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이 `보수`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지난 5·9 장미 대선은 보수를 재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대선 참패 후 보수 정당은 이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당대표를 선출하고 류석춘 당 혁신위원장은 당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바른정당 역시 이혜훈 당 대표의 선출로 `보수 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들 보수 정당은 개혁에 성공할 것인가. 보수 정당의 개혁은 당내외의 여건상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당 개혁의 성과는 내년 지방 선거에서 가시화 될 것이다. 보수정당이 당 개혁에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이 필수적이다.
첫째, 한국의 보수 정당은 대통령의 탄핵과 선거 패배에 관한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거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자유`의 말살과 권력의 독점으로 붕괴되고, 박정희 공화당 정권이 `공화`라는 이름으로 `유신 독재`로 전락해 버렸다. 그간 집권 새누리당은 기득권 유지의 보수 안주 정당, 오만한 정당, 웰빙 당, 권력의 사유화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친박 주류의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의 독선적 리더십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막지 못했다. 바른정당 역시 대통령 탄핵에 동조하고 보수 집권당의 분당에 원천적 책임이 있다. 보수 양당은 상호 책임 전가만 할 것이 아니라 각기 뼈아픈 자기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보수 정당은 이번 대선의 패배 원인을 냉철히 파악하여야 한다. 보수 정당은 촛불민심에 따른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로 자기변명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 유지의 실패는 전직 대통령의 국정 농단과 직무유기뿐 아니라 보수정당의 개혁 실패에도 원인이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문제는 집권 여당의 분당으로 이어지고 분열된 보수정당은 대선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대선은 보수가 자기반성 없이 개혁을 방기하고 체제에 안주할 때는 필망(必亡)한다는 교훈을 잘 보여주었다. 자유한국당은 집권의 실패에 대해 남 탓을 이제 그만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과감한 당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보수 정당은 시대정신을 먼저 읽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변화를 선도할 때 지지층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의 보수 정당은 보수의 이념적 좌표를 확실히 해야 한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당의 좌표를 보수의 강경 우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류석춘 당 혁신위원장도 보수 개혁은 좌 클릭이 아니고 우파의 가치 추구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나 영국의 대처리즘를 선망하고 있는듯하다. 남북의 분단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자유한국당도 독일 기민당 메르켈 수상의 리더십을 벤치마킹해야 하지 않을까. 메르켈은 독일 기민당의 헬무트 콜의 보수주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과감한 개혁을 통해 통일 독일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수 정당도 이제 수구가 아닌 자유와 진보의 가치를 이념적 좌표로 수용해야 할 시점이다. 이들도 제대로 정착된 민주주의 위에서 자발적 안보가 성숙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넷째, 한국의 보수 정당은 `인간의 얼굴을 한 보수`를 위해 분단 이후 수 십 년 동안 수구가 씌운 답답한 갑옷을 이제 벗어던져야 한다. 대북 문제와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종래의 굳어진 종북 좌파 프레임은 이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과거에 통했던 북풍이나 종북 프레임은 통하지 않고 오히려 역풍만 초래했을 뿐이다. 북한 김정은 3대 세습에 반대하는 세력이면 누구와도 대북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이념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감한 당 개혁이 보수층의 재결집뿐 아니라 당의 외연을 중도까지 넓히는 길이다. 내년의 지방 선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조직의 기반이 완전히 갈라지기 전 하루 빨리 보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