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항선원 꿈꾸던 바다아스라한 수평선그림자조차 붉은 오후나침반 구명보트긴 고동 소리햇살 속 빛나던 섬이 멀어진다항구로 돌아오는 배의 수척한 이마갈매기 난다우연과 운명 사이깜박이는 등대굽이굽이 골목 지나 가파른 언덕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불 켠 추억처럼 떠 있는 배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한 사내가 흐느끼고 있다“외항선원”이 되는 꿈을 가졌던 사내. 시인은 자기 자신일 이 사내에 대한 기억으로 이끌린다. “아스라한 수평선”과 “긴 고동 소리” 때문이겠다. “햇살 속 빛나던 섬”은 시인의 꿈이 투영된 상징물일 터, 이 “섬이 멀어진다”는 건 그 꿈을 놓쳐버렸다는 의미겠다. “우연과 운명”이 얽히며 그리 되었으리라. 결국 기억이 다다른 곳은 저 계단 위의 “가파른 언덕”, 거기서 시인은 “흐느끼고 있”는 ‘사내’와 마주한다. 문학평론가
2024-05-02
어두운 방에 하얀 양 떼들이 몰려와놓쳐버린 病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니고 있어눈 감을수록 물 밖으로 뛰어나온 물고기처럼억울한 것들이 더 팔딱팔딱 뛰어….달콤하지 않은 잠을 태우고 있을 때 왜 몰랐을까내가 미련에 중독되었다는 것을밤을 새워야 하는 박쥐의 특명처럼당신이라는 환영을 창밖으로 펴내고 있어화자는 “물 밖으로 뛰어나온 물고기처럼” 어떤 “억울한 것들이 더 팔딱팔딱 뛰”고 있는 밤을 견디고 있다. 그는 동굴 속 박쥐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 견디다 못한 그는 ‘어두운’ 마음의 ‘방’ 안에 양떼들을 풀어놓고 “놓쳐버린 病을 필사적으로 찾”고는, 결국 “미련에 중독되었다”는 병을 찾아낸다. 사랑의 대상을 마음에서 쫓아낸 줄 알았으나, “당신이라는 환영”은 마음의 방에 물처럼 스며들어 있었던 것. 문학평론가
2024-05-01
희망은 가까운 편의점에 있다즉석에서 긁은 서로의 얼굴을휴지통에 버릴 때거리는 습관적으로 가벼워진다(중략)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사람들은 공중을 채굴하기 시작했다기술적인 이해 없이도비트에 따라 춤추면 되는 일이었다가짜 지갑이 두툼해지고가짜 뉴스가 날개를 달며우리는 매일매일 가벼워지고거리는 다시,발랄한 예배로 넘쳐났다(하략)복권과 비트코인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 전에도 이런 이들은 있었지만, 근래엔 더욱 그 수가 늘어난 느낌. 그만큼 실제의 삶에서 희망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 특히 젊은 층들은 더욱 힘들다. “공중을 채굴”하는 비트코인은 우리 시대를 상징한다. “가짜 지갑이 두툼해”지는 만큼 삶도 가벼워지는 법, 부자 되기를 비는 “발랄한 예배”로 매일을 시작하는 비트코인 숭배자들이 “거리를 습관적으로 가”볍게 만든다. 문학평론가
2024-04-30
솔직히 말해서책은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더 솔직히 말하면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로 있고 싶었다그러나 벌써 책이 되고 말았으니옛날의 일을 잊어버리려고책은 자신을 읽어보았다‘솔직히 흰 종이로 있는 게 좋았다’고검은색 활자로 쓰여 있다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준다책은 책으로 있다는 게조금 기뻤다책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흰 종이로만, 나아가 종이로 되기 이전인 나무로 존재하고 싶었다고. 인공화 이전 존재로 있고 싶었던 것. 하나 “벌써 책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 책은 자기 위에 쓰여 있는 글자-내 -를 읽어본다. 그러자 그는 “내 마음을 모두가 읽어”주는 일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는, 자신이 “책으로 있다는” 걸 비로소 긍정한다. 여기서 ‘책’을 시인, 책의 활자를 시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
2024-04-28
왼쪽 무릎이 땡긴다 순간화산재 무너져 내린다요추 3번이 돌출해서 신경 때문에 무릎이 땡기는 것이라고의사는 말한다응급실에 실려가지 않으려면 걸어야 한다(중략)계단을 내려올 땐 왼쪽 발을 쭉 디딘 후오른 쪽 무릎을 구부려 내린다시간의 경계를 허물려면 죽음의 계단을조심스레 건너야 한다행성과 행성을 탐색하며빙글빙글 돈다언제 착륙할 줄 모르는 보이저 1호처럼매 순간 허공에 떠 있는시인은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날 1942년 생. 지금 그는 ‘요추 3번’이 고장나버렸다. 이 나이에 육체적 고통은 죽음을 예상하게 될 터, 그는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기 위해 운동 삼아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내린다. 그것은 “시간의 경계를 허”무는, 즉 죽음을 건너는 숭고한 일이나, 시인은 자신이 “매 순간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언제 착륙할 줄 모르는” 우주선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죽음을 의미하는 착륙을. 문학평론가
2024-04-25
우리 동네에는 버스 정류장 옆에 하나골목 어귀 담배 가게 옆에 하나빨간 우체통이 있다매일 한 번 오전 10시에 다녀가는 그는예전엔 걸어다니다가 자전거로이젠 오토바이로 붕붕 날아다닌다.사랑에 빠진 비행사에게는우주에서도 빨간 우체통이 제일 먼저눈에 들어온다고요즘 내 눈엔어째 우체통만빠알갛게 들어온다.우정이나 사랑의 편지를 우체통을 통해 주고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체통이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물인지. 동네 우체통에 매일 한 번씩 다녀가는 ‘그’가 “오토바이로 붕붕 날아다”니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사랑에 빠진 비행사”가 우주에서도 “제일 먼저/눈에 들어”오는 사물이 ‘빨간 우체통“이라고. 시인도 같은 마음이다. 동네 우체통을 응시하는 그의 눈 역시 “빠알갛게” 물드는 것을 보면. 문학평론가
2024-04-24
텃밭에서 잡초를 뽑았다개미들이 쏟아져 나왔다어둠 속거친 뿌리에 기대어꿈틀거렸을작고 여린 것들어쩌다가냘픈 한 세상이한 움큼 풀과 함께 뽑혀흩어져 버린 날사투하던 목숨들이스멀스멀 내게로 기어들었다삶은 어디에나 있다. 잡초 뽑을 때 쏟아져 나오는 개미들을 보라. 그 개미들 역시 “거친 뿌리에 기대어” ‘사투’하듯 꿈틀거리며 ‘목숨을’ 지탱했을 테다. 잡초 뿌리는 거칠다. 환경을 이루는 세계의 뿌리-본질-은 거친 것. 뭇 생명들은 이 거친 세계에 기대어 살아가야만 한다. 하나 그 거친 세계도 뿌리째 뽑힌다면 “가냘픈 한 세상” 역시 흩어져 버리곤 만다. 한국의 민초들 역시 그렇게 세계를 상실하곤 했다. 문학평론가
2024-04-23
네모반듯하게 잘린 한 뼘 땅을 걸어 나와최대한 무대 앞쪽으로 수줍은 듯 그는 뭔가를나눠 주고 있다아무도 안 죽었는지 살피는 표정으로그는 땅속에 묻어 두었던 자신의 몸을 바람처럼 꺼내조금 만지게 해 주는 것인데,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걸까?희미해져 가는 그의 웃음과 눈빛 속으로내가 먼저 아파야 하는정말 먼곳땅에 묻힌 이도 이승에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다. 제삿날이 그런 날이겠다. 위의 시에서 ‘그’는 자신이 묻혀 있던 “한 뼘 땅을 걸어 나와” “아무도 안 죽었는지 살”핀다. 제사에 모인 자신의 아이들이 잘 있는지 알고 싶어서이리라. 영정사진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통로다. 이 사진을 통해 죽은 자는 “자신의 몸을” “조금 만지게 해 주”고, ‘나’는 사진 속 “그의 웃음과 눈빛 속으로” 빠져들며 아파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4-22
맑은 날말은 고갯길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싶었습니다.한 땀 한 땀 구름을 꿰며휘파람새가 지저귑니다.그곳은 자기에게 오지 않고, 자기를 떠난 행복처럼슬픈 울림이었습니다.짙은 녹음으로 우거진 산들이 고요히나아가려는 자의 앞길을 막습니다.쓸쓸해진 그는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마른 풀처럼 뻗은 갈기가 타오르고어디선가 같은 외침이 들렸습니다.말은 방금 근처에서, 따뜻한 기운을 느꼈습니다.그리고 먼 세월이 한꺼번에 흩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1936년 25세 나이로 요절한 일본의 여성 시인 사가와 치카의 시. 오직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싶”은, 지쳐버린 말. 그의 앞길을 가로막은 산들 앞에서 결국 “그는 소리 높여 울”어버리는데, 그러자 그 울음은 그의 갈기를 활활 타오르게 하고, 나아가 “어디선가 같은 외침이 들”리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그는 “따뜻한 기운을 느”끼지만, 그것은 죽음의 기운인지 모른다. “먼 세월이 한꺼번에 흩어지는 것을 보”면. 문학평론가
2024-04-21
승객 여러분 뼈를 깨끗이 씻고 탑승하기 바랍니다우리는 등을 보며 육류비빔밥을 먹을 것입니다길이 없지만 출발해야 합니다누군가 기차를 잡고 앞으로 밉니다우리는 출발합니다살러 갑니다내 머리를 잡고 꿈틀거리지 좀 마세요숨을 참으면 연해질 수 있습니다더욱 부드러워질 때까지핏물이 빠질 때까지썰기 좋은 고기가 될 때까지한 끼의 밥이 되기 위해우리는 매일 출발하고 있습니다 (하략)밥벌이를 위해 직장에 출근하는 이들로 가득 찬 통근 지하철. 시인에 따르면, 이곳은 ‘육류비빔밥’ 제작소다. 노동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 평범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직장에 바쳐 자신의 밥을 마련해야 한다. 하여 그들의 삶 자체가 밥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아침마다 “길이 없지만 출발”하는 지하철은, 노동자들이 “한 끼의” “육류비빔밥”이 되기 위해 “더욱 부드러워”져 “썰기 좋은 고기”로 변해가는 곳이다. 문학평론가
2024-04-18
요새 택배비 얼마나 한다고저 무거운 걸 지고 다녀거지같이누구더러 하는 소린가 했더니붐비는 사람들 사이로아버지가 온다쌀자루를 지고 낮게 온다거지라니,불붙은 종이가얼굴을 확 덮친다다 지난 일인데얼굴에 붙은 종이가떨어지지 않는다평생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 특히 부모에 대한 모욕적인 말이 그렇다. 무거운 쌀자루를 지고 오는 시인의 아버지에게 어떤 이가 툭 내던진 ‘거지같이’라는 말. 시인에게 이 말은 “얼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불붙은 종이”가 되었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언제나 의식하게 되는, 쌀자루보다 무거운 말. 말은 말한 이의 사람됨을 드러낸다. 무심코 던지는 말에서도, 말한 이의 속생각과 인성이 드러난다. 조심할 일이다. 문학평론가
2024-04-17
상극이고 웬수인 사람이 죽으니한 줌 뼈밖에 없고오 분을 동석하기 힘든 사람이 죽어도재 한 줌밖에 없고동해 파도는 질리도록 밀려오는데질리지 않고질릴 리 없고허공은 무한대의 눈발 들끓고그날 감정이 얼마나 미세한지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천지가 가만히 있질 않았다자연의 무한 앞에서 미움은 얼마나 작은 감정인가. 그렇게 미워한 사람도 죽음 이후에 “한 줌 뼈”, “재 한 줌”으로 남을 뿐이다. 시인 또한 미래엔 그렇게 남게 될 터, 하지만 이 무한한 허공과 “질리도록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시인이 느끼는 감각은 숭고함이라기보다는 미세함이다.“무한대의 눈발” 속에서 그는,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 천지가” 거대하게 진동하며 들끓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4-04-16
고향 마을에 들어 내가 뛰어다니던 논두렁을 바라보니 논두렁 물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사내의 몸에서 나온 소년이 논두렁을 따라 달려나갔다 뛰어가던 소년이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논두렁 멀리 멀어져간 소년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내는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나이가 지긋이 들어 있을 ‘사내’는 “고향 마을”을 찾아 자신이 “뛰어다니던 논두렁을”‘거울’인 양 바라본다. 그러자 ‘논두렁 물’ 역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사내’의 몸에서” 고향에서 뛰놀던 소년이 분리되어 “논두렁을 따라 달려나”가는 것 아닌가. 그의 기억에 봉인되어 있었던 소년이 되살아난 것, 하지만 그렇게 분리된 소년은 ‘사내’와 다시 합쳐질 수 없다. 소년은 그에게서 영영 떠나버리고 만 것이니. 문학평론가
2024-04-15
오랜 세월 지나고 다시 오랜세월이 지나서, 대기가 당신 영혼과 내 영혼 사이에구덩이를 판다면, 오랜 세월이 지나고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으로 나 홀로 남는다면,당신의 입술 바로 앞에 멈춰버린 존재로,정원을 거니는 것마저 피곤해진 가련한 사람으로 남는다면,당신은 어디에 계시려나? 대체 어디에,당신, 오 내 입맞춤의 소산이여!시의 제목이 ‘낯모르는 여인’이지만, 시의 마지막 행에 따르면 당신은 ‘입맞춤의 소산’이다. 오랜 세월의 “대기가 당신 영혼과 내 영혼 사이에/구덩이를” 파서 당신으로부터 시인이 멀리 떨어지게 된다면, 그땐 당신은 낯선 존재가 되리라고 시인은 말하려는 것 같다. 하면, 위의 시는 “당신의 입술 바로 앞에 멈춰버린 존재”가 될지 몰라 불안한 시인이 사랑이 소멸되었을 먼 미래의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 하겠다. 문학평론가
2024-04-14
길 잃은 강아지와굽은 허릴 이끌고꼭두새벽부터 나와 서성이는 노인과풀씨를 쪼아대는 참새들이한 줄로 서 있다문득, 산모퉁이를 돌아기차 바퀴 소리가 들려오자동시에 그곳을 향해휙 고개가 돌아간다우린 때로 그리움으로 하나가 된다이젠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시골역. 버려진 역 앞에 버려진 이들이 보인다. “길 잃은 강아지”와 굽은 허리로 새벽부터 나와 서성이는 노인.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역이기에 참새들은 이제 “풀씨를 쪼아”댈 뿐이다. 하나 이들 모두 좋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역을 지나쳐버리는 기차의 “바퀴 소리”에, 이들이 “그리움으로 하나가” 되어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동시에’ ‘휙’ 돌리는 것을 보면. 문학평론가
2024-04-11
눈이 오면 땅은 몸에 박힌 발자국을 밀어낸다./ 발자국이 향하고 있는 끝에/ 네가 있다.(중략)나는/ 나무가 되지 못하고/ 고라니가 되지 못하고/ 별도 아니어서/ 네가 있어/ 제자리에서 발만 구르며 끝을 바라볼 뿐인데그건 병든 몸을 바라보는 신비주의자의 믿음이라고/ 저 빈 하늘/ 저 차가운 하늘/ 가득새 한 마리/ 제 그림자를 움켜쥐고 날아가자/ 어둠이 눈발처럼 날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착하게만 살 뿐./ 쓸 뿐./ 살아내 써낼 뿐.‘엠페리파테오’는 성경에 나오는 헬라어로, (하나님이) 순시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시인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비주의’의 의미에서 이 단어를 쓴 듯하다. 땅 위에 쌓이는 눈이 발자국을 밀어내고, 이 “발자국이 향하고 있는 끝”에 있는 너를 시인은 “발만 구르며” 바라본다. 나무나, 별, 고라니처럼 순수한 존재여야 네게 갈 수 있는 것. 다만 그는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살아내 써낼 뿐”이다. 문학평론가
2024-04-09
어린이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 세상이 무서워 어깨동무하고 우우 몰려다니는 노랑, 노랑은 징검다리, 바람 속에서 따뜻했다 아직 삐딱한 사춘기의 표정은 도착하지 않았다 숙성되어 채도 낮은 골드까지 가려면 시간의 긴 늪과 오솔길을 건너야 하고, 이제 봇짐 속에 놓치거나 잃어버린 골목을 점검하며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길을 떠나야 하리라 지금 이곳에서부터 저 쨍하게 밝은 날들이 뼈마디 욱신거리는 곳곳마다 스며들어 부드럽게 힘차게 늙어가기를갓 핀 개나리는 어깨동무 한 어린이처럼 보인다. 나이 든 시인도 개나리를 보며 어린이처럼 마음이 설렜던 것. 하나 이 개나리도 “시간의 긴 늪과 오솔길을 건너” “채도 낮은 골드”에 도달할 터, 이 ‘숙성’으로 가기 위해 “잃어버린 골목을 점검하며” “길을 떠나야” 할 테다. “쨍하게 밝은 날들이” 이 긴 여행을 위한 힘을 불어넣어주기를 시인은 기원한다. 그는 저 개나리에서 어린 날의 자신을 읽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4-04-08
돌 위에 돌을 얹고 그 위에 또 돌을 얹어궁극으로 치닫는 마음마음위에 마음을 얹고 그 위에 또 마음을 얹어허공으로 치솟는 몸(중략)조그만 돌멩이를 주워마음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았다.태어나기 전의 돌탑을 태어난 이후에도 기다렸다.한곳에 머물러 오래 기다렸다.돌멩이가 자랄 때까지돌탑이 될 때까지사찰에 가면 사람들이 차곡차곡 얹어놓은 돌을 볼 수 있다. 시인은 깊은 마음과 생각으로 이 돌 위에 또 하나의 돌을 얹는다. 시에 따르면, 이 돌들은 “궁극으로 치닫는 마음”인 것, 그 마음들은 허공 위로 한 층 한 층 얹히며 탑을 이루는 중이다. 비록 작은 돌탑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는 어떤 위대한 ‘연대’가 맺어진다. “돌멩이가 다 자”라서 “태어나기 전의 돌탑”이 되기를 기다리며 이루어지는 “시간의 연대”가. 문학평론가
2024-04-07
내게 가장 소중한 생각들은 세상에는 낯설어, 나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표현한다면 세상에 낯설게 비친다. 그러나 만일 나 그것들을 완전히 표현한다면, 그것들은 세상에 두루 통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거다.아! 나 그럴 수 있는가? 그것들은 내게도 낯설어 보인다 나 자신에게도. 나 분명히 말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이라고….개념들, 그리고 말들, 그리고 말들, 그리고 개념들을 참조하는 일련의 (괴상한) 것들.20세기 프랑스 시인 퐁주의 시. 생각을 언어로 어떻게 정확히 표현할 수 있을까. 시인은 이 문제로 골치를 썩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이 개념과 일치하리라 별 의심 없이 전제한다. 하지만 이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 그에게 “가장 소중한 생각들”이란 “세상에는 낯설게 비”칠 터, 이 생각을 어떻게 완전히 표현할 것인가가 그의 과제다. 그 표현은 결국 괴상한 모습을 하게 될 테지만. 문학평론가
2024-04-04
사랑만 한 수고로움이 어디 있으랴평생을 그리워만 하다지쳐 끝날지도 모르는 일마음속 하늘치솟는 처마 끝눈썹 같은 낮달 하나 걸어 두고하냥 그대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미련하다수고롭구나푸른 가지 둥그렇게 감아 올리며불타는 저 향나무우리가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 있을 때 아닐까. 사무치는 그리움이 사랑을 확인케 하는 것, 그래서 “사랑만 한 수고로움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인의 말이 정곡을 찌르는 느낌이다. 그리움은 저 “눈썹 같은 낮달”을 “마음속 하늘”에 걸어두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니. 이 ‘사랑-그리움’을 몸으로 드러내는 것이 향나무다. 향나무가 저렇게 “푸른 가지 둥그렇게 감아 올리며/불타는” 것을 보면. 문학평론가
2024-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