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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던 날

등록일 2024-05-15 18:52 게재일 2024-05-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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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타이 (김창덕 옮김)

누가 나의 눈을 흐리게 하려는가

누가 나의 귀를 가리려 하는가

나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아시아의 끄트머리에서 매일 저질러지고 있는

부정을, 불의를, 위만을, 압살을….

그리고 그 폭풍우 속에서 비참하게도

짓밟혀 가는 모든 애정의 생활 모습들을

그걸 외면하듯 버리고 떠나는

도망자라 생각지 마라

지금 이 반도의 남단에 서서

부딪쳐 솟구치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지그시 참아 내고 있다

끓어오르는 나의 격정을

등 뒤로 느껴지는 천만의 피로 물든 눈동자의 압도에….

친구여! 눈으로 본 것을 어찌 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에무라 타이는 일제 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에서 기자로 일했던 아나키스트 시인.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당시 일본의 강압적 조선 통치에 대해 비판적인 시를 썼다고. 위의 시도 “매일 저질러지고 있는” 불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비참하게도/짓밟혀 가는” 조선 민중의 삶을 조명한다. 그는 조선인의 “피로 물든 눈동자”를 “등 뒤로 느”끼며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격정적으로 다짐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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