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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의대 열풍, 문제는 없는가?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금년도 대학입학 수학능력 시험(수능) 채점 결과 만점자 3명이 나왔고 이 지역 포항의 고교에서도 만점자가 나왔다고 한다.그런데 이 만점자 전원이 의대를 지원하고 합격했다는 뉴스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사람을 치료하고 살리는 의학이 중요하지 않다는건 아니지만 의대는 물론 치대, 수의대의 약진은 대학 전공의 선택이 점점 더 현실적으로만 되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는 이과는 물리, 문과는 경제 등이 인기가 있었다. 물리는 순수학문이고 경제도 취업보다는 정책적으로 인기를 끄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과는 의학, 문과는 경영이 압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선택은 졸업 후 취업과 금전적 수입과 관련된 현실적 전공 선택이며 이러한 현상이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 대학에 상관없이 의대 들어가기가 최우수 대학들의 이공계 들어가기보다 힘들다고 하니 참으로 의대 열풍의 시대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의대생의 실력은 대학을 막론하고 최상위권 학생들이 선택하는 전공이다. 의과대학을 향한 학생들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겁다.이러한 와중에 포스텍, 카이스트 등 연구중심 과학기술대학의 ‘의과학자 양성 연구형 의과 대학’설립에 의사협회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서고 있다.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추어진다.의대 열풍이나 연구형 의대 설립 반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물리나 화학 같은 순수학문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것도 그리고 의사협회가 연구형 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것 모두 인류를 위한 학문의 발전보다는 금전적 이득의 현실적 이유일 것이다.그런데 한편 의대 광풍의 사회문제도 한번 짚어볼 만하다. 요즘 이공계 대학의 저학년에서 휴학하고 의대 진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대학들은 소위 “반수”를 하는 친구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이공계 학생들은 친구들의 의대 입시 공부로 친구 만나기도 꺼린다는 소문이다. 의대에 최상위권 학생이 쏠리는 현상은 그러한 배경에 안정된 수입이 있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의대 내의 전공 선택도 수입이 절대적 기준이 되면서 의과학을 선택하는 의대생은 소수이다. 많은 수입이 보장되는 의대 내의 세부 전공에 지망생이 압도적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이러한 가운데 의학계가 의과학자 육성 의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수입이 보장되는 전공으로 몰리는 것은 장기적 의학발전 관점에서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현재 병을 치료하는 ‘수만 가지 의약품 중 한국이 개발한 건 하나도 없다’라고 한다. 한국의 의사들은 다른 나라가 개발한 약을 처방해 주고 수입을 올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그 약을 개발하는 일은 방치되고 있다.의대와 약대가 함께 관련된 문제이겠지만 한국의 의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 같은 분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좀 더 많아져야 한다.미국에는 의대 출신으로 신약개발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가 많다고 한다. 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연구를 하는 과학자이다.포스텍, 카이스트 중심으로 의과학자 양성 방안으로 공과대가 주도하는 연구중심 의대 신설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우리는 지지해야 한다. 미국은 연구중심 의대를 별도로 운영한다. 이런 의대들은 공과대와 협업하거나 아예 공과대가 의대를 설치해서 신약개발이나 바이오산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의료계가 의과학자 육성 의과대학 설립을 줄기차게 반대하자 의사과학자들이 임상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는 법적 조항을 마련하겠다는 의견이 국회에서 나오기까지 했다.“의사과학자를 육성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바이오 헬스 산업의 주도권을 잃게 되고 새로운 국가 동력을 잃게 된다. 연구중심 의과대학이 설립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라는 지역 국회의원의 호소와 함께, “진료하는 임상의와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개원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라고 강조했다.최근 카이스트 총장 역시 “의사과학자는 바이오 신약 부분의 핵심이다. 체계적인 양성이 필요하다”면서 “카이스트와 포스텍은 (연구중심의대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전문의가 될 수 없으며 임상으로 가기도 굉장히 어렵다.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서도 법적 장치를 마련해 예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최근 만나본 한 의사는 “믿지 못한다”라고 하면서 연구형 의대 설립에 반대를 표시했다. 의대 열풍은 그 열풍이 단순히 개인의 수입과 영달이 모티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신약은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의대 열풍’은 그 자체가 이공계의 다른 학문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과학 발전으로 보완될 수 있다. 의학계의 대승적인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2022-12-18

겨울철 우울증 주의보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고운 단풍이 낙엽이 되고, 상쾌한 가을 바람 스산한 바람 되는 늦가을을 넘어 일조량이 급격히 줄어 어둡고 추운 겨울로 계절이 바뀔 때 우리는 마음과 몸의 변화를 겪곤 한다.떨어진 낙엽에서 감성적인 분위기를 넘어 생명의 쇠진함을 느끼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다 못해 울적해진다.만사가 귀찮아지고 무기력해지며 자도자도 피곤하며 단 것이 자꾸 당기고 식욕은 부쩍 늘고 뱃살도 는다.이런 증상들은 겨울의 문턱에 자리한 늦가을에 시작하여 겨울에 많이 나타난다.최근 연구에 의하면 성인의 약 15%가 겨울철이 되면 기분이 울적해짐을 경험하는 일시적인 우울감을 보이고, 2~3%는 소위 ‘겨울철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특정 계절에 반복되는 우울증, 소위 계절을 앓는 사람들, 이를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한다. 계절성 우울증 중 가장 흔하고 심한 소위 ‘겨울철 우울증’은 남위도 지역보다 북위도 지역에 더 많으며 11월과 12월에 가장 악화한다. 또한, 여성이 전체의 60∼90%를 차지할 정도로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특히, 20∼40대 여성에서 계절성 감정 변화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겨울철 우울증의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주요 생물학적 원인은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겨울철에 일조량이 줄어 비타민D 합성과 세로토닌 생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햇빛을 통해 비타민 D를 합성하며 비타민 D는 행복한 감정과 긍정적 사고를 하게 해주는 세로토닌이라는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 그런데 일조량이 줄어 비타민 D가 부족해지면 세로토닌 결핍이 일어나 우울감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는 겨울철에 낮이 짧고 밤이 길어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이 과다 분비돼 수면 욕구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겨울철 우울증은 전형적인 우울증과 다른 증상 양상을 보인다.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은 우울한 기분,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정신운동성 초조, 식욕저하, 체중감소, 불면을 나타낸다. 그러나 겨울철 우울증의 증상은 우울한 기분보다 무기력감과 피로감이 더 특징적이다. 정신운동성 초조보다는 정신운동성 지체가 심하여 팔다리가 마치 납처럼 무거워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고 식욕이 늘어나는 기현상(奇現象)을 경험한다. 특히 달거나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잠들기 전에 식욕 증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밤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체중이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겨울철 우울증의 경우, 수면에 관여하는 멜라토닌이 증가하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고 온종일 자고 싶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피로는 풀리지 않는다.겨울철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햇볕 쬐기와 운동이다. 첫째, 겨울철 우울증의 원인이 일조량 부족에서 오기 때문에 답은 햇빛이다. 온몸으로 햇빛을 맞이하자. 햇볕을 많이 쬐면 망막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뇌를 자극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매일 낮 시간에 30분 이상 햇볕을 쬐고 비타민 D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비타민D는 세로토닌을 많이 만들게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억제한다.다만, 비타민D의 복용은 과잉 섭취에 유의해야 한다.둘째, 우울할 때는 몸을 움직이자. 우울할 때 우울한 기분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우울할 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스트레스를 경감시켜주고 세로토닌 등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 5분 후부터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해 15분 후에는 최고도에 다다른다고 한다.걷기 운동을 할 때는 평소보다 보폭을 넓히고 조금 빠르게 걷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춥다고 실내에서 웅크리지 말고 밖으로 나가 움직이는 시간을 늘릴수록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운동을 통해 칼로리를 소모하면 겨울철 우울증의 폭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도 예방할 수 있다.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지만, 때로는 감기가 심해져서 폐렴으로 이어지기도 하듯 감기라고 마냥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겨울철이 되면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겨울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많아진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스스로 병원을 찾듯, 만약 겨울철 우울증 증상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줄 정도로 심하거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정신의학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우울증을 방치하면 뇌의 신경전달물질 등에 생물학적 변화를 초래해 후에 심한 우울증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우울증을 앓는 동안에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자살 등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정신의학적 치료가 필요하다.겨울철 우울증의 치료방법으로는 일반적인 실내조명보다 약 20배 정도 강한 밝기인 1만룩스(lux) 정도의 광선을 쪼여주는 광선치료와 선택적 세로토닌재 흡수억제제와 같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약물치료, 부정적인 인지왜곡을 긍정적인 인지체계로 바꾸고 활동을 많이 하도록 해주는 인지행동치료 등이 있다.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은 일조량이 적어 어둡고 추운 날씨지만 마음만은 밝고 따뜻한 계절이 되기를 소망한다.

2022-12-18

미사일 발사장, 김정은 딸 김주애의 깜짝 등장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 언론에서 김정은 가족의 노출은 전통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최고 지도자의 신비성과 정통성을 보존키 위함이다.김정은은 2018년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에게 “내 자녀들이 평생 핵무기를 이고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비핵화의 의지를 보인바 있다.그러나 지난달 김정은은 화성 17호 대륙 간 장거리 미사일(ICBM) 발사장에 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의 딸 김주애(2013년 생 추정)의 발사 현장 동행은 북한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일이다.김정은은 왜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하는 미사일 발사 현장에 그의 딸을 동행했을까. 김정은이 딸을 동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 해석이 따를 수 있다. 그가 어린 딸을 현장에 대동한 이유는 그의 인민 친화적 이미지 정치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먼저 김정은의 딸의 현장 동행은 미사일 발사의 안전성을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고 과시하기 위함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우리 어린 딸이 전쟁을 모르고 푸른 하늘을 보면서 후대들이 평화롭게 살게 되었으며 우리는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선전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북한당국은 그들의 핵실험에 대한 세계적인 비판 여론에 신경을 쓰며 이를 잠재우려고 노력해 왔다.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안전하면서 방어적이고 평화적인 입장임을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북한 당국의 핵과 미사일 시험 발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미국과의 핵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견지하기 위함이다.그들은 화성 17호 시험발사를 통해 미사일 성능을 고도화하고, 곧 재개될 7차 핵실험을 통해 다탄두 핵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김정은은 미사일 시험발사의 긴장된 현장에 어린 딸을 대동한 것이다. 그것은 미사일의 안전성과 자신감을 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음이 분명하다.한편 북한 당국은 김정은의 자애로운 이미지를 부각하여 주민을 설득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북한당국은 수령은 인체의 뇌수에 해당되며 전체 인민은 그의 손발과 같은 존재로 보고 ‘사회 정치 생명체론’을 수령론의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이 이론의 연장선에서 그들은 수령승계를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딸의 공개석상의 대동을 수령 권력 승계와 연계시킬 필요는 없다. 김정은은 38세이며 10세의 김주애는 아직 어리고 2남 1녀 중 중간일 뿐이다. 딸의 공개노출은 승계문제보다는 그의 인자함을 선전하려는 의도가 더욱 짙게 깔려 있다.북한은 과거에도 수령의 어질고 인자함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다. 북한 헌법 서문은 김일성의 ‘인덕(仁德)정치’를 명문화하고 있으며 김정일 시대에는 그의 ‘애민(愛民) 정치’를 칭송했다. 결국 이번 그의 딸의 공개는 경제적 위기 하에서 북한 주민에 대한 대민 설득용이라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이다. 즉 내부적으로 인민을 사랑하는 자상한 통치자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함이다.또한 딸의 대동은 백두 혈통의 정당성을 노출하려는 의도도 다소 포함되어 있다. 사실 김정은 주변의 백두 혈통은 아직 여러 명 있지만 공개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성혜림 소생)은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되었고, 그의 장남 김한솔은 서방으로 탈출 잠적해 있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마저 공개 처형되었고 그의 딸마저 파리에서 자살하였으며 고모 김경희는 겨우 연명하고 있다. 김정은의 친형 정철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고 친 동생 김여정만이 김정은을 근접 보필하고 있을 뿐이다.이런 정황에서 어린 딸의 노출은 백두혈통의 안정적인 가족관계를 공개하려는 의도라고도 볼 수도 있다. 김정은의 두 아들은 외국 유학을 염두에 두어 노출을 기피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그의 수령의 카리스마적 이미지를 보강하려는 의도로 보지 않을 수 없다.여하튼 북한 중앙방송 등 언론 매체는 김정은이 어린 딸을 미사일 발사장뿐 아니라 핵과 미사일 개발 공로자를 포상하는 자리에까지 동행했다고 보도하였다. 북한 언론은 그의 딸을 ‘존귀하신 수령님의 자제분’으로 소개하였다. 노령의 북한의 국방 분야 원로 과학기술자들이 그의 어린 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북한은 이제 수령 가족을 베일에 가두고 신비성과 비밀성을 유지하던 시대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김정은은 정권 초기부터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여 행사에 참여하고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그러나 이러한 가족의 공개는 북한 김정은의 리더십의 본질적인 변화로 판단할 수는 없다.김정은의 딸의 공개 행사 동행은 딸을 앞세운 미사일의 안전성과 수령의 애민 정신을 선전하기 위함이다. 결국 김정은의 이러한 처신은 경제 위기와 북핵 위기를 극복하려는 주민 설득 수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22-12-11

한국의 태양광, 충분히 경제성 있다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한국은 땅이 좁아서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하기에 어려운 나라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일조량이 부족해서 태양광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도 한다.모두 잘못된 편견이다. 지난해 말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7.2%였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70%는 돼야 한다. 통계적으로 2050년 총 에너지의 7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토 면적의 3.5~4.0%의 토지가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 지방자치단체 태양광 설치 조례는 △절대농지의 경우 태양광 설치가 아예 안 되고 △인가(마을)에서 300~500m 이상 떨어져야 하며 △군도(郡道) 이상 도로에서 300~5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도로에서 1천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조례도 있다. 이는 독일처럼 신·재생에너지 설치에 관한 별도의 법령 없이 국토부 건축법 시행령에 근거해서 일반 건축물 건축 시행령에 따라 시·군 단위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제정하여 인·허가를 함으로써 생긴 문제이다. 현 조례대로 할 경우 구미시를 예로들면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토지가 0.09%에 불과하다.건축법 시행령에 근거하다 보니, 농지에 건축물을 짓지 못하듯이 태양광 발전소도 농지에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광 시설이 환경문제가 제기되는 산이나 저수지로 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우리나라 농지는 국토 면적의 18% 정도이다. 농지 20~25%에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면 2050년에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70~75%까지 올라갈 수 있다. 다른 나라사례를 보면, 이웃 일본은 일찍부터 논에 태양광을 설치해서 경작과 함께 하는 ‘영농복합형 태양광’이라는 방안을 찾았다. 경작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땅이 평평하기 때문에 공사하기도 용이하다. 논에는 햇빛도 많이 들기 때문에 광 효율도 높아 유럽과 미국도 경작지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농지법에 따라 농지에 건축행위를 하면 10년 만에 철거해야 한다. 수명 25년인 태양광을 10년 만에 철거하면 경제성이 없어 태양광 시설을 논·밭에 설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지는 ‘식량안보’라는 틀에 갇혀서 쉽게 용도변경이 안되며, 용도 변경을 하더라도 추가로 부담금이 많이 든다.경제성을 보면, 농사를 지을 경우 쌀은 200평당 연간 5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것도 경지 정리되고, 기계 영농이 가능한 곳의 이야기다. 일반 논은 200평 농사를 지으면 쌀 2포대(40kg) 정도 임대료로 받는다. 8만~10만 원 정도다. 그러니 버려진 논과 밭이 부지기수이다. 농사를 짓는 논·밭도 ‘직불금’ 때문에 농사짓는 시늉만 하는 곳이 많다. 직불금은 100평당 10만 원 내외 정도 받는다. 대신 논·밭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300평에 100kWh 규모의 시설을 할 수 있다. 태양광 시설비를 제외하면 매월 300평당 150만 원 이상의 전기판매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쌀농사보다 매년 20배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 시설비는 5~6년 치 태양광 수익정도로 계산하면 된다. 버려지고 방치된 농지가 신·재생에너지 시설로 바뀌면 산업계는 ‘RE100’도 달성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기회가 된다.우리나라의 엄격한 농지법 근거는 식량안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락논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논·밭은 기계화 영농을 하기에 충분하지도 적당하지도 않다. 산업화되기 전 농사만 지어서 살던 시절,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기에 맞을 정도의 토지 면적밖에 되지 않는다.한국은 국토의 67% 정도가 산지이고 18%가 농지다. 자동화 시설을 도입해 규모의 농사를 짓더라도 충분한 식량 자급을 할 수 없는 나라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시작한 산업화를 통해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했으며 독일, 일본 등과 함께 선진 제조업 강국이 됐다.우리나라는 현재 1인당 전기 사용량이 세계 7위다. 10위권 경제대국에 걸맞게 에너지 사용량도 세계 8위다. 나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제조업을 지탱하기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1960년대 이전에 제정한 농지법의 각종 제한으로 인해 농지는 버려지고 산업현장에서는 재생에너지 빈국으로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각 시·군의 공업단지 주변 농지에 태양광 설비를 해서 공단입주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기업도 살고 산업 생태계도 새롭게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우리나라는 쌀이 자급되는 것 외에는 모든 작물이 95% 이상 수입되고 있다. 따라서 기계화 영농이 가능한 일부 논은 영농복합형 태양광을 설치하고, 이를 포함해서 농지 20~25% 정도에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생산시설을 설치한다면 쌀 자급도 훼손하지 않고 에너지 안보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해 현재 우리나라는 초유의 무역적자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토의 3.5~4%, 농지의 20~25%만 잘 활용하면 에너지 수입국에서 에너지 자립국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들도 RE100을 달성해 최적의 산업생태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2022-12-11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즐기는 이유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필자는 오랫동안 테니스와 골프를 즐겨왔다. 둘 다 나이가 들어도 즐길 수 있는 개인 운동으로 즐겁고 건강에도 좋은 운동들이다.그런데 “테니스와 골프 중 어느 운동이 더 즐거운가”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테니스”라고 대답한다.필자가 왜 테니스를 더 좋아하고 즐길까 하는 이유가 좀 색다르다. 운동량이 더 많아서 라든가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점이 보통 테니스를 골프보다 더 좋아하는 대표적인 이유이다.테니스가 2시간 정도의 운동량으로 4시간의 골프운동량을 넘어서고 잠시 시간을 내서 칠 수 있지만 골프는 하루 종일 시간을 내야 하고 비용도 한국에서는 테니스보다 엄청 비싸기에 그런 이유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대표적 이유가 된다.그런데 필자가 테니스를 더 즐기는 이유는 위에 열거한 이유도 있겠지만 아주 색다른 이유가 있다.스코어를 세는 방식이 공정하기에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이다. 테니스는 상대의 공을 받아치면서 스코어가 카운트 되기에 속일 수도 없고 봐줄 수도 없는 경기이다. 물론 약한 상대를 위해 살살 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체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스코어도 정확히 카운트 된다.그런데 한국의 동호인 골프는 시작부터 룰이 파격적이다. 첫 홀이나 마지막 홀은 모두 파(par)라고 선언하기도 하고, 더블보기(double bogey) 이상은 카운트 안한다든가 하는 룰도 있다. 또 그린에서 OK라는 제도가 있는데 기준이 들쑥 날쑥이어서 한사람이 버디(birdie)를 하면 모두 OK라고 하면서 퍼팅을 안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공을 만지고 라이(lie)를 개선한다든가 오비, 해저드 티(OB, Hazard tee) 가 별도로 플레이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캐디에게 들은 이야기는 일본이나 미국사람들이 골프를 치면 스코어를 공정하고 정확히 카운트 한다고 한다. 스코어를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고 공정한 카운트를 통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이다.한국 골퍼들에게 인기를 끄는, 줄로 연결된 티(tee)가 왜 미국에는 없는지 한동안 의아했었다. 그런데 줄티는 타구 방향을 가르치기 때문에 룰에 어긋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룰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한국에서 불공정한 스코어링으로 진행되는 골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왜 미국은 과학, 의학 등 분야에서 노벨상을 300여 명도 넘게 받고 우리 한국은 한 명도 없는가? 그건 적당주의를 거부하고 룰을 지키는 그들의 몸에 밴 문화 때문이 아닐까?‘MIT, 스탠퍼드 같은 미국 명문대의 조교수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자조적인 말은 그들이 테뉴어라고 일컫는 종신직을 얻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반면, 한국 대학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명목뿐인 경우가 많다. 한국대학에서 테뉴어를 못 받아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교수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한국의 ‘적당주의’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학계뿐만 아니라, 최근 일어난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해서 오래전 일어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태풍 매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는 물론, 정교한 정책질문이 아닌 호통으로 일관하는 국회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학계, 사회, 정치 모든 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얼마 전 미국유학 중 맹장이 터져 수술을 해야 하는 아들이 대학병원에 입원했으나 수술을 즉시 하지 않고, 항생제 투여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는 의사를 보면서 답답해하던 기억이 있다. 수술은 안 할 수 있으면 안 한다는 원칙이 있다고 한다. 미국 의술의 현장 집행 방법에 대해 의문점을 가졌던 적이 있다.한국의 친구 의사는 “한국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아서 골프도 잘하고 그리고 병원에서 수술도 잘하는 거야. 자네 아들 맹장염 수술도 역시 한국이 최고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필자에게 한 가지 진한 의문이 다가왔다. “골프도 잘하고 수술도 잘하는 손재주 좋고 머리 좋고 재능 있는 한국 사람들이 왜 노벨상은 단 한 개도 타지 못할까?”엉뚱하게도 필자는 골프에서 원칙을 지키는 스코어링과 맹장염 수술을 미루면서 원칙에 충실하려는 미국의학이 답답하긴 해도 노벨상 수백개를 타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사실 수천가지 약품은 한국인이 만든 건 없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만든 약품과 CT, MRI 등 기술과 로봇 수술 등 대부분 서양에서 만들어 졌다. 손재주는 좋다고 하지만 그들이 만든 수술방식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생각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할까?“빨리빨리” 와 적당주의가 빨라보여도 결국 깊이를 더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를 가져와 각종사고는 물론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얕은 학문을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닐까?아마도 그건 동호인 골프에서부터 적당주의 카운트 방식을 몰아내는 것이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간다.

2022-12-04

기후 변화 불확실성에 대응할 역량 있는가?

양만재포항지역사회복지연구소 소장 폭우가 또 내렸다. 지난달 22일 오전 11시까지 울진군 온정면 182.5㎜, 영덕군 영해면 146.4㎜, 포항시 호미곶 139.5㎜의 비가 내렸다. 11월 최대 강수량이라고 했다.겨울에 즈음하여 집중 호우는 기후변화를 연속 실감한다. 지난 9월초 한반도에 상륙한 힌남노 태풍은 한국의 제조업의 기반을 붕괴시켰고, 포항지역 시민 10명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고, 600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시간당 100㎜ 이상 내린 폭우에 따른 천재지변의 자연재난과 도시화와 산업화에 의한 인재와 결합된 일명 ‘복합참사’(hybrid disaster)일게다.8월 서울 폭우, 9월 힌남노 폭우에 이어 11월에 다시 우리 경상북도 지역은 집중호우로 생명과 재산에 위협에 느끼고 있는데 반해, 호남지역은 최악의 가을가뭄으로 인해 광주지역은 30년만에 제한 급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기후변화에 따른 참사라는 말이 언어의 수준을 넘어 재산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은 갈수록 점증되고 있다. 왜냐면, 첫째, 기후변화는 태풍, 홍수, 산불 등과 같은 재난을 갑작스럽게 발생케 한다는 것이다.포항시가 겪은 힌남노 태풍으로 홍수 피해도 기후변화의 속성을 보였다. 또 기후변화로 인한 갑작스러운 자연재난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연속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참사가 발생하여 재난의 피해가 ‘계단식’(cascading)으로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서울과 경상지역에서 예기치 않은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전라도 지역은 최악의 가뭄 사태로 재난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상황이 입증하고 있다.기후변화는 다중적인 속성을 실감케 한다. 이상 기후현상이 발생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예기치 않은 재난이 발생하는 특징도 보인다.예컨대 지난 500년 동안 홍수피해와 무관하였던 지역에서 홍수피해를 키워 세상이 변했음을 체험하고 있다.우리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포스코 창립 50여년만에 공장가동이 멈춘 초유의 사태를 직면했으니 말이다.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창출하기도 한다. 지구의 평균기온 1℃가 증가하면 지구의 극단적인 참사를 일으키는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로 귀속시킬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기후변화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세계협의체가 지난 4월에 발표한 내용이다. “만일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1.5℃에 도달하면 약 22억 인구가 5년마다 더 잦고 거센 폭염에 노출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일부 생물종은 멸종하고 식량위기가 심화하고 새 전염병이 출몰한다.”점진적인 작은 기온 변화가 갑작스럽고 예측가능하지 않는 참사의 주범이 바로 기후변화이다. 202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시작하지 않으면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도 있다.기후변화의 재난증가는 이제 더 이상 강 건너에서 바라볼 불이 아니다. 재난의 강도, 범위, 빈도가 증가할 것이며 일상의 삶을 파괴하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세계 국가의 정상들을 향해 비판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전달하고 있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더욱 위협적인 주장을 했다.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존재론적 위협이며 이로 인해 인류는 여섯 번째 대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생존은 회색 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죽느냐 사느냐의 영역이다. 현대 문명의 존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기후 변화는 저지되어야만 한다.”기후재난 위험에 대응하는 전략과 방안도 결코 쉽지 않다. 복합재난인데다 과학적인 사실에 근거한 예측가능성이 낮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럭비공이나 다름없다. 예컨대 기상청의 예보가 예상에서 벗어나는 횟수가 증가하고 있다.우수한 장비를 갖춘 기상청은 힌남노 태풍이 포항에 근접할 것이라는 예보는 할 수 있지만, 포항시의 어느 지역에 어느 시간대에 400~500㎜ 집중호우 예측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아직은 못 미치고 있다. ‘위험’을 쉽게 인지할 수 있고 충분한 예상을 할 수 있고, 사전 징후와 예고가 통하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위험을 예측하기 힘들고 예측할 확률적 지식도 부재한 ‘불확실성이 높은 복합재난’이다.그럴지라도 우리는 지역수준에서의 기후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대처하는 실천적 전략으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기후 변화의 불확실성과 함께 살고 대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예측과 통제로 주도하는 중앙 집중식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지식에 의해 대처하는 기술 관료적인 방안으로는 부족하다.지역에서의 민관이 자발적이며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협조와 참여를 이끌어 내고 다양한 지식을 활용하는 ‘회복탄력성’과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한 현실이다.

2022-12-04

엘리트스포츠, 이제는 변해야 할 때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는 올림픽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스포츠강국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엘리트선수들의 종목별 분포를 보면 축구, 야구 등과 같은 인기종목의 비중이 높은 반면, 유도, 레슬링 등 이른바 올림픽 효자종목은 비인기종목으로 치부되어 선수부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비인기종목이 어려움을 겪는 원인에는 부모의 반대, 비인기종목 우수 선수의 인기종목 이동, 비인기종목의 지원 부족, 과도한 훈련 및 경쟁에 의한 부상, 그리고 부상 후 스포츠재활프로그램 부재로 인한 선수생활 마감 등이 해당된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은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특수성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즉각적 대처가 이루어지거나 해결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훈련에 의한 부상과 회복을 위한 컨디셔닝은 현실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대처가 가능한 일이다.최근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초·중·고·대학교 선수의 75% 이상이 부상을 경험하고, 그 중 25.4%는 심각한 부상으로 장기간 훈련을 불참하거나 운동을 중단한다. 특히 투기종목 등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경우 부상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35.9%가 부상으로 수술을 경험하고, 이들 중 71.9%는 수술 후 완전회복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고된다. 스포츠 상해 원인으로는 유연성 부족, 준비운동 부족, 개인의 내적 심리요인 등 본인 부주의가 가장 높았고 지도자의 부적절한 훈련도 포함된다.이렇듯 엘리트스포츠에서 선수의 부상은 선수 생활 동안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엘리트선수들의 부상은 일단 부상을 당하게 되면 나름대로 대처를 하더라도 재부상의 위험이 크다. 특히나 비인기종목의 경우 선수층이 얇기 때문에 특정 선수의 부상은 타선수로의 대처가 불가능하다. 이같이 부상이 선수생명과 경기력과도 직결됨에도 부상에 대한 자기관리 교육 프로그램과 회복을 위한 컨디셔닝 시스템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은 선수 및 지도자 대상의 정기적인 교육이나 연수를 통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장시간 반복훈련, 지도자 개인의 경험에 의한 훈련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행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육성체계를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종합적 개혁 방안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체육지도자의 코칭 전문성 제고, 스포츠과학자와의 협력 확대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구체적으로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 개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상황적 조건에 맞게 의과학적인 지원을 체계적으로 하는 체육지도자의 과학적인 지도 방식을 지원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더해 훈련계획 수립 시 객관적인 데이터와 스포츠의과학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체육지도자의 정기적인 과학적인 지원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스포츠현장에 스포츠의과학 기반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엘리트선수들의 부상 발생원인 가운데 과훈련, 근육의 불균형, 운동피로 등의 생리적 변인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엘리트선수들의 경우 거의 매일같이 강한 지구성이나 저항성운동을 하는 데도 몸은 늘 피곤하며 체력향상은 더디고 심지어 감기나 운동 상해까지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훈련의 효과가 과부하와 과보상의 원리를 통해 나타난다는 과학적 근거를 간과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체육지도자가 선수생활을 통해 체득한 현장경험은 더 없는 학습이지만 경험적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독일은 체육지도자의 지도 능력 유지와 향상을 위해 정기적인 보수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최근 조사된 자료에서 선수들이 바라는 지도자는 현역시절 뛰어난 운동경력보다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능력 등 전문지식이 풍부한 지도자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체육지도자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해야 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다.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처음 10위권에 진입한 뒤 2000년 시드니 올림픽(12위)을 제외하고는 줄곧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으나, 최근 개최된 도쿄 올림픽에서 LA 올림픽 이후 최소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 16위로 밀려났다.이제 엘리트선수들의 부상은 선수 개인의 경기력 저하를 넘어서 우리 지역은 물론, 국가적 차원의 스포츠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우리나라 엘리트 선수와 지도자들은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훈련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노력한 만큼 훈련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성적 위주의 장시간 반복훈련과 지도자 개인의 경험 위주 훈련은 그 효과를 저하시키고 선수의 부상 가능성만 높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엘리트스포츠의 선수층 유지 및 경기력 제고를 위해 스포츠현장에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지도 및 행정적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2022-11-20

신재생에너지 사업, 잘 진행하려면?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초여름, 경산에 있는 후배 공장을 방문했었다. 에너지 절감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후배가 공장 옥상에 설치할 ‘태양광 설비 계획서’를 보여주었다. 370kw 용량을 설치하는데 설치비용이 kw당 150만 원씩 모두 5억5천500만원이 들고, 1년 거치 9년 분할 상환할 경우 총 원리금은 6억8천347만4천997원(이자 1억2천847만4천99원 포함)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25년간 총수익은 15억1천851만300원이었다.후배는 10년 만에 원리금을 다 갚고 11년째부터는 매월 744만원, 25년째는 매월 663만원씩 수익이 나오는데, 노후연금 드는 셈치고 설치한다고 했다. kw당 매월 200만원 정도씩 수익이 나오는 셈이다.고향에서 한우 사육을 하는 한 지인도 한우 사육을 통해 얻는 수익 못지않게 한우 축사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수익이 대단하다고 했다. 농촌지역 한우 축사가 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태양광 안내 전단지가 붙여져 있는데, 100kw당 매월 189만원 이상 수익을 보장한다는 내용들이다.앞서 설명한 태양광 설비는 작은 공장 지붕에 소규모로 설치하는 시설이어서 설치비가 kw당 150만 원에 이르지만, 규모가 커지거나 논·밭처럼 설치가 용이하면 설치비는 100만원 정도까지 내려온다.태양광 사업은 설비만 갖추면 햇빛은 자연이 무한하게 주기 때문에 엄청난 수익성이 보장된다.태양광 설비는 kw당 2평(6.7㎡) 정도의 땅이 필요하기 때문에 농지에 설치하는 것이 가장 쉽다. 현재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조수익으로 따져 벼농사의 20배 정도 수익이 나온다. 태양광 임대업자들은 벼농사 순수익 2배(평당 6천원 정도) 정도의 임대료를 지주에게 주는데, 사실 태양광 조수익은 평당 10만원 이상이 나온다.앞서 얘기한 후배의 공장 지붕 태양광 설비비용은 kw당 200원 정도이지만, 올해 한전이 발전사들로부터 사들인 전력비용은 kw당 270원이며, 내년에는 300원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가정 전기요금이 110원, 산업용 전기요금이 130원 정도이지만 곧 OECD 평균인 250원까지 오를 전망이어서 태양광 발전사업은 지금보다 더 수익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태양광 시설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를 언제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마스터플랜은 국가 차원에서 세워져야 한다. 독일의 경우 2030년 65%, 2040년 80%, 2050년에는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체 에너지를 감당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에너지 사용량에서 평소 원자력이 대략 20~25% 감당한다고 보면 2050년까지 나머지 75~80%는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해야 한다. 그러려면 2030년까지 35%, 2040년까지는 55% 식으로 장기적인 목표가 설정돼야 한다. 에너지의 75~80%를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 국토에서 농지가 18%를 차지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농지의 20~25%를 사용하면 된다.태양광 외에 풍력,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도 있으나 농지의 20~25%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농가의 수익이 늘어나고 일자리도 창출돼 농촌소멸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농지에 태양광 발전을 하는 방법은 독일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주민이 주체가 되는 ‘주민 주도형’으로 하되 절대농지는 영농과 태양광 발전을 병행하는 ‘영농형 태양광 발전’으로, 일반농지는 자유롭게 하면 될 것이다.현재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요소는 지자체마다 조례로 규제하고 있는 ‘이격 거리’와 ‘주민 민원’이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마을에서 300~500m, 군도(郡道) 이상 도로에서 300~500m씩 거리 제한이 있다. 그러다 보니 태양광 시설이 최적지인 농지를 피해 대부분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 조례에 부합하는 농지는 국내 전체 토지의 1%도 채 안된다고 한다. 구미시의 경우 0.09%라는 보도도 있었다.주민민원도 태양광 건설의 큰 걸림돌이다. 단체장들이 선출직이다 보니 민원이 발생할 경우 조례에 부합하는 땅이라도 태양광 설비를 할 수 없다. 주민민원으로 인해 태양광 및 설치 허가 기간이 중국과 유럽은 6개월~2년인데 우리나라는 5년씩 걸린다고 한다. 이 모든 문제가 농민들은 태양광에 대해 무지한 반면, 일부 정보에 밝은 태양광 업자들이 아주 적은 비용만 임대료로 지불하고 태양광 사업을 하면서 생긴 문제다.주민들에게 사전에 태양광 발전사업의 엄청난 수익성을 솔직하게 밝히고, 마을 단위로 협력해서 대단위 발전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 농지는 우선 장기적인 계획하에 산업단지 주변부터 태양광 시설을 할 필요가 있다. 신재생에너지가 필요한 산업단지 입주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생산자와 수요자(기업)가 공동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이끌어 나가면 각종 규제나 민원에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22-11-20

나비처럼 걷기

이원만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나비가 백송이의 꽃을 기웃거린다면 그 중 아흔아홉 송이는 ‘그냥’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기웃거린다. 그래서 나비의 비행은 요리조리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풍경을 ‘저기를 사서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될 것이다’며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다. 나비처럼 ‘그냥 즐기지’ 못한다. 우리의 감수성은 빠른 속도, 유용성, 수익, 효율성, 경쟁에 익숙해졌고 느림, 유연성, 대화, 호기심, 무용성, 우정 같은 것에 무감각하다. ‘어디로 가기위해서가 아니라 걷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식의 말을 들으면 뭔가 뒤쳐진 자의 핑계 같아서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얼마 전 소설을 쓰는 친구가 찾아왔다. 서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지역의 어느 작은 도시에 방을 얻고 틈만 나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걸어 다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도시의 가로수 한 그루, 골목 한 귀퉁이도 다 아름답고 길에서 만나 인사하는 사람들의 친절함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감수성의 근육이 다시 생겨났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다니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 자신에게 느긋한 시간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공간을 제공하는 중이고 한 동안은 ‘자기 자신에게 윤리적인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내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내생각도 흐르기 시작한다.’고 했다. 니체도 지팡이 끝에 잉크를 넣어 다니며 걷기가 주는 생각들을 그때마다 휘갈겨 책을 썼다. 빅토르 위고는 걷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벌떼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찼다.’고 했으며 평생 도보 여행자였던 릴케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산책은 ‘살아있는 책을 읽는 것’이고 산길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여 그어놓은 ‘자연에 친 밑줄’이라는 것을 많은 예술가들이 말하고 있다. 그렇다. 걷기는 쇼핑과는 다르다.프랑스의 비행청소년들을 감옥대신 걷게 함으로서 사회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단체인 쇠이유협회에 따르면 걷기는 내면의 여정 즉 ‘활기-존재감 높이기-신뢰를 쌓는 능력-연대감’을 느낄 수 있어서 오래 걷다보면 결국 자신에 대해 감탄할 만한 일을 발견해 낼 수 있어서 감옥보다 훨씬 교정효과가 높다고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음식, 햇볕에 아름답게 빛나는 나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더운 몸을 식혀주는 명랑한 계곡물소리, 힘들 때 함께 부르는 노래. 상상해보면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상큼하고 향기로운 공기처럼 내면으로 들어와 우리 안의 퀴퀴하고 어두운 것들을 함께 뱉어내게 만든다.유럽을 가보면 한적한 공원에 사람들이 의자와 담요를 들고 모여들더니 제각기 의자를 펴고 담요를 무릎위에 올리고 바로 책을 펼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상에 있는 가장 평화로운 모습이라 부러워하며 바라본 적 있다. 그리고 오래 지켜보고 있으면 책을 덮고 공원을 산책하며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산책을 하거나 혼자 빠져나가 걷는다. 걷다가 들고 있던 책을 친구들에게 낭송하거나 홀로 암송하다가 잊어버린 듯 자주 펼쳐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펼쳐진 일이라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본 일상적인 풍경이다. 저 여유로움과 그냥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의 걷기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날며 꽃을 읽는 나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느림이란 더 빠른 박자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느림은 시간을 성급히 다루지 않겠다는 의지,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살지 않겠다는 의지, 세상을 넉넉히 받아들이며 인생길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키워가겠다는 의지의 확인이다” 프랑스의 수필가인 피에르쌍소의 말이다.한가롭게 걷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기고 바위에 걸터앉아 쉬면서 영혼의 숨쉬기를 하라는 말이다.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일상을 삶의 리듬으로 만들어 지속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에너지가 된다는 말이다. 우연히 만난 들꽃 한 송이에도 우리는 변화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장은 더 나은 인간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끊임없이 해낼 때 선물처럼 주어진다. 더 적게 소비하고 더 풍성하게 누리는 ‘대안적 쾌락’은 이제 시대의 요구이다. 그래서 ‘빨리 도착하기’가 아니라 ‘나비처럼 걷기’다.가을이다. 많은 이들이 가을단풍을 구경하기 위해 산길을 걷는다. 나무라는 책을 읽으러 간다.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고 새들이 끼어들어 ‘이 구절 어때?’ 암송도 해 줄 것이다. 산길을 걸으며 ‘저 풀은 허리에 좋고, 위에 좋고’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솔바람소리에 바람을 꿰어서 헤진 마음 한 구석을 바느질하는 것은 어떤가. 먹과 종이를 들고 소나무 숲에 부는 솔바람소리를 듣기위해 만나고 물감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김치 국물로 단풍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낸 조선선비들의 풍류모임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짧은 가을, 혼자서 하루를 길게 늘여 쓸 수 있는 느리게 걷기를 권한다. 나비처럼 걷기를 권한다.

2022-11-13

내우외환 위기의 참된 극복 방식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북한은 미사일을 쉴 새 없이 쏘아대고, 이태원에서는 156명의 고귀한 생명이 압사되었다. 물가고와 환율 등 경제위기는 차치하고라도 나라 전체가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극복하는 중지를 모아야 할 시기이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가 있을 때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한국적인 대형 참사는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적 토픽이 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고, 8년 전 세월호 사건으로 수백 명의 어린 학생이 희생되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은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는데도 또 다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서울 도심 이태원에서 발생한 것이다.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간 정부의 미흡한 대책 때문일까. 우리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일까. 하루 빨리 총체적 위기의 극복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핼러윈 행사로 빚어진 이태원의 참사(慘死)는 형언하기 어려운 후진국적 비극이다. 이 참사는 세월호 이후 최대의 참사(disaster)인데도 정부는 우발적 사고(accident)로 규정하고 싶어 한다.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들마저 면피용 발언만 남발하는 뻔뻔함까지 연출하였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찢어지는 심정을 조금도 이해치 못한 행태이다. 용산 대통령실 앞의 반정부 시위를 막기에 여력이 없었다든지 마약 단속 때문이라는 변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해야 할 당국이 11만여 명의 인파가 밀려오는데 파출소 순경 30여 명으로 대처했다니 더욱 어이가 없다. 현장에서 ‘압사’될 것 같다는 참가자의 10여 차례 이상의 긴박한 신고마저 112 상황 본부는 무시해 버렸다.일선 경찰과 경찰청장, 당해 장관의 보고 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을 좋아하여 찾아온 외국인 26명이 희생되었다. 경제 강국, 문화 강국이라는 한국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실추되었다.이 와중에 김정은 정권은 동·서해에 수십 발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다 곧 7차 핵실험을 단행할 징조까지 보인다. 이 미사일 비용은 돈으로 환산하면 북한의 1년 쌀 수입 액수와 거의 맞먹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마디로 김정은 정권의 파렴치한 행위이다.처음에는 새 정권 출범 초기의 엄포라고 생각했으나 이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여 미국을 자극하고 있다. 그 한발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북방한계선(NNL) 남쪽에 떨어졌다. 그들의 본심은 하루 빨리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미국과 협상하여 소위 그들의 국가 존엄을 보위하겠다는 것이다.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한미 연합 훈련에서는 한미 연합 공군기 240대가 공대지 미사일 발사까지 연습하였다. 이에 북한군은 즉각적으로 동·서해에 지대공 미사일로 맞대응했다. 이러한 한반도 상황이 오래 가다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러한 외환(外患)도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윤석열 정부는 ‘막을 수 있었는데 국가가 없었다’는 성난 민심을 직시해야 한다.이태원에서 희생된 꽃다운 젊은이들의 장례식이 가족장으로 끝났다. 정규직에 취업하여 기뻐하던 젊은이, 결혼을 앞둔 신부마저 세상을 떠났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책임자만 처벌하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잠잠해지는 것이 우리의 반복된 현실이다.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사전 대처를 소홀히 한 치안 당국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정권 초기의 상부의 눈치만 보면서 무사안일한 행정이 빚은 충격적 비극이다.행안부 장관의 현장 병력이 많았더라도 사고는 불가피했다는 발언은 전형적인 책임회피식 발언이다. 경찰 기동대는 대형 참사 후 뒤늦게 도착하였다. 사고 현장에서 인파를 해치고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쓴 파출소의 경찰관, 인공호흡으로 여러 명의 생명을 살린 미군, 참사 현장의 의인들이 오히려 돋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로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이미지는 또 다시 추락하고 말았다.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원적 처방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여기에는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여당은 눈만 뜨면 야당의 비리를 폭로하고, 사법부를 통해 상대 후보를 잡아넣겠다고 벼르고, 야당은 이에 질세라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구태의 정치가 국민을 불안케 한다. 이러한 정황에서 올바른 위기 극복의 대안이 나올 수 없다.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여야의 극한적인 정쟁을 멈추고 화해 정치, 협치를 제안한 바 있다.상대를 비난하고 공격해야 내가 살 수 있는 상호 부정과 거부의 정치에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민생은 날로 달로 어려운데 눈만 뜨면 상대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정치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치권은 겸허히 상호 반성하여 국민적인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의 각성이 우선되어야 위기의 진정한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다.

2022-11-13

블라인드 초래하는 블라인드 채용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최근 연구계에는 신선한 소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전임 정부가 시작한 블라인드 채용은 최소한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만큼이라도 자유로운 채용 조건을 제공하여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이번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25개 출연연 중 18개 연구소가 블라인드 채용의 폐해를 지적했고 반대했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연구기관의 연구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과학기술계에선 숙원사업처럼 여겨져왔던 이슈이며, 현 정부가 인재를 효율적으로 발굴하여 과학기술을 증진시켜 강국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계에는 단시간의 면접으로는 업무적합도 판단이 힘들다고 보고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고, 일부 의원들이 과학계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는 법안도 발의했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려왔다.‘블라인드 채용’이란 무엇인가? 눈을 가린다는 영어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을 합친 개념이다. 채용할 때 학력, 경력 등의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 업무와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학력이 철저히 배제된다. 윤석열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에 대하여 일부 교육시민단체와 노동계 일부가 반발했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후퇴할 경우 학벌과 인맥을 중시하는 채용·인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실제 국내 기업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 등 불이익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국가인권실태조사를 확인한 결과,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학력·학벌의 차별을 겪었다는 실태가 발표된 적도 있다. 일리있는 반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한 채용인가 하는 판단도 쉽지 않다. 5년 전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했으며, 소위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 학벌, 출신지역 등에 대한 의무할당제를 포함한 채용이므로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하게 진행되는가 또는 자기의 스펙이 깡그리 무시되어도 좋은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는 스펙을 어필하려는 편법이 쓰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메일 주소 기재란에 대학 이름이 들어가는 도메인을 쓰면 대학을 표시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기재란에 학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동아리를 적거나 주소지를 학교 기숙사 혹은 학교 인근의 주소지로 적는 방법 등이다. 그래서 2017년 하반기부터 채용을 진행하는 다수의 공공 기관에서는 해당 행위를 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응시자는 어떻게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지 방향을 잡기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에 반대하는 심사자는 거꾸로 면접 대상자의 스펙을 유추해 보려고 애쓰는 현상도 나타난다. 인성과 업무적합성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짧은 시간에 오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공정을 해치는 것일 것이다. 학력과 학점, 경력 모두 한 사람의 노력의 결과물이며 업무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보조 자료인데 수십 년간의 노력을 모두 무시하고 짧은 시간에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인지 의심스럽다.최근 조사에서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50:50으로 의견이 갈라졌다는 것은 통계의 함정이다. 블라인드 채용하는 기업이 30%인데 조사는 이러한 기업을 상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70% 기업을 조사해 보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구중심의 기업이나 연구기관들에게 블라인드 채용은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다른 국가들을 보면 공공 부문 채용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전공·학점이 드러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없다. 공정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원서를 낼 때도, 회사에 입사지원을 할 때 이력서에는 반드시 학력과 경력을 쓰게 되어 있다. 블라인드 채용(Blind Hiring)제도의 진정한 의미는 외국에서는 다르다. 이는 지원자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등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여 남녀 차별과 연령차별을 막자는 의도이지 학력, 경력, 스펙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직이나 연구직에서는 학력, 경력이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지원자는 자기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과거의 노력을 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이기 보다는 노력한 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일 뿐일 수도 있다.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야 한다. 우수 인재를 구별하지 못하는 블라인드를 초래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적절하게 개선하면서도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학 출신 같은 학력으로 불리함을 감수하지 않도록 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블라인드 즉 장님을 만드는 무조건적 블라인드 채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22-11-06

공황장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손자병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은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이다.이 구절을 “공황장애를 알고 나를 알면 공황발작이 백번와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생각해 본다.먼저 공황장애, 공황발작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화재경보기와 비유(比喩)해 본다. 화재 예방과 빠른 화재 진압을 위해서 건물에 설치된 화재경보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화재경보기가 고장이 나서 불이 났는데도 작동을 안 한다면 문제이고 반대로 지나치게 예민해서 담배 연기에도 작동한다면 이 역시 문제이다.화재경보기가 고장 났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린다면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할 것이다.이처럼 우리 뇌 속에도 일종의 불안 경보기가 있다. 이 불안 경보기는 자율신경중추인 뇌간의 청반(locus ceruleus)으로 알려졌고, 인간의 긴급대처 반응을 주관한다.불안경보기는 밤길에 강도를 만난다든가 하는 위급 상황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작동해서 우리로 하여금 재빨리 도망치게 하거나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만일 위험이 닥쳤음에도 불안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멍하니 있다가 생명을 잃게 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불안 경보기가 너무 예민해서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응급 상황이 아닌데도 공황 발작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면 이 역시 문제이다.공황장애를 앓는 사람이 불안 경보기가 예민해서 공황발작이 온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질 것이다.이제, 공황발작을 의인화해서 공황발작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나는 공황발작이다. 나는 예고 없이 갑자기 사람들을 방문한다. 나는 나의 방문객(공황발작을 겪는 사람)에게, 밤에 외진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바로 앞에 만난 것처럼 심장을 급격하게 두근거리게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호흡 곤란 등의 정말 뜬금없는, 갑작스러운 신체적 증상을 나타나게 한다.나의 방문객은 ‘이제 죽겠구나’하는 엄청난 공포감과 불안감으로 나를 마주한다. 심지어 내가 방문하지 않을 때조차도 내가 또 오지 않을까 하는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을 느끼며, 심장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뇌졸중 등의 신체적 질병으로 죽지 않을까 걱정하게 한다.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이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만 봐도 소스라치듯, 나를 만난 유사한 상황이나 장소를 피하게 된다. 결국, 나의 방문객은 공황장애가 깊어지면서 갈 수 없는 곳, 삶 전체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방문객의 삶은 위축되며 삶의 반경도 좁아지는 등 공포와 불안은 일상화된다.나는 나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하겠다. “내가 보여주는 갑작스런 신체적 증상은 비록 그 순간 힘들고 괴롭다고 하더라도 나의 방문객이 나를 가만히 바라볼 수만 있다면 짧게는 수분이내 아무리 길어도 일반적으로 1시간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나는 우리 속에 있는 호랑이와 같아서 나의 방문객 생명을 앗아갈 수 없다. 이제는, 예비 공황장애 환자인 우리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상황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황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식을 못할 만큼 자동으로 빠르게 반응해 우리가 생각을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정신의학적 용어로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자동적 사고는 매우 빨라서 우리가 인식하기 힘들다. 많은 경우 자동적 사고는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공황장애에서의 대표적인 왜곡된 자동적 사고는 ‘파국적 해석 오류(carastrophic misinterpretation)’이다. 예를 들어 공황 발작의 신체증상을 죽을 것 같다고 잘못 생각을 한다면 오히려 교감 신경계가 더 흥분돼 더 불안해질 것이다.또 공황발작이 오면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어서 자신이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잘못 생각을 한다면 공황장애는 더 악화 될 것이다. 공황 발작이나 공황 증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파국적 해석 오류의 왜곡된 자동적 사고와 이에 뒤따르는 역기능적 행동을 바로 잡아 주는 일은 공황장애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CBT)의 시작이다.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치료는 미국정신과의사협회의 공황장애 치료지침과 한국형 공황장애 치료지침에서도 약물치료와 더불어 가장 권고하는 치료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듯 공황장애도 공황발작이라는 증상 자체의 문제보다 그 증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공황장애를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공황장애를 알고 나를 알면 공황발작이 백번와도 위태롭지 않다. 즉, 공황장애를 정확하게 알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게 알면 공황장애는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2022-11-06

교사의 건강이 교육의 질이다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최근 코로나19 등 교직 환경 다변화로 인해 교사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심각한 상황이다. 교사의 77%가 1개 부위 이상, 59.3%가 2개 이상, 43.5%가 3개 이상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으며, 교사의 직무 스트레스 정도는 5단계 척도에서 평균 3.15로 일반 공무원 2.83, 기업체 직원 2.71에 비해 가장 높다. 일반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비슷한 높은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과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의학적 조치와 인식 개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우선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교사의 근골격계 부위에 대한 치료경력에서 통증호소자 중 절반의 교사들이 허리가 쑤시거나 어깨가 욱신거리는 통증을 단순한 피로나 퇴행성 질환으로 여기고 치료를 미루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병원, 한의원 등 전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비율은 23.3%에서 많게는 39.4%로 미미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허리 부위나 목 부위 통증 호소자 중 절반에 가까운 교사가 디스크 증상 의증으로 판단 된 후에나 전문적인 치료를 시작하는 등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인식이 낮아 예방과 관리에 한계가 있다.판서와 행정업무의 전산 처리를 매일 해야 하는 교사의 경우 물리적으로 반복되는 특정 자세가 신체 부위별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 또한 직무 스트레스, 직무 요구도, 사회 심리적 요인 등이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직무스트레스로 인해 심리적 부담이 생기게 되면 근육 긴장도가 증가하고, 근골격계 질환의 증상을 발생시키며, 때로는 증상에 대처하는 능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증상을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그러므로 간단한 스트레칭, 근력강화 등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과 관리를 위해 운동 프로그램을 교육현장에 적용했을 때 효과적이었다는 국내외 연구결과들이 많다. 사무직 근로자에서 근골격계 질환은 유병률이 높은 편이지만 간단하고 정기적인 스트레칭만으로도 예방이 가능한 질환이다. 운동요법이 근육의 가동 범위를 회복시키고 근막통증증후군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며, 경견완(목, 어깨, 팔)장애나 흉통, 요통의 치료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더욱 눈여겨볼 점은 근골격계 질환과 직무스트레스는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결과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있는 교사가 직무 스트레스 점수가 높게 나왔고, 직무 스트레스 치료 경험이 있는 교사가 근골격계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교사의 경력이 많을수록 그리고 가사노동시간이 길수록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가 높게 나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유해요인을 교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위험성을 스스로 파악하고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이기도하다.직무 스트레스는 고경력의 교사에게서 높게 나타났다. 스트레스 요인으로는 학생 인권은 지켜지는 반면 교권은 무너지고 있는 현 교육계의 권위상실로 인한 생활 지도의 어려움, 과도한 행정업무, 학부모 민원 응대 등을 들 수 있다. 학교급별에 따른 비교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가 고등학교 교사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다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의 업무 강도 조절과 근무환경 개선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한편 여가활동을 하지 않는 교사보다 여가활동을 하는 교사의 근골격계 질환 위험도와 직무 스트레스가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그러므로 교사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고 직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대책으로 여가활동을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특히 교사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만성요통은 유연성 증진, 근력 강화, 협응력 증진, 근지구력 향상과 동시에 생활 및 작업 자세 교정, 영양관리, 스트레스 관리 등 실기 위주 전문가교육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유산소운동은 에너지대사에서 발생하는 산소유리기를 제거하는 효소의 활성을 증가시켜 근골격계 질환자들에게 인체에 유해한 물질들의 생성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에 적합한 운동의 유형과 시간 그리고 강도 설정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사람을 가르치고 그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는 선한 영향력을 주고자 하는 이들이 교사다. 그런데 교사들이 지쳐가고 있다. 그들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학교라는 현장이 만만치 않다. 교사의 직무수행도는 수업 및 전반적인 학교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에 무엇보다 교사의 건강과 안전은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독일에서는 학교구성원 중 3명 이상이 그룹을 지어 운동치료를 원할 경우 스포츠지도사나 운동처방사 등 스포츠전문가들이 점심시간이나 일과 후 ‘찾아가는 서비스’를 통해 스트레칭, 근력강화운동, 스포츠마사지 등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제 먼 나라 얘기가 아닌 듯하다.

2022-10-30

신재생에너지 정책, 독일에서 배우자

위현복 (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미국의 뉴욕 주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로 늘리고 2040년에 100% 달성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 주로부터 신재생에너지를 수입한다는 내용이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545km에 이르는 송전망 건립에만 45억달러(6조5천억 원)가 투입된다고 한다. 뉴욕의 환경운동가들은 “탄소중립을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고 당면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대비는 늦으면 늦을수록 더 큰 대가와 비용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당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탄소중립 시대정신을 역행하다 지금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뉴욕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은 우리나라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우리 나라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은 지난해말 현재 7.2~8.1% 정도다. OECD 38개국(평균 28.0%) 중 꼴찌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삼성·SK), 자동차(현대), 철강(포스코), 조선 등 세계 굴지의 제조업체들이 즐비해 있어 전력소비는 세계 8위에 랭크돼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이루어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정부와 산업계의 대응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탄소중립 정책과 관련한 우리나라 정책은 어지러울 정도로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발표 때는 2030년 발전비중을 20%로 제시했었다. 그 뒤 2021년 NDC 발표 때는 30.2%로 상향했다가 2022년 다시 21.5%로 낮춰 잡았다.산업계에선 2021년 발표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에 대해서는 ‘현실을 무시한 불가능한 목표치’라고 했다가, 올해 정부가 목표치를 낮추자 이번에는 “2030년 40% 이상은 돼야한다”며 롤러코스터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우리와 비슷한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독일은 지난 2016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9.3%였지만 2021년에는 40%를 상회했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5년에는 55~60%, 2050년에는 80%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50년 목표치를 100%로 늘렸다. 에너지 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전쟁과정에서 뼈저리게 터득했기 때문이다.독일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1990년까지만 해도 0%에 가까웠다. 그러다가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2050년 ‘탄소배출 제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9월 5일 삼성전자가 RE100 가입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신재생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기업들은 곧 공급망을 포함해 RE100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무역장벽에 부딪히게 된다.만약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한계점에 달하게 되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할 상황에 놓일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 SK, 현대, 기아자동차가 앞다퉈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이유 중에는 신재생에너지 100% 공급이 가능한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필요성도 포함돼 있다. 일본 소니사가 지난 202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늘려주지 않으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뒤, 일본정부가 부랴부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목표를 20%대에서 38%로 상향한 것은,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재생에너지를 충분히 제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 규제 위주로 제정된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정비도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할 때마다 야기되는 민원 해소를 위해 ‘주민주도형’ 발전사업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독일의 경우 지난 2009년과 2014년 재생에너지 실행계획과 재생에너지법 제정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재생에너지법에 의해 독일의 태양광발전시설(600만개 이상) 대다수는 개인이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발전사업자가 지주들이 토지를 임대해 발전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수많은 민원이 제기된다. 태양광발전사업자들이 금융기관 대출로 대규모 토지를 임대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대출 비리, 민원쇄도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다.발전사업을 주민주도형(지주, 기업, 금융기관, 시공사 참여)으로 하면 민원문제 해결, 과다대출에 따른 부작용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을단위 발전사업(한 마을에 최소 10MW 이상 30MW 정도)에 따른 규모의 경제도 실현된다. 마을단위 발전사업을 할 경우, 관리인력 일자리(1MW당 3명 정도)와 발전수익(논농사의 20배 이상 수익 기대)으로 농촌의 소멸을 막아낼 수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도 물론 가능하다.

2022-10-30

교육부 존재의 의미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교육부가 고위 공무원이 파견되던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를 다른 부처 공무원과 민간에 개방한다고 발표했다.교육부가 임명하던 자리를 개방하고 총장이 사무국장 임용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인사 개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교육부 공무원 임용은 원칙적으로 배제된다고 한다.대학 사무국장은 예산 편성, 인사 업무 등을 총괄하는 주요 보직이다. 그동안, 대학에선 교육부의 사무국장 임용권이 대학 관리·통제 수단으로 변질했다며 총장에게 임용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고 이에 이번 정부가 대학의 자율성·독립성 차원에서 화답을 한 것이다.지금까지 교육부의 대학 간섭은 늘 대학 자율성의 화두가 되어 왔다. 대학 교무회의에 참석하면 대학에서 가장 골치 아픈 논의가 어떤 학과의 정원을 줄여서 어떤 학과의 정원을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아마도 한국대학에서만 빚어지고 있는 기현상일 것이다. 가끔 대학입학정원 감축을 대학 자율에 맡긴다는 정책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대학정원 결정을 교육부가 갖고 있다. 이는 대학을 규제하는 무기로 종종 쓰인다.그동안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없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다”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어왔다. 교육부가 대학지원을 무기로 입학정원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까지 여러 가지로 대학을 규제하여 왔기 때문이다.한국은 고교 졸업자의 대부분이 대학에 가는 국가이며 이 비율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대학은 국가 경쟁력의 지표라는 점에서 교육부의 정책은 그만큼 중요하다.대학 진학률이 최상위인 반면 대학의 자율성은 최하위일지도 모른다. 자율화가 혼란을 초래한다는 이유와 교육부가 재정을 무기로 대학을 컨트롤 하겠다는 발상은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왔다.교육부는 대학의 창의와 혁신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큰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규제’보다는 최소한의 사항만 금지하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교육부가 정한 것 이외에는 대학이 무엇이든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혼동하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는 대학을 규제하지 않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고 상황이 안 좋을 때는 대학을 도와주는 것이 교육부가 할 일이다.교육부 폐지가 최선이다라는 말이 안 나오려면 교육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좀 더 잘 구분해야 하고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입학정원 감소와 관련해서도 상황은 거꾸로 가고 있다. 대학을 규제하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교육부가 평시에도 대학지원을 무기로 대학을 규제하고 있다가 위기 상황에서 대학의 고통은 대학자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받게 될 지역 군소 대학이나 전문대 같은 취약 대학에 좀 더 많은 지원책을 입안하여 그러한 대학들이 입학정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평가는 필요하고 평가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규제의 칼을 사용하던 교육부는 이제 대학 생존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교육부가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를 다른 부처 공무원과 민간에 개방한다고 발표하면서 인사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 창조적·발전적인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매우 바람직한 발상으로 보인다.그런데 교육부가 국립대학 사무국장을 대기발령 낸 것에 대해 전국공무원노조 대학본부와 교육부공무원노동조합, 국가공무원노동조합이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교육부 공무원의 반발이 심해 보인다.결국 자기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전문성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타 부처나 민간인에게도 이러한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한 인재들은 많을 것이다. 다만, 공개 모집에 교육부 공무원도 응모 자격을 주는 것은 고려해 볼만하다. 아마도 그러한 자격을 주면 또다시 정실이 작용될 우려가 있기에 교육부 공무원은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다만, 이번 정책을 발표하기에 앞서 교육정책 전문가의 의견과 대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의 토론회, 공청회 등을 거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간다.공무원 노조는 현재의 개방형 직위의 문제점과 기존 사무국장의 출신별 호응적합도 내지 만족도 등의 조사·분석도 병행해 제대로 된 인사개편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점은 보완되어야 할 사항이다. 사실상 국립대학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이번 조치이외에도 장기적·체계적 방안이 필요하고 사무국장 공개모집안은 그런 장기 전략의 맥락 안에서 처리될 수 있을 것이다.교육부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대부분의 국가가 교육부가 있다는 관점에서 교육부 폐지는 지나친 주장이지만, 교육부가 대학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교육정책을 펴는 것은 OECD 국가의 멤버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격을 확보하는 것이다.이번 사무국장 개방안이 슬기롭게 해결되어 잘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2022-10-23

경제·문화 강국 한국의 저급한 정치 위상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한국의 ‘오징어 게임’은 미국 넷플릭스 드라마부분에서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수상했다. 송강호의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에 이어 이번 수상은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 수준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 등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가 이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그 우수성을 세계가 인정받은 결과이다.작품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빈부의 갈등구조, ‘오징어 게임’은 적자생존의 치열한 자본주의적 경쟁구도를 리얼하게 묘사하였다. 한국인 특유의 성취 욕구와 경쟁의식, 조급한 성공 스토리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구조를 잘 반영해준 결과이다.과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열등의식을 가진 적도 있다.이제 우리는 한국적인 정서와 끈기가 선진국에서도 먹혀든다는 확신마저 갖게 되었다. 한국의 영화, 음악, 음식, 언어까지 세계인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무척 다행한 일이며 한류(韓流)라는 이름의 우리의 문화가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있다.30년 전만 해도 우리가 해외여행을 나서면 일본인이냐고 자주 물어 곤혹스런 적이 많았다. 당시 일부 여행객 중에는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아 ‘예스’라고 해버린 사람도 있었다.그러나 근년 세계 속의 한국 위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세계 어딜 가나 한국을 알아주고 ‘코리아’하면 엄지를 치켜세운다. 올림픽과 월드컵 4강 신화 시절 필리핀 어느 섬으로 봉사 활동을 떠난 적이 있다. 필리핀 오지의 초등학생들까지 우리 일행을 보고 붉은 악마의 구호 ‘대-한-민-국’을 외쳐 깜짝 놀랐다. 당시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될 때 거리가 조용했다고 한다.우리는 이제 경제 규모면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이 되었다. 우리 경제가 2020년 기준 1인당 GDP가 일본을 앞서고, 최근 미국 와튼 스쿨에서는 한국의 국력이 세계 8위 일본을 앞질러 6위가 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하고 있다.우리 정치의 위상은 어떠한가. 1970년대 미국인들은 한국 정치를 미국에 수출하려는 현대 포니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비아냥댔다. 이제 우리의 반도체와 스마트폰, 전기 자동차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데도 유독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저질의 3류 정치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그간 군부 쿠데타와 권위주의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하였다. 우리 정치는 형식적인 제도적 측면의 민주정치의 틀을 갖추었으나 아직도 선진 민주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두 번이나 정당 간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아직도 정쟁으로 치닫는 여야가 격렬하게 맞붙어 싸우는 네거티브 정치가 일상화 되었다. 정치의 본질이 ‘권위의 합리적 배분’ ‘갈등의 완화’ 과정인데 우리 정치는 너무 비합리적인 낭비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플러스의 정치가 아닌 너 죽고 나 살겠다는 마이너스 정치가 자행되고 있다. 우리 정치는 조선왕조의 노론백파와 남인의 당파 정치에 머물러 있다.이러한 혼탁한 정치판에서 언론마저 책임을 방기하고 정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우리 정치 현실은 공정한 심판도 선수도 없는 진흙탕 싸움판이 계속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질 낮은 정치의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는가. 치열했던 지난 대선이 끝나고 여야의 입지가 바뀐 지 오래지만 여야는 선거 시의 마타도어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소수의 백로마저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국회에서 여야는 정책 대결이 아닌 사사건건 대립되고 고소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 사회도 진영으로 갈리고 합리적인 무당층이나 중도층은 회색분자로 치부되어 침묵하는 실정이다. 이럴수록 진영에 착 달라붙은 ‘디지털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의 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양심적인 시민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냉소와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우리 정치를 이 나라의 경제나 문화 수준만큼이라도 끌어올릴 수는 없을까. 어디에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여야 정치인들부터 각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저질 정치의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겉으로 민생과 공생을 외치지만 그 내면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여야의원들은 적대적 공생을 통해 권력과 특권을 향유하면서 차기 공천을 위한 충성 경쟁, 줄서기 정치에 몰입되어 있다.우선 여야는 우리 정치의 후진적이고 비생산적인 갈등 구도를 풀기 위한 특단의 긴급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당은 조건 없이 지난 정권을 향한 ‘보복 정치’를 중단하고, 야당은 집권 세력을 향한 ‘발목잡기 정치’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러한 ‘역사적 대타협’이 상생의 출발점이기 되기 때문이다.

2022-10-23

‘에너지 자립’ 농지를 활용하면 된다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문재인 정권은 임기를 8개월여 앞둔 2021년 9월 30일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0% 감축(2018년 기준)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30%까지 늘린다는 목표였다. 산업계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AMCHAM’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오히려 35%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그 후 윤석열 정부가 지난 8월 3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발표하면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30%에서 21.5%로 낮추자 이번에도 산업계에서 난리가 났다. 목표치가 너무 낮아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이유에서다.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기업들의 무역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 하겠다.지난 2020년 소니를 비롯한 상당수 일본 기업이 일본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주지 않는다면 일본을 떠나겠다고 경고한 적도 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20%대에서 38.6%로 늘렸다. 윤석열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국제흐름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삼성전자, SK텔레콤 등이 참여하고 있는 ‘기업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가 기업 60여 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30년까지 40%는 넘어야 해외 수준만큼의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 정부 목표치 21.5%의 두 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3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대기업 10곳 중 3곳이 ‘협력사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필요한 만큼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는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에 관한 법규가 따로 없어 국토부의 건축 시행령과 기초자치단체별 조례에 의거해 발전소 설립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군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 규정이 다르다. 특히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이 부정적(중금속 오염과 전자파 피해가 많다는 오해)이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태양광 발전소를 논밭과 같은 농지에 설치하는 것도 힘들다. 농지법에 따라 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보다 오염이 덜하고 설치가 쉬운데도 불구하고 태양광 발전소를 농지에 설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농민들이 농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할 경우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첫째, 소득에 있어서 쌀농사를 지으면 200평 기준 조수익이 100만 원 정도이지만, 태양광을 설치하면 조수익이 2천만원 정도로 20배 정도 된다. 둘째, 농사를 지으면 비료, 농약살포로 인해 환경파괴와 토양오염이 심각해진다. 그러나 태양광의 발전 원료인 햇볕은 무공해고 공짜다. 가끔씩 마른 수건으로 청소만 해주면 되고, 25년 쓴 자재는 100% 재활용되어 환경공해가 거의 없다. 셋째, 태양광 발전소 설립을 지주들이 직접 땅을 내놓는 ‘주민 주도형’으로 해서 마을 단위의 대규모로 할 경우 시공 자금 유치나 시공사 유치가 쉽고, 민원의 소지도 없어진다. ‘주민 주도형’으로 진행하면 행정기관에서 적극 지원도 유도할 수 있다. 넷째, 현재 농촌에는 고령화로 인해 농지는 방치되고 마을도 소멸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한마을당 3만 KW급 태양광 발전소 1기를 설립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100개 정도 생겨 농촌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것만으로도 농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설립해야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신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보다 한국이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위한 여건이 훨씬 더 낫다. 독일은 우리보다 한참 북쪽인 북위 50° 이상에 대부분 국토가 있고 일조량도 1년 1천56시간(일 2.89시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가 대부분 38° 밑에 있고 일조량도 1천459시간(1일 3.99시간)으로 독일보다 38% 더 많다.독일은 오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65%, 2040년에는 80% 달성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늦게 출발했으니만큼 2030년에는 40%, 2040년 60%, 2050년 80%를 꼭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국토의 4% 내외, 전국 농지의 25~30%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가능한 목표다. 한국도 신재생에너지로 충분히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것이다.지금은 구한말의 개항 못지않게 에너지 안보가 중대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에너지 안보를 달성하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국토의 4% 정도, 농지의 25~30% 정도만 태양광 발전소로 활용하면 충분히 에너지 안보,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농촌에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일자리가 대거 생겨나 기초자치단체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970년대부터 50여 년간에 걸쳐 일궈놓은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을 신재생에너지 장벽에 부딪혀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윤석열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탄소중립 달성을 통해 21세기에도 전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정부와 기업,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2022-10-16

임신 중 운동, 약인가 독인가

박성률트레이닝과학연구소장동국대 의과대학 연구초빙교수 일반적으로 규칙적인 운동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산모의 경우 운동이 본인과 태아에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산전에 하던 규칙적인 운동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활동도 자제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임신 중 적합한 운동과 신체 활동은 더 나은 신체 감각을 제공하고 자신감을 높이며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더 잘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또한 산모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여 감염에 대응하고, 근육이 강화되어 보다 곧은 자세로 이어지고 임신 중에 흔히 발생하는 요통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특히나 규칙적인 운동과 신체활동은 더 많은 산소가 폐와 혈관으로 들어가고 태반을 통해 아이에게도 전달된다. 임신 중에는 이전에 했던 거의 모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임산부에게 부적절한 자세나 동작과 부상 위험이 높은 운동 종목과 방법은 피해야한다.임신 첫 3개월 동안은 메스꺼움, 피로, 순환기 문제와 같은 증상이 두드러지며 유산의 위험이 가장 높다. 그러므로 가벼운 걷기나 요가와 필라테스와 같은 편안한 운동이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익스트림 스포츠와 투기종목을 제외한 모든 운동은 첫 12주 동안 허용되는데, 중강도 이상의 운동은 피해야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연구에서는 신체 활동이 활발한 여성이 조산할 위험이 더 낮다고 한다.임산부에게 특히 적합한 운동은 수영이다. 수중체조와 수중걷기도 적극 권장된다. 물의 부력은 모든 움직임을 더 쉽게 만들고 육체적인 부담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수중 운동은 임산부에게 무중력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등과 관절 치료에 도움이 되고, 시원한 물에서의 움직임은 림프 배수와 같은 역할을 하여 다리에 수분이 정체되는 것을 방지한다. 일반적으로 물의 온도는 18℃에서 25℃ 사이가 적당하다.수영의 여러 가지 영법 중 자유형과 배영은 큰 무리가 없다. 다만 평영은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릴 때 목과 어깨 부위에 긴장이 생길 수 있으므로 영법을 할 때마다 머리를 물 아래로 쭉 뻗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잠수는 숨을 참는 것이 아이의 산소 공급을 방해하기 때문에 임산부에게 적합하지 않다. 특히 압축공기 실린더를 사용하는 다이빙은 태아에게 기형이나 폐색전증의 위험이 있으므로 피해야한다.임산부의 경우 유산소성 운동은 중강도 안의 범위에서 수행하도록 권장된다. 빠르게 걷기나 가볍게 뛰기는 일주일에 세 번 20분에서 최대 하루 45분까지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29세 이하의 임산부는 분당 135~150회, 30~39세는 분당 130~145회, 40세 이상은 분당 125~140회를 제안한다. 심박수는 임신 중 운동의 부하나 스트레스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다. 따라서 항상 심박수 모니터를 착용하거나 때때로 휴식을 취하고 심박수를 직접 측정하는 것이 추천된다.그러나 임산부는 일반인과 다르게 운동 강도가 높아질수록 회복이 느리며 힘들게 인식할 수 있다. 운동 시 배뭉침이나 요통, 부종과 같은 증상을 포함하여 개인에 따라 생리적인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어 주의 깊게 관찰되어야 한다. 임산부가 운동을 할 수 있는 빈도는 개인의 건강 및 체력 수준에 따라 다르다. 최근 독일체육대학교(German Sport University Cologne)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주당 최대 3회까지 운동이 권장된다.출산 후 6주에서 8주의 산욕기에는 많은 생리적, 형태적 변화를 거치는데, 이 시기에도 운동이 권장된다. 산모의 느낌에 따라 출산 직후나 며칠이 지난 이후부터 운동이 가능하며, 의학적 문제가 없는 산모일 경우 간단한 운동부터 시작하여 점차 강도를 높여 주당 150분의 중등도 운동이 제안되기도 한다. 출산 후 회복기 운동은 복부 근육 강화와 에너지 소비 향상, 산후우울증 예방 및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심혈관 건강 증진과 체중 감소에도 효과가 있으며 수면의 질도 높일 수 있다.이같이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도 운동의 효과와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활발한 임상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비체중 부하 운동인 고정식 자전거와 수영을 포함하여 임산부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걷기 운동과 함께 근력 운동의 긍정적 효과도 밝혀지면서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있다.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일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일 중 하나다. 대체로 출산 후에는 임신 전에 비하여 체력이 일시적으로 저하하고, 임신 전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상당 시간이 걸린다. 또 증가한 체중은 출산 후에도 임신 전과 같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하고 있는 여성은 임신 기간 중에도 꽤 높은 체력 수준을 유지하며 출산 후에도 체중 감소가 빠르다.운동은 두 개의 날이 있는 검과 같아서 잘못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임산부의 건강상태, 체력수준, 운동습관, 생활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자신에 맞는 운동법과 운동량을 찾아서 하면 임신 중 운동은 약이 된다.

2022-10-16

대학 재정의 딜레마

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수시모집을 시작으로 다시 새로운 대학입시의 시즌이 돌아왔다. 이제 새내기들은 입시가 끝나면 자기가 선택한 대학에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그런데 대학 등록금을 신용카드로 받지 않는 대학이 있다고 국회에서 의원들이 호통을 친다는 소식이 들린다.신용카드 등록금 납부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작년 2학기 7만630건에서 올해 1학기 6만3천106건으로 감소했고, 올해 2학기에는 6만497건으로 더 떨어졌다고 한다.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대학들이 현금 수납을 선호하는 것 같다”며 “카드사와 제휴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했다고 한다.문제는 국회의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대학들이 카드수수료를 걱정할 정도로 재정에 쪼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대학재정 문제를 탁상공론으로 다룰 상황이 아니다. 대학 등록금은 투표를 의식하는 정치적인 이유로 10년 넘게 동결되어 왔다. 이 기간 동안 당연히 물가는 올랐고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들, 특히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대학들은 지금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교직원 임금을 미루고 있는 대학도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대학생들의 높은 학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든든학자금 대출제도와 국가장학금 제도가 2010년과 2011년에 도입되었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는 경우 정부의 학자금 지원이 학생 부담 완화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등록금에 대한 규제가 함께 도입되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 투자는 OECD 평균의 3분의 2 수준으로 하락했다고 한다.행정적 정치적 이유로 동결된 등록금은 대학의 목을 죄여오고 있다.그런데 이런 와중에 진보성향의 한 언론은 사립대 적립금이 많은데 돈을 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올해 2월 기준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적립금이 8조1천43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천억원 가까이 늘었다는 주장이다. 대학들은 재정난을 이유로 등록금 인상의 길을 터주길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우선 대학들은 쌓인 적립금 활용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다.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터무니 없는 지적이다.4년제 사립대 151곳 가운데 적립금을 1천억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대학은 20개교, 100억 이상의 적립금을 가진 대학은 84개교라고 한다. 포스텍은 주가가 좋았던 시절 기금 2조원으로 한국에서 단연 1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여전히 한국 1위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 반이하로 줄어들었다.진보 언론이 지적한 이러한 한국대학의 기금은 서구의 대학들 특히 미국대학들에 비하면 정말 초라할 정도이다.오늘날 세계를 이끄는 대학들 중 미국의 사립대학들은 모두 수십조원 단위의 발전기금을 가지고 있다. 동부 하버드, 예일, MIT의 발전기금은 60∼70조원에 달하고 있으며. 프린스톤과 서부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도 50조원의 기금을 확보 하고 있다. 기금 2조 이상인 대학은 50여개가 된다. 기금에 의한 대학운영비 투자도 한국과는 천지 차이이다. 한국의 사립대들은 기금에서 불과 몇억 많아야 몇십억 정도의 지원을 받는다, 대학 전체 예산의 퍼센티지로 불과 한자리 숫자에 불과하다.포스텍이 수백억으로 예산의 10∼20퍼센트 정도를 기금에서 지원 받는 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러한 퍼센티지도 미국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 발전기금 상위 5개 대학 예산의 발전기금의 기여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하버드가 20억 달러로 39%, 예일이 15억 달러로 35%, , 프린스턴이 14억 달러로 62%, MIT가 8억 달러로 30% 라고 한다.돈의 액수도 크지만 기여도도 대부분 30%를 넘는다. 심지어 60% 가 넘는 대학도 있다.미 사립대 발전기금 10년 평균 수익률 12%이고 이들 사립대학들은 매년 발전기금의 5% 정도를 대학 예산으로 쓴다고 한다. 물가상승률이 3%라고 가정하면 발전기금의 수익률이 최소 연 8%는 되어야 원금을 까먹지 않고 키울 수 있는데 이를 12% 수익률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대학 발전기금 운영을 최적으로 운영하면서 고수익률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의 수준은 발전기금 규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고 실제로 미국대학의 랭킹은 발전기금 규모와 비례한다.우리나라가 미국에 있는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정적으로 미국 선도 대학 같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액도 중요하지만 기여도의 증가도 중요하다.한국대학의 재정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등록금은 동결되고 기금은 적은데도 기금이 많다고 그걸 풀지 않는다고 비판하면 기금의 원금을 까먹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나마 연구비로 버텨야 하는데 주요대학을 제외하면 그것도 쉽지 않다.대학 재정의 딜레마. 언제까지 정부는 이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등록금 인상을 불허한다면, 대학 기금 확충을 위한 정부의 대책과 도움은 무엇일까. 대학의 시름은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더 깊어지고 있다.

2022-09-25

‘RE100’ 지원이 기업유치의 필수

위현복(사)한국혁신연구원 이사장 지난 6월 지방선거에 나온 대부분 후보들의 공통된 제1공약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가 최근 A 광역시에 가서 탄소중립 특강을 한 뒤 경제 부시장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 부시장이 말하기를, 해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협의를 마친 뒤 마지막 단계에서 그 기업이 “한국의 그 도시에 가면 RE100은 해 줍니까”라고 해서 공장 유치 계획이 마지막에 무산되었다고 한다.이제 공장을 유치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 전기, 상하수도 시설이 잘 정비된 싼 공단 부지만 제공해서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RE100까지 지원해야지 기업하기 좋은 도시의 조건이 되고 기업이 올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는 것이다.최근 미국에서 600조 원의 인플레 감축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중 468조 원이 기후대응 즉 태양광, 풍력 발전에 대한 투자와 송배전망 구축, 전기 충전소 투자, 전기차 보조금 지원 등인데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고 난리가 난 상황이다. 미국에서 하나의 완결된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468조를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를 100% 생산해서 완벽한 새로운 전력망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물류도 전기차로 담당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세상이 다가왔다.RE100을 국가 간의 규제로 인식해선 안된다. RE100은 2050년까지 기업이(공장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만 충당하겠다는 다국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약속이다. 기업과 국제단체가 주도한 자발적인 세계적 기후대응 협약이다.2022년 2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구글, 애플, 이케아 등 349곳의 다국적 기업이 RE100에 가입하였으며, 한국도 SK그룹 계열사와 LG에너지솔루션, 고려아연 등 14개 기업이 가입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9월에 들어서야 가입을 선언했다. 지난해 중국, 유럽, 미국에서 삼성전자는 RE100을 달성하였으나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를 2.7% 조달하는데 그쳤다. 이유는 태양광, 풍력을 설치할 땅이 없어서이다. 온갖 규제에 막혀 어디에도 마땅히 태양광·풍력을 설치할 부지가 없다는 것이다.태양광 설치에 관한 지자체(시·군)의 조례를 보면, 마을에서 300~500m 이상 떨어져야 하고, 군도 이상의 도로에서 또 300~500m, 심지어 1km 이상 떨어져서 설치해야 한다는 시·군도 있다. 거기다가 상수도 보호구역은 안된다는 환경부 규제까지 있어서 태양광이 자꾸 산으로, 저수지로 가고 있는 것이다.가장 깨끗하고 앞으로 지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태양광 발전 시설이 우리나라에서는 ‘혐오시설’ 취급을 당하면서 산으로 가는데 기업이 어떻게 RE100 달성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OECD 38개국 중 38등으로 지난해 기준 7.2%다. OECD 평균은 31%다. 우리가 후진국 취급하는 중국은 28% 이상, 우리와 기후여건이 비슷한 일본도 20%를 달성했다. 468조를 들여 미래형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고 야단인 미국은 22% 수준이다.EU는 내년부터 3년간 계도 기간을 거친 뒤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한다. CBAM이 시행되면 EU에서는 탄소세가 t 당 10~11만 원이고, 한국은 3만 원이므로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알루미늄 제품들은 7~8만 원의 탄소세를 더 부담하게 되어 이제 EU에 팔지 말라는 말과 같다. 미국도 같은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우리나라는 무역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나 되는데 수출국 2·3위에 해당하는 EU와 미국에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알루미늄 제품을 팔지 않고 경제가 돌아가겠는가.이제 기업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RE100을 지원해 주어야 하고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방정부 시민이 똘똘 뭉쳐 RE100이 갖춰진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RE100 달성을 위해서 우리나라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공장과 기업이 신재생에너지로 100% 가동될 만큼 신재생에너지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을 대폭 늘리는 것이 해답이다. 우리 국토의 3.5~4%에 태양광을 설치하면 2050년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70~75%를 재생에너지로 담당할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우리나라는 농지가 국토의 18%이다. 태양이 가장 잘 비치는 곳에 논·밭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주곡인 쌀은 남아돌지만 그 외 모든 곡물은 95% 이상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기계화된 영농을 통해 쌀농사를 지을 수 없는 모든 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하도록 법과 제도를 바꿀 경우 충분한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다.그리고 산업단지 주변의 모든 농지는 우선적으로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서 공장과 기업의 RE100 달성이 손쉽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202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