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한대균 옮김)
아이는 노래하고 있었다. 침상의 엄마는, 쇠잔하여,
어둠 속으로 아름다운 이마를 숙이고, 임종을 맞고 있었다.
(중략)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창가에서,
그의 웃음과 그의 놀이가 쾌활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엄마는 하루 종일 노래하는 이 가련하고
온화한 존재 곁에서, 밤새 기침하고 있었다.
엄마는 수도원 포석 아래로 가 잠들었다.
어린아이는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고통은 하나의 열매이다. 신은 열매를 키우지 않는다.
매달고 있기에 너무 약한 가지에는.
침상엔 쇠잔하여 죽어가는 ‘아이의 엄마’가 있다. 그 옆엔 웃으며 노래 부르며 놀고 있는 ‘다섯 살’ 아이가 있다. 비극적 대조를 선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떻게 죽어가는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가 땅에 묻힌 이후 그 앞에서도 쾌활하게 노래 부를 수 있는가? 이 아이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은 아이처럼 “매달고 있기에 너무 약한 가지에는” 고통이라는 “열매를 키우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