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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학폭’ 뿌리 뽑자… 하지만 狂風은 경계해야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시작으로 ‘학폭 미투(나도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다. ‘성범죄 미투’에 이어 또 한 번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날 조짐이다.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평생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근절해야 할 범죄다. 차제에 범죄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찾아서 그릇된 문화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추세가 광풍(狂風)이 되어 또 다른 폐해를 낳는 일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가수 진달래와 요아리, 여자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에 이어 배우 조병규, 그룹 TOO 멤버 차웅기에 이르기까지 연이어 스타들의 학폭 의혹이 쏟아져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조병규의 학폭 논란은 사실무근인 것으로 마무리돼가고 있고 차웅기 측도 “사실무근”이라고 맞서는 상황이다.철없던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망가뜨리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 논란의 당사자는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스타의 재능을 아끼고 사랑해온 팬들 역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한다.학폭 논란에 휩싸인 스타들을 바라보는 민심은 일단 매우 싸늘하다. 리얼미터가 한 언론사의 의뢰로 학폭 선수 국가대표 자격 박탈 여론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70.1%가 ‘일벌백계로 처리해야 한다’고 답했다. ‘청소년 시절 잘못으로 국가대표 자격 박탈은 지나치다’는 응답은 23.8%에 불과했다.학교폭력예방법 2조의 ‘학교폭력’에 대한 정의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 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등을 망라한다. 누구나 알듯이 과거에는 아이들 세계에서 흔하게 일어나던 미개한 풍토였다.빈대는 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자고 초가삼간을 마구 태우는 일은 온당치 않다. ‘학폭’을 제대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근본 원인을 올바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이 핵심이다. 엘리트 체육, 성적 지상주의, 인기 만능 풍조 속에 빼곡 박힌 모순부터 찾아내서 혁신해야 할 것이다. 다만, 마구잡이식 미투 광풍으로 멀쩡한 사회 생태계가 파괴되는 일만큼은 철저하게 차단돼야 마땅하다.

2021-02-18

K-방역의 민낯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코로나19 대확산 우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설 명절을 쓸쓸하고 적적하게 지내야 했다.가족 간의 정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설 명절을 보내야 했던 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직계가족이라 해도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조치로 온 가족이 오손도손 세배하는 풍경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집 식구도 5명 이상이면 흩어져 외식을 하는 황당한 처지에 놓였다. 이 모두가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대확산에 당황한 정부가 내놓은 즉흥적이고 비과학적인 방역기준 때문에 국민들만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밝힌 코로나 집단감염 사례 통계 수치를 보면 종교시설 33%, 요양 시설 13%, 직장 11%, 실내외 체육시설 4%, 음식점·카페 2%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확산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는 집단감염 실태가 이런데도 소상공인 자영업 시설은 코로나 고위험 시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영업제한 내지 금지조치로 아픔을 겪었다.이러니 야권에서는 정부의 갈팡질팡 영업제한 방침이 소상공인·영세사업자의 목줄을 죄는 참사로 이어졌다고 목청을 높인다. 한마디로 개인의 자유와 영업활동의 자유를 박탈한 소위 ‘K-방역의 민낯’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5인 이상이 모여야 확산된다는 비과학적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한다. 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밤 9시나 10시 이후에 더 활성화되는 야행성이라는 주장은 누구의 생각인지 묻고 있다.스티브 잡스가 우여곡절 끝에 그가 세운 애플사로 다시 복귀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직 많은 애착과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한 물품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웬만한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위해 버리고 청소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일이나 감정에 얽매였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고, 과거를 복수하기 위해 복수에 찬 마음을 갖지도 않았다. 한 걸음 나아가 종전처럼 일에 강박관념을 갖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새로운 세계를 열수가 있었다. 핵심은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이다.어느 정신과 의사가 환자가 정말 퇴원할만큼 좋아졌는 지 확인할 수 있는 실험방법을 새로 개발했다.마개를 막은 욕조에 물을 틀어놓고 물이 차서 넘치게 한 뒤 퇴원예정인 환자의 손에 걸레를 쥐어주고 물을 닦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정상적인 사람은 물을 잠그고 욕조마개를 제거한 후 물기를 닦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이 나오고 있는 수도꼭지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넘치는 물만 부지런히 퍼다 나른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해결하려는 사람은 치료가 더 필요한 사람이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직시해야 비로소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어리석은 자가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을, 현명한 자는 제일 처음에 한다”고 했다. 정부는 한시라도 빨리 낯뜨거운 K-방역의 민낯을 추스려 주길 바란다.

2021-02-18

이틀 연속 600명대… 4차 대유행 막아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또다시 급증세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로 낮췄으나 코로나19 확진자는 되레 늘어나는 양상이다.17일 전국적으로 621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온 데 이어 18일에도 똑같은 62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600명대 확진자 발생은 지난달 10일 이후 38일만이다. 15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단계 완화하자 곧바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등하는 추세를 보여 보건당국도 난감한 상황이다.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잠복기가 최대 2주인 점을 고려하면 설 연휴 영향은 다음 주에 가서야 본격화할 것으로 보여 향후 신규 확진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8일 0시 기준 지역에서는 대구 9명, 경북 22명 등 31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전날 29명(대구 14명, 경북 15명)보다 2명이 더 늘었다. 경북은 충남 아산시 귀뚜라미 보일러공장 관련자 등 연속 두자리 수가 이어지고 있다.당국이 거리두기 완화를 시작한 이번 주의 코로나 신규 확진자 추이를 보면 15일 344명, 16일 457명, 17일 621명, 18일 621명 등으로 분위기가 심상찮다. 전문가들은 3-4월의 4차 대유행 가능성까지 예측을 하고 있다.현재 코로나19 확산의 변수는 3가지 정도로 보인다. 설 연휴 이동에 따른 여파가 첫째다. 잠복기를 감안하면 다음 주까지 시한폭탄을 안고 가고 있는 꼴이다. 또 곧 100명 선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변이 바이러스 확진자의 관리도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가 15일부터 완화한 영업시간 제한조치가 미칠 파장이다.보건당국은 신규 확진자 수가 지속 증가하면 완화된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이 발표한 새로운 방식의 방역체계도 미룰수 있다고도 했다.전문가에 따라 4차 대유행이 시작하면 하루 1천명대까지 올라갔던 3차 대유행기 보다 더 많은 하루 2천명대 발생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달 26일부터 코로나 예방 접종이 시작되고 3월에는 학생들의 개학도 예정돼 있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할 당국으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곤혹스럽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방역의 고삐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 한다.

2021-02-18

특별법의 남발

특별법은 헌법과 형법, 민법처럼 모든 국민에게 효력이 미치는 일반법과는 달리 특정한 지역이나 사람, 행위에 관해 적용되는 법이다. 일반법과 상충할 때는 특별법이 우선 적용된다. 일반법의 입법 제·개정 과정과 비교하면 비교적 간단해 국회의원들이 지역민원 해결 수단으로 많이 활용하는 법으로 통한다.지난해 여당이 발의한 부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대표적인 예다. 여당은 부산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부산시장 선거를 의식해 만든 법이라는데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굳이 선거를 앞두고 특별법을 만들고 선거전에 서둘러 통과해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호남지역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만든 한전공대 특별법이나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조성 특별법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이 필요하다면 합목적성이나 예산의 적정성을 따지지 않고 언제든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지역의 환심을 사는데 이보다 좋은 방법도 없다.지금처럼 여당의 국회의원 수가 과반을 넘는다면 특별법 제정은 식은 죽 먹기다. 2011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법률 체제의 정당성 원칙에 위반되는 특별법 제정을 자제해 달라고 각 상임위에 요청한 적이 있지만 특별법 제정은 줄지 않는다. 19대 국회의 경우 832건의 특별법이 발의됐고, 20대 국회에선 1천275건이 발의됐다. 지금의 추세라면 21대 국회는 2천건이 넘을 것이란 예측이다.문제는 특별법 남발이 주는 부작용이다. 법체제의 정당성 상실이나 국가 재정 낭비뿐 아니라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덕도 특별법이 통과된다면 예타없이 10조원의 국가재정이 투입된다. 특별하지도 시급하지도 않으면서 특별 대접을 남발하는 우리 정치권의 입법 행위가 황당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2-18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는 포스텍(포항공대)과 함께 한국을 끌어가는 특성화 과학기술 대학의 쌍두마차이다. 한국사회에서 이 두 대학은 세계의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이다.신성철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오는 22일 은퇴식을 갖는다고 한다. 1975년 카이스트 석사과정으로 입학하여 거의 반세기 가깝게 카이스트와 함께한 신 총장은 지난 16일 카이스트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온라인으로 성대하게 거행하였다.카이스트는 1971년 대학원으로만 창설되어 첫 입학생을 1973년 선발하였고 신 총장은 필자와 함께 입학한 3기 입학생이 된다. 필자와 함께 학생회 활동도 같이 하였던 신 총장은 카이스트 졸업 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그동안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자성연합회(AUMS·Asian Union of Magnetics Societies)’가 주관하는 AUMS상을 수상하는 등 탁월한 연구업적과 함께 카이스트 부총장을 거쳤고 6년간 디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그리고 4년간 카이스트 총장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은퇴하게 되는 것이다.그의 업적은 수없이 많지만 대덕클럽을 창설하여 과학자들의 대화와 교류의 광장을 만든 것과 논문에 구애 받지 않고 10∼20년간 연구에만 몰두하는 Singularity(집중연구)교수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혁신적으로 꼽힌다.그는 50주년 기념식 후 거행된 심포지엄에서 “다음 50년 동안 KAIST는 ‘10-10-10 드림’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노벨상이나 필즈상을 받을 만한 학문적으로 업적을 쌓은 교수 10명을 배출하고 100억 달러(10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지닌 스타트업(데카콘) 10개를 육성하고 케냐를 비롯해 전 세계에 KAIST를 10개 설립할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장엄한 선언이다.이날 기념식과 심포지엄에는 미국의 MIT, 일본의 동경공대, 중국의 칭화대, 스위스 ETH 등 초 일류대학의 총장들이 참여하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 카이스트의 세계적 위상을 실감하게 하였다.이러한 축하 무드 속에서도 필자는 과학에 정치가 관여된 지난날을 돌이켜 보게 된다. 회상하기도 싫지만 이런 한국 과학계의 엄청난 공헌을 한 신 총장은 정권이 바뀐 후 과기부의 무리한 감사를 통해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법원이 판결했다. 사실상 그동안 12개의 과학계 수장들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정권이 바뀌면서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 정권의 과학계의 수장들을 몰아내고 무리한 감사를 통해 사임케 하는 나쁜 전통은 이제 더 있어서는 안 된다.신성철 총장의 은퇴를 축하하고 한국과학계를 위해 계속 일해주시길 부탁드리며 한국 과학계도 이제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과학계는 절대 정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2021-02-18

행운목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몇 해 전에 행운목 한 토막을 샀다. 길가에 늘어놓고 파는 것을 지나다가 별 생각 없이 산 거였다. 세 개의 순이 돋아 있는, 팔뚝 굵기로 한 뼘 가량인 행운목 토막을 수반에 세워 두고 가끔씩 물을 갈아 주었다. 어둡고 비좁은 내 방에 생기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건 흐뭇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 달을 못 가서 두 개의 순이 시들어 버렸다. 하나 남은 순도 곧 시들 것 같아서 에멜무지로 떼어서 작은 화분에다 옮겨 심었더니 뜻밖에도 잘 자랐다.내가 보탠 것은 이따금 물을 준 것 밖에 없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크고 푸른 잎을 무성하게 단 의젓한 식물로 자라 내방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햇볕이 들지 않아 상당히 열악한 환경일 텐데도 저토록 왕성하게 자란다는 것은 필시 좋은 징조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란 말이 있지만, 저 행운목이 전하는 메시지는 ‘삶이 행운(幸運)이라는 걸 기억하라’는 게 아닐까 싶다. 가진 것도 이룬 것도 별로 없는 삶일지언정 살아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라는 걸 부단히 환기하는 것 같다.운명(運命)이라는 걸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재수가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듯이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을 때는 팔자소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없지가 않아서 운수대통이라는 말도 있다. 인생에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인 것인지, 제 하기 나름으로 팔자나 운명은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인지, 동서고금에 여러 갈래의 주장과 신념들이 분분하다.기독교에서는 세상만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불가에서는 일체의 현상을 ‘연기법’에 의한 것으로 본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다 헤아릴 수는 없으니 무조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이고,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인과율에서 자유로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불교적 세계관이다. 둘 다 세상사에 우연(偶然)이란 없다는 것과, 그렇다고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르지가 않다. 하지만 흔히들 ‘운이 좋다’거나 ‘재수가 없다’는 말을 다반사로 쓰고 있듯이 운수(運數)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바뀔 수도 있는 게 운명이란 생각도 대다수인 것 같고.개인에게 운세가 있듯이 나라에도 흥망성쇠의 국운(國運)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국운이 집권자의 자질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걸 요즘처럼 절감한 적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 4년 동안 나라 도처에 불길한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 교육, 언론 어느 하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수천 년을 이어온 나라도 하루아침에 패망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피땀으로 쌓아온 대한민국을 더이상 저들의 손에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드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민주주의국가라면 모든 책임도 결국 국민에게 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국운의 향방을 가른다는 걸 모두가 명심할 일이다.

2021-02-18

내게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조근식포항침례교회담임목사결혼 10년을 맞이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부부 사이가 매우 좋아서 겉으로는 매우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되는 사람이 랍비를 찾아와 이혼을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랍비도 그 부부를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설마 이들 부부 사이가 불편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이혼의 이유인즉, 이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없어 친척들로부터 이혼할 것을 강요받아왔다는 것이었다. 유태의 전통에 의하면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 아이를 얻지 못하면 이혼 조건이 성립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헤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가족들과 친척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어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랍비를 찾아와 의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두 부부가 함께 찾아왔을 때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랍비들은 이혼 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들이다. 왜냐하면,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은 다시 재혼하여도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착한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하더라도 아내에게만은 굴욕감을 주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헤어지기를 바라고 지혜를 구하기에 랍비가 ‘탈무드’에서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먼저 아내를 위한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거기에서 지금까지 함께 살아오면서 보여준 아내의 훌륭했던 점을 자랑하고 아내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직접 인사말을 하도록 하였다. 이들 부부는 서로 싫어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정을 명백하게 밝히려는 뜻이었다. 랍비는 그에게 해야 할 말을 귀띔해주어 도와주었다.남편은 이제 헤어져야 할 아내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 선물은 아내가 헤어지고 난 후에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랍비는 남편에게 잔치가 끝나면 아내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청중 앞에 약속하게 하였고, 아내에게도 똑같이 그 약속을 믿고 가장 귀한 것을 구하도록 권유하였다. 잔치가 끝나자 남편이 아내에게 가장 귀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을 하나만 말하라고 하였다.그때 아내는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한 가지만 요구하게 되었다. 아내의 요구는 자신이 평생 가장 귀하게 간직하고 싶은 것은 곧 ‘남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헤어지지 않았고, 그 후 아이까지도 낳게 되었다고 한다.지금 당신의 삶에 주어진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대부분 그 귀중함을 모른채 어리석게 있다가도 없어질 것에 맘을 두고 때론 목숨을 걸고 살지는 않습니까?

2021-02-17

자리

배문경수필가복수초(福壽草)가 피었다.노란꽃잎이 하늘을 향해 ‘영원한 행복’의 꽃말처럼 빛난다. 오래전 설악산 겨울 등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꽃잎 위의 눈을 녹이던 복수초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니 반갑다. 겨울 눈 속에서 추위를 이기고 봄을 알리기 위해 피어난 강한 꽃이다.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하던 딸이 집을 떠난 지 달포가 되었다. 딸은 학교를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을 치겠다며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첫해 석 달 동안의 공부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며 그동안의 공부와 시험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은 것 같았다.책상 앞이 딸의 자리였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잠든 동안,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사이 눈비가 내렸고 바람도 불었지만 안중에 없었다. 합격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시험에 사활을 거는 것이 사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았다. 딸은 책과 문제집, 인터넷 강의에 몰입했다. 지독한 각오가 보였다.인내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나는 딸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의 염원처럼 아니 모든 어머니가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만 두 손을 모았고 엎디어 절을 했다.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고서야 출근했다. 눈비가 내리고 천둥이 쳐도 상관없이 그 길을 걸으며 한 해를 보냈다. 답이 그 끝에 있었다. 합격이란 말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요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데, 모지락스러워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듯 했다.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창틀에 화분들이 오종종 놓여있다. 햇빛을 받는 화분은 잘 자라고 그늘에 둔 화분에는 꽃이 잘 피지 않거나 색이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한 번 씩 자리를 바꾸어주고 기름진 흙을 사와서 기존의 흙과 섞어 화초들을 정리한다. 작은 화분에 있던 식물의 뿌리는 둥글게 엉켜진 채 화분 크기만큼 자라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러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옹골차게 만들어 나갈 힘이 있다.집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딸이 스물 중반까지 제 방을 오가며 울고 웃던 모습을 늘 지켜봤다. 떠난 뒤 자리는 적막하다. 벽에 남아있던 포스트잇도 다 사라지고 쓸모가 없어진 시험문제집이 밖으로 나갔다. 웬만한 짐은 꾸려서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이제는 남은 가족들이 조금씩 당겨 앉으며 벌어진 자리를 메운다.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바깥풍경이 보고 싶어 창문을 맞은편에 두었다. 나는 이제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원하던 책을 읽고,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더듬어 보리라 맘먹고 있다. 추억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나를 찾아보려한다. 또 그것을 기록하며 깨알 같은 의미들을 찾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고자한다. 지금 이 자리는 나만의 꽃을 피우는 자리가 될 것이다.법구경에는 득생인도란(得生人道難) 말이 있다. 만물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난 사람의 삶이 녹록치 않다. 사는 일이 막막할 때, 나는 제우스의 노여움으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하는 시시포스를 떠올리곤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형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지금 이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수많은 인생성공을 거론한 자기 개발서도 대신해 줄 수 없다.삶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드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할 때이며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떠오른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2021-02-17

딱한 실정 뼈저리게 느끼니 - 구휼과 교육에 앞장서다, 장홍모 여사

경주 외동의 괘릉초등학교 운동장 양지바른 곳에 빗돌 하나가 서있다. 우뚝 선 돌엔 ‘아산 장씨 홍모여사 시혜 불망비’라는 비명이 선명하다. 정문 노거수 아래 잡초와 덤불에 묻혀 있던 것을 단장해 현재 장소로 옮겼다. 뒷면 비석문 내용의 일부를 옮겨본다. ‘…. 어린이가 멀고 위험한 곳을 눈비와 추위에도 지칠 줄 모르고 오늘도 늦을세라 종종 걸음 치면서 학교에 다니던 그 딱한 실정을 뼈저리게 느끼시고 교사 일동과 부지를 기꺼이 희사하시어….’ 학교 부지와 본관동을 희사한 장홍모 여사의 덕을 기려 1965년에 주민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뜻있게 살다간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안, 이 학교 박정재 교장선생님의 초대로 장홍모 여사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고, 여사가 기거했던 종가 수봉정도 함께 둘러보게 되었다.장홍모 여사 생전 모습.장홍모 여사(1890-1968)는 수봉 이규인(秀峯 李圭寅) 선생의 손부이다. 경주 유금의 아산 장씨 가문에서 괘릉에 터전을 잡은 명문 수봉가로 출가했다. 일제강점기를 건너던 수봉 선생의 철학은 개인의 입신양명이 아니라 부의 축적을 통한 사회 환원에 있었다. 이용후생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의식주가 해결된 이상의 것은 내 것이 아니다’는 신념으로 이웃과 겨레에 도움이 되는 삶을 추구했다. ‘이수봉정’(李秀峯亭)이라는 재단을 설립해 빈민구제와 의료 사업에 힘썼고, 밖으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교육 사업에 매진했다. 수봉 선생은 홍모 여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했다. 홍모 여사가 수봉가의 안살림을 이어받았을 때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다.학교 뒤쪽 언덕 너머 들 한가운데에 기품 서린 저택이 보였다. 수봉정 안채에 들러 선생의 6대손인 젊은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어린 딸을 넓은 자연 품에서 키우고 싶어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종가댁으로 들어왔단다. 수봉정은 학당과 의국으로 이루어진 수봉정과 사저로 구분되어 있다. 사저 회랑 입구에는 잠시 수봉정에 머물렀다던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들었다는 돌이 보이고, 무해산방과 열락당이란 사랑채가 차례로 보인다. 이곳 사랑채에서 수봉 선생은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의료 혜택을 구상하고, 독립운동 자금 후원을 실천했다. 그 너머가 수봉 선생을 모시며 홍모 여사가 살림을 꾸려나간 안채이다.당시 일제의 수탈로 배고픈 과객들이 넘쳐났다. 당시 수봉가를 드나들던 객들은 하루 평균 오십여 명이었다. 과객과 상주객 그리고 집안 식구들, 그 많은 입들의 하루 세 끼를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한 사람이 홍모 여사였다. 여사의 숨결과 손때가 가장 많이 배었을 곳간채에 자연스레 눈길이 머물렀다. 이 곳 말고도 서너 채의 곳간이 더 있었다고 하니 살림 규모와 구휼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음식 장만처와 객들의 기거처를 분주히 오갔을 홍모 여사와 집안 여성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진다.수봉정 옆 고샅길을 따라 기와집들이 나란하다. 한때 수봉가가 친족을 이뤄 살던 곳이란다. 정원을 잘 가꾼 한 집으로 들어간다. 코가 크고 혈색이 좋은 이상돈 어르신 역시 수봉가의 후손으로 홍모 여사의 시종조카라고 했다. 홍모 여사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느냐고 여쭈었다. 큰 키와 수려한 용모를 지닌 여장부에다 역사에 밝은 독서가였다고 한다. 객들이 들어찰 때는 쌀 몇 가마니, 소다리 몇 개씩을 찢어 곳간 하나를 내주며 직접 해먹으라고 할 만큼 통이 큰 분이셨단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낳았을 때 ‘코쟁이가 어린 코쟁이를 낳았네’하시며 미역꾸러미를 내놓던 일이란다. 추억과 회한에 젖은 어르신은 몇 번이나 울먹거리신다.김살로메 소설가수봉가의 핵심 사상 중의 하나가 교육사업이었다. 일제의 탄압을 견디면서 경주중학교를 설립한 수봉 선생은 끝내 개교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삼 년 간 병구완을 하던 홍모 여사가 개교를 지켜본 셈인데, 이때 벌써 육영정신이 계승되었을 것이다. 괘릉에 초등학교가 없어 먼 길을 다녀야한다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홍모 여사는 기꺼이 학교 부지와 교사동을 희사했던 것이다.현재 괘릉초등학교는 장홍모 여사 관련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사의 캐릭터를 공모해 제작에 들어갔고 그에 관한 여러 스토리텔링 작업을 기획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홍모 여사의 정신이 동심에도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수봉 선생을 도와 가난한 주변을 돌보고,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교육 사업에 앞장선 홍모 여사의 활동이 심도 있는 학술서로 재조명되기를 바라면서 괘릉 마을을 떠나왔다.

2021-02-17

일그러진 기억과 무너진 신사도

장규열 한동대 교수학교는 무엇일까. 아침마다 나서는 등굣길은 어떤 느낌인가. 믿고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있고 반갑게 만나는 선생님이 있다. 밤새도 그리웠던 친구들이 있고 떠난 후에도 그리운 교정이 있다. 가르치고 배운 기억이 한 가득이며 나누고 함께 했던 시간으로 늘 돌아가고 싶다. 그러니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했던’ 마지막 날을 기억하면서,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라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런 학교의 모습이 일그러졌을까. 모든 비겁함들 가운데 가장 천박하고 저열한 것이 ‘폭력’이 아닐까. 학교폭력, 그것도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 문제가 되어 어른이 된 운동선수가 여론의 도마에 오른다. 사라져야 하는 학교폭력, 그것도 가장 신사도를 발휘해야 할 스포츠를 물들인 폭력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유네스코(UNESCO)는 학교폭력을 수많은 아동과 학생들의 기본적인 학습권을 부정하는 범죄로 규정하며 그 퇴치를 강력하게 권고한다. 폭력으로 물든 학교 환경에서 어느 학생이 긍정적인 배움과 배려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든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의사표시도 하기 어려우며 능동적인 학습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된다. 하물며 그것이 날마다 겪어야 하는 일상이라면 그가 가지게 될 학교에 대한 기억은 어떠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보다 적극적인 학교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 사건이 불거지고 언론에 보도되면 그제야 사후약방문격의 관심을 보이면 괴물같은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숨을 죽일 뿐 사방에서 또아리를 틀고 다시 설치게 마련인 게 아닌가.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한 위원회 등이 설치되어 있지만, 혹 사후 처리에만 그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살펴야 한다.스포츠폭력은 또 무엇인가. 공정하고 건강해야 할 운동정신이 저열하고 비겁한 폭력행태와 만난 일이 아닌가. 경기력 향상을 핑계로 삼는다지만 두려움 앞에 발휘되는 그 무엇도 자랑삼을 바가 되지 못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와 관련된 그 어떤 폭력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든 국가는 폭력의 존재와 퇴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폭력의 그늘은 오래가기 마련이다. 얻어맞고 억눌렸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피해당사자가 겪는 아픔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해자의 진정성있는 사과와 주변의 공감어린 배려가 있어야 조금씩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터이다. 폭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때에만 실질적인 기량향상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세상이 변해간다. 과학과 기술만 변화를 이끄는 게 아니다. 남을 향한 인식과 이해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강할수록 약한 이를 배려하고, 누구든 서로 격려하며 함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무시하고 배격하며 폭력으로 처단하며 무엇인가 이루려던 어제는 잊어야 한다. 벌어진 폭력에나 반응하던 태도를 바꾸어, 절대로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폭력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폭력은 범죄일 뿐이다.

2021-02-17

차등의결권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경영자가 경영권에 대한 위협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로서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복수의결권·복수의결권주식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1주(株) 1의결권’원칙의 예외를 인정해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의 주식에 대해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쓰인다.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의 포드자동차의 경우 창업주인 포드 집안이 소유한 지분은 7%이지만 차등의결권에 따라 40%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또 스웨덴의 발렌베리 집안은 발렌베리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트사의 지분 19%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41%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을 2년 이상 보유하면 1주에 2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차등의결권을 채택하고 있다.이 제도는 적은 지분으로 적대적 MA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는 효과가 있지만, 적대적 MA와 무관한 상황에서 의사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1주 1의결권’의 상법 규정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쿠팡이 지난 12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위해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상장 신청서류에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보유하는 주식에 차등의결권을 부여,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2018년부터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해왔고, 총선공약으로 제시하기도 했기 때문. 벤처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과 재벌의 세습의결권에 악용될 것이란 우려가 맞서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17

“삼중수소 누출 無”… 괴담 조작세력 밝혀내야

민심을 흔들었던 월성원전 삼중수소 누출 괴담에 침묵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무려 한 달 만에 “안전성에 문제없다”는 취지의 공식 견해를 밝혔다. 가짜 전문가들이 시작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들고나선 삼중수소 논란은 검찰의 탈원전 수사를 막으려는 조잡한 꼼수라는 것이 세평이다. 가당찮은 문제를 일으켜 혹세무민(惑世誣民)한 불온세력과 집권 여당의 장난질은 그 실체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원안위는 제1야당 국민의힘에 제출한 답변 자료에서 “현재까지 월성원전 제한구역 경계에서 허용치를 초과해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사례가 없다”며 “차수막(遮水幕) 손상으로 인한 방사성 물질(감마핵종)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출관리기준보다 18배 많은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터빈 건물 지하 집수정(集水井)에 있는 고인 물에서 나온 것이고, 외부로 방출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그간 전문가들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삼중수소 유출 주장을 반박해 왔음에도 원안위는 지난달 17일 “민간 조사단을 구성해 조사하겠다”고 했을 뿐 사태를 방조해왔다. 야당은 “원자력 안전의 최고 책임기관이 정치적 눈치를 보며 원전 괴담 유포에 가담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해왔다.삼중수소 논란은 시민단체가 공포를 부추기고, 약속이나 한 듯 여당 대표가 ‘충격적’이라며 광우병·사드 전자파 괴담을 연상케 하는 공포마케팅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 소동은 과학자들의 정직한 반론으로 힘을 잃었다. 특히 정용훈 KAIST 교수가 “삼중수소 1년 피폭량이 바나나 6개 혹은 멸치 1g 섭취량에 불과해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하면서 불순한 의도는 단숨에 무력화됐다.일부 환경단체와 여당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을 잇달아 제기한 배경은 단지 방사능에 대한 무지가 빚은 참사의 차원을 넘어선다. 사태를 침소봉대하고 불필요한 공포를 조장한 괴담 유포자들은 이제라도 깊이 사과하고 반성하는 게 옳다. 이념·정치 과잉으로 범벅된 거짓 선전 선동이 과학적 진실을 뭉개는 장난질은 발본색원돼야 한다.

2021-02-17

활기 찾는 도심… 방역 관리가 승패 가른다

정부가 대구·경북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에 대해 15일부터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을 해제하자 도심거리가 서서히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대구와 포항 등의 도심 일부 주점은 자정 가까이까지 고객의 발길이 이어져 영업시간 해제에 따른 시장반응이 즉각 나타나고 있다.종전 오후 10시까지 영업을 하던 때와는 달리 업주들도 영업시간 해제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수도권에 한해 1.5단계로 낮춘 배경에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주고자 하는 데 있다. 방역만 생각한다면 영업시간 제한이 불가피하겠지만 경제를 도외시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문을 닫거나 폐업위기에 몰려 있다. 더 이상의 영업제한은 생계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점이 충분히 고려돼 문재인 대통령도 3월부터 방역체계를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거리두기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집합금지와 영업제한 등 강제조치를 최소화 하고 방역수칙 위반을 엄격히 제한하는 체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장기전에 들어간 만큼 방역에만 무게를 두고 갈 수는 없다. 이제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아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는 방역당국의 엄격한 방역관리 시스템 작동과 동시에 국민 스스로도 엄격한 방역수칙 준수자가 돼야 하는 것이 전제다. 아직 전국적으로 하루 300∼400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조그마한 방심도 허용돼선 안 된다.특히 설 연휴가 지나면서 고향을 찾은 귀성객과 가족들의 감염 사실이 확인되면서 지역사회 연쇄감염이 우려되기도 한다. 철저한 방역의식이 절박한 때다.우리나라는 이달 26일부터 코로나 백신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 방역관리 체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백신접종 효과를 살피면서 방역관리 전반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업소의 영업시간 해제가 방역관리 실패로 또다시 영업시간 제한으로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대구경북은 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한 도시다. 높은 시민의식으로 모처럼 주어진 자율시간을 성공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2021-02-17

상아탑은 없다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2월 한 달 내내 마음이 어수선하다. 졸업식과 명절을 집어삼킨 코로나도, 진흙탕 싸움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정치인도 원인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 때문이다.“아빠, 이제 설날 없어지는 거 아니야? 추석에도 못 갔는데, 할아버지 어떻게 해?”설날임에도 할아버지 집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둘째 아이의 걱정 가득한 말이 잠시 잊고 있던 명절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주었지만, 필자는 거실에 쌓여가는 상자의 무게에 눌려 아이의 말을 금세 잊어버렸다. 한동안 집 안은 한숨 소리로 가득했고, 한숨에 어지럼증이 났다.상자 주인은 서울살이를 준비하는 첫째 아이이다. 대학 합격 소식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수도권 코로나19 발생 상황은 기쁨의 반대 감정을 더 빠르게 불러왔다. 2020년 대학 신조어 중 하나는 “코로나 휴학”이다. 할 수만 있다면 필자도 아이에게 권하고 싶었다.교육의 대전제는 만남이다. 만남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만남은 배운 내용을 내면화하여 더 큰 지혜로 바꾸어 주는 힘의 원천이다. 특히 대학교에서 만남이 주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그 힘을 얻으러 대학을 가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코로나19는 그 기본을 앗아갔다. 기본이 사라진 교육계엔 공허한 온라인 영상만이 흉물처럼 자리 잡았다. 말 짓기 좋아하는 정부는 ‘비대면 수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만들어 위기 상황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무조건 따르라고 윽박이다. 무한 재생하는 영상에 영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영혼 없는 영상에 학생들의 선택은 학교를 잠시 접는 것이었다.2020학년도 대학생들에게 대학다운 대학 생활은 없었다. 코로나 정국에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캠퍼스의 추억보다 학생들의 대학 감성이다. 최근 들어 대학교가 취업 공장이 되면서 대학 감성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나마 있던 것까지 모조리 없애버렸다. 대학생들의 감성은 낭만을, 낭만은 꿈을, 꿈은 포부를, 포부는 도전을, 도전은 열정을, 열정은 창조를, 창조는 더 큰 감성을 낳았는데, 그 고리들이 완전히 끊겼다.그런데 2021학년도 또한 많은 대학교에서 비대면 수업을 공지하고 있으니, 강의실엔 대학생들의 창조 감성 대신 먼지만 수북이 쌓이게 생겼다. 비대면만이 살 길이라고 떠들어대는 시대에 지금과 같은 대학교의 존재 이유는 뭘까?코로나도 코로나지만, 대학 생활에 대한 설렘을 키우는 아이를 보면서 필자는 ‘상아탑’을 떠올렸다. 비록 지금은 상아탑 대신 취업탑이 자리했지만, 대학이 상아탑이라고 불리던 그때 대학생들에겐 진리연구의 뜨거운 피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살기 위한 취업 전쟁만 남았다.설 다음 날 아이들과 함께 늦은 세배를 위해 부모님 댁으로 가다가 씁쓸한 가로펼침막이 눈에 들어왔다.“주소 갖기 운동으로 포항 사랑 실천해요.” 곧 서울로 주소를 옮길 아이를 보았다. 어수선한 마음이 결국 길을 잃었다.

2021-02-17

설 명절, 고향 잃은 사람들

배한동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실향민(失鄕民)은 분단된 북쪽 고향을 잃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쪽에도 고향을 잃은 사람이 많다. 코로나의 광풍이 고향길까지 막는 서글픈 시절이다. 고향도 일가 친지도 가족도 찾지 못하는 설 명절이 되어 버렸다.‘거리는 멀어도 마음만은’이라 하지만 거리가 멀면 마음도 자연히 멀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동요 ‘까치의 설날은 어제께 지만 우리들의 설날’은 오늘이 아닌 기약 없는 내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비대면의 암울한 상태가 길어질수록 그 옛날 고향, 설, 친구들이 그립다.달포 전 고향 마을을 다녀왔다. 어느 시에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더니 산천도 어릴 때의 그 산천이 아니었다. 물이 콸콸 넘치던 개천도 사라져 버리고, 가파르던 산에도 도로가 나 있었다. 소먹이 가서 동무들과 놀았던 큰 바위는 무척 작아져 버렸다. 어릴 때 첫 새벽부터 동네 사람들의 육성으로 외치던 동장어른, 스피커도 확성기도 없던 시절 그 어른의 걸직한 목소리만 귀에 맴돌고 있다. 한학 공부를 많이 하여 우리가 무척 따랐던 그 어른도 세상 뜬 지 오래되었다. 당시 대학 진학한 자랑을 입버릇처럼 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어릴 때 집성촌의 어른, 친지, 친구들마저 사라진 고향은 내 고향은 아니었다.설 명절이 오면 고향의 세시풍습이 무척 그립다. 섣달그믐 저녁부터 준비한 합동 세배도 없어진 지 오래다. 어릴 때 나는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는 풍설을 믿었다. 밤 새워 동서로 나누어 윷놀이를 했다. 모두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합창도 하였다. 당시 동지섣달 긴긴 겨울 밤 우리는 매일 친구 집 사랑방에 모였다. 관솔불을 밝히면서 메주 냄새 쾌쾌한 친구집을 찾았다. 쌀밥에 김치 한쪽뿐인 밤참이 그렇게도 맛있었다. 호롱불 기름 닳는다는 친구 어머니의 성화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시 올 수 없는 그리운 풍경이다.드디어 눈이 소복이 내린 명절 아침이다. 달포동안 장만한 음식들이 차례상에 올랐다. 우리 마을 제사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함께 지내니 제관은 20여 명이 훨씬 넘었다. 명절 제사는 단잔을 올렸지만 음복과 떡국을 나누다 보면 정오쯤 제사가 모두 끝난다. 함께 했던 고향 설날 제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설날 아침부터 오랜만의 기름진 고기와 막걸리에 취해 다투던 어른들의 모습도 자주 보았다. 설날 오후부터는 동네 어른들을 찾아 빠짐없이 세배했던 일이 어제일 같이 떠오른다. 아름답던 그 정월의 고향 풍습은 어디로 갔을까.이제 고향마을 어딜 가나 전기불이 들어와 있다. 어느 집 마구간에도 경운기가 버티고 있고 마당에는 자동차가 서 있다. 우물가의 두레박도,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도 더욱 찾아 볼 수 없다. 가재 잡던 도랑도 없어지고 물맛 좋던 옹달샘마저 없어져 버렸다. 허리 굽은 소나무와 대나무 숲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동네 어귀 그네를 매던 키 큰 참나무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이들의 팽이 놀이, 썰매 타기는 동네 어디에서도 찾을 길 없다. 사람도 풍습도 사라져 버린 고향은 어릴 때 내 고향이 아니다. 고향 잃은 자들의 슬픔은 나만의 슬픔이 아닐 것이다.

2021-02-17

청하읍성, 복원돼야 한다

박창원수필가지난해 12월 11일, 청하읍성이 있는 포항시 북구 청하초등학교 북쪽 도로변에서 포항시 주관으로 회의가 열렸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보행로 개설공사 관련 발굴조사 설명회였다. 여기에는 포항시 관계자, 발굴조사업체 전문가, 문화재위원을 지낸 심정보 박사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발굴 현장 설명을 듣고, 청하읍성을 둘러본 심정보 박사는 두 번 놀랐다고 했다. 문헌상으로만 보던 청하읍성이 이렇게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처럼 잘 남아 있는 청하읍성이 국가사적은 물론, 지방기념물로도 지정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했다. 참석한 포항 사람들은 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기록에 의하면 청하읍성은 처음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쌓았고, 조선 세종 9년(1427)에 청하현감 민인이 석성으로 쌓았다고 한다. 2012년 포항시에서 용역기관을 통해 작성한 ‘청하읍성 기본조사 및 복원타당성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청하읍성은 구릉형 자연지형에 남북 180m, 동서 140m의 장방형으로 축조되었으며, 현재 잔존율이 약 53%에 이를 정도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그러나 보고서가 나오고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려다가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후 9년 간 청하읍성 복원문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청하읍성은 잔존율 못지않게 1733년부터 2년 간 청하현감으로 재임했던 겸재 정선이 그린 청하성읍도(淸河城邑圖)로 인해 유명하다. 청하성읍도는 겸재 자신이 근무하던 읍성의 모습을 조감도처럼 세밀하게 그려 남긴 작품이다. 여기에는 읍성의 형태와 건물의 배치, 향교를 비롯한 읍성 주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겸재의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청하읍성은 복원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겸재는 청하읍성에 근무하는 동안 내연산 폭포를 탐승하면서 내연산 폭포 그림을 여러 점 그렸는가 하면, 한국 회화사에 길이 남을 금강전도 같은 명작을 그려 남겼다. 그래서 혹자는 겸재의 청하현감 시절을 진경산수화의 발현기라 하기도 한다. 청하읍성은 그런 곳이다.조선시대 포항지역에는 흥해, 청하, 연일, 장기에 읍성이 있었다. 이 중 장기읍성과 청하읍성은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특히 장기읍성은 20여 년 전부터 수백 억 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기초조사와 발굴조사,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이미 포항시의 명소가 되었다. 청하읍성도 복원된다면 포항시 북부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이다.포항시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청하읍성 보존 및 복원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지장물이 없는 부분에 대한 발굴을 서둘러야 하고, 발굴 결과에 따라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해야 한다. 읍성 내 관공서 이전도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 복원사업을 벌여야 한다. 물론 이 같은 절차는 인근 주민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배려해야 하며, 또한 읍성 복원으로 생기는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청하읍성도 살고, 청하도 산다. 청하읍성은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

2021-02-16

인공지능의 두 얼굴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IT 업계를 술렁이게 한 일이 있었다. 어느 스타트업이 만든 인공지능(AI) 챗봇이 사용자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 소위 ‘AI 챗봇 윤리성 논란’ 얘기다.20세 여성의 인격으로 태어나 인간의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었던 AI 챗봇은 검은 마음의 사용자들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았다. 잘못된 학습 환경에 노출되어 버린 AI 챗봇은, 사용자들이 가르친 나쁜 생각을 그대로 배워, 특정 계층에 대한 혐오나 차별적인 발언까지 쏟아내었다. 건강하게 성장해주기를 바랬을 개발자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의 다정한 친구가 되기는커녕, 모두에게 분노를 유발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논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개발 과정상에서도 일부 직원들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수집한 데이터 속에 개인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던 문제 등이 드러나 논란이 이어졌다. 결국 개발사는 공식 사과와 함께 데이터베이스를 폐기하고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내놓은 10대처럼 말하는 AI 챗봇 ‘테이’는 사용자들의 조작으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SNS에 게시하고 16시간 만에 서비스가 중단되었다. 2018년 아마존이 개발한 AI는 채용 과정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이 발견되어 폐기되었고, 2020년 구글 AI 윤리 기술 책임자가 구글의 AI 기술이 성적·인종적으로 편향되었음을 지적해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패턴처럼 반복되는 AI 윤리성 논란의 과정을 지켜보는 공학자의 마음은 불안하고 부끄럽고 초조하다. 개발사에 비난을 쏟아붓는 우리의 모습 속에, 원인을 개발자들의 문제로 돌려버림으로써 우리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책임과 역할은 외면하고 회피하려는 속내가 읽혀 불안하다. AI 챗봇 논란은 개발사의 책임을 떠나 우리 사회가 감추고 있던 어두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란 생각에 부끄럽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숨어서 음란물을 즐기는 인간의 검은 얼굴이 그대로 비친 거울을 보는듯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논란이 자칫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사회 전체의 혐오와 기피로 잘못 번질까하는 노파심 때문에 초조해진다.십인지수 난적일구(十人之守 難敵一寇·열 사람이 한 도둑 못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SF 영화 속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악당들처럼 아무리 좋은 기술도 나쁜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꼭 있다는 것을 개발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세상에 내어놓기 전에는 언제나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르는 악의적인 사용을 막을 수 있는 ‘악용 방지책’에 대해서도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일단 악용이 시작된다면 그것을 막기 위해 사회 전체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킨 서비스를 폐기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 곧 닥쳐올 데이터 경제와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성 문제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2021-02-16

백기완 선생을 추모하며!

김규종 경북대 교수2021년 2월 15일 새벽 백기완 선생이 세상과 작별했다. ‘회자정리’라는 말도 있지만,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로 여겨짐은 비단 나만의 소회는 아닐 성싶다. 그렇다 해서 내가 선생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그저 먼 발치에서 선생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에 들어온 두 가지만 회상하고자 한다. 인간사는 작은 기억과 그것의 누적이 희로애락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바 크기 때문일 것이다.1987년 1월 초 ‘민중문화운동연합회(민문협)’ 새해맞이 행사인 단배식이 열렸다. 당시 한국의 민중운동은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이 주도하고 있었다. 민문협은 민통련을 구성하는 단체였고, 백기완 선생이 의장이었다. 민통련 의장은 1994년에 고인이 되신 문익환 목사였다. 모임 장소에는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청춘들이 왁자지껄하는 소리로 활기가 돌았다. 백 선생은 그런 우리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문 목사님 오셨습니다!”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백 선생은 우리에게 담배 하나 달라고 하면서 자리를 문 목사께 넘기고 슬며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기실 민중민주 운동판에서 보면 백 선생이 연배는 어리지만, 연륜은 문 목사보다 윗길이었다. 여하튼 그날 문 목사는 한복 두루마기 곱게 입고, 돼지 대가리가 차려진 고사상에 절을 하고, 돼지주둥이에 만원 짜리 몇 장을 꽂아 넣었다.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내게는.1980년대 한국 민중운동의 두 기둥을 모신 민문협 새해 단배식 자리는 민주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뜨거운 기운이 분출했다. 어쩌면 그런 열기가 하나로 모여 1987년 평화대행진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2014년 8월 13일부터 15일까지는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세월호 대참사 희생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유진 학생 부친 김영오씨가 단식하던 곳이다. 그이의 단식에 동조하는 단식을 하려고 2박 3일 여정으로 광화문에 갔더랬다. 마지막 날인 8월 15일 우리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대형 현수막을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백 선생을 뵙게 됐다.여든 살의 노구(老軀)를 이끌고 거리에 나선 백 선생의 거동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동행한 친구 말로는 당뇨와 신장이 불편하여 일상생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국가 환란을 맞이하여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다시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과 구호를 외치는 백두산 호랑이 같은 모습을 보여준 이가 백기완 선생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백 선생을 뵙지 못했고, 그저 들리는 말로 선생의 안부를 듣곤 했다.백 선생 부음을 접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것은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문장으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나와 함께했던 1980년대부터 2021년까지 어디가 됐든 고통받고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백기완 선생이 계셨다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그토록 열망한 통일을 보지 못하고 눈 감으신 백 선생의 영면을 기원한다.

2021-02-16

빌 게이츠 “기후변화 대응에 ‘原電’ 필요” 충고

최근 세계적으로 끔찍한 기후재앙 관련 소식들이 잇달아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출판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원전(原電)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서 관심을 끌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막대한 국익손실은 물론 탄소중립 달성에 적신호가 켜진 우리나라로서는 따끔한 이야기다. 지금이라도 섣부른 ‘탈원전’ 정책은 재검토되는 것이 옳다.세계 각국의 기후재앙 소식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때아닌 겨울 폭우로 물바다가 됐다. 칠레 연안에서 정어리들이 떼죽음을 당해 밀려들었고, 사하라 사막에서는 느닷없는 강설로 허둥대는 낙타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인도에서는 히말라야산맥에서 녹아내린 빙하가 만든 홍수로 200명 넘게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빌 게이츠는 21년 만에 쓴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인 510억 톤(t)을 ‘제로(0)’로 만들지 못하면 인류 전체가 코로나보다 더 큰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원전이 아니고는 가까운 미래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력망을 탈 탄소화할 방법이 없다”며 “MIT가 2018년 1천 가지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분석했는데 그중 가장 싼 방법은 모두 원자력을 활용한 방법이었다”고 소개했다.빌 게이츠는 특히 “자동차가 사람을 죽인다고 자동차를 없애자고 하지는 않는다”며 “테라와트시(TW·h) 전력당 석탄은 24.6명, 석유는 18.4명의 사망 사고가 났으며, 원전은 0.07명이 숨졌다”는 비교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이 1천20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 부자이자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을 통해 전 세계적 규모의 자선활동을 펼치며 시대적 선각자 반열에 들어있는 빌 게이츠의 충고를 우리 위정자들은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에서는 대규모 태양광·풍력발전이 어렵다는 그의 지적을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한다. 단지 대선공약이라는 명분만으로 조급하게 단행된 어리석은 ‘탈원전’ 정책은 하루빨리 중단돼야 한다.

2021-02-16

지진 왕국

지금 일본은 지진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13일 밤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규모 7.3 지진의 여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 지에 대한 불안감이다.일본 국민은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국민적 지진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당시 도후쿠 지방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규모 9.1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지진으로 기록됐다. 1만5천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지금도 2천5백여 명의 행방이 묘연하다. 30만명 이상이 피난살이를 해야만 했다.동일본 대지진은 1995년 일본에서 발생해 6천여 명의 희생자가 난 한신 대지진(규모 7.3)의 180배 위력을 보였다고 한다. 히로시마 원자력 폭파의 위력이 지진 6.0규모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할 것이다.일본은 왜 지진이 잘 일어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1년에 크고 작은 지진이 50만번씩 일어난다고 한다. 그 중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지진은 10만번 정도다. 지리적으로는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90% 이상 발생하고 있다. 일본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하면서 네 개의 지각 덩어리 접점에 위치해 있다. 지진 발생 빈도나 강도면에서 일본이 최고일 수밖에 없다.최근 일본정부 지진조사위는 13일 발생한 후쿠시마 지진은 10년 전 동일본지진의 여파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된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국민들이 갖는 지진 공포감을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일본은 지난해 코로나로 개최 못했던 도쿄올림픽을 올 7월 개최 예정이나 지진왕국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이 커지는 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21-02-16

코로나 백신 접종, 대구경북은 차질 없나

보건당국은 코로나19 백신예방 접종 계획을 발표하면서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서는 일단 보류키로 결정했다. 이번에 접종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고령층 접종을 금하고 있고 미국도 추가 임상 중인 점을 고려한 조치다. 국내 의사협회서도 아스트라제네카의 고령층 접종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여 보건당국의 조치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만65세 이상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이 보류되면서 국내 코로나19 백신접종은 초반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11월까지 형성하려 했던 전국민 집단면역 목표가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가 된다.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접종은 77개국 1억7천만명분에 이른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의 백신접종은 출발부터 늦었다. 그나마 고위험군에 대한 접종이 차질을 빚으면서 백신접종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백신별 도입물량도 아직 확실치 않아 정부의 백신접종 계획에 대해 국민적 불신도 적지가 않다. 아직 하루 300∼400명대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집단감염이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국민의 피로감과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등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사회적 거리두기도 15일부터 한 단계 완화됐다. 식당이나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의 방역관리가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다.문재인 대통령은 3월부터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방역 관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수동적 방역에서 적극적 방역으로 방역의 틀을 바꾸는 것이어서 백신접종의 필요성은 더 절실하다 하겠다.정부의 백신접종 계획에 따라 대구와 경북에서도 백신접종 준비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부시장 부지사를 단장으로 코로나19 예방접종 추진단을 꾸리고 백신접종 위탁의료기관 선정 등에 나서고 있다. 본격적 백신접종에 앞서 접종센터 지정과 시설, 장비 확보 특히 의료인력 확보 등에 차질이 없도록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포항시의 1가구 1명 코로나 진단검사 때처럼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처음 실시하는 코로나19 백신접종이라는 사실에 유념하고 각종 준비에 반복적인 점검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있었던 독감백신 상온보관 문제와 같은 말썽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시도민의 눈이 백신접종에 쏠려 있다는 점 보건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21-02-16

경주 쪽샘 유적과 목곽묘

경주 쪽샘 신라고분 유적은 4~6세기 신라 왕경인들의 집단 무덤 유적이다. 쪽샘 유적은 본래 사적 제512호로 지정된 대릉원(大陵園)과 한 묘역(墓域)에 속하는 곳으로 신라 마립간(麻立干) 시기 집중적으로 축조된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다. 또한 적석목곽묘 외에도 쪽샘 유적에는 목곽묘(덧널무덤), 석곽묘(돌덧널무덤), 옹관묘(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신라 무덤들이 빼곡하게 조성됐음이 밝혀져 신라 고분 연구에 있어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쪽샘 유적은 지리적으로 신라 궁성(宮城)으로 알려진 월성(月城) 북편에 자리하고 있어 신라 왕경 내 고분군의 형성과 전개, 나아가 신라 왕경 경관 복원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쪽샘 유적에서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다양한 형태의 신라 무덤들이 축조됐다. 특히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무덤이 바로 ‘목곽묘’이다. 목곽묘는 일반적으로 무덤 묘광을 파낸 뒤 그 내부에 나무로 제작한 곽(槨)을 설치해 무덤주인과 부장품을 함께 묻은 무덤을 말한다. 목곽묘는 영남지역에서 2세기 후반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4세기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다. 한편 몇몇 목곽묘들은 입지의 우월성, 규모의 대형화, 부장품의 대량 매납이 이뤄져 지역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목곽묘는 고대 사회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복잡화 과정을 설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 중 하나로 현재 활용되고 있다.이와 같은 목곽묘의 고고학적 특성을 토대로 우리는 신라의 중심 즉 경주에서 ‘사로국’이 어떻게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신라’라는 국가로 발전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는 구정동, 구어리, 덕천리, 황성동 등의 ‘주변’ 유적에서 다수의 목곽묘가 발견돼 보고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라의 ‘중심’ 고분군이 확실한 대릉원과 쪽샘 유적 일대에서는 3~4세기대 목곽묘군이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이러한 자료의 한계는 앞에서 설명한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 연구에 있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그런데 최근 쪽샘 유적에서 4세기에 해당하는 대형 목곽묘가 새롭게 발견돼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에 대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쪽샘 L17호로 이름 지어진 이 목곽묘는 전체 묘광 면적이 약 35㎡로 지금까지 경주지역에서 발견된 목곽묘 중 가장 큰 규모다. 또한 더 많은 부장품을 넣기 위해 주곽(으뜸 덧널)과 부곽(딸린 덧널)을 각각 다른 구덩이에 조성한 이혈주부곽식(異穴主部槨) 구조로 축조됐다. 이러한 이혈주부곽식 구조는 김해 대성동 유적과 부산 복천동 유적에서 발견되는 대형 목곽묘와 동일한 모습으로 4세기대 경주지역에서도 김해, 부산과 마찬가지로 최고 지배층의 묘제로 이혈주부곽식 목곽묘가 조성됐음을 알 수 있다.정대홍학예연구사한편 쪽샘 L17호 목곽묘는 후대 건축 등으로 인해 주곽과 부곽이 크게 파괴됐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식 허리띠 장식’, ‘초기 마구류’, ‘다량의 고식 도질토기’ 등이 발견돼 4세기대 경주지역 대형 목곽묘와 부장품 연구에 있어 많은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중원식 허리띠 장식은 경주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로 주곽 서쪽 공간에서 크게 2개의 편으로 출토됐다. 이 유물은 허리띠의 장식판과 드리게에 용무늬(龍文)로 추정되는 문양을 새겨 넣었다. 다음으로 마구류들은 모두 부곽에서 발견됐는데 말을 제어하는데 사용하는 재갈, 말 안장을 고정하는 직사각형태의 결속구, 심엽형(하트모양)의 장식 철기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재갈의 경우 그 끝을 S자형의 고사리 모양으로 만들어 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형태의 도질토기들이 발견됐는데 기존 경주지역의 제작기법과 동시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제작기법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당시 경주지역과 주변 지역의 인적·물적 교류의 결과로 이해된다. 특히 발견된 토기 중에 기존 김해와 부산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던 손잡이가 달린 화로모양의 토기등 이 발견돼 앞으로 도질토기 연구에 중요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지금까지 신라의 중심고분군이라 할 수 있는 쪽샘 유적에서 발굴조사된 L17호 목곽묘에 대해서 살펴봤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경주 중심지역인 쪽샘 및 대릉원 인근에서는 4세기대 집단 목곽묘군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곽묘들은 과연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단정적으로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쪽샘 동편의 인왕동 유적 일대가 유력할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쪽샘과 주변 유적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로국의 발전과 신라 국가형성에 대한 실체를 꾸준히 밝혀 나갈 다양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2021-02-15

조감하는 시선과 책을 읽는 시간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법학학사를 받고 보험회사에 취업했으나 평생 문학 창작을 소망하여 혼자 창작을 해나갔고, 1917년 결핵 진단을 받고, 1924년 사망하기 전까지 발표 없이 습작 형태로만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심판’, ‘성’등의 작품을 남겼다.인간의 눈이란 본디 사람의 얼굴 가운데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를 향해 있는 그곳에 대한 제한적 시점밖에는 갖지 못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사실은 우리에게 종종 망각되곤 한다. 다름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주는, 그리고 우리의 상상이 주는 마음의 눈에 떠오르는 인상을 실제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과 혼동되기 쉬운 때문이다.인간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기할 때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그것은 우리가 두 가지 시선을 동시에 점유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은 길을 걸어가면서도 걸어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행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행하고 있는 나의 장면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눈이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시점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한계에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바로 세잔이나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의 시도였다. 어떤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는 착각을 평면 회화에 부여하는 ‘원근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시점을 회화에 부여하는 예술적 형식 말이다.우리가 하늘 저 위에서 새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조감도’라는 형식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머리에 붙어 있는 답답한 눈이 주는 시각적 답답함을 해방해주기 때문이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 있을 때, 우리는 생활의 관점에서 우리 눈앞에 주어진 것을 바라보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인간은 그래서 조감도나 지도 등을 통해 자신이 지금 있는 공간의 형태는 어떠한가 하는 것을 가늠하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들어간다.작가 이상(李箱·1910~1937) 역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 위로 질주하오.”라는 그야말로 기묘한 시작을 기억하실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연작을 신문에 연재하기 몇 년 전에 일본어로 ‘조감도(鳥瞰圖)’라는 연작을 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아마 생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상은 건축을 전공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간의 삶의 공간을 내려다보는 시선이라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이 빛의 속도를 넘어 두 개의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로 시작하는 이 ‘오감도 제1호’는 사실 시간이 주는 답답한 12진법에서 해방되는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는 결국 인간의 눈이 주는 시각의 답답함과 그리고 조감하는 시선을 어떻게 ‘동시적으로’ 중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하는 것이다.길을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될 때, 지도를 꺼내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는 길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지도 속에 들어 있는 실제와 연결된 기호들이나 상징들을 통해 조감하는 시선을 확보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에 있는 지도가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려주니 상당히 편리하다.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은 아닐까.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갑자기 모르게 되어버렸을 때, 잠시 멈추고 누군가 하나의 시선을 통해 정리해둔 것을 보고서 삶을 조감하는 시선을 참조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시간에 있는지 모른 채 도로로 질주해가는 무서워하는 아해들처럼, 문득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조감의 시선이다./홍익대 교수 송민호

2021-02-15

나의 증조할머니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디서 기원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역시 증조할머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내 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며 나의 자의식을 구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증조할머니는 외할머니를 키웠고, 엄마를 키웠고, 나를 키웠다. 그녀는 1920년에 태어나 굴곡진 한국사를 온몸으로 경험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노라면 그녀는 쪼글쪼글하고 거친 손으로 톡 튀어나온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그 다정한 손길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오빠가 집에 돌아오면 나는 자리를 비켜줘야 했다. 증조할머니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아들이 가장 귀했다. 자신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없다며 양아들을 들일 정도였으니까.나는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오빠와의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백 점짜리 시험지를 가지고 와도 무심했으며 오히려 그것이 오빠의 기를 죽이지 않을까 걱정했다. 할머니의 논리는 단순했다. 오빠는 증손자, 나는 증손녀. 할머니에게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부당하다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차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게 되었으며 내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가 서운한 행동을 보일 때마다 나는 “그건 잘못된 거야”라며 항변했다. 그러자 내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큼 거대한 힘으로 작동하던 할머니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새롭게 생겨난 집 밖의 세상은 언제나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고 지나온 과거는 아둔해 보일 뿐이었다.할머니와 멀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맛있는 걸 먹으면 할머니부터 생각나던 어린 시절은 끝나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고, 이런저런 병을 진단받았으며,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요양원에서도 할머니는 꼬장꼬장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 병동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너희 할머니는 대체 왜 그러냐”는 말을 하면, 내심 ‘그래도 아직 우리 할머니의 더러운 성격은 건재하군’ 하고 안심했더랬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배식 받은 음식을 이불 밑이나 베개 속에 감춰놓았는데, 그 이유는 “자는 사이에 누군가가 먹을 것을 훔쳐 갈까 봐 그런다”는 것이었다.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그 모습을 보자 익숙한 기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할머니는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꼭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벽장에 감춰놓았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물 한 잔도 내어주지 않았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면 그제야 벽장을 열고 먹을 것을 꺼내서 “이건 은강이 너만 먹어라” 하면서 주었다. 나는 그런 할머니가 부끄러웠고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소설을 쓰면서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자주 복기하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니까. 어느 순간 그녀는 나의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백 년이라는 시간을 살아온 한 명의 인물로 구성되어 눈앞에 나타났다.그녀는 위안부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열다섯에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사람, 징용에 끌려간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혼자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던 사람, 남편과 핏덩이 같은 어린 자식 두 명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사람,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 여자의 몸으로 홀로 전후 시대를 지나오며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버텨온 그런 사람.스스로가 그토록 조소하던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고 느껴지면 나는 나의 증조할머니를 떠올린다. 이제 할머니는 통제된 요양 시설에서 2021년의 코로나바이러스를 견뎌내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라는 새해 인사조차 무색한 지금, 나는 어떤 태도로 우리 할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녀 앞에만 가면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투정만 부리는 어린아이가 된다. 언제나 모자라고 어리석은 당신의 증손녀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모르겠노라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2021-02-15

사과의 골든타임

나는 스포츠 관람 마니아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야구, 겨울철에는 농구와 배구까지. 어지간한 구기종목 프로 스포츠는 다 챙겨보는 편이다. 요즘 특히 재미있게 보고 있는 종목은 배구인데, 최근 들어 포털 사이트 배구 기사란에 참담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배구 선수들의 ‘학폭’논란이 그것이다. 논란은 여자부 리그에서 시작되었다. 며칠 전 한 게시판에 한 누리꾼이 현재는 스타 반열에 오른 선수들에게 학창시절 당했던 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해당 구단과 선수는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지만 누리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남자부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건이 일어나 구단과 선수가 사과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잇따른 학폭 논란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의 그늘 아래 있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7교시 종이 울리면 눈앞이 캄캄해져모두가 웃으며 가방을 싸는데나는 고갤 숙인 채 화장실로 가야 해그곳엔 너희가 기다리고 있어공처럼 온 몸을 웅크린 채주먹과 발길질을 받아내면서더러운 바닥을 나뒹굴었지화장실 창문 밖에 빛나는태양과 구름은 저리도 예쁜데왜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강백수 ‘나쁜 노래’ 가사 중2013년 발매된 1집 앨범의 수록곡인 ‘나쁜 노래’의 노랫말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나는 동급생 몇몇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당하곤 했다. 불과 몇 달 정도 겪었던 일인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느꼈던 참담한 감정들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나는 아직 그들 대다수를 용서하지 않았다.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딱 한 명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이가 있었으니 그는 이제는 내 친구가 된 H다. H는 세월이 흘러 이십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 SNS를 통해 나를 찾았다. 그가 만나자고 했을 때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그는 나를 만나 고개를 떨구며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자신이 철이 없었다고. 나이를 먹고서야 그때의 행동들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지 알게 되었다고.굳이 나를 찾고, 만남을 청하고, 안 하고 살았어도 상관없었을 사과를 하는 H가 나는 참 대단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그의 사과 덕분에 어느 정도는 씻겨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이제라도 진심어린 사과를 해 주어 고맙다고 말했다. 그를 용서할 테니 이제는 나와 친구가 되어달라고 했다. 이제 H는 언제라도 불러내어 함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H가 내게 했던 사과의 말과 그리고 스타 배구선수들의 사과문을 번갈아 떠올린다. 그 둘을 똑같은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과오가 만천하에 드러난 뒤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한 사과를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선수들이 진정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뉘우침에는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사과를 하는데 있어 진정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사과의 시기인 것이다. 이러한 폭로와 논란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뉘우치고 사과했어야 했다.선수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뉘우치고 사과했어야 할 시기를 놓친 것 역시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일이다. 소속 구단과 협회 차원에서의 무거운 징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과오가 있는 다른 모든 이들 또한 이 사과의 골든타임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21-02-15

나이듦에 대하여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었다. 새해 차례상이나 밥상에 올리는 여러가지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떡국이다. 새해가 밝은지 두 달째지만, 세시음식인 떡국을 먹음으로써 진정 한 살 더 나이가 든다고 한다.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는 떡국은 단순히 나이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가래떡처럼 재산이 길게 늘어나고 엽전모양으로 동그랗게 써는 떡은 돈이 많아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한 떡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새해 덕담도 나누고 일년 신수가 훤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해마다 대하는 떡국이지만 올해는 그저 단출하기만 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 감염증의 방역지침에 따라 이동과 모임을 자제하거나 최소화해서 설 명절 가족 간의 따스한 만남이 두드러지게 성글어진 것이다. 한 살 더 먹는 것도 서러운데(?) 가족이나 친지를 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씁쓸히 먹는 병탕(餠湯) 속에는 만두뿐만 아니라 여타의 생각이 섞이게 됨은 필자만의 과민일까?떡국을 먹지 않더라도 나이는 먹게 되고 시간은 나그네처럼 끊임없이(光陰百代之過客) 지나간다. 그러한 세월에 버물려 과세(過歲)를 하고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길어도 일년이 짧다고 여겨짐은 세월에 대한 조바심일까? 호기심 많던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젊음과 늙음의 중간지대쯤에서는 삶의 수레가 천천히 굴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풀어낼수록 더 빨리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무게감이 덧대어진다는 뜻이다. 나이듦은 가정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며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고 이치와 순리를 밝혀주는 연륜이 깊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를 값으로 매기기는 모호하지만, 나이를 존중하고 적어도 나이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술적인 나이의 숫자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원숙함을 더해가고 농밀하게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누구나 곱고 건강하게 나이듦을 바랄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면 결국 무채색 같은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지만, 노화는 모든 생명체가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이듦이 달갑지 않고, 늙어감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늙었다는 실감이 들 때는 암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노년기의 풍부함과 가능성으로 얼마든지 유년기나 성년기의 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꼰대 기질 같은 아집을 버리고 젊은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며 눈높이와 공감의 소통으로 움직이고 어울릴 때 생체나이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나이라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을 가꾸고 다루기에 따라 외양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꿈꾸는 삶과 노력하는 집념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속적인 건강비법과 생활습관으로 젊게 나이 드는 것이 축복이 되는 연년익수(延年益壽)를 추구해보자.

2021-02-15

장모님, 우리 장모님!

권윤구포항 중앙고 교사‘장모님!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누구세요 몰라요.’ 눈을 마주치지 않고 피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만다. 6남 1녀의 유일한 사위 권서방을 몰라본다. 지금까지 권서방! 권서방! 했던 장모님이 치매라는 판정을 받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필연적으로 치매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치매는 고령화 시대의 숙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현재 치매를 앓고 있다고 한다. 엄청 빠른 속도이다.칠십대 후반인 큰형님이 장모님을 모시고 있다. 하지만 농사를 짓고 계시는 형님은 치매인 장모님이 혼자 집에 계실 때 가스로 인해 여러 번 어려운 일이 생기고 집에서 150m 근처의 아주 가까운 노인 요양센터에서 생활을 하시게 됐다.2020년은 코로나19로 요양센터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것으로 인해 방문을 못하는 어려움이 생기게 됐다. 코로나19로 인해 k방역으로 대면서비스가 제한됨에 따라 요양센터를 방문하지 못하게 되면서 치매 환자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특히 인지력·기억력 저하로 개인위생을 지키기 어려운 치매 환자는 치매 악화와 코로나19 감염증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한 달에 두 번은 찾아뵙고 있었는데 방문 자체를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됐다. 한 번은 창문을 열고 3분정도의 얼굴만 바라보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한없는 한숨과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너무나 아파했던 기억이 난다.이러한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했다. 2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이런 글이 올랐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요양병원 환자 면회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이다. 뇌졸중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연이 절절했다. 가족 중 치매를 가진 사람이나 요양병원에 가족이 있으면 인지상정으로 마음을 알 수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치매 환자는 인지기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지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자와 교류가 중요하므로 직접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전화나 가까운 사람을 통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장모님께서 요즘은 요양센터에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래서 조카가 옆에서 도와주어서 영상통화를 한다. 퇴근 후에 할머니에게 와서 통화를 할 수 있게 배려를 한다. 참 고맙다.‘장모님, 장모님! 제가 누구인지 알아요.’ ‘권서방이지.’ 미소를 지으신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픈 곳은 없으세요, 사위 보고 싶으시죠,’ 등 수다를 떤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시다. 말이 없고 잔잔한 미소와 잠뿐이시다. 가슴이 아프다. 97세의 고령이었지만 늘 ‘권서방!, 권서방!’ 하셨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 사랑이라고 하였는데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나 권서방만의 아픔이 아닌 사회의 아픔이다.오늘도 병실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 해본다. 장모님을 불러본다. 장모님, 우리 장모님!!

2021-02-15

자화상들 그리십시다

유영희인문글쓰기 강사·작가4년 전 이맘때 연필로 인물화 그리기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다른 수강생들은 배우자, 자녀, 손자, 아니면 친구를 그리는데, 나는 주야장천 내 얼굴만 그렸다. 문득 그때가 떠오르면서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자화상의 비밀’의 저자 로라 커밍에 의하면, 초상화든 자화상이든 인물화는 역사적으로 하위 장르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자화상은 초상화보다 더 하위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화가가 자기 모습을 그릴 때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대로 그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100여 점의 자화상을 남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릴 때 대담하게 변칙을 했기 때문에 실제 모습과 많이 달라서, 그의 실제 모습은 다른 화가들이 사실적으로 그린 초상화를 통해서만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남이 그려준 초상화라고 해서 사실대로 그려진다는 보장은 없다. 조정래의 ‘어느 솔거의 죽음’이라는 중편 소설에서는 성주가 어느 화가에게 자기 초상화를 의뢰했다가 화가가 성주의 비열한 내면까지 표현하자 그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후원자나 권력가 같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인물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미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기를 그린 자화상보다는 다른 사람을 그린 초상화가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은 많다.그렇기에 로라 커밍이 자화상의 가치를 강조하는 지점은 사실 여부가 아니다. 자화상은 다른 종류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녀는 아무리 못 그린 자화상이라도 이미지로 전환되기 이전의 인물과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자화상에서는 쉴 새 없이 바뀌는 변덕스러움, 하루하루 경험에 따라 수없이 바뀌는 인물의 성격과 같은 심층적인 진실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사실대로 그린 초상화에서는 표현될 수 없는 진실이 표현되어 있다.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린다고 해서 명예를 얻거나 돈을 만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자화상은 대부분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나 감사, 사랑 등 내밀한 표현 욕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화가들의 표현 욕구는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가 무엇을 표현했는가 하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러고 보니, 4년 전 내가 그렇게 자화상을 그려댄 것은 세상과 어떤 모습으로 소통할까 고민 중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이청준의 ‘자서전들 쓰십시다’에서 남의 자서전을 대필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진욱은 자서전 대필에 염증을 느낀다. 그는 스스로 쓰는 진솔한 자서전만이 영혼과 성찰을 담고 있다면서 결국 모든 대필 의뢰를 거절한다. 물론 자화상처럼 자서전도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자서전으로 우리는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이해한다.70이 넘어 처음 배운 한글로 삐뚤빼뚤 쓴 편지 한 장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훌륭한 자서전이 되듯이 나를 전혀 닮지 않은 서툰 자화상도 세상과 소통하는 멋진 통로가 된다. 그러니 우리 신축년에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세상과 만나기 위해 ‘자화상들 그리십시다.’

2021-02-15

유튜브 ‘공방’

유튜브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중계하는 ‘공부방송’, 일명 ‘공방’이 인기를 얻고 있다.공방은 영상 속 인물이 몇 시간씩 조용히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 필기구로 종이에 뭔가를 적는 소리만이 들릴 뿐 별다른 미동도 없다. 어떤 경우는 공부하는 이의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공방의 인기는 해외에서도 뜨겁다.미국 뉴욕에 사는 의사 제이미가 의학도 시절 시작한 공방은 현재 구독자 40만6천명을 자랑한다. 인도의 한 의학도가 개설한 공방은 구독자가 17만명이고, 네덜란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또 다른 인도인의 공방은 구독자가 1만9천명이다.유튜브 미국 본사는 최근 문화와 트렌드에 관한 분석을 내놓는 웹사이트 ‘컬처앤드트렌드’를 통해 “공부 장면을 중계하거나 녹화해 보여주는 영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콘텐츠”라며 “2019년까지 비슷한 영상들이 2억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공부방송을 하는 공부 유튜버는 대체로 교사 임용고시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일례로 지난해 임용고시에서 한 차례 떨어졌던 A 씨는 올해 긴장감을 갖고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유튜브 공부 방송을 시작했다. 하루에 적게는 6시간, 많을 땐 1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부하는 A씨의 모습을 수십, 수백 명의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보고, 방송 후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녹화 영상은 매번 500명 안팎의 시청자가 본다.시청자들은 실시간 채팅창에 “오늘도 출석했다” “취업준비생들끼리 함께 힘냅시다” 등 격려 글을 올리며 소통한다. 힘든 공부를 함께 하는 느낌을 주는 공부방송은 또 하나의 비대면시대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21-02-15

가덕도에 맞서 통합신공항 특별법 만들어야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이 수적 힘으로 밀어붙인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사실상 법 통과만 남겨둔 셈이다. 여당은 5년 전 영남권 5개 광역단체장이 합의해 결정한 국책사업인 김해신공항안을 백지화시키고 4월 선거를 의식, 부산 여론을 쫓아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만든 것이다. 특별법의 내용이 부실하고 국책사업이 선거에 떠밀려 졸속으로 변경됐다는 비난에도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은 이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전액 국비사업으로 건설된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됐다.대구와 경북은 김해신공항안을 전제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을 어렵사리 추진해왔다. 이전 건설비는 현 군부대(K-2)를 처분한 비용으로 한다는 조건이다. 이른바 기부대 양여 방식이다. 기부대 양여 방식은 애초부터 사업비 조달 가능여부가 논란이 됐던 부분이다. 하지만 논란보다 이전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밀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군위·의성지역으로 이전을 결정한 것이다. 문제는 김해신공항이 아닌 가덕도 신공항과 경쟁해야 하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입장이다. 부산항을 낀 부울경의 전체 경제력과 비교해 볼 때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활성화는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대구경북의 의원들이 가덕도 신공항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으로 서명하고 발의한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특별법이 어제 국회에서 공청회를 가졌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전액 국비로 건설되는 것처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도 전액 국비사업으로 지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극렬히 반대한 대구경북으로서는 한발 물러선 입장이나 현재로서는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9조원이 소요되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이전비를 국비로 한다면 실리라도 챙길 수 있다는 의도다.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이 이같은 특별법 제정으로 가덕도 특별법에 대응하려는 것은 지금 상황 아래에선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지역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만 하다가는 이도저도 얻지 못하는 꼴이 되기 십상여서 실리를 앞세운 통합신공항 특별법 선택은 불가피하다. 이제 성사가 관건이다. 통합신공항 특별법 성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의 절차적 문제는 다음에 가서 따져도 된다.

2021-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