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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하면 우리국민도 자긍심을 가질 만한데

등록일 2017-08-07 21:28 게재일 2017-08-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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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동<br /><br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해외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우리나라가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 봐도 교통과 통신 사정이 우리나라 만한 나라도 드물다. 우리나라가 OECD국가가 된 지 오래고 GDP면에서는 세계 12위의 경제 강국이다. 그러한데도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 언론이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결과일까. 아니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에 내재된 일제 식민 사관에 의한 열등의식 때문일까. 여하튼 우리나라 사람 중엔 우리 문화에 대한 긍지가 부족한 사람이 의외로 많고 심지어 우리를 자학(自虐)하는 사람까지 있다.

지난주 고속도로에서 큰일날뻔 한 일이 있었다. 추풍령을 넘고 영동으로 향하던 내 차가 갑자기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흔들리며 브레이크도 말을 듣지 않았다. 100km 속도를 달리다 당한 일이라 몹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앞 뒤차를 간신히 피해 고속도로변에 급정거했다. 예측대로 우측 앞 타이어가 펑크나 도로에 납작 붙어 있었다. 온몸에 진땀이 났고 무엇부터 할지 정신이 없었다. 옆 좌석에 동행한 아내의 도움으로 보험회사에 가까스로 사고 위치를 알려 주었다. 겨우 차량을 대피시키니 고속도로에는 피서 차량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러다 고속도로 대형 사고가 나는구나하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우리 부부는 난생 처음 보험회사 구조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경광등을 번쩍이는 차량 한 대가 우리 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척 반가웠으나 보험회사 차가 아닌 경찰 순찰차였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었더니 고속도로 CCTV를 보고 급히 달려왔단다. 순찰 경찰은 간단한 경위를 묻고 순찰차를 우리 차량 후면에 세워 보호까지 해주었다. 경찰관은 큰 사고가 나지 않아 무척 다행이라며 우리를 위로까지 해줬다. 지난해 러시아 여행길 고속도로에서 우리 차량을 세우고 괜히 트집을 잡다 현지 가이드가 돈 몇 푼 지어주니 떠나는 러시아 경찰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다.

보험회사 구조 차량도 30분이 안되어 도착했다. 기사는 신속한 손놀림으로 스페어 타이어로 교체하고 조심해서 운전해 가라고 말했다. 그 기사 역시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크는 대형 사고의 원인이라고 미리 점검하고 출발하라는 당부도 했다. 그는 나에게 평소 덕을 많이 쌓아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덕담까지 하며 현장을 떠났다. 경찰 순찰차도 우리 차량을 한참이나 에스코트하다 사라져 버렸다. 조심스럽게 차를 운전하면서 모두가 고맙고 우리나라도 이제 정말 괜찮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회사의 응급조치도 마음에 들었고 경찰관의 태도도 매우 친절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해당 경찰서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이 도리라고 일깨워 줬다.

여러 해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자동차로 달려 본 적이 있다. 이곳 도로 사정은 우리보다 훨씬 나쁘고, 휴게소는 우리나라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독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일본을 여행해 봐도 도로 만큼은 우리가 월등히 앞선 것이 사실이다. 중국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소감문에는 한국 고속도로의 화장실이 너무 깨끗하다는 감탄 글이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도로 사정은 사실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사통팔달의 고속 도로, 숲이 울창한 아름다운 산하, 깨끗한 휴게소 모두가 세계적 수준인데 우리는 이에 대해 무관심한 듯하다. 문제는 우리의 이러한 훌륭한 교통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민 의식이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물질문화는 급속히 발전했는데 우리의 정신문화가 따르지 못한 결과이다. 일종의 문화지체(cultural lag) 현상이다. 이 나라 경찰관의 친절성, 출동 기사의 책임감 등이 더욱 확산될 때 우리의 정신문화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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