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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길에 마주친 두 개의 얼굴

등록일 2017-07-10 02:01 게재일 2017-07-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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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이번 일본 여행은 학술회의를 겸한 역사 테마 여행이었다. 시모노세키의 청일 조약 현장에서부터 명치유신의 발상지인 하기(萩市)시까지 돌아보기로 했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하기의 명륜학원의 일본 근대화 전시관부터 먼저 돌아보았다. 우리 일행은 명치유신의 거목 요시다 쇼인의 출생지와 사숙을 돌아보고, 그의 은인이며 후일 총리대신을 거쳐 조선총독이 된 이등박문의 고택도 찾아보았다. 지난해 여름 안중근 의사가 그를 암살한 중국 하얼빈 역을 방문한 나로서는 미묘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이 지역은 현 아베 총리의 고향이라 더욱 호기심이 가는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시골 호텔은 아베가 푸틴을 초대해 같이 온천을 즐겼다는 곳에서 가까운 아름다운 곳이다.

다시 8·15 광복 72년 주년이 다가오는데 아직 우리는 일본에 대한 응어리진 감정이 남아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한일 외교적 갈등의 원인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일제식민지배에 대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근년 아베 정권은 과거사에 대한 그릇된 역사 인식뿐 아니라 군국주의 부활 노선이 우리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아베 수상은 아무런 반성도 없이 평화 헌법까지 파괴하려는 집념을 보이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아베 정부의 그릇된 노선은 또 다시 일본의 `국가 이성`을 마비시킬지도 모른다. 아베의 불쾌한 얼굴이 즐거운 여행길의 차창 밖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극우의 정치에 편승해 탈선의 길을 가는 아베의 정책 노선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학자도 더러 있었다. 아베의 대중 인기에 영합한 극우의 노선은 우리 뿐 아니라 뜻있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우려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과거 일제의 한반도 정한론(征韓論)에 반대한 일본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일본의 학자들 중에는 아베의 국수주의적 태도를 반대하는 학자도 소수지만 분명히 있다.

일전 텔레비전에서 일본 학자 중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 교수를 본 적이 있다. 일본 학자들 중에는 일본에서 키 크고 인물이 잘 생긴 사람은 대체로 도래(渡來)인 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 도래인이 과거 백제 등 한반도에서 건너온 온 사람을 의미한다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정직한 모습이다. 나 뿐 아니라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의 친절성을 칭송한다. 혹자는 일본인의 본마음과 겉마음은 다르다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정직성과 친절성은 글로벌 시대에 우리 보다는 앞서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묵은 나가도(長市) 시골 호텔의 청소부부터 총지배인에 이르기까지의 그들의 친절성은 우리의 추종을 불허케 한다. 하루 종일 여행으로 지친 우리 일행을 일일이 친절히 맞이하는 호텔 사장, 버스 트렁크 안까지 들어가 짐을 옮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운전기사, 버스가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드는 종업원의 모습, 모두 지울 수 없는 일본인들의 얼굴이다. 이들의 모습은 집단 최면에 걸린듯한 아베의 얼굴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여하튼 일본은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일본 여행길에 떠오른 아베의 얼굴과 일본인들의 친절한 얼굴은 분명 다른 두 개의 얼굴이다. 일본의 불황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은 아베의 얼굴 뒤엔 이러한 부지런하고 친절한 국민이 있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심통이 나기도 한다. 우리는 민중이 정치적 이슈로 때때로 폭발하고 상호 충돌하고 정권까지 바꾸지만 일본 국민들의 집단 저항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도쿄 도의회 최근 선거는 아베의 독선에 일격을 가했다. 우리도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을 위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대일 감정만으로 양국의 갈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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