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곳아내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와 시안에도 들렀다내 생의 마지막 투병하는데절두산 부활의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신혼 초 살림 장만하듯 아내와 반겼다절두산은 성지순례로 가족과 들렸던 곳낮은 나에게도 지상의 집을 사랑으로 주셨다머리가 없는목 잘린 순교의 산오, 나도 드디어 못 하나를 얻었다무두정無頭釘부활의 집 지하 3층에서망자와 함께 이제사 천상의 집 지으리라‘부활의 집’은 죽음을 전제로 존재한다. ‘절두산 부활의 집’이란 그러므로 삶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집이다. 시인은 병인박해로 순교의 성지가 된 절두산-천주교 신자가 목이 잘린 곳이어서 ‘절두’라는 이름이 붙었다-의 부활의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결심을 한다. 그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얻어 이승에 남길 ‘못’은 목 잘린 순교자들처럼 머리가 없는 무두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2023-01-15
우리 집 처마 끝에 매달려집을 지키는 물고기바다를 품어본 적이 없고바다로 나아갈 생각도 없는가엾은 저 양철 물고기문지기 수행자로 살기 위해얼마나 허공을 쳐댔던 것일까가만히 다가가 보니비늘이 없다고개를 돌려보니아이의 어깨에 달라붙은그렁그렁한 비늘나 죽은 뒤에도관 속까지 따라와가슴에 곱다시 쌓일 것 같다집 처마 끝에 매달린 양철 물고기는 아내가 변신한 존재자다. 바다에 살면서 마음껏 헤엄치던 물고기-아내-는, 어느새 양철 물고기가 되어 집 앞에 매달려 허공을 쳐대면서 문을 지키는 가여운 “문지기 수행자”가 된 것이다. 눈물 같은 비늘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가 겪어야 했을 슬픔과 기쁨의 결정체다. 아이에게는 그 눈물이 달라붙어 있다. 그 눈물을 통해 아이가 자라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3-01-12
연둣빛 새싹이 하트로 날고행복이 우체통에 배달되기를조롱의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새들이 지저귀기를고대하던 시간들이 틈과 틈 사이로 밀려 나온다무릎을 꿇고머리는 땅에 닿게 팔은 최대한 내밀어오체투지하듯흔적을 따라가다 보면분절된 신체들이그 시간으로잠시 내밀어지다거품 속으로 녹아든다 (부분)화자는 시인이기에 흔적들을 외면할 수 없다. 흔적들이 시의 공간을 마련해주기에. 그래서 화자는 흔적에서 밀려나오는 삶의 시간들에 최대한의 존경을 담아 “오체투지하듯/흔적을 따라”간다. 마지막 연은 흔적에서 타인의 시간이 어떻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분절된 신체들로 현상하고는 “거품 속으로 녹아”들어버린다. 흔적은 시간의 “분절된 신체들”을 잠시 드러냈다가 곧 지워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1-11
물가에 혼자 앉아서이제 그만 고즈넉 저물어야지더러는 기우는 햇빛이 더욱 붉다고불끈, 말하고 싶을 때에도쉬, 표시나지 않게 기울어야지누군가의 등 뒤에서내가 이윽고 캄캄해지면아무렴,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가끔은 그리운 사람을 위해관솔 같은 상처를 태워꽃불 밝히자 스스로 캄캄해져서흐르는 물로 억센 연장을 씻고바람에 맡겨 젖은 이마를 말리고어디쯤일까 지금저녁강 돌아눕는 소리저물면 조용히 어두워지도록기울면 가만히 허물어지도록아무렴, 그냥 두자 무심하게조금씩 더 낮아지면서상처를 태워 마지막 불꽃들을 발산하며 조금씩 캄캄해지는, 노년에 다다른 자의 사랑. 이러한 사랑이 더 붉고 뜨거울 수 있다. 시인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것이 사랑인가? 허물어지고 캄캄해지면서도,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게 그 누군가를 뒤에서 받쳐주는 일, 그것이 사랑임을 저물녘에 도달한 시인은 깨닫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1-10
매화는 방 안에서 피고바람에는 눈이 내리고어머니는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나는 바닥에 엎드려 시를 읽고 있었다누이야,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한편 쓰면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가출한 아버지는 삼십년 넘게 돌아오지 않았고그래서 어머니는 딸을 낳지 못했다아내는 무채를 썰고 있었다도마 위로 눈 내리시는 소리가 들렸다나는 무생체와 들기름으로 볶은 뭇국을 좋아했다매화는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였다동생들은 관절염에는 수술이 최고라고 말했고저릿저릿한 형광등이 매화의 환부를 내려다보았고환부가 우리를 키웠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부분)매화는 어머니와 동일화된 객관적 상관물이다.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저릿저릿’하게 “매화의 환부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방안에는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삶이 퍼져나가는 듯하다. 매화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동일화되는 하얀 눈은 아내가 무채를 썰고 있는 도마소리가 되어 방안에도 내린다. 이 어머니의 환부와 같은 방안에서 시인과 동생들은 자랐던 것, 그래서 “환부가 우리를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1-09
오랜 세월편리와 속도와 효율에 길들여진 자들이실속 없는 배낭을 메고 어디로 은신할 수 있을까누림의 좋은 시절은 다 지나고오직 견뎌야만 하는이 시간의 폐허로부터 구해줄 동아줄을어느 하늘이 내려줄 것인가더러 조마조마해지는 맘 달래라고 보낸생존배낭,그 속에 친절하게 넣어둔 초콜릿 비스킷 따위는 꺼내먹고나침반만 그대로 두었다, 하나뿐인 지구 밖으로은신할 순 없으므로,험한 일 닥치더라도 생존의 무거움 털고가벼워지는 희망의 향방은 가늠하며 살고 싶어 (부분)시인의 후배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생존배낭을 보내왔다. 하지만 시인은 “편리와 속도와 효율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저 배낭을 메도 “어디로 은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생존배낭 속 먹을거리를 다 먹어 없애지만, 나침반은 남겨 놓는다. 나침반이 아직 “희망의 향방”을 가리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인은 “시간의 폐허로부터 구해줄 동아줄”을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1-08
늙은 경비원이 깜빡 졸았을 때모퉁이를 지난 누군가는 낯선 그림자와 마주쳤고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살해하고살해당하기 충분한겨울의 자정무심코 베인 상처는 아물고아가는 깨어나지 않는다겨울의 푸른 빛,이제 자정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시간에누군가는 잠들고누군가는 책상 앞에서식은 카디건을 걸치며아침이 아니야아직 늦지 않았어입김에 손을 비비며깨어난다 (부분)시인은 “살해하고/살해당하기 충분한/겨울의 자정”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세상에 폭력이 일반화되어 있음을 밝힌다. 이 세상은 한 주기의 끝인 ‘겨울의 자정’과 같아서 살해 사건이 일어나기 ‘충분’하다. 미래를 상징하는 아가는 깨어나지 않고 새로운 시간은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아침이 아니어서 늦지 않았다며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아침을 미리 당겨 글을 쓰는 사람이다. 문학평론가
2023-01-05
나는 귀를 막고 노래합니다보세요다리 아래 젖지 않는 불을물을 꺼트리려는 불의 노력을아름다워라 이 세상, 아치 다리 아래로도축장의 피가 흐르고청둥오리 목덜미에 해는 밝으니사체를 묻은 땅에 그해 가장 붉은 꽃이 피어도돌아가지 않아요트럭이 지나가는 다리헤드라이트 불빛이 얼굴을 훔쳐 달아나도물과 불이 나를 앞질러 해일처럼 일어서도 (부분)다리 아래 세상은 죽음의 ‘피-불빛’으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의 유혹은 마치 세이렌의 노래와 같다. 그렇기에 “나는 귀를 막고 노래”하는 것, 그것은 오디세우스처럼 저 유혹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시인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앎은 물에 비치는 불이 물에 “젖지 않”고, “물을 꺼트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며 얻을 수 있었다. 이 노력 덕분으로 희생자의 피는 물에 젖어 들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문학평론가
2023-01-04
못둑길에 산딸기, 볼이 쏘옥 들어가도록 빨아 당긴 담뱃불 같다길에 서서 노부부가 신기한 듯 들여다보는 산딸기, 할아버지가 풀숲 헤치며 성냥불 긋듯 미끄러져 들어가 “오만 손길이 다 댕기갔네” 하나씩 따 모은다오므린 손바닥에 따 모은 산딸기, 바알간 불덩이를 할머니 입으로 하나씩 밀어 넣어주며 “맛이 어떻노, 어떻노?”할머니 볼 발갛게 불붙어 탄내가 솔솔 났다위의 시는 생생하게 붉은 산딸기의 이미지와 늙은 노부부의 이미지가 대조되면서 노부부가 그 붉게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로 전화되는 ‘풍경’을 보여준다. 붉은 산딸기는 젊음의 생명을 상징할 터, 저 길가에서 그 생명은 한껏 빨아들인 담뱃불처럼 붉게 타들어 가고, 노부부는 그 젊음-‘바알간 불덩이’-을 따먹는다. 그러자 할머니의 볼이 담뱃불처럼 붉게 타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불같은 청춘을 맞이한 것처럼. 문학평론가
2023-01-03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강물을 보는 순간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물살하루 종일 읽어도 한 페이지도 넘길 수 없었던수만 개의 문장, 수만 개의 기호들이물속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래서 강물에 낚시를 담그고 있다사람의 시간을 버리고 물살의 시간으로 있는분침도 시침도 없는 시계가 좋다물고기의 비늘은 고정된 초침이라는 듯낚아 올린 물고기는 파닥거린다 (부분)시인은 물고기를 낚듯이 세계의 반짝이는 저 문장들과 기호들의 생생한 의미를 낚으려고 한다. 그런데 저 기호들의 반짝임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물살의 시간으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물살의 시간’은 “분침도 시침도 없”다. 그 물살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물살의 흐름은 흐름 자체로 본다면 제 자리에 있는 것, 그 역설은 ‘사람의 시간’-시계 시간-으로부터 벗어나야 인식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2023-01-02
몸과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곳아내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와 시안에도 들렀다내 생의 마지막 투병하는데절두산 부활의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신혼 초 살림 장만하듯 아내와 반겼다절두산은 성지순례로 가족과 들렸던 곳낮은 나에게도 지상의 집을 사랑으로 주셨다머리가 없는목 잘린 순교의 산오, 나도 드디어 못 하나를 얻었다무두정(無頭釘)부활의 집 지하 3층에서망자와 함께 이제사 천상의 집 지으리라‘부활의 집’은 죽음을 전제로 존재한다. ‘절두산 부활의 집’이란 그러므로 삶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집이다. 시인은 병인박해로 순교의 성지가 된 절두산-천주교 신자가 목이 잘린 곳이어서 ‘절두’라는 이름이 붙었다-의 부활의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결심을 한다. 그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얻어 이승에 남길 ‘못’은 목 잘린 순교자들처럼 머리가 없는 무두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2023-01-01
우리 집 처마 끝에 매달려집을 지키는 물고기바다를 품어본 적이 없고바다로 나아갈 생각도 없는가엾은 저 양철 물고기문지기 수행자로 살기 위해얼마나 허공을 쳐댔던 것일까가만히 다가가 보니비늘이 없다고개를 돌려보니아이의 어깨에 달라붙은그렁그렁한 비늘나 죽은 뒤에도관 속까지 따라와가슴에 곱다시 쌓일 것 같다집 처마 끝에 매달린 양철 물고기는 아내가 변신한 존재자다. 바다에 살면서 마음껏 헤엄치던 물고기 ‘아내’는, 어느새 양철 물고기가 되어 집 앞에 매달려 허공을 쳐대면서 문을 지키는 가여운 “문지기 수행자”가 된 것이다. 눈물 같은 비늘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가 겪어야 했을 슬픔과 기쁨의 결정체다. 아이에게는 그 눈물이 달라붙어 있다. 그 눈물을 통해 아이가 자라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2-12-29
2022-12-28
물가에 혼자 앉아서이제 그만 고즈넉 저물어야지더러는 기우는 햇빛이 더욱 붉다고불끈 말하고 싶을 때에도쉬 표시나지 않게 기울어야지누군가의 등 뒤에서내가 이윽고 캄캄해지면아무렴 그게 바로 사랑이겠지가끔은 그리운 사람을 위해관솔 같은 상처를 태워꽃불 밝히자 스스로 캄캄해져서흐르는 물로 억센 연장을 씻고바람에 맡겨 젖은 이마를 말리고어디쯤일까 지금저녁강 돌아눕는 소리저물면 조용히 어두워지도록기울면 가만히 허물어지도록아무렴 그냥 두자 무심하게조금씩 더 낮아지면서상처를 태워 마지막 불꽃들을 발산하며 조금씩 캄캄해지는 노년에 다다른 자의 사랑 이러한 사랑이 더 붉고 뜨거울 수 있다. 시인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것이 사랑인가. 허물어지고 캄캄해지면서도 그는 여전히 누군가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하게 그 누군가를 뒤에서 받쳐주는 일 그것이 사랑임을 저물녘에 도달한 시인은 깨닫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27
오랜 연인이 마주 앉아국화차를 우린다더 오래는 꽃과 하나였던 향기가그러나 마른 꽃잎 속에서말라붙은 눈물처럼 깡말라가던 향기가다시금 따뜻한 찻물 속에서핑그르르 눈물 돌듯 그렁그렁 되돌아왔다마치 한순간도한몸이었던 걸 잊은 적 없는 것처럼선을 넘는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수천 번 으깨고 짓뭉개도끝내 서로를 버리지 못하는 꽃과 향기처럼보내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마음으로그대도 도리 없는 꽃일 터인가? (부분)꽃잎이 “따뜻한 찻물 속에” 들어가자 향기가 되돌아온다. 향기엔 육체가 없다. 그것은 찻물이라는 젖은 꿈에 의해 상상되는 육체 없는 대상인 것, 그러므로 국화꽃잎의 향기와의 사랑은 꿈속 대상과의 사랑이다. 꿈이 사랑을 재생한다. 아마 꽃잎의 그리움이 꿈을 꾸게 만들었으리라. 그 꿈은 꽃잎을 향기롭게 만든다. 즉, 사랑을 이루려는 욕망이 꿈을 꾸게 만들고 꿈 쪽으로 삶을 움직여 삶에 존엄성을 부여한다. 문학평론가
2022-12-26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다만눈을 감고 있다.바다 밑에서 하늘 위에도 있는시간, 발에 차이는지천으로 많은 시간,장미는 시간을 보지 않으려고눈을 감고 있다.언제 뜰까눈을,시간이 어디론가 제가 갈 데로 다 가고 나면 그때장미는 눈을 뜨며시들어갈까장미가 시들지 않고 영원한 무시간 속에 놓여 있는 건 바로 “지천으로 많은 시간” 속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이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시간을 보지 않을 때 무시간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어디론가 제가 갈 데로 다 가고 나면” 장미는 비로소 눈을 뜨고 비로소 시간적 존재-시들어 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세상의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바로 저 장미의 ‘순수한 모순’을 살아내야 하리라. 문학평론가
2022-12-25
내가 걸어온 시대는 전쟁의 불길과혁명의 연기로 뒤덮인 세기말의 한때였고,요행히도 나는 그것을 헤치고늙은 표범처럼 살아남았다.수많은 청춘들이 누려야 할 기쁨조차누리지 못한 채 꽃잎처럼 떨어지고거룩한 분노가 캐터필러에 짓밟혀무덤으로 실려갔을 때도 나는집요한 운명에 발목 잡혀서마지막 잎새같이 대롱거렸다.손을 놓아야 한다!서커스의 소녀가 어느 한순간그넷줄을 놓고 날아가듯이저 미지의 세계로 제비 되어 날아가며고독한 포물선을 그려야 한다.그것이 내 마지막 고별의식이 되기를 바라면서…. (부분)한 노시인이 살았던 역사엔 핏자국이 찍혀 있다. 혁명과 세기말, 수많은 청춘들이 캐터필러에 짓밟혀 흘린 피. 그런데 청춘들이 죽어 가는데도 시인은 ‘집요한 운명에 발목 잡혀서/마지막 잎새같이’ 삶을 지속했다고 회고한다. 시인은 이제 그 운명에서 손을 놓고 청춘들이 묻혀 있는 무덤가로 ‘서커스의 소녀’처럼 어느 한순간에 날아가려고 한다. 그 순간은 죽음의 ‘순간’이자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이 될 ‘순간’이다. 문학평론가
2022-12-22
나는 우리 집 방바닥이 계단처럼여러 칸이었으면 좋겠다첫번째 계단에는 결혼하기 전알던 여자를 눕히고그 바로 위 계단에는 그녀가낳아보지 못한 내 아이를 누이고 싶다눕기 싫다고 아이가 앙탈하면내가 대신 기저귀 차고 드러눕고 싶다아니면, 피로에 지친 암개미처럼나 혼자라도 알 까고 싶다그리고 문득 눈 감으면그 모든 계단들이 부챗살처럼 접혀아무도 내 생각 들여다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부분)위의 시는 “-싶다”와 “-좋겠다”의 문형을 반복하면서 아이처럼 소망을 표현한다. ‘시 창작 연습’이란 기성관념에서 벗어나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의 소망-그 소망을 남이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까지-을 아이처럼 천진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이다. 이 연습의 핵심은 무언가 덧칠하는 수사를 배제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명징하게 그려내는 것일 터, 이때 시는 정직함이라는 순도를 얻게 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21
백 년을 넘긴 대추나무가서쪽으로 기우는 달밤입니다수평으로 퍼지다 직각으로 올라간얼마 되지 않은 대추나무가지에도이른 메밀꽃처럼 꽃이 핀 달밤입니다훤히 뚫린 개집 안 더 아픈 강아지가끈질기게 앓는 강아지의 등에 바짝 붙어흰털을 핥으며 실눈을 빗뜨는 달밤입니다만물이 상생하면서 이루어지는 우주 생명의 경이가 선명하고 압축적으로 드러나 있는 시. 특히 강아지의 따스한 애린을 보여주는 행동은 어떤 인간 모습보다도 감동적이다. 꽃이 피어날 장소를 제공하는 대추나무도 타자에 대한 애린을 보여준다. 달빛은 세계 내 존재자들이 보여주는 애린의 세계를 감싼다. 그 달빛이 퍼져 나가는 달밤은 경이로운 생명의 세계가 자신을 은은하게 드러내고 있는 우주적 공간이다. 문학평론가
2022-12-20
곳간 양철지붕은 비었다,비었다고 엄살을 떨지만터지게 익어가는 나락들을 붙들고들판은 숨죽였다.그쳤다 쏟아지다, 가을 소나기다시 멎는 고들고들한 정적 사이밤 내 들리는 풀비질 소리누가 하늘에 도배를 했나쓰고 남은 들판의 푸름을빗방울로 콕 콕 찍어 바르는 것을콩잎 쓰고 숨어 보던 도마뱀 한 마리아침 천정에 무늬가 살아 움직인다.맑고 경쾌한 풍경이 그려진 상쾌한 시. 세계를 푸르게 물드는 박명(薄明)이 다가온다. 하늘은 푸른색으로 도배되어 있고, 소나기 내린 후 맺힌 빗방울은 그 푸름을 사물들에 “콕콕 찍어” 바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빛과 색은 달라지는데, 시인은 이를 두고 “아침 천정에 무늬가 살아 움직인다”고 표현한다. 밤-새벽-아침으로 변모하는 세상을 “콩잎 쓰고 숨어 보던 도마뱀 한 마리”는 바로 시인의 분신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