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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은 경이로운 과수원이며 강아지젖이다

등록일 2023-03-26 18:01 게재일 2023-03-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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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수

꽃다지와 냉이꽃이 납작 낮은 자리에서 피어날 때

흙은 까르르르르 웃는다

간지럽게 흙의 피부끼리 맞닿으면

피부를 뚫고 꿈틀거림이 돋거나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흙의 각질을 뚫고 아지랑이 손가락이 튀어나오고

푸른 색깔, 노란 색깔, 빨간 색깔이 자란다

(중략)

정신은 흙에 닿아서 사과꽃 자두꽃 과수원이 된다

젖을 빠는 강아지들의 혓바닥처럼

흙은 숭고하고 거룩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강아지젖이 된다 (부분)

 

시인은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에서 촉발된 사유로부터 시를 길어 올린다. 그러나 투박하지 않다. “흙의 각질을 뚫고 아지랑이 손가락이 튀어나오고”와 같은 이미지는 선명하고 세련됐다. 흙은 어머니처럼 시인의 정신에 “숭고하고 거룩한 액체”-젖-를 준다. 그의 정신은 “피부끼리 맞닿”은 이 흙을 통해 자라나고, “사과꽃 자두꽃 과수원이” 되는데, 그 꽃은 시를 의미할 테다. 흙의 숭고함을 다시 일깨우는 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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