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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북대화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문재인 정부는 남북대화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듯하다. 우리의 대북 대화 제의에 북한당국은 아예 무시하거나 묵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자체도 북한 당국은 이미 무시하였다. 평창 동계 올림픽 참여 요청,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사업 재개, 정부의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의 개최 제의까지 그들은 현 상황을 핑계로 거절해 버렸다. 어제는 평양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의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방북제의까지 묵살해 버렸다. 지난 4월 북한 아이스하키 대표단은 강릉 대회에 참석하였고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6월 무주에서 시범까지 보였다.북한당국이 우리 측의 방북을 차단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그들은 기본적으로는 남한과의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2000년 초반의 남북 정상회담시의 상황과는 북한의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기와는 달리 심각한 식량위기는 탈피하고 시장 경제의 확산에 따라 3.9%의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오직 미국과의 대화에만 목말라 하고 있다. 그들의 `벼랑 끝 전술`의 끝자락에서 미국의 대화 제의에 내심 좋을 수밖에 없으니 남한의 대화나 협상은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그들은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임을 인정받고 미국과의 통 큰 협상을 통해 실리를 챙기고, 김정은 체제의 안정 보장이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 대화와 협상에 조급증을 낼 필요는 없다. 대화에는 시기가 있고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협상 전술이기 때문이다. 그러한데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오직 대화에만 집념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물론 남북 대화와 화해 협력은 시대적 과제이다. 그렇다고 서두른다고 일이 쉽게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빈번한 대북 제의는 우리의 의중을 노출시켜 대화나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대화에 목말라 하고 조급해 할수록 북한 당국은 `갑`의 입장에서 느긋하게 대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대화의 협상은 남북관계 개선의 방편이지 목표는 아니다. 그것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10년의 남북 대화와 협상의 귀중한 경험이다.노무현 정부 말 금강산 남북 학술회의에서 북의 고위층 인사를 만난 적이 있다.당시 그는 북한은 `사상·정치 강국`은 끝났으며 이제`군사강국`을 거쳐 `경제 강국`으로 간다고 호언장담 하였다. 소위 그들의 `사회주의 강성대국 론`에 대한 선전이다. 나는 당시 북한의 민간대외 협력 관계 책임자인 그의 발언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 후 10년 지난 지금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의 최종 시험 단계까지 진입해 있다. 유엔이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결의했지만 북한은 또 다시 미사일 3발을 동해에 시험 발사하였다.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조급한 대화 제의는 우리의 체면만 손상시킨다.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진행 중인 시점의 대북 대화 제의는 더욱 적절치 않다. 정부는 대북 대화나 협상에 앞서 주변 4강과의 안보외교를 더욱 튼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 장관까지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상황이다.정부는 북미 협상이 본격화되기 전 한미 간 대북 정책 공조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17-08-28

자유한국당 개혁이 성공하려면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우리나라의 보수 양당은 대선에서 패하고 각기 당대표를 선출하고 경쟁적으로 당 개혁을 외치고 있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혁신으로 대한민국을 바꾸겠습니다.” 바른 정당은 `보수 개혁`을 당의 슬로건으로 설정하였다. 이들은 모두 `당 개혁`을 통해 당을 재건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연하고 옳은 말이지만 그 성패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보수 정당은 현 상태로는 내년 지방선거뿐 아니라 재집권의 꿈은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보수 정당은 다시 조직을 정비하고, 올바른 정책을 제시해야만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회복할 것이다. 류석춘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 자유한국당을 `웰빙 정당과 이익 정당`에서 `이념·가치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며 “그 과정에서 홍 대표도 혁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 조직의 인적 쇄신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강조한 발언이다.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내년 지방 선거와 뒤이은 총선을 대비하여 시급히 당 조직을 쇄신하지 않고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80%에 육박하고, 더불어 민주당 지지율은 50%를 상회하는데 자유한국당은 10%대라는 최악의 상황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당 이미지와 조직을 개혁하려면 다음의 과제부터 수행해야 할 것이다.첫째, 기존 당 조직의 파벌구조를 깨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바른한국당은 아직도 친박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일부 비박세력이 견제 대립하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친박과 진박으로 행세한 인사는 대통령의 탄핵을 막지 못한 책임부터 저야 할 것이다. 그간 친박 좌장 등 핵심 당직을 맡았던 사람 중 책임진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비박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한국당을 이념과 가치를 구현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려면 대대적인 인적 쇄신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둘째, 자유한국당은 실패한 대통령의 연관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해야 할 것이다. 홍준표 대표가 오랜만에 박 대통령의 당직 출당 문제를 그것도 TK에서 들고 나왔다. 그러나 당 혁신위원장과 당 지도부는 여태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감옥에 가 있는 상황에서 출당 조치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시체에 칼질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당이 `박근혜당`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출당 조치를 반대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의 출당 문제를 두고 당내의 친박과 비박은 또 다시 심각한 내홍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탈당이나 출당이라는 입장 정리 없이는 당 이미지의 교체는 어려울 것이다.셋째, 보수정당은 특정 지역 중심 정당 조직에서 하루 빨리 탈피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TK)을 제외하면 전 지역에서 패배하였다. 홍준표 후보가 경남에서 겨우 0.5%의 차의 승리를 거뒀을 뿐이다. `우리가 남이가`하는 TK지역의 자유한국당의 완승이 무슨 정치적 함의를 가지겠는가. 보수정당은 과거의 경상도 사람만 뭉치면 된다는 옹졸하고 편협한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수도권의 고지를 탈환하여 전국 정당화를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이러한 조직의 확대와 재건만이 당을 회생시킬 것이다.넷째, 당 조직 개혁을 위해 참신한 신진들을 대거 영입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20대에서 50대 청장년층은 대부분 진보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당 조직에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고 참신한 젊은 세대를 대대적으로 수혈하여야 한다. 정치 신인들에게 볕도 쬐어주고 물도 주고 자양분도 공급하면서 미래에 투자해야 보수당의 살길이 생긴다. 프랑스 선거 혁명을 초래한 마크롱의 `앙 마르쉬(En Marches·전진)`의 기적은 결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개혁 과제를 과감히 실천할 때 자유한국당은 10%대의 정당 지지율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2017-08-21

북·미 군사 충돌은 피할 수 있을까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북·미간에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조성됐다. 북한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 시험발사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괌 섬 주변 30㎞ 공해상에 미사일 4발을 포위사격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8월 중순까지 결정해 8월 말까지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는 북한이 괌을 침공할 시 `화염과 분노`를 넘어 `못 볼 것을 볼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전쟁과 비 전쟁이라는 치킨게임이 한창 진행 중이다. 북한과 미국은 모두가 우려하는 군사적인 충돌을 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충돌보다는 대화 쪽으로 선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한은 미군기지가 집결된 괌에 무모한 포위 사격하기보다는 다른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끌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과거에도 `서울 불바다` 선포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건을 붙인 엄포`식 선언을 했으나 실행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도 그들의 10여 기의 미사일 보유가 미국의 약 7천기에 비교하면 턱없이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또한 북한의 섣부른 군사적 모험주의는 자칫 김정은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할 것이다. 물론 북한 당국의 오판으로 포격을 강행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종래의 `벼랑 끝 전술`을 여전히 구사하겠지만 벼랑 끝에서 절벽으로 떨어지는 우(愚)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미국의 입장도 트럼프의 거친 발언과 달리 정면 대결로는 치닫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고 군사적 강국인 미국은 `세계 평화 수호자`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이런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연쇄적인 군사적 개입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도 미 국무장관 틸러슨은 북한과의 대화의 문이 열려있음을 강조하고, 미국 정부는 북·미간의 물밑 접촉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 반대하는 미국 내 여론도 만만치 않다. 결국 미국의 예방전쟁도 선제타격도 그리 쉽지 않은 시나리오이다.종합해보면 북·미간에는 군사적 긴장은 당분간 고조되겠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협상의 물꼬가 트일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과 북한은 지금도 거칠고 험한 소리를 상대에게 쏟아내면서도 대화나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대북 강경발언을 하지만 국무장관은 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북한 역시 괌에 대한 미사일 시험발사를 공언하면서도 `미국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을 붙이고 있다. 이 조건의 행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이나 중국도 대화로서 문제를 풀기를 바라고 있다. 상호 거친 비난과 말싸움이 끝날 무렵에는 당사국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치킨게임의 상식이다. 그러나 현재 북·미가 협상의 틀로 반드시 회귀할 것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과거 세계 여러 곳의 군사적 분쟁과 충돌은 비이성적인 오판이나 사소한 문제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북미간의 대화가 시작된다면 북한은 8월에 예정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중지를, 미국은 북한의 핵 활동의 즉각적 중지를 요구할 것이다. 결국 미국은 북한의 비핵프로세스, 북한은 북·미 평화 협정체결을 요구할 것이다. 이 협상은 결국 쌍 중단, 상계방식으로 진행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 우리 대한민국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을 때이다. `코리아 패싱`도 이런 점을 우려하는 말이다. 우리도 북미협상과정에서는 우리의 입장과 요구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해야 우리가 제의한 신 베를린 선언상의 남북대화도 가능할 것이다.

2017-08-14

이만하면 우리국민도 자긍심을 가질 만한데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우리나라가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봐도 교통과 통신 사정이 우리나라 만한 나라도 드물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가 된 지 오래고 GDP면에서는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이다. 그러한데도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 언론이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결과일까. 아니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에 내재된 일제 식민 사관에 의한 열등의식 때문일까.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 중엔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가 부족한 사람이 의외로 많고 심지어 우리를 자학(自虐)하는 사람까지 있다. 지난주 고속도로에서 큰일날뻔 한 일이 있었다. 추풍령을 넘고 영동으로 향하던 내 차가 갑자기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흔들리며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았다. 100km 속도를 달리다 당한 일이라 몹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앞 뒤차를 간신히 피해 고속도로변에 급정거했다. 예측대로 우측 앞 타이어가 펑크나 도로에 납작 붙어 있었다. 온몸에 진땀이 났고 무엇부터 할지 정신이 없었다. 옆 좌석에 동행한 아내의 도움으로 보험회사에 가까스로 사고 위치를 알려 주었다. 겨우 차량을 대피시키니 고속도로에는 피서 차량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러다 고속도로 대형 사고가 나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아찔했다.우리 부부는 난생 처음 보험회사 구조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경광등을 번쩍이는 차량 한 대가 우리 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으나 보험회사 차가 아닌 경찰 순찰차였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고속도로 CCTV를 보고 급히 달려왔단다. 순찰 경찰은 간단한 경위를 묻고 순찰차를 우리 차량 후면에 세워 보호까지 해주었다. 경찰관은 큰 사고가 나지 않아 무척 다행이라며 우리를 위로까지 해줬다. 지난해 러시아 여행길 고속도로에서 우리 차량을 세우고 괜히 트집을 잡다 현지 가이드가 돈 몇 푼 지어주니 떠나는 러시아 경찰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다.보험회사 구조 차량도 30분이 안되어 도착했다. 기사는 신속한 손놀림으로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하고 조심해서 운전해 가라고 말했다. 그 기사 역시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크는 대형 사고의 원인이라고 미리 점검하고 출발하라는 당부도 했다. 그는 나에게 평소 덕을 많이 쌓아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덕담까지 하며 현장을 떠났다. 경찰 순찰차도 우리 차량을 한참이나 에스코트하다 사라져 버렸다. 조심스럽게 차를 운전하면서 모두가 고맙고 우리나라도 이제 정말 괜찮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회사의 응급조치도 마음에 들었고 경찰관의 태도도 매우 친절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해당 경찰서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일깨워 줬다.여러 해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자동차로 달려 본 적이 있다. 이곳 도로 사정은 우리보다 훨씬 나쁘고, 휴게소는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독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을 여행해 봐도 도로 만큼은 우리가 월등히 앞선 것이 사실이다. 중국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소감문에는 한국 고속도로의 화장실이 너무 깨끗하다는 감탄 글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은 사실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사통팔달의 고속 도로,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산하, 깨끗한 휴게소 모두가 세계적 수준인데 우리는 이에 대해 무관심한 듯하다. 문제는 우리의 이러한 훌륭한 교통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민 의식이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물질문화는 급속히 발전했는데 우리의 정신문화가 따르지 못한 결과이다. 일종의 문화지체(cultural lag) 현상이다. 이 나라 경찰관의 친절성, 출동 기사의 책임감 등이 더욱 확산될 때 우리의 정신문화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2017-08-07

어느 탈북 여성의 월북 사태를 보면서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남쪽으로 온 탈북자의 행렬이 6월말 현재 3만805명에 이르고 있다. 분단 시 독일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이들만을 한곳으로 모으면 작은 도시가 된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산전수전을 겪어 이 땅에 도착하였다. 대부분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에 잠시 머물다 희망의 땅인 이곳을 밟은 사람들이다. 탈북자 중에는 러시아, 미얀마, 태국, 몽골을 거쳐 꿈에 그리던 이곳으로 온 사람도 있다. 모두 하나원에서 3개월의 적응교육을 받은 후 희망지를 배정받아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탈북 동기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껴 자유 대한을 찾은 사람들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할 시기는 기아를 면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강 타기`를 한 사람들이다. 최근 북한의 식량사정은 고난의 행군시기보다는 월등히 좋아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근년의 탈북자 중에는 `빵보다는 자유`를 찾아 탈북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 학력도 높고 지위도 좋은 엘리트층의 탈북 경향이 는 것이다. 영국에서 탈북한 북한외교관 태영호 공사뿐 아니라 공개되지 않은 권력 엘리트층도 상당수 있단다. 근년에는 북한의 당 간부, 배우, 성악가, 교수, 한의사, 군 장교 등 `삶의 질`을 위해 탈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이들 탈북자들 중에는 남한에 잘 정착하여 성공한 사람도 더러 있다. 한국에서 재교육 받아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된 사람까지 있다. 내가 멘토 역할을 한 어느 탈북 교수도 우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에서 교수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떤 탈북자는 경비원 일을 하다 증권 투자로 대박이 났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가 준 임대아파트에서 기본 정착금으로 겨우 살아가는 사람도 상당수다. 북에서 명문 대학인 김책공대를 졸업하고도 남에서는 노동일을 하면서 미국행을 꿈꾸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면접한 어느 미모의 탈북 간호원은 택시기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백한 적도 있다. 한국인들의 냉대가 심하여 탈북자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으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남한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북한 실상을 폭로하던 임지현(본명 천해성)의 입북사실이 보도되었다. 그는 북으로 가서 북한 TV에 출연하여 남한사회를 신랄하게 폭로했다. 그가 북으로 갈 때 `8천원에 머리를 자르고 북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탈북자 김광호씨는 재입북했다가 6개월만에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재입북자가 25명이나 된다는 보도도 있다. 재 입북자가 200여 명이 넘는다는 추측 보도도 있다. 북한 당국은 최근 탈북자의 재입국을 유인하려고 이들을 처벌치 않고 관대하게 처리하고 있다. 탈북 자중엔 중국을 통해 북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는 사람까지 있다. 탈북자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이산가족에 대한 아픔은 커갈 수밖에 없다.우리는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최소한 자유를 찾아온 탈북자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만큼은 버려야 한다. 정부는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북으로 가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 할 수 없다. 경찰이 뒤 늦게 소재가 불분명한 900명의 탈북자 소재를 파악한다고 법석이다. 신원과 안전을 담당하는 경찰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취업 등 탈북자를 돌보는 행정 공무원들은 임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가.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의 정착이 원활치 못하면 탈남(脫南)행렬은 계속될 것이다. 정부는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남한 시회의 시민단체도 이들을 돕기 위한 방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그들을 향한 따뜻한 동포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2017-07-31

새말리 노천냉탕

▲ 백강훈 포항시의원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아침, 논에 일을 하러 간 촌로가 고된 일을 마치고 세수 겸 냉욕을 하러 들른다. 태양이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촌마을의 꼬마들이 삼삼오오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물놀이를 신나게 즐기고 들어간다.어스름 해질녘이면 흙투성이 아들을 앞세운 아버지가 이곳에 들러 서로 등목을 해주며 부자의 정을 쌓는다. 밤이 깊어지면 더위에 지친 총각들이 수건 한 장과 수박 한 통을 들고 퐁퐁 솟아나는 차가운 샘물에 몸을 담그고 오래버티기 내기를 하며 한여름 밤을 즐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려있는 장소는 바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들판 한 가운데 위치한 `새말리(노천냉탕)`다. 이곳에서의 물질은 시간도 연령도 제한이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성전용 노천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도로에서 바라보면, 모내기한 벼가 담장역할을 해서 가림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새말리`의 어원은 애초에 `샘물`이 아닌가 하고 유추되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여름철 피서 장소로, 여름철엔 남성들이 벌거벗고 냉욕을 하였고 겨울철엔 여성들이 와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던 곳이다. 특히 가뭄시에도 샘이 마르지 않고 더운 여름철에도 냉기를 유지하고 있는 노천탕으로 우리 지역의 특색있는 자랑거리다.오래전에 모 방송국에서 새말리를 방송으로 제작하자는 제의를 했다. 그래도 전국 방송으로 보내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한 것 같아서 선뜻 응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방송국 PD분이 하신 말씀이 “당신 동네에 있는 새말리가 전국 냉탕 중 최고입니다”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이유가 재미가 있는데 `산에 가도 없고 바다에 가도 없는데 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에 가니 그 한가운데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노천냉탕이 멋들어지게 있다`는 내용으로 용기 내어 방송을 제작하고 전국에 알렸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찾아와서 취재하고 방영을 한 곳으로 꽤나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명성이 조금 떨어지고 있어서 올해 노천탕을 포항시 예산에 편성하여 새롭게 단장을 했다.이제 새말리는 무더위에 지친 포항시민들의 힐링 장소로, 아이들 야외 풀장으로의 기능이 충분하리라 본다. 이러한 곳을 그 동안 방치하고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닐까?수 십억원을 들여 호미곶 해안둘레길도 조성하고, 형산강 수상레저타운도 만드는 등 없는 자원도 새롭게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새말리뿐만이 아닌 우리 포항시 읍면동에 산재되어 있는 옛 선조들이 물려주신 소중한 유산을 우리는 방치하고 소홀이 여기고 그 자취를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포항시가 보유한 우리의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자원인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여 포항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올해 우리 지역의 가뭄은 매번 신기록을 갱신하며 물이 없어 온 들판이 갈라지고 모가 타죽는 이상고온과 가뭄이 기승을 부리지만 이곳 새말리는 신기하리만치 샘솟는 샘물의 냉기와 수량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올 여름엔 잊지말고 가족과 함께 새말리에서 냉욕을 즐겨보시길 권한다. 인근에는 칠포해수욕장도 있고 그 맞은편엔 곤륜산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군락지도 있다. 돌아가는 길엔 흥해읍 시내에 위치한 영일민속박물관도 둘러보자. 신라비를 비롯한 4천600여 점에 달하는 민속자료뿐 아니라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00년의 회화나무도 관람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포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관광객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2017-07-26

보수 정당 개혁의 4대 요건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대통령 탄핵이 `보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지난 5·9 장미 대선은 보수를 재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대선 참패 후 보수 정당은 이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당대표를 선출하고 류석춘 당 혁신위원장은 당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바른정당 역시 이혜훈 당 대표의 선출로 `보수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들 보수 정당은 개혁에 성공할 것인가. 보수 정당의 개혁은 당내외의 여건상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당 개혁의 성과는 내년 지방 선거에서 가시화 될 것이다. 보수정당이 당 개혁에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한국의 보수 정당은 대통령의 탄핵과 선거 패배에 관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자유`의 말살과 권력의 독점으로 붕괴되고, 박정희 공화당 정권이 `공화`라는 이름으로 `유신 독재`로 전락해 버렸다. 그간 집권 새누리당은 기득권 유지의 보수 안주 정당, 오만한 정당, 웰빙 당, 권력의 사유화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친박 주류의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막지 못했다. 바른정당 역시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고 보수 집권당의 분당에 원천적 책임이 있다. 보수 양당은 상호 책임 전가만 할 것이 아니라 각기 뼈아픈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보수 정당은 이번 대선의 패배 원인을 냉철히 파악하여야 한다. 보수 정당은 촛불민심에 따른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로 자기변명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 유지의 실패는 전직 대통령의 국정 농단과 직무유기뿐 아니라 보수정당의 개혁 실패에도 원인이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문제는 집권 여당의 분당으로 이어지고 분열된 보수정당은 대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대선은 보수가 자기반성 없이 개혁을 방기하고 체제에 안주할 때는 필망(必亡)한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었다. 자유한국당은 집권의 실패에 대해 남 탓을 이제 그만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과감한 당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보수 정당은 시대정신을 먼저 읽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변화를 선도할 때 지지층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셋째, 한국의 보수 정당은 보수의 이념적 좌표를 확실히 해야 한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당의 좌표를 보수의 강경 우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류석춘 당 혁신위원장도 보수 개혁은 좌 클릭이 아니고 우파의 가치 추구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나 영국의 대처리즘를 선망하고 있는듯하다. 남북의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자유한국당도 독일 기민당 메르켈 수상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해야 하지 않을까. 메르켈은 독일 기민당의 헬무트 콜의 보수주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과감한 개혁을 통해 통일 독일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정당도 이제 수구가 아닌 자유와 진보의 가치를 이념적 좌표로 수용해야 할 시점이다. 이들도 제대로 정착된 민주주의 위에서 자발적 안보가 성숙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넷째, 한국의 보수 정당은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를 위해 분단 이후 수 십 년 동안 수구가 씌운 답답한 갑옷을 이제 벗어던져야 한다. 대북 문제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종래의 굳어진 종북 좌파 프레임은 이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과거에 통했던 북풍이나 종북 프레임은 통하지 않고 오히려 역풍만 초래했을 뿐이다. 북한 김정은 3대 세습에 반대하는 세력이면 누구와도 대북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이념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감한 당 개혁이 보수층의 재결집뿐 아니라 당의 외연을 중도까지 넓히는 길이다. 내년의 지방 선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조직의 기반이 완전히 갈라지기 전 하루 빨리 보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2017-07-24

국가주의에 묻혀버린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일본을 여행한 사람은 누구나 일본인들의 친절성에 감탄한다. 우리 한국인들도 그들의 친절성을 벤치마킹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개개 일본인의 태도는 칭찬하면서도 일본정부나 국가에 대해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다. 아베 정부의 독선적인 역사 인식과 극우의 태도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친절성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질서의식을 정부가 집어 삼켜 버린 모양새이다. 결국 일본 개개인의 도덕성은 일등 국민이지만 일본 정부의 오만성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의 단체 해외여행에는 가이드가 깃발을 앞세우고 그룹을 선도한다. 세계의 여행객이 운집하는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도 일본의 노인들도 그 깃발만큼은 놓치지 않고 잘 따라다녔다. 모아놓았다하면 곧 흩어지는 한국 관광객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장면이다. 어린이도 아닌 일본 어른들이 깃발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중국 만리장성관광센터에서 한국사람 찾는 방송은 빈번했지만 일본인을 찾는 방송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질서의식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들의 내면화된 집단주의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정부가 지시하면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일본의 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극우 국수주의라는 독이 될 수도 있음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일본 여행 중 종종 버스나 열차도 타 본 적이 있다. 열차안의 일본인들은 대부분 책을 읽으면서 정숙을 유지한다. 우리나라의 완행열차 안의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는 아직도 큰소리로 통화하고 동료들과는 떠들썩하게 대화하는 것이 예사다. 우리의 열차 내 방송은 아직도 휴대 전화를 진동으로 유지하고, 전화를 받을 때는 실외 통로를 이용하라고 방송한다. 몇해 전 가고시마로 가는 일본 신칸센 이동 판매원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작았다. 모두가 남에게는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 조심스런 일본인들의 태도에 비해 일본정부의 주변국에 대한 위압적인 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종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적 폭력인데도 사과 한마디 없으니 더욱 이상하다.일본의 전역은 땅만 조금 파면 온천이 솟는다. 더욱이 일본의 벳푸 일대는 온천으로 외국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남녀 탕을 아침저녁 교대하는 일본의 대중탕은 외국인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들의 대중탕의 조용하고 질서 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입탕 시 손 바닥만한 타올 한 장을 머리에 얹고 들어간다. 머리에서 흐르는 땀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샤워할 때도 그들은 앉아서 조용히 한다. 옆 사람에게 물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우리 교수 일행이 참여한 이번 여행에도 가이드는 이 점을 철저히 교육(?)시켰다. 이러한 질서가 그들의 규범이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사회가 일본이다. 일본의 이러한 질서 문화가 일본인들의 집단 이지매와 자살로 연결되기도 한다.이처럼 일본인들의 이러한 질서 의식에는 빛과 그림자가 따른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들의 순종과 질서 의식을 교묘히 정치에 악용하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극우의 안보 이슈는 집단적 질서의식의 부정적 그림자이다. 일본의 정치 종교화된 신사(神社)라는 집단 문화도 외래 종교의 교세 확산을 막고 있다. 이미 임진왜란 시 우리 나라에 종군신부까지 파견한 일본의 가톨릭은 오늘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2차 대전시의 영웅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도 일본인들의 집단적 질서 문화의 소산이다. 일찍이 라인 홀더 니버는 개개인은 도덕적으로 선량해도 그들이 모인 공동체는 탈선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2017-07-17

일본 여행길에 마주친 두 개의 얼굴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번 일본 여행은 학술회의를 겸한 역사 테마 여행이었다. 시모노세키의 청일 조약 현장에서부터 명치유신의 발상지인 하기(萩市)시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하기의 명륜학원의 일본 근대화 전시관부터 먼저 돌아보았다. 우리 일행은 명치유신의 거목 요시다 쇼인의 출생지와 사숙을 돌아보고, 그의 은인이며 후일 총리대신을 거쳐 조선총독이 된 이등박문의 고택도 찾아보았다. 지난해 여름 안중근 의사가 그를 암살한 중국 하얼빈 역을 방문한 나로서는 미묘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이 지역은 현 아베 총리의 고향이라 더욱 호기심이 가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시골 호텔은 아베가 푸틴을 초대해 같이 온천을 즐겼다는 곳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곳이다. 다시 8·15 광복 72년 주년이 다가오는데 아직 우리는 일본에 대한 응어리진 감정이 남아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외교적 갈등의 원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근년 아베 정권은 과거사에 대한 그릇된 역사 인식뿐 아니라 군국주의 부활 노선이 우리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아베 수상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평화 헌법까지 파괴하려는 집념을 보이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아베 정부의 그릇된 노선은 또 다시 일본의 `국가 이성`을 마비시킬지도 모른다. 아베의 불쾌한 얼굴이 즐거운 여행길의 차창 밖으로 비쳐지기도 한다.이번 세미나에서도 극우의 정치에 편승해 탈선의 길을 가는 아베의 정책 노선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학자도 더러 있었다. 아베의 대중 인기에 영합한 극우의 노선은 우리 뿐 아니라 뜻있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우려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과거 일제의 한반도 정한론(征韓論)에 반대한 일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일본의 학자들 중에는 아베의 국수주의적 태도를 반대하는 학자도 소수지만 분명히 있다.일전 텔레비전에서 일본 학자 중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 교수를 본 적이 있다.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일본에서 키 크고 인물이 잘 생긴 사람은 대체로 도래(渡來)인 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 도래인이 과거 백제 등 한반도에서 건너온 온 사람을 의미한다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이번 여행길에 만난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정직한 모습이다. 나 뿐 아니라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의 친절성을 칭송한다. 혹자는 일본인의 본마음과 겉마음은 다르다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정직성과 친절성은 글로벌 시대에 우리 보다는 앞서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묵은 나가도(長市) 시골 호텔의 청소부부터 총지배인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친절성은 우리의 추종을 불허케 한다. 하루 종일 여행으로 지친 우리 일행을 일일이 친절히 맞이하는 호텔 사장, 버스 트렁크 안까지 들어가 짐을 옮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운전기사, 버스가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드는 종업원의 모습, 모두 지울 수 없는 일본인들의 얼굴이다. 이들의 모습은 집단 최면에 걸린듯한 아베의 얼굴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여하튼 일본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일본 여행길에 떠오른 아베의 얼굴과 일본인들의 친절한 얼굴은 분명 다른 두 개의 얼굴이다. 일본의 불황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은 아베의 얼굴 뒤엔 이러한 부지런하고 친절한 국민이 있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심통이 나기도 한다. 우리는 민중이 정치적 이슈로 때때로 폭발하고 상호 충돌하고 정권까지 바꾸지만 일본 국민들의 집단 저항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도쿄 도의회 최근 선거는 아베의 독선에 일격을 가했다. 우리도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을 위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대일 감정만으로 양국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7-07-10

6·25 동란 시절을 다시 회상한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6·25는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전쟁이 발발한 지 어언 67년, 그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고 곳곳에 남아 있다. 내 주변에는 6·25때 돌아가신 부친의 유골을 찾아 헤매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도 있다. 일전에 6·25특집 대중가요는 우리 세대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가량 잎이 떨어지는 `전선의 달밤`, 북에 둔 누이를 그리는 `굳세어라 금순아` 남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은 아직도 우리의 귓전을 울려 주었다.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던 해 6살의 가난한 소년은 전쟁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 소년은 조용한 산골 동네 앞 사람들이 왁자지껄 밀려가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군용 트럭이 요란하게 지나가고 북한 인민군이 동네에 들어오는 장면을 신기하게 구경만 하였다. 시골 대나무 밭으로 둘러쳐진 소년의 집은 인민군 중대 본부가 되었다는 것도 철이 들어서 알았다. 마당에는 취사용 큰 가마솥이 걸리고, 대나무 밭에는 알 수 없는 통신 장비가 세워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나이 어린 10대의 인민군들이 인절미를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의 할머니는 할 줄 모른다고 손을 내 젓는 모습만 어렴풋이 기억한다.군인들은 동네 앞 오동나무를 향해 따발총 연습을 하였고 어린 소년은 귀를 막고 그 군인 아저씨의 뒤를 즐겁게 따라다녔다. 동네 어른들은 점령군으로부터 치안대의 조직을 강요받고, 식량을 공출하는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철없는 소년은 아무 것도 모르고 위장된 차량과 전쟁무기만을 신기하여 만져 보았다. 마을 앞으로 연일 휘발유 냄새를 풍기는 차량이 지나가고 소년은 신기한듯 차량 뒤를 따라가기도 하였다. 해거름에는 행색이 초라한 피란민들이 밥을 얻어먹기 위해 동네에 들이닥치고, 소년은 저녁 늦게 동네 뒷산 굴속에 숨어 있는 고모의 저녁밥 심부름을 가끔 하였다. 이 어린 소년이 1950년 6·25 전쟁기의 나의 자화상이다.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소년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에 바빴다. 동네의 논밭, 도로 변에는 탄피가 이곳저곳에 늘려 있었다. 집안에 엿으로 바꿔 먹고 남은 탄피가 광주리에는 가득하였다. 동네 아이들은 마당에서 탄피 따 먹기 놀이를 즐겨 하였다. 약이라곤 없던 그 시절 배가 아플 때는 실탄을 분해하여 얻은 탄약을 조금씩 먹기도 하였다. 신기하게도 약효가 있었다. 아이들은 땅 위에 지도를 그려 놓고 사금파리를 손가락으로 3번 튕겨 땅 따먹는 놀이도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흉내 내어 전쟁놀이도 했다. 요즘의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이 문화가 유행했다.1953년 정전이 되고 부상당한 아저씨들이 전선에서 돌아왔다.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안고 우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당시 행방불명된 아들이 돌아왔기에 어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전후 우리 동네에는 북에서 온 인민군 한 명이 정이 들어 북으로 가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그가 자진해서 남았는지 갑자기 떠나는 소속 부대에 합류하지 못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함경도 북부 회령이 자기 고향이라는 소리만 들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당시 서울 공대 추가 졸업을 하려고 떠난 집안의 아저씨는 아직도 소식이 없다. 이제 나이가 구순을 넘었으니 운명을 달리했을 것이다.6·25 전쟁 시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군함을 타고 남하한 피란민들이 거제도에 정착했다. 그 가난한 피란민의 아들이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이 되었다. 세계화 시대 국경마저 의미 없는 시대에 북한 김정은 정권은 아직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는 아직도 긴장과 대립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남북이 화해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통일의 길을 찾을 때 전쟁의 상처도 아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전향적인 노력을 기대해 본다.

2017-07-03

중국의 대북 제재, 안 하는 건가, 못 하는 건가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북한은 여러 차례 미사일 시험 발사를 단행했고, 대륙 간 장거리 미사일(ICBM)의 최종 로켓시험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뿐 아니라 소위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진행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미지수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국제적인 여론이나 압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이나 제재가 없는 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대북 제재가 겉과 속이 다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중국 당국은 겉으로는 유엔의 결의에 동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북 제재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세계의 여론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나 제재를 바라지만 그 가시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북한 원유 수입의 90% 이상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중국 당국이 약 50만 배럴의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을 중단하고, 대북 교역만 중단시키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동북 3성의 기업들은 대북 교역으로 상당히 재미를 보고, 그들 지역 경제의 발전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근본적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기본적으로 북·중 간에는 아직도 튼튼한 전통적 `혈맹관계`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그들의 과거 국공 내전 시 조선인들의 동북 항일 연군 지원을 잊지 않았고, 그 보답은 6·25 전쟁 시 북한을 구하기 위한 의용군 파병으로 입증됐다.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 대중국 포위 전략을 의식하는 한 현재의 북·중 관계는 유지될 수밖에 없다. 중국으로서는 `대미 항쟁`을 불사한다는 북한 당국의 태도를 내심으로 즐긴다고 볼 수 있다. 국제 학술세미나에서 만난 중국 관리나 학자들은 개인 차원에서는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시대에 뒤진 리더십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북의 입장을 현상유지라는 입장에서 항시 두둔한다. 단둥의 중조(中朝)우의 기념탑과 기념관은 이를 상징적으로 입증해 준다.한편 북한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중국에 대해서도 `자주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자기들의 정권수립 후 중국군과 소련군을 서둘러 철수시켰다.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통한 외세 배격 논리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였다. 물론 북한과 국경을 접해있는 중국군과 러시아군은 유사시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그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이 연장선에서 북한 당국은 핵 주권론을 내세우며 중국의 느슨한 대북 압력이나 영향력을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한마디로 중국으로서도 북한 당국이 다루기 힘든 동맹자인 셈이다. 이 점 역시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이나 제재를 가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이다.이 같은 정황이 미국과 유엔이 점차 강력한 대북 제재를 결의하더라도 중국이 겉으로는 동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이유이다. 중국은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도 북한과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6자 회담 복귀를 지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사드(Thaad) 배치 문제만 해도 중국은 한국에서의 사드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방어체제라고 강변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대중 군사적 용도라고 강력히 반대한다.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 당국은 대북 제재보다는 오히려 한국에 대해 대대적인 경제 제재 조치를 단행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대중 외교 최우선 과제일 것이다. 결국 우리도 비핵의 원칙과 대화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닐까.

2017-06-26

남북 대화는 재개될 것인가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남북대화가 단절된 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대북 봉쇄 정책을 통해 남북대화마저 전면적으로 단절시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아직도 남북 간에는 긴장이 고조되고 두터운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 17주년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한다면 무조건 남북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대통령은 제주도 AIIB 국제회의에서도 남북의 철도를 연결해 유라시아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미 중인 문정인 특보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중단한다면 한미 군사훈련과 전략자산을 축소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비핵` 없이는 일체의 대화를 중단한 지난 정권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의 변화 조짐이다. 남북 간의 협상과 대화 문제는 우리 사회 내에도 찬반양론이 대립되고 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는 상황에서는 남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퍼주기식 대북 지원이 북한의 핵개발을 도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이 입장을 지지하면서 대북 강경 봉쇄정책을 선호한다. 일부이지만 남한의 전술 핵 배치나 자체 핵 개발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이 나라의 보수층은 대체로 이 같은 대북 봉쇄정책을 지지한다. 일전 어느 남북한 평화 문제 세미나에서도 어느 교수는 북한 미치광이 정권에는 몽둥이가 유효하다면서 대북 선제 타격론까지 주장하면서 남북 대화를 적극 반대했다.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중도 진보층에서는 남북 화해와 대화 정책을 지지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단계적 포괄적으로 추진하면서 개성 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한 동해권의 에너지 자원 벨트 조성, 서해권의 산업 물류 교통벨트의 중장기적인 건설공약도 적극 지지한다. 이들은 지난 9년간 보수 정권이 한반도의 긴장만 조성하고 신 냉전구도로 몰아가서 안보 불안 상황만 조성했다고 비판한다. 신정부는 과거의 남북 공동 선언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 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해 김대중·노무현정부의 포용정책과 화해 협력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한 우선적 과업이 5·24 조치를 폐기하고 남북 대화로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이다.그러나 남북 대화에는 남북한 당국뿐 아니라 국내외적 환경과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한반도의 현실적 상황은 남북대화에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통한 대미 협상력 제고에 열을 올리고 우리의 대화 제의보다는 대미 평화 협정체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북한 당국은 과거 6자회담이나 북미 협상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북핵문제와 미사일 문제로 유엔의 대북 제재는 더욱 강화되고 미국의 대북 경제적 군사적 압박은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여행객인 미국 대학생 로버트 웜 비어 군의 북한 억류 17개월과 식물인간 상태의 송환은 미국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대북 대화는 가능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공약에서 밝힌 대북 화해 정책은 추진하되 그 시점을 유예할 필요가 있다. 대북 화해 정책은 그 당위성도 중요하지만 국내외 여론과 시점의 선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반도의 상황은 안정적일 때보다 먹구름이 낄 때가 오히려 대화의 적기가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조건부 대화 제의도 이런 시각에서 서두르지 말고 북한의 입장을 차분히 기다려 볼 필요도 있다. 정부는 6월말의 한·미 정상 회담을 남북대화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북 대화를 지지하는 중국과의 외교 관계 복원도 남북대화의 토대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17-06-19

6·10 민주 항쟁 30주년 기념식을 보면서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30년 전 1987년 6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청년 학생들의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소리는 전국에 울려퍼졌다. 당시 학생 데모가 과열하면 최루탄이 난무하고 대학은 휴교령이 내려지고 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그해 1월엔 서울대 박종철 군의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 당시 `탁 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말이 유행처럼 회자됐다. 6월 9일 연세대에서는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전두환 군부 독재가 4·13 호헌 조치를 통해 공안 통치를 하던 살벌한 시기였다. 당시 서울 도심 100만 명의 민심이 6·29 호헌 철폐 조치를 이끌어 내었다. 많은 민주 투사와 열사의 희생이 따랐다. 이를 우리는 `6월 항쟁`이라 부르고 6월 10일은 그 기념일인 것이다. 세월은 빨라 또 다시 민주항쟁 30주년이 됐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제정한 6·10 민주 항쟁 기념일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있는둥 마는둥 조용히 치러졌다. 아마 광주의 5·18과 같이 피하고 싶은 국가 기념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 교체 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 행사에 참여해 그 역사적 의의를 되새겼다. 정부가 지난 촛불 혁명을 1987년 6월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 결과이다. 정권에 따라 국가 기념일의 성격이나 행사 규모를 달리하는 것도 우리 정치의 왜곡된 단면이다. 최소한 국가 기념일까지 이데올로기적 잣대로 평가되거나 재단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6·10 민주 항쟁은 결국 직선제 개헌을 통한 소위 87 체제 구축에 그 역사적 의의가 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는 통치자의 사망으로 종결됐으나 전두환 정권은 7년 단임이라는 간선 대통령제를 통해 겨우 체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신군부의 집권은 국민 주권주의라는 절차적 정당성을 초반부터 상실했던 것이다. 결국 6·10 민중 항쟁은 제도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립하기 위한 국민적인 저항운동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6·10 항쟁은 결국 못다 이룬 `미완의 혁명`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의 분열은 노태우 정권의 탄생을 도와줬다. 역사는 우리들에게 민주주의가 제도적 틀의 구축만이 아닌 그 실천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줬다.그렇다고 우리는 6월 항쟁을 정치사에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국민 주권주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결코 훼손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는 6명의 대통령을 국민의 손에 의해 직접 선출했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과 문재인 대통령의 선출도 6월 항쟁의 국민주권주의 승리의 산물이다. 이러한 6월 항쟁을 통한 제도적 민주주의의 정착은 정당 간의 실질적인 정권 교체도 가능하게 했다. 이제 한국 민주주의도 정당간의 경쟁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 보장의 기여도로 평가돼야 한다. 이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잣대로만 정권을 평가해서는 더욱 안 된다. 6월 항쟁은 정치권력이 독점화 되거나 사유화될 때 국민이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민주주의는 결코 과거 완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이제 6월 항쟁의 연장선에서 문재인 새 정부를 맞이하고 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여러 곳에서 암초에 부딪쳐 있다. 여소야대의 정국 하에서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는 협치(協治)의 어려움을 더해가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는 곳곳에서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의 보수와 진보 정권이 그 동안 정책 대결보다는 시대에 뒤진 이념을 방패로 정쟁만 초래한 결과이다. 이 나라 정치는 아직도 참된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닌 사이비 이념의 노예가 되었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위한 진짜 개혁 정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2017-06-12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오늘로 벌써 20여 일이 되었다. 정권 출범 초기 문재인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고 있다. 한국 갤럽조사에 의하면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 84%, 더불어 민주당 지지도까지 50%를 넘었다. 문 대통령의 적극 지지층 중에는 문 대통령의 취임 일주일간의 행적이 박근혜 정부 4년 업적과 맞먹는다고 극찬하기도 한다. 새 정부 출범 초기 허니문 기간에는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인기가 높았다. 김영삼 대통령도 하나회 청산과 금융실명제 등으로 초반 인기는 높았지만 문 대통령의 현재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치솟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 취임 후 그의 친서민적 파격적인 행보가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단적, 독선적 권위주의적 리더십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실 문 대통령은 후보 기간 중에는 답답한 측면이 빈번하게 노출되었다. 이재명 후보의 시원한 사이다 발언에 비해 그의 언행은 `답답한 고구마` 라고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후의 그의 정치 행보는 시원하고 빠르다. 일자리 공약, 비정규직 문제, 미세 먼지, 치매 대책 등 민생 공약을 시원하게 해소하고 있다. 문 대통령을 지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그에게 기대를 걸고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그러나 대통령의 인기는 하루아침에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사의 교훈이다. 국내외적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당면한 북핵 위기와 경제 문제는 문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다급한 과제이다. 120석에 지나지 않는 집권 여당이 180석의 야당을 향한 협치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군사 모험주의를 선택한 북한에 대해 화해와 협력이라는 대북 정책도 어려운 과제이다. 허니문 기간 일시적으로 잠잠한 반문재인 보수층의 부정적 정서도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잘 극복하여 국민적인 합의와 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해방 후 한국의 70년 정치사는 민심이란 잠잠한 바다는 하루아침에 배를 뒤집을 수 있음을 여러번 보여주었다.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특별히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먼저 대통령뿐 아니라 집권 여당은 초반의 인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나라다운 나라 건설`이라는 개혁의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역대의 정권은 그 초심을 잃었을 때 권력에 안주하다 탈선하고 독점화되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진영이 갖추어 지고 조직이 정비되었을 때 권력은 자만에 빠지고 독선· 독주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개혁을 앞세운 진보 정권은 스스로 독선과 아집의 포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에 대한 헌신과 충성이 조직의 수장에 대한 충성으로 바뀔 때 권력은 탈선한다. 라인 홀더 니버의 주장처럼 개인은 도덕적으로 절제하고 완벽해도 권력 측근 조직이나 세력은 항시 비도덕적일 소지를 원천적으로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둘째,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권 뿐 아니라 보수 정부 9년의 과오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 주체 세력의 청렴성과 도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개혁 세력이 개혁을 명분으로 완장만 차고 탈 개혁적으로 간다면 정부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붕괴된다. 나아가 개혁의 신속성과 과감성도 중요하지만 개혁의 로드맵을 차분히 준비하여 실행에 옮겨야 한다. 개혁을 너무 서두르다 보면 `개혁의 역리`라는 딜레마를 자초할 수도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5년 후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 측근비리는 철저히 청산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기 바란다.

2017-06-05

故 노무현 대통령을 회상한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8년이나 됐다. 지난 23일 봉화 마을에는 수만 명이 모여들어 추모식을 가졌다. 그의 동지이자 친구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추모행사에는 추모 열기가 훨씬 뜨거웠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대한민국을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 편견이나 반칙,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온전한 평가를 하기는 아직 이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변호사 노무현과의 만남을 잠시 회상해 본다. 1999년 가을 가까운 후배로부터 노무현 변호사가 대구에 와서 교수들 몇 명과 대화를 가지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비교적 진보 성향의 교수들에게 전화를 해 보았으나 모두가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연락해 온 후배의 체면도 생각하여 나 혼자라도 갈까하다 당시 어느 대학 총장께 연락을 드려 보았다. 예상외로 함께 가겠다고 하여 작은 식당에서 4명이 마주 앉게 됐다. 노 변호사의 첫 인상은 무척이나 소탈하고 좌석을 편하게 했다. 노 변호사는 당시 페놀에 의한 낙동강 오염으로 인한 경남북의 지역갈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 식사 자리에는 약간의 논쟁도 있었으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당시 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권위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노 변호사의 당시의 태도는 대통령 당선 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그 후 노무현 변호사는 당내의 대통령 경선 후보로 거론 되는 시기 경북대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전산실 강당에는 학생들이 예상외로 많이 모여들었다. 몇 해 전 만났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그의 연설을 듣게 됐다. 원고 없는 그의 즉흥적인 연설은 학생들에 상당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연설은 학생들의 정서에 부합했다. 연설 말미에 노무현 변호사는 서슴없이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하는 당시 운동권 노래를 선창했다. 학생들은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면서 박수를 보내고 그의 연설은 끝났다. 연설 후 퇴장하던 노 변호사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먼저 “이런 학생들 분위기이면 대통령 되겠네요.”하니 그는 “그렇지요.”하면서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그는 2002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찬반으로 나눠져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했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데도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미(對美) 외교에서도 그는 `대등한 관계`를 추구했으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북한과 긴장관계를 해소하는 데 힘썼다.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분단 후 처음으로 걸어서 휴전선을 통과해 평양을 방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열고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발표했다.한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아직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특히 보수적인 TK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적 이상은 높았지만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는 장벽은 그를 따라 주지 않았다. “대통령직도 못해 먹겠다”고 한 그의 독백은 한 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인간 노무현의 열정과 패기는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 그의 동지이자 친구인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파격적인 행보는 노무현 대통령과 무척 닮아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노무현 정치를 뛰어 넘는 것이 그의 정신을 계승 승화하는 길일 것이다.

2017-05-29

이 땅에 참된 보수 정당은 있는가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보수주의 원조는 영국의 에드먼트 버크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급진성을 우려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성`이라는 책에서 보수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예측대로 프랑스 대혁명은 독재자 루이 16세를 단두대의 이슬로 보냈지만 혁명 후 사회적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가중됐다. 급진적인 자코방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초래하고, 나폴레옹의 독재 권력까지 옹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보수주의의 그 출발은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 질서와 가치를 보존하자는데서 출발하였다. 보수주의는 결코 개혁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보수세력과 보수 정당이 개혁을 거부하고 체제유지 만을 목적으로 안주했다면 그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의 보수 정당들은 독재 권력이든 국정농단 세력이든 기존의 권위와 기득권 유지를 우선 과제로 설정했음은 부인할 수 없으며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는 이 나라의 보수정당이 과거 역사의 훈구(勳舊)파나 수구(守舊)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자유`의 말살과 권력의 독점화로 붕괴되고, 박정희 공화당 정권이 `공화`라는 이름으로 `유신 독재`로 망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이번 보수 정당의 정권 연장 실패도 보수 개혁의 실패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초래된 탄핵문제는 보수 집권당의 분당으로 이어져 보수정당은 대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역사는 보수가 개혁을 방기하고 체제에 안주할 때는 필망(必亡)한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었다.지난 대선을 앞두고 바른정당은 `진짜 보수`를 앞세워 새누리당에서 탈당하게 된다. `참 보수`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겉으로 당내의 노선의 차이로 비쳤지만 사실은 당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비롯되었다. 보수 정당내의 탈당과 분열은 보수 논쟁의 계기가 되어 정치사적으로 다행한 일이다. `바른 보수` `따뜻한 보수`를 표방한 바른정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당명에서 드러내 보였다. 자유한국당은 보수의 본질인 `자유`를 통해 한국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 양당은 대선 패배 후 보수 정당의 이념과 정체성을 두고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상호 보수의 적통을 주장하며 보수 논쟁을 재개할 것이다.이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참 보수의 경쟁을 통해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과거 새누리당내의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파벌정치, 패권 정치이지 결코 보수 정체성 논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역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어정쩡한 노선만으로 보수 정당의 정체성을 세울 수 없다. 사실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역시 친노, 친문, 비문의 대립과 갈등은 진보 경쟁과는 상관없는 패권 쟁탈전일 뿐이다.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이라는 상황의 산물이지만 이 나라의 정의당을 제외한 4당은 모두 보수 정당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 이들 모두는 보수주의가 추구하는 인권, 자유, 민생, 안보의 가치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다.우리 정치에서 대선 후 협치가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도 보수 정당은 보수를 위장한 `가짜 보수`가 아닌지를 철저히 자기 점검해야 한다. 스스로 보수 정당을 자처하면서 권력유지에 안주하지 않았는지, 합의와 타협이라는 민주적 가치보다는 파당적 패거리 정치에 야합하지 않았는지 더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 구현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보수 정당은 이제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상대를 비열한 `바퀴 벌레`로 매도하거나 `낮술 추태`로 비난하는 정황은 보수의 본질적 논쟁과는 거리가 멀다.

2017-05-22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 동성로 유세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지난 5·9 장미 대선은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문 후보는 지난 4월 17일 대구 2·28기념탑에서 참배로 시작하여 5월 8일 대구 동성로 유세로 선거 운동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였다. 당시 문 후보는 대구·경북이 전국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라 이를 의식하고 이 일정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흔히 대구·경북은 진보적인 야당이 선거 운동을 하기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하기 보다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후보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은 전국 41%지지율에 비해 최하위인 21%의 지지만을 획득하였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의 19% 지지율에 비해 20%의 장벽을 넘은 것은 후보의 이 곳에 대한 관심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필자는 지난 5월 8일 오후 2시께 동대구역에서 동성로 유세장까지 문 후보를 20분간 동행 취재하는 기회를 가졌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수행원 몇 명과 동대구역 플랫폼에 함께 내린 문 후보는 연일 강행군 탓으로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은 무척 밝았다. 역 구내에서 이동하는 문 후보에게 “사전 투표 했어예”하며 엄지 척을 하는 청년도 보였다. 문 후보는 역구내에서 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 여성 유권자, 역무원에 이르기까지 흔쾌히 셀카 앞에서 다정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동성로 대백 앞의 예정된 유세시간에 쫓기는 순간이지만 후보는 순순히 촬영에 임해 주었다. 문 후보가 찍은 셀카 사진만해도 전국적으로 수만 명은 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동대구 역사 뒤편 새로 개설된 고가 도로위에는 흰색 승용차가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 후보가 겨우 역사를 빠져 나와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지근거리에서 어떤 60대 남자가 갑자기 “ X X X, 답배 값이나 좀 내려라”하면서 고함을 쳤다. 수행원과 경호원뿐 아니라 후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예의 빙그레 웃음 띤 표정으로 `잘 알겠습니다`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후보가 차량 좌석에 앉으려는데 이번에는 어느 영업용 택시 기사가 달려와 “120만원 가지고 도저히 못살겠어예”하고 소리를 외쳤다. 경호원이 그를 가로막고 차문을 닫으려 하니 문 후보는 문을 열고 `허허, 그거 내 공약에 있잖아요. 잘 보십시오.” 또 다시 미소로 응대하였다.선거 운동 기간 중 여러 번 부딪쳐 쌓인 내공일까. 유세장으로 급히 떠나는 문 후보, 거칠게 항의하고 돌아가는 기사의 뒷모습에서 한국 정치의 굴절된 단면을 보는듯 했다.동성로 대백 앞 후보의 열띤 연설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에 둘러싸인 문 후보는 명쾌한 단답형 연설로 분위기를 한층 돋우기 시작하였다. “이 나라 적폐 청산 누가 할 수 있습니까?” “문재인”, “진정으로 이 나라 정권 교체할 후보는 누굽니까?” “문재인” “이제는 대구를 확실히 바꿀 수 있습니까?” “예” 대구의 젊은 문재인 지지층의 열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듯 했다. 이곳저곳에서는 감격에 북받쳐 흐느끼는 지지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유세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노인 세대는 가뭄에 콩 나듯 하였다. 이 지역의 `문재인만은 절대 안 된다`는 노년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리라. 그러나 대구 동성로의 문재인 후보의 20분간의 연설은 4년 전 이곳에서의 연설에 비해 더욱 세련되고 결기에 차 있었다.그로부터 28시간 후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에서의 소탈한 탈권위주의적 모습은 청와대 입성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수석들과 와이서츠 차림의 격의 없는 대화, 청와대 직원들과의 구내식당 식사, 출입기자들과의 2시간 등행 후의 삼계탕 회식 모두가 신선한 장면이다. 과거 박 대통령과는 너무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시민 친화적 리더십이 강단 있는 리더십과 결합할 때 국가적 위기는 극복될 것이다.

2017-05-15

지역 갈등은 가고 세대 갈등만 남았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5·9 대선이 내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에도 선의의 정책 대결보다는 고질병인 흑색선전과 마타도어가 난무하였다. 선진국 선거에도 간혹 나타나지만 아무리 봐도 네거티브적인 우리 선거판은 지나친 감이 든다. 후보들 간의 여섯 차례의 토론에서도 서로 마주보고 상대를 비방하고 폄하하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19대 대선은 한국의 정치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줘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이번 대선은 과거에 비해 안보와 북풍이라는 변수는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선거에도 종래의 종북 좌파 문제가 선거의 구호로는 등장했으나 그것이 표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의문이다. 한반도가 북핵 문제와 사드 문제로 위기 상황까지 왔지만 그것이 유권자의 표심에는 크게 작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익의 선거 프레임은 이제 유권자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홍준표 후보의 `종북 좌파` 프레임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안보 무능정권 청산`이라는 대응은 `장군 멍군식`이 되어 버렸다. 분단 상황에서 안보가 중요하다는 의식은 강하지만 그것이 대선의 표심을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것은 분단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경험한 `학습 효과`일지도 모른다.이번 선거에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 연고적 투표 성향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 동안의 여론조사에서는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표심은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각축이 예상되고, 대구·경북에서는 이미 홍준표,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삼각구도가 형성되었다. 과거의 여야 특정 정당이 80%이상 싹쓸이 하는 선거구도는 이번 선거에서 청산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 한국을 방문한 독일의 하이데 교수는 “한반도는 남북통일에 앞서 영호남의 지역갈등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번 대선은 지역감정에 따른 지역주의적 표심이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어 다행한 일이다. 이 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은 표심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간의 여러 차례의 여론 조사는 20·30·40대는 문재인 후보를 60·70대는 홍준표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지난 18대 대선의 세대 간 갈등이라는 표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 속담에는 `20대에 공산주의자 한번 못 되어 보면 바보이고, 60대까지 그대로 남아 있으면 더욱 바보`라는 말이 있다. 정치 현실을 보는 눈도 세대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나무랄 수도 없다. 한국의 청년층은 국정 농단의 책임문제, 청년 일자리 문제로 분노하고, 노인세대는 나라의 안보와 국정의 안정을 걱정하는 결과이다. 투표를 앞두고 가정에서 대선 후보선택을 앞두고 분란이 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결국 이를 극복하는 것도 정치의 과제이다.안보나 지역갈등 문제, 세대 간의 갈등은 결국 한국 정치의 이데올로기 문제로 귀결된다. 선거에서의 투표권의 행사는 결국 유권자의 생각과 가치관의 소산이며 선택의 문제이다. 선거는 결국 이를 수렴하고 반영하는 과정이다. 이번 대선이 이 나라의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 더구나 이번 대선은 여태껏 보혁에 대한 본격적인 점검이 시작되었다는 점도 귀중한 수확이다. 이번 선거는 보수와 진보에 관한 본격적인 논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유승민 후보는 참된 보수의 기치를 내걸었고, 진보의 심상정 후보는 합리적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고 선진화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일 탄생하는 19대 대통령은 이 나라의 갈등을 치유하고 정치 경제와 안보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

2017-05-08

대선 구도에 영향을 미칠 최종 변수는?

▲ 배한동 경북대 교수·정치학5차 토론 이후에도 대선구도는 1강 1중 3약의 판세를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일시적인 양강 구도는 복원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과 정권 교체라는 초반의 `기울어진 운동장` 구도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흩어진 중도 보수 표심과 부동표의 집결은 선거 판세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번 대선은 결국 선두 주자인 문재인 후보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중도 보수층의 재결집으로 대선판도가 바뀔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벌써 선거는 끝났다`는 주장도 있고 `아직 마지막 보수층의 결집을 주시해야 한다`는 입장이 교차되고 있다. 일주일 남은 대선 판세에 영향을 미칠 최종 변수를 검토해 본다. 우선 반(反)문재인 선거연합이라는 후보 단일화 변수이다. 문재인후보의 독주에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의 전격적인 단일화 시나리오는 가능할 것인가. 한국 갤럽의 지난 주말 여론은 문재인 40%, 안철수 24%, 홍준표 12%, 심상정 7%, 유승민 4%로 나타나 있다. 반 문재인 3인 지지율을 합하면 공교롭게도 40:40이라는 구도를 이룬다. 보수층의 위기 상황에서 과거 DJP연합과 같은 전격적 단일화는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 안철수 후보나 유승민 후보는 원칙과 명분에 맞지 않는 연합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투표지가 인쇄되는 지난 29일까지를 합종연횡의 데드라인이라고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설사 전격적으로 선거 연합이 성사된다하더라도 지지표까지 한곳으로 결집될지는 의문이다.두 번째 변수는 안보 관련 변수이다. 북핵과 미사일 시험 발사, 미국 칼빈슨 호의 동해 진입 등은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과거 같으면 이러한 안보 위기와 북풍이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도 현실적으로 대선에 먹혀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4월 위기설과 전쟁설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토론과정에서 제기된 사드 문제도 후보 간의 쟁점으로는 부각되었지만 표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간의 북풍에 관한 `학습효과`와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의 사드비용 요구가 문재인 후보의 `차기 정부 이관`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갑작스런 도발이나 미국의 공격적인 응징이라는 돌발 변수가 없는 안보 변수는 대선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세 번째는 마지막 남은 토론 변수이다. 현재까지 다섯 번의 토론이 후보 지지율 변화에 다소의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정적 변수는 되지 못했다. 토론을 통해 비교적 득을 본 후보는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후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토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정체성을 부각하여 지지율 상승에 도움을 받았다. 선두 주자 문재인 후보는 공격적 방어전술을 통해 잃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미숙한 대응으로 지지율의 손실을 초래하였다는 평가가 많다. 2일 저녁 마지막 TV 토론에서도 돌발변수가 없는 한 지지율 변동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토론에서 지금까지 노출된 적이 없는 메가톤급 폭로나 쟁점이 부각될 경우 그것이 대선 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현재의 대선 판도는 진보층의 약 80%가 문재인 후보에 결집되고, 보수층의 표심은 홍준표, 안철수, 문재인, 유승민 순으로 분산되어 있다. 보수층의 결집 없이는 현 상황이 뒤집혀 지기는 힘들 전망이다. 보수표 결집을 위한 남재준 후보의 사퇴는 보수표의 결집에 다소의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김종인 전 대표의 외곽 `개혁 공동정부안`은 실기하여 반문재인 단일화 전선 형성에는 역부족이다. 현재 사분오열된 보수표들이 홍준표 후보로 완전 결집된다면 안철수 지지율의 골든 크로스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선 전체 판세를 뒤집을 계기는 되지 않을 것이다.

2017-05-01

19대 대선,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이번 대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7개월 앞당겨 실시되는 보궐선거이다. 보름밖에 남지 않은 대선전에서 치열한 유세 열기가 전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종래의 선거에 비해 준비기간이 짧고 부족하기 때문에 선거전은 더욱 과열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번 대선이 한국 정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도 있을까. 이번 대선은 종래의 고질적인 흑색선전과 마타도어, 상호 비방이라는 네거티브는 여전히 횡행하고 있지만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번 대선은 지난 18대 대선의 대결구도와는 달리 5당 후보가 나름대로의 정책 대결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도 과거 여야의 단순한 보혁 대결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정당의 이념은 보는 시각에 따라 상대적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전통 보수 우파를 자처한 자유한국당, 보수 개혁을 표방한 바른정당, 중도 개혁의 국민의당, 중도 진보인 더불어민주당, 진보 좌파인 정의당이 있다. 이는 과거의 단순한 여야 양자 대결보다는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물론 대선 이후 정당간의 통합 등 정계 개편이 예상되지만 이러한 다당제의 출현이 정치 발전적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것이 대선 이후 정책이나 사안에 따른 정책 연대나 협치의 길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나아가 이번 대선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 연고주의 투표성향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점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조장된 영호남의 지역감정과 특정 정당의 독점구도가 해소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선 후보의 여론조사에서도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합을 벌이고, 전통적인 보수지역인 TK에서도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치열한 선두 경쟁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는 아직 두고 봐야겠지만 영호남 간 수십 년 지탱해온 특정 정당의 지역 몰표라는 독점구도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이번 대선에서 영호남의 특정 정당 독점구도가 깨어진다면 자연히 고질적인 지역감정도 완화될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번 대선에서 이것 하나만 이뤄진다면 이 나라 정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은 거의 확실시 된다.또한 이번 대선은 과거의 형식적인 후보 검증을 위한 토론은 사라지고 실질적인 TV토론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5명 후보의 2시간에 걸친 초유의 스탠딩 토론은 과거와 달리 후보가 사전 준비 자료를 지참치 않고 진행됐다. 대선 후보의 인사말에 이어 9분간 할당된 주도권 토론에서 후보들은 상호 질문과 답변을 통해 자신의 정책적 입장이나 정치적 소신을 여과 없이 노출시켰다. 시청자들은 오랜만에 박진감 넘치는 토론장면을 접할 수 있었다. 물론 토론에서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도 빈발했지만 시청자들은 과거와 다른 토론 장면을 통해 이 나라 최고 정치 지도자의 자질을 검증할 기회를 접한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토론의 형식은 그럴듯 했으나 그 내용과 수준은 아직도 저급한 수준을 탈피하지 못했다. 특히 선두 후보에 대한 청문회 식 질문과 감정적인 질타는 다자 토론의 한계를 여실히 노출했다.결론적으로 19대 대선과정의 이러한 측면이 정치 발전론적 시각에서 우리 정치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다당제 하에서 여러 입후보자의 등장은 유권자의 선택의 폭을 과거 보다 넓혀 주었다. 또한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 연고주의적 투표 행태는 이번 선거로 사라질 가능성마저 보여 주고 있다. 처음으로 도입된 스탠딩 토론 방식도 문제점만 보완된다면 후보의 자질을 보다 철저히 검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이 나라 민주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2017-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