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구계에는 신선한 소식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임 정부가 시작한 블라인드 채용은 최소한 국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과학기술 분야에 있어서만큼이라도 자유로운 채용 조건을 제공하여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이번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25개 출연연 중 18개 연구소가 블라인드 채용의 폐해를 지적했고 반대했다고 한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연구기관의 연구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과학기술계에선 숙원사업처럼 여겨져왔던 이슈이며, 현 정부가 인재를 효율적으로 발굴하여 과학기술을 증진시켜 강국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계에는 단시간의 면접으로는 업무적합도 판단이 힘들다고 보고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고, 일부 의원들이 과학계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는 법안도 발의했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려왔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무엇인가? 눈을 가린다는 영어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을 합친 개념이다. 채용할 때 학력, 경력 등의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 업무와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학력이 철저히 배제된다. 윤석열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 폐지 방침에 대하여 일부 교육시민단체와 노동계 일부가 반발했다. 블라인드 채용 제도가 후퇴할 경우 학벌과 인맥을 중시하는 채용·인사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실제 국내 기업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 등 불이익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국가인권실태조사를 확인한 결과, 채용이나 승진 등에서 학력·학벌의 차별을 겪었다는 실태가 발표된 적도 있다. 일리있는 반발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한 채용인가 하는 판단도 쉽지 않다. 5년 전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했으며, 소위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 학벌, 출신지역 등에 대한 의무할당제를 포함한 채용이므로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하게 진행되는가 또는 자기의 스펙이 깡그리 무시되어도 좋은가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에는 스펙을 어필하려는 편법이 쓰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메일 주소 기재란에 대학 이름이 들어가는 도메인을 쓰면 대학을 표시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기재란에 학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동아리를 적거나 주소지를 학교 기숙사 혹은 학교 인근의 주소지로 적는 방법 등이다. 그래서 2017년 하반기부터 채용을 진행하는 다수의 공공 기관에서는 해당 행위를 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응시자는 어떻게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지 방향을 잡기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에 반대하는 심사자는 거꾸로 면접 대상자의 스펙을 유추해 보려고 애쓰는 현상도 나타난다. 인성과 업무적합성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짧은 시간에 오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공정을 해치는 것일 것이다. 학력과 학점, 경력 모두 한 사람의 노력의 결과물이며 업무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보조 자료인데 수십 년간의 노력을 모두 무시하고 짧은 시간에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인지 의심스럽다.
최근 조사에서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50:50으로 의견이 갈라졌다는 것은 통계의 함정이다. 블라인드 채용하는 기업이 30%인데 조사는 이러한 기업을 상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70% 기업을 조사해 보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연구중심의 기업이나 연구기관들에게 블라인드 채용은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다른 국가들을 보면 공공 부문 채용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전공·학점이 드러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없다. 공정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원서를 낼 때도, 회사에 입사지원을 할 때 이력서에는 반드시 학력과 경력을 쓰게 되어 있다. 블라인드 채용(Blind Hiring)제도의 진정한 의미는 외국에서는 다르다. 이는 지원자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등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여 남녀 차별과 연령차별을 막자는 의도이지 학력, 경력, 스펙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직이나 연구직에서는 학력, 경력이 매우 중요한 지표가 된다. 지원자는 자기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과거의 노력을 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이기 보다는 노력한 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일 뿐일 수도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야 한다. 우수 인재를 구별하지 못하는 블라인드를 초래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적절하게 개선하면서도 능력에도 불구하고 대학 출신 같은 학력으로 불리함을 감수하지 않도록 하는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블라인드 즉 장님을 만드는 무조건적 블라인드 채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