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소리에 귀를 세우다이내 동백나무 그늘 속으로 몸을 눕히는해풍에 말라가는 눈 그렁그렁한늙은 개 같은 섬을 떠날 때어떤 이는 뱃머리에서 미지의 물결을 바라보고어떤 이는 후미에서 가버린 물살을 회고하는데나는 어떤 행로에도 속하지 못하고 눈을 떼지도 못하는데그러나 왜그리움도 파도도앞발을 높이 들어 달려드는가 (부분)위의 시의 인용 안 된 부분에서, 시인은 방문한 섬에서 주인 없는 빈 집을 외로이 지키는 늙은 개를 발견한다. 그 개에 대한 인상이 깊어서인지, 그에게는 섬 자체가 “해풍에 말라가는” 늙은 개처럼 느껴진다. 이어 시인은 자신이 “미지의 물결을 바라보”거나 “가버린 물살을 회고하”기보다는, 저 개처럼 “앞발을 높이 들어 달려드는” 섬에서 촉발된 그리움에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4-12
어린 시절 떨어지는 나를 받으려다 아버지는어깻죽지가 부러졌다평생 출근해 볼트와 너트를 조일 때마다팔이 아팠다암이 전이되어 복수를 더 빼내면 죽을 거라의사가 말할 때도부풀어오른 배를 안은 아버지는아파서 울었다어느 아침 나는 재가 된 아버지를 들고 이제 안 아파서 다행이라 속삭여주었다울어도아프지 않았다최백규 시인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인가. 자신을 구하려다 “어깻죽지가 부러”져 평생을 고통 속에서 일해야 했던 노동자다. 슬프게도 고통스러운 삶은 고통스럽게 끝난다. 암으로 복수가 차서 “부풀어오른 배를 안”고 아파서 울다가 돌아가신 시인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아픈 삶을 살다가, 재가 되었을 때 겨우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아버지. 하지만 시인의 마음속에 아픔은 전이되어 박혀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4-11
누이야, 나는 그날 석양에 너를 두고떠났을 때처럼, 너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중략)누이야, 저무는 운명에 저항하여나는 정말 얼마나 웃어댔는지 모른다(중략)그러는 동안 내 뒤, 파란 숲그 어스름 속에서는 그 얼굴들이 점점 희미해졌지.누이야, 그날 석양 속에서는 모든 게 아름다웠다.그것은 전에 없이 아름다웠고, 다시는 그런 날이 없으리.내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어두운 하늘에 떠 갈망하는 큰 새들.살다보면 누군가 사랑하게 되고, 그와 이별하게 된다. “저무는 운명”이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웃어댄다. 그 웃음은 울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리라.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별의 순간은 사랑의 극한이며, 저무는 순간은 “전에 없이 아름”답다. 이별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는 시인에게 남아 있는 나날들은 어떤 것인가. 갈망이다. “어두운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큰 새들”처럼 외로운 갈망. 문학평론가
2023-04-10
단속에도 무허가 노점 수레가도로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면원심력이란이 나라의 가장 큰 폭정멈춰 있는 난등이 젖고 맙니다구겨진 차선 하나 없이불빛이란 불빛은 다 채운 도시바퀴가 도는 곳마다 사람들이 밀려나고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도주름지는 얼굴을 나는 계속 고쳐 맵니다골목을 완장처럼 두르고도로엔 미등이 붉게 타고 있는 저녁은그래서 늘 상복입니다 (부분)도시를 돌리는 ‘바퀴’의 ‘원심력’은 노점상처럼 가난한 이들을 도심 밖으로 밀어내는 ‘폭정’과 같다. 하나 밀려나는 와중에도 이들은 악착같이 생활을 찾아야 한다. “무허가 노점 수레가” 단속을 피해 “도로를 가로지르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이렇게 밀려나는 삶은 위험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도로 위를 가로지르며 도주하면서 언제 죽음의 사고를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빛으로 화려한 도시 저녁의 “미등이 붉게 타고 있는” 도로에 대해, 공포 때문인지 “등이 젖”은 시인은 ‘상복’을 입었다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2023-04-09
압정처럼 박힌흰 꽃누가 꼽았을까물소리가 난다뼈가 다 보인다, 끝에독이 묻어 있다올여름다시 피었다번쩍이는 발목을 들고쇠칼로 베어내도칼 속에서번쩍거리는흰 꽃시인에게 ‘흰 꽃’은 슬픔을 응축하여 표현한다. 흰 꽃은 흰 뼈와 같은 슬픔의 핵심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 핵심에는 치명적인 독이 묻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압정처럼 박”히는 이 슬픔을 없앨 도리가 없다. 매년 여름 흰 꽃이 다시 피듯이 슬픔도 언제나 다시 도래하기 때문이다. 질긴 생명력이다. “쇠칼로 베어내도/칼 속에서” 슬픔은 번쩍거릴 정도니. 그 칼 속의 슬픔은 독이 되어 시인의 가슴을 찌를 것이고… 문학평론가
2023-04-06
꽃 진다, 소리도 없이지는 것이 오직 자기의 일이라는 듯최선을 다한다남은 물기를 잎에게 다 내주고도보채지 않는다어머니 가실 때 모습 같다꽃의 임종, 얇다덕분에, 갓 태어난 잎은 착하다칭얼대는 인간의 소리는들어서 무엇하리저기, 저 어린것들의 순한 힘,소리 하나 내지 않고묵은 산을 들어 올리고 있다봄이 미어터지도록 봄을 머금고 있다가한꺼번에 연두를 뿜어내고 있다꽃이 지고 잎이 태어난다. 이 작은 사건 안에는 자연의 이치가 작동하고 있다. 죽음과 삶의 거대한 순환. 여기엔 보챔이 없고 최선만이 있다. 꽃은 “최선을 다”하면서 지고, 이 죽음을 받아 이파리 하나 착하게 태어난다. 이 조용한 탄생 앞에서 “인간의 소리는” ‘칭얼대는’ 것에 불과하다. 저 ‘어린것들’이 생명을 밀어 올리는 힘은 “한꺼번에 연두를 뿜어내”며 “묵은 산을 들어 올리”는 거대함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3-04-05
너를 올려다보면너는 상처를 입고 있구나벌써 상처 속에서 환하구나감정을 끝까지 실험하다미쳐버린 시인같이상처가 시인 너는상처의 수집가인 너는골짜기마다누군가를 잊지 못해올려다보는 눈길로깊어가는구나‘정읍사’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인에게 ‘달’은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기 위해 희구하는 바를 비는 신적인 대상이었다. 위의 시에서 달은, 그와는 달리 상처 그 자체를 표현하는 시로 등장한다. 그 상처는 실연으로 인한 것, 달은 “누군가를 잊지 못해” “미쳐버린 시인”의 표정으로 “골짜기마다” “깊어가는” 눈길을 보낸다. 하여, 자신의 상처를 환하게 드러내는 달빛 아래의 사람들은 광기에 조금씩 젖어 들게 될 테다. 문학평론가
2023-04-04
어여쁘다 오월은상수리나무 그늘 혹은 찔레꽃 그늘로가보라는 말이겠지내가 유독 어여뻤을 때 찔레꽃 그늘에서그땐 꽃 그 자체와 너무나 가까웠지여윈 것이 다다른 뒤에야너무 많은 것들을 찔레꽃 속에숨기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아차, 하는 순간 드러나는 삶의 애통들아그래서 찔레꽃 입을 다물어 버렸나누구나 “꽃 그 자체와 너무나 가까웠”던 시절을 갖는다. 지금 그 시절을 살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만 “여윈 것이 다다른 뒤”를 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누구나 “아차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찔레꽃 속에/숨기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을. 그것은 사랑이겠다, 사랑이 우리를 아름다운 꽃이 되게 해주기에. 드러내지 못하다가 애통하게도 잃어버린 그 사랑. 문학평론가
2023-04-03
바람이 되기 위해나를 보존하기 위해네게 몸을 맡기고눈에 물을 줘야겠어!풀어진 옷자락처럼발바닥이 펄럭이네시인마다 시를 쓰는 이유는 가지각색이겠다. 이나혜 시인은 “바람이 되기 위해” 시를 쓴다. 그에게 바람이 되는 일은 “나를 보존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원래 바람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바람이 자유를 상징한다고 할 때, ‘바람-자유인’이 되기 위한 매개가 필요하다. 시에 몸을 맡기고 눈에 물을 주어야 비로소 “발바닥이 펄럭이”면서 ‘바람-되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 굳어버린 삶을 눈물로 녹이는 것이 시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4-02
월정사 가는 길에 감자떡을 달게 사먹고는언제 닫느냐니까 감자처럼 툭 던진다, 어둑해질 때유, 그럼 8시요? 그냥 묵묵 웃기에 내려올 때 사겠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언질 놓고는, 유효기간 보관방식 시시콜콜 더 묻고는, 돌아오는 길에 서로 감자떡을 살까 말까, 마트에도 많다느니 신선함이 다르다느니, 몇 푼이나 한다고 몇 분이나 걸린다고, 갑론을박 지나치다 노점께로 돌아보니별안간 훅 어두워지는 거라웬 뻐꾸기도 웃는 거라이 시는 중장에서 일상의 대화를 살려 사설을 늘어놓고 있는 사설시조다. 이 시조는 자유시만이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겨져 온 시의 현대성을 시조도 감당할 수 있으며 시조가 다양한 변형을 통해 독자에게 묘미를 선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위의 시조가 증명하듯, 시조는 함축적이고 암시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산문적인 대화를 담을 수도 있다. 시조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3-30
인디언들은 꿈에서 죄를 지으면다음날 그 사람에게 가서사과를 한다그들은 어떤 표정으로 모일 것인가자기가 꿈에서 죽인 시체에 대해어떤 감정을 가지는가표정의 표정을 어디로 대입할 것인가감정들이 분산되어 빗방울처럼 떨어질 때누구와 눈꺼풀을 포갤 것인가 (부분)이 시는 탈 맥락화한 이미지들의 결합을 통해 꿈처럼 전개된다. 가령 “감정들이 분산되어 빗방울처럼 떨어질 때/누구와 눈꺼풀을 포갤 것인가”라는 문장은 서로 연관성 없는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는 “꿈에서 죄를 지으면//다음날 그 사람에게 가서/사과를” 하는 인디언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인디언이 꿈과 현실 사이에 경계선을 긋지 않듯이, 시인 역시 꿈의 작업을 시 쓰기에 도입한다. 문학평론가
2023-03-29
(전략)현생만이 나의 것입니까.추모는 끝까지 나의 것이 아닌데나는 슬퍼하는 동안투명한 귀들이 자랍니다.귀들을 자르면 살아 있는 표정으로그것은 우는 얼굴입니까.(중략)영혼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별들은 지워진다고 하는데태어날 수 없는 사람들은 이파리처럼 무성합니다.낯빛들이 흔들리는 숲 속,나의 별자리는 어둠 속에 나를 벗어놓고길을 잃습니다. (부분)시인은 어떤 이의 죽음을 맞아 “현생만이 나의 것입니까”라고 묻는다. ‘나의 것’에는 나의 현생만이 아니라 저승으로 간 타인도 있다는 의미이리라. 그것은 “슬퍼하는 동안”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듣게 되는 “투명한 귀들이 자”라기 때문이다. 이 귀들을 잘라도, “살아 있는 표정으로” 죽은 자들은 악착같이 나타난다. 하여, 시인은 길을 잃고는 “이파리처럼 무성한” “태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소생’을 감지한다. 문학평론가
2023-03-28
거울들이 나를 길쭉하게 왜곡하는 날하이힐을 신고 이왕이면 콧노래를 부르며면접을 보러 가야지당신은 누구십니까그들의 질문은 다시 돌려주며암호보다 캄캄한 눈빛을 보낼 거야(중략)봉인된 현금 지급기를 모두꺼내주고 싶어전선에 매달리는 새들렌즈 속에는 아무리 눈을 치켜떠도거꾸로 서는, 빌딩들겨울 내내 잔고 조회는 끝나지 않는다 (부분)면접 보러 가는 날은 “거울들이 나를 길쭉하게 왜곡하는 날”이다. ‘나’는 면접관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따라 자기 자신을 맞추어야 해서, 예상되는 면접관의 질문은 시인 자신의 모습을 왜곡하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나’는 면접관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고는, 면접관의 질문을 다시 돌려주며 “암호보다 캄캄한 눈빛을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겨울 내내 잔고 조회는 끝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문학평론가
2023-03-27
꽃다지와 냉이꽃이 납작 낮은 자리에서 피어날 때흙은 까르르르르 웃는다간지럽게 흙의 피부끼리 맞닿으면피부를 뚫고 꿈틀거림이 돋거나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흙의 각질을 뚫고 아지랑이 손가락이 튀어나오고푸른 색깔, 노란 색깔, 빨간 색깔이 자란다(중략)정신은 흙에 닿아서 사과꽃 자두꽃 과수원이 된다젖을 빠는 강아지들의 혓바닥처럼흙은 숭고하고 거룩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강아지젖이 된다 (부분)시인은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에서 촉발된 사유로부터 시를 길어 올린다. 그러나 투박하지 않다. “흙의 각질을 뚫고 아지랑이 손가락이 튀어나오고”와 같은 이미지는 선명하고 세련됐다. 흙은 어머니처럼 시인의 정신에 “숭고하고 거룩한 액체”-젖-를 준다. 그의 정신은 “피부끼리 맞닿”은 이 흙을 통해 자라나고, “사과꽃 자두꽃 과수원이” 되는데, 그 꽃은 시를 의미할 테다. 흙의 숭고함을 다시 일깨우는 시. 문학평론가
2023-03-26
마지막까지 몰고 온 시간과 몰린 시간의 양면우리는 그곳에서 양면의 사투를 벌인다모든 승패는 허우적거리다손을 들거나 손을 잃는다(중략)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막판이 있다꽃이 지거나 열매가 떨어 질 때찢긴 상처와 쓰라린 기억을 봉합하는 것은막판에서 가능한 일새로운 출발선에 불끈 쥔 두 주먹이 서 있다모아 쥐기만 했던 각오들이 낭비 될 때까지풀벌레 소리는 짧아지고 나무도 그늘을 내려놓는다더 이상 물러 설 곳 없는 길 끝물의 상처에 패를 던지고 그 파장의 시간으로흔들리는 것이 잔잔하게 봉합되기를 기다린다위의 시는 ‘막판’이라는 시간의 국면을 탐구한다. “물러설 곳 없는 길 끝”에 몰린 ‘막판’은 다른 시간과 차별성이 있다. “마지막까지 몰고 온 시간과 몰린 시간의 양면”이자 “꽃이 지거나 열매가 떨어질 때”인 막판은, 도리어 “찢긴 상처와 쓰라린 기억을 봉합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시간이다. 추락과 죽음의 시간으로 몰리지 않는다면 봉합을 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기에. 그 봉합의 바느질이 시 쓰기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3-23
밥 먹는데 머리카락이 나왔다어떤 삶의 순간 달라붙는 물음표처럼 허옇고 구부러진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흘러든 고독은얼마나 발효가 되어야숭고한이라는 형용사를 품는 걸까(중략)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얼마 전 죽은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빈방과 빈방 사이 모퉁이와 모퉁이 사이오늘과 어제 사이환한 다리가 놓였으면,하고 생각했다 안부가 궁금한 이가 언제든건널 수 있게 (부분)“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흘러든 고독”이라는 구절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개체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순간’-기존의 삶이 죽고 새로운 삶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한-부터 고독이 시작됨을 말해준다. 그렇게 고독을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은 마루를 사이에 둔 빈방들처럼 존재한다. 이에 시인은 “빈방과 빈방 사이”, 그리고 “오늘과 어제 사이”에 “언제든/건널 수 있게” “환한 다리가 놓”이기를 처연히 희구한다. 문학평론가
2023-03-22
마지막 송년회를 마치고 귀가했다사흘 남은 해의 얼굴을 씻는다세면기의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체면을 닦을수록 체증은 더한다(중략)세수(洗手)가 씻은 얼굴낯에서 물 묻은 이름이 쏟아진다이름 고인 물에 얼굴이 뜬다이름과 얼굴을 떼놓을 명운은 없다얼굴이 낳은 이름이기에이름이 외면하는 얼굴이기에 (부분)말 또는 이름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보여주는 시다. 세수를 하자 “낯에서 물 묻은 이름이 쏟아진다”는 구절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시인의 민감한 의식을 짐작케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름 고인 물에 얼굴이 뜬다”는 상상이다. “이름과 얼굴을 떼놓을 명운은 없다”는 것, 이는 이름은 언제나 얼굴이라는 육신과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름이 외면하는 얼굴”이더라도 바로 그 얼굴이 이름을 낳은 것이기 때문에. 문학평론가
2023-03-21
다들 지붕 밑에 모인다나무와 고양이와 새들도빈집과 짧은 여름과 기나긴 밤들도우산처럼 지붕도 펴고 닫는다면언제든지 가방 속에 휴대하고 다닌다면누구든지 필요할 때 지붕을 꺼내 들 수 있다면좋겠지, 지붕이 우산이 된다면좋겠네, 지붕이 될 수 있다면모든 것들이 한 움큼 국자 속에서 찰랑인다언제까지 비는 하나의 자세로 떨어질 것인가우산을 펼치려는 마음이낙하하는 순간떠돌아다니거나 한곳에 붙박여 살아야 하는 존재자들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 지붕 밑에서 만난다. “짧은 여름과 기나긴 밤들”까지도(이들 속에는 시인 역시 포함될 테다). 그런 지붕이 “누구든지 필요할 때” “꺼내 들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는 화자의 바람은, “모든 것들이 한 움큼 국자 속에서 찰랑”이는 시간에 대한 희구와 연결된다. 이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끼리 ‘맛있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희구다. 문학평론가
2023-03-20
사실 허공이 무서웠다허공에 집을 짓는 건허약한 나를 불러내는 일문을 짓고 벽을 잃고벽을 짓고 문을 잃고단단한 허공에 쌓아 올린 시간(중략)수고했다점점 야위어가는 다리를 쓰다듬는다허공에서 허공을 버리는 일평생을 건 사투(死鬪)거미라서 (부분)이 시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일을 허공에 집을 짓는 일로 비유한다. 허공에 집을 짓는다는 일이 가능한가? 그렇다. 거미는 정말 허공에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이 시적 발견으로부터 “단단한 허공에 쌓아 올린 시간”과 “평생을 건 사투死鬪”인 “허공에서 허공을 버리는 일”을 읽어낸다. 그리고 거미의 ‘운명’이 시인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는다. 시를 쓰는 일이란 거미처럼 허공에 집을 짓는 일이기에. 문학평론가
2023-03-19
새가 죽고 드문, 드문 저녁이 오기 시작한다새의 내장 가득 꽃힌 시린 허공미처 떠나지 못한 나뭇잎 한 장 前生을 향해 요동친다저 먼 동네 어디에선가 젊은 엄마가 아이를 찾아 나서던 골목길이 태반 쏟아지듯 열리고꽁꽁 얼어붙은 죽음이 파닥파닥 뒹군다돌이킬 수 없는, 그것이일어서고 있다위의 시는 죽음 이후의 세계인 ‘저녁’이 오기 직전, 그 세계의 ‘전조’ 현상을 보여준다. 현 세상엔 죽음이 널려 있다. “새의 내장 가득 꽃힌 시린 허공”이며, 낙엽이 여기를 얼른 떠나고 싶은 듯 “前生을 향해 요동”치는 바닥엔 “얼어붙은 죽음”도 두려운 듯 파닥거린다. “그것이/일어서”서 “태반 쏟아지듯 열”린 ‘골목길’을 따라 이 세계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의 끝,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일 ‘그것’이. 문학평론가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