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
공원 벤치 밑에 구두 한 짝
새처럼 잠들어 있다
벤치 위엔 남자, 신문지를 덮고 잠든 둥근 둥지
죽은 걸까, 꿈꾸는 걸까
검은 구두 속에서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이 흘러나와
남자의 몸을 수의처럼 감싸고
(중략)
누구의 입일까 검은 구두
구두 속에서 흰 말이 날아오르고
밤사이 대기가 흘린 꿈이
남자의 입술 끝에 투명한 핏방울로 맺혀 있다
노숙자일 저 사내가 신고 다녔을 검은 구두는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을 풀어놓으며 ‘흰 말’이 날아오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핏방울로 맺”힐 꿈-죽음-을 흘리는 저 구두는, “새처럼 잠”든 사내의 삶 자체를 삼켜버린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와 같은 존재인 그 ‘흰 말’은 죽은 이의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것은 죽음의 찬양이 아닌 죽은 이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말인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