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몹시 문란하지 않으면가족은 탄생할 수 없다창문 저 밖남의 가정은 다 안락해 보이고창문 저 안나의 가정은 다 안락사로 보이듯그 순간 미처 걷지 못한불쌍한 빨래들이백기처럼펄럭펄럭손을 흔든다꼭 엄마 같은 그림자다(부분)시인에 따르면 문란하지 않으면 사랑이 탄생할 수 없으므로, 가족도 탄생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사랑의 문란을 몸으로 겪는 이들이다. 배고픈 이들은 가족끼리 서로를 뜯어먹으면서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문란한 사랑이 엮는 문란한 가족의 이미지는 “백기처럼/펄럭펄럭/손을 흔”드는 ‘빨래들’로 현현한다. 쓸모없듯 방치된 저 빈손의 펄럭임이야말로 사랑의 문란이며 고통이고 아름다움이다. 문학평론가
2022-07-24
어두울 무렵하늘이 닫고 있는 붉은 꼬리를 배경으로저무는 방식을 습득하고 있는 수평선이발뒤꿈치를 들고 환하게 뒤를 잠그고 있다궤적을 반짝이며 사라지는 유성처럼버려도 좋은 꼬리 하나쯤 있어그 꼬리에 몸을 묻고오래 저물고 싶다(부분)노을의 붉은 끝자락으로부터 유성의 꼬리를 연상하는 것을 보면, 이 시인이 세계의 현상을 얼마나 끈덕지게 관찰하면서 시적인 ‘이미지-사유’를 오래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저 사라지는 노을의 “꼬리에 몸을 묻고/오래 저물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시인은 유성처럼 사라지는 저 하늘의 노을을 오래도록 응시하면서, 저 “환하게 뒤를 잠그”는 ‘수평선’의 ‘저무는 방식’을 터득하려 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21
아주 사적인 생각에 빠져뼈다귀들이 설설 끓고 있다거품이 악성 댓글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담 든 몸에 파스 붙이듯이름을 계속 갈아 붙이고 살던 남자가아파트 11층에서 떨어졌다, 단풍 붉게 물든 늦가을회 뜨고 남은 살점 군데군데 붙어 있는 뼈다귀가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어디론가 헤엄쳐 가고 있다짠물에 새기던 사소한 고독의 가시 무늬익명탕이 홀로 졸아들고 있다(부분)“악성 댓글” 같은 거품을 내며 끓고 있는 눈앞의 ‘서더리탕’은 광어의 것인지 우럭의 것인지, 도미의 것인지 모르는 뼈다귀들로 만든 ‘익명탕’이다. 11층의 남자나 당신과 같은 익명. 그러니 “이름을 계속 갈아 붙이”면서 살다 죽은 남자는 당신이기도 하리라, 죽은 남자나 당신, 그리고 ‘나’ 역시 서더리탕의 뼈다귀들처럼 “사소한 고독의 가시 무늬”만을 남기고 “홀로 졸아”드는 익명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20
어릴 적 뒹굴던 과원(果園)이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인 흙냄새모든 것의 자궁이면서도제 것 하나 없는 해탈인 흙이후광처럼 두르고 다니던 냄새로작은 섬 하나 짓고 싶어졌습니다당신이 깊이 뿌리 내리고푸르게 타오르는 물 한 그루로 서 있을 (부분)모든 씨앗들은 흙속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삶이 가진 가능성을 현실화한다. 하여 시인은 흙을 ‘자궁’이라고 지칭한다. 또한 모든 삶은 자신의 생명이 다 하면 빈 몸으로 흙속에 묻혀 흙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흙은 삶과 죽음을 모두 품고 있는 것, 시인은 이 흙의 냄새가 “어릴 적 뒹굴던 과원이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라고 말한다. 이 냄새가 그에게 근본문제-삶과 죽음-에 일찌감치 눈 뜨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19
이곳 바닷가 기슭에서머리칼의 기억을 풀어헤치며늙지도 않는 당신의 서문(序文)을 꺼내 읽는다밀려왔다 쓸려가며넘나들었던 숱한 피멍의 숨소리가 들려오는저 격정의 세계에발가벗고 뛰어드는 아이들의새파랗게 질린 얼굴늘 푸름이 바탕이라서 늙을 것 같지가 않다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던 날,말없이 등을 다독이며 돌아섰던 난바다영영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억겁의 창문을 열고 뜨겁게 밀려들고 있다한순간도 멈추지 않을 태세다.당신이 눈앞의 저 바다와 겹쳐진다. 당신에 대한 기억은 저 ‘난바다’가 “말없이 등을 다독이며 돌아섰던”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늙지도 않은 저 바다는 “영영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시인 앞으로 ‘뜨겁게’ 밀려들고 있다. 바다는 “숱한 피멍의 숨소리”를 통해 자신의 ‘격정’적인 영혼을 드러내고, 이 바다를 마주한 시인 역시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저 ‘파랑’의 세계처럼 새파란 존재로 변화된다. 문학평론가
2022-07-18
새 한 마리 전봇줄 위에 앉았더니허공에 길을 만들며 숲으로 사라졌다새가 날아간 숲에는자작나무 그림자 흔들리고마른풀들이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몸을 누인다멀리서 보면 고요한 산속더러 파다한 세상이갈대로 출렁이며 일어선다무거운 짐 부려놓듯 나뭇잎이 떨어지고벗어버릴수록 가벼워지는 생숲에서 길을 만난다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그러자 정적에 싸여 있던 세상이 “갈대로 출렁이며 일어”서고, “자작나무 그림자 흔들리”며, “새가 날아간 방향으로” “마른풀들이” 몸을 누인다. 새의 비상은 “무거운 짐 부려놓듯” 떨어지는 나뭇잎의 추락과 상통한다. 그 비상은 존재자들의 “벗어버릴수록 가벼워지는 생”을 드러내기에. 하여 허공을 나는 저 새가 그린 궤적에서, 시인은 자신의 생이 나아갈 길-소멸로 향한-을 발견한다. 문학평론가
2022-07-17
태풍이 지난 후고요를 되찾은 바다어부는 갈매기와낙조를 나누어 갖는다산사에서 울리는 북소리는가슴과 머리와 피부에서작은 감동을 나눈다바람 소리 파도 소리천둥소리 새 소리낙엽 밟는 소리자연의 소리는 거짓을 나누지 않는다꽃과 벌은 나눔으로 꽃은 열매를벌은 꿀을 얻는다 (부분)자연의 존재자들은 거짓을 나누지 않는다. 그 자연의 존재자들이 나누는 나눔은 사랑의 행위이다. 낙조를 나누는 어부와 갈매기는 자연의 인력-사랑-으로 맺어져 있다. 북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의 “가슴과 머리와 피부”도 “작은 감동을” 나눈다. 이 나눔이 없다면 신체의 유기성은 불가능하다. 사랑은 이 세계의 뭇 삶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의 순리이며, 이 순리는 나눔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14
숨어든 방안에서 홀로 어둡다.맨 몸 켜켜이바랜 누더기 같은 비애가 마른다.어둠이 따뜻하다는 것, 이제 알겠다.기다림은 없다, 없으므로딱딱하게 굳어진 초인종 더는 누르지 못하고다들 망설이다 되돌아 갈 것이다.빈 옷장 같은 방열어젖히듯 떠나버릴 것이다.젖은 채 개어 넣는 몸속거품 같은 씨앗 한 움큼말라가며 자란다.내성(耐性)이다. (부분)시인은 어느새 “바랜 누더기 같은 비애가” 말라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인의 몸은 욕망이 아니라 비애로 젖는다. 하여 그는 몸속에 “젖은 채 개어 넣”어져 말라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 “거품 같은 씨앗 한 움큼/말라가며 자란다”는 것을 시인은 깨닫는다. 자신이 고독한 삶을 견딜 수 있는 삶의 내성을 얻었으며, 내면에 시라는 ‘거품’으로 변환되는 씨앗이 자라고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13
새벽 바다는 외롭고 깊고 쓸쓸하다흐린 수평선 쪽으로 어둠 밋밋하게 물러가며구름 사이로 붉은 울음을 토하고갈매기들 한 줄로 나란히 파도 위에 앉아참선(參禪) 삼매경(三昧境)에 빠져있다이런 새벽은 달항아리 같아외롭고 깊고 쓸쓸한 것들이그득해져서 아름다운 그늘이 된다이 시는 새벽 바다가 아름다운 그늘이 된다는 역설적 발견을 보여준다. “밋밋하게 물러가”는 어둠의 자리를 차지하는 ‘구름 사이’의 “붉은 울음”, 그 울음이 떨어지고 있는 바다 위에 나란히 앉아 “삼매경에 빠져 있”는 갈매기들. 이들이 연출하는 쓸쓸한 새벽의 풍경은 ‘달항아리’처럼 세계를 둥글게 품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저 세계는 달항아리 속처럼 깊고 그득해져서 세계의 그림자-그늘-를 드러내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7-12
내가 나에게편지를 쓴 적이 있네오른손으로 쓰고 왼손으로 받았네뜯지도 않고 불살랐던불 꺼진 창문, 떠나온 그 주소에는이제 누가 살고 있을까,뜨내기들은헐렁한 외투와 낡은 구두뿐이지만허허벌판을 첩첩 살아가네내 왼손이 오른손을 잡아피가 흐르네나는 여전히 오래된 여행이라네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그런데 오른손이 쓴 그 편지를 왼손이 “뜯지도 않고 불살랐”다고 하니, 그 편지에는 기억하면 안 되는 기억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시인은 그 불태워버린 기억을 되살리고자 “내 왼손이 오른손을 잡”는다. 하여, 되살아난 상처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시인은 “헐렁한 외투와 낡은 구두” 차림으로, 그가 살아온 삶이 열어놓은 기억의 공간, 그 피 흐르는 상처의 공간을 방랑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
2022-07-11
당신은 잠에서 깬 듯 구름을 갈아엎어 씨를 뿌리고영문 모르는 새떼들 아직 하늘에 떠 있지찬란한 적막을 탐닉하던 붉은 노을이나무들의 귀를 당겨세상에는 없는 은유법으로 속삭이는 것을 보았지잎을 다 버린 나무들의 모세혈관이하늘에 탁본되고 있었지 (부분)잠자고 있다가 깨어나 “구름을 갈아엎어 씨를 뿌리”는, 즉 비를 내리게 하는 당신은 신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구름을 만들어 뿌리는 씨-비-는 세계에 신성을 스며들게 할 것이다. 신성이 스며든 세계에서는 ‘붉은 노을’이나 ‘나무들’ 등이 서로 “세상에는 없는 은유법으로 속삭”이고, 모든 존재자들이 서로를 비추며 ‘탁본’되는 관계에 놓이게 될 터, 그렇게 저 풍경은 신성-당신의 씨-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10
겨울산을 오른다가쁜 숨 몰아쉴 때마다하얀 안개가 핀다입을 다문 산꽃나무들흔들어 깨운다발걸음 옮길 때마다꽃 한 송이씩 피어낸다오를수록 더 흐드러지는 꽃밭능선엔 아직 꽃망울인데숨이 턱에 다다른 정상에서한꺼번에 개화하는 겨울꽃화르륵 불타오르는 화염에화상을 입은 채로하얗게 물든다시인은 산을 오르고 있다.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산은 어느 곳보다도 춥고 그곳의 바람은 거셀 것이다. 하지만 이 산의 꽃은 가장 추울 산의 정상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생명의 아름다움은 힘든 상황일수록 꽃망울로 피어난다. 그 꽃은 생명의 불꽃이 일구어내는 화염으로 뜨겁다. 꽃의 색깔이 하얀 것은 그 불꽃에 의해 화상을 입어서다. 겨울을 이겨내고 생명의 힘으로 스스로 불타오론 ‘겨울꽃’. 문학평론가
2022-07-07
메마른 영혼들을 위해마르지 않는 깊고 맑은 우물을 파는상이군인 한 사람을 보았다의탁할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쉼터가 되어주는 사람베트남 투이호아 전투에서부비트랩에 두 다리를 잡아먹히고나락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다는 사람그 덕택에마음 속 신비로운 통로를 보게 되었다고쑥스럽게 머리를 긁는 사람 (부분)위의 시의 상이군인은 “깊고 맑은 우물을 파”서 우리를 적셔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었지만, 그때 거의 죽을 상황에서 살아났다는 데에 더 의미를 두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신비로운 통로가 뚫릴 수 있었던 것. 그는 절망 속에서 삶의 신비를 경험하고는 희망을 얻게 된 자신의 체험을 “의탁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그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7-06
어머니에게 아름다운 끝이 무엇인가.완성으로 매듭지어졌으면 좋겠다.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 알 듯하다.어머니의 병상 명상은 과거와 미래의 성찰이리라.당신 완성을 위해 끝 간 데로 나아가는 어머니,미련을 지우고 매순간 완성의 마침표로 향하듯이말이 점차 없어져도 아름다운 당신을 위하여삶의 소중하고도 오랜 추억을 위하여어머니는 명상으로 아들에게 일깨우고 있으리라.길 위에서 그 뜻을 눈물로 느낀다.시인은 어머니의 속내로 난 길을 걷는다. 그 길은 어머니의 삶이 닦아놓은 개인적 역사일 것이다. 병상의 어머니는 “완성의 마침표로 향하”여 그 길을 걸으시고 있다. 어머니에게 그 행보란 명상을 의미할 터, 어머니가 명상-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은, 당신의 추억과 삶의 아름다움이 온전하게 매듭짓기 위해서다. 또한 그 매듭이 아들에게 삶의 길에 대해 무엇을 일깨울 수 있으리라고 어머니는 생각하셨으리라. 문학평론가
2022-07-05
아침이 녹는다밤새 더럽혀진 눈이 녹인다녹는다는 것은 검은 것의 미아,하얀 것은 검은 것이 지워버리는 미로,녹인다는 것은 눈과 눈 사이에 머무는 것이다‘검은 것’(밤)으로 ‘하얀 것’(아침)을 녹여버리면서, 즉 하얀 눈이 검게 더럽혀지면서 생기는 “눈과 눈 사이”(이 ‘눈’은 雪의 의미와 目의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에 머물며 사는 길이 있다. ‘검은 것’의 ‘미아’가 된 눈. 그러나 이때 하얀 것 안에 ‘미로’가 생겨난다. 더럽혀지는 눈과 지워지는 눈 사이에 생기는 이 ‘미로’는, “붉은 고기 덩어리처럼” 처절한 죽음의 밤에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 문학평론가
2022-07-04
나무라고 나직히 읊조리면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하는 짜릿한 전율남을 탐하지 않고도단지 빛과 수분만으로도 넉넉히 자라는엽록소그러면서도 나무라고 부르는 입술 속 타액까지나무라고 바라보는 두 눈의 눈물까지모조리 빨아들이는이. 중. 적. 식. 물. 성‘나무’라는 말을 “나직히 읊조”릴 때, 나무의 자연성이 몸으로 들어오고 몸은 전율을 느끼면서 자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무’라는 말을 하기 전에는, 저 자연은 수동적인 이미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말을 통해 나무(자연)는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인 성질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이 마술적인 말 ‘나무’는 바로 시를 비유할 터, 시는 자연을 능동적으로 변환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자연과 밀접히 접속시킨다. 문학평론가
2022-07-03
꽃을 여윈 나무들이연 초록으로 일어서면내 몸도 물이 오른다얼마나 허리둘레가 늘었니?눈 도장 찍는바람이 건네주는 그늘 아래잠시 앉아 볼 때목젖까지 그리움이 올라오고내가 할 일은누군가에게 숨통을 열어주는여름 숲으로 우거지는 것(부분)나무들의 연 초록은 이별한 꽃에 대한 그리움의 색이다. 시인은 이에 동화되어 “목젖까지 그리움이 올라”온다. 이때 시인은 나무가 그 초록으로 “여름 숲을 우거지”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무는 그리움의 초록으로 ‘일어서’서 “누군가에게 숨통을 열어”준다는 것. 시인은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울지라도, 나무들처럼 우거져 타인에게 숨통을 열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일은 바로 시 쓰기일 터이다. 문학평론가
2022-06-30
집으로 돌아올 때 가로등은 해가 지고 해가 뜰 때까지 혼자 점멸하지요 우린 이 생을 무사히 마칠까요 떠돌아다니다 죽고 미쳐죽는 그 일 말이지요 살아 한 순간 같은 거리에 놓인 적 없지만 그래도 한데 묶여있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건 집으로 돌아갈 때지요 꽃을 닮은 가로등이 당신 목뒤의 칩을 감지하지요 꽃잎이 활짝 펼쳐지면 집안으로 들어가고 밤새도록 꽃잎이 지켜보겠지요 그래도 당신은 뒤척이겠지만(부분)‘창조’의 동인이기도 했던 김명순 시인은 알다시피 시와 소설, 그리고 희곡도 썼던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신여성’이었다. 그녀는 불운한 삶을 살아야 했고 결국 가난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시인은 김명순 시인과 같은 불우한 운명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감지하면서, 동시에 그녀와 아름다움(꽃) 속에 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그녀에 대한 동병상련의 우정을 마음에 품는다. 문학평론가
2022-06-29
바람과 햇볕이 안부만 묻고 간폐가 앞마당에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단죄를 받고 있는 헤스터 같다해인지 홍시인지 잠시 착시를 느낀새 떼들이 붉은 살점을 먹기 위해육박전 공중전 지상전흙바닥에 잔여물까지흔적도 없는 허기란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단죄를 받는 것보다허기란 전쟁과 살인의 주범이라는 것(부분)‘폐가’는 인간 문명이 무너진 장소를 의미한다고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문명이 무너진 장소는 쓰레기장이 된다. 그런데 이곳에는 오직 홍시 하나가 “단죄를 받고 있는 헤스터”처럼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헤스터’는 ‘주홍글씨’의 주인공인 ‘간통녀’ 헤스터 프린을 지칭하는 것 같다. 홍시를 흔적도 없이 먹은 행위는, 영혼의 허기를 비난행위로 채우는 군중의 공격성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6-28
선운사 절문 앞에 늦도록 앉아 있었네꽃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다보고 있었네죽음이 이미 와 있는 방문 앞보다더 깊고 짙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꽃들동백을 홀로 바라본다는 일은,큰 산 하나 허물어져 내릴 만큼 고독한 일어쩌면 기억도 아득한 전생에서부터늑골 웅숭깊도록 나는 외로웠네꽃핀 숲보다 숲 그늘이 더 커 외로웠네하여 봄볕에 흰 낯을 그을리며 나는선운사 절문 앞에 한 오백 년 죽은 듯이 앉아동백이 피고 지는 소리를 다 듣고 말았네(부분)“죽음이 이미 와 있는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선운사 동백꽃들. 이 “동백을 홀로 바라본다는 일은” 시인 역시 동백과 함께 죽음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는 일, 하여 시인은 자신의 외로움이 “기억도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동백이 다 떨어진 동백숲이 “어떻게 마음을 정리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삶과 죽음의 숱한 과정들, 그 사랑과 고통의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한 순간 다 꿰뚫어보게 된 것. 문학평론가
2022-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