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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등록일 2022-11-14 18:32 게재일 2022-11-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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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휘

밤에 편지를 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보고싶은 사람들이 겉봉에 낡아갔다

회귀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처럼

따뜻한 상징은 돌아오지 않았다

(중략)

바람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였으므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였다 모두들

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수상한 암호 만지듯

동전만 만지작거렸다 나는

어두운 창고에서 첫사랑을 생각해야 했다

언 손을 불며 자전거 바퀴를 고치다가

씀바귀며 여뀌며 쑥부쟁이를 몰래 생각하였다

위의 시는 추억이 점점 빛바래가고 있는 모습과 눈이 거리에 쌓이고 바람에 얼어붙는 풍경을 중첩시킴으로써, ‘따뜻한 상징’을 다시 불러내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차가움을 쓸쓸하게 드러낸다.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시대이기에, ‘모두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수상한 암호 만지듯/동전만 만지작거”리며 살아나간다. ‘첫사랑’은 타인과 격리된 “어두운 창고에서” ‘몰래’ 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세상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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