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화
누군가 한참을 굴렸을 것이다/ 어젯밤 제법 눈이 휘날렸고/ 시무룩한 표정이 태어났다
나뭇가지 돌멩이 같은 것들이 감정을 갖고/ 푹 꽂혔다가 사라졌다/ 땅바닥에 꺼졌다
사라진 표정은 내일의 날씨가 되고/ 대기의 손짓이 되고/ 눈과 함께 흩어진 사람들이 있다
창밖에 수없이 떠다니는 피의 흔적들/ 눈은 붉고 날카롭다/ 이불처럼 땅을 덮는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와서
영원히 죽지 못하는 눈빛이 떠돌아서/ 푸른빛으로 쪼개지는 입술들/ 하아 입김을 불다가/ 사라졌다
네가 나의 절벽이 되는 삶 위에/ 재가 너의 향기가 되는 죽음 위에/ 눈사람이 서 있다
…
시인은 눈사람 자체가 아니라 눈사람이 녹는 모습에 더 시선을 둔다. 눈사람에 박혀 “감정을 갖”게 된“나뭇가지 돌멩이”는 눈이 녹으면서 땅바닥에 꺼지고는 사라졌다. 눈처럼 흩어질 눈사람. 사람들도 그렇게 사라질 터, 그래서 시인에게 눈은 죽은 이들의 “영원히 죽지 못하는 눈빛”이기에 “붉고 날카롭”게 보이는 “피의 흔적들”이다 하여, 시인에게 눈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너와 나의 절벽” 위에 서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