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희멀건 눈으로 눈짓을 하셨다안개꽃을 보이다가 다시 거둬들이듯인공호흡기를 빼라는 신호였다아직은 아니라고, 좀 더 인공의 힘이 필요하다고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호흡기 줄을 건너 주름진 손을 겨우 내미셨다오래 마른 낙엽 위에내 얇은 체온을 꺼내 덮어드렸다마지막 온기가 미지근하게 도는저녁놀‘아버지’와 ‘나’의 몸이 접촉하고, 이 접촉을 통해 ‘아버지’와 ‘나’는 서로의 온기로 감전된다. 이 온기는 저녁놀처럼 곧 사라지겠지만, 몸의 기억으로 시인에게 각인될 것이다. 하여, 시인의 몸속에는 시인과 함께 했던 아버지와의 삶이 잠재화되어 존재하게 된다. 우리의 몸에는 그렇게 사랑하는 타인의 삶도 녹아들어 있는 것, 시인의 손에 아버지와 함께 한 사랑과 슬픔의 삶이 응축되어 존재하고 있듯이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0
건물을 올리며 네명이 죽었다자연스러운 일이다자연스러운 일이다건물은 보편적인 각도와 높이의 계단을 밟고차근차근 벽들을 소모하고 삽과 젓가락을 소모하고 함바집 할머니를 소모하고간이 화장실과 병실 침대를 소모하고 짱돌을 무더기로 소모하고본래 이곳에 있던, 집으로 구축된 집들이 소모되며누군가 기쁘고누군가 슬펐다자연스러운 일이다 건물을 올리며 세명이 더 죽었다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분)“본래 이곳에 있던, 집”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공사판. 이곳에서 네 명이 죽고 세 명이 더 죽지만, 이는 이 사회 시스템의 입장에선 공사 중에 자연스레 일어나는 소모일 뿐이다. 이들은 공사에 소모되는 벽돌이나 삽과 젓가락, 간이 화장실과 병실 침대, 짱돌, 그리고 원래의 집과 ‘동등한’ 소모품인 것, 그 현장에서 살고 있었던 “함바집 할머니”도 저 죽은 노동자들처럼 내팽겨 쳐져 소모된다. 문학평론가
2022-11-17
시장의 오체투지는 해가 저물고야 끝났다으슥한 골목, 고무판 아래 접어둔 다리를 꺼내 주무르며통 속 수입을 헤아리는 그의 낯빛이 어둡다(중략)바닥을 기는 것만이 이제껏 익혀온 생활의 기술,가로등이 밝혀놓은 그의 손바닥에는타르초처럼 붉고 푸른 상처들만이 나부낀다(중략)이제는 하루 치 고행을 끝낸 두 다리를 위해남루한 전생을 벗어놓고 가지런히 누울 시간,통 속에 구겨진 영혼을 주워 담아 일어서는그의 손에는 아직도 먼 순례의 지도가 남아 있다“고무판 아래 접어둔” 그의 두 다리는 순례의 길을 걷는 고행자의 다리다. 그의 숨겨진 다리는 역설적으로 성스러운 언덕을 걸어 올라간 다리인 것이다. 고행은 그의 삶 자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순례의 끝은 멀리 있고 “그의 손에는” “먼 순례의 지도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하여 그가 살아온 삶의 길 전체는 손바닥의 상처를 통해 몸속에 새겨지고, 그 길은 앞으로 살아갈 순례의 지도를 생성한다. 문학평론가
2022-11-16
첫눈 내리는 거리에서 말하다꺼질 듯 말 듯 되살아나는 촛불 아래서 말하다불길처럼 온 도시를 흘러가며슬픈 고래의 울음소리로 말하다누군가 귀를 열고 알아들으라고 말했다꽃 스티커를 경찰버스에 붙이며아직도 푸른 바다 밑이라고 말했다 (부분)도시는 “푸른 바다 밑”이다. 거리를 걸으며 불길이 되어 “도시를 흘러”간다는 것, 그것은 고래가 바다 밑을 유영하는 것과 같다. 도시는 수장되었다. 촛불은 그 수장된 거리를 유영하는 “슬픈 고래의 울음소리”다. 그 울음은 거리를 가로막은 경찰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이는 저항 행위이기도 하다.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울음소리로 말하는 것, 그 울음은 내향적이지 않다. 누군가를 향해 귀를 열라는 외침이기에. 문학평론가
2022-11-15
밤에 편지를 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보고싶은 사람들이 겉봉에 낡아갔다회귀선 아래로 내려간 태양처럼따뜻한 상징은 돌아오지 않았다(중략)바람이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하였으므로생각하는 것은 위험하였다 모두들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수상한 암호 만지듯동전만 만지작거렸다 나는어두운 창고에서 첫사랑을 생각해야 했다언 손을 불며 자전거 바퀴를 고치다가씀바귀며 여뀌며 쑥부쟁이를 몰래 생각하였다위의 시는 추억이 점점 빛바래가고 있는 모습과 눈이 거리에 쌓이고 바람에 얼어붙는 풍경을 중첩시킴으로써, ‘따뜻한 상징’을 다시 불러내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차가움을 쓸쓸하게 드러낸다.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시대이기에, ‘모두들’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수상한 암호 만지듯/동전만 만지작거”리며 살아나간다. ‘첫사랑’은 타인과 격리된 “어두운 창고에서” ‘몰래’ 홀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세상이다. 문학평론가
2022-11-14
오랜만에 집들을 벗어나니길이 탱탱해지고이른 가을 풀들이 내 머리칼처럼붉은 흙의 취혼醉魂을 반쯤 벗기고 있구나.흙의 혼만을 골라 밟고 간다.길이 속삭인다.계속 가요,길은 가고 있어요.보이는 이 길은 길이 잠시 멈춘 자리일 뿐길의 암호일 뿐길은 가고 있어요. (부분)안주의 장소인 ‘집’일 나와 길에 나서자 “길이 탱탱해지”기 시작한다. 길은 “붉은 흙의 취혼”을 가지고 있다. 무엇인가에 취해 있을 때 삶은 길이 된다는 의미일까. 시인은 취해 있기에 “계속 가요”라는 길의 속삼임을 들을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길은 보이는 길이 아니다. “보이는 이 길은 길이 잠시 멈춘 자리”이고 “길의 암호일 뿐”이다. 길 자체가 가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삶은 흐름, 살아가기 자체이다. 문학평론가
2022-11-13
사방이 캄캄해져 있었고 나는 당신을 생각하던 마음을 마당에 내다 놓고 대못에 박히도록 했습니다 나는 흠뻑 젖었습니다그때 우리는 왜 까닭 없이 까닭도 없이 그렇게 흥건했던가요 왜 그토록 죽음의 왼손을 부여잡고 있던 것이었을까요가까운 바다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대못들을 한 움큼씩 삼키고 또 삼켜 한 겹 오래된 소금기를 없앴는지 한 뼘쯤 맑아져 있었습니다벗어 놓고 간 치맛자락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듯 뻐꾸기가 또 웁니다내일 아침 내가 나가면 이 섬도 무인도가 됩니다당분간 나는 무진 애를 쓰며 멍하니 있으려 합니다 (부분)고독한 무인도의 풍경이 시인의 마음을 그립고 슬픈 기억으로 인도한다. 비 내리는 풍경이 가져온 ‘젖음’의 쓸쓸하고 매혹적인 이미지는 죽음으로 빠져들었던 연인을 환기시키고, 시인을 둘러싼 모든 자연 현상들은 시인의 절절한 추억과 점차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무인도 자체가 되어가는 듯하다. 추억의 끝을 통과했을 때 나타나는 섬, 무인도. 이 섬이 됨으로써 그는 어떤 무의 상태로 이행한다. 문학평론가
2022-11-10
내 방 벽에 귀기울이면 강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벽과 벽지 사이로 찰랑찰랑 스며드는 물소리꽃무늬 벽지의 마르지 않는 습기 사이로슬리퍼 한짝 떠내려가고짙은 안개가 조금씩 범람하는 방을 지나간다(중략)벽지 속 강물을 건너시는 아버지끝내 벽은 사라지지도 않고꽃무늬 벽지의 꽃들이 피어나고 시들어간다어느날 벽지 속 강물 어디로 숨어버렸는지들리지 않는 물소리,벽은 이제 바삭거리는 쎌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낸다꽃무늬 벽지의 꽃들이 폐허 속에서더욱 환한 꽃을 피운다 (부분)위의 시에서 ‘벽’은 기억의 끝에서 마주치게 되는 현실로서 나타난다. “끝내 벽은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메마른 벽지 같은 지금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다.(시인은 이 현실을 ‘폐허’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벽지의 꽃무늬가 시인의 몽상을 유도하며, 기억과 현실 사이의 막인 ‘꽃무늬 벽지’는 그나마 시인이 현재의 삶을 견디며 몽상의 ‘환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장소가 돼준다. 문학평론가
2022-11-09
봄은 뱀파이어처럼 온다저 산벚나무 피가 낭자하다Let me in불면으로 누렇게 튼 산수유 입술에서노란 탄성이 터져 나온다나의 사랑은 늙지 않아요꽃나무 아래 나의 목덜미가 창백하다(부분)뱀파이어는 늙지 않는다. 매년 찾아오는 봄이 언제나 신선하듯이. 사랑 역시 언제나 신선하다. 시에 따르면 봄은 뱀파이어다. 봄은 잠자고 있던 숲의 피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 오면 산벚나무는 낭자하게 피를 뿜어내고 산수유는 ‘노란 탄성’을 터뜨린다. 그런데 이 흡혈은 사랑의 행위라는 것, 하여 ‘나’ 역시 창백한 목덜미를 “꽃나무 아래” 내놓고 피 빨릴 준비를 한다. 사랑에 감염되고 싶다는 듯이. 문학평론가
2022-11-08
석탄을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굴러가는 철길 너머에 저탄장이 있다. 거대한 재의 무덤, 바람에 석탄가루들이 일어난다. 그것은 흩어진다. 그것은 바람에 불려간다. 검은 바람, 펄럭이는 검은 작업복, 탄부들이 움직이고 있다. 잠시 후, 이번에는 갱목용 통나무를 적재한 무개화차들이 지나간다. 그것은 멀어진다. 그것은 사라진다. 검은 바람이 불고 있다. 저탄장의 탄가루들이 철길 건너 저녁 골짜기로 멀어진다.(부분)이제 더 태울 것이 없는 재는 시체와 같다(재의 세계는 무덤이다). 썩은 시체의 분비물처럼 재도 ‘흩어진다.’ 그 시체의 가루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죽음의 씨앗처럼 온 마을에 죽음을 전파하고 심는다. 바람은 그래서 ‘검은 바람’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작업복은 재에 뒤덮여 검다. 탄부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저탄장의 탄가루들이 바람을 따라 “철길 건너 저녁 골짜기로 멀어”지듯이 시인의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문학평론가
2022-11-07
불빛은 먼 데 있는 불빛은 흔들린다 깜빡인다 부들부들 떤다불빛은, 가까이선 흔들리지 않는다 노란 불티 그대로다먼 데 있는 불빛이 흔들리는 건 먼 데 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일까가까이선 하지 못할 표현을 조심스레 하는 걸까먼 데 있는 불빛은 비로소 입술을 벌리고 희미한 소리를 낸다울음도 노래도 아닌 소리의 파닥거림, 멀어져 가는 것들은저마다 자기 표현을 한다. 가까이선 엄두도 못 냈을 표현을불빛은 멀리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입을 연다. 멀리 있음으로 해서 불빛은 더욱 절실하다. 왜냐하면 불빛은 멀리 있을 때 더욱 깜빡거리며 흔들리기 때문이다. 시인에게서 멀어져 가는 저 불빛은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엄두도 못 냈을”) 삶과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부들부들 떨며 표현한다. 촛불은 멀어져가기에 희미해지지만, 그것의 소리는 더욱 뚜렷해지고, 가슴은 아파만 간다. 이별의 현상학을 보여주는 시. 문학평론가
2022-11-06
잠시 정적이 머물러 있는 숲에서는간간이 보일러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울리고 솔방울이 뚝뚝 떨어지고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유리새들이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라간다유리새여 무량의 시간 속으로오르는 새여너희 비상은 햇빛에 부딪히고마모되면서절대음처럼 소멸하고 시간들은우리에게상처를 남기고 사라져간다 (부분)정적 속에서 갑자기 비상하는 유리새는, 정적-시간의 정지-을 깨뜨리는 어떤 순간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갑작스레 비상한 그 새들은 곧바로 햇빛에 타버리기에, 그 순간은 눈이 부시도록 빛난다. 시인에게 진정한 시간이란, 이 비상과 소멸(삶과 죽음)이 통합된 순간이다. 하나 우연히 맞닥뜨린 이 순간을 붙잡을 순 없다. 다만 그 순간이 일으킨 강렬한 전율은 우리의 눈에 불에 덴 자국 같은 상처를 남길 뿐이다. 문학평론가
2022-11-03
밥상처럼 잘 닦여진 마당을 가로질러계단 앞에 섰네꽃잎 같은 비구니들눈썹 그리듯 비질한 자국 위에 찍히는발자국 가만히 돌아보다가문득 발자국 지우고 싶었네지붕을 타고서 휘돌아온 바람이물고기의 몸 흔들 때마다얇아질 대로 얇아진 몸추녀 끝에서 펄럭이던,하지만 방향도 없이찰랑 차르르 바람 속을 헤엄쳐 나가는물고기의 몸 이미 있어도 없는소리뿐인 몸이었네계단 끝 텅 빈 마루방 하나,이른 새벽 바람이 씻어내고 있었네정적 속에서 나는 ‘차르르’ 소리는 바람에 의해 목어가 흔들리고 헤엄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에 시인은, 우리 몸은 ‘헤엄침-흔들림’만이 그 실상임을 깨닫는다. 바람에 깎이고 휘둘려 “얇아질 대로 얇아”진 목어의 몸처럼. 나아가 시인은 그 몸이 소리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존재와 무가 뒤얽혀 있음을 인식한다. 시간이 소멸한 정적 속에서 들려온 목어 소리가 존재의 비밀로 시인을 이끌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02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들꽃을 따서 너는팔찌를 만들었다.말 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둥근 안팎은 적막했다.손목에 차기도 하고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네가 없는 동안 나는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적막으로 一家를 이룬다-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너’가 팔찌를 완성시키는 순간, 그 ‘둥근’ 모양의 팔찌는 자신의 공간을 형성하며 세계를 적막 위에 놓는다. 팔찌 테두리 안의 빈 원 속으로 “우주가 수렴”되고(원은 우주적 전일을 상징한다), 그 덩그렇게 놓인 하나의 소우주는 더욱 쓸쓸함을 퍼뜨려 우리는 어느덧 우주의 무상성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하지만 이 적막 속에서 우리는 무상의 우주와 섞이며 존재 자체를 발견하고 그 우주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2-11-01
지친 당신 곁에 눕는다내가 지금 부여잡은 당신의 손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그 수많은 손금 중에내 것과 똑같은 것이하나는 있을 거라는 생각당신의 손금을 손끝으로 따라가다어디쯤에서 우리가 만났을지가늠해본다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자면우리는 같은 꿈을 꾸게 될까어지러운 침대 같은 밤하늘에 뜬 반달밤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는다(부분)화자가 “지친 당신 곁에” 누워 “당신의 손”을 부여잡는 것은 자신의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일 터, “당신의 손금을 손끝으로 따라가”는 모습은 퍽 감동적이다. 하지만 한 손을 잡으면 “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 언젠가 “같은 꿈을” 꿀 수 있게 될지라도, 삶의 한 쪽은 비어 있을 것이다. 화자가 “밤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당겨 덮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문학평론가
2022-10-31
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마지막으로 왔다8월에는 어깻죽지에서 날개가 돋았고9월에는 그것이 상수리나무만큼 커져서 밤에 나는 그 아래서 잠들곤 했다(…)우주의 툇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저 멀리 지구를 바라보니내가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이 늙은 개처럼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12월에 나는 돌아왔다그때 나는 달력에 없는 뜨거운 겨울을 데리고 돌아왔다너의 소식은 4월에 왔다4월은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해의 첫번째 달이었다나는 너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부분)많은 한국인들이 2014년 4월 16일 이후 아이들의 구조 소식을 기다렸으며, 나중에는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를 바랐지만, 알다시피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슬픈 기다림을 통해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4월은 그들에게 “마지막 달이었고 다음해의 첫 번째 달”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처럼 살 수는 없게 되었기에. 다른 세계를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기에. 문학평론가
2022-10-30
부음 소식에눈에 덮인 젖가슴이 다시 한껏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식구가 늘 때마다가슴이 파헤쳐지고 겨드랑이솜털이 날리고 구름이 만장처럼 떠 있다사람들이 떠나고 해 질 무렵이면가슴이 부스럭거리기 시작한다늘어진 배를 발로 찬다거나꼬물꼬물 젖을 빨며 한 삶을 준비하는 봉분은 빵빵하다하루의 노역이 힘에 부친 듯주둥이를 땅속에 묻고꿈쩍도 하지 않는 산발아래 얼음장 밑 실개울 물은말없이 흘러간다갓 태어난 몸이 저 물길 따라새 세상으로 들어가는봉긋한 숨소리에 산은 모로 돌아눕는다(부분)이승에서의 삶은 죽어 봉분 속으로 수축되지만, 그 ‘죽음-삶’은 뒷산의 젖을 빨면서 재생하여 다른 삶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 삶의 조짐을 보여주는 사물이 뒷산의 “가슴이 파헤쳐지”면서 날리는 “겨드랑이 솜털”이다. 이 솜털은 ‘새로운 삶’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봉분 속 주검의 소망에 의해 날리게 되는 것일 터, 그 새로운 삶이란 “발아래 얼음장 밑 실개울”의 물길 따라 들어가는 “새 세상”에서의 삶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7
생계에 질린 냄새들이첩첩산중을 이루고모두 탄력 잃은 삶들에걸려 있어 짠하다문턱이 튕겨지며 눈썹을 흩트릴 때마다떨리는 완력들각도대로 자주 인내의 모양을 바꾼다원을 그리다가 평행선으로 치솟고곡선으로 힘주다가 파선으로 쏟아진다뒤태들이 실수로 버려지지만헐렁한 등을 입고 있어 푹신하다내 등에도 뒤집힌 등들이실수로 옮아온다톡톡 터지는 뜨듯한 솜털들각자의 행선지로 같은 노선을기어가는 아침마다에갓 태어난 내가 안겨 있다한강을 건너면 오늘은 살아나고문턱이 쏟아질 때마다 하루씩어려진 나이를 먹는다(부분)생활인의 일상을 안은 ‘버스-삶’이 달리면서 튕겨지고 흔들리는 탑승객들의 뒷모습은 마치 “실수로 버려”진 것처럼 쓸쓸하다. 하지만 저 버려진 ‘뒤태들’을 보여주는 생활인들은 도리어 “헐렁한 등을 입고 있어 푹신”한데, 외로운 이들이야말로 따스함의 소중함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여 버스 속 이들 사이에 있는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가 되어 요람 속의 담요를 덮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6
쉽게 붙잡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너무 오래 흔들려왔으므로놓아주고 싶은 것들,해는 저물고 어김없이 시작하는 새해잠 못 드는 연휴 지나구년째 의식이 없는 병실에 간다궤도를 잃은 유성처럼 흔들리는그 눈빛에 안부를 물어야 한다촛불을 대신 끄고 손뼉 치며생일을 축하해야 한다늘 웃는 얼굴인 그가 크게 웃으면모두가 환해지던 때가 있었다,놔주기에는 아직 힘주어 따뜻한손이 있다(부분)‘구년’ 동안이나 의식불명인 분을 돌봐 와야 했던 고통은, 이제 저 분이 매달려 있는 생명의 줄을 놓아주고도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 터이다. 하지만 그 줄을 놓지 못하는 것은, “놔주기에는 아직 힘주어 따뜻한/손”을 화자가 느끼기 때문이다. 아직 병자의 손은 온기를 잃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삶을 붙잡는 힘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든 삶을 놓아버리지 않으려는 그 의지는 생명이 지닌 본질적인 힘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5
오래전 잡았던 손이여전히 내 손안에 있어요오래전 놓았던 손이 내 손을방한장갑처럼 끼고아직도 추운 내 손안에 있어요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울리는 손뼉 소리나는 당신의 손이 날아가지 않게주먹을 꼭 쥐고당신의 손은 내 손을 빌려 끼고내가 막 사랑하기 시작한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요당신의 손안에도 내 손이 가득하죠내 손이 당신의 손을 찢긴장갑처럼 끼고 있어요나는 당신의 손을 모아밤마다 기도할 거예요시도 때도 없이 벼락처럼 기도할 거예요(부분)타인의 손과 나의 손이 중첩된다. 그러나 타인의 손이 지닌 타자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울리는 손뼉 소리”가 날 수 있다. ‘나’의 손과 ‘당신’의 손이 맞부딪치며 나는 그 소리는, 우리의 삶이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나’의 몸속으로 따스하게 들어왔던 그 사랑의 손(타자)들은 ‘내’가 또 다른 타인과 손을 맞잡으며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문학평론가
202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