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설희
두부가 있다지만 찰지기가 묵만 하겠어
게다가 도토리묵의 캄캄함이라니
그의 대답 기다리다
묵을 떠올린 나를 탓한들,
도토리를 주워다 가루를 만들어 묵을 쑤고
접시에 맛깔스럽게 담아 앞에 놓으면
말없이 그 묵 한 접시 다 비우고 있는
그를 떠올리고 있는 나를 탓한들,
해마다 도토리는 열리고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줄곧 묵을 쑤고 있을 나를 탓한들,
오늘도
묵, 묵부답 한 접시
…….
묵을 보면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 ‘캄캄한’ 색도 그렇고, 묵묵부답 아무 말 않는 듯한 모습도 그렇다. 묵과 같은 마음이 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그렇다. ‘그’를 떠올리는 마음도. “묵 한 접시 다 비우”곤 했던 그 역시 묵처럼 과묵한 이 아닌가. 그렇게 ‘그’에 대한 기다림과 떠올림 속에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세월을 보낼 것 같은 시인의 삶 역시 묵 같다. “줄곧 묵을 쑤고 있”는 삶을 살 테니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