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무렵, 그렇게 우주가 사람의 마을로 손금처럼 내려오고 아직 저마다의 이름을 채 밝히지 못한 시간, 가난은 그래도 사람들을 먼저 깨워 이 시간을 온전히 지키라 합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과 저 산을 지나 우주 한 끝에 닿는 길을 당신이 먼저 걸어보라 합니다. 아마 그 몸에도 동이 트려나봅니다. 아직 잠든 식구들을 두고 시퍼런 눈으로 동트는 사람들, 그들이 한 우주가 아니겠습니까?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가난한 자들만이 이 동트기 직전의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지켜낼 수 있다. 이 동틀 무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걸어가 “우주 한 끝에 닿는 길”을 만들어내라고 권고한다.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한 가장의 몸에도,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가난한 실업자들의 몸에도 역시 동이 튼다. 박명의 새벽이 시퍼렇듯이 그들의 몸도 “시퍼런 눈으로” 동이 튼다. “한 우주가” 깨어난다. 문학평론가
2022-01-26
씻어야 할 마음이 있는 것 같아서샤워기를 틀면 습기 찬 저녁은 알몸뚱이를 거미줄같이 감싸고땅바닥에 흘린 물기를 걸레로 닦으며물 한 방울 마실 데가 없었을 너에 대해 반성했지나는 어쩐지 미안함을 느끼고 싶어, 방바닥에 붙어 눈감고침묵으로 거미의 울음소리를 돌보고 있으면이 밤이 벚꽃을 토하는 소리가 창을 넘어오고‘괜찮니?’ 혼잣말을 하면, 방 한구석에작은 물방울의 자세로 숨을 죽이는 감정 하나마음의 변태로나마 붙잡고 싶은 한 목숨이거미줄도 없는 허공에 매달려 아슬아슬 깊어진다시의 화자는 쓸쓸함과 미안함의 습기에 의해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방바닥에 꽉 붙어 있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을 거미로 상상하게 되는데, 침묵의 방 안에서 거미의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너의 부재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린 방, 방바닥에 꽁꽁 묶여 있는 이 방에서, 화자는 작은 한 방울의 의욕, 비록 그것이 변태적이라고 하더라도 ‘한 목숨’을 붙잡으려는 의욕을 거미처럼 가지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2-01-25
함부로 펴 볼 수 없는 기록은끝내 속내를 웅크리고가시를 피워내고야 만다. 속이텅 비어 있을 수도 있다. 한 번도물 주지 않았다. 그가 펴 본 책들도활자를 모두 지웠을지도 모른다속을 궁금해하지 말라는 듯 그도저 가시의 몸짓을 취하고 있었다나도 세상에 그냥 부어 오른 혹은 아니다선인장 같은 책을 쓸 거야 아무나잘라 볼 수 없는 식물만이모래와 돌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법이다그는 선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책은 눈물을 품었다 읽을수록(….)단호하게 푸른 가시들을 피워 올린 것이다.어떤 각오 없이는 함부로 속을 궁금해 할 수 없도록벤치에 누워 죽어간 사내의 웅크린 모습이 품고 있는 것은 “함부로 펴 볼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런데 그 ‘기록’이 결국 가시를 피워냈던 것, 그것은 선인장처럼 “모래와 돌”과 같은 황량한 세계로부터 “물을 길어 올”림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시인은 저 선인장의 가시에서 글쓰기의 전범을 찾아내고, “눈물을 품”고 저 단호한 가시들을 피워낸 “선인장 같은 책을” 쓰리라는 의지를 갖는다.문학평론가
2022-01-24
여기서 한 생애를 건너가야 한다면누더기 걸치고 왔어도 마지막은 눈부셔야 하리햇살 한 입 베어 물고어깨 위에는 순한 바람망토 두르고별빛망울 같은 추억들 눈동자에 출렁이게 하고가시를 찾아 날고 있는 새나에게 오는 날은 언제인가무엇을 찾아 나는 날고 있는 것일까머리를 제쳐 하늘 쳐다봐도 길은 보이지 않고한 생애를 여기서 울다가야 한다면마지막에 우는 울음은 깊고 가장 맑아야 하리시인은 “마지막에 우는 울음”은 가시나무새의 울음과 같이 “깊고 가장 맑아야 하리”라고 희망한다. 가시나무새는 마지막을 눈부시게 해줄 울음을 울 존재다. 시인은 마지막이 오면 이 새가 자신을 찾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그때엔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채 여전히 길을 보지 못하고 날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재 상황이 바뀔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시인에게 죽음은 완전한 끝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2-01-23
혀에서 가시가 돋는다가시 속에서 꽃이 핀다입은 커다란 정원꽃들이 길을 연다시인을 시 쓰기로 이끈 것은 가시로 돋아난 마음의 고통들일 것이다. 하지만 시는 그러한 고통의 토로로만 써지지 않는다. 시는 이 고통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 “가시 속에서 꽃이 핀다”는 것을 발견할 때 비로소 시는 써질 수 있다. 이 발견은 가시들이 돋은 입 안이 ‘정원’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낳는다. 고통 속의 아름다움-정원의 꽃-을 돌보다 보면 꽃들이 길을 열기 시작할 것이며, 그 길을 통해 비로소 시의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다.문학평론가
2022-01-20
물길이 물길 열고그 물길이 또 물길 열어물밭 하나 이룬 곳물 뿌리가 만든 물의 열매들이물의 씨앗들 퍼뜨린 곳물새 떼 둥둥 퍼뜨린 곳위의 시는 물로 상징되는 자연이 어떻게 생명의 길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우포에서는 “물길이 물길 열”면서 자연스레 물길이 줄줄이 이어지고, 결국 하나가 된 물길은 ‘물밭’이라는 하나의 장소를 형성한다. 그 밭에는 물의 뿌리가 있고 그 뿌리에서 물의 열매가 달려 나오며 물의 열매는 물의 씨앗을 다시 물밭에 퍼뜨린다. 그리고 물의 씨앗들은 놀랍게도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물새 떼’로 비약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1-19
오늘처럼 해질 듯 젖은 날들도 방긋 몸을 풀고그 아슴한 봄날과 여름 냇가조계산이 이고 있던 흰 눈과 채석강의 노을까지한 톨씩 한 줌씩 풀려 나와세월의 아지랑이 흰 머리카락도 타고 올라봄 햇살로 뛰놀리라그 밤에는 꼬박 당신을 만나리라봄비가 사흘째입니다그만 오후에는 햇살이 들어주어야겠습니다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슬퍼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흰 머리카락이 생기더라도, 그 위에 피어나는 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 청춘이 소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기대로 전화된다. 또한 그 ‘그리움-기대’는 봄을 이곳에 미리 당겨와 지금 시간을 봄 햇살 뛰노는 신생의 시간으로 전환시킨다. 그렇기에 시인은 당신과의 만남을 영원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1-18
어제 애인과 헤어졌더라도슬픔은 바닥까지 환해야 할 것,함부로 발설할 수 있는 비밀이 늘더라도핏물 뚝뚝 떨어지는 상처는 꽃봉오리 맺어야 할 것,알 수 있는 한 가지는어제와 같은, 이라는 단서가 얼마나 비겁한 발견인지,햇살은 가장 개방적으로 걸어가고그 아래 숨어 걷는 그림자는 소심한 심장처럼 반짝거리지,눈 감아도 보이는 곳에,그러나 손잡을 수 없는 곳에,애인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비밀스러운 상처가 늘더라도, ‘낭만주의적인 아침’은 그 어둠들을 긍정하고 극복하도록 이끈다. 세계의 모든 존재자들이 이 햇살 앞에서 열리며 반짝거리기 때문이다. 하나 이 햇살은 “눈 감아도 보이는 곳에” 비추는 햇살인 것, 실제 현실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이상적인 이미지다. 그래서 시인은 알고 있다. ‘낭만주의적 아침’은 “손잡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2-01-17
상어와의 결투에서 이기고 상어의 이빨을 훈장처럼 내 잇몸에 끼운다 나를 게걸스레 물어뜯는 상어들, 나는 어디 갔어? 엽총을 어디에 두었더라?빈 바다에 바람이 바뀌고 나는 다시 배를 띄운다 아직도 작살을 손에 쥔 채 하루 종일 꿈을 좇고 있다 작살에 찍혀 언뜻언뜻 허연 아랫배를 드러내는 낯선 나와 사투를 벌이는 핏빛 시!시 쓰기는 바다 한 가운데 노인-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그 노인-이 상어와 싸우는 것과 닮았다. 시인은 상어와의 싸움에서 이겨서 “상어의 이빨을 훈장처럼 내 잇몸에 끼운” 시를 산출하지만, 곧 다른 상어에 의해 물어 뜯기고는 사라져버려야 한다. 그런데 격투 대상인 그 상어는 또 다른 “낯선 나”임이 마지막 구절에서 드러난다. 시인이란 그 “낯선 나”와 피비린내 나는 사투를 벌이는 사람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1-16
비 그친 사이고추잠자리 한 쌍 옥상 위를 빙빙 돌고 있다두 마리가 하나로 포개져 있다누가 누구를 업는다는 거업고 업히는 사이라는 거오늘은 왠지 아찔한 저 체위가 엄숙해서 슬프다서로가 서로에게 서러운 과녁으로 꽂혀서맞물린 몸 풀지 못하고땅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며 나는 임계선 어디쯤문득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있다앉는 곳이 곧 무덤일질주의 끝이 곧 휴식일 어느 산란처죽은 날개는 너무 투명해서 내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인다위의 시에 따르면 사랑은 상대를 과녁 삼아 목숨을 걸고 꽂히는 화살이다. 그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 이는 상대에게 자신을 개방하여 화살에 제공하는 과녁이 된다. 사랑하는 삶은 “맞물린 몸 풀지 못하고” 삶과 죽음의 임계선까지 화살 맞은 상처로 피 흘리며 다다르는 삶이다. 그런데 시인은 삶과 죽음의 임계선 너머인 ‘내생’까지 상상한다. 그 내생이 살아갈 무덤은 사랑의 질주가 끝에 다다른 “어느 산란처”다. 문학평론가
2022-01-13
뼈만 남은 사람이마지막 뼈를 들어내고 있다뼈만 남은 사람의 뼈가 마르고 말라눈 뜬 자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마침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뼈만 남은 사람들이 서로의 갈비뼈를 들고흔적 없이 썩은 머리와 버려진 사지를 쓸어 담아이미 오래전에 항전이 끝난 무덤으로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위의 시는 우리의 삶과 현실을 극한적인 이미지로 제시한다. 이제 뼈까지 말라버린 사람들. 뼈도 제대로 못 추리고 자신의 무덤 속으로 걸어가는 도저한 형상은 비극적이다. 시인은 극단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우리의 실상을 충격적으로 제시한다. 즉 시인은 위의 시에서 어떤 절망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옥 같은 현실을 극한의 이미지로 제시하면서 그 실상을 독자들의 마음에 각인하고자 한다. 문학평론가
2022-01-12
사람들이 모였다.광장 어딘가에가느다란 두 다리로 서 있었다.무릎이 시린 날이었다.사람들이 모였다.땅을 뚫고 올라오는 저녁의 파처럼사람들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사람들이 모였다.생각들이 모였다.누구 하나 아프지 않다고?사람들이 목소리를 조금 더 내고 있었다.사람들이 모였다.옆에 서 있는 사내의 흰 머리칼이어디를 가리키는지생각들이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진정한 민주주의는 가난하고 권력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이루어진다. 위의 시의 “가느다란 두 다리”의 이미지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권력 없는 이들임을 보여준다. 하나 그들의 두 다리는 땅을 뚫고 나올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위의 시는 사람들의 생각이 교류되는 어떤 무형의 공간이 마련되며, 그 공간이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광장임을 말해준다. 문학평론가
2022-01-11
하는 수가 없어 나는배를 가른다가른 배를 마리나 앞에 열어 보인다 마리나는 토한다하는 수가 없어 나는 갈비뼈를 톱질한다섬벅섬벅 뛰는 심장을꺼내마리나의 손에 쥐여 준다 마리나는 기절한다달은 여태 푸르고 마리나는 깨어나지 않고 여태 나는살아 있다 등 뒤에서 목을쳐 주기로 한당신은언제 오는가?마리나를 시의 독자로 치환하여 생각한다면, 화자의 자해 행위는 시 쓰기를 의미한다. 위의 시는 시인의 그간의 시 쓰기가 독자에게 자신의 실재적인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상징적인 육체 훼손이자 자살 행위였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자해로는 자신의 목숨-시 쓰기-을 끊지 못한다. 목을 쳐줄 당신이 시인의 시 쓰기를 끊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나타나지 않고 시인은 시 쓰기를 계속한다. 문학평론가
2022-01-10
서귀포에서는 누구나 섬이 된다.섭섬, 문섬, 범섬이 새섬 같은 섬이사람의 배후여서세연교 난간에 한 컷의 생을 걸어놓은 사랑은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된다.서귀포에서는 누구라도 길을 묻는다.바다를 향해 흘러내리는길 위에 서서 여기가 폭포냐고,서 있는 곳을 묻는다.당신이 서 있는 거기서부터 서귀포는언제나 서쪽이다.서귀포는 죽음과 연결된 장소다. 그곳에서 “생을 걸어놓은 사랑은” “섬으로 건너가는 일몰”이 된다고 하니 말이다. 서귀포에서의 사랑은 일몰, 즉 죽음을 통과하면서 타인-다른 섬-에게로 건너갈 수 있다. 서귀포는 사람들을 섬으로 만드는 동시에 세계가 점점 어두워지는 일몰에 빠뜨리기에, 누구라도 “길 위에 서서” 길을 묻게 되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묻게 된다. 문학평론가
2022-01-09
버스를 타고 거리의 소음보다 더 시끄러운 내 속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짧은 파마머리에 즐겨 입던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뒷모습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어머니 앞에 서는 찰나 내 머리 속으로 환하게 뜨는 북두칠성 별자리가 보였습니다 창가에서 새를 부르는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노을이 제 몸에 붉은 물을 듬뿍 들이고 나서야 천천히 새의 입을 열어 울음 한 점 꺼냈습니다진달래꽃, 오롯이 내 안에 물들고 있었습니다어머니의 목소리에 이끌려 시인은 “어머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 “울음 한 점”을 “새의 입을 열어” 꺼낸다. ‘새’는 시인 내면에 유폐되어 있는 영혼을 의미한다. 그래서 “새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시인의 영혼을 꺼내려는 호출이었으며, 이에 대해 시인의 영혼-새-이 입을 열어 꺼낸 응답은 노을과 같이 붉은 울음이었다. 이 ‘울음’은 김소월 시에서의 ‘진달래꽃’처럼 이별의 통한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2-01-06
타림 강가에서 목을 축이고 떠나가는 여정이 어스름, 어느 먼 곳에 정복할 땅이 있어새들은 떠나가고 있을까새들이 떠난 자리 누워있는 풀들이 몸을 가누고 있었다여전히 강물은 흐르고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마른 가슴뼈 속으로 하룻밤 묵어갈 바람의 영혼이 찾아들었다타클라마칸 모래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어오고 있었다나는 가슴뼈 게르 속에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바람의 영혼”을 가슴으로 맞이한 시인은 새들의 둥근 가슴뼈처럼 생긴 “게르 속에서 하룻밤 묵어가”리라고 결심한다. 이 결심은 저 강가에서 뒹굴고 있는 철새들의 가슴처럼 그의 가슴도 바람으로 부풀어 올랐음을 의미한다. 그 ‘게르’는 봉분을 연상시킨다. 죽음에 다다를 새들의 둥근 가슴뼈는 곧 그 새들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덤은 적막하지 않다. 바람의 영혼과 함께 할 테니까 말이다. 문학평론가
2022-01-05
기차보다 은밀한 창을 달고기차보다 먼저 기적을 울리고기차보다 먼저 흔들리고기차보다 먼저 괴로워하고기차보다 공격적인,기차보다 다분히 혁명적인,개나리꽃들이간이역 철길 위에급진적으로 피어 있다시인은 막대한 힘과 속도를 보여주는 기차 옆에 피어 있는 평범한 개나리꽃의 존재가 ‘혁명적’이고 ‘급진적’이라 말한다. 근대가 낳은 기차보다 저 꽃이 하나의 생명으로서 이미 존재해 있었기 때문이리라. 즉 봄은 언제나 먼저 있었기에, 기차는 아무리 해도 개나리꽃이 펼쳐내는 생명의 선재성과 위대성을 따라갈 수 없다. 이에 따르면 혁명이란 무엇보다도 항상 앞에 있었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평론가
2022-01-04
윗저고리 벗어 던져놓고우물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박씨 할머니달빛 흐르는 등가죽이 투명하다속에 것 다 빠져나간 듯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배꼽이 분화구처럼 깊다소슬바람조차 걸려들지 않는 거미줄달빛이 슬쩍 건들기만 해도금방 허물어질 것 같다처마 밑 알전구가 뿜어내는 거미줄에바람이 걸린다응시는 어떤 기존의 틀로 대상을 규정지어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드러낼 때까지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목욕을 하고 있는 박씨 할머니”의 몸을 응시한다. 그 몸은 “달빛 흐르는” 투명한 등가죽, “분화구처럼 깊”은 배꼽, “등에 붙”은 뱃가죽 등의 이미지로 드러나면서, 그 말라빠진 사지와 몸통은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거미줄의 이미지로 전환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2-01-03
(….)봄날에 꽃이 핀다는 건세상의 금기 같은 것을 깬다는 것깨고 일어선다는 것오랜만에 찾아간 친구 집그 집 작은딸이 신발을 거꾸로 신고논둑을 폴짝거리며 뛰어가듯흙 묻은 맨발로 안방을 걷듯,그렇게 작고 여린 것 하나를 거역하는 것.베란다 화분 흙을 다 갈아 치우며 흔적을 털며그렇게 옹색하게 다시 살림을 차리는 것.그늘 쪽에 있던 화분 몇 개를 양지 쪽으로 옮기며내년에는 오래 산 이 낡은 집을 이사하고 싶다고말하는 아내의 펑퍼짐한 등짝을 보며(….)꽃이 진다는 건생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는 벅찬 말씀.꽃이 핀다는 사실은 그전까지 유지되어온 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사건이다. 그것은 “흙 묻은 맨발로 안방을” 걸으면 안 된다는 작은 금기를 ‘거역’하면서, 이사하듯 다른 삶을 조용하게 시작하는 일이다. 그래서 꽃이 핀다는 사건은 ‘금기-예전 삶’의 죽음을 전제로 하며, “꽃이 진다는 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벅찬’ 사건이다. 문학평론가
2022-01-02
마들에 나가들판 끝 본다눈 끝의 새 본다들풀에도 새가 앉네새는 가벼우니까들판의 새보다 더 가난한 게 있을까가난은 가도 가도 가벼운 것가벼운 것이 들 한쪽 몰고어둔 구름에서 나온 번개같이날아간다 거침없이허공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경고라도 하듯 거침없이가난해서 가벼운 새는 가진 것이 없어서 저 빈 들판의 가냘픈 들풀에 가벼이 앉았다 날아가곤 한다. 하나 이 가벼움은 무력하지 않다. “들 한쪽 물고” 번개같이 날아갈 수 있는 비상력을 새는 가지고 있다. 가난한 새는 가벼운 만큼 거침없이 허공 속으로 비상할 수 있다. 시인은 저 새의 비상에서 “허공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자신을 따라 허공을 향해 비상하면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읽는다. 문학평론가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