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아침, 논에 일을 하러 간 촌로가 고된 일을 마치고 세수 겸 냉욕을 하러 들른다. 태양이 꼬리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점심시간이 지나면 촌마을의 꼬마들이 삼삼오오 자전거를 타고 와서는 물놀이를 신나게 즐기고 들어간다.
어스름 해질녘이면 흙투성이 아들을 앞세운 아버지가 이곳에 들러 서로 등목을 해주며 부자의 정을 쌓는다. 밤이 깊어지면 더위에 지친 총각들이 수건 한 장과 수박 한 통을 들고 퐁퐁 솟아나는 차가운 샘물에 몸을 담그고 오래버티기 내기를 하며 한여름 밤을 즐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서려있는 장소는 바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들판 한 가운데 위치한 `새말리(노천냉탕)`다. 이곳에서의 물질은 시간도 연령도 제한이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남성전용 노천탕`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도로에서 바라보면, 모내기한 벼가 담장역할을 해서 가림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새말리`의 어원은 애초에 `샘물`이 아닌가 하고 유추되고 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여름철 피서 장소로, 여름철엔 남성들이 벌거벗고 냉욕을 하였고 겨울철엔 여성들이 와서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던 곳이다. 특히 가뭄시에도 샘이 마르지 않고 더운 여름철에도 냉기를 유지하고 있는 노천탕으로 우리 지역의 특색있는 자랑거리다.
오래전에 모 방송국에서 새말리를 방송으로 제작하자는 제의를 했다. 그래도 전국 방송으로 보내기에는 너무 작고 초라한 것 같아서 선뜻 응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방송국 PD분이 하신 말씀이 “당신 동네에 있는 새말리가 전국 냉탕 중 최고입니다”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이유가 재미가 있는데 `산에 가도 없고 바다에 가도 없는데 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에 가니 그 한가운데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노천냉탕이 멋들어지게 있다`는 내용으로 용기 내어 방송을 제작하고 전국에 알렸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찾아와서 취재하고 방영을 한 곳으로 꽤나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 명성이 조금 떨어지고 있어서 올해 노천탕을 포항시 예산에 편성하여 새롭게 단장을 했다.
이제 새말리는 무더위에 지친 포항시민들의 힐링 장소로, 아이들 야외 풀장으로의 기능이 충분하리라 본다. 이러한 곳을 그 동안 방치하고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닐까?
수 십억원을 들여 호미곶 해안둘레길도 조성하고, 형산강 수상레저타운도 만드는 등 없는 자원도 새롭게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새말리뿐만이 아닌 우리 포항시 읍면동에 산재되어 있는 옛 선조들이 물려주신 소중한 유산을 우리는 방치하고 소홀이 여기고 그 자취를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포항시가 보유한 우리의 미래세대가 누려야 할 자원인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하여 포항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올해 우리 지역의 가뭄은 매번 신기록을 갱신하며 물이 없어 온 들판이 갈라지고 모가 타죽는 이상고온과 가뭄이 기승을 부리지만 이곳 새말리는 신기하리만치 샘솟는 샘물의 냉기와 수량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올 여름엔 잊지말고 가족과 함께 새말리에서 냉욕을 즐겨보시길 권한다. 인근에는 칠포해수욕장도 있고 그 맞은편엔 곤륜산의 청동기시대 암각화 군락지도 있다. 돌아가는 길엔 흥해읍 시내에 위치한 영일민속박물관도 둘러보자. 신라비를 비롯한 4천600여 점에 달하는 민속자료뿐 아니라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00년의 회화나무도 관람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는 새로운 포항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고 관광객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기에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