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사람들 살지 않는 마을이
호수에 덮여 자고 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꿈꾸고 있다
햇살 눈부셔 눈부셔 눈 뜨는 마을
푸른 잉태 하나 낚시에 걸려 온다
손바닥에 퍼런 불을 토하는 생명
풀 풀 날아드는 비릿한 살내음
잃어버린 고향하늘 한자락 타고 있다
사랑하는 가슴끼리 타고 있다
불타는 눈끼리 타고 있다
사람들 살지 않는 마을
댐이 건설되고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고향 마을. 하나 시인은 저 마을은 사라지지 않고 자고 있을 뿐이며,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꿈꾸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 꿈은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실향민들의 꿈일 터, “낚시에 걸려”오는 “푸른 잉태 하나”란 그 꿈이겠다. 이 꿈에서 “퍼런 불을 토하는 생명”이 발현한다. 실향한 이들의 마음속-호수 속-에는 “사랑하는 가슴끼리”, “불타는 눈끼리 타고 있”기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