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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점점 여리게

등록일 2022-12-14 18:25 게재일 2022-12-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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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창문 밑에 매달린 고드름들 사이로,

흐린 하늘에 목매달아 죽은 가오리연을 본다

하늘을 휘젓는 연의 시체는 부드럽다

까만 바람, 겨울은 낙타를 타고 걷는다

 

이따금 땅바닥에 흩어진

겨울의 부러진 발톱을 몰래 줍는다

주워들고는 죽은 구상나무 뿌리에 기우뚱 심어놓는다

구상나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하게 죽어 있다

뿌리에서 또 다른 슬픔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죽은 몸과 자라나는 슬픔 사이의 여백이 차갑다

 

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다 (부분)

 

겨울은 까만 죽음의 계절이다. 가오리연이 목매달아 죽는 계절. “애인은 겨울을 건너, 봄으로 갔”지만, 시인은 여전히 이 죽음의 계절에 머물러 있다. 아니, 애인이 봄으로 갔기에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된 것이겠다. 여기서 시인은 “겨울의 부러진 발톱을 몰래 줍”고는 “죽은 구상나무 뿌리에 기우뚱 심어놓는”다. 겨울의 파편들-아마 슬픔일-을 이미 죽어버린 뿌리에 심는 그 행위는 시 쓰기를 의미할 것이리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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