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정원에서 다시 거닐면서오오! 말없이 노란 그리고 빨간 꽃들이여,너희들 역시 애도하는구나, 너희 제신(諸神)들이여,느릅나무의 가을철 황금빛이여.파르스름한 자그마한 늪가에 미동도 없이 솟아오른다,갈대는, 저녁이 되니 지빠귀들도 침묵한다.오오! 이제는 너 또한 조아려라 너의 이마를선조들의 쇠락한 대리석 기념비 앞에.게오르크 트라클은 독일 표현주의 시인으로, 그가 그려낸 풍경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위의 시는 그의 시풍을 잘 보여준다. ‘노란 그리고 빨간 꽃들’은 뭔가 불길해 보인다. 가을 저녁이 드리운 늪가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 피어 있기 때문이리라. “선조들의 쇠락한 대리석 기념비”는 트라클적 세계를 상징한다. 생동감을 잃고 점차 시들어가고 있는 세계를.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 ‘쇠락’에 이마를 조아리라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2023-11-05
우리의 웃음은 슬픔의 가면이 아니요,우리의 선량함은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우리는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애처롭게 여긴다,합당한 만큼보다 훨씬 더 많이, 지나칠 정도로.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경이로운 존재다,세상 그 무엇도 이런 놀라움을 안겨주지는 못하리니.밤하늘에 뜬 찬란한 무지개도,새하얀 눈밭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도.우리가 잠들면꿈에서 이별이 보인다.그래도 그것은 좋은 꿈,그것은 좋은 꿈이다,언젠가는 깨어나기 마련이므로. (부분)사랑에 빠진 이들은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을 향유하는 이들이다. 아마 경험해본 이들은 알리라. 시인이 말해주듯이 연인 앞에서 웃는 웃음은 ‘슬픔의 가면이 아니’며 순수하게 샘솟는 웃음이라는 것을. 처음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을 때, 상대방은 “너무도 경이로운 존재”로 현현한다. 왜냐고? 마법처럼 저이 앞에서 마음이 들뜨지 않는가! 연인들에게 사랑은, 이별의 상상조차도 곧 깨어날 꿈으로 여길 정도로 강력하다. 문학평론가
2023-11-02
그것은 노래였다가 웅얼거림이었다가 그냥 허공이었다가저녁답 산 너머 절집 쇠북소리처럼날아가다 기진맥진의 흔들림만 남아 또 다시 허공이 되는,가을볕 휘감던 저녁이면쌀을 씻던 당신의 손과그 물소리를 한없이 생각한다다시 가을,음울한 교과서를 펼쳐놓고밤새 외우다가 잠이 든다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이 시의 첫 단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제목을 보면 ‘가을 햇살’이라고 생각된다. ‘노래’였지만 ‘웅얼거림’으로 졸아들다가 허공이 되고만 가을 햇살. 그 햇살은 노래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다. “저녁이면 쌀을 씻던 당신의 손”을 비추던 ‘가을볕’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이제 그 아름다움은 “기진맥진한 흔들림만 남아” 있다가 사라질 뿐이다. 쌀 씻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기에. 문학평론가
2023-11-01
내가 당신을 떠날 때세상은 힘없이 둥둥 울린다.마치 늘어진 북처럼.나는 삐죽한 별들을 보며 당신을 부르고바람의 등줄기를 향해 소리 지른다.하나씩 하나씩빠르게 스쳐가는 길거리들은내게서 당신을 멀리 밀어내버리고,도시의 등불이 내 눈을 찔러서더 이상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다.내가 어째서 당신을 떠나야 하는 것일까,날카로운 밤의 모서리에 스스로 상처 입기 위해서?‘나’는, ‘나’ 자신도 이유를 모르지만, 사랑하는 ‘당신’을 떠나야 했다. 시는 당신을 떠난 이후 ‘나’에게 일어난 고통을 묘사한다. 세상은 “늘어진 북처럼” 둥둥 울리고, ‘나’는 밤하늘 별을 보며 당신을 부르지만, 거리는 당신을 밀어내버린다. 또한 도시 등불에 눈이 찔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밤은 ‘나’의 심장을 날카롭게 찌른다. 이별의 고통을 도시적 서정을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2023-10-31
어디서나 푸른 숲들은 아프다 한다불법 다이아몬드 채취꾼들이 마구잡이로 파헤치는지구의 대형 산소 공급원이며날것 자연 슈퍼마켓인 아마존 밀림싸움터로 나가는 전사들처럼 얼굴에 전투 문신을 그린원주민들이 정부 환경정책담당관을 만나철저히 단속해줄 것을 요청하지만글쎄, 영 미덥지 않은 눈치다한편 우리는 어떨까?저 남미(南美) 아마존의 원시림처럼마구잡이 벌채를 하고 땅 갈아 엎고 그 위에우뚝 제주2공항을 건설해도 괜찮은 것일까푸른 숲과 땅이 벌건 맨살을 드러내고온몸 뒤틀며 몹시 아프다고 신음할 것 같다아마존 밀림 개발이 허용된 후 밀림이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있다고 한다. 시인은 남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 훼손이 그 지방만의 문제가 아님을 환기한다. 한국만 하더라도 제주2공항을 건설한다고 숲과 땅이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지구 훼손은 한 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인류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시인은 말해준다. “얼굴에 전투 문신을 그린/원주민”이나 우리는 같은 지구 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3-10-30
이렇게 살면 폐인이 될 것 같아짐을 챙겨 옆방으로 갔네이렇게 살면 귀신이 될 것 같아다시 짐을 챙겨 옆방으로 갔지이렇게 지내면 정말 귀신도 못 될 것 같아짐 챙길 새도 없이 옆방으로 갔어(중략)밤이면 불을 켜고 가스 불에 국을 데워돈 내지 않으면 모든 게 끊어지네끝은 끝 방고요와 평화불이 꺼지면버스를 타고종점까지 갔다 돌아와야지나는 젖겠네시인의 궁핍한 생활이 구체적이면서도 절제되어 묘사된 시. “돈 내지 않으면 모든 게 끊어지”는 막막한 현실에서, 시인은 귀신이 되지 않기 위해 옆방으로 전전하다가 ‘끝 방’에서 고요와 평화에 들어서고 싶다고 희구한다. 그 희구는 소멸에의 욕망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최악의 상황마저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 역시 담고 있다. “불이 꺼지면/버스를 타고/종점까지 갔다 돌아”오겠다는 다짐으로 표현되는 의지. 문학평론가
2023-10-29
빈 동굴 같은 귀를 틀어막고눈으로 꽃 피는 소리를 듣는 동안역류하던 봄은 스타카토로 열렸다하지만 진부한 표현뿐인 촉감의 오독 때문에시종일관, 나는 끙끙 앓았다그리움을 하얗게 뱉어낸다는 것은새로 태어나는 봉오리들이 사무친다는 것꽃 피는 숫자만큼 그 그림자에도 향기가 배어있다는 것먼 하늘에 소실점을 두고, 피가 가려운가지 끝에 매달려 새가 되는 꿈을 꾼다(부분)귀는 사물의 말없는 말을 듣는 데 방해가 되니 “꽃피는 소리”는 ‘눈으로’ 들어야 한다고. 시인이 듣게 된 말은 무엇인가. 하얀 매화는 그리움을 뱉어낸 산물이며, 그리움으로 사무친 봉오리들은 그 그림자마저도 그리움의 “향기가 배어있다”는 말. 하여 매화의 그리움은 동경이 되고, 동경은 소망이 된다. 그리운 그곳으로 새가 되어 가고 싶다는 소망. 그래서 매화를 꽃피운 나무는 하얀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문학평론가
2023-10-26
아주 늙은 개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어쩐지 걷는 게 불편해 보여옳지 그렇게 천천히 괜찮으니까올라가서 이렇게 기다리면 돼어느 쪽이 아픈지 알지 못한 채둘만 걸을 수 있도록길이 칼이 되도록귤을 밟고 사랑이 칸칸이 불 밝히도록여섯 개의 발바닥이 흠뻑 젖도록누군가와 네 발 달린 ‘늙은 개’가 걷고 있는 뒷모습. 늙은 개가 아픈 건지 누군가가 아픈 건지 “걷는 게 불편해 보”이는데, 아픈 이들이 서로 돌봐주며 길을 걷는 저 모습에서 시인은 사랑을 본다. 사랑의 길은 ‘칼’처럼 날카로우면서도 귤처럼 부드럽다. 그 길을 밟으면 사랑은 “칸칸이 불 밝히”며 빛나는 것, 서로를 기다려주며 저기 길 가고 있는 누군가와 개의 “여섯 개의 발바닥”은 사랑으로 “흠뻑 젖”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3-10-25
바람도 불지 않는 저녁산책길 등 뒤에서 가슬가슬따라오는 소리 들려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네아스팔트 포장도로 위로가랑잎 몇 개 굴러다닐 뿐발걸음 재촉하는데 또다시뒤따르는 낙엽의 기척아득한 전생의 어느 가을날내 앞에 떨어진 나뭇잎들인가돌아가자고 이제그만 돌아가자고 귓전에 속삭이는 듯죽음을 의식하게 되는 나이에 다다른 시인. 그는 홀로 산책하면서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죽음은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가을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낙엽’의 모습이니 말이다. 시인은 그 낙엽이 “아득한 전생”에 “내 앞에 떨어진 나뭇잎들”일 수 있겠고 생각한다. 그 전생으로 “그만 돌아가자고 귓전에 속삭”이는 낙엽. 시인은 죽음을 전생으로 돌아가는 귀향으로 여기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10-24
나의 뺨은 달에 다가가고, 그는 조용히 녹아든다뺨에 흐르는 그 물은 언젠가 바다와 같은 꿈이 되어나를 먼바다로 흘려보낸다과거와 내일이 모두, 같은 시간대처럼 펼쳐질 때나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알고, 잠이 들지잠든 얼굴이 귀여운 건 살짝 죽어 있기 때문이야.누군가가 옆에서 그렇게 속삭인다일본의 30대 젊은 시인의 시. “나의 뺨은” 달을 향하고 ‘그’는 달빛 속으로 용해된다. 방안에 흐르는 달빛은 “나를 먼바다로 흘려보”내는 꿈으로 이끈다. 꿈속에서는 시간 역시 용해되어 “과거와 내일이 모두, 같은 시간대”에 만나는데, 시인은 그 속에서 “모든 것을 잊”는다. 이 망각은 “살짝 죽어 있”는 상태, 시인은 모든 것으로부터 방심한 그 작은 죽음에 어떤 친근감을 느낀다. “잠든 얼굴이 귀”엽다니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3-10-23
저것이 헛것인 줄 알기까지한 세월이 지났구나(중략)벼락, 천둥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젖은 신발인 줄 알았던 것도 헛것이고모래도 헛것이고, 티끌도 헛것이고흰 살결도, 검은 눈물도, 꽃도, 안개도절집도, 성당도, 학교도, 국가도아직 오지 않은 천년도모두 헛것이었구나.헛것인 줄 알기까지 한평생이 걸렸구나모래뿐만 아니라 티끌마저 ‘헛것’이라는, 즉 “모두 헛것”이라는 ‘헛것’의 도저한 존재론을 펼치고 있는 시. 시인은 아름답다고 느꼈던 대상도, 추구해왔던 목적도,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던 국가, 종교, 학문도 ‘헛것’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평생 그를 이끌어온 가치들을 뒤엎는 처절한 깨달음이겠다. 그런데 그 깨달음에는 사람의 ‘한평생’이란 결국 헛것을 따라가며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녹아들어 있다. 문학평론가
2023-10-22
요즈음 고향을 천천히 내려가도낯익은 寫眞이 너무 많아서어제 내려간 내 얼굴을 찾을 수 없어라찔레꽃 그 花類를 몰라도 봄이 가면내게서 넝쿨지어 피어나던 찔레꽃이여사람이 보기 전엔 전혀 외로움이 안되는멀고 멈 섬의 모롱이 시커먼 낭떠러지여요즈음 고향엔 너무나 라디오가 많다보지 않고 뒷주머니에 그냥 집어넣는흔한 新聞도 너무너무 많구나사람이 죽어서 젊은 사람이 죽어서산을 넘어가는 데도 너무나 輓詞가 많구나아아 내가 자주자주 내려간 고향엔한번도 안 내려간 내가 많이많이들녘에 쓰러져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낯익은 사진과 신문, 라디오가 고향의 “넝쿨지어 피어나던 찔레꽃”과 “섬의 모롱이 시커먼 낭떠러지”를 대체한다. 시인을 키워 왔던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 이미지들을 근대의 산물들이 지워버리고 있는 것. 하여 시인이 고향에서 맞닥뜨리는 건 죽음이다. 고향은 근대화에 침식되는 동시에 젊은이들이 빠져나가 공동화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 죽어서” 고향에 울리는 ‘輓詞’는 죽어가는 고향을 상징한다. 문학평론가
2023-10-19
사랑그것의 풍요로운 영예 속에서나는 창가에 선 채메마른 구월의 굶주린 나무들을 바라본다사랑이제껏 금지되었던 깊은 그것이내게 선물 하나를가져다준다내 피부를 할퀴고내 눈을 부수어 열어낼,오래도록 갈망해온 선물을,마침내절박한 황홀경으로부터죽음과 광기를쓸힘을(박선아 옮김)시인은 사랑에 굶주려 있다. 창밖의 저 “메마른 구월의 굶주린 나무들”처럼. 하나 “사랑의 풍요로운 영예 속에” 자신이 존재함을 그는 알고 있다. 사랑은 “오래도록 갈망해온 선물”처럼 그에게 닥치리라는 것을. 사랑은 말라붙은 그를 파괴하며 들이닥칠 것이다. “내 피부를 할퀴고/내 눈을 부수어 열어”내면서.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절박한 황홀경으로부터/죽음과 광기를”, 즉 시를 “쓸/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10-18
폐기물에 씻겨나간 로봇을 훔쳐 온다 탯줄로 목을 조른다 양수를 마신다 검은 강이 흐르는 폐수처리장에서 능숙한 손으로 다리를 꺼내고 어깨를 누르고 머리통을 부수고조각난 머리에 모자 씌운다연못이 그려진 그림을 본다 작은 손을 만진다 발가락에 입맞춘다 갈비뼈를 빼내어 십자가로 만든다 창문 바깥으로 눈동자를 던진다 무럭무럭 자란다 나의 쇳덩어리기계로 자연을 대체하고 막대한 폐기물을 양산하는 시대에서, 자연을 잃어버린 시인은 어디에 시의 닻을 내릴 수 있을까. 금은돌 시인은 폐기물에서 시의 ‘최초의 열매’를 찾는다. 아이를 낳는 과정과 역행하여, 그는 폐기물 속에서 로봇을 가져와 탯줄을 감은 후 양수를 들이마시고 그 로봇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쇳덩어리’ 아이를 낳는다. 이 역행 과정이 기계 시대에 정면으로 응전하는 시 쓰기일 수 있다는 듯이. 문학평론가
2023-10-17
파이프 구멍을 본다 나는 구멍이다 너도 구멍이다모든 것이 뚫린 허공이다구멍을 채우려 날마다 가방을 싼다책을 들고 신발을 찾다구멍을 메우기 위해 나무를 본다누워 숲 사이로 하늘을 본다구멍은 기회다구멍을 향해 들어가기 위해 각을 잡는다(중략)누가 없어도 거미줄을 쳐 놓아야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구멍 밑으로 흙을 밀어 넣는다누구도 넘볼 수 없는 사랑을 위해 오늘도 실을 뽑는다우리 시대는 “모든 것이 뚫린 허공”에서처럼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든 시대 아닌가. 시인은 이 허공에서 어떤 의미를 붙잡으려 하는 이다. 하여 그는 하늘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나무를” 보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허공에 거미줄을 치는 것이다. 구멍에서 어떤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 어떤 기회인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사랑”이 도래할 기회. 그 사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인은 ‘오늘도’ 말의 “실을 뽑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10-16
이사 갈 방 구하기가 힘에 부쳤다방 구하려는 궁리가 돈에 막혀창문이 막힌 방 구했다창문이 높아 목매달 만한 높이에서목련나무 보였다막다른 곳으로 몸 옮겼다창문도 생각도 막힌전화도 가끔 먹통 되는막다른 골목에서 목련꽃 올라왔다오오내 안 적막한 골목에서스스로 올라오는 목련이 보였다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돈이 막”히면, 삶은 “막다른 곳으로” 밀린다. 시인은 이를 직접 체험한 듯하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창문이 막힌 방”을 구한 시인은, “목매달 만한 높이”에 창문이 달려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는 “창문도 생각도 막”혀 죽음을 상상하게 되는 “막다른 곳”까지 밀려 살게 된 것, 하지만 그 창문을 통해 “스스로 올라오는 목련”을 발견한다. 시인에게 살아갈 의지를 불어넣어줄 목련을. 문학평론가
2023-10-15
내 안에 고여 있던 어둠을토해 내고 싶었습니다검은 피, 검은 장기들을 비워 내면무엇이 남을까요그믐이 지났고동쪽 하늘은 또다시 텅, 비었습니다분명 눈을 감았으니완벽한 어둠이 완성될 겁니다너무 캄캄해서 외롭습니다당신은 무사합니까우리 모두, 어둠을 품고 살고 있지 않는가? 하여, 진실된 안부는 “당신은 무사합니까”라는 말일 수 있다…. 시인은 토해내고 싶은 어둠-“검은 피, 검은 장기들”과 같은-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토해내고 남은 마음은 ‘동쪽 하늘’처럼 “텅, 비”어 있을 터, 이에 눈을 감으면 “완벽한 어둠이 완성”된다. 텅 빈 마음이 완전히 캄캄해질 것이기에. 삶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완벽한 어둠’을 통과해야 하리라. 문학평론가
2023-10-12
밤은 너의 눈에서 평온을 빌리고폭풍은 너의 분노에서 노호를 빌렸다너의 말소리는 밭을 일구고너의 숨소리는 꽃을 피운다우물은 네가 눈물 떨군 뒤로 출렁출렁한다아침은 네 눈의 새벽에서 꽃을 피우고밤은 어둠 속에서 기도하러 일어선다별은 모두 네 눈빛을 빌렸다네 미소가 허락하면 삶을 얻는다꽃봉오리는 모두 네 미소의 자손이다(신견식 옮김)이란 현대시다. 위의 시의 ‘너’는 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 ‘너’를 시인이 사랑하는 이로 읽을 수도 있다. 사실, 사랑에 빠지면 그 대상은 신처럼 우리를 압도하지 않는가. 하여 별은 사랑하는 이의 눈빛과 닮아 보이고, 아침의 꽃은 “네 눈의 새벽”과 닮아 보인다. 그이의 미소는 삶을 살게끔 한다. 아니, 시인이 사랑하는 이가 바로 신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에게 신은 그만큼 친근한 대상이라 하겠다. 문학평론가
2023-10-11
밤이 드리우자나는 들어가서 창문을 닫았다나뭇가지는 바람에 흐느적흐느적집에 홀로 남은 나는슬픔의 세상으로 들어갔다문득누가 밖에서마당에서창문 바로 뒤에서 우는 것 같았다새벽이슬이 떨어졌다사과꽃에(신견식 옮김)이란 현대 시인의 시. 우리는 밤이 되면 밖에서 집에 들어와 창문을 닫는다. 위의 시인이 그리하듯이. 그런데 시인은 밤의 방 안에서 “슬픔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이 시간에 그는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만이 슬픔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창문 바로 뒤에서 우는” 존재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것은 ‘사과꽃’ 위에 떨어지는 ‘새벽이슬’인 바, 그 이슬은 신의 눈물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
2023-10-10
그는 난간이 두렵지 않다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아는 고양이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묘기의명수인 발과 발톱냄새를 잘 맡는 예민한 코어리석은 생선은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고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침을 안다그가 두려워하는 건늘 새 이슬 떨구어내는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하느님의 눈동자 새벽별거듭나야 하는 괴로움야옹야옹시인은 고양이가 되고 싶은 것일까. 그에게 고양이는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 잘 아는 존재자다. 난간 위에 서 있다는 것은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것, 고양이는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다. 도리어 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치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자연 속 작은 존재들의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신성과 영원회귀의 괴로움을 살아나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다. 문학평론가
20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