 금복문화재단 설립이란 아름다운 결실을 남겼다. 1987년 금복주는 오늘날 대구, 경북의 대표적 문화예술 지원 단체인 금복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금복문화재단은 지난 20여 년간 민족문화사업, 육영문화사업, 사회복지사업 등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에 이바지했으며, 해마다 시행되는 금복문화예술상 시상은 지역을 대표하는 권위의 문화예술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를 맞아 새로운 도약의 성서시대를 연 금복주는 사훈 개정을 통해 사회공헌의 정신을 더욱 공고히 다지면서 기업의 역할이 국가와 사회 발전에 있다는 사실을 명문화했다. `창의적 노력으로 자기를 계발하고, 인화와 단결로써 기업을 발전시켜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 이는 곧바로 당시 최대 규모로 화제를 모은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으로 이어졌다. 1993년 4월 금복주는 화원 동산 18만5천123.96㎡(5만6천평)을 대구시민의 휴식처로 대구시에 헌납했다. 금복주는 오늘날 금복주를 있게 한 가장 큰 힘은 지역민들이었고, 앞으로 금복주의 운명 또한 지역민들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마침내 금복주의 사회공헌활동은 1990년대 후반 그 빛을 발했다. 주류 개방화와 무한경쟁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던 금복주는 지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하고 `참소주`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IMF 위기로 지역의 기업들이 부침을 거듭할 때, 지역민들은 지역의 대표기업 금복주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금복주는 다시 한번 국가와 기업의 관계, 사회와 기업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2000년대를 맞으면서 신뢰받는 기업과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를 통한 `고객감동경영`을 기업의 경영방침으로 세웠다.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는 곧 고객감동경영이고, 고객감동경영은 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며, 이것이 곧 신뢰받는 기업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금복주의 고객감동경영은 금복복지재단, 금복장학재단 설립과 참사랑봉사단 활동을 통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거듭났다. 이로써 금복주의 사회공헌활동은 금복문화재단에 이어 금복복지재단, 금복장학재단, 참사랑봉사단의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고객감동 54년의 역사가 완성됐다. 여기서 완성이란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금복주의 사회공헌과 고객감동은 국가와 사회발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며 계속 이어질 것이다. (주)금복주 김동구 대표는 “1957년 4월 대구 달성동의 조그마한 임대공장에서 출발한 (주)금복주가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대구, 경북 지역민들의 사랑이 큰 힘이 됐다”며 “나눔경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역민이 키워온 기업인 만큼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서인교기자 igseo@kbmaeil.com

2010-12-15

입양후 유기 다반사 잔인한 현실에 씁쓸

포항 전역서 월평균 100여마리가 보호소로 보내져 50%는 자연사·20%는 전염병 감염 등으로 안락사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버림받고 있다. 28일 포항시에 따르면 2008년 616마리에 불과하던 포항지역 유기동물은 지난해 689마리, 올해 10월 말 현재 750마리 등 해마다 늘고 있다. 포항시 위탁 유기동물보호소인 `한국동물테마파크`에서 하루 동안 유기동물의 보모가 돼 버려지는 반려동물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지난 25일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장리에 위치한 한국동물테마파크. 이곳에는 고양이 50여마리와 유기견 250마리가 생활하고 있다. 2시간 동안의 견사 세척 및 소독작업을 마치고 나니 하얀색 몸에 검은 얼룩무늬가 있는 유기견이 눈에 띄었다. 유독 눈동자 주변이 까만 이 유기견의 이름은 `포착`이다. 3년 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란 방송프로그램에서 `신발킬러`로 소개됐던 주인공이다. 방송 전 떠돌이 생활을 해왔던 포착이는 한국동물테마파크에서 구조돼 새로운 주인에게 입양됐다. 그러나 포착이를 입양했던 주인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한국동물테마파크 측은 다시 포착이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왕년의 TV스타 역시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해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한국동물테마파크 최재호 사무장은 “포항 전역에서 이곳으로 오는 유기동물은 월 평균 100여마리에 달하며,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버리는 경우도 있고, 전염병에 걸린 반려동물의 치료비가 아깝다며 유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50%가 자연사로 숨지고, 20%는 전염병 등에 감염돼 안락사 된다. 나머지 30% 중에는 좋은 주인을 만나 입양되는 경우도 있다. 3~4개월 전 오천에서 구조된 어린 암컷 시추 `오천`이는 불의의 사고로 한쪽 눈알이 없다. 다행히 상처가 잘 아물어 건강해진 오천이를 본 한 시민이 “집에 유기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같이 키우고 싶다”며 입양을 해 갔다. 오천이처럼 좋은 주인에게 입양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입양되는 유기견의 수는 미미하다. 오히려 입양한 유기동물을 다시 유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김용우 한국동물테마파크 관리팀장은 씁쓸하게 말했다. 이처럼 유기동물이 늘고 있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 때문이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반려동물을 키웠다가 버리기를 반복하는 세태가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한국동물테마파크는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고 입양 후 사후관리 확인 등에 협조할 수 있는 이들에 한해 서약서를 작성한 후 소정의 책임후원금을 받고 유기동물을 분양하고 있다. 최재호 사무장은 “반려동물 사육 전 충분히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유기동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을 대하는 시민의식이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남희기자

2010-11-29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정문 스님 보경사 주지한국의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그 푸름의 오묘함은 가을에 더욱 빛을 발한다. `눈이 시리게 푸르른 날`이라고 미당(未堂)은 노래했다. 어찌나 푸르던지 그 바라봄에 그만 눈이 시리다. 넘치는 말이 아님을 우리의 하늘을 본 사람이라면 넉넉히 공감할 구절이다. 근래 가을 하늘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색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표현할 색감(色感)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빛깔을 맞춰도 색이 갖는 감(感)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흉내는 내도 한국의 가을이 가진 정서에는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탕에 흐름을 바르게 옮기지 못하면 몸은 왔어도 혼백은 없는 허수아비꼴이 되는 것이다. 그 색(色)이 무엇이 길래 어떤 색이기에 그렇게 힘들까. 쪽빛. 그것은 바로 쪽빛이다. 한국인이라면 쪽빛이 어떤 색을 이르는지 대강은 알고 있다. 우리의 가을하늘을 말할 때 코발트빛 푸른 하늘, 보다 좀 더 한국적인 색감으로 `쪽빛`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쪽빛은 어떤 색인가. 어떻게 대답할까. 푸른색, 남색, 좀 더 고급한 표현으로 마린블루, 코발트블루,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답은 쪽빛은 쪽빛이라는 답이다. 미술평론가 손철주씨의 `꽃피는 삶에 홀리다`에 보면 염장(染匠) 한광석씨의 답변이 나온다. 시인 김지하는 꿈결 같은 색이라 말하는데, 그렇다면 평생 쪽물을 들여온 염장(染匠)의 입에서는 쪽빛에 대한 분명한 답이 올듯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더욱 모호한 답이 나온다. 청(靑)도 아닌 것이 벽(碧)도 아닌 것이 아닌 것이? 그렇다면 무슨 색이란 말인가. 염장은 그저 까마득한 색이라 말한다. 까마득한 색이라. 이 대목에 이르면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없어진다. 청(靑)이니, 벽(碧)이니, 람(藍)이니 하는 푸름도 쪽빛의 그것을 담기에는 부족해서 결국은 시각(視覺)을 접고 생각을 접게 만드는 까마득한 색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색을 흰색이라 하지만 청자와 가을 하늘, 소나무와 대나무의 푸른기상을 사랑했던 조상들을 보면 흰색만큼이나 푸른빛을 좋아했던 것 같다. 민족마다 선호하는 색깔이 다르며 개인도 호불호(好不好)의 그것이 있다. 색의 기호(嗜好)로 성격을 분석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고 한다.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한 본성을 이른 말 일 것이다. 색중에는 스스로 드러나 보이는 색이 있고 함께 있음으로 주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색도 있다. 존재만으로 조화를 만들고 평온함을 주는 색도 있다. 숫타니파타에는 아름다운 싯구가 나온다. `세상 빛에 물들지 않는`다는 귀절이다. 세상속의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세상을 향해 길어 올리는 물빛이 더러워도 우리가 피워내는 꽃에는 탁함이 없다. 세상 빛에 물들지 않는 본래의 색이있기 때문이다. 나의 색을 갖되 나만의 색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푸른 가을날이다. 미당(未堂)은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든다고 했다. 내연산 보경사에도 지친 초록이 단풍으로 올 것이다. 눈 부신 쪽빛과 맞닿는 붉은 단풍, 깊은 가을이 기다려진다.

2009-10-15

위로의 하나님

박진석 포항 기쁨의교회 담임목사최근에 들어서 우리 사회에서 급성장하는 산업이 있는데 바로 `위로 산업`이라고 합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이나,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상대가 없어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달래줄 애완용 동물이 인기를 끌고, 싱글 여성들은 “남자 친구 팔베개 쿠션”을 애용하기도 한답니다. 또 술을 판다기 보다는 말상대를 해주는 토크 바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또 호주에서 유행하여 전세계로 널리 퍼진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포옹함으로 따뜻한 위로와 정을 나누어주겠다는 운동입니다. 위로 산업이 번창하고, 프리 허그 같은 운동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위로에 굶주려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숫자가 하루 평균 33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일년에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곳곳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1장 3절에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자비의 아버지 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이 말씀은 초대 교회의 사도 바울이 선교 사역 중에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통과하면서 만난 하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로의 하나님` 이 때 위로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는 `파라클레시스`입니다. `파라`는 헬라어로 가까이라는 뜻이고 `클레시스`는 부르다 라는 뜻입니다. 위로가 성립되려면 누군가를 가까이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때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사실 말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그저 나의 고통과 형편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위로와 도움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깊은 절망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로하지 못할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 불러야 합니다.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우리 삶의 자리로 가까이 초청할 때 하나님의 위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고통하며 위로가 필요한 자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불러 보십시오. 분명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기 원하시는 자비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우리 모두의 영혼에 풍성히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009-10-08

창의적인 생각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학교에 가는 자녀에게 우리나라 부모들은 주로 어떤 말을 할까?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차조심해라.” 아마 이런 내용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노벨상을 많이 받은 민족인 유대인들의 부모는 어떨까? 이들은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하라고 주문을 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오늘 학교에서 어떤 질문을 했니?”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미국 동부의 명문사립 W대 1학년 장모양은 입학 직후 한 교수의 지적을 받고 크게 당황했다. “수업 시간에 왜 질문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 때문이었다. 국내 특목고 출신인 그녀는 예습을 철저히 해 간 터라 “특별히 모르는게 없어서 그랬다”고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다 알아도 궁금한 걸 찾아내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따끔한 충고가 돌아왔다. 그녀는 “마땅히 물어볼 게 없는데 질문을 만들어 가는 것도 큰 고역”이라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수동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찾아가며 하는 즐거운 공부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다니면서 힘들게 공부를 하는 것이다. 같은 공부도 수동적으로 하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해야 더 재미있고 창의력이 길러진다. 능동적인 공부는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질문에서부터 비롯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고 궁금증을 해결할 때 느끼는 기쁨을 맛볼 기회가 생긴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 현장에서는 질문이 없는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진짜 궁금한 것을 해결하려는 공부가 아니라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입시 위주의 양적인 교육을 하다 보니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질문을 많이 하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해야 하는 토론중심의 학습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계속해서 같은 신문에 난 기사 내용을 더 살펴보자. 미국의 한 고교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있다. 토론식 수업에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의 입시학원 교사 최모씨는 최근 우리나라 고 2에 해당되는 한 학생의 에세이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수학과 다른 과목의 성적이 괜찮은 이 학생의 논리가 초등학생 수준이었던 것이다. 에세이 문제는 `창조는 언제나 모방 보다 좋은 것인가`였다. 그랬더니 “시험 도중 친구의 답을 베꼈더니 틀렸다”며 “경험상 남을 따라 하면 꼭 실패가 따른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왜 (Why)`, `어떻게 (How)`를 물을 줄 모르는 한국식 평면적 교육이 빚어낸 코미디 같은 이야기이다. 한국 학생들은 순종을 미덕으로 삼는 유교문화에다 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한국에선 어떻게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질문을 하려 들면 “쓸데없이 따지고 든다”는 핀잔을 받기 일쑤다. 이 때문에 한국 학생들을 접해본 미국 교사들은 질문할 줄 모르는 수동적 태도와 평면적 사고를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토론학습을 하려면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관점에서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기 위해서 질문을 통해 주제에 대한 자기의 이해가 올바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운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올바른 생각을 정립할 수 있다. 그래서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 평소에 토론학습에 익숙해 있지 않으면 특목고를 나오고 미국 유학을 갈 정도로 공부를 잘 해도 장양처럼 질문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외국의 창의성 교육은 학교에서 질문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질문도 `무엇(What)`에 대한 것 보다 `왜`, `어떻게`에 대한 것이 많다. 우리나라도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 질문을 잘 하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모님들도 학교에 가는 자녀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차 조심해라.”라고 당부하기 보다는 다음과 같이 말을 바꾸어야 한다. “오늘도 질문 많이 하는 것 알지?” Create yourself!포항제철지곡초 이용석 교사

2009-10-07

인도-산치 유적지

불교는 오랜 세월 인도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종교다. 불교는 인도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인도 전역에는 다양한 불교 유적이 건설됐다. 불교 건축물로는 예배를 올리는 장소인 사원과 수도승들이 수행과 학문에 매진했던 승원, 그리고 스투파가 있다. `스투파`란 흙과 벽돌, 돌로 지은 탑. 존경받았던 승려와 학문의 높은 경지에 오른 고승의 유골을 보관하던 곳이다. 힌두교가 국교가 되면서 많은 스투파가 사라졌지만, 산치 스투파는 울창한 숲 덕분에 살아남아 화려했던 고대 인도의 불교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인도 불교 역사, 산치 유적지 산치 유적지는 기원전 3세기쯤부터 서기 11세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조성된 유적지다. 인도의 불교 유적지 중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나 불교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산치 부근에는 기원전부터 상업 도시로 발달한 `비디샤`라는 도시가 있었다. 비디샤 상인들이 번영과 안전을 위해 스투파와 사원을 하나둘씩 세우면서 산치 유적지가 탄생한 것이다. -산치유적 상징 `제1 스투파` 산치의 상징인 제1 스투파는 기원전 3세기 아소카 왕에 의해 완성됐다. 전체 모습이 밥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형태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스투파와 그 주변을 둘러싼 돌담으로 구성돼 있다. 돌담의 동서남북으로는 아름다운 4개의 토라나(문), 스투파 정상에는 자그마한 3층탑이 있다. 제1 스투파 북동쪽에는 제3 스투파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제1 스투파와 모양과 형태가 비슷하다. 제2 스투파에는 정상에 장식이 없고, 토라나가 없다는 점이 제1 스투파와 다르다. 하지만 제1 스투파에는 없는 사리함이 있고, 죽은 승려의 이름이 10개나 새겨져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서적, 토라나 산치 스투파의 출입문인 토라나는 수많은 아름다운 조각들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우주와 석가모니의 사상을 담은 불교 경전인 셈이다. 토라나에는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와 불교를 널리 알리는 장면, 여러 동물과 꽃 문양 등 다양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중 서쪽 토라나에는 둥근 바퀴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새긴 조각이 있다. 이 조각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녹야원에서 행한 최초의 설법과 교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불상이 등장하기 전까지 불교 신자들이 이런 상징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준다.생각 생각 ▶초등1. 오랫동안 인도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종교는 무엇인가요?2. 기원전 3세기쯤부터 11세기에 걸쳐 인도에 조성된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는 무엇인가요?3. 친구에게 이 기사의 내용을 알려주는 편지를 써 보세요.4. 인도에 여행을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이유도 적어 보세요.

2009-10-07

캄보디아에서 배운 지혜

이슬동지여고 3저는 10일 동안 스레이니읏이라는 캄보디아 친구와 함께 생활하고 봉사 하였습니다. 스레이니읏은 저랑 동갑입니다.항상 해맑고 사진 찍는 걸 무척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와 10일 동안 지내면서, 한국과 캄보디아가 다를 게 없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저와 스레이니읏이랑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한 면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의 도움을 통해 10일동안 스레이니읏이랑 가깝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우린 다른게 없는 친구였습니다. 저는 1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캄보디아에 봉사활동을 간 것이었지만 이미 현지에는 오랜 기간 봉사를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분들 덕분에 수월하게 봉사활동을 하였고, 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수 있었습니다. 항상 저희의 불평불만을 들어주시면서 짜증 한번 안내시고 웃음으로 받아주신 분들… 봉사활동을 하는 기간 내내 좋은 얘기를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던 덕분에 정말 힘들지 않게 현지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출발할 때는 너무나 길 것만 같았던 10일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너무나 짧은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헤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매번 누군가와 소중한 만남의 시간을 뒤로 하고 헤어져야만 할 때 가슴 한 켠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번 캄보디아 우동지역에서 저희와 함께 힘든 일을 함께 해내고, 때론 즐거워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로 서로 친구가 되었음에 든든했던 마을 식구와 헤어질 때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힘든 헤어짐의 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우동지역 어르신들, 그리고 현지 친구들은 우리가 떠나는 날이 되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시고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정은 정말이지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되는 세계인의 감정이었습니다. 아무리 다른 땅,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은 모두 같은 것 같습니다. 이번 해외봉사에서 저와 10일 동안 함께 고생했던 선생님 2분과 언니 오빠, 그리고 친구들을 비롯한 사랑하는 현지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고, 이 좋은 사람을 많이 얻은 것만으로도 저는 이번 10일을 후회 없이 보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세상을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작은 일에도 기뻐할 줄 하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배운 세상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나의 봉사활동에 즐겁게 임하겠습니다. 끝

2009-10-07

공식 출범 LH공사 김호경 초대 대경본부장

“신뢰 회복 으뜸공기업으로 재탄생”업무비리 연루 직원 즉각 퇴출현장중심 책임경영 정착 매진“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으뜸 공기업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직원 간 융화, 현장중심의 책임 경영체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업무추진, 청렴 문화 정착에 매진합시다”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공사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5일 공식 출범했다.이날 LH 공사는 초대 대구·경북본부장인 김호경사진 본부장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이 자리에서 김 본부장은 직원 상호 간의 융화와 현장 중심의 조직운영, 차질 없는 업무추진을 당부했다.-지역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새롭게 출발하는 LH 대구·경북 지역본부에 대한 관련 지자체와 지역주민, 그리고 지역언론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관심과 기대수준은 매우 높다. 기존의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체제보다 인력과 사업량은 두 배 이상 많아진 만큼 현업 부서로서 넘어야 할 산이 많고 극복해야 할 대내외의 난제도 쌓여 있다. 지역본부가 첫 출발선상에 서 있는 만큼 직원들이 비장한 각오와 초심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변화 요구 여론이 강한데.▲과거의 토공과 주공은 땅장사, 집장사 오명과 비리의 온상이라고 국민들에게 각인돼 있다. 새롭게 탄생한 LH 공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으뜸 공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신뢰회복을 위해 비리자에 대해서는 내부 징계 없이 고발과 함께 즉각 퇴출시키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업무추진을 강화하기 위해 면책강화제도를 시행한다.-앞으로 조직운영은.▲앞으로 조직은 `현장중심`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정부 역점추진 사업들은 현장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결국은 그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므로 현장중심체제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과 점검을 아끼지 않겠다. 또한, 모든 업무는 팀장, 사업단장 책임하에 운영할 방침이다. 조직안정과 연말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사업지원팀 등 지원 부서는 교차배치하고 보상, 판매 등 현업부서는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게 되며 전 업무에 걸친 교차배치는 올해 남은 기간 상호 간 업무 흐름을 읽힌 후 내년부터 있을 예정이다.-LH공사 대경본부의 현안은.▲최근 대구시와 경북도가 지정받은 국가산단인 대구사이언스파크 등 2개 국가산업단지, 2개 혁신도시, 대구 테크노폴리스 등 대형 프로젝트와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대경본부는 앞으로 지역에서 펼쳐지는 국가 프로젝트 등 각종 사업이 대구·경북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이곤영기자 lgy1964@kbmaeil.com

2009-10-06

(6) 꽃가루날려야 은사시나무지

첫새벽에 시를 쓴다. 껍질 벗겨진 은사시나무의 실존에 대하여. 아니, 반성문을 쓴다. 그 나무껍질 벗긴 내 죄에 대하여. 내 죄는 부끄러움이나 자책에서 끝날 수 있지만 상대의 실존은 치명타를 입거나 고사(枯死)할 수 있음에 대하여. 어느 봄날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모 영내 은사시나무 삼십여 그루가 허리 껍질이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었단다. 은사시나무에서 꽃가루가 날려 식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둥치에서 사람 허리만큼 올라온 부분의 껍질을 벗겨 방치하면 나무는 고사하는 모양이었다. 꽃가루 날려야 하는 건 은사시나무의 생존방식이고, 그게 방해가 되는 것은 인간의 실존이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자연을 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거창한 생태주의자나 자연보호주의자 입장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실존`의 문제로 생각해봤을 때도 그 기사는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아무리 봐도 `방치`가 `고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파노라마는 은사시나무에게 너무 가혹한 형벌이다. 차라리 적법한 절차나 당국과 협의를 거쳐 은사시나무를 벌채했다면 이런 쓰라린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방치와 고사가 주는 끔찍한 비열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은사시나무가 말라가는 동안, 인간들은 아무 일 없이 그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수다를 떨 것이다. 뿌리나 둥치의 고통에 대한 그 어떤 자책이나 미안함보다 제 밥그릇에 꽃가루 날리지 않는 무탈함에 대한 수다를. 은사시나무는 적어도 해목(害木)이 되기 위해 자라지는 않았다. 자라기 전 곧장 뽑아주어야 할 나무로는 `어린왕자`의 바오밥나무로 족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걷잡을 수 없는 뿌리 번식으로 어린왕자의 별이 파괴되어서는 안 되니까. 그에 비하면 은사시나무는 무죄다. 햇빛 아래, 앞뒤 다른 색으로 반짝이는 잎들은 뭇 사람들에게 노래가 되고 쉼터가 되었을 뿐이다. 제 생존 본능을 위해 봄 한철 꽃가루 날린 것이 유죄라면 그건 애교 정도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걸 양보 못해 순한 죽음도 아닌 `고사하기 까지 방치`하는 그 비열함에 반성문을 쓰고 싶을 뿐이다. 더러 비열하고, 자주 자책하는 게 인간이다. 의도하지 않은 죄이기에 양심 있는 자는 그 자책이 오래간다. 그 때 망가진 제 영혼을 순진무구한 풀밭에 마냥 풀어놓고 싶어지는 게 인간이기도 하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아름드리미디어, 2003)에서 우리는 잠시 위안을 얻어도 좋을 것이다. 성장소설이란 점에서는 `라임오렌지나무`와 닮았고, 자연 친화적 요소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어린왕자`에 가깝다. 인간 속성이 아무리 비열하다 해도 자연에의 향수를 쉽게 잊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영혼을 따뜻하게 데워주기에 충분하다. 주인공 `작은나무`는 자연의 이치를 할아버지로부터 배운다. 단순하지만 지혜롭게 살아가는 인디언의 모습은 `방치`와 `고사`를 일삼는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침이 오고 있다. 은사시나무를 위한 내 시는 여전히 미완성이고, 다만 나는 밑줄을 그을 뿐이다.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한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것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을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는다.`(소설가)

2009-10-06

서울 노원을 안동출신 권영진 국회의원

경북 안동출신의 권영진(서울 노원을)의원은 안동시 남선면의 60호 남짓되는 산골짜기인 양짓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안동서 나온 그는 대구 청구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 대학원에 다닐 때는 총학생회장도 지냈다. 현재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민본21 회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열심인 권 의원을 만나 그가 꿈꿔 온 것과 그가 꿈꾸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8년 다녔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어릴 때 조그만 마을에서 자라다 보니 나이가 1~2살 많은 동네 형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니까 갈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어디에 갔나하고 찾아보니 모두 학교에 갔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냥 학교에 가서 같이 다녔습니다. 그때 학교는 천막을 치고 학생을 가르쳤는 데, 다른 친구들은 출석을 부르고 저만 출석을 안불러주는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졸라서 출석부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통사정해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나마 2학년 올라갈 때는 어리다고 진학도 안됐습니다. 그래서 1학년을 2번 다녔고, 5학년때는 안동시내로 전학을 갔는 데, 키도 작고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못받아주겠다고 해 다시 4학년으로 낮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8년 다녔습니다. 문제는 그 뒤인데, 중학교 다닐 때 본의아니게 선배들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학교 교문앞에 서 있는 선도역할하는 형들 가운데 초등학교 친구들이 많았기에 “○○야!”하고 이름 부르다가 혼났습니다. 그랬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납니다. -청구고등학교에 다닐 때 재미있는 얘기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청구고등학교가 축구로 유명한 학교입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청구고를 물어보니 중앙상고를 지나서 언덕위에 있는 학교라기에 찾아갔는 데,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이쪽 축구골대와 맞은 편 골대 사이로 모래 먼지가 휘리는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처음에는 `뭐 이런 학교를 다녀야 하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청구고 출신 축구선수는 유명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변병주, 박경훈, 백종철 등이 유명하죠. -축구로 유명한 학교인 만큼 축구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고교 2학년때 가을 전국대회때 청구고가 결승전에 진출했는 데, 선생님께 응원을 보내달라고 졸랐는 데, 허락을 안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 하숙비를 몽땅 털어 친구들과 함께 5명이 집단으로 무단결석을 하고 응원을 갔습니다. 열심히 응원을 했는 데도 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시무룩하게 학교에 갔는 데, 교감선생님이 교문을 지키고 계셨어요. 교무실로 잡혀가 내내 벌을 서다가 마지막에는 `애교심이 가상하다`는 이유로 용서를 받았던 게 기억납니다. 그 다음해에는 이게 계기가 됐는 지는 몰라도 전국대회 결승전에 전교생이 응원을 갔던 것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통일원 통일정책 보좌관으로 근무했는 데, 어떤 계기로 들어가게 됐습니까. ▲저는 80학번 민주화운동 세대였습니다. 그래서 공부보다 데모를 더 많이 했죠. 저는 그때 우리나라가 분단이 된 상태에서는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한과 관련한 공부를 했습니다. 석사와 박사학위 논문도 북한과 통일문제가 주제였는 데, 1990년 석사학위 끝날 무렵 재야통일운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도권 통일운동으로 궤도를 바꿨습니다. 그뒤 통일원 공채시험을 쳐 5급 사무관으로 6년 7개월 근무했는 데, 통일문제는 관료적 합리성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997년 2월 통일원에서 사표를 내고 그만뒀습니다. 그때 저는 “통일은 의지만으로는 안되지만 언젠가는 된다. 그러나 통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통일이 돼야 하며, 통일 이후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즉 남북이 함께 잘 사는 통일이 중요하고, 정작 통일사업보다 나라를 선진강국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이루기위해서는 바로 교육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로 돌아가서 박사학위도 하고, 교수생활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판단에도 불국하고 정치에 뛰어든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제 유전자 또는 DNA위에 정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1999년에 이회창 총재를 도와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보좌역으로 일했습니다. 선진강국이 되려면 리더쉽이 중요하고, 민주화 이후 지도자는 국가경영자적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이회창 총재를 돕기로 했습니다. 정치권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 총재가 대통령으로서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는 제게 “젊은 부대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고, 저도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한나라당에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때입니다. 저는 소장개혁 그룹으로 `미래연대`를 만들었습니다. 2000년 총선때, 저는 출마하지 않았지만 미래연대를 통해 국회에 젊은 피가 수혈됐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원희룡 의원이 당시 공동대표를 맡았고, 총선을 통해 멤버가운데 무려 14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2년뒤인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해 패배하고 말았고, 이 총재를 중심으로 한 꿈과 비전 역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도 대학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고민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중 2003년 1월 다음해에 있는 2004년 총선에 출마할 결심을 굳혔습니다. 지역구는 서울 노원구 지역을 선택했고, 2003년 8월 그 지역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지역구를 선택할 때 무척 고심이 됐을 것으로 생각되는 데, 학교친구들이 많은 대구가 아니라 서울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은 그 당시 대구에 있는 동기들을 두루 만났습니다. 한 50명쯤 될 겁니다. “대구에서 나와라, 같이 정치하자”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구에서는 큰 정치가 어렵다. 큰 물에서 정치를 해라”고 충고해 주는 친구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자의 충고를 따랐습니다. 정치판 자체가 편가르기나 친구나 친인척과 사이가 소원해 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고향은 고향대로 두고, 정치는 서울에서, 큰 물에서 하기로 굳게 결심을 했습니다. 다만 노원구를 선택한 것은 노원구 중계동이 서울 다른 지역보다도 교육열도 높은 데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선대위원장을 했던 임채정 전 국회의장이 출마한다고 해 정치거물인 임 전 의장에게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출마를 결심한 이상 빨리 유권자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해 이사도 서둘러 했습니다. 강북은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불모지이지만 깃발을 세워보겠다는 각오도 있었습니다.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셨죠. -정치입문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던 셈인데, 낙선때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당시 낙선은 제 정치인생에서 큰 자양분이 됐습니다. 겨우 8개월 선거를 준비해 당선됐다면 유권자 한분 한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는 1.9% 표차로 낙선했는 데, 투표 3일전까지는 이기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 민주당 정동영 대표의 노인폄하 발언 여파가 역작용을 일으켜 상대후보의 표를 응집시키는 바람에 제가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저는 그때 `약자를 위한 정치`와 `나눔과 배려의 정치`를 펴겠다고 강조해왔기에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상대방에게 몰표를 몰아주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 까`. 저는 그때 어려운 분들을 마음으로 위하는 정치인이란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뼈저린 반성을 했습니다.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치인이 되려면 지역에 뿌리를 깊이 내린 정치인이 돼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 4년동안 원외위원장으로서 저는 열심히 뛰었습니다. 2006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서 장애인 단체로부터 감사패도 받았습니다. (권 의원은 이때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당시 120대에서 280대로 획기적으로 늘렸고, 바다구경조차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해변캠프를 조성하는 등 장애인 복지정책에 힘썼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정을 평가한다면. ▲오세훈 시장과는 고대 1년 선후배 사이인데다 미래연대 멤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울시장과 정무부시장으로 취임한 뒤 “여러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장기계획으로 지금 당장 시작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래서 문화, 디자인,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계획은 모두 8~10년 계획입니다. 임기 4년 막바지인 오세훈 시장도 그래서 한 번 더 서울시장에 출마해 프로젝트를 완성할 생각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초창기에는 시민들이 `디자인 서울`이란 화두에도 공감하지 않았는 데, 이제는 디자인 코리아로 발전했습니다. 잘 시작했다고 봅니다. 또 주거정책과 관련해서는 집이란 곳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란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쉬프트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선풍적인 호응을 받고 있죠. 후분양제도도 함께 만들었습니다. -장애인 정책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 계기가 있다면. ▲노원구가 서울에서 장애인이 가장 많은 지역구입니다. 그래서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히 관심을 갖게됐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도 작은 것에 고마워하고, 인간적으로 더 따뜻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면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배구협회장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더구나 장애는 후천적인 것이 90%인 만큼 누구나 잠재적인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인 정책은 비장애인의 보험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끝으로 권 의원의 정치철학은 어떤 것입니까. ▲자유민주주의에서 좋은 공동체는 승자로서 앞서가는 사람은 세금내고 공정한 질서를 지키는 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패자나 낙오자에 대해서는 나눔과 배려로 지원을 해 줘야 합니다. 이런게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는 그런데서 의미와 보람과 사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민본21이란 초선의원 모임을 통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정책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느쪽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09-10-05

안전도시 지정 선봉장 이재만 대구 동구청장

“외국기업·병원 유치 인프라 구축” 소방박물관·시민안전테마파크 연계 청신호첨복단지·혁신도시 등 건설로 위상 재정립대구 동구가 지난달 29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안전도시 시범도시`로 지정됐다. `안전무방비 도시` `대형화재의 도시`라는 오명을 가진 대구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선봉장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동구는 최근 안전도시 지정과 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 제2과학고 등 굵직한 사업을 잇따라 유치하고 있다.대구 이재만사진 동구청장을 만나 안전도시 사업 방향과 앞으로 동구의 새로운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안전도시란 무엇이며 간단한 소감은.▲안전도시란 안전, 안심, 안정된 지역을 만들기 위해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합심노력하는 안전공동체를 형성해 각종 안전사고와 재난예방을 위한 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도시를 말한다. 이번 안전도시 선정으로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형성돼 기쁘다. 또 이번 사업유치가 구청 직원들의 자긍심과 화합의 계기가 돼 뿌듯하다.-대구·경북에서 유일하게 동구가 선정된 의미는.▲이번 안전도시 선정으로 소방박물관을 시민안전테마파크와 연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다. 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우리지역 브랜드 가치를 형성함으로써 외국 병원과 외국 기업들이 좀 더 편안하게 들어 올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안전도시 선정에 따른 인센티브 5억원의 사용 계획은.▲당초 10억원의 사업계획 수립해 행안부에 제출 했으나 5억원으로 결정됨에 따라 사업 추진에 있어 차질을 빚고 있다. 우선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재난 예보, 경보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보행자 보호를 위한 사업, 우범지역에 대한 방범 CCTV 등을 설치하는 등 주민들을 위한 안전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동구가 최근 굵직한 사업들을 잇따라 유치하고 있는데 비결은.▲주민과 공무원 모두가 한 뜻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구청장은 실무자들과 전문가들이 잘 어울려 일 할 수 있도록 자리만 깔아줬을 뿐이다. 동구는 그동안 전국평생학습축제, 제2과학고, 첨단의료복합단지, 안전도시 등을 유치 할 때마다 실무자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T/F 팀을 구성해 거의 합숙을 해 가면서 기획안과 제안서 등을 만들어 왔다. 그것이 가장 큰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고생한 만큼 큰 성과도 거둬 기쁘게 생각한다. 유치 성공에 기여한 이들에게 그만한 상이 주어질 것이다.-동구의 비전을 꼽는다면.▲현재 동구는 지역에서 가치와 위상이 새로이 재정립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시아폴리스, 첨단의료복합단지, 신서혁신도시 등 큰 국가사업으로 인해 동구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 이뿐 아니라 동촌유원지 개발, 동대구역세권 개발, 신암뉴타운 건설 등의 사업들로 인해 동구가 좀 더 알차고 성공적인 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김낙현기자 kimrh@kbmaeil.com

2009-10-05

`내 사랑 내 곁에`

말할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그가 당신을 울린다생과사 기로에 선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루게릭병은 운동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어 지능, 의식, 감각은 정상인 채 온 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어가는 희귀병이다.아직까지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없어 대개 발병 후 3~4년 안에 호흡에 필요한 근육마저 마비돼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다.팔다리나 얼굴 근육 마비를 시작으로 결국에는 눈만 깜박거릴 수 있을 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병이 진행되는데, 말짱한 정신으로 하루하루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변해가는 자신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 불린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루게릭병을 처음으로 조명하는 영화다.루게릭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종우와 그의 곁을 지키는 지수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통해, 아직까지 치료법이 없어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루게릭병에 따뜻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기존의 신파스토리와는 차별화된 눈물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보는 이의 감정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호소력 있는 연출로 휴먼 장르에 일가견을 보여 온 박진표 감독. `내 사랑 내 곁에`는 그가 전작들에 이어 새롭게 선보이는 휴먼스토리다. `너는 내 운명`에서는 남녀간의 지극한 사랑을,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에게 아이를 빼앗긴 부모의 애끓는 사랑을 다뤘다면,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이야기한다.인간애, 가족애와 관련된 감정들을 총 망라해 전작들보다 한층 풍성해진 드라마를 선보이는 이번 영화는, 박진표 감독의 휴먼 3부작이자 그 완결이라 할 수 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지수-종우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중환자들이 모인 6인실 병동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멜로를 선보인다. 식물인간인 남편이 깨어나기만을 9년째 한결같이 기다리는 노부인(남능미-최종률), 혼수 상태에 빠진 아내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남편(임하룡-임성민), 사고로 불수의 몸이 된 어린 딸 앞에서 눈물을 감추고 가슴으로 통곡하는 어머니(신신애-손가인),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24시간 형을 뒷바라지하는 동생(임종윤임형준) 등, 사연은 제 각각이지만 모두 자신의 삶을 희생한 채 환자 곁을 지키는 가족의 헌신적 사랑을 담은 에피소드들이다. 한계 상황에서도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고 변함 없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가족애를 그린 내 사랑 내 곁에는, 어려운 시대 먹먹해진 우리들 가슴에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20kg을 감량한 김명민과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실제 염습까지 배운 하지원 못지 않게, 조연배우들의 연기 열정 역시 빛났다. 전신마비 혹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역을 맡은 조연배우들이 바로 그들. 6인실 병동 환자들을 연기한 춘자 역의 `임성민`, 옥연의 남편 역의 `최종률`, 진희 역의 `손가인`, 배석중 역의 `임종윤`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역할이라, 슛 사인과 동시에 한치의 움직임도 허용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연기를 펼쳐야 해 남모를 고충을 겪었다는 후문이다.이들 중에서도 특히, 교통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진 춘자 역의 임성민은 뇌수술을 받는다는 설정을 위해 삭발 연기까지 불사해 스탭진의 찬사를 받았으며,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손가인은 아이돌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를 8kg나 늘이고 노메이크업으로 출연하는 연기투혼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개성 넘치는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 투혼 역시, 내 사랑 내 곁에가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2009-10-02

내연산, 가을을 지나다 ①...김영아

하루만 지나면 민족 대명절인 한가위다.이번 한가위 명절은 연휴가 짧고 신종플루 때문에 고향에 오가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한가위 연휴, 포항 청하 현감을 지낸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사랑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은 김영아 작가의 `내연산, 가을을 지나다`를 펼쳐보자. 소설은 내연산과 12폭포와 진경산수가 병풍처럼 펼쳐져 `가을 풍경화`를 음미하듯 따뜻한 감동이 전해진다. 포항문인협회가 주최한 `포항시 승격 60주년 기념 포항소재문학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포항 소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포항의 진면목을 드러낸 수작이다. 절집에 들어설 즈음 이미 날이 어두웠다. 아침부터 두텁게 누르고 있던 구름은 끝내 점심참을 지나서 비를 뿌리고야 말았는데 그걸 피하느라 월포리 주막에서 지체한 게 시간을 늦추었다. 비는 제법 당찬 꼴이었다. 다행히 바람이 잦아 뱃길을 열어주었던 모양이다.울진에서 출발한 뱃길은 길지 않았지만 겸재에게 유독 버거운 길이었다. 간밤에 날씨가 심상치 않아 뱃길이 어렵겠다는 사공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하 낙담을 하자 그 모습이 오죽했으면 사공이 되레 왠만하면 가보도록 하자며 안심을 시켰다. 일단 그 산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자 한 순간이 급했고 산길보다는 바닷길이 먼저였다. 다행히 새벽에는 파도가 높지 않고 바람이 순해 출항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남쪽으로 순조롭게 불어줄 것 같은 바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들끓기 시작했다. 점점 짙어지는 구름과 함께 바다도 저 깊은 속에서부터 몸을 웅크리며 조금씩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까지 온 것만도 용하다며 부산포로 멸치를 실러 가는 사공은 기어이 여기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겸재는 좀체 없던 멀미기운에 뱃속의 노란물까지 게워내고서야 기진맥진 뭍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환갑을 넘기고도 세 해가 지났으니 나이 탓인가... 겸재는 허우룩해진 자신의 몰골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울진에서는 길값을 치르느라 열흘을 앓아눕기까지 했는데 아직 그 추렴을 하는 건지 몸은 마음을 비웃듯 자꾸 처지고 있었다. 주막에서 비를 피하는 동안 잠시 몸을 가누고 걸음을 나섰지만, 월포 바다에서 절집에 이르는 평평한 들길에도 좀체 속도를 내지 못했다. 오늘 내로 내처 계곡을 올라 암자까지 가려던 계획은 아무래도 무리였다.자꾸 채이는 퍽퍽한 발걸음에 오늘밤은 산 아래 큰 절집에 몸을 맡겨야겠다고 마음을 눅였다. 그러자 며칠 전부터 솟구치던 알 수 없는 조급증도 할 수 없다는 듯이 푸시시 한 귀퉁이 바람이 꺼지고 말았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람에 얼마동안을 떠밀려 다녔던가. 어디로 자신을 떠밀고 있는지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던 이상한 열기, 달포 전에 서울을 나서 관동지방으로 내쳐 방향을 정했을 때만 해도 그것이 다 그림 때문이라 생각했다. 어머님 탈상 동안 소홀했던 그림공부가 그 열기를 식혀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왠일인지 강릉 경포대에서 너른 바다를 바라보며 붓을 잡았는데도 막막함은 삭혀지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망망대해에 나앉은 듯 아득함은 커져만 갔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강릉에서 삼척으로, 삼척에서 울진으로 걸음은 남쪽을 향하고 있었고, 급기야는 나그네의 노독이 병을 부르고 말았다. 온몸이 불덩어리로 타오르고 뼈마디마디는 제각기 녹아 흩어져 갔다.    몸을 버리니 정신은 도리어 가뿐해지듯 명료한 기운이 들면서 그제야 이 산이 떠올랐다. 이 계곡 물소리가 타는 듯한 갈증을 적시며 귓가를 울렸다. 내연산, 내연산 계곡으로 가자. 정신은 몸을 떠났다가 이윽고 돌아와 채근하듯 얼른 함께 가자 졸랐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둘러 뱃길을 알아본 건 어쩌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머뭇거리며 에돌아온 시간이 너무 멀었던 게 아닐까. 겸재는 이토록 진이 빠진 게 멀미 탓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절집에 이르는 긴 오솔길 앞에 서자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여기인가, 그토록 몸이 달게 쫓아온, 아니 쫓겨 온 곳이 이곳이란 말인가. 솔바람 한 줄기가 반가운 인사인 냥 겸재를 훑고 갔다. 아, 이 향기… 고작 길어야 사 년인데도 그 세월은 한 겁을 돌아온 듯 아득하기만 하다. 겸재는 시간 속으로 잠기듯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천천히 절집 불빛을 향해 걸었다. 저녁 예불도 끝난 절집 마당에는 기척이라곤 없었다. 요사채로 건너가 인기척을 내자 벌써 자리에라도 들었던가, 옷매무새를 다시 하며 불목하니 여자가 내다보았다. 여자는 어두운 마당에 후줄근히 서 있는 사내 몰골에 흠칫 놀라던 기색이더니 경계하는 눈빛을 바꾸지 않은 채 주섬주섬 방안의 불빛을 뒤로 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뭔 일인교?”“하룻밤 신세를 좀 질까 하는데…”도포갓에 청려장을 짚은 겸재를 어떻게 대해야할 지 몰라 애매한 목소리와는 달리 여자의 눈빛은 어둠을 핑계로 과감하게 겸재의 위아래를 훑고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는 피로한 기색에도 당당했고 행색은 소박했지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품이 엿보였다. 여자는 결정을 내렸는지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마당을 질러가더니 잠시 뒤 나타나 겸재를 객방으로 안내했다. 내일 아침 예불 후에 스님을 찾아뵈라는 전갈을 하며 여자는 휑하니 가버렸다. 서넛 사람이 족히 누울 방 안은 이부자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이 휑했다. 저녁끼니 안부라도 좀 물어줄 것이지, 야박하단 생각에 혀를 차면서도 겸재는 방바닥에 녹아들듯 몸이 먼저 풀어졌다. 뱃멀미 후라 주막에서 먹은 점심은 한두 술 뜨는 둥 마는 둥 영 부실했더니 공복감이 심하게 밀려왔다. 쓰라린 공복감 위로 문득 그리운 냄새가 났다. 목을 따라 넘어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죽, 죽을 떠 넣어주는 조용한 손놀림, 그 손동작을 따라 일었다 잦았다 밀려오는 맑은 향내, 산과 물과 초목이 녹아든 것 같은 깊은 향내, 겸재는 한 겁의 시간을 돌아 그 향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어둠인 듯 빛인 듯 모든 형체는 자취를 감추고 색도 없이, 사위는 사라지고 말았다. 내 몸 조차도 형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씨앗 하나 싹을 틔우듯이 가슴 저 안에서 뜨거운 덩어리 하나가 터졌다. 얼음처럼 꽁꽁 굳어있는 몸속에서 그것은 너무나 작고 여린 것이었다. 하지만 희미하게, 혈관들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근육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툭, 하고 끊길지 모를 위태로운 것이었지만 분명 땅을 뚫고 나오는 작은 생명의 시작이 그렇듯 그것이 몸을 살릴 불씨라는 걸 겸재는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씨는 자신의 몸 안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후후, 숨을 불어넣어 살리고 있는 불씨, 이제라도 그 숨을 멈춘다면 하릴없이 꺼져버릴 불씨, 겸재는 불씨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 정신을 모을 뿐이었다. 간절함이 통했던가. 불씨는 조금씩 힘을 얻어 불꽃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스스로 온기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안정을 찾았다. 겸재는 세상의 문턱으로 다시 돌아온 자신을 느끼며 비로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온 몸이 따뜻하게 부풀면서 꽃이 되고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겸재는 빛보다 먼저 소리를 들었다. 타닥타닥, 나뭇가지가 타들어가면서 터지는 소리였다. 자신이 누워있는 사방으로 뽀얀 연기가 자욱하니 들어차 있었다. 겸재는 저도 모르게 으컥으컥. 잦은 기침을 뱉고 말았다. 기침소리가 일자 나뭇가지 터지는 소리가 멈칫, 했다. 그리고 잠시 망설임이 일렁이듯 연기가 구석구석으로 몰리더니 낮게 지어낸 기침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열린 건 또 한참을 지나서였다.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기가 뭉클뭉클 방으로 몰려들었다. 연기 너머로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정신이 드십니까?”여인의 목소리였다. 여린 개울 물소리처럼 떨리면서도 곧게 떨어지는 폭포줄기처럼 숨김이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어떻게… 으컥으컥”이곳이 어디인지, 당신은 누구인지,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무엇보다 겸재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던 자신이, 그러다 어둠과 함께 살을 에는 추위에 점점 정신을 놓았던 자신이, 어떻게 지금 이렇게 세상의 문턱으로 돌아와 있는지 그것을 묻고 싶었다. 아니 이곳이 정녕 아직도 세상인지 그것을 묻고 싶었다. 여인은 그 와중에도 방안으로 몰려드는 연기를 어떻게든 막아볼 요량으로 부지런히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이곳은 여름 암자로 겨울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으리의 상태가 하도 위중해서 이곳으로 모셨는데… 생솔가지를 태우다보니 연기가 많습니다.”말끝에 여인도 낮은 기침을 뱉고 있었다. 그제야 연기 틈새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이 많지는 않지만 둥그스름한 얼굴은 순해 보였고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얼핏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것은 아마 여인의 옷차림 때문일 것이다. 여인은 치마저고리 대신 사내들이 입는 바지저고리 차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머리매무새도 뒤로 질끈 동여맨 수건차림이었다. “우선 방을 데워야 하오니 불편하시더라도 잠시만 참으셔요. 아직 움직이시면 아니 됩니다. 불을 지펴 더운 물이라도 준비할테니 잠시만 기다리셔요.”여인은 마지막으로 연기를 끌어 모아 문 밖으로 내리고는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겸재는 다시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흙으로 발려진 벽과 바닥은 군데군데 금이 가있고 한둘 제법 큰 구멍이 나있기도 했다. 일어서면 머리라도 부딪힐 낮은 천장엔 대들보 역할의 나무 기둥이 얼기설기 얽어져 있었고, 기둥에는 마른 나무뿌리와 푸성귀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흙으로 다져진 바닥엔 갈대로 엮은 자리가 깔려 있었는데 겸재는 바로 그 위에 누워있었다. 이불이라고는 얇게 솜을 넣은 누비이불 한 채가 반은 깔리고 반은 덮은 채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그 위에 한 겹 한 겹 옷조각들이 포개져 얇은 이불의 온기를 보태고 있었다. 제일 위에 걸쳐진 건 제법 두둑해 보이는 솜외투는 겸재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 겸재는 이불 속에 가려진 자신의 몸이 어딘가 낯선 느낌에 황급히 손으로 더듬었다. 웃옷은 속옷조차 벗겨진 채로 맨살이 닿았다.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몸을 일으키니 왼쪽 다리 무릎 아래로 칼날 같은 통증이 지나가면서 겸재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물고 말았다. “으윽!”조심성 없이 터져 나온 신음소리에 또다시 문 밖에선 멈칫, 정적이 지나갔다. “괜찮으시옵니까?”여인의 목소리는 여름날 그득하게 물을 채운 저수지처럼 넉넉하니 일렁였다. “괜찮소…”“아직 움직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리고 의관은… 젖어서 지금 불기운에 말리고 있사옵니다.”여인은 마치 보고 있는 것 마냥 겸재의 속을 꿰뚫었다. 겸재는 머쓱하니 자신의 맨몸을 쓸었다. 아직 불기운이 올라오지 않은 방바닥의 냉기가 새삼 몸을 오그라들게 하였다. 조금 전 분명 나를 끌어올린 그 온기, 그 온기의 정체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웠던 그 온기, 겸재는 이불을 더욱 당기면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상한 평온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겸재를 깨운 건 빛이 아니라 소리였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 계곡 얼음장 아래로 얼어붙지 않고 흘러가는 물소리, 마침내 얼음을 녹이고 봄을 부르는 물소리, 그런 물소리를 닮은 여인의 목소리였다.“일어나셔요. 잠시 눈을 떠보셔요.”목소리는 겸재를 녹이고 겸재를 일으켰다. 눈을 뜨고 목소리를 먼저 보고서야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행색은 남자였으나 살짝 외로 꼬고 있는 자태는 영락없는 여인의 것이었다. 한결 밝아진 방 안은 그새 연기도 빠져나가고 없었다. 여인은 나무숟가락이 걸쳐진 사발을 겸재 곁으로 한 뼘 더 밀었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 곡기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곡식알을 있는 대로 모으고 부족한 대로 말린 푸성귀를 넣어 끓인 것이온데 얼른 허기를 달래도록 하십시오.”사발에서 솔솔 김이 올랐고 김이 퍼지자 구수한 냄새도 따라 퍼졌다. 겸재는 미처 몸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사발과 여인을 번갈아보았다. “오늘이 몇 일이나 됐소?”“열이레이옵니다.”열이레라… 보름달이 비치는 내연산 계곡을 보기 위해 들어왔으니 그새 이틀이 지났다. 겨울에 들어서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눈은 올 겨울 유난히 잦았다. 내연산 계곡의 암벽들이 눈을 얹은 채 달빛을 받아 빛나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는 절경이었다. 동헌에 나앉으면 고을의 정사를 맡은 현감이었지만 동헌을 나서면 그림에 평생을 바친 환쟁이에게 그것은 놓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했다. 따라나서는 시동마저 물리치고 기어이 혼자 걸음을 한 것은 오랜만에 한가한 틈을 타 마음껏 화폭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었다. 절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계곡으로 들어온 것도 괜스레 현감 신분을 내세워 주위를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어두운 밤길이다, 얼어붙은 눈길이다, 염려하는 주위의 만류를 벗어나 내키는 대로 풍광을 흠씬 맛보려는 자신의 욕심이기도 했다. 그러다 밤이 어두워지면 잠자리를 얻어 들어가도 늦지 않으리란 계산이 있었고 마침 달은 밝고 눈이 그친 뒤의 밤공기는 포근하기까지 했다. 두껍게 쌓인 눈길을 밟으며 올라가는 계곡길은 더뎠지만 결코 더디게 느껴지지 않았다. 얼어붙지 않은 포실포실한 눈은 미끄럽지 않았고 발이 닿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맑은 소리를 내는 발자국을 만들었다. 한참 오르다보면 어디선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눈뭉치가 텅텅 화답하곤 하는 것이 마치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듯했다. 그래서 욕심도 잊고 절제도 잊었다. 그저 환하게 열린 길을 따라 무작정 들어갔다. 가다가 사무치면 화폭을 열어 붓을 들고 불같은 마음을 담았고, 그렇게 덜어낸 마음의 불덩이는 조금 가다보면 다시 뜨거워지곤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소.”겸재는 다시 떠올려도 사무치는 광경에 탄식하고 말았다. 뜬금없는 겸재의 탄식에 여인은 잠시 의아한 눈빛이었으나 이내 겸재의 마음을 꿰뚫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골짜기의 아름다움은 천하명산 금강산을 옮겨놓은 것과 같다고 하옵니다.” 겸재는 여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흠칫 놀란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살짝 고개를 틀고 앉아있는 모습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겸재는 서른 중반에 두 번 금강산을 다녀왔다. 처음엔 스승을 모신 길이었는데 그때 본 금강산의 아름다움이란, 말로도 그림으로도 다 할 수 없어, 그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에 그만 환쟁이의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한 번 본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아 기회를 찾던 중에 이듬해 다시 친구의 배려로 두 번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은 그때 남긴 몇 장의 그림으로 단박에 겸재에게 당대 최고의 화가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정작 겸재는 그 그림만으로는 그 산을 볼 수도, 보여줄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더 컸다. 언제 다시고 그 산을 볼 수 있다면 내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텐데, 하지만 녹록치 않은 세상사의 인연은 좀체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금강산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겸재가 한평생 소망하는 일이거늘 세월은 무심하니 흘렀고 벌써 환갑이 코앞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로, 어지러운 세상사 따라 흘러오다 보니 이를 수 없는 절망으로 가로막힐 때가 더 많았던 금강산.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그 자태를 돌이킬 때마다 머리엔 가슴엔 벌겋게 달군 인두 자국이 찍혔다. 내게는 아직도 이리 뜨거운 이름이거늘, 이리 아픈 이름이거늘 여인의 입에서는 저리 무심하게 나오다니…“금강산을 아시오?”겸재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벗고 있는 자신의 몸보다 더 깊은 곳까지 송두리째 여인 앞에 드러내고 만 것 같았다. 그런 한편에는 여인 앞에서 무람없는 아이처럼 보채고 싶다는 간절함이 솟았다. “예, 일전에 한 번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여인의 목소리는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눈뭉치마냥 텅텅 무심하니 거침없었다. 계속※ 이철진화가 프로필 △영남대학교 대학원 졸업△개인전 22회(뉴욕, 서울, 부산 등)△한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4국초청 작가전(일본/중국)△영남대학교, 동국대학교, 대구대학교 강사 역임△대구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앙비숑패션쇼 공동참여△현재)대구시미술대전 초대작가, 한국미협포항지부 한국화분과위원장, 포항예술고등학교 미술과 재직

2009-10-02

한가위 건강관리 Tip

추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 친지를 만나는 귀중한 시간. 그러나 혹시라도 사고를 당하거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명절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신종플루 대유행이 예고된데다 연휴가 주말과 겹치는 바람에 귀향과 귀성, 성묘 등 일정을 소화하기에 연휴 기간이 너무 짧아 자칫 건강에 큰 무리를 줄 수 있다. 포항남구보건소 건강관리과 신건화 과장은 “일반적으로 명절에는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로감과 과음, 과로가 누적돼 신체리듬이 무너지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면서 “특히 올 추석에는 신종플루 대 유행이 예고돼 손씻기 등 기본 건강 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거리 운전, 5010 지켜야 장거리 운전은 근육피로로 운전자의 건강을 헤치고 졸음으로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때문에 운전 시에는 `50분 운전, 10분 휴식`의 5010원칙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 중요한다. 운전 중간 중간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기지개를 켜거나 제자리를 뛰는 등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좋다. 운전 중에는 등받이를 90도로 세우고 엉덩이를 뒤로 바짝 밀착시킨다. 운전대와의 거리는 발로 클러치를 밟았을 때 무릎이 약간 굽혀지는 정도로 하고 졸음을 예방하기 위해 수시로 환기를 시켜야 한다. ▲일상 생활 리듬 유지해야 일반적으로 연휴기간에는 평소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음식 먹는 시간이나 양이 변화하기 때문에 평소 생활리듬이 깨지지 쉽다. 3일 이상 불규칙한 생활리듬이 계속되면 신체항상성(몸과 마음의 기능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능력)을 잃을 수 있다. 신체 항상성 유지가 흐트러지면 연휴 후 일상생활 복귀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후유증으로 고생하기 쉽고 질병에 대한 저항기능이 떨어져 감기와 몸살 등이 동반 될 수 있다. ▲음식 섭취 시 `과(過)`는 금물 명절에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이 먹게 된다. 게다가 부침류, 떡 등 대부분 명절음식은 열량과 콜레스테롤이 높다. 여기에 식사와 곁들이는 반주와 과일, 식혜, 수정과 등의 후식까지 합하면 하루 열량 4천~5천㎉ 섭취는 아무 것도 아니다. 과음, 과식으로 배탈이 나거나 구토를 할 때는 기름기 있는 음식을 피하고 보리차, 꿀물 등을 마시거나 한 두 끼는 죽 등을 섭취한다. 설사를 할 때는 탈수 현상을 막기 위해 물을 충분히 먹고 체했다면 하루 정도 먹지 않고 위를 비우는 것이 가장 좋다. ▲쓰쓰가무시 등 야외 전염병 주의 추석 명절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성묘. 특히 성묘 시에는 일명 `가을철 열성 전염병`으로 불리는 쓰쓰가무시병, 렙토스피라증,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출혈열) 3대 전염병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고열이 동반되는 이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긴 옷을 입어서 피부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고인 물로 몸을 씻거나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또 함부로 풀밭에 드러눕지 말아야 하고 논 등에 들어갈 때는 맨발로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성묘 후 1~2주일 후에 심한 열과 오한, 몸살 기운이 있으면 곧바로 병원을 방문해 진찰을 받아야 한다. /최승희기자 shchoi@kbmaeil.com

2009-10-01

고향 가는 길 `신종플루` 이렇게 대비하세요

10월2~4일 추석 연휴기간 전후로 신종플루 환자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지는 환절기인데다가 대중교통 이용 시 등 많은 인원이 밀집된 곳에서 호흡기를 통한 감염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보건당국은 추석연휴에도 거점병원과 약국이 변함없이 운영되도록 하고 공항과 항만, 관광지 등 다중이용시설에 손세정제 비치 등 방역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방수칙만 철저히 지키면 귀향을 포기한다거나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석범 보량MCM의원 원장은 “현재까지 치명률이 일반적인 계절독감 수준인 0.1% 이하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면서 “다만 인구 이동이 많은 추석연휴기간 중 확산 우려가 있으므로 국민들 각자 개인위생에 주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종플루의 감염과 예방 감염자는 증상이 생기기 하루 전부터 아프고 나서 약 7일 후까지 다른 사람에게 감염을 전파할 수가 있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에는 입을 통해서 아주 작은 비말이 매우 많이 튀어나오는데 감염된 사람인 경우에는 이 비말에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어 감염자의 1~2 미터 이내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다른 사람의 입이나 코, 눈과 같은 점막으로 들어와 감염이 전파된다. 따라서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대규모 감염이 우려되고 있으나,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는 사람에 가까이 가지 않거나 필요 시 마스크(일반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의 주의를 철저히 하면 감염의 위험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감염 경로로는 감염자가 재채기 등을 할 때 맨손으로 막아 바이러스가 오염된 손으로 만진 공공 시설물(문 손잡이, 엘리베이터 버튼, 대중 교통의 손잡이 등)을 손으로 접촉할 때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 공공 시설물을 만진 이후 또는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손을 비누와 물로 깨끗이 씻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고,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알코올을 함유하는 손 소독제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공공 시설물 접촉 후에 손 소독을 해주는 것도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신종플루의 증상 신종플루에 감염되었을 때 증상은 해마다 겨울철에 유행하는 계절 인플루엔자 또는 일반적인 감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열이 나고 기침이나 목이 아픈 증상, 콧물이나 코막힘 등이 있을 수 있고 그 외에도 두통이나 몸살 기운(근육통), 구토나 설사 등이 있을 수도 있다. 현재 진단적 검사나 치료제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신종플루를 의심하는 기준으로 규정한 것은 열이 37.8도 이상 나고, 동시에 기침, 목이 아픈 증상, 콧물이나 코막힘 세 가지 중 하나 이상 있는 경우다. 만약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느낀다면 우선 거점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 또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휴지로 코와 입을 가리고 쓰고 난 휴지들은 주의해서 버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절 대이동으로 공공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므로 가급적 그 장소를 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일단 편히 쉬고, 많은 양의 수분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신종플루 확진이 내려진다면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고 처방된 타미플루나 리렌자를 복용해야 한다. ◆신종플루에 걸렸다면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신종플루 예방수칙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만약을 대비해 고향 근처의 거점병원과 약국을 확인하도록 한다. 추석연휴 기간에도 전국 454개 응급의료기관과 253개의 전국 모든 보건소, 1천300여개의 보건지소가 신종플루 비상진료를 실시한다. 이중 보건소는 매일, 보건지소는 3분의 1씩 돌아가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료한다. 이에 따라 낮에는 보건소나 보건지소, 야간 및 새벽에는 응급의료기관에서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거점약국도 당번약국을 지정해 연휴기간 중 최소 600개 이상을 매일 운영한다. 지역별, 일자별, 시간대별로 이용가능 한 의료기관, 약국 등은 복지부, 중앙응급의료센터, 질병관리본부, 각 보건소 홈페이지 등에 게시돼 있으며, 응급의료정보센터(1339), 건강보험공단 콜센터(1577-1000), 보건소(129)에서도 전화로 알아볼 수 있다. 특히 1339에서는 신종플루와 관련된 진료 상담도 가능하다. /이현주기자 sun@kbmaeil.com

2009-10-01

창의성을 키우는 다양한 소통놀이

마음을 열고 사고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분위기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마음을 열게 하고 소통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놀이나 게임이 아주 좋은 방법이다. 창의성을 길러주기 위해서 놀이나 게임을 할 때는 창의성 요인을 고려하여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유추성과 관련된 학습을 할 때는 스무고개나 퀴즈풀기를 하고, 유창성과 관련된 활동을 할 때는 끝말잇기나 스피드 퀴즈 같은 게임을 하면 좋다. 각 요인별로 알맞은 놀이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추성 및 호기심을 길러주는 비밀상자 게임을 해 보자. 이 게임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상자를 준비하여 그 속에 어떤 물건을 넣은 다음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맞히는 놀이이다. 이 활동을 할 때 아이들은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 기관을 다 이용할 수 있다. 냄새를 맡아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상자를 흔들면서 소리를 들어보고, 식품 종류라면 맛을 보는 등 여러 감각기관을 활용하여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맞힌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을 넣다가 나중에는 구조가 복잡한 물건을 넣고 무엇인지 알아맞히게 한다. 다음 민감성 및 정직성과 관련된 오감놀이를 해 보자. 창의성에서 이야기하는 정직성은 도덕적인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관찰한 것과 생각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꾸밈없이 표현하는 태도를 말한다. 청각놀이의 경우 시계소리, 새소리, 시냇물 소리 등을 가족과 함께 듣고 소리가 들리는 대로 적어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시냇물 소리를 `졸졸졸`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들어보면 물의 양, 개울의 모양, 물의 빠르기 등에 따라 소리가 각각 다르게 들린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같은 시냇물소리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각이 생기게 된다. 같은 종류의 사과나 나뭇잎에서도 다른 점을 찾아낼 정도가 되면 이 활동은 성공이다. 창의는 남과 다른 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므로 이러한 활동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다음 융통성과 관련된 놀이로 다른 용도 말하기를 해 보자. 다른 용도 말하기는 어떤 물건을 정한 후 그것의 원래의 용도 이외에 다른 쓰임새를 많이 말하는 게임이다. 가족이 할 경우 두 팀으로 나누어서 하면 더 재미있다. `두루마리 화장지의 다른 용도 말하기`가 주제일 경우 `노래방에서 머리띠로 두른다`, `뭉쳐서 종이 눈싸움을 한다` 등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고정관념을 깨뜨리게 하고, 실제 생활에서 같은 물건을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므로 그 효과가 크다. 생활 속에서 자녀의 창의성을 늘 자극하기 위해서 다음 방법도 권하고 싶다. 자녀가 외식을 하자고 할 때 선뜻 요청을 들어주지 말고 주어진 주제에 대한 생각을 50가지 이상 적으면 외식을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모조지 1/2 정도 크기의 종이를 벽에 붙여놓고 번호를 적어가며 주제에 대한 생각을 쓰도록 한다. 주제 : 두루마리 화장지를 다른 용도로 쓴다면? 이렇게 하고 며칠이 걸리더라도 50개가 달성되면 외식을 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은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어느 정도 숙달되면 예상 외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게 되고, 한 가지 주제로만 계속 생각하기 때문에 몰입훈련을 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창의성 교육을 별도 프로그램을 가지고 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생활 속에서 이렇게 게임이나 놀이를 통해 쉽게 접근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Create yourself!

2009-09-30

세기의 전투기

제1차 세계대전에 사용되었던 프로펠러 전투기들은 전투보다는 정찰과 연락이 주 임무였다. 주 무기는 총이었고 재래식 폭탄을 직접 던지는 원시적인 방법이 동원됐다. 총도 요즘처럼 비행기에 장착된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조종하며 권총이나 소총을 이용해 직접 사격하는 방식이었다. 제트 엔진 등장은 전투기 개발 역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제트기 시대의 문을 연 첫 국가는 독일이다. 항공기 설계자였던 에른스트 하인켈이 개발한 HE178이 그 주인공이다. 1939년 8월 27일 처음 비행한 He178은 한스 폰 오하인 박사가 개발한 엔진과 헹켈 항공사의 특별 부서에서 제작한 항공기를 결합한 작품이다. 영국에서는 이보다 앞서 프랭크 휘틀이 제트엔진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정부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해 `세계 최초 제트기`의 영예를 He178에 넘겨주게 된다. 하지만 이후 정부 지원을 받아 완성된 휘틀의 제트엔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첫 전투기인 글로스터 E28/39에 장착됐다.1941년 5월 14일 상공에 날아올랐다. 하지만 국제항공연맹이 인정한 최초 제트 비행은 1940년 8월 27일 이태리의 카프로니 캄피니 CC-2의 비행이다. He178의 첫 비행은 극비에 부쳐져 제2차 세계대전까지 그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대 전투기인 첫 제트 `전투기`는 쌍발엔진의 하인켈 He280. 이 전투기는 1941년 3월 30일 첫 비행에 나섰다. 이 비행기는 3바퀴의 착륙장치와 비행기가 격추됐을 때, 공기압축으로 조종사를 사출시키는 좌석 등의 앞선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 공군은 실전배치가 가능한 세계 최초의 제트기 개발을 위해 중도에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이를 대신해 개발된 것이 바로 메서슈미트 Me262 슈발레(Schwalbe)다. 슈발레는 독일어로 `삼키다`라는 뜻이다. Me262는 시속 870km의 빠른 속도와 4개의 30mm 기관포를 갖췄다. 영국의 첫 실전배치 제트기는 글로스터 미티어로, 1943년 3월 5일 첫 비행을 했다. 자동차로 유명한 롤스로이스사의 휘틀 W2 엔진을 장착한 이 비행기는 첫 교전을 제트 전투기가 아닌 독일의 무인비행 유도폭탄 V-1과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은 독일과 영국에 비해 뒤늦게 제트기 개발에 나섰다. 첫 생산품은 1944년 1월 8일 록히드마틴 스컹크웍스사의 XP-80이다. 제트기의 이름인 `P-80`앞에 붙은 `X`는 시제품을 뜻한다. P-80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세 대가 유럽에 도착했으나, 실제 임무에는 맡지 못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에서는 F-80이라는 이름으로 지상공격 및 정찰 임무를 왕성하게 수행했다.생각 생각 ▶초등1. 제트기 시대의 문을 연 첫 국가는 어느 나라의 누구인가요?2. 세대 최초의 제트 전투기는 무엇인가요?3. 기사에 나온 전투기 개발의 역사를 요약해 보세요.

2009-09-30

캄보디아에서 배운 현명한 지혜

이슬 동지여고 3나와는 전혀 다른 그들을 만났던 날을 내가 기억하는 이유는, 우리보다 가난하고 냄새 나며 현저히 낮은 생활을 하고 있던 그들의 문화에 받은 문화적 충격 때문이 아닌, 가난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으로 최선을 다 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존경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10월, 11월에 걸쳐 10일간 캄보디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다들 `힘들었지?`라며 안부를 물었지만 `음… 아니?`하며 갸우뚱거리는 것이 제 대답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해외 봉사였지만 정말 즐겁게 생활하고 봉사하다 오는 것이 전부인 느낌입니다. 물론 24시간 내내 즐겁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날들을 회상해 볼 때는 늘 `아… 참 너무 행복하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심지어는 `여기에 더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저는 무엇을 하러 비행기로 6시간이나 날아가야 하는 캄보디아까지 간 것이었을까요. 아니, 무엇을 얻으러 캄보디아까지 가야했던 것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그곳에 베풀어주고 온 것보다 얻어온 것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서 올라오는 그 습습한 열기, 엄청난 습도에 한번 숨을 고른 뒤에야 캄보디아 고유의 분위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서 동남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사람들의 모습과 야자수와 같은 잎이 넓은 나무,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도 프놈펜의 모습에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 어색하게 느꼈습니다. 드디어 내가 다른 세상에서 떨어져 와있구나 하는 생각에 한껏 마음이 부풀어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지낸 10일 동안 저는 도마뱀이 천장을 기어 다니는 방에서 지냈습니다. 우리나라 만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거나, 정수기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 그리고 인터넷에 접속해 하루의 뉴스를 확인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10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일, 저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그 어떤 때보다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했던 시간을 보냈습니다. 출발하면서 생활환경의 불편함에 대해 불만 섞인 걱정을 늘어놓았던 제가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음날 드디어 봉사활동을 하게 될 우동지역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약 4시간 정도를 달렸는데 캄보디아의 풍경은 마치 그림 한 폭을 보는 듯 했습니다. 티끌하나 없는 파란 하늘에 넓은 초원에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집, 그리고 마른 소들과 그 소를 모는 현지인도 영원히 잊지 못 할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봉사하였던 곳은 우동지역에 있는 청소년센터입니다. 우리나라에 문화원과 같은 곳으로 여러 학생들이 와서 많은 문화를 배우는 곳입니다. 정좌와 센터 본 건물이 있는 그 곳 처음 봤을 때는 많이 허술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10일 동안 오전에는 정원 정리와 페인트 작업으로 센터를 보수하고, 오후에는 현지 친구들과 서로의 언어 가르쳐주기, 서로 문화놀이 가르쳐주기 등으로 여가 활동을 하였습니다.계속

2009-09-30

(5) 모든 걱정은 사소하다

오늘 하루 그대 일과는 위대하였고 거기에 파생하는 걱정은 사소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충분히 위대할 수 있었던 그대 일과를 망쳐버렸다. 실은 일과를 망친 것도 아니다. 망쳤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가 느끼는 `사소함이란 유령` 때문이다. 대부분의 걱정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그대 하루를 번민하게 만들므로. 오늘 하루 얼마나 사소함이 그대 영혼을 너덜거리게 했는지를 증명해보자. 한 달에 한 번 봉사하러 가는 그대, 오늘도 상담자의 편지를 개봉한다. 기름을 먹인 듯한 반질거리는 편지지에 세로로 정갈하게 써내려간 글엔 가을을 맞는 사내의 우수가 담겨 있다. - 어김없이 가을이 왔네요. 입술은 바싹 말라가고,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예전처럼 집중되지 않아요.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면담자의 아픔은 깊고, 그대 자질은 얕기만 하다. 최선을 다해 들어주었건만 결과는 그대의 이러한 사소한 걱정이 그대를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내게 누군가의 얘기를 들어줄 자질이 없는 게 아닐까? 영혼이 아프다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왜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했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책하고 자책한다. 하지만 자책은 불필요하다. 그대는 성실하게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어쩌면 편지를 쓰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스스로 치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봉사를 마친 그대는 급하게 공식 자리에 참석할 일이 생겼다. 그제야 그대는 복장을 살핀다. 살짝 찢은 청바지에 흰 점퍼를 입은 그대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공식의 밥상에 권위주의라는 주요반찬이 빠진 적이 없으므로 자기검열에 빠진 그대는 또 사소함에 목매기 시작한다. 가을 분위기에 맞는 갈색 원피스를 갈아입고 나오기엔 시간이 촉박하고, 운전대를 잡은 그대는 빨간 신호등에서 교차로를 건널 만큼 찢은 청바지 패션에 골몰한다. 허겁지겁 자리에 앉았건만, 마음이 편치 않으므로 꼬리뼈는 아파오고 지루한 시간이 지속된다. 옆자리 누군가가 흘깃 쳐다만 봐도 찢어진 청바지를 탓하는가 싶어 식은땀이 난다. 실은 갈색 원피스와 찢어진 청바지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투명 비닐 따위를 첨단패션이라고 뒤집어쓰지 않는 한 아무도 그대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대의 고민은 그대가 혹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허상의 지표를 따라야 한다는 부담에 지나지 않는다. 행사가 끝난 뒤 그대는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기 시작한다. 당신과 따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지인의 눈신호를 보면서 그대는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사할 사람은 많이 남았고, 그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지인은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그대는 자책한다. 의례적 인사는 접어두고 지인의 얘기를 먼저 들어줄 걸. 하지만 이 역시 사소한 고민에 지나지 않는다. 지인은 그대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당신을 기다렸던 것이고, 그 부탁이라는 것은 꼭 오늘 이 자리가 아니어도 가능한 것이다. 그야말로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행복해지고 싶은 우리는 정작 그 행복을 위해 너무나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고 말하는 책이 여기 있다. 리처드 칼슨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창작시대, 2000)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얼마나 사소한 것들의 일상에 얽매여 사는지를 곱씹게 해준다. 사소한 오해가 가져다주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 생각과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무분별성, 자기 능력을 의심하거나 회의하는 피곤함, 수시로 변하는 기분에 집착하는 자기연민, 스트레스를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환경 탓으로 돌리는 비겁한 자아 등은 모두 인간이 가지는 특질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일수록 이 허상의 우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 우물에서 질퍽거리는 동안 우리 섬세한 영혼은 잘 보이지도 않는 우물벌레에게 야금야금 갉히고 만다. 작가는 말한다. `몸의 주인이 당신인 것처럼 감정의 주인도 당신이다. 행복은 현재 당신 마음속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기엔 우리 생이 아직은 환희와 풍요의 나날이므로.(소설가)

2009-09-29

에이스리서치 예천출신 조재목 대표

경북 예천출신의 조재목(49) 에이스리서치 대표는 대구·경북지역에서 정치지망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다. 대구·경북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정치전문 여론조사기관으로는 손가락에 꼽는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조사연구방법론에 관한 한 국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만큼 치열한 공부를 통해 정치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자부심으로 대구에 여론조사전문기관 에이스리서치를 세운 지 벌써 15년. 지난 2003년에는 서울에, 2005년에는 중국 북경에 별도 법인을 세웠다. 주로 외국계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여론조사업계에서 꿇리지 않고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에이스리서치는 앞으로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기업 마케팅 분야를 더욱 키우려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조재목 대표를 최근 새로 단장한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나 회사 설립을 전후한 뒷이야기, 선거여론조사를 둘러싼 에피소드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대구·경북 여론조사 전문기관으로서 서울 사무실 확장·이전이 반갑습니다. ▲저는 1994년 대구에서 처음 에이스리서치를 설립해 15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2003년 1월 대구와는 별도로 서울 에이스리서치를 설립했죠. 이는 대구에서 성장한 기업이 돈을 번 뒤 서울로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나름의 애향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법인은 2005년 북경에 사무소 개념으로 설립했는데, 앞으로 중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고 보면 중국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에이스리서치에 근무하는 상근 직원은 15명이다. 그렇지만 비정규 계약직은 100여명을 넘어선다. 전화 여론조사나 면접조사나 모두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채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 사무실에만 전화부스가 60석 있고, 대구 사무실은 서울보다 더 커서 80석의 전화여론조사 부스가 상시운영되고 있다. 연간 매출은 15억~20억원 정도라고 했다. “일 년씩 계약하는 마케팅 조사부문보다는 단발적인 정치여론조사나 사회여론조사에 치중해 왔기에 매출규모가 크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조 대표는 “선거가 있는 해는 매출규모가 크게 변하니까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리서치업계에서 에이스리서치의 위상은 어느 정도입니까. ▲리서치업계는 기본적으로 자본력이 뒷받침된 외국계 업체가 톱을 달립니다. TNS나 닐슨이 1위와 2위를 다툽니다. 이들 업체들은 주로 기업마케팅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기업비밀도 많이 다루니까,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바라지도 않구요. 토종브랜드로는 한국리서치나 갤럽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에이스리서치는 기업마케팅 부문보다 정치나 정책분야 조사를 많이 하다 보니 매출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그래도 전국에서 15위권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 대표가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한 리서치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데는 사연이 있었다. 조 대표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때 대구로 이사 와서 남산초등학교, 사대부속중학교, 영남고교를 거쳐 1988년 계명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이어 1990년 계명대 대학원 심리학과 석사를 취득한 뒤 박사학위를 위해 곧바로 프린스턴 대학 유학을 가려 했다. 그런데 그 해에 계명대에 처음 심리학과 박사과정이 생겼다. 학교에서는 “박사과정 1회 졸업생은 특혜가 있으니, 유학은 안 가도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설득을 했고, 그 말에 대학교수가 꿈이었던 조 대표는 그냥 눌러앉아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비사특별장학생으로 전면장학금까지 받았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지도교수와 사이가 벌어져 학업에 열중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조 대표는 1994년 학교를 나와서 에이스리서치를 설립해 리서치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정치 여론조사를 처음 한 고객은 누구였습니까. ▲최초 고객은 대학 다닐 때 문희갑 전 시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했을 때로 기억합니다. 정치여론조사로는 그때가 처음이었고, 회사를 차린 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얼마 전 돌아가신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 선거 때입니다. -정치 여론조사를 하는 동안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요. ▲박근혜 전 대표가 대구 달성군에 자리 잡게 된 데는 제가 일조를 했던 일화가 있습니다. 당초 박 전 대표는 경북지역 보궐선거에서 문경·예천에 내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구 달성군에 상대후보가 당시 실세였던 엄삼탁 전 병무청장이 내정되면서 적수를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당시 대구 지부장이었던 강재섭 전 대표가 이를 두고 고민하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문경·예천에 내정돼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달성에 냅시다. 여론조사를 해 보면 알겠지만, 엄삼탁 후보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후보로 생각됩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강 전 대표가 이를 허락했고, 여론조사를 해 보니 과연 박 전 대표가 이기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표는 대구 달성군, 문경·예천에는 당시 문경전문대 학장인 신영국씨가 공천됐고, 의성에는 정창화씨가 공천돼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보궐선거에서 모두 이기는 결과를 연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있었던 18대 총선도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 후보의 출현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는데, 어땠습니까. ▲당시 수도권과 대구·경북지역 총선의 선거결과는 모두 예측 가능했습니다. 차이가 크게 나타난 곳은 박근혜 효과가 더 나온 지역이었다는 분석입니다. 처음 친박연대나 친박무소속 연대후보들은 그리 선전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투표 7일 전까지도 그런 양상을 보이다가 막판 3,4일을 남겨두고 여론조사결과가 뒤집어진 겁니다. 그래서 일반국민들은 막판 여론조사 결과를 알 수 없으니, 뒤집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여론조사를 했던 후보들은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정치여론조사 가운데 어떤 선거가 여론조사 결과와 잘 들어맞는지요. ▲여론조사로 선거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대통령선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경선결과나 본선 선거결과 모두 1% 이내 오차로 맞췄으니까요. 그다음이 광역자치단체장,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입니다. 제일 어려운 게 국회의원 총선입니다. 총선의 경우 그때 어떤 바람이 부느냐에 따라 막판 뒤집기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궐선거는 결과 예측이 매우 쉽습니다. -그러면 지난 4월 경주지역 재보선은 어떻게 된 겁니까. 여론조사가 상당히 빗나가는 바람에 말들이 많았는데요. ▲당시 경주지역 재보선 때는 한국 유수의 여론조사전문기관들이 모두 틀렸습니다. 이런 경우는 해석도 어렵습니다. 갤럽의 경우 한나라당 정종복 전 의원이 12.8%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중앙일간지 자체조사에서도 14% 앞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래도 9.8%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결과와 제일 작은 오차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결과가 빗나갔으니, 조사전문가로서 뭐라 변명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국을 끓이는 데, 국 맛을 보기 위해 다 먹어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국 맛을 보려면 국을 잘 섞은 뒤 떠먹어봐야 국맛을 알 수 있겠죠. 그런데 경주지역의 경우 이 국에 다른 이물질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즉 성실히 응답하지 않으려는 유권자들이 너무 많았던 거죠. 저도 현지에 가보니 분위기는 한나라당이 불리한 것 같은 데, 여론조사결과는 여당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오니 그대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죠. -여론조사 전문기관 대표로서 보람은 어떤 것입니까. ▲정부 정책이나 지역 현안문제에 대한 조사에 여론조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지역민의 여론을 응집하는 역할을 할 때 보람이 있죠. 또 어떤 정책이 여론조사를 통해 사전적으로 맞을까 어떨까를 조사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와 맞는 정책인지 아닌지를 알려주고, 해결책도 제시하는 것이 여론조사의 순기능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정책실행 평가도 가능하죠. 결국 여론조사는 국가나 자치단체 운영에 꼭 필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로서 앞으로 다가올 19대 총선을 전망한다면. ▲지역구도가 많이 완화돼 변화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동안 영남과 호남이 갈라져 있었다면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완화될 것이고, 19대 총선에서는 더욱 완화돼 후보의 능력위주로 선거가 치러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입니다. 나라발전을 위해서도 후보능력 위주로 뽑는 그런 선거가 되길 희망하기도 하구요. -대구·경북지역민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여론조사는 DM이나 방문판매와 같이 영리목적이 아닙니다. 즉 여론조사와 마케팅은 구분돼야 한다는 겁니다. 여론조사 요청이 올 때 성실히 답변해주시면 지역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

2009-09-28

`델마와 루이스`

여자, 모순을 넘어 세상을 향해 쏘다영화계에서는 논쟁이 생기면 흥행에 성공한다는 오래된 속설이 있다. 그래서 일부러 논쟁을 만들어 내려 하는 제작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의 본질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델마와 루이스`처럼 예기치 않게 논쟁에 불을 붙이게 된 영화도 있다. 이 논쟁의 아이러니는 그것이 바로 `델마와 루이스`가 비판적으로 조명한 성차별주의적 관점에서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 로드무비 영화는, 논쟁과 별개로, 그 자체로서 비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도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나 데이비스와 수잔 서랜든은 동시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 외에도 `델마와 루이스`는 감독상·편집상·촬영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시나리오작가인 칼리 쿠링에게는 각본상을 안겨주었다.이 영화를 길과 여행의 속도감으로 볼 때, 남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여성의 현실을 중심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비극의 화근은 여행 가방 속의 권총 한 자루,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의 자존심이었다. 이는 여성은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며 더 이상 남성에게 굴복하지도 않는다는 의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오만과 편견에 가득한, 소위 이 사회의 `강자` 들을 향하여 델마와 루이스 두 여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그렇게 시작된 도피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마침내 두 여성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본성을 되찾게 된다. 여성으로서 자신들이 받았던 사회에서의 억압과 남성들의 차별·구조적인 모순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고, 단지 비극적인 순간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을 찾고 기쁨에 넘친다. 이것이 바로 `아이러니` 이다. 그들은 경찰에 쫓기면서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사회의 벽을 뛰어넘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새롭게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그들은 말한다,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 고, `새롭게 눈을 뜬 것 같다.` 고. 그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되찾은 것이다. 그녀들을 죽음의 벼랑에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남성이었다. 학대하는 남편, 성폭행을 일삼는 술집 남자, 돈을 훔쳐 달아난 사기꾼 등등의 남성들로 인해 두 여성의 삶은 급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실은 본질적으로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비극적이다. 아주 비극적인 영화의 결말은, 그러나 오히려 희망을 말하고 있다.아름다운 두 여성의 죽음이 결코 어리석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델마와 루이스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희생된 가엾은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사건의 중심에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와 스릴도 넘치고 남성과 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며, 인간의 자유와 자아발견, 그리고 내적 성장에 관한 심리분석 드라마로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걸작으로서, 대부분의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라스트의 감동, 수려한 영상, 적재적소에 삽입된 음악까지 완벽히 갖춘 작품이다.

200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