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
당신은 당신의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
(….)
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 죽음은 당신을 위하여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나의 죽음의 뒤에 서십시오.
죽음은 허무와 만능(萬能)이 하나입니다.
죽음의 사랑은 무한인 동시에 무궁입니다.
죽음의 앞에는 군함(軍艦)과 포대(砲臺)가 티끌이 됩니다.
죽음의 앞에는 강자와 약자가 벗이 됩니다. (부분)
이 시에서 놀랍게도 기다림과 임의 도래라는 사건이 동일한 시간에 중첩되고 있다. 물론 아직 임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셔요’라고 미래의 임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시인은 기다림이 임이 도래할 문을 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다림이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의 죽음’이다. 이 죽음이 시간의 흐름을 단절시키면서 현재 시간에 임이 도래할 수 있는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