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同山은오순도순 가깝게 지내는 넋들이저마다 더운 가슴으로 저를 덮는 山.흰 옷깃 적신 사람들 다 돌아간 뒤에무덤들끼리 둘러앉아 이 세상 굽어보며나직나직 이야기하는 山.드디어 와야 할 것을 미리 알고도억새풀 흔드는 바람에게나 귀띔해줄 뿐눈 비비며 드러눕는 山.고요한 山, 넉넉한 山숨을 죽이고 광주를 지켜보는 山.공동산은 달빛에 젖어서슬픔으로 저를 번뜩이는 山.‘공동산(共同山)’이란 마을 공동묘지가 있는 산이다. 이곳에는 죽임을 당한 자들의 넋들이 “오순도순 가깝게 지내”며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공동산’에 묻힌 주검들은 바로 1980년 군부에 의해 살육당한 자들의 시신일 터, 이 산은 “숨을 죽이고 광주를 지켜보”고 있다. 살육된 자들의 넋들이 “저마다 더운 가슴으로 저를 덮는” 이 마을이야말로 이성부 시인에게는 80년 이후의 “시가 사는 마을”이다. 문학평론가
2022-05-26
귀를 기울여봐요가슴 깊이 오열하는 설움을 안고살짝 전하고 싶은슬픈 얘기가 있어요칼리포르늄에 쓰러져가는만 마리도 넘는 물개들리튬으로 질식해멀어져 가는 바닷새 목소리목청 높여떠들어대지 않아도속삭이고 싶은 사연이 있어요(부분)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흙탕물에 묻혀있던 저 안쪽 깊숙한 곳에서 떠오르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 속삭이는 소리들은 “살짝 전하고 싶은/슬픈”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침식당하고 살해당한 자연의 목소리, 물개나 바닷새의 울음소리다. 시인은 저 고통 받는 것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묻혀 있고 가려져 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하자고 말한다. 그 발견은 새로운 삶으로의 길을 비추기 시작하기에…. 문학평론가
2022-05-25
옆집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 같다. 옆집에서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 같다.우리는 늙었으니까 잘못 들을 수 있다.우리는 젊으므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우리는 그의 옆집에서 그의 발소리를 숨죽여 기다린다.급기야 시인들은 서로를 몽둥이로 때리며 점점 분명해지는 옆집의 소리를 외면한다.우리는 계속해서 늙었다.옆집은 그대로다.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남은 음식이 뒤섞인 그릇을 오늘 자 신문으로 덮는다.악마의 행복도 이렇게 치밀하지 못했다. (부분)‘우리’는 “잘못 들을 수 있다”거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핑계를 들어, 옆집에서 살인이 벌어져도 그 비명 소리를 외면하며 살아간다. 세계로 의식과 몸을 열려고 하지 않는 우리들. 세계의 사건들이 펼쳐져 있을 신문지는 남은 중국 음식을 덮는 데 사용될 뿐이다. 이 ‘우리’란 시인들을 지칭하는데, 이를 볼 때 위의 시는 세계의 폭력과 비참을 외면하는 한국의 일부 시 경향을 비판하고자 하는 듯하다. 문학평론가
2022-05-24
네 꿈의 한복판네 온몸의 피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그곳에서 나는 눈을 뜰래네 살갗 및 장미꽃다발그 속에서 바짝 마른 눈알을 치켜 뜰래네 안의 그 여자가 너를 생각하면서아픈 아코디언을 주름지게 할래아코디언 주름 속마다 빨간 물고기들이 딸국질하게 할래너무 위태로워 오히려 찬란한빨간 피톨의 시간이 터지게 할래네 꿈의 한복판네 온몸의 숨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그곳의 붉은 파도 자락을 놓지 않을래내 밖의 네 안, 그곳에서 영원히돌아오지 못할래“네 꿈의 한복판”에, 즉 너의 몸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살갗 및 장미꽃다발”-에 존재하고 싶은 욕망. 그것은 ‘너’의 숨결이 만드는 “붉은 파도 자락”-“아코디언 주름”-을 붙잡고 싶은 욕망이다. 이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사랑에 대한 욕망은 “빨간 피톨”이 터지는 흥분의 ‘시간’을 요구하면서, ‘피-장미꽃-빨간 물고기-빨간 피톨-붉은 파도’로 흐르는 붉은 색의 이미지를 통해 시 전체를 관능적으로 채색한다. 문학평론가
2022-05-23
가슴 안의 치미는 불덩이꺼지지 않게내 옛사랑 옛사랑 툭툭 분질러던지는 것이니내 옛사랑 옛사랑 따라온저 바람의 날개짓으로자꾸 불타오르는 것이니중심에 오직 하나그 밖에도 오직 하나심장마저 깡그리 깡그리 빛으로 드는 것이니달려온 빛의 등을 빌어 타고그 안으로 안으로 날아가꽂히는 것이니활활 빛을 살라불이 되는 것이니시인은 격정으로 타올랐던 과거의 삶이 지금도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는 가슴 속 불덩이를 꺼뜨리지 않도록, 예전에 타올랐던 옛사랑에 대한 기억을 땔감 삼아 불을 놓는다. 그러자 사랑으로 벅차게 뛰었던 옛 심장이 불타오르며 빛이 되어 현재에 도달하고, 이로써 과거의 심장은 현재에 재생된다. 이렇듯 들끓었던 격정을 되살리기 위해 백지 위에 과거라는 땔감을 넣어 불을 피우는 것, 이것이 시 쓰기다. 문학평론가
2022-05-22
새지 않으면 소리가 되지 않는다 음악이 되지 않는다 노래가 되지 않는다 구멍으로 새어야 소리가 된다 막히면 끝장이다 한 소식도 들을 수 없다 새는 게 상책이다 새지 않으면 사랑도 되지 않는다 몸을 만들지 못한다 새끼를 만들지도 못한다 막히면 끝장이다 새는 게 上策이다 달도 뜨지 않는 그런 여자 하나가 바다가 출렁대지도 않는 그런 여자 하나가 오지도 않는 보름사리 때를 부르며 슬피 울고 간다 새는 게 上策이다샐 수 있는 구멍이 있어야 소리가, 노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구멍이 없으면 사랑도, 몸도, 새끼도 만들어낼 수 없다. 이 구멍은 온 몸이 뚫려 있어 세상을 다 빨아들일 수 있는 황홀한 상처인 꽃과 같을 것, 그것은 또한 ‘새끼’를 낳는 여자의 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 쓰기란 자신의 몸에 여자의 음문을 파고는, 그 음문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어나가게 하여 ‘새끼’를 낳는 작업, ‘여자 되기’의 작업이다. 문학평론가
2022-05-19
가스레인지 위에 눌어붙은 찌개국물을 자기 일처럼 깨끗이 닦아줄 사람은언제나처럼 단 한 사람어젯날에도 그랬고 내일날에도 역시 그럴너라는 나, 한 사람우리 지구에는 수십 억 인구가 산다는데단 한 사람인 그는그 나는별일까진흙일까(부분)‘내’가 ‘단 한 사람’이라는 발견, 그 발견은 찌개국물을 닦는 나의 육체 활동으로부터 이루어진다. ‘너’는 나의 육체이다. 이 육체의 지속성이 ‘나’라는 ‘단 한 사람’을 구성할 수 있는 지반이다. 나아가 시인은 묻는다. 이 육체는 어떤 물질인가? 별인가 진흙인가? 이 물음은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도 있겠다. 삶의 본질은 단독자의 존재로부터의 승화에 있는가, 단독자로서 타인과 뒤섞이는 이 지상의 현실에 있는가? 문학평론가
2022-05-18
허파 가득 햇빛 꽉 채운 물고기가 있었어 냄새나는 쥐오줌 얼룩과 미끈거리는 물이끼 수족관 떠나 넓고 푸른 하늘로 가고 싶어 지느러미 대신 새의 날개 꿈꾸었지 부족한 산소 때문에 석회질 같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폐를 위로하며 허옇게 배 뒤집혀 죽어나간 영혼의 물고기 떼 뜯어먹었어 인공의 산소방울 대신 새털구름 마시며 살고 싶은 그는 어느 날 이스트 넣은 빵처럼 부풀어 올라 내장이 터져버렸지 상처를 숨기는 건 마음먹은 것만큼 쉽지 않았어수족관 속이라는 극단적으로 폐쇄된 상황은 병동을 연상시킨다. 화자는 “새털구름 마시며 살고 싶”다는 희망을 이루지 못하고, 반대로 이곳에서 “인공의 산소방울”을 마시면서 “내장이 터져버”리고 만다. 상처는 ‘내장’에 숨겨왔던 무엇이다. 하나 터져버린 내장 때문에 이제 상처는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상처는 상처 입은 자의 환원될 수 없는 고통, 그만이 겪었을 고통의 삶 자체를 드러낸다. 마치 위의 시처럼. 문학평론가
2022-05-17
뜨거운 김을 쐬고 퇴근 무렵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내 얼굴에 붉은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이미 죽음 직전의 표정을 연습하고 있다. 나는 두통을 이기기 위해 투구를 쓴다. 도도한 웃음을 연습한다. 열기를 보았다. 빛이 열기 속에서 반짝반짝 드러났다. 시장(市場)이다. 죽음의 얼굴을 파는 시장이다. 뜨거운 빛 속이다. (부분)도시를 상징화 하는 ‘황하’는 또한 시장이기도 하다. 시장의 “사람들은 이미 죽음 직전의 표정을 연습”하며, 시인 역시 투구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도도한 웃음을 연습”한다. 이들이 상대방을 공격적인 눈빛-이 “뜨거운 빛”이 ‘황하-사막’의 열기를 만든다-으로 바라보며 짓는 웃음이란 시장에 팔리기 위한 웃음, 즉 진실한 삶을 죽이는 웃음이다. 시인은 이 죽은 표정들의 흐름을 ‘붉은 물줄기’로 상징화한다. 문학평론가
2022-05-16
넌 몸 돌려 날 돌아보았다.난 너를 새벽 종소리 같은 목소리로불렀기에.황혼이 깃들었을 때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를타이르는 목소리로 불렀기에.난 나를아침 이슬과저녁때 지는 해와저 하늘의 저 양초와눈물 한 방울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거미집 같이 휘날려버리는 바람을 타이르는 소리로 불렀기에…넌 몸 돌려 날 보았다.당장 포플러나무의 솜털이 날라 와나의 손바닥과 너의 손바닥에 하얀 구름으로 앉았다.지금 삶의 황혼에 서 있는 시인은 떨어지고 있는 잎사귀를, 즉 소멸로 다가가는 삶을 타이르듯이 부른다. 그러자 다시 열린 새벽이 시적인 시공간을 열고, 손바닥에 날아온 솜털이 하얀 구름이 되는 시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 구름에는 시인-의 삶을 형성했던 고유한 시간들-“아침 이슬”, “지는 해”, “양초”, “눈물 한 방울”, “어린 시절의 추억” 등-이 담겨 있다.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사건이다. 문학평론가
2022-05-15
넓은 들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비가 한바탕 쏟아지자사람이 어디서 나타났다.그 사람이 뛰어 갔다.참 조용하다.미루나무는 서 있을 테지만어디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뛰어간 사람이 여자였을까한 행으로 이루어진 1연이 시의 나머지 부분과는 외따로 떨어져 있다. “넓은 들판에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처럼. 그로써 고독하게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이 도드라진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고 여인일지 모르는 사람이 뛰어간다. 하지만 나무는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고 다만 “뛰어간 사람이 여자였을까”라고 중얼거릴 뿐이다. 저 홀로 서 있는 나무가 세상을 뜨신 시인 자신임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저 중얼거림이 슬픔을 자아낸다. 그 중얼거림에는 버리지 못하는 그리움이 묻어 있기에 그렇다. 문학평론가
2022-05-12
국가와 국가 사이에 시푸른 바다가 있다넘실대는 물결을 태양이 바라보고 있다물길을 가르며 정어리 떼가 태평양으로 가고 있다정어리 떼를 천천히 뜯어먹으려상어가 이빨을 빛내고 있다조국은 숱한 장벽으로 나뉘어졌고유배지는 통째로 절벽인데버림받음과 버림받음 사이에 바다가 있다바다는 폭발점을 품은 채적도 쪽으로 흐르고 있다국가가 태어나기 이전에이념보다 더 깊은 곳에이름을 가지지 않은 심해가 있다‘경계-장벽’은 삶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겠지만, “통째로 절벽”인 “유배지”로 버림받은 사람들 사이에는 바다가 존재한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있는 “시푸른 바다”. 정어리 떼와 그 정어리를 뜯어먹으려는 상어가 함께 돌아다니고 있는 그 바다는 “적도 쪽으로”, 즉 “폭발점”인 0도를 향해 흐른다. 그 바다 속 깊은 곳에는 국가의 장벽을 폭파시키고 유배지를 범람하게 할 수 있는 어떤 힘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5-11
등을 돌린 사람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준 벽지는등을 기대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흔한 아픔들을조용히 보았을 터이다들이닥치는 도배장이들처럼이별은 예상보다 성큼 온다한껏 누추한 표정으로잠시라도 바라보아주기를 바라는 벽지는이내 덮인다상처가 아물듯벽지의 한 생이 묻힌다.(부분)도배장이인 시인의 눈에 저 벽지가 시적인 의미를 띠는 것은, 그 벽지 자신이 “등을 돌린 사람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면서 숱한 삶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벽지에 시대의 흐름에 파묻혀 사라져야 하는 소외된 삶이 어른거리고 있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포착한다. 하여, 이 고통의 흔적 위에 새 벽지를 도배하여 “벽지의 한 생”을 묻음으로써 상처를 아물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5-10
우리가 어디론가 스며드는 일은조금은 비굴하게 흘러드는 일이고밤 불빛처럼 적요하게단단한 씨 하나로 뒤척이며 그럴수록 응고되는 것말없이 흘러온 길마다외투를 벗듯 쉽게 허물을 벗었나, 지금쯤똬리는 空을 품은 듯 틀었겠나, 겨울 길늦은 밤 희부연 차창처럼더듬이 하나 없이 견뎌온 길들남은 이파리 하나마저 털고자 호흡처럼 수천 번을긴 혓바닥 내민 채로 굳었지만그 바람소리를 깨우는 겨울나무 가지여(부분)생존의 압박으로 굴욕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들-우리’의 삶. 위의 시에 따르면, 그 ‘우리’는 “어디론가 스며”들어야 하기에 세상 속으로 “조금은 비굴하게 흘러”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밤 불빛처럼 적요”하나마 “단단한 씨 하나”를 가지고 흘러들었기에, 비록 세상 속에서 뒤척이기는 하지만 세상 속에 용해되지는 않는다. 도리어 어떤 ‘멍울진 옹이’처럼 응고된 무엇-‘허물’-을 흘러왔던 길마다 남긴다. 문학평론가
2022-05-09
쓸어 담을 것과 남겨야 할 것의 구분도 잊은 채모든 것을 쓰레기차 톱니바퀴가 집어삼킨다지나온 바퀴자국을 쓸어 담기도 모자란 시간,떼어먹은 임금 돌려달라고 거리서명을 받으며스쳐 가는 바람같은 무심한 희망일지라도너무나 인간적으로 잡아보는 숨결들우리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어찌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공단이 주는 옐로카드를 면하기 위해가장 더러운 몸이 되어야 할 때, 지금 들에 핀땀꽃은 더 이상 아침길 위에서발에 모터를 달고 달리지 않는다(부분)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쓰레기차 톱니바퀴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태를 상징한다. 우리가 살아온 고유한 시간들이 톱니바퀴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리는 한국 사회. 하나 시인은 인성을 파괴하는 이 사회 체제에서도 인간적인 것이 살아 있음을 해고 노동자에서 찾아낸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 노동자의 말은 “무심한 희망일지라도” 인간적인 ‘숨결’의 표현이며, 이 시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5-08
어깨 옆에 어깨 옆에 어깨 옆에 어깨를 걸치고 빈틈없이 깍지낀풀들의 머리에 납가루 폭탄이몽땅 구멍을 냈다납가루는 풀의 심장으로스물스물 기어들어가 석고처럼 굳은납가루 심장을 만들어냈다얼굴이 납빛으로 파리해진 풀잎들순식간에 살이 다 녹아내려헐거워진 몸으로 눈을 감는다그날땅에 있는 풀밭은 모오두우구멍이 뚫려 눈감은 풀의 머리가땅 밑으로 쓰러졌다땅은 벌집 같은 구멍투성이가 되었다.(부분)죽음의 이미지가 주조로 되어 있는 위의 시는 묵시적인 암울함으로 덮여 있다고까지 할 수 있겠다. 현대 물질문명의 생태 살육행위는 전쟁에서의 살육행위에 비유되는데, ‘납가루 폭탄’이 어떻게 풀들을 죽이는가가 섬뜩하게 그려진다. 풀들을 죽은 육체로 점점 변화시키고 있는 납. 풀들이 구멍이 뚫려 쓰러지는 모습은 참혹하다. 이러한 상상적 묘사는 환경 파괴의 가공할 잔인성을 더 리얼하게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2022-05-05
저 홀로 직선으로 허공을 오르지 못하자등나무는 그 푸른 힘을 밑으로 내려 퍼뜨린다.저 홀로 땅 속에 곡선으로 휘어 뻗은 뿌리는팔방으로 이리저리 퍼져나가다가불쑥불쑥 밭고랑에 새 가지를 돋아올린다.새 가지는 새순 내어 사방팔방을 더듬어보다가휘감을 나무가 없으면 구불구불 엎드린다.(부분)하늘로 오르려 했던 사람이 결국 오르지 못했을 때 얻게 되는 이미지가 이 휘어지고 엎드리는 나무 아닐까. 더이상 하늘로 오르지 못하면 반대로 삶의 힘을 밑으로 내려 지상에 퍼뜨림으로써 삶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다. 이 휘어진 등나무는 장년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이미지겠지만 노쇠의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 낮은 곳인 ‘밭고랑’에 나무는 “새 가지를 돋아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2-05-03
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설화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배꼽이 없다그러니 탯줄 없는 남자들을 무슨 수로 잡아매나밤하늘엔 연줄 끊어진 연들처럼 별들이 떠돌고우리집 나그네,라는 우리 친척 여자들의 말 속에는모계사회의 전통가옥과 거미줄과 삐걱거리는 툇마루뿐(중략)배꼽이 없는,그래서 세상에 아무 인연도 까닭도 없이엄마는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피똥 싸듯 나를 낳았다어서어서 자라서 훨훨 날아가라고 서둘러날개옷 같은 하얀 배냇옷 한 벌을 지어놓았다서른일곱에 정착도 못하고 나는 지금도 어딜 싸돌아다닌다“우리 집안 남자들은” 난생이어서 탯줄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싸돌아다니며 사는 운명을 갖는다. ‘엄마’가 “피똥 싸듯” 낳은 ‘나’는 운명적으로 “연줄 끊어진 연들처럼” 떠돌아야 한다. “세상에 아무 인연도 까닭도 없이” 태어난 ‘나’도 새처럼 날아다녀야 하는 운명, ‘배냇옷’ 자체가 날개와 같았다고. 이 새는 비상(飛翔)과 해방의 이미지와는 무관하며, 정착지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남자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문학평론가
2022-05-02
조붓한 산길마다바람이 휘돌아오면기진한 플라타너스 손들이 땅에 나뒹군다햇살을 담아 한철 그늘을 짓던푸른 손들찬바람에 물기가 말라버린갈색 손들이 버석버석 소리를 지른다바람을 다독이며햇살을 담아내던 중노동으로나무를 놓친 손등이 거칠하다시인은 저 플라타너스 낙엽에서 노동하는 삶의 운명을 본다. 흥미로운 것은 ‘이파리’에서 삶의 핵심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파리는 나무의 끝에서 자라나는, 삶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부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인간의 육체에 비기자면, 머리도 아니고 심장도 아닌 손에 해당하는 존재. 그러나 일하기 위해 쓰이는 손, 나무를 먹여 살리다가 시들어버리는 노동하는 손이야말로 시인에게는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2022-05-01
염소는 심심한 족속,수염을 기르고 있다.풀을 뜯던 염소가 이따금 공중을 올려다보는 건구름을 씹는 일구름을 씹으며 눈을 감는 건눈을 감고 실없이 웃는 건수염을 다듬는 일, 구름을 달고 있는저 근엄한 턱에서검은 똥이 나온다.수염은 독선의 정체, 적당한 그것이스스로를 길들인다. 그러므로혼자 있는 염소는 묶지 않아도 된다.수염 때문에 달아나지 못한다.저 심심한 족속인 ‘염소’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식인’들 아닐까? 염소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수염에 “구름을 달고” 그 “구름을 씹”고 있는 염소는 시인에게 풍자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구름’을 점잖게 뜯으면서 근엄함을 뽐내는 염소에서, 지식을 내세우고 권위를 주장하지만 결국 자기의 권위의 근원인 ‘수염’ 때문에 발이 묶여 권력에 순응하는 기성 지식인들을 생각했다. 문학평론가
20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