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는 꿈꾸는 사람이었고사는 게 별것 있나며거리에서 죽겠다는 사람이었다사십여 일 동안 단식을 하던 선배는 실신해 병원에 이송됐다죽더라도 굶겠다는선배에게물 같은 미음을 먹게 한 것은아직 오지 않은세상죽음 앞에서절규하듯 시를 토해내는저 시인은 무엇을 더 말해야 하나살아남기로 다짐한 사람은얼마나작은가 (부분)“거리에서 죽겠다는” ‘선배’ 시인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에게 거리는 불의의 권력이 장악한 이 세상에 저항하는 싸움터다. 거리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실신하면서까지 “절규하듯 시를 토해내는” 시인. 그가 미음을 먹으며 삶을 지탱하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의 시의 화자처럼 “살아남기로 다짐한” 우리는, 죽음을 무릅쓴 시인 앞에서 얼마나 작은 삶을 사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3-05-11
몸속에 눈이 내린다몸이 항복할 때까지 내리고또 내리다가기어이 통증으로 쌓인다그러다 불현듯그리움이 눈을 뜬다하얗고 시큰한 통증 속에서나는 이 통증보다그리움 속에 핀 네 웃음이더 아프다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은 우리를 추억으로 이끈다. 하나 추억이 고통인 이들도 있다. 지금은 잃어버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에게 마음속에 내리는 눈은, 쌓이는 통증이다. 이 쌓이는 눈 속에서 “불현듯/그리움이 눈을” 뜨면, 통증은 배가된다. “그리움 속에”서, “네 웃음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눈을 뜨기 시작한 아름다운 시절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이끈다. 문학평론가
2023-05-10
알싸한 동백꽃 향수를 뿌린 임원그 곁에 놓인 야구 배트회의 중 그는 방망이를 휘둘렀다야구공을 던지고 받아내던김과장이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고퍽Fuck! 실적을 맞추지 못한이민 이세대 이차장은 갓댐잇, 미국으로 돌아갔다매 맞고 매질하고 돌아온 봄밤식은땀에 베개와 침대가흠뻑 젖어 잠을 깨면아직 살아있음을 깨닫는알싸한 동백꽃 산중길 잃어 샛노래진 나를당신은 착한 사람이라 불렀다“동백꽃 향수를 뿌린” 임원이 직원들에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저 반인권적 상황은 지금도 모습만 달리한 채 지속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직원은 우울증 약을 먹어야 했고 어떤 직원은 그만두어야 했던 상황. 직장은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인 곳, 시인은 그런 직장을 다니며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설쳐야 했다. 그런데 세상이 얘기하는 ‘착한 사람’이란. “길 잃어 샛노래진” 얼굴로 살아야 하는 직장인을 지칭한다. 문학평론가
2023-05-09
거간꾼들 찾아와말을 살피다 돌아갔네낯선 손님 엉덩이 쓸어 줄 적마다긴 말총 후려치며, 버둥대며팔려 가는 당나귀 뒷모습이 어른거려삽짝 들어서기 무섭게 마구간부터 살폈고말 꼭 껴안아 줄 때는내 목젖이 먼저 내려앉았네거간꾼 말대로라면 더는 부려 먹기도 마땅찮아고기로나 처분될지도 모른다는 말에사라진 말의 행로가 불안하기는발 여린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네말과 소, 돼지 등은 인간을 위해 사육되어 그 삶 자체가 착취당해왔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착취를 당연시하고 그 동물들의 고통을 모른 척했다. 시인은 유년 시절, 사랑했던 어떤 당나귀를 기억한다. “더는 부려 먹기도 마땅찮아/고기로나 처분될지도” 모르는 당나귀. 철저히 삶이 착취되는 당나귀를. 그는 그 당나귀를 불안한 ‘행로’를 걷고 있는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비정한 인간 세상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2023-05-08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제가끔 서 있더군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숲이었어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낯선 그대와 만날 때그대와 나는 왜숲이 아닌가짧은 시는 주로 번득이는 시적 발견을 담아낸다. 위의 시는 숲속의 나무가 “제가끔 서 있”지만, 그 나무들이 함께 숲을 이루고 있다는 발견을 보여준다. 반면, “숱한 사람들”은 도시 거리를 걸으며 서로 만나지만,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비판적 발견 역시 보여준다. 숲의 젖은 흙 위에 서 있는 나무들은 조화롭게 함께 하는 삶을 산다면, 도시인들은 “메마른 땅” 위에서 서로를 “외롭게 지나치며” 살고 있다는 것. 문학평론가
2023-05-07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몸 안에 공장 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 끈들.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자궁 속에 고무 인형 키워온 듯무뇌아를 낳고 산모는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정수리 털들을 하루 종일 뽑아댄다.위의 시는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그로테스크하고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공장 지대가 가져온 환경오염으로, 그 지대에 사는 산모가 무뇌아를 낳는다. 산모는 자신의 “몸 안에 공장 지대가 들어선 느낌”을 받고 “젖을 짜면” “허연 폐수”가 흘러내릴 것이라고 상상한다. 자신의 머릿속에도 “뇌가 있는지 의심”한다. 정신이 나간 것, 그래서 산모는 저 아이를 공장의 ‘굴뚝들’과 ‘간통’해서 낳은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문학평론가
2023-05-03
어떻게 여기 와 피어 있느냐산을 지나 들을 지나이 후미진 골짜기에바람도 흔들기엔 너무 작아햇볕도 내리쬐기엔 너무 연약해그냥 지나가는이 후미진 골짜기에지친 걸음걸음 멈추어 서서너는 떠돌지 말라고내 눈에 놀란 듯 피어난 꽃아작은 생명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다. 시인은 이를 “후미진 골짜기에” 피어 있는 ‘노루귀꽃’에서 경험한다. ‘연약해’ 보이는 이 꽃이 이런 험한 곳에 피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경이는 생명의 거대한 힘이 작은 자연물에서 더욱 드러난다는 사실의 깨달음에서 연원한다. 하여 시인에게 ‘노루귀꽃’은, “지친 걸음걸음 멈추어 서서” “떠들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5-02
어제 아침에는 그 길 건너오던오소리 한 마리 승용차에 치여 죽었다어젯밤에는 그 길 건너가던토종 다람쥐 한 마리 화물 트럭에 받혀 죽었다오늘 아침에는 그 길 위에서술 취한 버스가 젊은 사람을 죽였다사람이 만든 길이 착한 생명을 죽인다 로드 킬사람이 만든 길이 사람을 죽인다 로드 킬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의 길이직선으로 달려가고 있다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고속도로. 사람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이 도로에서는 숱한 죽음이 발생한다. ‘승용차’, ‘화물 트럭’, ‘버스’에 치어 죽은 ‘오소리’, ‘다람쥐’, ‘젊은 사람’을 보라. 선량한 저 생명들-동물을 포함한 사람-을 도로 위를 빠르게 달리는 차량이 죽였다. 하여, 시인은 저 도로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의 길”이라고 표현한다. 이 죽음의 도로를 만든 문명을 ‘직선’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문학평론가
2023-05-01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빠져나와 있다탯줄 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비린 공기가플러그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곳곳에서 사람들이몸 밖에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간다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둥둥 떠다닌다현대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이 이루어진 시대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부모 잃은 아이처럼 불안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라. 기계가 부착되어야 살 수 있는 인간 아닌가. 시에 따르면, 플러그는 탯줄과 같다. 사람들은 전원을 얻기 위해 거리에서 “플러그를 덜렁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시인은 그 전원이 “세상과의 불화”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이제 인간은 사람들보다는 기계와 결합하는 데서 삶의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리라. 문학평론가
2023-04-30
길을 잃은 것도 아닌데모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아는 골목으로 나온다골목과 골목 사이알다가도 모르겠는 시간이 흐르고짐보따리 하나를 든 여자가 잠옷 차림으로서울역 앞에 서 있다겨울 바람이한밤중 흰 새들을 마구 떨어뜨린다새들을 밟고 손을 호호 불며막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뛰어간다위의 시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착란의 시공간을 펼쳐낸다. “서울역 앞에”서 “짐보따리 하나를 든” ‘잠옷 차림’ 여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기차를 타려고 집을 나온 몽유병자 같다.(그 여자는 시인 자신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겨울 바람’을 맞은 새들이 “마구 떨어”져 지상에 깔리고, 이 “새들을 밟”으며 “막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는 모습은 이 세상의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기만 하다. 문학평론가
2023-04-27
시인은 죽어서 나비가 된다 하니다음 세상에선번잡한 세상 따윈 기웃거리지 않고고요한 숲속 문지기가 되어야지아침이면 곤히 잠든 나무들 흔들어 깨우고낮엔 새들 불러내 함께 노래해야지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날갯짓하고밤이면 꽃잎 속에서 잠들어야지별을 세다가 말다가아름다운 꿈나라로 달려가야지시인은 냉혹하고 잔인한 세상-“번잡한 세상”-과 싸우면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존재다. ‘새들’ 같은 존재자들과 벗하여 평화롭게 “함께 노래”하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날갯짓하”며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은 이 세상에서 실현되기 힘들다. 그래서 오봉옥 시인은 ‘다음 세상’에서라도 그러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시인은 죽어서 나비가 된다 하니” 그 다짐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문학평론가
2023-04-26
저물 무렵거리에서 언뜻 스친 너의 눈빛눈동자 너머 파르르 떨리던 그 빛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너의 눈빛이 나를 따라온다밤이 깊도록 떠나지 않는 얼굴무엇을 찾기 위해 어디를 헤매는 그 눈빛오, 요원의 불길같이 걷잡을 수 없는우리 생의 목마름이여시인은 거리를 걷다가 ‘너의 눈빛’과 “언뜻 스친”다. 그 ‘너’는 시인 자신 아닐까. 바삐 지내다가 어느새 잃어버린 ‘너-나’. ‘너-나’는 무엇인가를 갈망해서,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어디를 헤매” 다닌다. 하여 ‘너-나’가 발견한 사람이 ‘나’인 것, ‘너-나’의 눈빛은 이젠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따라”오고, ‘나’는 “불길 같이 걷잡을 수 없는” 그 눈빛에 뜨겁게 달아오르며 “생의 목마름”을 느끼기 시작한다. 문학평론가
2023-04-25
그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그녀가 무엇을 좋아했을까?그녀에게 쥐어드려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아, 나도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었다.마음조차도. 그녀에겐 마음이 있었는데,그녀가 빈손을 맥없이 뻗어죽음은 그녀의 손을 꼭 쥘 수 있었다.아무도 잡아주지 않은 텅 빈 손으로당신은 그 손을 꼬옥 쥐었다.안녕히, 안녕히, 안녕히,가세요. (부분)과연 시는 죽음을 쓸 수 있을까. 위의 시는 죽음에 대해 겸손하고 진정성 있게 말하고 있어서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시를 따라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인의 죽음 후에야 깨닫는다. 그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나도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무엇 하나 그에게 주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의 손은 텅 비어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꼬옥 쥐”는 손은 죽음의 손일 뿐. 문학평론가
2023-04-24
산수유 마을엔산수유가 피지 않아도사람들은 사철 노란 꽃을 가슴에 달고 산단다골짜기로 계절의 시새움이 흘러들어도하늘과 가장 가까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고어떤 이가 말했을 때누군가의 마음속에도 노랑에서 붉음으로꽃에서 열매로 가는‘산수유 마을’ 사람들은 꿈꾸는 이들이다. 산수유가 “나무가 꾸는 꿈”인 것처럼. 꿈은 삶을 하늘과 연결해준다. 꿈꾸는 이들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저 너머를 상상하기에. 그래서 이들은 하늘과 대화할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의 마음속에” 달고 있는 노란 꽃은 붉은 열매로 전화되기 시작하는데, 그 ‘누군가’는 시 쓰는 사람일 테다. 꿈을 익혀 먹을 수 있는 열매로 만드는 이가 시 쓰는 사람이기에. 문학평론가
2023-04-23
술병은 잔에다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속을 비워간다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길거리나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문밖에서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나가보니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빈 소주병이었다술병처럼 자식에게 자신을 따라주다가 “속을 비워”가는 존재가 있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가부장으로서 가족의 독재자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경우 자식을 위해 살다가 결국 쓰레기장에 ‘빈 병’처럼 굴러다니는 처지에 놓인다. 시인은 후자의 측면에 대해 말해준다. 자식들은 몰랐지만, 어느새 늙어버린 아버지는 ‘빈 소주병’이 되어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곤 한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3-04-20
언 살 수면을 찢어 늪은새들의 비상구(非常口)를 만들어 놓았다출렁이는 상처를 밟고 새들이 힘차게 작별한 뒤에도늪은 밑바닥까지 울던 새들의 발소리 기억하며겨우내 상처를 열어 두었다고향을 힘차게 떠난 우리는 언제어머니 상처에 돌아갈 수 있을까시인은 어머니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저 겨울의 언 우포늪에 뚫려 있는 ‘비상구’에서 깨닫는다. 그 ‘비상구’는 새들이 비상할 수 있도록 어머니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만든 상처다. 자식들은 이 어머니의 “출렁이는 상처를 밟고” 비로소 자립하여 고향을 떠나 하늘을 날 수 있다. 더 나아가 어머니는 추위를 무릅쓰고 “겨우내 상처를 열어”두기도 한다. 새들이 하늘을 날다 돌아와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도록. 문학평론가
2023-04-19
가슴에 구멍을 뚫으면 피리가 되지몇 개를 막으면 노래가 되지노래에 구멍을 뚫으면 춤이 되지자면서도 멈출 수 없는 춤떼 지어 다녀도 늘 혼자인 춤구멍이 다 막히는 날노래도 춤도 다 막히고,막이 내리지다음 공연은 아직 미정마음을 콕 찌르는 시다. 노래는 가슴에 뚫린 “구멍 몇 개를 막으면”서 피리처럼 발현되고, 그 “노래에 구멍을 뚫으면 춤이” 된다. 뚫림은 고통스럽지만 막힌 가슴에 예술의 숨통을 튼다. 하여, 뚫림과 막힘의 변주를 통해 다채롭게 이루어지는 노래와 춤-“구멍이 다 막”힌다면 공연될 수 없는-은 고통과 자유를 모두 품고 있다. 그리고 잠이 들어도 가슴속 노래는 사라지지 않기에, 춤은 “자면서도 멈출 수 없”다. 문학평론가
2023-04-18
지난여름 네가 그랬지바다는 썰물 때보다 밀물 때가 더 쓸쓸하다고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게 정말 쓸쓸하다고나는 그 뜻도 모르고 네 손을 놓아주었지그리고 다시 여름이 왔다해는 뜨겁고 바다는 즐거운데나는 빈 배로 바다에 매어 있고기다리는 바다에는 갈매기만 남았다‘빈 배’가 되어 “바다에 매어 있”기 전에는 모른다. “오지 않는 사람 기다리는” 일의 쓸쓸함을. 그래서 시인은 떠나는 너를 붙잡지 않고 “손을 놓아주었”던 것이다. 이별이란 무엇인지는, 자신이 홀로 된 후 새삼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알게 된다. 이에 반해 세계는 쓸쓸한 자신보다 더욱 ‘뜨겁고’ ‘즐거운’ 모습처럼 보인다는 것도. 다만 ‘나’의 주변을 맴도는 것은 시인처럼 외로운 갈매기뿐이다. 문학평론가
2023-04-17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어리둥절하고 뭉글하여이제 더는 아무것도될 수 없다고 되뇌일 때음악은 나를 꿈꾸게 한다춤추는 빗방울빈 둥지에서 터져 나오는 지저귐파란 웃음의 도미노음악은 나를 미끈덩거리게 한다북극해를 유영하는 범고래매듭 없는 뱀장어를 타고후생에까지 떠내려가게 한다필자처럼 어느새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라는 위의 시의 시행에 공감할 터, 이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없다는 생각에 절망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음악이 있다고 말해준다. “춤추는 빗방울” 같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우리는 ‘범고래’처럼 저 “북극해를 유영하는”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시에 따르면 음악은 지금의 생 너머에 있는 ‘후생’에까지 우리를 데려다준다. 문학평론가
2023-04-16
들고양이가 어린 새끼의 몸을구석구석 핥고 있다막 자라나기 시작한 발톱과 순한 눈빛봄날의 새싹 같은 두 귀가혀 닿을 때마다날카롭고 깊고 민감해진다홀로 설 수 있게물러서지 않고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여린 몸을 무기로 벼리는 중이다불꽃보다 뜨거운연분홍의 작고 부드러운 혀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를 보면, 위의 시가 말해주듯 정말 앙증맞고 귀엽다. 그 “순한 눈빛”과 “새싹 같은 두 귀”를 보라. 하나 시인은 이러한 인상의 표명에 그치지 않는다. 저 어린 새끼는 들고양이의 자식, “홀로 설 수” 없으면 죽을 운명이다. 그래서 엄마 고양이가 새끼를 핥는 행위는 “여린 몸을 무기로 벼리는” 일, “날카롭고 깊고 민감해”지는 양태를 보인다. 하여 들고양이의 그 혀는 “불꽃보다 뜨”겁다. 문학평론가
202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