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 다만
눈을 감고 있다.
바다 밑에서 하늘 위에도 있는
시간, 발에 차이는
지천으로 많은 시간,
장미는 시간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고 있다.
언제 뜰까
눈을,
시간이 어디론가 제가 갈 데로 다 가고 나면 그때
장미는 눈을 뜨며
시들어갈까
장미가 시들지 않고 영원한 무시간 속에 놓여 있는 건 바로 “지천으로 많은 시간” 속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이다. 수많은 시간 속에서 시간을 보지 않을 때 무시간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시간이 어디론가 제가 갈 데로 다 가고 나면” 장미는 비로소 눈을 뜨고 비로소 시간적 존재-시들어 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세상의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선 바로 저 장미의 ‘순수한 모순’을 살아내야 하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