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갈재 넘어고향 산천 찾아갈 땐지순한 어린 양 시늉을 하고장성 갈재 넘어고향 산천을 되돌아올 때는풀죽은 속죄양의 표정이 된다. (부분)시인에게 고향은 순수한 곳이다. 고향은 ‘지순한 어린 양’으로 살았던 곳이어서, 도시 생활에서 마음이 더럽혀진 그가 마음을 씻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고향에서 다시 살지는 못하기에 지순한 어린 양 ‘시늉’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고향에서 살지 않는 한 순수한 삶을 살 수 없기에, 고향 밖을 나가면 다시 죄를 지으며 살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고향 산으로 되돌아올 때는” “속죄양의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문학평론가
2023-08-09
새의 부리는나무뿌리에서 생겨난다겨우내 말을 아껴날개를 품는다구름의 흙이 일순 온순해지면잔뿌리 같은 새들이일제히싹을 물고가지 끝으로 날아간다물오른 하늘에서새 떼가 돋아난다시인은 ‘부리’에서 ‘뿌리’를 연상한다. (나무)의 뿌리에서 (새의) 부리가 생겨난 것이라고. 그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하늘의 흙을 이룬 구름으로부터 솟아난 나무이다. 그래서 “잔뿌리 같은 새”의 비상이란 그 나무의 “가지 끝으로 날아간” 것, 어쩌면 새의 비상 자체가 한 그루 하늘의 나무를 형성한 것이라 하겠다. 새가 물고 있는 ‘싹’- ‘새싹’-은 ‘겨우내’ 아껴둔 말이니, 저 하늘 위 나무는 한 편의 시 아니겠는가.문학평론가
2023-08-08
쌓는 것은 무너뜨리는 것이다. 빌딩을심는 대가로 초록의 피를 지불하고불행은 점점 공고해진다 이 편한 세상이편하다는 세상은 없다편의를 위해 도처에 난립하는규율들이 질서를 세운다. 그것은인간 스스로 인간적이기를 거부하는 일기원을 알 수 없는 비명을 살아내는아이들 손에서 매캐하고 끈적한기름이 만져진다 철근과 시멘트뒤섞인 퀴퀴한 냄새도 간혹 난다 (부분)초록의 숲 대신에 하늘 높이 쌓여 가는 저 회색의 빌딩 숲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행복인가? 하지만 도시가 번창할수록 “불행은 점점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 문명이 발전할수록 자연적인 삶은 사라지고 ‘규율들’만 난립하며 질서는 더욱 공고해진다. 하여 “인간 스스로 인간적이기를 거부하”기에 다다른 것, 아이들까지도 도시 문명이 초래한 매캐하고 끈적한 “비명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현 상황이다. 문학평론가
2023-08-07
맞는 것은 곧 막는 것 어쩌면 먹는 것밤새 비를 마신 입간판들 자세처럼삶이란더 먹고살자고치욕마저삼키는 것지나치는 발길쯤은 일쑤 받고 일쑤 차듯치는 비야 뭐라든 졸다 깨다 받아내다날 새면어서오세요젖은 몸을되세우듯살아가면서 무엇인가에 맞을 때가 있다. 가령, ‘치욕’ 같은 것. 자존심 없는 사람 없으나, “먹고잘자”면 그 치욕을 ‘삼키’며 견뎌야 한다. 그 견딤은 자칫 닥칠 수 있는 더 큰 고난을 “막는 것”이기에. 그래서 고난을 맞고 막으며 산다는 것은, 삶의 힘을 제공하는 ‘먹는 것’이기도 하다. 고난을 힘으로 전환하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시인은 비 맞고 발길질 받으면서도 “젖은 몸을/되세우”는 ‘입간판’에서 발견한다. 문학평론가
2023-08-06
스스로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 어린 여자아이 있었다.그 후로 아무리 어둠을 마셔도 더이상 나이를 먹지 않았다.동굴 속의 소녀는 독한 어둠에 그녀의 꿈을 섞어 마셨다.어둠에 버무려진 꿈만 먹어도 다시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소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어둠을 말아먹으며 행복했다.행복하다고 믿었다 너무 행복해서 갈수록 더 어두워졌다.스스로 천길 동굴이 되고 어둠이 되어 홀로 춤을 추었다.어두운 춤들은 산산이 흩어져 아름다운 별꽃들을 낳았다.그녀가 삼킨 어두움 속에서 그녀는 별들의 어머니가 되었다.여성이 창조주인 일종의 창세 신화다. “스스로 둥굴 속으로 들어간 어린 여자아이”가 “아름다운 별꽃들”이 피어난 밤하늘의 세계를 낳는다, 어떻게 그녀는 그러한 세계를 낳았을까? “독한 어둠에 그녀의 꿈을 섞어 마”시면서, 동굴의 어둠을 행복으로 여기며 견디었기에. 그 행복은 그녀를 더 어둡게 만들어서, 결국 그녀 자신이 어둠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그녀가 춘 춤이 어둠을 밝히는 ‘별꽃’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8-03
(전략)잃어버린 장소로 꿈이 흘러가고테이블 위에서 잠시 머물다 빛나네빛이 눈부신 것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야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의 모서리마다다양한 구름의 입술 모양이 휘파람을 분다어떤 나무는 온몸으로 흔들리고어떤 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부러뜨리지아득한 자리마다 삶이 간절해진다바람이 불 때마다 눈물을 쏟는여기가 우리들의 주소지빛의 발원지가 꿈이라면, 빛은 ‘잃어버린 장소’이자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부터 온다. 꿈의 흐름이 향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에. 이 빛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에 길을 비추어준다. 휘파람을 불면서. 그 빛은 “아득한 자리”를 간절하게 기억하게 이끌 것, 하여 우리의 삶에 “다양한 모양의 구름”을 형성해줄 테다. “온몸으로 흔들리”거나 “스스로 가지를 부러뜨리”는 삶들은, 그렇게 자신의 ‘주소지’를 얻는다. 문학평론가
2023-08-02
항상 죽음만을 생각한다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차라리 성화의 인물이라도 된다면내 안의 화염이 꺼져 버릴 텐데몽환의 석양빛에 내 눈은핏물로 젖어드니어디로 가야 하나어디나 네게로 향하는 곳에서너는 내 비밀의 고향이니이보다 더한 그윽함은 없어라한없이 위로 피어나고 싶을 뿐네 심장, 하늘의 푸름을 향해오직 부드러운 길을 펼치리라고동치는 너의 집 언저리에사랑을 삶의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죽음과 같으리라. 하지만 그는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다. 살아 있는 한 “내 안의 화염”은 꺼지지 않기에. 그의 삶은 “어디나 네게로 향”한다, 마치 회귀본능처럼. 하여 그의 고향은 사랑하는 ‘네 심장’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하늘의 푸름’ 속에 있다. 그렇기에 푸름을 밀어내고 붉은색을 퍼뜨리는 ‘석양빛’ 하늘을 보며 “내 눈은/핏물로 젖어드”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8-01
가을이 깊어가는 아침사람들은 두터운 옷으로 갈아입었고이웃집 감나무에 매달린 감들은쌀쌀한 바람에도더 둥글고 환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었다누군가의 손길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어 주기를간절히 바라는 얼굴 속으로눈길을 잠시 집어넣으며옷깃을 여미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오래전에 떠나온 고향 마을우물도 부쩍 깊어지고 있으리라깊어가는 가을의 아침, “쌀쌀한 바람에도” ‘이웃집 감나무’의 감들이 “더 둥글고 환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고 있다. 시인은 그 표정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느끼고, 이 간절함이 드러내는 삶의 숙연함에 “옷깃을 여미는 마음”을 생각한다. 이때 그가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의 우물을 떠올린 것은 고향 손길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7-31
바위 위의 염소들은 무사하신가?괭이갈매기들 어떻게 지내시나?밀려오는 해무(海霧) 끌어안고 우두커니거기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섬외롭고 쓸쓸하고 덧없는 섬그렇게 한세상을 살았던 사람섬의 삶은 비극적이다. 섬은 사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 그 사랑은 해무처럼 뿌옇다. 붙잡을 수 없다. 섬은 ‘해무-사랑’을 끌어안고, 자신을 찾아와주었던 ‘바위 위 염소’들이나 ‘괭이갈매기들’ 등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이들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사람도 저 섬의 삶을 ‘한세상’ 살다 가는 것 아닐지. “외롭고 쓸쓸하고 덧없는” 삶을. 사랑과 사랑의 실현이 불가능한 현실 사이의 낙차가 비극을 낳는다…. 문학평론가
2023-07-30
오월은 혼담이 무르익는 달오월은 첫아이로 배가 부른 달꽃은 내외법이 없이마주 웃다 돌아서고새들은 연서 대신 노래를 부르며구름은 또 청자항아리를 끼고 누웠다오월은지난달의 잔치로 살이 찌는데나의 조국은야윈 망아지의 목장‘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오월’의 자연은 4월이 벌인 “잔치로 살이” 찐다. 오월은 혼담이 돌고 새 생명이 뱃속에서 자라는 달이다. 그만큼 오월은 “내외법이 없”이 남녀가 “마주 웃”는 달, 몰래 ‘연서’보내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는 새처럼 자유롭게 사랑 “노래를 부르며” 구애하는, 평화로운 달이다. 이와 달리 인간들이 사는 ‘조국’은, 가난한 이들이 울타리 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야윈 망아지의 목장”이다. 문학평론가
2023-07-27
그때 내 뒤에서 솜뭉치가 날아왔다솜뭉치는 앞에서 여러 솜들로 흩어졌다가여워, 모여 있는 사람들은마지막으로 낸 목소리를 녹음했다거리를 딛는 발은 차가웠다언제나 너를 짓누르는 것은 배낭이나 중력이 아니었다손을 맞잡으면 우리는점등될 세계를 기다렸다너는 너의 꿈에서 넘어진 나를 일으켰다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손을 들었다계속 흔들었다사고가 난 것일까? “뒤에서 솜뭉치가 날아”오고, “모여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낸 목소리를 녹음했다”고 하니. 화자는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하튼, 비록 “너의 꿈에서”이지만,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며 ‘너는’ “나를 일으켰”고, 둘은 함께 손을 “계속 흔들”며 히치하이킹을 한다. 그곳은 어디인가? ‘점등될 세계’다. 더 이상 “너를 짓누르는 것”이 없는, 따듯한 발로 거리를 딛을 수 있는 세계. 문학평론가
2023-07-26
빛나는 찬란한열렬한 비범한 과감한 젊음엉겅퀴 한 송이에서 장미 꽃잎을 보고물방울에서 다이아몬드를 본다나를 방랑하는 유대인으로 만들어버린 것내 영혼을 빠른 물살로 만들고강풍을 폭풍으로 만들어버린 것- 나에게 붉은 승리의 젊음을 가져와!내 붉은 피에 흩어져 달리고 있다내 시 속에 높이 오르고 있는 불꽃이,내 입술에서 꽃 피고 있는 양귀비가!미친 듯이, 어지럽게 나를 사랑해줘내 사랑아! 우리 마음이이토록 작으니… 그리고 삶은 도망가는 물 같으니…시인은 연인에게 하듯 열렬하게 젊음에 간청한다. 예전처럼 자신을 “미친 듯이, 어지럽게” 사랑해달라고. 젊음은 나이에 있지 않다. 평범한 사물에서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아름다움을 보는 마력에 있다. “빠른 물살”과 같이 “붉은 피에 흩어져 달리고 있다”가 “시 속에 높이 오르고 있는 불꽃”처럼 붉게 꽃 피어났던 젊음. 하여 삶에 ‘붉은 승리’를 가져왔던 젊음. 하지만 “삶은 도망가는 물”처럼 흘러만 가고…. 문학평론가
2023-07-25
가을날 은행나무는 샛노랗게멸망하고 있다대개 사람처럼 나무도나이 들면 속이 썩어지는데은행나무는 겉부터 노랗게 문드러지고 있다뭐가 그리 대수냐살다 보면 지금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은행나무는 아는 듯하다그래서 11월의 가을날땅바닥에 엎드려 환히 불 밝히고법문을 듣고 있나 보다동네 어귀 은행나무길 서성이다 보면어둑한 마음 깨어난다“나이 들면” 자신의 삶이 “멸망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저 은행잎 떨어뜨리고 있는 은행나무처럼 “노랗게 문드러지고 있다”는 느낌. 하나 은행나무는 자신의 멸망에 “뭐가 대수냐”는 모습이다. 아마 그 모습은 삶과 죽음은 영원히 회귀한다는 진리를 은행나무가 잘 알고 있기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에게 저 나무는 “땅바닥에 엎드려 환히 불 밝”히는 존재자, 깨달음을 주는 존재자다. 문학평론가
2023-07-24
나는 묻는다잠자리 겹눈에 비친 노랑말의 시체를옅은 초록의 엽맥 사이로 지나가는 햇살과 바람을2020년 9월 17일 2시를 향해 밀려오는 눈부신 회한을 덜 여문 옥수수를저기 걸어오는 비밀스러운 남녀의 속눈썹을 진자주 셔츠와 원피스를범나비 날개 위에서 도는 회오리를 막 태어난 구름의 배꼽을주영중 시인이 후대에 전하고자 ‘타임캡슐’에 넣어 묻는 것들은 특이하다.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거나 아주 작아 잘 감지되지 않는 것들이다. “잠자리 겹눈에 비친 노랑말의 시쳬”나 “엽맥 사이로 지나가는 햇살과 바람” 등…. 이것들은 시적인 촉수로만 포착되는 것들 아닌가. 하여 시심을 촉발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니, 그가 타임캡슐에 넣는 것은 시의 근원이라 하겠다. 후대인들도 시를 쓸 수 있도록. 문학평론가
2023-07-23
묵은 펄펄 끓는 것으로 살고차갑게 식으면서 죽는다어디에 부어지든 그곳이 관이다관의 형상으로 굳으므로그에게 생전의 모습이란 없다단 하나의 뼈도 없으면서야들야들 골격을 유지한다(중략)풋 여문 알들, 우리들의 공복은진하게 무르익을 때를 기다렸다구부러지고 늙은 뼈를 화장한 뒤묵 한 사발 시켜놓고컬컬한 울음의 뒤끝을 꿀꺽꿀꺽 삼킨다죽은 목숨이든 산 목숨이든젓가락 사이에서 묵은 생물이다(후략)위의 시에 따르면, 묵은 “관의 형상”, 죽음 자체의 상징적인 형상이다. 그러나 묵은 뼈가 없는 죽음이어서 “야들야들 골격을 유지”한다. 마치 ‘생물’ 같이 흔들거리고 물컹한,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죽음. 우리가 누군가를 화장한 뒤 묵을 먹는 행위는 죽음을 먹는 것과 같다. 그 행위는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하여 화장터의 우리는 묵 앞에서 “컬컬한 울음의 뒤끝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7-20
(전략)그러고 보면 걸음을 걷는 동물들, 매머드라던가 공룡이라 하는 것들은 너무 큰 보폭으로 멸종되었다. 성큼성큼 뛰어서 겨우 기어가는 개미를 앞지르고 꿈틀거리는 것들은 뛰어넘으면서 모두 사라졌다.(중략)멸종의 사정거리전쟁의 무리는 집단 보폭으로 한걸음을 걷고큰 걸음으로 작은 걸음을 몰아세운다풀을 먹기 위해 물을 건너는 초식의 두려움과침략을 향해 국경을 넘는 무리들가만히 앉아 있으면아득히 먼 미래가 언뜻언뜻 보인다빛은 가장 빠른 속도지만별빛들은 밤에만 움직이는 이유를언뜻 알 것도 같다공룡이나 매머드 등 ‘큰 걸음’을 걷는 동물들은 사라졌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는 살아남았지만. 지금은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위세 당당한 ‘큰 걸음’의 무리들이 있다. 시에 따르면 ‘작은 걸음’의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의 무리’가 그런 무리들이다. 시인은 ‘큰 걸음’의 동물들이 멸종하듯이, 이 무리들도 ‘먼 미래’엔 사라지리라고 예상한다. “밤에만 움직이는” ‘별빛들’은 이런 미래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3-07-19
나는 이 사랑이 시작되기를 원합니다.나는 시원한 물 한 잔을 원합니다.나는 낯선 마음의 주름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을 원합니다.친구가 불러준 노래처럼, 우리의 머리 위로 푸른 하늘이 있기를그 하늘 아래 배고픔도 욕심도 없기를 원합니다.나는 봄에 죽기를 원합니다.나는 첫눈 오는 날 죽기를 원합니다.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나는 음악이 시작되기를 원합니다.나는 글이 써지기를 원합니다.(골목에서 튀어나온)죽음이 나를 원하기 전에. (부분)무엇인가 욕망하고 있다는 데에서 나의 살아있음은 증명된다. 시인에 따르면, 푸른 하늘과 물 한 잔과 음악을 원할 때 나는 살아있다. 나아가 삶은 사랑이 언제나 시작되는 삶을 살기를, 그래서 “낯선 마음의 주름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 “글이 써지기를” 원하며, 죽음마저도 자신이 원하는 때 다가오기를 원한다. 죽음은? 그것은 “죽음이 나를 원”할 때, 죽음의 욕망에 사로잡힐 때 돌연 튀어나오는 무엇이다. 문학평론가
2023-07-18
생각해 보면 영혼은 춤추기를 사랑하였다.생각해 보면 영혼은 죽는 것을 사랑하였다.나의 친구들은세상 모든 단어들을목련잎에 적어 날리기 시작했다.춤 : 그것은 몸부림으로, 발작과 유사하다.빛의 속도 : 우리는 이것을 철저한 오해 속에서 다루었다.영원 : 두꺼운 폭설을 덮고 잠드는 것.영혼 : 그냥 죽고 싶어.그러나 내가 적은 목련잎이누군가에게 읽히는 일은 없었다 : 나약한 자든 영특한 자든 빈곤한 자든 폭설 앞에서는 평등합니다.위의 시에 따르면, 영혼과 영원은 대칭적인 개념이다. 영혼은 춤과 죽음을 사랑한다. 몸부림(춤)치다 죽고 싶어 하는 것이 영혼이기에. 그 대칭되는 지점에 죽음에 반대되는 개념인 ‘영원’이 있다. 하지만 영원은 죽음을 전제한다. “폭설을 덮고 잠드는 것”이 영원이기에. 그런데 ‘나’는 “읽히는 일은 없었”던 구절을 ‘목련잎’에 추가해 적었다고 한다. 영원을 가져올 “폭설 앞에서는” 그 누구나 평등하다는 구절을. 문학평론가
2023-07-17
참새가 총 든 허수아비 머리에 앉아똥 싸고 날아간다그래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오히려 벌써 그리운 듯새가 날아간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흰옷 입은 ‘사람의 아들’ 앞에서마을 원로인 벼들이 머리 숙인다폭력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허수아비가 든 총이 진짜 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가. “참새가 총 든 허수아비 머리에 앉아/똥 싸고 날아”가버린다. 그런데 정작 사람이 새를 위협하기 위해 만든 허수아비는 날아간 새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아닌가. 허수아비는 사실 ‘평화주의자’였고, 그래서 총도 쏘지 않았던 것. “마을 원로인 벼들”만이 이를 알아채고 허수아비 앞에 머리 숙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3-07-16
내 심장이 항상 열려 있기를 작은새 삶의 비밀은 새들에게그들이 노래하는 것은 무엇이든 앎보다 낫고그들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이들은 늙었다내 마음이 어슬렁대기를 굶주렸으나두려움 없이 목마르지만 유연하게또한 일요일이라고 해도 내가 틀렸더라도언제든 그들이 옳다면 그들은 어리지 않다또 내 자신이 그 어떤 것도 쓸모없기를또 너 자신을 진실하게 그보다 더 사랑하기를지금까지 그런 바보는 없었다 머리 위모든 하늘을 미소 하나로 끌어당기지 못하는 사람은심장이 열린 삶이란 무엇? 위의 시에 따르면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삶이다. 앎에 집착해서 그 노래를 듣지 못하는 삶은 늙어버린 삶이다. 젊음은 나이에 달려 있지 않다. 심장이 열려 있어야 젊다. 젊음은 어슬렁거리는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유연하게 세상을 대하는 삶에서 온다. 자신의 삶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삶에서. 머리 위를 올려다보고 미소 지으라. 하여 “모든 하늘을” 끌어당겨라. 젊게 살려면. 문학평론가
202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