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선
살아갈수록 좋은 날은 안 생기고
닷새 장마다 낯익힌 어물전 끝냄이 할미
팔다 남은 물가자미 세 마리 건넨다
순례할미, 말없이 물가자미 받아들고
나생이 한 단 들이민다
나이롱 보푸재에 계란만큼 남아 있던 겨울 해는
저만치 삿갓봉 목재를 기웃거린다
손주 놈 골덴바지 말아 쥔
나이롱 보푸재, 순례할미 손등 검버섯 새로
한 줄 희멀건 힘줄, 숨 가쁘다 (부분)
‘순례할미’와 ‘끝냄이 할미’는 팔다 남은 음식을 직접 교환한다. 나생이 한 단과 물가자미 세 마리는 화폐의 척도에 따라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서, 그리고 계산이 아닌 애정 속에서 교환된다. 이러한 교환의 장에 겨울 해와 같은 자연물도 기웃거리면서 참여한다. 이렇게 가난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서로 돕는 자연스러운 연대를 낳으면서, 사랑에 기초한 민중의 생명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