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
곳간 양철지붕은 비었다,
비었다고 엄살을 떨지만
터지게 익어가는 나락들을 붙들고
들판은 숨죽였다.
그쳤다 쏟아지다, 가을 소나기
다시 멎는 고들고들한 정적 사이
밤 내 들리는 풀비질 소리
누가 하늘에 도배를 했나
쓰고 남은 들판의 푸름을
빗방울로 콕 콕 찍어 바르는 것을
콩잎 쓰고 숨어 보던 도마뱀 한 마리
아침 천정에 무늬가 살아 움직인다.
맑고 경쾌한 풍경이 그려진 상쾌한 시. 세계를 푸르게 물드는 박명(薄明)이 다가온다. 하늘은 푸른색으로 도배되어 있고, 소나기 내린 후 맺힌 빗방울은 그 푸름을 사물들에 “콕콕 찍어” 바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빛과 색은 달라지는데, 시인은 이를 두고 “아침 천정에 무늬가 살아 움직인다”고 표현한다. 밤-새벽-아침으로 변모하는 세상을 “콩잎 쓰고 숨어 보던 도마뱀 한 마리”는 바로 시인의 분신일 테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