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균수
그곳에 문득 해가 지고
행인은 자신이 눈길 둔 곳이
노을이라는 걸 깨닫는다
천 가지 색 옅은 구름들이 피어나고
가슴 속으로 스며들며 천천히 어두워지고
어느새 곧은 나무들이 자라나
연약한 이파리들을 길러내고
떨리는 손가락처럼 바람이 불어나와
예리한 나무 그림자를 느리게 흔들다가
행인의 마른 눈을 감기우고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흘러나와
조용히 퍼지고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게 될 거라는
기억에 휩싸인다
깊어지는 어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다가
행인은 문득
가슴 깊은 곳의 통증을 깨닫는다
…
사랑의 노을에 다다른 자야말로 ‘사랑의 마음’을 잘 알지 않겠는가. 사랑은 사라질 때 가장 농도 짙은 감각으로 체험되기에. 위의 시에서 행인은 사랑을 막 떠나온 이일 터, 그의 마음은 천천히 어두워지지만 사랑은 “연약한 이파리”처럼 되살아난다. 나아가 사랑의 ‘기억’은 바람처럼 불어와 그의 “마른 눈을 감기”우고는 “처음 맡아보는 냄새”를 퍼뜨리는데, 이 감각과 함께 그의 가슴은 깊은 통증을 느끼게 되리.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