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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겹 영감

등록일 2025-07-14 18:32 게재일 2025-07-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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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틴(김정환 옮김)

종이가 누렇게 빛바래고 비로소 한마디를 쓴다.

강물이 불고 비로소 한마디를 쓴다.

결혼 행렬이 지나며 누군가 운다.

 

시장이 북적대고 한마디를 쓴다.

목관악기 소리 지루해지고 한마디를 쓴다.

누군가 애도한다 고상한 생활의 계절이 다한 것을.

 

시 한 줄이 공중에 걸려 있다.

거미줄이 이슬 방울 사로잡는다.

 

베트남 현대 시인 휴틴의 시. 위의 시는 시라는 존재에 대해 쓴 시로 보인다. 시는 사실 어디에나 있지만 함부로 존재하진 않는다. 그것은 ‘비로소’ 써지는 것이기에. 강물이나 결혼행렬, 시장이나 목관악기에서 북적댐이나 지루함 끝에 울음 터져 나오듯 한 마디 써질 때 시는 존재한다. 그 ‘시 한 줄’은 공중에 거미줄처럼 쳐져 있다. 그 거미줄에 누군가의 ‘이슬 방울’이 걸릴 때 거미줄은 비로소 시로 존재할 테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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