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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적상산

등록일 2015-11-06 02:01 게재일 2015-11-0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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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춘다, 붉은치마 … 멈춰라, 가을시계
▲ 역사와 문화, 자연경관을 모두 갖춘 학습관광지로 소문난 전북 무주 적상산. 산행하다보면 만나는 풍경마다 비경들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얼마 전 필자는 우리나라의 산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호기심을 갖고 자료를 뒤지다보니 전국의 산은 모두 4천440여개로 나와 있다. 전국 곳곳에는 산이 있다. 그 가운데 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지역이 고성군이라 하니 응당 두메산골 강원도인줄 알았다. 그런데 자료를 보니 `경남 고성`이라서 새삼 놀랐다. 곳에는 총 68개가 등록되어 있고, 산이 가장 적기로는 경기도 구리시로 단 한 개의 산이 있다.

가을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이 때쯤이면 전국의 어디의 산을 가더라도 풍경들은 고와서 비단 등산객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많이 산을 찾는 철이다. 정기적으로 찾는 산행도 좋지만 일상의 분주함을 겪다가 떨쳐버리고 산속을 찾아 하루를 지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번 산행지는 전북 무주의 적상산이다. 며칠 전에 대구에 살고 있는 영덕군 창수면향우회 권재득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걸려 와서 좋은 향우들과 가는 좋은 산행 길에 동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선 쾌히 승낙한 것인데, 산행을 정기적으로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함께 가자는 산악회나 향우회들이 많은데 그것은 아무래도 필자가 경북매일신문에 산행기를 연재하고 있는 덕분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아침에 약속장소로 나가 권 회장과 후배인 산악회회장, 그리고 등산행사에 참가한 향우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 무주로 향했다. 무주 쪽은 필자가 산행을 많이 가봐서 그런지 일행을 태운 차량이 가는 방향이 눈앞에 선히 그려진다.

▲ 한 때 위용을 자랑했던 적상산의 산성비.
▲ 한 때 위용을 자랑했던 적상산의 산성비.

이윽고 무주 적상산이 보이는 산행 출발지 서창마을에 도착했고 일행들은 공기부터 다른 산속의 아름다운 풍경에 좋다는 이구동성을 내뱉은 뒤에 차에서 내려 먼저 기념사진 촬영부터 먼저 했다. 이는 어느 산악회를 가도 필수적인 것이다. 산악회나 설사 향우들끼리 관광왔다고 하드라도 참가한 사람들은 훗날 사진을 보면서 허뭇해하거나 그 시절을 그리워할 테니까.

적상산 등산코스는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치목마을에서 소대폭포, 안국사를 지나 안렴대, 송신중계탑을 거쳐 적상산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둘째 코스는 서창마을을 출발해 장도바위, 서문을 지나 적상산정상으로 이어지는 서창코스다.

세 번째는 안국사 절에서 출발해 송신중계탑을 거쳐 산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있는데, 우리 일행들은 두 번째 코스에서 향로봉을 더하고, 적상산에 올랐다가 안국사를 거쳐 송대폭포로 해서 치목마을로 내려가는 산행코스를 택했다. 서창공원지킴터를 지나니 길가 단풍나무가 곱게 물들어 마음을 편안히 해준다. 동행한 고향사람들은 초입부터 단풍이 들거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삼아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사진을 찍는다. 산행에 나오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니 필자는 호응해준다.

등산로 입구가 잘 정비돼 있고, 적상산이 육산이라서 걸음걸이 하는데 힘들지 않다. 조금 전 이 출발지에서 만난 이 마을에 산다는 젊은이는 산행 초보자들도 많이 오르는 산이라고 하는데 쉽게 산을 오르고 구경꺼리가 많다는 뜻이다.

그 사실은 (사)무주군관광협의회가 발간한 `무주 적상산 22경`이라는 책자에서도 나타나 있으니 적상산이 역사와 문화, 자연경관이 모두 갖춘 학습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적상산 22경 에는 우리 일행이 가는 적상산성, 처마바위, 장도바위, 송대폭포 등이 다 망라돼 있는 것이다.

산행 길 옆에 위치한 처마바위를 보고서 장대바위로 향한다. 장대바위는 적상산 절경 중 제3경으로, 고려 때 최영장군의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장군이 민란을 진압하러 산을 오르다가보니 커다란 바위가 턱 버티고 서 길을 찾지 못하자 차고 있는 장도를 뽑아 내려쳤더니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져 길이 났다는 것인데, 큰 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진 게 신기할 정도다.

장도바위를 지나 조금 저 올라가면 서문이다. 서문을 지나니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오른 쪽으로 가면 적상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으로 가면 향로봉 가는 길이다. 저만치에 서서 빤히 보이는 향로봉을 향해 길을 걷는다.

향로봉에 올라서서 일대를 내려다보니 적상산과 산위의 호수 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좋은 풍경 속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산행객들로 가득 차 있다. 적상산에는 유달리 가을철에 산행객들이 많다고 하니 그것은 적상산의 이름에서도 보듯이 가을 단풍이 유명하기 때문이리라.

▲ 적성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 적성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서 적상산 정상으로 향한다. 국립공원측과 무주군에서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아 걷기가 편한데, 전국 등산을 하다보면 유명 관광지나 산을 가진 곳일수록 지방자치단체가 신경을 많이 써서 안내판 등을 정비해놓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지역을 홍보하는 일이다. 전국에서 단풍놀이 온 많은 인파 속에서 좋은 풍경을 보며 걷는 산길은 행복하다. 더욱이 고향사람들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 순간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숲길을 지나면 온통 붉은 빛으로 채색된 시간과 공간속의 산행 길은 항상 의미가 깊다.

적상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 길에서 길가에 세워진 적상산성비를 만난다. 적상산성(사적 제146호)은 둘레 길이가 5천584m인데, 그를 증명하는 산성비가 세워졌고, 지금은 성벽이 무너져 울창한 숲 사이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이어서 비석은 다소 초라해 보인다.

적상산은 삼국시대 때부터 요지였다. 백제와 신라가 각축을 벌였고, 고려시대 때는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인근 수십 군현의 백성들이 무참히 피살되었음에도 적상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안전하였으므로 최영장군이 산성 쌓기를 상주한 일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여지승람 `고적조`에는 고성의 “석축 둘레는 1만 6천920자, 높이가 7자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봐서 지금의 성터는 세종 때나 그 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적상산(해발 1천34m) 정상에 올랐다. 산 일대의 붉은색 바위지대가 마치 산이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다고 하여 `적상(赤裳)`이라는 산 이름을 붙였다. 산 정상 부문은 평탄하나 아래에서 산허리까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게다가 물이 풍부해 천혜의 자연요새를 이룬다.

일행들이 산 정상에서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사이 필자는 주변을 둘러본다. 짙게 타는 가을산의 정취에 감탄한다. 무엇보다 저 아래 산상호수에 비치는 햇볕이 수면에 반사돼 눈을 부시게 하는 장면은 산을 많이 타 봐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정말 가을산이 절경이다. 사위를 빙 둘러보면서 사진 몇 컷 찍고서는 잠시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해본다.

`울긋불긋 단풍 든/ 가을 산이 곱지만/ 적상산은 유난하다./ 산위, 바위지대가/ 붉은 치마를 입은 것 같아/ 적상(赤裳)이라 불리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시사철을 두고/ 인파가 물결치는 곳/ 여기, 무주의 명산은/ 울창한 나무숲마다/ 붉게 타고 있으니/ 함께 온 고향사람들/ 얼굴마저 홍조 빛이다.`(자작시 `적상산에 오르다` 전문)

일행들의 이구동성을 들어보면 쉽게 등산하면서도 단풍들이 고와 오길 잘 했다고 하면서 창수면 향우회 권재득 회장과 산악회장이 산행장소를 잘 선정했다고 칭찬을 한다. 모처럼 산속에서 만난 고향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며 공로를 치켜세워주는 것을 들으니 그저 흐뭇하다.

▲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을산이 절경이다.
▲ 정상에서 바라보는 가을산이 절경이다.

적상산 정상에서 잠시 머문 후에 안국사를 거쳐 적상산 사고지와 호수 쪽으로 내려선다. 안국사는 나라를 평안하게 해주는 사찰이라고 하여 이름붙인 사찰이다.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 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니 750년이 되어가는 유서 깊은 도량이다.

안국사가 유명해진 것은 그 후 조선 광해군 6년(1614년)에 조선왕조실록를 봉안하기 위해 적상산 사고가 설치 된 때문인데, 1910년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의 도량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적상산사고지가 있던 곳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적상산사고지는 우리나라 5대사고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 때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에 조정에서는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했다. 그 후 북방 침입에 대비해 광해 6년(1614)에 무주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겨온 것이다.

참고로 그간 무주 적상산 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이 1973년 12월 31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데 이어 `동의보감`이 올해에 국보 제319-2호로 지정됐으니 이곳은 국보를 배출한 역사적인 곳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사고지를 지나서 조금 윗 편에 자리한 적상호도 여기서 빼어난 풍경이다. 조금 전 정상에서 보았던 적상호수는 산위에 있는 일명 상정호수다. 해발 800m 고지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이 바로 적상호다

적상호를 보고난 후에 다시 삼거리로 빠져 나와서 송대계곡으로 향한다.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송대폭포는 사방이 병풍처럼 깎아 내린 절벽으로 인해 길에서는 송대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폭포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우회해야하는 데 필자는 그냥 길을 걸어 치목마을에 당도해 산행을 마쳤다.

가을이 한층 무르익는 계절에 맞춰 고향사람들이 필자를 초청해줘서 적상산을 잘 다녀왔다. 적상산을 오르려고 하던 참인데 잘 됐다. 정기 산행을 하고 있는 필자로서 평소에 만나고 싶어 했던 고향 선·후배들끼리 아름다운 곳을 오붓하게 산행했으니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글·사진= 손경찬/수필가·예술소비운동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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