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누웠던 누군가 황망히 떠난 새벽 한 때의 여관방 같은보도블록 위 십 원짜리십 원짜리를 주워 살그머니 제 주머니 속으로 들일 사람주머니는 참 따듯할 텐데붉은 담요를 두른 손이 있어 찬 등을 오래오래 쓸어 줄 텐데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기다림이 기다림의 잃어버린 모양을 문득 알아볼 때까지별수 없으니까바닥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보도블록 위 십 원짜리”는 시의 화자 자신의 현재를 말해준다. 그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려져서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존재로 전락했다고 느낀다. 이 느낌은 “곁에 누웠던 누군가 황망히 떠났을 때”의 치욕스러운 심경과 유사하다. 그러나 삶이 밑바닥에 놓여 있더라도 따뜻한 손을 기다리라는 시인의 전언에서 우울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손은 사랑의 손이자 연대의 손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2-10-23
진동음이 불길하게 울리면또 맞았구나울지 마, 내가 대신 울어줄 게살아남아야 해넌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고그런 밤에 나는 악몽을 꾼다건장한 사내가 끌고 가는큼지막한 자루가호수 속으로 가라앉는 꿈우리가 눈부시게 빛났던 시절너는 백마, 나는 흑마우린 죽어라 붙어 다녔지중앙극장을 나와 목척교 위에서추위에 덜덜 떨면서도우린 낄낄거리곤 했어지금 너는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피멍 든 몸에 붕대를 두르고밥상을 차린다치욕을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다(부분)말할 수도 없이 처참한 심경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가 그렇다. 시인은 그녀 대신 울어주고자 한다. 울음은 생존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대신 울어주는 것, 그것이 시 아닐까. 하여 이 ‘시-울음’으로 어떤 연대가 이루어진다. ‘나’ 역시 “피멍 든 몸에 붕대를 두”른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것, 치욕을 함께 삼키면서 ‘너’와 ‘나’ 사이에 자매애가 형성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20
그들도 우리와 같을까?아홉 명의 병사들이 택시를 세우고형의 피로 창문에 적었다: 우리는 제3부대 소속이다.우리는 사자(死者)를 방관하고 토요일의 예식을 위해 그의 생명을 앗았도다!우리 아버지에게 초콜릿 바구니를 선사했던 그 상인은초겨울엔 살해자로 일하고 있다.그들도 우리와 같을까?맞다, 다만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지금 차가운 호텔 객실 바닥에서 일어나외친다: 그들이 우리 친구들의 시체를 영안실에서 훔쳐어떤 사자들을 위한 여분의 장기(臟器)로 팔아치웠다.살해자가 되기 위하여 (부분)팔레스타인 시인 티리크 알 아라비의 위의 시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동포가 죽임을 당하고 있는 현실을 증언하고 강렬하게 고발한다. 그들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의 신체마저 도둑질 당한 죽은 자들은 “객실 바닥에서 일어나” 영안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외치면서 고발한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인이란 죽은 자들의 이러한 비통한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자이며, 그 외침을 산 자에게 전달하는 자이다. 문학평론가
2022-10-19
경찰 조사실에서도, 법정에서도직업을 물으면 ‘시인’이라고 답한다.그러면 꼭 다시 물어본다.그러고는 “아…” 하고, 복잡미묘한 표정.주머니 속에 감춰 둔은사시나무잎 삐라를 만지작거린다.수첩에는 바랭이풀과 엉겅퀴를 이용한사제폭탄 제조법, 아직은 실험 단계임.심문관이 무슨 생각을 하든,스스로 더 당당하려면진짜 시를 열심히 써야 하는데사발통문 같은 오월의하늘을 올려다보면다른 건 다 시시하다.다만 시적으로 살다가시적으로 죽고 싶을 뿐.(부분)변홍철 시인은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밀양과 청도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투쟁했던 이다. 그에게 ‘시인’은 투쟁하는 자이며, ‘시적인 것’은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저항에서 발현된다. 그의 투쟁의 무기는 ‘은사시나무잎 삐라’와 ‘바랭이풀과 엉겅퀴’로 만든 ‘사제폭탄’, 즉 시다. 풀들로 이루어진 시는 ‘오월의 하늘’처럼 저항을 촉구하는 ‘사발통문’이 되어 시적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문학평론가
2022-10-18
외진 골목밤 세시의 가로등은 나의 눈이다폐품은 항상 어두운 곳에 버려진다언제나 어둠을 밝히는 건 가로등이다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어설픈 시간세상이 외면한 곳에서세상이 외면한 것들끼리의 만남폐품이 있는 곳으로 다가서는또 하나의 폐품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불빛을 향한나만의 시간은 깊어간다쓰레기가 모여 있는 저 뒷골목에서 시인은 시가 거주해야 할 장소를 발견한다. 뒷골목에 버려진 폐품과의 만남을 통해, 시인은 자신 역시 “또 하나의 폐품”임을 인식하면서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불빛을 향해” 이끌리는 것인데, 그 ‘불빛’이란 바로 시다. 그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적 인식을 성취함으로써 시를 쓰는 ‘나만의 시간’을 심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17
작은 몸이 힘에 겨워 쇠똥에매달려 가는 것 같네문득 멈추어 달빛을 골똘히 들여다보네달빛 아래서만 제 길을 찾는두 눈이 반짝이네마치 달빛 문장을 읽는 것 같이 보이네무슨 구절일까 밑줄 파랗게 그어가며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네갑옷 속의 붉은 심장이 팔딱팔딱 뛰네어느 날 내게 보여준 네 마음에밑줄 그으며 몇 번씩 읽어내려 가던눈부신 순간이 생각났네맑은 바람 한 줄기가 쇠똥구리몸 식혀주네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한 채 밀고 가네(부분)달빛이 새겨놓은 무늬에서 문장을 발견하고 이를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는 쇠똥구리 한 마리에서 시인은 참다운 삶의 자세를 본다. 쇠똥구리가 ‘달빛 문장’을 읽는 이유는 “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 한 채”인 “무거운 쇠똥”을 밀고 갈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어둠에 갇힌 세계에서 빛을 찾아내고 이로부터 갈 길을 발견하면서 쇠똥구리는 자신이 살 집을 유지시킨다. 이 모습이 시인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문학평론가
2022-10-16
고장난 기계를 분해하다뒹구는 쇠구슬을 본다아주 작은, 사랑의 최초 형식인알(卵) 같은 눈동자를 본다돌아갈 때나 멈추었을 때나혹은 해체되어 이렇게 나뒹굴 때도눈감지 못하는 눈동자를 가진기름에 흠뻑 젖은 기름공주지금 누군가 불안하다면그대 망가져서 반짝이는눈빛은 무엇인가실패한 사랑도 삶이 아니냐사랑이 쉽진 않더라(부분)기계와 맞물려 부속품으로 기능하던 노동자의 삶을, 시인은 기계를 새로이 인식하고 노동자와 기계가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함으로써 주체적인 것으로 전화시킨다. 새로이 명명된 이 기계는 시인에게 무감각하게 소외된 물체가 아니다. 시인은 노동자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기계를, ‘고장난 기계’의 작은 쇠구슬에서 눈동자를 보는 상상력을 통해 같이 살아가는 대상으로, 나아가 사랑하는 무엇으로 인식한다. 문학평론가
2022-10-13
까치가 운다느티나무 잔가지에 앉아나무는 울음에 맞춰 몸 흔든다울음이 가지를 누르면 하늘이 올라간다울음을 먹고 자라는 이파리까치의 울음은나무가 살아가는 힘이다자신의 곁-‘잔가지’-에 앉은 까치의 울음으로부터 살아가는 힘을 얻는 느티나무. 이는 ‘클리셰’라고도 하겠지만 세계의 존재자들이 삶을 살아가는 양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존재자들은 사물의 울음들을 먹으며 자라나며 그 “울음에 맞춰 몸 흔”들며 살아나가는 것, 이 몸 흔들기가 시인의 입장에서는 시 쓰기가 될 것인데, 그것은 “울음이 가지를 누르”자 올라가는 하늘을 향하여 비상하고자 하는 염원을 표현한다. 문학평론가
2022-10-12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도 있지만그냥 그래도고여 있는 울음이 있다놀러온 인간들이 다 꺼내 마시고웃고 떠들다 만취할 때까지쏟아지지 않고그저 자리만 옮기는 울음내 안에서 네 안으로그것은 옮겨간다역의 대합실에서잠든 밤 기차로 옮겨가는 여행자처럼끝내 고요한 울음이 있다늘 수평하고초지일관이므로누구도 그에 대해 뭐라 하지 못하고지나갈 땐 그 앞에서 예를 갖춘다울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 시는, 흔한 감상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슬픔의 어떤 면을 드러내면서 독자에게 묘한 감동을 준다. 시인이 주목하는 ‘울음’은 “쏟아지지 않고” “고여 있”다. 그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울음이 아니다. 도리어 울음 자체가 ‘여행자처럼’ “내 안에서 네 안으로” 자리를 옮겨 다닌다. 그 ‘초지일관’한 울음과 만나면 우리는 예를 갖추게 된다. 울음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 문학평론가
2022-10-11
촛불도 없이 어떤 기적도 생각할 수 없이나는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그때 난 춥고 가난하였다 연신 파랗게 언 손을 비비느라경건하게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었다그런데 얼마나 손을 비비고 있었을까그때 정말 기적처럼 감싸쥔촛불이 켜졌다주위에서 누가 그걸 보았다면, 여전히 내 손은 비어 있고 어둡게 보였겠지만젊은 날, 그때 내가 제단에바칠 수 있던 건오직 그 헐벗음뿐, 어느새 내 팔도훌륭한 양초로 변해 있었다나는 무릎을 끓고 어두운 제단 앞으로 나아갔다어깨에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거운 촛대를 얹고시의 화자는 “손을 모으고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그래서 촛불도 없는 제단이지만 그 앞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아마 빛과 열을 달라고 할 그 기도는 화자도 놀랄 만큼 기적처럼 이루어진다. 그 기적이란 화자 자신이 촛불이 되어버림으로써 달성되는 것. 갈망이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그것은 갈망하는 이의 존재를 변이시켜 갈망을 이루게 한다. 기적을 만드는 갈망. 문학평론가
2022-10-10
북녘이든 남녘이든그래 맞다일만 하다 떠나가는 곳이니라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너를 보게 될까 하여오래도록 기다렸다세상은 일만 하다 떠나가는 곳얘야 날아다니는 혼이 되어이곳에서나 다시 보자다시 만나자야, 38선 없애버리고 오너라. (부분)‘38선’을 없애는 주체는 역사와 체제에 희생당한, 일만하며 살다가 죽는 이들이어야 한다고 시인은 북에 계셨던 어머니의 입을 빌어 말한다. 분단은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민초들에게 가장 아픈 것이었으며, 분단 이후 남북은 그들에게 일만 시키는 세상이었다. 시인은 이젠 저승에 계신 어머니와 혼이 되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열망을 표현하면서, 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해두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10-06
아이는 한 손으로 젖을 움켜쥐고넓은 들에서 하늘로 무너지는강을 보고 있다강에는 강물이 흐르고물 속에서 날개가 젖지 않은새 한 마리가강을 건너가고 있다(부분)위의 시에는 강을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과 그 아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교차된다. 아이의 시선에 의해 비추어진 대상은 뒤의 연에서 묘사되고 있으며, 시적 화자의 눈에 포착된 강을 바라보는 아이는 앞 연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런 묘사의 교차 속에 놓여 있는 “하늘로 무너지는/강”이나 “물 속에서 날개가 젖지 않은”이란 모순적 표현은 착란의 느낌을 준다. 시인은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림으로 표현될 수 없는 독특한 언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10-05
심연에 내려가려면,날개가 있어야 하리(중략)심연을 잃고물 밖에 떨어진 잎사귀그게 나다.도망은 끝난 지 오래다물을 움켜쥘 어떤 발톱도가지고 있지 못하기에심연 속에가득한 날개가모래와 자갈을 헤치며물 속을 뒤엎을 때,흐린 잎맥의 기억으로폭풍을 예감할 뿐 (부분)시인은 비록 “심연을 잃”었지만, 심연과의 끈을 “흐린 잎맥의 기억”으로 놓치지 않으면서 심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심연은 우리의 일상적 시간성의 선을 끊어버리며 저 깊이 검게 자리를 차지한 공간이다(그러나 외연을 짐작할 수 없어 공간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러한 심연에 감히 들어간 ‘날개’가 그 속의 물을 “뒤엎을 때”, 시인은 어떤 폭풍의 시간이 오게 될 것이라고 영매처럼 알려준다. 문학평론가
2022-10-04
아내가 다녀갔다베란다 빨래줄에 매달려 있는양말과 철 지난 옷들이 증거다(중략)흙갈이를 하지 않아 돌멩이보다 단단하게 굳은검은 흙덩이가벌써 여러 해 전에 죽은 고목나무와 함께 말라가고 있다아내는 눈물이 많은 여자다말라 가는 빨래의 소매에서아직도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빈 항아리의 주둥이를 적시고 있다세상이 한증막 같다는죽은 아내의 목소리가햇볕에 달구어진 붉은 항아리에서거미와 함께 올라온다(부분)시적 화자는 빨래에서 죽은 아내를 생각할 만큼 그리움에 사무쳐 있다. 그는 그리움에 지쳐, 고목나무처럼 이미 죽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 많은 아내에 대한 기억은 그 말라버린(빈) 항아리의 주둥이를 적셔준다. 하나 아내와의 상상적인 만남이 아내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게 할 터, 더욱 절절한 그리움의 심정에 그를 빠뜨려 그가 홀로 한여름의 뜨거운 적막 속에 던져져 있음을 아프게 깨닫게 만든다. 문학평론가
2022-10-03
강화에 와서 눈 덮인 벌판을 바라본다간이역도 없는 마을에웬일로 텅 빈 기차는 어둑하게벌판을 달려가고그때마다 길은 다시 끊기고,나는 지나간 밤 여인숙 방에서 치던낯선 여자와의 그 서툴던 화투판을생각한다나에게 집이 있었던가,돌아보면 희미한 풍경으로남아 있는 먼 데 마을몇 채의 집들눈벌판이 끝나는 곳에서는 또 갯벌이,염하(鹽河)마저 얼고 있을 것이다“텅 빈 기차”라는 이미지는 텅 빈 마을과 공명하면서 삶의 허허로움을 애잔하게 느끼게 한다. 삶은 이 외진 곳에서 무엇인가를 채우지 못한 채 텅 빈 기차처럼 지나가고 있다. 이 허허로움에 맞닥뜨리게 되면 삶의 목적-길-은 끊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터, 자신이 떠나왔던 집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는 것은 “몇 채의 집들”만 “희미한 풍경”일 뿐, 이제 시인은 “나에게 집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문학평론가
2022-09-29
서귀포에서는 누구나 섬이 된다.섭섬, 문섬, 범섬이 새섬 같은 섬이사람의 배후여서세연교 난간에 한 컷의 생을 걸어놓은 사랑은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된다.서귀포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묻는다.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길 위에 서서 여기가 폭포냐고,서 있는 곳을 묻는다.당신이 서 있는 거기서부터 서귀포는언제나 서쪽이다. (부분)“언제나 서쪽”에 있는 서귀포는 죽음과 연결된 장소일 것이다. 그곳에서 “생을 걸어놓은 사랑”이 “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서귀포에서의 사랑은 일몰, 즉 죽음을 통과하면서 타인-다른 섬-에게로 건너갈 수 있다. 서귀포는 사람들을 섬으로 만드는 동시에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는 일몰에 빠뜨리기 때문에, 누구라도 “길 위에 서서” 길을 묻게 되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묻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2-09-28
피아노에 앉은여자의 두 손에서는끊임없이열 마리씩스무 마리씩신선한 물고기가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쏟아진다.나는 바다로 가서가장 신나게 시퍼런파도의 칼날 하나를집어 들었다.시인은 ‘여자’의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의 놀림과 이에 따라 연주되어 나오는 선율의 어우러짐을 햇빛을 받으며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빛의 꼬리”라고 표현한다. 그 파닥거리는 ‘꼬리’는 연주하고 있는 음악과 함께 고동치며 흐르고 있을 여자의 싱싱하고 약동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면적·내면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는 음악은 ‘나’를 눈부신 푸른 바다로 이끈다. 건반을 누르는 저 여자의 손가락은 시인의 마음 역시 누르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9-27
왜 여기서만 만날까누가 우리를 풀었나나는 탐지견경수로 안의 실험용 쥐살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날려 보낸 새(중략)위험한데 비명을 지르지 않아서여기가 아니라고 울부짖지 않아서우리가 터지지 않아따라오던 아이들이 다 죽은 날우리의 인내는 협상이 되고상호 거래를 위해 은밀히조직된 대원들이 선두에 섰다남다르다는 건 무슨 말일까 (부분)시인에 따르면 이 시대의 전위가 할 일은 “살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날려 보낸 새”처럼 위험을 선취하여 경고음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전위는 “여기가 아니라고 울부짖”으면서 폭탄처럼 터져야 했지만, 우리 시대엔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시인의 진단이다. 결국 전위는 상호 거래하기 위해 ‘선두에’ 서 있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는 것, 전위가 되고자 했던 세대의 자기반성을 보여주는 시로 읽힌다. 문학평론가
2022-09-26
나는 칼이다. 나의 말로 인해 당신은 패대기쳐진 심장이다.(중략) “정확”하게 비뚤고, 서툴게 “정직”한 나는 당신을 내장처럼 벗겨 버린다.폭죽처럼 터지고, 권투 글러브처럼 터지고, 고름처럼 터지는, 관계.그것이 나와 당신의 관계다.소통은 소통하지 않기 위해 소통한다.관계는 관계하지 않기 위해 관계한다.없는 당신의 세계에서 나는 시인이다.(* 위의 글은 시가 아니라 ‘칼로’라는 산문의 일부이다.하지만 시라고 해도 손색없는 문장이라고 생각되어 옮겨왔다.)위의 글에서 ‘당신’은 독자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시인의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읽으면, 시적 자아는 자신의 다른 자아를 “내장처럼 벗겨 버”리기 위해 정확하게 비뚤고 서툴게 정직한 말을 발화한다고 하겠다. 하여 시적 자아는 자신의 껍질을 벗겨버리는 ‘칼’이 된다. 그렇게 ‘당신-나’를 고문하는 ‘칼’은 ‘당신-나’에 대해 “소통하지 않기 위해 소통”하면서 엄격한 시적 자세를 갖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9-25
산에서 내려와서아파트촌 벤치에 앉아한 조각 남아 있는 육포 안주로맥주 한 병을 마시고지하철을 타러 가는데아 행복하다!나도 모르겠다불행중 다행일지행복감은 늘 기습적으로밑도끝도 없이 와서그 순간은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하면서그 순간은시간의 궁핍을 치유하는 것이다. (부분)맥주 한 병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러 갈 때 ‘기습적으로’ 밀려드는 행복감. 우리는 이러한 삶의 환희를 알게모르게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시인에 따르면, 바로 그 순간이 “우주를 온통 한 깃털로 피어나게” 한다. “시간의 궁핍”-시간에 사로잡힌 삶-을 치유하는 것은 바로 그처럼 기습적으로 밀려드는 행복감이다. 이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에서 우리 장삼이사들은 온 우주의 존재에 가볍고 즐겁게 동참하게 되기에. 문학평론가
202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