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위해 기다렸다활주로에 반듯하게 쌓인 눈이 사라지기 전까지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유리벽 너머로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짧게 지나가는 한낮의 여명 안에서가랑눈들만 선명하게선명하게 흩날리며먼지처럼 활주로 위로 내려앉았다떠나기 위해 기다렸지만눈은 계속 눈으로 내렸다그것들은 바닥에 닿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저기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을까우리는 멈춰버린 광경을 바라보며광경 안에 멈춰 있었다천천히 내리는 가랑눈들 사이로안내방송이 가끔 차갑게 울렸다(중략)위의 시는 ‘코로나19’ 이전에 발표되었지만, 위의 시 각 연의 첫 행에서 반복되고 있는 떠남의 욕망과 기다림의 상황은 ‘코로나19’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것 같”고, 세계는 “멈춰버린 광경”으로 현상하며, 그 광경 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 역시 “멈춰 있”는 현재의 상황 말이다. 위의 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암울한 예견이 되었다. 문학평론가
2021-08-03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 알게 되었다별들이 죽으면서 남겨놓은 것들이어찌어찌 모여서 새로운 별들로 태어난다는 거숨결에 그림자가 있다는 거당신도 나도 그렇게 왔다는 거우리가 하나씩의 우주라는 거수백억광년의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른빛의 내음소리의 촉감온갖 원자들의 맛지구에서 살아가는 나는 가끔죽은 지 오래인 별들의 임종게를 발굴해 옮겨 쓴다그대들이 세상이라 믿는 세상이여, 나를 받아라. 내가 그쪽을 먼저 사양하기 전에.오늘 아침 닦아준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말임종게가 늘 탄생게로 연결되는 건 아닐 테지만가끔 유난히 아름다운 탄생의 문양들이 있어우주가 지나치게 쓸쓸하진 않았다위의 시에 따르면 저 별빛을 바라보며 감각하고 있는 우리의 몸에서 별들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탄생하는 저 별무리는 소멸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남겨놓는다. 쓸쓸하게 소멸할 존재들인 당신과 나는 이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별들처럼 우리도 아름다움을 타자에게 남겨놓을 수 있는 존재인 것, 그렇기에 우리는 허무를 딛고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문학평론가
2021-08-02
저건 가기만 한다오는 것은 알 수 없고가는 것만 보이는 건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숙명인 양 가는 뒷모습만 전부다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다우리는 열차의 맨 뒤 칸에서 뒤를 보고 있다마치 기계노동의 습관처럼도무지 누가 앞에서 운전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얼굴이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린모든 걸 배웅하기에 바쁘다(중략)순환의 절반을 버림으로써 얻은이 엄청난 질주와 쾌락우리는 어떤 재생에도 참여하지 않는다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숙명이라는 쏟아지는 별들의 시간을‘시계-시간’은 글자판을 순환하지만 앞으로만 나가면서 순환한다. ‘시계-시간’은 삶을 재생하지 않고 소진케 한다. ‘시계-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이 시간을 누가 운전하는지 모른 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백무산 시인에 따르면 우리는 이 숙명을 “발견하지 않고 발명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숙명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시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질문을 유발한다. 문학평론가
2021-08-01