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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소대나무

등록일 2022-11-23 19:35 게재일 2022-11-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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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영

너에게 가는 길이 달팽이 속도였다면

너에게 돌아서 온 길에 들은 찬바람 소리는

시간의 어두운 쪽에서 흔들리고 흔들렸다

죽순이 뿌리내리며 흙의 내력을 아는 것처럼

너를 다 읽은 그 순간

세상의 푸른색이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중략)

다시 한번 눈물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

그리움의 기도가 피어나는 하지에는

너에게로 갈 수 없는 날들이 빠르게 자랐다 (부분)

시인의 사랑은 ‘너’의 살(‘흙’)에 뿌리내리며 ‘너’를 읽어나가는 일이다. 이때 ‘나’ 안에 “세상의 푸른색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시인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달팽이 속도’처럼 더뎠던 데 반해 ‘너’와 헤어진 후에는 “너에게로 갈 수 없는 날들이 빠르게 자랐다”는 것. 특히 너와 헤어진 직후의 상실감을 “시간의 어두운 쪽에 흔들리고 흔들렸”던 ‘찬바람 소리’로 생생하게 드러낸 표현이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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