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가득한 풀벌레소리에낮별들 깨우는 가만한 새소리자지러지게 울던 아이의 딸꾹질 소리잔반처럼 남은엊그제 천둥소리숯덩이 하나 물에 젖어푸시시 가슴 삭이는 소리내 무릎 속의 그대무릎을 징검돌처럼 더듬어가을을 건널 때슬픔이 고요해진 눈빛 같은 거사랑이틀어놓은 축음기 같은 거내 무릎을 짚으면방금처럼그대 무릎이 다녀간다(부분)사랑의 축음기는 슬픔을 고요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소리를 퍼뜨린다. 시인은 사랑의 발성, 그 표현을 시인은 “슬픔이 고요해진 눈빛”으로 상징화하는데, 그것은 사랑이 슬픈 운명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는 언젠가 내 몸속에서 세월의 ‘징검돌’을 건너 나의 몸으로부터 떠나가리라는 운명, “방금처럼/그대 무릎이 다녀”가리라는 운명. 사랑은 흘러가는 것이어서 헤어짐의 슬픔을 동반할 운명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3-30
산판도 없는 겨울산판집에서 겨울을 나는 사내는눈이 나리면 부지런히 길을 쓸고누가 다녀갔는지 인적도 찾을 길 없다그렇게 겨울을 지날 때푸른 밤하늘에 정점으로 박혔던 간결한 달이방 안으로 조금씩 녹아드는 거다손가락으로 기타 현판을 천천히 끄는 소리처럼산판집 사내가 이불을 스스슥 끌어 올려 얼굴을 덮는다그 소리에 놀란 고양이들은더러 죽은 자의 집에서 떠나기도 했다산판집 겨울은 꽃도 있고 나무도 있어봄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부분)‘산판’은 “나무를 찍어내는 일판”이라고 한다. ‘사내’는 그러한 일판이 없어 텅 빈 “산판집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는 유령처럼 보인다. 화자가 이 산판집을 “죽은 자의 집”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래서 저 ‘산판집’의 겨울은 봄이 필요하지 않다. 그곳은 인간의 소망이 필요하지 않는 공간일 테니까. 그곳에서 산고양이들도 피하는 어떤 사내가 외로이 홀로 살고 있는 이 풍경은 극도로 쓸쓸하고 을씨년스럽다. 문학평론가
2022-03-29
화악산 날 등 바위 한 발 나가면한 발 밀리고 아이젠 신고도 미끄러지는 눈길, 낯설다다음 세상 찾아가는 길이 이럴까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한 장면,누가 도끼로 찍은 것처럼 간밤 내린 눈에 잘생긴 소나무 정수리 쪼개졌다제 몸통 제가 반 갈라 올리는 소신공양이다(….)하얗게 꽁꽁 염했다, 지난 밤 컴컴한 시간화악산 골짝마다 쩡, 쩡, 소나무 몸 열리는 소리 컷겠다그 때 어떤 영혼이 경계를 넘었을라나팔다리 흔들면서 걷는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것 같다꽃피고 새가 울면 사라진 길 다시 만나는 걸까바람도 숨 쉬며 하늘과 땅 사이에서 논다시인은 “화악산 등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죽음과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 죽음과의 마주침이 시인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지는 않은 것 같다. 눈으로 “하얗게 염”한 소나무의 “어떤 영혼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었을라나” 추측하고 있는 모습은 공포에 사로잡힌 자의 모습이 아니다. “꽃피고 새가 울면 사라진 길 다시 만나는” 미래에 대한 낙관 또는 윤회론이 시인을 공포에서 자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리라. 문학평론가
2022-03-28
겨울의 심처에는유리로 된 성채가 있어고양이 눈 속의 잔설 한 움큼을 움켜쥐면피가 흐르겠다, 파편처럼 찔러오는 통증이 있겠다얼어붙은 잔설 위에는드문드문 발 없는 새의 깃털눈물로 변해서 흘러다니는 새들의 발자국눈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교목의 가지들이제 그림자에 닿아가는 속도가점점 빨라지고 있다바람소리 세차다 적막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부분)삶의 무게-시제인 ‘눈의 무게’-에 허리가 점점 빨리 휘어지면서 죽음의 “제 그림자에 닿아가”고 있는 “교목의 가지들”은 삶의 운명적인 비애를 드러낸다. 그것은 “파편처럼 찔러오는 통증”처럼 고통스럽다. 세찬 바람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적막은 이 비애의 풍경을 전반적으로 압축해준다. 이 적막한 풍경 속에서, 시에 등장하고 있는 존재자들은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느낌을 주듯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3-27
저 그리움이 내 성소다능선을 굽혀놓은 고갯마루 서낭당물길 굽혀 흐느끼는 여울목의 망부석그 성소 앞에서 등허리 굽힌 사람은등고선의 품을 일구며 사는 신신들이 탯줄 같은 골목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한 장정이 훔쳐보는 옆집 우물 쪽으로 골목이 휜다장정이 고개 감춘 곳에 내 얼굴을 드러내 본다보리쌀 씻던 처자의 젖이 내 얼굴을 품어 안는다나는 젖니를 오물거리며 신의 젖능선을 경작한다(부분)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땅에 엎드려 등을 굽히고 있는 사람 모두에서, 그리고 그 굽은 등이 만들어내는 ‘등고선’-굽은 ‘능선’, ‘여울목’, ‘탯줄 같은 골목’ 등-에서 시인은 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그리움의 성스러움을 인식한 시인은 이제 자신이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그리움의 성역을 이루고 있는 몸의 ‘앞품’에 안겨, “젖니를 오물거리며” 삶을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
2022-03-24
봉분 한편에서는키만 말쑥하니 자란 채꽃이나 아니나서너 망울 피기도 전에 져버린지난여름의감국 몇 그루를 자양분 삼아여릿한 떡잎이젖이나 되는 양봄빛을 쑥쑥 빨아 먹더니밤이 되어서는 반딧불두서넛이 다투어 빛났다‘망월 묘지’에 묻힌 희생자들의 봉분 옆에서 ‘감국 몇 그루’의 죽음을 “자양분 삼아” 떡잎이 자라나고 있다. 희생자들로 인해 성장한 떡잎은 또한 그 희생자들을 재생키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과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생명을 부여하는 봄빛-봄은 재생의 계절이다-이다. 이 봄빛 아래에서 죽음과 삶이 조화된 망월묘지는, 오월의 광주를 찬란하게 부활시킨다. 문학평론가
2022-03-23
초겨울 산행길에서 월명(月明)을 맞닥뜨리다벗은 나뭇가지가 가리키는 손끝 세상황망히 자취도 없이 모습을 감춘 이파리들내 삶의 자취도 저렇듯 흔적 없이한 잎 이파리로 피었다 진 자리뿌리째 뽑혀 버린 채 사라져버린 빈 하늘눅눅히 썩어가는 발 아래 낙엽을 보며빈 손 빈 마음을 새삼스레 들여다본다써늘한 바람 한줄기 뒤통수를 치고이 시를 낭송해보면 금방 어떤 쓸쓸함의 유장함이 느껴진다. 그러한 유장한 쓸쓸함의 리듬은 근대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삶이 안고 있는 죽음과 삶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향가 ‘제망매가’가 발산하는 고아한 풍취에 대한 독자들의 기억과 전형적인 시조 형식이 구심력으로 기능하면서 정서의 발산과 증발을 막고 있다. 즉 위의 시는 근대적 정서의 고전적 변용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2022-03-22
시간의 무게에 눌린수많은 선과 선 사이사람의 인연들이 적멸의 색 입히니화공은 번짐의 붓끝으로마른 혼을 덧칠한다오래 묵은 빛깔은어둠과 닿아 있어응어리진 마음까지 색이 번진 울음이 깊고비워둔 허공의 침묵은살아 못 건널 강이다내 보았던 사람은 늘 바람숲에 있었다육신을 비워 꿈꾼 자유를 위해침침한 미소를 걷은실핏줄을 더듬어간다그어진 한 선에서 시간의 무게를 읽고, 선과 선 사이에서 인연의 적멸을 읽으며, 선의 번짐에서 적멸 속의 혼을 읽는 시인의 그림에 대한 응시는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숙고하게 만든다. 시인은 나아가 선의 빛깔 변화와 선과 선 사이의 여백 속에서 어둠, 울음, 허공의 침묵을 읽어내고, 이와 함께 행간의 여백은 다시 삶과 죽음, 자유와 허공의 변증법을 시조의 정형적 형식 자체에서 음미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문학평론가
2022-03-21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아주 불길한 나무로 만든 형틀이었다이름도 음습한 사형대그런데, 누가 그곳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나신성한 그림자흡사 밤의 어둠이밝은 낮을 만들듯이어두운 밤은 홀로 촛불을 켜고기도를 드리기에 적당하다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만든 십자가의 그림자. 이 그림자는 밝은 곳에서 보이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 발견될 수 있다. 홀로 기도를 드리기에 적당한 어두운 밤에서야 비로소 그림자는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명료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그림자에서 우리는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경험하기에 사물에서 그림자를 찾아내는 일은 사랑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문학평론가
2022-03-20
시는 어디로 갔나앞에서는 높은 빌딩들이 줄줄이 막아서고 뒤에선 인터넷의 바다가 출렁이고머리 위를 번개처럼 가로지르는 핵탄두 미사일인도의 새끼코끼리 귀만한광화문 네거리 플라타너스 새 잎사귀에 머물었나백화점 에스컬레이터 3층 완구점에서 내려파란 스웨덴 인형의 눈알 속에 숨었나핸드폰 뚜껑 속 번호의 유령리모컨으로 조종하면스크린에 알록달록 빈 그림자들이 뜬다시는 어디로 갔나서울역 앞 지하에서 너끈히 사흘을 굶은풋내기 노숙자들의 체중에 휴지로 밟혔나높은 빌딩이 거리를 점령하고 인터넷이 소통 방식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시인이 겨우 시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도심의 플라타너스 잎사귀나 수입 인형의 파란 눈알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유령 같은 ‘알록달록’한 시뮬레이션이 우리들의 감각을 사로잡을 뿐이다. 현란한 허상의 세계가 삶을 지배하고, 실제 삶은 비참한 이 세상에서 시가 살아남기는 힘들다는 것이 시인의 판단이다. 문학평론가
2022-03-17
공단 도로에 벚꽃 활짝 피었다휴일 점심시간, 특근을 하다 잠시꽃향기에 취해 나무 밑에서 이야기하는나이 든 여공들, 벚꽃처럼 환하다봄나들이 대신 한적한 거리에서벚꽃 같았던 처녀 적 얘기 하는지꽃이 그녀들 머리 위로 떨어지자가만히 꽃잎 털어내고 있다(중략)그래도 일할 직장이 있어 낫다고벚꽃 나들이야 늙어서도 갈 수 있다고관광버스가 지나가든 상관하지 않는다바람 불자 벚꽃들 눈송이처럼 날리고그들 마음에 환한 눈송이 쌓인다제 아이들 커서는 제발 휴일엔 편히맘껏 쉬는 세상이 되도록 기도하다작업 시작종 올리자서둘러 공장 안으로 들어간다벚꽃의 아름다운 모습과 이젠 나이 들어버린 여공들이 대조되면서, 휴일에도 쉬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비애가 짙게 우러나는 시다. 하지만 그녀들은 “꽃향기에 취”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은 휴일에 벚꽃 구경 갈 수 있는 세상이 오길 기도한다. 벚꽃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기원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은 현실적인 희망을 가져올 수 있다. 문학평론가
2022-03-16
새들의 가슴을 밟고나뭇잎은 진다허공의 벼랑을 타고새들이 날아간 후,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그곳을 따라서나뭇잎은 날아간다허공을 열어보니나뭇잎이 쌓여 있다새들이 날아간 쪽으로나뭇가지는,창을 연다새들은 허공을 여는 존재다. 허공 속으로 나뭇잎은 날아가 “새들의 가슴을 밟고” 허공에 쌓인다. 나뭇가지는 그 새들이 연 허공을 향해 창을 열어, 쌓인 나뭇잎과 접속한다. 이 허공의 나뭇잎이 거름이 되어 나무를 키우게 될 것이다. 시인은 물구나무서서 보듯 하늘이 마치 나무가 뿌리내린 땅인 양 묘사한다. 그러나 그 변형된 모습이 정결하고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고전적인 단아함을 느끼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3-15
나무가 제 높이를 무너뜨려 피워올린불꽃처럼, 새는날개 밑에 층층이 석양을 쌓아 올린다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해도죽지 않는 바람, 오늘은남포에서 조개를 굽는다(중략)눈먼 자만이 날개를 달리라 처음 불 앞에 선 것처럼가장 환한 곳부터 까맣게 타서둘러 캄캄해지는 먼눈으로장님의 걸음만이 바다를 건너리니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하는여기 바람의 화장터,어디에서 저물어도밤은 허물밖에 내주지 않는다(부분 발췌)석양은 죽음의 운명을 향해 바다 건너로 날아가는 새들이 자신을 불태우며 마련한 불꽃이다. 그리고 바람은 “죽은 자의 이름으로 당도”한, 죽은 자를 불태우며 불타고 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흐른 후인 밤에는 허물밖에 남지 않지만, 바람은 뭇 생명들을 죽음으로 이끌면서도 정작 자신은 “죽지 않는”다. 죽음과 삶의 겹침을 통해 이어지는 바람은 시간에 주름을 만들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3-14
아침이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이파리들자고 나면 잠자리에 수북이 이파리가 쌓여몸 여기저기에 물빛이 고였다여러 차례 물빛을 머금는 사이다가오는 이별의 시간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순응하게 됐다모든 잎들이 떠나자 겨울나무처럼 나는 다시 앙상하고 소슬해졌고이슥토록 눈만 서늘히 망연해지다 보니몸 안 깊숙이 오롯한 물줄기 하나 생겼다마음 숲 속에 들어앉아 물소리에 잠겨서 흐르는 날들모르는 사이 어쩌면 나무의 몸 나무의 마음이 되어이 생에서 저 생으로 건너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부분 발췌)저 푸르렀던 잎들의 죽음, 그 이별의 시간에 순응하면서 시인은 “앙상하고 소슬해”지지만, 뜻밖에도 그는 물줄기 하나를 몸 안에 갖게 된다. 이 물줄기는 소멸되어가는 그의 삶을 다시 소생시킬 ‘나무’가 되는 삶을 그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나무되기’로서의 삶이란 죽음의 긍정을 통해 뿌리의 힘을 키워 대지의 힘과 접속하는 삶이다. 시듦을 수락하면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더욱 깊은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3-13
늙은 소나무 마른가지가 목탁을 친다삼성산 망월암 극락전 앞다 늙어빠진 여자가대웅전 문고리를 잡고 흔든다거기 누구 없는가이젠 아무 소용 없는가평생 푸르기만 하던 여자입에 쳐진 거미줄조차 걷어내지 못하고저 혼자 스스로다비식을 한다다 말라버린 자궁만한 입 가득저녁노을을 물고 있다저 저녁노을은 ‘소나무 그 여자’의 삶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궁은 어둠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그 노을을 냉큼 무는 것이다. 자궁은 자신의 안으로 들어온 노을로부터 새로운 삶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이러한 자궁의 이미지는 죽음으로 향해 가는 늙어버린 생명체와 이에 반해 더욱 강렬해지는 삶의 처절한 의지 사이를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농도 짙은 긴장을 창출한다. 문학평론가
2022-03-10
흐린 날 뱃고동소리 없는 포구 속으로둔탁한 밀물이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기어 들어온다게으른 갈매기 서너 마리 느리게 공중회전하며아침 사냥에 나섰지만 싱싱한 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버려진 물고기들의 시체 앞에서 허기를 채운다개펄에 코 박고 누워 있던 낡은 목선들은제 발로 걷지도 못하고 밀려오는 파도에등 떠밀려가며 하루의 삶을 연명한다허물어진 방파제 돌무더기에는 따개비들만이 떼 지어 앉아좁은 주둥이를 하늘로 향한 채 비릿한 세상을 흡입한다(….)이 시는 스산한 장고항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시지만, 단순한 풍경 묘사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뱃고동소리도 없는 장고항. 이곳에서 갈매기는 싱싱한 고기를 얻지 못해 “버려진 물고기들의 시체”를 먹는다. 목선들은 새 것으로 교체되지 못하고 낡아버렸다. 생명력이 박탈당한 세계. 이 생명력 잃은 항구의 모습은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닫혀 있는” 현 우리 사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학평론가
2022-03-09
꿈과 현실 사이의 아득한 거리. 당신과 나 사이의 멀어짐과 가까워 함이 함께하는 막막한 거리. 밤새 숲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새 한 마리처럼, 내 안에서 잠들지 못하는 당신.저 아래에서 도란도란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축축한 구두와 올 빠진 양말 알이 밴 종아리가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까지 가야하는 지를 모르는 물처럼 흘러갑니다.떠나오기 전에 부친 엽서가 천지간을 떠돌다 수취인이 없어 돌아와 문전 발치에 놓여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별빛에 질려 있는 흰 물결 같은 밤길을 하염없이 걸었습니다.사랑은 꿈처럼 아득하게 멀리 있어서 ‘당신’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음을 알기에 시인은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다. 저 새들처럼 ‘당신’은 ‘나’의 마음속에서 항상 지저귀고 있기에. 시인이 부친 엽서는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집 “문전 발치에 놓”일 것이다. 하나 당신은 여전히 유령처럼 시인의 눈앞을 어른거릴 것이어서, 시인은 밤길을 ‘하염없이’ 헤매 다녀야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3-08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사원을 끼고 도는 바그마티 강, 그 다리 옆 화장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산 자의 행렬, 앞의 주검을 태우던 장작이 강 위를 부유하면 뒤의 산 자는 자신의 몸을 태우기 위해 타다 만 젖은 장작을 건져내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마른 장작과 젖은 장작 반 개비 차이일 뿐.내 뒤에 죽을 자가 타다 만 장작 쪼가리 하나 건지지 못할 때 타다 만 내 주검이 그의 주검을 태울 젖은 장작이 되어도 좋을 아침, 손만 씻으려 수도꼭지를 틀건만 머리 위로 불보다 더 뜨거운 찬물이 쏟아진다일상 속에서 화장되어 주검이 될 수 있는 삶이란 시를 쓰는 삶일 테다. 시란 자신의 존재를 태워 얻어내는 것일 테니까. 그 불씨를 안고 있는 시는 타인의 삶 역시 태울 수 있는 장작이 될 수 있다. 삶을 태운다는 것, 죽인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 화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장은 저승에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육신을 태우는 일이기에.(*‘파슈파티나트’는 네팔에 있는 힌두교 최대 사원이다.) 문학평론가
2022-03-07
가장 멀리 떨어져야가장 멀리 날아가는 건활시위와 화살의 사이다과녁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자지러질 때까지그리하여 만물이 선명해질 때까지충분히 기다려야멀리서 온갖 꽃봉 터지는 소리 들린다그대와 나의 사랑의 역설처럼그리움이 사무쳐서 자지러져야 화살은 멀리 날아갈 수 있으며 ‘꽃봉’은 터질 수 있다. 사랑이 지금 이루어진다면 활시위와 활 사이의 거리와 같은 긴장의 강렬성은 약화될 터, 사랑이 강렬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도리어 이루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시인은 “그대와 나의 사랑의 역설”이라고 표현한다. 그리움을 증폭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어야 사랑의 아름다움-꽃봉-이 터질 수 있다는 역설. 문학평론가
2022-03-06
골목 꿈속까지 밝히던 보안등과장마철 하수도를 역류해 스멀스멀 차오르던 미류나무수만의 잎 흔들어 머리속 하얗게 지우던 미류나무썩는 냄새와 붕붕거리던 왕파리와몸 부벼 속삭이던 낮은 풀들과골목 한가운데 눈 까뒤집고 넘어진 쥐기어이 웃음 하나씩 켜 들던 이름 모를 꽃들과약 먹은 쥐 먹고 개거품 물며 나뒹굴던 고양이가끔씩은 이것들의 얼굴 어루만지던 바람과그 여름끝 며칠만에 발견된 망뚱 할매의 여비 없이 떠난 하늘행당신과 함께였던 한 여름 그곳재개발이 한창이더군요하지만 내 마음 아득 생생한 변두리는어떤 기계도 허물지 못할 것입니다“당신과 함께였던” 추억의 장소는 현재 재개발 중인 도시 변두리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더러움과 죽음이 ‘미류나무’, “속삭이던 낮은 풀”, ‘기어이’ 핀 꽃, ‘가끔씩은’ 불던 바람과 대비되면서 공존한다. 이 대비 때문에 “당신과 함께였던” ‘그곳’에서의 시간은 우울하면서도 아름답고 숨 가쁜 것으로 기억되는지 모른다. 시인은 이 장소가 허물어지더라도 마음 속 추억의 공간만은 허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