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둘러보면눈 녹은 바위 곁, 여기저기언 몸 일으키며 파르르 올라오는 푸른 잎들내 길을 묻고 있다어디로 가려고?무엇을 보려고?따라오던 새 소리 잦아든다숨을 고르자흐린 하늘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초원이 들썩인다눈 속 가득 꿈틀거리며 밀려오는 푸른 잎들이언 땅을 흔들며 천지로, 천지로 달려간다 (부분)시인의 마음은 얼어 있고 검은 구름이 낀 하늘처럼 흐려 있다. 그는 자신의 길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백두산 천지 밑 푸른 잎들이 시인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이 시인의 마음을 뒤흔들고 들썩거리게 만들고, 그 잎들은 천지를 향해 달려감으로써 시인이 갈 길을 알려준다. 천지로 향해가는 길, 그것은 분단 극복의 길 아니겠는가. 얼어붙은 삶이 햇살을 받고 따듯하게 회복될 수 있을 길. 문학평론가
2023-09-07
사람 흔적만 봐도/흔들리는 대간길/신선봉을 내려와/무너진 성황당 돌 더미에 이르면/새이령/누군들 그냥 스쳐 지나갔으랴/갈 길 내려놓고/갈 데 없이 떠도는 혼을 달래며/새이령을 넘나들었으리영은 마장터로 내려가고/바람은 능선으로 몰려가네/암능을 타고 너덜 지대에서 휘청거리다/병풍바위를 지나 마산마산 봉우리는/참호와 참호/벙커와 벙커에 걸쳐 있고/대간길 절벽으로 떨어지네흘리로 흘러들어도 절벽/진부령으로 흘러내려도 절벽/군사분계선을 끼고 사는 우리들/어딜 가도 절벽이네산속에 있는 성황당의 파괴는 전쟁 때문일 테다.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갈 데 없이 떠도는 혼”과 만난다. 이 떠도는 영과 함께 걸은 화자는 ‘마산 봉우리’에 이르는데, 이곳에는 참호가 파여 있고 벙커가 만들어져 있다. 전쟁의 흔적들에서 화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절벽’이다. ‘절벽’은 길이 끊어졌음을 의미하면서, 자연의 신성이 파괴된 민족 현실의 절망적 상황을 상징한다. 문학평론가
2023-09-06
누이동생의 하이얀 첫아이를 보듬고어둠에 잠긴 도시를 내려다본다해골을 넣고 다니는 시뻘건 그림자들을낚시 바늘처럼 반짝이는 네온의 불빛을 바라보며아이의 눈썹 속에 소리없이 떨어진두 개의 까아만 씨앗을 어루만진다.허, 내가 이 아이에게 노래할 제목은 무엇일까아직 부르지 않은 노래만이 그 제목일 것 같아어둠에 잠긴 도시를 뒤돌아선다방 가운데 매달려 흔들리는 하늘에누이동생의 첫아이를 올려 놓는다그리고 별들이 내려와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하이얀 첫 아이”의 ‘까아만’ 눈동자와 ‘네온의 불빛’만 반짝이는 도시의 어둠이 대조된다. 저 “낚시 바늘” 같은 불빛 속을 배회하는 이들은 “해골을 넣고 다니는 시뻘건 그림자들” 같다. 미래의 ‘씨앗’인 아이를 저 불빛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도시를 뒤돌아”서서 미래의 노래-“아직 부르지 않은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 그 노래-시-는 아이에게 내려와 무엇인가 속삭이는 별들의 소리를 들어야 만들 수 있으리라. 문학평론가
2023-09-05
사랑한다는 것은/ 썰물에 갯벌 드러나듯/ 마음이 열리는 것이어서/ 조금씩/ 천천히/ 바닥이 되는 것이어서/ 낮게, 낮게 흐르는 것이지파도에 시간을 풀어주고/ 물길 발자국도 거두어 주고/ 제 속이 훤히 드러난 자리/ 멀리, 멀리서 날아오는/ 바닷새 몇쯤 앉히는 일이지물길 열려 걷는 길/ 발가락 사이로 진흙 빠져나오듯/ 부드럽게 그대 감싸 주며/ 가만, 가만히 풀어지는 먹빛/ 그 그늘 머금은 바위섬/ 오래 두고 기다리는 것이지위의 시에 따르면, “사랑한다는 것은” ‘썰물’이 “낮게 흐르”면서 천천히 드러내는 ‘갯벌’처럼, “마음이 열리”며 “제 속이 훤히 드러”나는 “바닥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썰물처럼 시간을 풀며 과거를 거두기도 하고, 멀리서 날아온 바닷새를 넉넉하게 앉히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은 무엇보다 ‘그대’를 향한 오랜 기다림이다. 저기 “가만히 풀어지는 먹빛”에 부드럽게 감싸여 사라지는 ‘바위섬’과 같은 그대를. 문학평론가
2023-09-04
새의 발가락보다 더 가난한 게 어디 있으랴지푸라기보다 더 가는 발가락햇살 움켜쥐고 나뭇가지에 얹혀 있다나무의 눈썹이 되어 나무의 얼굴을 완성하고 있다노래의 눈썹, 노래로 완성하는 새의 있음배고픈 오후,허기 속으로 새는 날아가고 가난하여 맑아지는 하늘가는 발가락 감추고 날아간 새의 자취좇으며 내 눈동자는 새의 메아리로 번져나간다새의 “지푸라기보다 더 가는 발가락”을 응시하는 시인의 눈동자. 새는 그 발가락으로 햇살 한 줌만을 움켜쥐고 있다. 새가 가진 것은 그 햇살 한 줌이 전부다. 그렇게 가난한 새는 “나뭇가지에 얹혀” 나무의 눈썹이 되어준다. 그 새가 있음으로써 나무는 자신의 얼굴을 완성하는 것. 가난한 새가 날아가자 하늘은 “가난하여 맑아”지고, 그 허공을 가르는 새의 자취가 메아리 되어 시인의 눈동자 속에 맑게 번져나간다. 문학평론가
2023-09-03
무(無) 밭인 창공을 향해한 뼘만큼의 설움을바닥을 치고 오른 가지처럼 내민다영혼이 누워도안간힘으로 버티는육신의 굴레에서 움트는 지독한 사랑아무도 모를잔상殘像이 겨울로 고스란히 남아감히 나는 울음 우는 것조차 망설여진다슬픔의 글자들이강물 위에 비로소 역할을 내려놓는다위의 시에 따르면, 사랑은 영혼이 아니라 육신에 존재하는 것인지 모른다. “영혼이 누워도” 사랑은 “육신의 굴레에서 움트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어쩌면 사랑은 굴레가 있기 때문에 절절하고 지독한 것 아닐까. 그래서 사랑은 영원하지 않아 언젠가 실패하며, “아무도 모를/잔상(殘像)”으로 우리의 육신 안에 숨어든다. 하여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는가. 설움의 손을 저 무(無)의 밭인 하늘에 내밀면서까지. 문학평론가
2023-08-31
재를 뒤집어쓰고 누웠다멀어지는 날개를놓아주었다나무 사이로슬픔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며우리는 포옹을 하고서로의 깃털을 다듬으며가장 먼 곳사랑이라는 이름으로성홍열이 지나간 자리를불어 주는 검은 얼굴이 되어우리는 사랑을 좀처럼 보내지 못하지만 결국 사랑을 놓아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 안에서 “슬픔이 타오르는 것을 지켜보”면서, ‘멀어지는’ 사랑의 “날개를/놓아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여, 시인의 영혼은 불타는 슬픔으로 잿더미가 되지만, 시인은 “서로의 깃털을 다듬으며” 사랑과 이별하고, 검게 그을린 재의 얼굴로 ‘성홍열’로 생긴 빨간 흉터에 치유의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문학평론가
2023-08-30
식탁에 모일 식구 없음을 알면서도그래도 아버지 흉내를 내보느라호떡을가방에 사 넣고지하철에 몸 싣는다하나둘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오면왜 눈물이 나는 건지, 본성의 눈물인지품 안에넣어온 아버지의 풀빵목젖까지 젖는 밤아버지가 귀가하시면서 맛있는 것을 사다주셨을 때 기뻐했던 아이 때의 기억은, 누구나 여전히 생생할 테다. 최도선 시인의 아버지는 호떡을 사다주시곤 했던 모양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이제 세상에 안 계신 듯, 식탁은 비어 있다. 호떡의 기억을 되살리고픈 시인은 호떡을 사서 가방에 넣는다. 그러자 아버지가 부재하다는 사실이 도리어 생생하게 밀려오고,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시인의 목젖까지 차오르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8-29
한때 넓고 넓은 대서양에서 놀다수족관에 들어와 삼 년째 살고 있다수인번호라도 단 듯,거실에 불 나가고 수족관에 밤이 찾아오면 뜬눈으로 지샌다껌벅껌벅 눈물 밀어내며 창밖을 기웃거린다남은 거라곤 개뿔, 초조 불안밖에 없다먹거리 쌓여 있어도 바깥세상 고입에 강대나무 닯아간다작은 울음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각진 벽들이받은 주둥이 아물 날 없다그럴 때마다 수면이 퍼덕퍼덕 요동친다머릿속 시나브로 비워져 가고 눈앞 아득히 흐려져 간다시인의 정신은 대양을 횡단하는 물고기와 같을 테다. 하나 시인이 이 지상의 세상에서 사는 일은, 붙잡힌 대양의 물고기가 수족관에 갇혀 사는 일과 같다. 시의 정신은 자유롭게 유영하고 싶지만 곧 “각진 벽”에 주둥이를 들이박을 뿐이다. 하여 “초조 불안” 속에서 “창밖을 기웃거”리는 것이 시인의 삶이 되었는데, 이젠 대양 속을 유영하던 기억마저 점점 지워지며 시인의 ‘눈앞’은 “아득히 흐려져” 가기만 한다. 문학평론가
2023-08-28
상처라는 말보다는흠집이란 말이 더 아늑하다마음에, 누가 허락도 없이집 한 채 지어놓고 간 날은종일 그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홀로 아득해진다몇 날 며칠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몇 번이고 나는,나를 고쳐 짓는다‘흠집’에 대한 재의미화가 돋보이는 시. 시인에 의하면, 흠집도 ‘집’이어서 ‘아늑’한 집이다. 하지만 이 집은 “누가 허락도 없이” 지어놓은 집, 시인이 그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홀로 아득해”지는 것을 보면.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지어놓은 상처-흠-의 집 아닐까 한다. ‘흠집’에서 계속 살 수는 없다. 시인은 이 집을 “몇 날 며칠/부수고 허물어낸 빈터”에 ‘몇 번이고’ “나를 고쳐” 지어 다시 세운다. 문학평론가
2023-08-27
아이는 노래하고 있었다. 침상의 엄마는, 쇠잔하여,어둠 속으로 아름다운 이마를 숙이고, 임종을 맞고 있었다.(중략)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창가에서,그의 웃음과 그의 놀이가 쾌활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엄마는 하루 종일 노래하는 이 가련하고온화한 존재 곁에서, 밤새 기침하고 있었다.엄마는 수도원 포석 아래로 가 잠들었다.어린아이는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고통은 하나의 열매이다. 신은 열매를 키우지 않는다.매달고 있기에 너무 약한 가지에는.침상엔 쇠잔하여 죽어가는 ‘아이의 엄마’가 있다. 그 옆엔 웃으며 노래 부르며 놀고 있는 ‘다섯 살’ 아이가 있다. 비극적 대조를 선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떻게 죽어가는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가 땅에 묻힌 이후 그 앞에서도 쾌활하게 노래 부를 수 있는가? 이 아이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아이처럼 “매달고 있기에 너무 약한 가지에는” 고통이라는 “열매를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3-08-24
누구의 마음이기에부드럽고 포근한가그러나 눈이 되기까지티끌 하나 남김없이스스로를 완전연소 시켜야 했다그러므로 눈이 된다는 것은사악한 것과 까칠한 것죄라고 생긴 모든 것 헹궈야비로소 순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니사랑이여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우리가 뜨거워져사라져도 좋으리.시인에 따르면, 눈은 “스스로를 완전연소 시켜야” 탄생한다. 지상의 물이 증발해 생긴 구름이 찬 공기와 만나 눈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발상이다. “죄라고 생긴 모든 것”이 묻어 있는 지상의 물이 연소되어야 증발은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연소의 연료는 사랑이다. 사랑이란 자상의 우리가 눈처럼 “순백의 마음”으로 만나 “뜨거워져/사라”지는 것. 하여 사랑은 천상에서 눈으로 재탄생하리라. 문학평론가
2023-08-23
나무는 자신감을 갖지 않는다열정으로 가지를 뻗는 것이 아니다강은 야망을 품고 흐르지 않으며바위는 인내가 무엇인지 모른다희망 때문에 또 봄이 찾아오는 것이라 말할 수 없고무슨 목적이 있어 비바람이 거세질 리 없다(중략)자연은 오직 자연스럽게 생성하고 소멸한다어쩌다가 나고 살고 죽는 것이 싫어인간이 몸부림친들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배웠다인간은 메타포를 통해 자연을 생각하곤 한다. 가령 나뭇가지에서 열정을 읽는다든지 봄에서 희망을 읽어내기도 한다. 위의 시는 이러한 메타포의 사용이 “죽는 것이 싫어” 몸부림치는 인간의 의지로 본다. 하나 자연은 어떤 의지를 통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연스럽게 생성하고 소멸”하며, 인간도 “자연의 일부”여서 아무리 몸부림친다고 해도 ‘생성-소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위의 시의 전언이다. 문학평론가
2023-08-22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창밖의 그녀와 걸어간다첫사랑처럼 가까이 있으면서도 투명했던말하지 못했던유리창 밖으로 봄날 꽃이 피고지나간 사랑이 유리창처럼 투명하다가까이 있어도 창밖의 사람처럼투명하게 바라본다밖에는 꽃이 핀다창밖의 그녀가 꽃 속에 있다시평“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다. 아내 같은 이. 시인은 유리창을 통해 살아온 과거를 들여다본다. “그녀와 걸어간” 시간이 창밖에 펼쳐진다. 그리고 “지나간 사랑이 유리창처럼 투명”한 사랑이었으며, 그녀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투명했던” 이였음을 깨닫는다. 투명한 사랑은 갓 피어난 꽃과 같은 첫사랑. 그녀와 함께 한 시간 내내 첫사랑은 가까이 있었던 것. 하여, 시인은 그녀가 첫사랑의 “꽃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문학평론가
2023-08-21
여울에 몰린 은어때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따면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월래에목을 빼면 시름이 솟고….백장미(白墻薇)밭에공작(孔雀)이 취했다뛰자 뛰자 뛰어나보자강강술래뇌누리에 테프가 감긴다열두발 상모가 마구 돈다달빛이 배이면술보다 독한 것기폭이 찢어진다갈대가 스러진다강강술래강강술래강강술래 놀이의 묘미는 처음에는 느린 가락으로 노래하며 천천히 원을 돌다가 나중에는 빠른 가락으로 노래 부르면서 빠르게 원을 도는 데에 있다. 이러한 묘미를 위의 시는 시에 잘 살려 놓았다. 또한 시인은 이 놀이에 대한 자신의 해석도 시에 녹여놓는다. 시인에 따르면, 느린 가락과 춤은 민중의 설음을, 빠른 가락과 춤은 “술보다 독한” 민중의 의지 또는 기폭이 찢어질 정도의 어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8-20
새는 자기 몸을 쳐서 건너간다. 자기를 매질하여 일생일대의 물 위를 날아가는 그 새는 이 바다와 닿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있는, 다만 머언, 또 다른 연안 (沿岸)으로 가고 있다.잠언을 품은 바다의 광경. 그 광경은 바다 위를 나는 새가 완성한다. 저 새는 “자기를 매질하여” 저기 바다와 바다 너머 사이의 수평선을 횡단하고 있다. 바다 너머에는,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연안이 분명히 존재하리라. 새는 다른 세계의 연안으로 “자기 몸을 쳐서 건너간다.” 이 모습은 그 자체가 삶의 잠언이다. 시인은 저 새처럼 저 너머 연안으로 가기 위해 자신을 더욱 매질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리라. 문학평론가
2023-08-17
사람들 살지 않는 마을이호수에 덮여 자고 있다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꿈꾸고 있다햇살 눈부셔 눈부셔 눈 뜨는 마을푸른 잉태 하나 낚시에 걸려 온다손바닥에 퍼런 불을 토하는 생명풀 풀 날아드는 비릿한 살내음잃어버린 고향하늘 한자락 타고 있다사랑하는 가슴끼리 타고 있다불타는 눈끼리 타고 있다사람들 살지 않는 마을댐이 건설되고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고향 마을. 하나 시인은 저 마을은 사라지지 않고 자고 있을 뿐이며,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꿈꾸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꿈은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실향민들의 꿈일 터, “낚시에 걸려”오는 “푸른 잉태 하나”란 그 꿈이겠다. 이 꿈에서 “퍼런 불을 토하는 생명”이 발현한다. 실향한 이들의 마음속-호수 속-에는 “사랑하는 가슴끼리”, “불타는 눈끼리 타고 있”기에. 문학평론가
2023-08-16
(중략) 그 강물이 끝나는 곳에/ 인고의 세월 실개천이 흐르고/ 서럽게 서럽게 흐르고/ 그 실개천이 끝나는 곳에/ 다시 밤으로 흐르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가 끝나는 곳에/ 지난겨울 약간의 가을을 이고/ 건넛마을 죽도로 시집을 간/ 내 사랑하는 누이의 말라/ 비틀어진 젖꼭지가 있고/ 그 젖꼭지에 달겨붙어 악을 쓰는/ 어린것의 울음소리가 있고/ 그 울음소리가 끝나는 곳에/ 그 울음소리가 끝나는 곳에/ 텅 빈 그물을 한숨으로 채우는/ 어부의 달이 있고/ 빈사의 달이 있고폐수로 오염된 강물의 끝에서 “인고의 세월 실개천”이 서럽게 흐르기 시작하고, 이 실개천 끝에서 “밤으로 흐르는 바다”가 펼쳐지고, 그 바다 끝에는 ‘죽도’가 있다. 이곳에는, 젖 달라고 악을 쓰는 ‘어린 것’이 누이의 젖꼭지에 매달려 울고 있고, 이 울음소리 끝에 “텅 빈 그물을 한숨으로 채우는/어부의”, “빈사의 달”이 매달려 있다. ‘기적 소리’ 끝에서 시작한 끝의 연쇄 끝에 다다른 것은 텅 빈 삶, 죽음이다. 문학평론가
2023-08-15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그곳이 나의 고향,그곳에 묻히리.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덕배기면 어떻고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온갖 짐승 제멋에 뛰노는 산속이면 어떻고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밭이면 어떠리.풀씨가 날아다니다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는 길목,그곳이면 어떠리그곳이 나의 고향,그곳에 묻히리.저기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는 풀씨는 사랑의 씨앗이다. 이 씨앗은 날아다니다 멈추거나 “멈출 곳 없어 언제까지나 떠다니”기도 한다. 시인은 이 부유하는 풀씨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나의 고향”이라고 한다. 그곳은 사랑이 발아하는 곳이며, 자신 역시 사랑을 통해 태어났기에. 사람은 모태회귀 욕망에 따라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하는 것, 하여 시인은 풀씨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곳에 묻히리.”라고 희구한다. 문학평론가
2023-08-13
전라도 막막한 골 땅끝 외딴 섬은날궂이 바람 불고 우 우 우 바다가 울면함부로 보이지 않는 신기루로 떠오른단다.세월도 뒷짐 지고 저만큼 물러선 자리밀물에서 부대껴서, 썰물 북새에 떠밀려서유배지 무지렁이 땅에 뿌리 뽑힌 질경이다.(중략)먼 데서, 가까이서 덩치 큰 해일 다가서고외나무 상앗대로 죄구럭 식솔들 거느리는소금기 쓰라린 생애, 파도타기 목숨을….“땅끝 외딴 섬”이 있다. 남에게 “함부로 보이지 않는” 이 섬은 “땅에 뿌리 뽑힌 질경이”인 “유배지 무지렁이”의 희망-‘신기루’-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섬이다. 특히 이 섬은 “바람 불고 우 우 우 바다가 울”때 떠오른다. 희망은 고난과 슬픔이 삶을 뒤덮을 때 더욱 절실해지기에. 이 섬이 떠오른다는 것은 어떤 징조이기도 하다. “덩치 큰 해일이 다가서고” 있다는 징조. 이 해일이란 혁명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
20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