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서 회전하는저 새들은 언제 하나의 깃털을 떨어뜨리는가.벌레들이 파먹은 뼈들공중에서 움직이지 않는 바퀴들태양을 좀먹는창문들이태양을 일제히 인쇄하는 아침지문 없는사람들이한 방향으로 손을 섞는 아침흩어져서 대열을 이루는저 뿌리들은 언제 나무를 쫓아내는가.이 시는 ‘아직’의 시간에, 하지만 곧 닥칠 전조의 시간에 놓여 있다. 무엇인가 곧 일어날 것만 같은 시간이 바로 이 시가 놓여 있는 ‘아직’의 아침이다. 그런데 그 일어날 사건은 불길한 무엇, 즉 추락이며 추방이다. “지문 없는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추락할, 그리고 땅으로부터 추방될 시간 앞에 놓여 있다. 파멸의 시간으로 수렴되어 집적되는 이미지들의 연쇄는 불안한 예감과 전율로 진동한다. 이 시의 매력이다. 문학평론가
2022-04-27
계고장이 날아들고집 나갔던 자식들이 빈손으로 돌아와어미애비를 파냈다집이 무너지자生死苦樂이 뿌리박았던 자리가폐허로 변했다굴착기가쓰러진 기둥에 飯哈을 떠 넣고 있다파골하고 있다어둠 속에서유골함에 날아드는 진눈깨비가 분분하다빈집이 무너진 자리,어느 별의 지붕이자세상의 가장 밑바닥인 그 자리에서몸을 잃은 사람들이모래알 같은 생쌀을 씹는다.알다시피 철거는 그곳에 뿌리박고 살고 있었던 사람들을 알량한 보상금을 쥐어주고는 “生死苦樂이 뿌리박았던” 그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살고자 하는 힘과 죽임의 권력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지만, 거의 언제나 돈과 무력을 갖춘 권력이 이긴다. 시인이 세상에 대해 갖는 임무 중 하나는, 바로 권력이 짜놓은 매트릭스 이면에 존재하는 피의 현실과 그 진실을 시로써 드러내는 일일지 모른다. 문학평론가
2022-04-26
여름과 가을의 노래 사이를 망설이며 날다가끝내 입을 다물고 날아가 버린다바람은 철망에 매달려 간신히 꽃을 피운 늦장미와또각또각 걷는 여자의 치마 사이에서 길을 잃고햇살은 나팔꽃 줄기에 머물러 씨앗을 먼저 터뜨릴까마타리의 몸 끝에서 꽃의 눈자락을 틔울까 망설인다망설임, 비는 여름비와 가을비 사이를 망설이며 내린다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갈 때열기와 서늘함이 서로를 슬쩍슬쩍 건드리며닿았다 풀려갈 때나는 망설인다마음속의 마음을 전할까, 감출까무엇인가 망설인다는 것은 사랑에 지금 막 빠졌다는 징조다. 사랑에 빠졌기에 ‘나’는 “마음속의 마음을 전할까, 감출까” 망설인다.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마음은 흔들리고 설렌다. 사랑이 시작되는 시간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그때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것들은 망설임 속에서 존재 전화의 경계선에 놓인다. 가령 비는 여전히 여름비로 내릴 것인지 아니면 가을비로 전화할 것인지 망설이며 내리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4-25
텔레비전 화면이 풀죽처럼 흘러내린다술 취한 밥상이 아버지를 뒤엎고값싼 본드를 마신 아들이날개를 자르고 내려와 공터에서 헐떡인다더 이상 철거되는 걸 기다릴 순 없다다짐을 덧칠한 벽엔 금이 가고기둥은 토박이 정신을 버린다연탄가스가 독 오른 살모사처럼 기어오를 때상속권 없는 저녁별이 떠오른다불 꺼진 골목과 낙오자의 방21세기가 급하게 채널을 돌린다(부분)위의 시가 보여주는 희망 없는 철거지에서의 삶의 모습이 21세기적 삶의 현 주소 아니겠는가. 파괴된 철거 지역에서, 상속권이 없어 갈 곳 없이 여전히 삶을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 그 ‘낙오자의 방’에는 “독 오른 살모사처럼 기어오”르는 연탄가스가 그들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지배층으로부터 추방된 이들의 삶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온갖 위험과 죽음에 노출되어 있는 것, 이것이 시인의 현실 진단이다. 문학평론가
2022-04-24
내 생애의 수많은 저녁 중에가장 포근한 저녁은황혼인지 샐녘인지 분간 못하게어슴푸레한 미명이었다어서 일어나 학교 가거라부시시 깨어 듣는 어른들 말씀이한바탕 웃음 끝에거짓말이 되는 순간이었다낮잠 자는 나를 놀리자고누군가 일부러 지어낸 말인 줄을알아차린 그 다음부자가 된 듯한 동안이었다우리가 부자였던 ‘순간’-‘동안’-이 있었던가. 있었다. 어른들의 놀림에 자신도 배시시 수줍게 웃던 유년 시절의 순간이 바로 그때다. 그 유년의 시간을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저 흐릿하고 어두운 기억 창고 이외엔 없다. 유년을 기억하는 몽상-미명-의 시간은 시인에게 “가장 포근한 저녁”이다. 하나 유년의 순간은 다시 현실화 될 수 없기에, 그 아름답고 풍요로운 몽상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변화되리라. 문학평론가
2022-04-21
선운사 동백, 그 상처 붉게 붉게 절며 당도하는 곳가마미 바닷가에 한 사내 서 있었네.가마미 바닷가에 폭설이 있었네.폭설이 있었네. 그렇듯 죄 말하고 나서저 긴 수평선, 긴 수평선에 걸쳐 오래 자고 있네.폭설과 잠 사이, 발언과 침묵 사이의 가늠하기 힘든 시공간 속에 시가 놓여 있다. 의미와 무의미, 시간(역사)과 무시간 사이에서 이 시는 진동한다. ‘한 사내’, ‘폭설’, ‘가마미 바닷가’와 그 ‘수평선’은 실제 대상이 아니라 시의 시공간 속에, 즉 행의 발언과 행간의 침묵 사이에 존재한다. 하여, 그것들은 무로부터 드러나는 존재자들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 무에서 솟아나는 존재자들을 통해 시의 경이를 역설적으로 경험한다. 문학평론가
2022-04-20
길이 모두 접혀 있는 건너편 언덕 밑에는울타리가 있는 집을 두 채 그려 넣는다조금 더 안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그늘을 펼쳐 그려 넣는다(….)나는 천천히 그 사이로 난 길을 걸어지금의 느티나무의 그늘을 한쪽 어깨에 걸고 있다산을 너무 멀리 그려 두었나?산으로 가는 길이 곳곳에 끊겨 있다(부분)상상으로 그려진 시의 세계인만큼, 시인 자신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법이 없다. “시인은 천천히 그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이때 시 쓰기의 아이러니가 발견되는데, 내가 구축한 세계 속에 내 자신이 들어가 걸어갔을 때, 비로소 그 길들이 곳곳에 끊겨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시인인 내가 만든 상상 세계가 ‘나’와는 무관하여 알지 못할 무엇으로, 자족적 세계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2-04-19
물푸레나무 앞으로 집을 짓는다바람이 잘 통하고자줏빛 그늘이 진다귀가 없는 새가 와서여기저기 기웃거린다보고 싶은 사람이 온다기에막 피어난부용꽃 꽃잎으로 또 한 채집을 짓는다무엇인가 귓전을 매암돌다멀리멀리 너울져간다종소리 모양의장맛비가 저만치 오고 있다.시인은 상상의 힘으로 집-시-을 짓는다. ‘부용꽃 꽃잎으로’ 만들 수도 있는 비현실적인 집. 이 집은 상상의 시공간에 존재하기에 소리 없는 세계다. 그래서 귀 없는 새가 와서 자신의 집으로 삼을까 기웃거리는 집이다. 하지만 이 집의 바깥 세계에서 나는 장맛비 소리가 이 상상 세계 안으로 틈입하면서 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 소리와 소리 없는 상상 공간이 교차될 때 위의 시의 시적 순간이 마련된다. 문학평론가
2022-04-18
지붕을 타고서 휘돌아온 바람이물고기의 몸 흔들 때마다얇아질 대로 얇아진 몸추녀 끝에서 펄럭이던, 하지만 방향도 없이찰랑 차르르 바람 속을 헤엄쳐 나가는물고기의 몸 이미 있어도 없는소리뿐인 몸이었네계단 끝 텅 빈 마루방 하나,이른 새벽 바람이 씻어내고 있었네(부분)목어가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시인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삶은 흔들리며 헤엄치는 소리만으로 존재한다는 깨달음. 그 소리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 역시 알려줄 터, 바람에 깎이고 휘둘려온 목어-삶-의 몸은 “얇아질 대로 얇아”져 있다. 시인은 저 소리가 가져온 깨달음을 통해 소멸해가는 시간 속에서 소리로만 남게 되는 몸을 인식하고, 소멸로부터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삶임을 발견한다. 문학평론가
2022-04-17
마당가 돌무더기에 흰 끄나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뱀허물이다 머리를 땅에 박고,이리로 저리로 요렇게 조렇게 들어가셨소내가 그 증거요!온 허물로 가리킨다이건 단순한 허물이 아니라뱀에 의한,뱀이 썼던 허물이 분명하다한 마디로, 이 안에 뱀이 있었다는 것저 안 어디쯤진짜가 있다는 것울고불고 마지막까지뒤집어쓰고 살아온 시를 놓아주고생것이 사라져간 쪽을 향해입 꽉 다물었다시는 뱀이 쓴 허물이다. 진짜 생것은 “저 안 어디쯤” 사라져갔다. 시는 껍데기일 뿐이다. 하지만 시는 껍데기긴 껍데기이되, ‘생것’의 흔적으로 남아 있으면서 생것의 존재를 ‘증거’한다. 생것은 언어와 의미로 번역될 수 없는 육체적 삶 그 자체 아닐까. 아무튼 발화와 침묵 사이에 있는 저 허물 같은 시는, 그 ‘사이’를 통하여, 생것이 실재했음을 확인시켜주면서 우리 앞에 그것이 도래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문학평론가
2022-04-14
소풍 가서 보여줄게그냥 건들거려도 좋아네가 좋아상쾌하지미친 듯이 창문들이 열려 있는 건물이야계단이 공중에서 끊어지지건물이 웃지네가 좋아포르르 새똥이 자주 떨어지지자주 남자애들이 싸우러 오지불을 피운 자국이 있지2층이 없지자의식이 없지홀에 우리는 보자기를 깔고음식 냄새를 풍길 거야소풍 가서 보여줄게건물이 웃었어단순해 보이는 이 시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화자의 주체성이 완성된 건물과 같이 건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녀는 자의식을 건축할 의지가 없다. 무너진 건물에서 ‘너’를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소녀는 계단 끊긴 건물처럼 흉물스럽다. 하지만 시에서는 이 ‘미완성’ 자체가 긍정되면서, 불량하다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소녀의 단순한 진술이 낯선 시적 문법으로 전화된다. 문학평론가
2022-04-13
창문 밑에 매달린 고드름들 사이로,흐린 하늘에 목매달아 죽은 가오리연을 본다하늘을 휘젓는 연의 시체는 부드럽다까만 바람, 겨울은 낙타를 타고 걷는다(….)구상나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하게 죽어 있다뿌리에서 또 다른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죽은 몸과 자라나는 슬픔 사이의 여백이 차갑다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다내 발가락 사이사이 틈꼬아진 다리 사이멀리 돌아온 입술과 입술의 포개짐에도서글픈 여백이 맺히고,갈변한 사과를 반으로 쪼개면속살은 여전히, 잊혀진 듯 희다.겨울은 사막과 같은 시간을 건너가는 계절이다. 사막의 밤바람처럼 겨울의 바람도 까맣다. 그래서인지 겨울은 까만 죽음의 계절이다. 애인은 봄으로 떠나가고, 하여 “고드름 사이로” 가오리연이 목매달아 죽는 계절. 시인은 이 죽은 세계에 슬픔을 자라게 하여 “죽은 몸”과 “슬픔 사이”에 ‘여백’을 만든다. ‘갈변한 사과’와 같은 세계를 쪼개 차가운 여백, 그 흰 속살을 드러내기. 이것이 이 시인의 시 쓰기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4-12
나는 나의 생을,아름다운 하루하루를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생’은 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버리고 또 다른 하루를 다시 시작하는 반복의 연속이다. 그래서 생은 쓸쓸하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반복하는 것이 ‘생’인 것이다. 그것은 하루를 쓰고 버려도 우주가 항상 새로운 ‘생’을 ‘리필’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생’은 우주의 선물이며 축복이다. ‘생’의 허무는 극적으로 역전되어, ‘생’은 본질적으로 기쁨을 주는 것으로서 긍정된다. 문학평론가
2022-04-11
역사는 처음부터 없었다고다 낡은 환상만 내다놓은 나무 의자들공허가 주인공처럼 앉아 있다.그 발치엔 먼 데서 온 파도의 시린 발자국들햇살 아래 쏟아낸 낱말들이실연처럼 쌓이고우우우 모래바람 우는 소리,먼저 도착한 누군가 휩쓸고 갔나 보다.바닷새들이 그들만의 기호로모래알마다에 발자국들 암호처럼 숨겨놓고 난다.낯선 기호의 문장들이 일파만파 책장처럼파도 소리로 펄럭이면일몰이 연신 그 기호를 시뻘겋게 염색한다.나무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정동진역 풍경은 백지처럼 ‘공허’하다. 너무 공허해서, 정동진역의 존재 자체가 원래 없었던 환영 같아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 풍경은 파도와 바닷새들이 찍어놓은 발자국들로 인해 해독되어야 할 책으로 변전한다. 발자국들은 그 누군가 존재했음을 암시하는 흔적, ‘낯선 기호’다. ‘일몰’에 “시뻘겋게 염색”당하는 그 기호는 시인에게 어떤 그리움과 슬픔을 뜨겁게 불러일으킨다. 문학평론가
2022-04-10
허공의 담즙이 흘러내릴 때꽃은 다 쓴 생리대 하나씩 머리끝에 매단다숨어서 냄새를 피우려고결국 시체가 되려고꽃은 핀다허공에서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자줏빛 꽃잎들사람들은 낯선 꽃이 피었다고슬슬 피하기 시작한다허공에 뱀 대가리 활짝 핀다말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꽃송이아름다운 독종이다시 쓰기를 삶의 소화 과정이라면, 시 쓰기 속엔 담즙이 흐르고 있을 것인데, 이 시에서 담즙은 특이하게도 생리혈로 치환된다. 수정하지 못한 시간은 썩은 채로 쌓여 있다가 담즙에 의해 소화되면서 생리혈이 되어 배출된다. 그러자 자줏빛 맨드라미 꽃잎이 피에 젖어 있는 “다 쓴 생리대 하나씩 머리끝에 매”달며 피기 시작한다. 시의 탄생이다. 이 자줏빛이 지금은 고인이 된 박서영 시의 특색이라고 하겠다. 문학평론가
2022-04-07
일몰 속에서 나는 우리가 꾸었던 꿈도이루어지지 않은 꿈의 파편들도다 그것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꿈은 언제나 꿈의 크기보다 아름답게손에 쥐어졌다 사라지는 것이다그리고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날들을부축해 끌고 가는 것이다내일은 다시 내일의 신전이 지어지리라시대의 객체로 밀려나 폐허의 변두리를걷고 있을 덥수룩한 수염의 그를 생각했다익명의 쓸쓸한 편력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부분)“사암으로 쌓은 성벽의 붉은 돌”일 ‘꿈의 파편들’은 일몰을 통해 그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꿈을 무너뜨린 그 시간의 힘이 역설적으로 꿈의 폐허 그것대로 아름답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다.잡았으나 사라져야 하기 때문에, 쓸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름다움. 이는 허무주의적인 아름다움은 아니다. 삶은 소멸할 운명이지만 그렇기에 삶은 더욱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2-04-06
교회첨탑 위에서 여러 개의 조명등처럼새들이 나란히 발들을 모으고 앉아있네밝은 기억들은이리저리 아래를 비추고 있다가서치라이트 강열한 틈 사이로 빠져 나오네도로 쪽 아래 한 쪽 모퉁이에 세워놓은 낡은 리어커군고구마 구어 내는 드럼통에서 김들과 함께 섞여 나오는 올드 팝송들낡은 기억들은 앞서간 것들을 뒤 따라갈 수 없기에생각은 저 혼자 비에 젖다가포물선 꼬리를 물고 뒤 따라가다가순간 생각의 끈 마디를 놓치네그래 오늘은 너에게 주는 식은 추억 한 줄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가네남은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밝은 기억들’이란 아지랑이처럼 재생을 여는 추억들이다. 그 추억들은 우리의 삶을 ‘조명등’처럼 비추고 우리의 정신을 새처럼 가볍게 비상하도록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렇듯 우리를 고양시키는 그 기억들은 어느새 저 하늘 위로 날아가 사라져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기억들은 “이리저리 아래를 비추”어 어떤 형상을 붙잡으며 자신에 육체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 시인에게 ‘귀향’이란 이런 것이다.문학평론가
2022-04-05
빛무리와 엉키고 설켜짐작조차 할 수 없는 체위로 불어오는 바람만이수억만 년 길러온 머리카락을 지상에 드리우며앙상한 늑골의 흔적을 남길 뿐이었다길 없는 길은 나를 어디에도 내려놓지 않았다계속 나아가라는 뜻인지 그만 멈추라는 뜻인지알아들을 수 없는 전언이 세상에 가득했고손톱 밑에 가득 박힌 시간의 알갱이를 세며 나는날개를 떼어 놓고 가버린 새들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졌다 (부분)인간적인 것이 감히 틈입할 수 없는 절대적 공간. 이곳에 주름 잡힌 시간의 겹은 엄청나서 시인의 손톱 밑에까지 ‘시간의 알갱이’들이 가득 박혀 들어갈 정도다. 바람으로 상징화된 비인간적 시간의 힘은 모든 것을 소멸시켜 먼지로 만들어버린다. 새들조차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몰라 “날개를 떼어놓고”는 없어져버렸다. 이렇듯 광활하고 장대한 환몽에 압도당한 시인은 ‘몽유병자’처럼 그 ‘길 없는 길’을 걷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4-04
해도 빨리 자리를 거둔 異國의 낯선 교정흐린 저녁은 비가 되고, 강의 실 창문을 열면 한 장 검정 도화지처럼내 가슴을 닮아 어두워오는데학교가 먹은 나이와 같다는 교정 한 가운데 은행나무바람에 불러 소리칩니다, 놀러 나간 어린 나무들에게이제 깜깜해졌다 집으로 들어오너라바깥 풍경은 점점 도화지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요, 나는어린 나무가 되어 달려나갑니다, 가는 동안머리에 어깨에 조금은 비를 맞지만요.이국의 풍경이 낯설어지면서 시인의 마음도 어두워진다. 그 마음의 어둠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학창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인은 그리움을 느낀다. 그리움의 부름에 답한 것이 “학교가 먹은 나이와 같다는” 은행나무의 출현이다. 저 나이 든 은행나무는 어머니처럼 “집으로 들어”오라고 부르고, 이 부름에 응답하면서 시인은 ‘어린 나무’가 되어 어둠을 털고 집으로 달려가는 어린 시절의 아이가 된다. 문학평론가
2022-04-03
가도 가도 하얗게 막막한 러시아 설원.자작나무 처녀림 그 미끈한 아랫도리에 쏟아내는뜨거운 오줌발, 절로 굵어지는데아, 수피(樹皮) 겹겹 피나게 벗겨가며 백옥처럼 더 환해져가던그때, 그 러시아 자작나무 눈부신 처녀들.온갖 귀신 이야기들 문풍지 매섭게 때리는 유년의 겨울밤.해 떠오르면 꿈도 두려움도 가웃가웃 함께 날려 보내던 가오리연연줄 끊어져 눈 시린 빛살 되어 날아갔던 그 때 그 연, 연줄들.그 처녀, 그 연들 눈의 요정 되어오늘은 초부리 겨울 저 자작나무로 희디희게 서 있는 것인가.(부분)시인에게 현재 눈앞의 현실은 과거의 기억과 융합되어 현현한다. 저 러시아 자작나무 ‘처녀’가 유년시절 날린 연들이 “눈의 요정 되어” “희디희게 서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보면. 이렇듯 지금 바라보고 있는 자작나무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연 날렸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비월함으로써, 시인은 그 시절에 가졌던 꿈, 좌절되기도 했던 그 꿈을 지금의 현실에 되살리면서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문학평론가
20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