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한켠의 시소에 여섯 살 여자아이와일흔의 할머니가 마주앉아 있다여섯 곡절의 노래로 늙은 꽃나무에 불을 매달면길 먼 사람의 발자국처럼 저녁 강의 물소리가서쪽 하늘에 고인다어린 묘목들만이 남아 그림자를 거두는 시간씨 빠진 꽃대궁의 하늘에 함박눈이 쏟아지고시소는 금세 손잡이처럼 외로운 모양으로 비어진다그 무엇도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이늙은 우편배달부처럼 다녀가는 모양이다수천의 첫 하늘, 눈이 길게 내린다“놀이터 한켠의 시소에” 마주 앉아 있는 두 삶. 여섯 살 여자아이의 삶은 피어나고 있는 꽃과 같고 그 맞은편의 할머니는 이제 곧 져버릴 이파리와 같다. 할머니가 여자아이로부터 듣고 있는 “여섯 곡절의 노래”는 “늙은 꽃나무에 불을 매”단다. 삶에 남아 있을 불같은 기억들이겠다. 그 기억들은 죽음으로 통해 있을 “서쪽 하늘에” 이제 멀리 떠나가며 남겨놓은 “발자국처럼” “저녁 강의 물소리”로 고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12-18
살아갈수록 좋은 날은 안 생기고닷새 장마다 낯익힌 어물전 끝냄이 할미팔다 남은 물가자미 세 마리 건넨다순례할미, 말없이 물가자미 받아들고나생이 한 단 들이민다나이롱 보푸재에 계란만큼 남아 있던 겨울 해는저만치 삿갓봉 목재를 기웃거린다손주 놈 골덴바지 말아 쥔나이롱 보푸재, 순례할미 손등 검버섯 새로한 줄 희멀건 힘줄, 숨 가쁘다 (부분)‘순례할미’와 ‘끝냄이 할미’는 팔다 남은 음식을 직접 교환한다. 나생이 한 단과 물가자미 세 마리는 화폐의 척도에 따라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서, 그리고 계산이 아닌 애정 속에서 교환된다. 이러한 교환의 장에 겨울 해와 같은 자연물도 기웃거리면서 참여한다. 이렇게 가난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서로 돕는 자연스러운 연대를 낳으면서, 사랑에 기초한 민중의 생명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2022-12-15
창문 밑에 매달린 고드름들 사이로,흐린 하늘에 목매달아 죽은 가오리연을 본다하늘을 휘젓는 연의 시체는 부드럽다까만 바람, 겨울은 낙타를 타고 걷는다이따금 땅바닥에 흩어진겨울의 부러진 발톱을 몰래 줍는다주워들고는 죽은 구상나무 뿌리에 기우뚱 심어놓는다구상나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하게 죽어 있다뿌리에서 또 다른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죽은 몸과 자라나는 슬픔 사이의 여백이 차갑다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다 (부분)겨울은 까만 죽음의 계절이다. 가오리연이 목매달아 죽는 계절. “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지만, 시인은 여전히 이 죽음의 계절에 머물러 있다. 아니, 애인이 봄으로 갔기에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된 것이겠다. 여기서 시인은 “겨울의 부러진 발톱을 몰래 줍”고는 “죽은 구상나무 뿌리에 기우뚱 심어놓는”다. 겨울의 파편들-아마 슬픔일-을 이미 죽어버린 뿌리에 심는 그 행위는 시 쓰기를 의미할 것이리라. 문학평론가
2022-12-14
동틀 무렵, 그렇게 우주가 사람의 마을로 손금처럼 내려오고 아직 저마다의 이름을 채 밝히지 못한 시간, 가난은 그래도 사람들을 먼저 깨워 이 시간을 온전히 지키라 합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과 저 산을 지나 우주 한 끝에 닿는 길을 당신이 먼저 걸어보라 합니다. 아마 그 몸에도 동이 트려나봅니다. 아직 잠든 식구들을 두고 시퍼런 눈으로 동트는 사람들, 그들이 한 우주가 아니겠습니까? (부분)명명되기 직전의 시간인 ‘동틀 무렵’,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한 가장의 몸에 빛이 닿고 있다.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가난한 실업자들의 몸에도, 박명의 새벽이 시퍼렇듯이 “시퍼런 눈으로” 동이 튼다. 이들이 떠오르는 햇빛을 받으며 삶의 욕망을 되찾기 시작한다면, 새로운 삶이 생성될 것이다. 나아가 이 새로운 삶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세계는 새로운 우주로 변모하면서 또 다른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13
하나의 불꽃에서수많은 불꽃이 옮겨 붙는다그리고는누가 최초의 불꽃인지누가 중심인지알 수가 없다알 필요도 없어졌다중심은 처음부터 무수하다그렇게 내 사랑도 옮겨 붙고산에 산에꽃이 피네꽃밭의 모든 꽃이 스스로 중심이듯이, ‘촛불 시위’에서 촛불을 든 모든 사람은 스스로 중심이다. 촛불이 전염력이 강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중심이 될 수 있어서 극도의 자발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인은 위의 시에서 촛불이 사람들 사이에 “옮겨 붙는”다는 일은 꽃이 피어나는 생명 현상-사랑을 통해 생겨나는-에 따르는 것임을 암시한다. 사랑이 옮겨 붙어 번져나가는 사건, 그것이 ‘촛불’이라는 것. 문학평론가
2022-12-12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당신은 당신의 오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당신의 오실 때는 나의 기다리는 때입니다.(….)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 죽음은 당신을 위하여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습니다.만일 당신의 쫓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나의 죽음의 뒤에 서십시오.죽음은 허무와 만능(萬能)이 하나입니다.죽음의 사랑은 무한인 동시에 무궁입니다.죽음의 앞에는 군함(軍艦)과 포대(砲臺)가 티끌이 됩니다.죽음의 앞에는 강자와 약자가 벗이 됩니다. (부분)이 시에서 놀랍게도 기다림과 임의 도래라는 사건이 동일한 시간에 중첩되고 있다. 물론 아직 임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셔요’라고 미래의 임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시인은 기다림이 임이 도래할 문을 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다림이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의 죽음’이다. 이 죽음이 시간의 흐름을 단절시키면서 현재 시간에 임이 도래할 수 있는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2-12-11
이 밤대지 밑 죽은 자들이 웅얼거리는 소리가내 잠을 깨운다지하를 흐르는 검은 물줄기가누워 있는 내 귓속으로 흘러들어와몸 가득히 어두운 말을 풀어놓는 시각죽은 자의 입에 물린 은전의 쓴맛이목구멍을 타고 내 몸 곳곳에 번져나간다 (부분)시인이 시체와 동화(同化)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으스스한 묘사로 전개되는 시다. “내 잠을 깨”우는 시체의 “웅얼거리는 소리”는 현실의 악몽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열고, 시체들이 묻혀 있는 지하의 검은 물들로 변환되어 시인의 “귓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하여, 시체가 물고 있었던 “은전의 쓴맛이/목구멍을 타고” 시인의 “몸 곳곳에 번져나”간다. 죽음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 시인의 몸을 통해 살아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08
지금은 우리가 죽어가는 시간인생의 고통이 끝나는 시간신경통 같은 죽음, 죽음,갈망하면서 얼마나 거부했던 죽음인가 지금은 나무와 꽃들이 해골이 되는 시간인간이 독물든 흉기임을 인정하고 참회해야 한다서로 깊이 이해하고 다시 끌어안아야 한다 지금 중요한 건여기 우리 함께 있다는 것마지막 춤….천천히 마지막 춤을(부분) 시인이 “우리가 죽어가는 시간”의 ‘신경통’을 앓으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슬픔 역시 무너질 것이며 결국 길이 보이리라는 어떤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 희망은 세상이 곧 멸망할지라도 “서로 깊이 이해하고 다시 끌어안아야 한다”는 윤리를 뒷받침해주리라. 그렇기에 시인은 종말의 징후 앞에서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마지막 춤’을 추리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07
나를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꿈꾸어야 한다, 단한 줄일 수도 있다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부분)“검은 페이지”는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독자인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도 있다는 것이 이 시가 전해주는 의미의 핵심이다. ‘나’에 대해 진술하다가 갑자기 ‘그들’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시가 ‘나’에 대한 단순한 넋두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의 내면이 검다는 진실을 시인은 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진실을 끄집어내기 위해선 문학이란 ‘거짓’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겠다. 문학평론가
2022-12-06
주먹을 쥐었다 펴면, 꽃잎도 없이 흩어지는구멍 숭숭 뚫린 한 움큼의 시절들겨울이 오기까지 너는 무엇을 견디며 살아왔느냐대파밭에 눈이 내리고 또 쌓이고속이 텅 빈 것들,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새파랗게 뜬 생의 기력이 뿌리 끝까지 시들어지면매끈한 속살 드러내고 가지런히 돌아눕기 전에겨울, 대파밭으로 와서 총총 언 발로 서 있어야한다저마다 품은 주먹을 꺼내 강고한 울음으로얼어붙은 제 몸의 빛깔을 한번쯤 확인해야한다차디찬 빈 속으로 일제히 기립하는 대파 줄기들어지러워라, 문득 배 속이 투명해지는 저녁이다.(부분)텅 빈 ‘대파줄기’는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상징하겠다. 이 줄기들이 “차디찬 빈 속으로 일제히 기립”한다. 강렬하고 새로운 이미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빈 속’의 이미지가 “투명해지는 저녁”이라는 이미지로 전환된다. 여전히 저러한 이미지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것은, ‘빈 속’으로 “일제히 기립”할 날을 꿈꾸면서 얼어붙은 세상을 견디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이 땅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2-12-05
노래하는 당나귀를 보았는가 무거운 짐 이고 지고앞만 보고 걸어가는 무심한 눈길짓누르는 돌덩이 아래서 흘러나오는경쾌한 노랫소리그에겐 이미 짐이 없다부서지기 쉬운 자들이 짐을 진다천천히 가지만 언젠가는 사막을 통과한다가녀린 나비가 바리케이드를 넘는다날개 한 잎 상하지 않았다 (부분)“무거운 짐 이고” 가는 당나귀의 “경쾌한 노랫소리”는 ‘무심’해 보이는 당나귀의 삶에 내재한 잠재력을 드러낸다. 그 잠재력은 “부서지기 쉬운 자들”인 당나귀의 존엄을 증명하며, “언젠가 사막을 통과”할 미래를 품고 있다. 노래 부르는 자는 “짓누르는 돌덩이”를 지고 있을지라도 잠재적으로 “이미 짐이 없”는 자유로운 존재다. 하여 저 나귀도 자유로워서, “가녀린 나비”처럼 “바리케이드를 넘”어 날아가리라. 문학평론가
2022-12-04
나 죽거든 애인아바닷가 언덕에 초분 해다오.바닥엔 삼나무 촘촘히 놓고솔가지와 긴 풀잎으로 덮어다오.저무는 바다에저녁마다 나 넋을 놓겠네.살은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지고먼 곳의 그대 점점 아득해지리.그대도 팔에 볼에 검버섯 깊어지고시든 꽈리같이 가슴은 주저앉으리.(부분)김소월의 ‘초혼’에서는 화자인 산 자가 허공에 대고 죽은 자를 헛되이 부른다면, 위의 시의 화자는 죽은 자가 되고자 욕망한다. 하지만 그 욕망은 완전한 소멸에의 욕망이 아니어서, 그는 점점 아득해질 “먼 곳의 그대”를 바라보며 넋과 살이 “조금씩 안개 따라 흩어”질 수 있는 초분을 원한다. 그는 실연의 슬픔에 못 이겨 죽음을 원하면서도‘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서러움 역시 놓지 못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2-01
나는 너를 떠도는 별한 세계가 어둠 속에 기어드는 시간너는 나의 축태양을 향해 서성댄다바람에 눅눅해진 가슴과 눈빛이허름한 벽을 타고말라비틀어진 입술이 타고붉은 노래를 타고흐른다 평평한 허공저녁 창가에 걸린 노을 한 마디‘나의 축’인 ‘너’는 사랑하는 이일 터, 해지는 저녁 시간에 “한 세계가” 점점 어둠에 잠겨 갈 때 사랑하는 ‘너’도 나로부터 멀어져간다. 그리고 그를 향한 “가슴과 눈빛”은 “붉은 노래를 타고” “평형한 허공”을 흐른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태양을 향한 하늘의 피눈물이 노을이라면, ‘나’의 통절한 마음을 담아 사라져가는 ‘너’를 향해 불에 탄 듯 “말라비틀어진 입술”로 읊는 시가 노을처럼 ‘붉은 노래’이겠다. 문학평론가
2022-11-30
어느 생의 혓바닥이 불러온 업보인지딱딱한 뼈의 입술 두 쪽에혓바닥 하나 숨겨 생애를 건너가는 중이다물속에서 내다뵈는 것은먼 깜박임저건 시리우스 저건 좀생이 별저기에도 생을 기댈 짭조름한 물이 있을까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본다머나먼 거기뉘 손짓이 저리 반짝이는지조개는 날개를 펴듯 움찔 움찔패갑을 열었다 닫곤 한다 (부분)시에 따르면 조개는 “물속에서/내다뵈는” 별로부터 “바람 칠수록 명멸하는 찬란을” 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저 반짝이는 별로부터 ‘뉘 손짓’을 감지하면서 “날개를 펴듯 움찔 움찔/패갑을 열었다 닫곤” 한다. 놀랍게도 시인은 조개껍질을 살짝 여닫는 조개의 미세하고 느린 몸짓에서 저 하늘 위의 별로 날아가려는 비상(飛上)의 몸짓을 포착하고는, 조개껍질이 날개로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9
태풍은 잔인하지만, 봄바람은 꽃향기를 남긴다0.3평에 외롭게 핀 거제도 민들레들꽃이 피는데 넓은 땅은 필요하지 않았다기댈 구석도 없는 연약한 자세로코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만드는작은 것의 힘,세상을 들어올리는 힘은 덩치가 아니라너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에 있다민들레의 고공행진새처럼 날아 하늘에 닿고우리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부분)작은 곳에서 피어나는 민들레는 봄바람에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싣는다. 이 아름다움이 태풍이 할퀴고 간 대지를 풋풋하게 재생시킨다. 민들레는 바람에 날리며 “새처럼 날아 하늘에 닿”으면서, 하늘을 위로 들어 올리는 괴력을 발휘한다. “점점 낮아지고 있”는 우리와 대비되면서 말이다. 우리 인간은 ‘작은 것의 힘’을 인식하지 못하고 크고 강한 것들을 숭배하면서 그것들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8
파도가 삼킬 수 없는 만큼만 남아그렇게 조용히 부드럽게너무 엄청나서마치 육지인 것처럼 착각하여내일을 모르는 물개가 되어유빙에 올라앉은 방랑자처럼날카로운 각을 허물며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마침내 뜨거운 적도의 바다까지 가서사람들 기억 속 오래오래 기억되겠지마지막 빙산의마지막 헤엄을빙신의 해빙이 가져올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해수면이 상승하고 많은 도시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라는 것을. 적도까지 내려가면서 바다에 용해되어버릴 빙산의 존재는, 인류의 안위를 상징한다. 인류의 운명이기도 한 빙산의 운명은 “마치 육지인 것처럼 착각하여” “유빙에 올라앉은” 물개처럼 “내일을 모르”게 되었다. 다만 방랑자처럼 바다를 떠돌 뿐이다. 하지만 그 방랑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11-27
친구 부음 소식을 받고밥 약속을 미룬 것이 후회되어 허공만 바라보지모든 죽음에는 이야기가 있듯이모든 이별에도 이야기가 있고다니던 일터에서 치워진 의자처럼소모품이 되어가는 누군가오늘의 수명이 가벼워지고죽어가는 꽃들을 향한 경건한 마음이 들어약점이 모여 강점이 되고 있는 나는병원 문을 비집고 들어와숨을 토하는 실핏줄 도드라진 여윈 햇살을 한 움큼 움켜쥐지 (부분)죽음은 허망해보이지만, 남은 자들에게는 깊은 마음을 일으키고 이야기를 남긴다. 이 마음은 어떤 사랑을 생성시킨다. “실핏줄 도드라진 여린 햇살을 한 움큼 움켜쥐”는 행위가 바로 사랑의 표현이겠다. 곧 사라질 것 같은 햇살, 이는 숨을 힘겹게 쉬고 있는 병자의 살갗이기도 할 것이다. 이 죽어가는 이의 살갗과 접촉하는 것은 허망에 빠질 수 있는 그의 삶을 껴안는 행위다. 죽음의 앞뒤에 사랑이 남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4
너에게 가는 길이 달팽이 속도였다면너에게 돌아서 온 길에 들은 찬바람 소리는시간의 어두운 쪽에서 흔들리고 흔들렸다죽순이 뿌리내리며 흙의 내력을 아는 것처럼너를 다 읽은 그 순간세상의 푸른색이 내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중략)다시 한번 눈물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그리움의 기도가 피어나는 하지에는너에게로 갈 수 없는 날들이 빠르게 자랐다 (부분)시인의 사랑은 ‘너’의 살(‘흙’)에 뿌리내리며 ‘너’를 읽어나가는 일이다. 이때 ‘나’ 안에 “세상의 푸른색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시인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달팽이 속도’처럼 더뎠던 데 반해 ‘너’와 헤어진 후에는 “너에게로 갈 수 없는 날들이 빠르게 자랐다”는 것. 특히 너와 헤어진 직후의 상실감을 “시간의 어두운 쪽에 흔들리고 흔들렸”던 ‘찬바람 소리’로 생생하게 드러낸 표현이 주목된다. 문학평론가
2022-11-23
도화살 매화살 이 화살이 꽃살 무늬로 새겨진 방 안에 머물면당신은 또 꽃 그림자처럼 스미겠지요묵화로 그린 댓잎 같은 바람이 불어도 좋겠습니다국화 향이 창호지에 스며 내내 달빛인양 고이면당신의 도화살과 나의 도화살이 나란히 누워꽃잎처럼 부드러운 서로의 살을 만지고봄밤 같은 세월을 바위에 꽃잎 떨구듯 한 잎 한 잎 흘리면바닥은 얼마나 놀랄까요?꽃을 입게 될 줄 몰랐을 겁니다 (부분)위의 시에서 ‘도화살’은 아름다움에 열려 있는 삶, 또는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운명을 의미한다. 도화살이 인도하는 아름다움은 자연의 관능적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감각에 스미는 세계가 주는 향취 같은 것. 국화 향이 달빛처럼 창호지에 스며들어 고이듯이 “꽃 그림자처럼 스미”는 당신과 함께, “부드러운 서로의 살을 만”질 때 느끼게 될 아름다움. 하여 도화살의 ‘살(煞·죽임)’은 당신의 살로 의미가 변전한다. 문학평론가
2022-11-22
공원 벤치 밑에 구두 한 짝새처럼 잠들어 있다벤치 위엔 남자, 신문지를 덮고 잠든 둥근 둥지죽은 걸까, 꿈꾸는 걸까검은 구두 속에서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이 흘러나와남자의 몸을 수의처럼 감싸고(중략)누구의 입일까 검은 구두구두 속에서 흰 말이 날아오르고밤사이 대기가 흘린 꿈이남자의 입술 끝에 투명한 핏방울로 맺혀 있다노숙자일 저 사내가 신고 다녔을 검은 구두는 “하얀 물감 빛깔의 새벽”을 풀어놓으며 ‘흰 말’이 날아오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핏방울로 맺”힐 꿈-죽음-을 흘리는 저 구두는, “새처럼 잠”든 사내의 삶 자체를 삼켜버린다. 그런데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와 같은 존재인 그 ‘흰 말’은 죽은 이의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것은 죽음의 찬양이 아닌 죽은 이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말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