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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에 묻혀버린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

등록일 2017-07-17 02:01 게재일 2017-07-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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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일본을 여행한 사람은 누구나 일본인들의 친절성에 감탄한다. 우리 한국인들도 그들의 친절성을 벤치마킹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개개 일본인의 태도는 칭찬하면서도 일본정부나 국가에 대해서는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다. 아베 정부의 독선적인 역사 인식과 극우의 태도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친절성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질서의식을 정부가 집어 삼켜 버린 모양새이다. 결국 일본 개개인의 도덕성은 일등 국민이지만 일본 정부의 오만성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일본의 단체 해외여행에는 가이드가 깃발을 앞세우고 그룹을 선도한다. 세계의 여행객이 운집하는 중국의 만리장성에서도 일본의 노인들도 그 깃발만큼은 놓치지 않고 잘 따라다녔다. 모아놓았다하면 곧 흩어지는 한국 관광객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장면이다. 어린이도 아닌 일본 어른들이 깃발을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중국 만리장성관광센터에서 한국사람 찾는 방송은 빈번했지만 일본인을 찾는 방송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인들의 이러한 질서의식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들의 내면화된 집단주의 외에는 설명할 방도가 없다. 정부가 지시하면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일본인의 태도는 일본의 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극우 국수주의라는 독이 될 수도 있음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일본 여행 중 종종 버스나 열차도 타 본 적이 있다. 열차안의 일본인들은 대부분 책을 읽으면서 정숙을 유지한다. 우리나라의 완행열차 안의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는 아직도 큰소리로 통화하고 동료들과는 떠들썩하게 대화하는 것이 예사다. 우리의 열차 내 방송은 아직도 휴대 전화를 진동으로 유지하고, 전화를 받을 때는 실외 통로를 이용하라고 방송한다. 몇해 전 가고시마로 가는 일본 신칸센 이동 판매원의 목소리는 모기 소리보다 작았다. 모두가 남에게는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지배하고 있다. 그런 조심스런 일본인들의 태도에 비해 일본정부의 주변국에 대한 위압적인 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종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적 폭력인데도 사과 한마디 없으니 더욱 이상하다.

일본의 전역은 땅만 조금 파면 온천이 솟는다. 더욱이 일본의 벳푸 일대는 온천으로 외국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남녀 탕을 아침저녁 교대하는 일본의 대중탕은 외국인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들의 대중탕의 조용하고 질서 있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입탕 시 손 바닥만한 타올 한 장을 머리에 얹고 들어간다. 머리에서 흐르는 땀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샤워할 때도 그들은 앉아서 조용히 한다. 옆 사람에게 물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우리 교수 일행이 참여한 이번 여행에도 가이드는 이 점을 철저히 교육(?)시켰다. 이러한 질서가 그들의 규범이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사회가 일본이다. 일본의 이러한 질서 문화가 일본인들의 집단 이지매와 자살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처럼 일본인들의 이러한 질서 의식에는 빛과 그림자가 따른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들의 순종과 질서 의식을 교묘히 정치에 악용하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 극우의 안보 이슈는 집단적 질서의식의 부정적 그림자이다. 일본의 정치 종교화된 신사(神社)라는 집단 문화도 외래 종교의 교세 확산을 막고 있다. 이미 임진왜란 시 우리 나라에 종군신부까지 파견한 일본의 가톨릭은 오늘날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2차 대전시의 영웅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도 일본인들의 집단적 질서 문화의 소산이다. 일찍이 라인 홀더 니버는 개개인은 도덕적으로 선량해도 그들이 모인 공동체는 탈선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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