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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등록일 2022-11-06 17:59 게재일 2022-11-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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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사공정규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학박사

‘손자병법’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은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이다.

이 구절을 “공황장애를 알고 나를 알면 공황발작이 백번와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생각해 본다.

먼저 공황장애, 공황발작의 본질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화재경보기와 비유(比喩)해 본다. 화재 예방과 빠른 화재 진압을 위해서 건물에 설치된 화재경보기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화재경보기가 고장이 나서 불이 났는데도 작동을 안 한다면 문제이고 반대로 지나치게 예민해서 담배 연기에도 작동한다면 이 역시 문제이다.

화재경보기가 고장 났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린다면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뇌 속에도 일종의 불안 경보기가 있다. 이 불안 경보기는 자율신경중추인 뇌간의 청반(locus ceruleus)으로 알려졌고, 인간의 긴급대처 반응을 주관한다.

불안경보기는 밤길에 강도를 만난다든가 하는 위급 상황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작동해서 우리로 하여금 재빨리 도망치게 하거나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만일 위험이 닥쳤음에도 불안 경보기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멍하니 있다가 생명을 잃게 될 확률이 높고 반대로 불안 경보기가 너무 예민해서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응급 상황이 아닌데도 공황 발작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면 이 역시 문제이다.

공황장애를 앓는 사람이 불안 경보기가 예민해서 공황발작이 온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제, 공황발작을 의인화해서 공황발작의 입장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나는 공황발작이다. 나는 예고 없이 갑자기 사람들을 방문한다. 나는 나의 방문객(공황발작을 겪는 사람)에게, 밤에 외진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바로 앞에 만난 것처럼 심장을 급격하게 두근거리게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호흡 곤란 등의 정말 뜬금없는, 갑작스러운 신체적 증상을 나타나게 한다.

나의 방문객은 ‘이제 죽겠구나’하는 엄청난 공포감과 불안감으로 나를 마주한다. 심지어 내가 방문하지 않을 때조차도 내가 또 오지 않을까 하는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을 느끼며, 심장질환이나 호흡기 질환, 뇌졸중 등의 신체적 질병으로 죽지 않을까 걱정하게 한다.

자라를 보고 놀란 사람이 비슷하게 생긴 솥뚜껑만 봐도 소스라치듯, 나를 만난 유사한 상황이나 장소를 피하게 된다. 결국, 나의 방문객은 공황장애가 깊어지면서 갈 수 없는 곳, 삶 전체에서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방문객의 삶은 위축되며 삶의 반경도 좁아지는 등 공포와 불안은 일상화된다.

나는 나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하겠다. “내가 보여주는 갑작스런 신체적 증상은 비록 그 순간 힘들고 괴롭다고 하더라도 나의 방문객이 나를 가만히 바라볼 수만 있다면 짧게는 수분이내 아무리 길어도 일반적으로 1시간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나는 우리 속에 있는 호랑이와 같아서 나의 방문객 생명을 앗아갈 수 없다. 이제는, 예비 공황장애 환자인 우리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상황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상황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식을 못할 만큼 자동으로 빠르게 반응해 우리가 생각을 유심히 바라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정신의학적 용어로 ‘자동적 사고(automatic thought)’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자동적 사고는 매우 빨라서 우리가 인식하기 힘들다. 많은 경우 자동적 사고는 부정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공황장애에서의 대표적인 왜곡된 자동적 사고는 ‘파국적 해석 오류(carastrophic misinterpretation)’이다. 예를 들어 공황 발작의 신체증상을 죽을 것 같다고 잘못 생각을 한다면 오히려 교감 신경계가 더 흥분돼 더 불안해질 것이다.

또 공황발작이 오면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어서 자신이 아무 대처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잘못 생각을 한다면 공황장애는 더 악화 될 것이다. 공황 발작이나 공황 증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파국적 해석 오류의 왜곡된 자동적 사고와 이에 뒤따르는 역기능적 행동을 바로 잡아 주는 일은 공황장애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CBT)의 시작이다. 공황장애의 인지행동치료는 미국정신과의사협회의 공황장애 치료지침과 한국형 공황장애 치료지침에서도 약물치료와 더불어 가장 권고하는 치료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듯 공황장애도 공황발작이라는 증상 자체의 문제보다 그 증상을 바라보는 생각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

오늘 필자가 드리고 싶은 말은 공황장애를 편견(偏見)으로 보지 말고 정견(正見)으로 보자는 것이다.

공황장애를 알고 나를 알면 공황발작이 백번와도 위태롭지 않다. 즉, 공황장애를 정확하게 알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게 알면 공황장애는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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