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9 장미 대선은 문재인 후보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문 후보는 지난 4월 17일 대구 2·28기념탑에서 참배로 시작하여 5월 8일 대구 동성로 유세로 선거 운동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였다. 당시 문 후보는 대구·경북이 전국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이라 이를 의식하고 이 일정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흔히 대구·경북은 진보적인 야당이 선거 운동을 하기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하기 보다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후보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은 전국 41%지지율에 비해 최하위인 21%의 지지만을 획득하였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의 19% 지지율에 비해 20%의 장벽을 넘은 것은 후보의 이 곳에 대한 관심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5월 8일 오후 2시께 동대구역에서 동성로 유세장까지 문 후보를 20분간 동행 취재하는 기회를 가졌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수행원 몇 명과 동대구역 플랫폼에 함께 내린 문 후보는 연일 강행군 탓으로 피곤해 보였지만 표정은 무척 밝았다. 역 구내에서 이동하는 문 후보에게 “사전 투표 했어예”하며 엄지 척을 하는 청년도 보였다. 문 후보는 역구내에서 아이를 안은 젊은 부부, 여성 유권자, 역무원에 이르기까지 흔쾌히 셀카 앞에서 다정히 포즈를 취해주었다. 동성로 대백 앞의 예정된 유세시간에 쫓기는 순간이지만 후보는 순순히 촬영에 임해 주었다. 문 후보가 찍은 셀카 사진만해도 전국적으로 수만 명은 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대구 역사 뒤편 새로 개설된 고가 도로위에는 흰색 승용차가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 후보가 겨우 역사를 빠져 나와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지근거리에서 어떤 60대 남자가 갑자기 “ X X X, 답배 값이나 좀 내려라”하면서 고함을 쳤다. 수행원과 경호원뿐 아니라 후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문 후보는 예의 빙그레 웃음 띤 표정으로 `잘 알겠습니다`하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후보가 차량 좌석에 앉으려는데 이번에는 어느 영업용 택시 기사가 달려와 “120만원 가지고 도저히 못살겠어예”하고 소리를 외쳤다. 경호원이 그를 가로막고 차문을 닫으려 하니 문 후보는 문을 열고 `허허, 그거 내 공약에 있잖아요. 잘 보십시오.” 또 다시 미소로 응대하였다.
선거 운동 기간 중 여러 번 부딪쳐 쌓인 내공일까. 유세장으로 급히 떠나는 문 후보, 거칠게 항의하고 돌아가는 기사의 뒷모습에서 한국 정치의 굴절된 단면을 보는듯 했다.
동성로 대백 앞 후보의 열띤 연설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에 둘러싸인 문 후보는 명쾌한 단답형 연설로 분위기를 한층 돋우기 시작하였다. “이 나라 적폐 청산 누가 할 수 있습니까?” “문재인”, “진정으로 이 나라 정권 교체할 후보는 누굽니까?” “문재인” “이제는 대구를 확실히 바꿀 수 있습니까?” “예” 대구의 젊은 문재인 지지층의 열기는 가히 하늘을 찌를듯 했다. 이곳저곳에서는 감격에 북받쳐 흐느끼는 지지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유세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노인 세대는 가뭄에 콩 나듯 하였다. 이 지역의 `문재인만은 절대 안 된다`는 노년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리라. 그러나 대구 동성로의 문재인 후보의 20분간의 연설은 4년 전 이곳에서의 연설에 비해 더욱 세련되고 결기에 차 있었다.
그로부터 28시간 후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구에서의 소탈한 탈권위주의적 모습은 청와대 입성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수석들과 와이서츠 차림의 격의 없는 대화, 청와대 직원들과의 구내식당 식사, 출입기자들과의 2시간 등행 후의 삼계탕 회식 모두가 신선한 장면이다. 과거 박 대통령과는 너무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시민 친화적 리더십이 강단 있는 리더십과 결합할 때 국가적 위기는 극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