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길, 흙탕길, 아스팔트 가리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얼마나 달렸는지 내 몸은 닳았고 어느 날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정비소 한 곳에 던져진 채 여러 달을 보냈다. 밤이 이슥한 어느 날, 차에 실려서 밤길을 달렸다. 어디가 어딘지 구별할 수도 없는 곳에서 내렸다. 날이 밝아 사방을 둘러보니 산속이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살 것 같았다. 나이 든 사람들이 귀촌이라고 하더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시에서 오염된 공기만 마시다가 오니 낙원이 따로 없다. 터지도록 구르기만 하던 나에게 이런 휴식이 주어지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앙증맞은 새싹은 얼마나 귀여운지. 뾰족이 땅을 헤집고 나오는 싹을 보면 신기하였다. 내 옆의 꽃을 찾아 나비가 날아들고 벌이 꿀을 따갔다. 자연의 잔치는 향기로웠다. 나를 내려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멧돼지가 냄새가 나서 다니지를 못하겠다고 나를 보고 야단을 쳤다. 멧돼지뿐만이 아니었다. 밑에서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엉덩이를 들었더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여 싹을 틔울 수 없다고 쑥이 말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옆의 친구도 나이 든 나무 위에 걸터앉았다고 젊은 녀석이 버르장머리가 없다고 혼이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름때 묻은 친구들의 몰골과 사고로 살갗이 찢어진 친구는 속살을 부여잡았다. 흰색의 줄로 장식한 네 명의 친구는 같은 차에 달렸던 형제라며 가까이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런데 하나 같이 얼굴이 굳어졌다. 주위에서 여기는 올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과 공존할 수 없는 성분을 지녔다. 썩어서 거름이 되지도 화분이 되지도 못한다.
“누가 여기에 쓰레기를 버렸어.”
승객을 위해 달리고 짐을 싣고 달리고, 평생 사람을 위해 닳고 닳도록 일했는데, 갑자기 쓰레기라니 속이 터졌다. 도시의 길가에 버려져 파리떼가 득실거리는 쓰레기를 알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아무 말 없이 째려보며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버린 사람과 싸잡아서 범죄자로 취급한다. 폐타이어 신세가 되면 몸속에서 철을 뽑아내고 깨끗하게 씻고 잘게 부서지면 고무 분말이 되어 다시 원료로 사용된다. 고무 매트로 다시 태어나기도 하고 운동장에 트랙 바닥으로 깔린다. 아스팔트 원료로 쓰이기도 하고 아니면 나를 태워 산업체에서 열에너지가 된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몸을 쓰레기라고 부르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싶다.
이제야 밤늦게 허겁지겁 나를 내린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다른 사람 모르게 우리를 내리느라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면서 내리고는 쏜살같이 가버렸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귀촌하는 사람처럼 산속에서 쉬라고 내려준 줄 알고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나를 사용한 이도 사람이고 이곳에 버린 이도 사람이다. 평생 사람을 위해 일했는데 산속에 버려지다니, 자원을 쓰다가 버리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인간은 알아야 한다. 문명의 이기물을 함부로 버리면 반드시 역습당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